목차? 평생교육이란?? 학자들에 따른 평생교육의 정의? 랑그랑? 다베? 장진호?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평생교육의 발전배경.? 평생교육의 필요성? 평생교육에 내포된 개념? 유사한 개념의 정의? 사회교육? 성인교육? 비형식교육? 계속교육? 회귀교육? 지역사회교육? 평생교육이 필요하게된 배경.? 대학평생교육의 발전과정과 현황? 한국 평생교육의 발전과정과 변천사.1. 평생교육이란?평생교육의 사회는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ANYONE, ANYWHERE, ANYTIME) 학습할 수 있는 기회와 장이 제공된 사회이다. 1995.5.31교육개혁에서 '열린교육사회?평생학습사회'를 이념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우리 나라의 경우 평생학습사회의 인프라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을 학교교육과 학교가 우선 담당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지금까지 교육구조를 보면, '누구나'인 학습주체는 주로 청소년에게, '어디에서나'인 학습장소는 주로 학교가, '언제나'인 학습시기는 주로 유년기?청소년기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교육 소비자 주체시대이자 정보화?세계화 시대에는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는 기회와 장을 제공받지 못하면 자기향상, 생활향상, 직업능력의 향상, 국가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적으로는 IMF위기, 노동생산성의 저하, 사회적으로 시민공동체 의식 결여, 교육적으로는 주입식 암기위주의 학력경쟁 등으로 총체적인 국민잠재력의 저하를 초래하게 된다.따라서 '모두를 위한 평생교육'이 사회의 교육?학습체계를 조기에 구축해야 하는 것은 시대적 과제이다.이러한 평생교육은 학자에 따라 여러 가지로 정의하고 있으나 종합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랭그랑(Lengrand)의 견해 :‘개인의 출생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전 생애에 걸친 교육(수직적 차원)과 학교 및 사회 전체 교육(수평적 차원)의 통합’ 이라고 말함으로서 교육의 통합성과 종합적 교육체계를 강조함.- 다베(Dave)의 견해 :‘개인적 및 사회적 삶의 질을 계속적으로 향상시 체제에서 디지털 체제로 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단위 국가 체제에서 국경이 무의미한 세계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교육은 학교교육 중심, 공급자 중심에서 평생교육 중심, 수요자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인구 구조는 인생 50년형에서 인생 80년형으로 바뀌고 있다.평생 직장은 사라지고 평생 고용 가능성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와 같은 총체적 변화는 생애에 걸친 체계적인 인적 자원 개발?관리나는 평생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요구한다.평생교육 이라는 용어는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유행한 교육용어 가운데 하나이다. 이 용어는 197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지만 주로 교육학자들 사이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제 5공화국 헌법에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한다 는 구절을 명문화함으로써 평생교육은 급속히 일반화되었다. 오늘날에는 이 용어가 대중화되다시피 하였다. 더욱이 1995년 발표한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의 교육개혁 방안은 개혁의 기본방향을 평생학습사회 건설 이라고 선언함으로써, 평생교육은 한국교육의 이정표가 되다시피하였다.한 걸음 더 나아가, 교육개혁위원회의 개혁안에 따라 새로 제정한 은 국민의 평생학습권의 보장을 명문으로 규정하였고, 1996년 교육부 조직개편의 결과로 사회국제교육국 을 평생직업교육국 으로 명칭변경하였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명칭변경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대 변혁이다. 평생교육은 2000년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전환이 야기하는 경제, 정치, 사회, 문화의 변화와 함께 교육에도 일어나고 있는 시대적 변화의 일면이다. 그러므로 평생교육에로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며, 변화의 내용이 무엇인가 정확히 명백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사실상, 일상적 사용에 있어서 평생교육이라는 용어는 아직도 혼돈스런 경우가 많다. 교육학자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다른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목격할 수 있다.그러므로 교육용어로서의 평생교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고, 그 의미를 되도록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하여는 평생교육에 대한 사에 비형식교육을 강조하였다. 2차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전쟁은 결국 인간들의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므로 전쟁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평화도 인간의 마음에 심어야한다는 정신으로 출발한 유네스코는 가난한 나라 국민들의 교육문제해결을 처음에는 문해교육에서 찾았고, 이어서 학교 밖의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학교밖 교육 즉 비형식교육의 강화에 주력하였다. 그 다음 단계가 평생교육의 제안인데, 이것은 학교교육을 마친 사람들에 대한 평생에 걸친 계속교육의 필요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개발도상국 또는 제삼세계국가들과 선진국간에 관점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개도국들은 청소년들에 대한 학교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맹자들에 대한 문해교육 조차도 완성하지 못한 상태이므로, 국민들에 대한 기초교육이 최대의 정책과제이었다. 반면에 선진국들은 중등교육까지 완전취학을 거의 완성했고 대학교육도 상당 수준 확대했으므로, 중등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과 대학을 마친 사회인들을 위한 후속교육이 필요한 단계에 있었다. 이처럼 각국의 교육상태가 달랐는데, 평생교육은 개도국보다는 선진국의 필요에서 제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도국들은 중등교육, 심지어 초등교육의 보편화도 충분히 실현하지 못한 상태여서 중등교육 또는 대학교육이후의 평생교육에까지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던 반면에, 선진국들은 중등교육의 완성과 대학교육의 확대와 동시에 산업사회로부터 정보사회로의 전환 때문에 평생교육의 필요가 급속히 높아진 것이다.이처럼 평생교육의 필요가 국민교육과 산업수준에 따라 달랐기 때문에 평생교육의 강조가 선진국에 편향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유네스코의 교육전문가들은 개도국가 선진국의 상태를 함께 반영할 수 있는 평생교육개념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유네스코는 평생교육의 기본적 성격을 교육시기의 연장, 교육장의 확대, 교육제도의 개방에서 찾으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진국들은 교육시기의 연장을 중심으로 하여 학교와 대학 이후의 연속적 교육을 강조하는 평생교육을 수용하고, 개원에서 제시하고 평생교육 인프라 구축 등 이를 실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평생교육에 내포된 개념① 평생교육을 교육과 동의어로 보는 견해가 있다② 평생교육 개념에는 교육의 이념이 내포되어 있다.③ 평생교육의 목표는 계속적 자아실현과 사회발전의 능력 신장에 두고 있다.④ 평생교육을 모든 교육을 포괄하는 상위개념으로 파악하려는 견해가 있다.⑤ 평생교육은 교육의 통합개념으로 본다.(수평적 통합, 수직적 통합)⑥ 평생교육은 새로운 교육의 통합체제를 의미한다.⑦ 평생교육의 개념에는 국민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 내포되어 있다.⑧ 평생교육의 강조는 교육개혁사업의 촉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1. 유사한 개념의 정의? 사회교육(Non-formal Education)정규 학교 교육 이외의 모든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교육활동으로서 평생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구성 요소이자 평생교육을 위한 방법론이다. 사회교육은 성인교육, 비형식교육, 계속교육, 회귀교육, 각종 학교의 직업 훈련을 포괄하는 상위의 교육개념이다. 협의의 개념으로는 유아교육을 제외한 학교외 교육을 말한다.? 성인교육(Adult-Education)성인교육은 교육 대상을 분류 준거로 한 용어로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형태의 교육 활동을 총칭한다. 따라서 교육의 대상은 성인이며 교육 방식은 형식, 비형식, 무형식 교육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 교육과는 다르다. 평생교육의 개념 중 성인기 이후의 활동만이 이에 해당된다.? 비형식교육(In-formal Aducation)비형식교육은 교육의 양태 또는 교육의 방식에 따른 구분으로서 교육의 대상에 대한 규정은 내포되어 있지 않은 우연적 학습과 교육 양태를 의미하며 이는 사회교육과 가장 유사한 개념이다.? 계속교육(Continuing Education)계속교육이란 일정한 단계의 학교교육을 마친 자가 직업이나 가정?사회생활을 영위하다가 사회생활이나 직업생활과 학업을 병행하기 위하여 다시 교육의 장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하며 주로 성인의 학교를 통한 2차적 교육기회를 의미한학교교육에 내재하는 제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노동생활의 변화와 학교외교육의 확대, 고령화에 있다. 한국의 평균수명이 인생70-80년이 되고 있다. 최초의 20년간은 교육?훈련양성?성장의 시기이고, 다음 40년간은 노동의 시기, 마지막 10-20년은 연금으로 생활하는 여가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종래의 학교교육은 인생의 초기에 집중적으로 교육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혁명적 진보와 그에 따른 급격한 사회변화에 학교교육이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부모와 자연, 본질을 무시한 학교교육은 새로운 관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과 지식의 수명이 짧아져 학교교육이 인생의 초기에 한정되었던 것을 '일생을 통해 계속하는'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교육과 학습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IMF개혁시대의 성인의 직업개발교육과 노인기의 20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학교교육은 평생학습의 관점에서 평생을 통해 자기 학습력, 생활력을 육성하기 위해, ① 새로운 학력관에서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의 엄선을 통해 열린교육을 실현해야 하는 라이프사이클의 축을 고려해야 하고, ② 다가올 주5일제 학교교육, 가정과 지역사회의 교육기능을 살리고 열린 학교교육의 역할이라는 라이프스페이스을 고려해야 하고, 그리고 ③ 정보화, 세계화, 과학기술의 발전 등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는 시대변화의 축 속에서 학교교육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직업교육도 변화하는 사회에 크나큰 문제가 되고 있다. 새로운 직업기능?경영의 도입, 직종전환, 세계화?정보화의 대응, 창조력을 발휘라는 직업생활의 대응은 직장 상사의 OJT(on the job training:직장내 교육)방식만으로 충분하지 않게 되었다. 근로자의 직업능력의 개발은 필수가 되었고, 기업R&D개발, 기업내?외교육은 기업의 장래를 좌우하게 되었다. 또한 노동시간의 단축과 주5일제 근무는 여가의 대응력, 자기계발이 요구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로 남녀공동이다.
제 목 : 익산지역주민 컴퓨터소양 증진 프로그램목 차 : Ⅰ. 프로그램 필요성 및 추진 여부 검토Ⅱ. 상황 분석Ⅲ. 요구 조사Ⅳ.프로그램 선정1. 내용 및 일정2. 긍정적 자아개념 프로그램3. 자기주장훈련 프로그램Ⅴ. 인적 자원 선발 및 관리Ⅵ. 예산편성Ⅶ. 홍보Ⅷ. 평가1. 프로그램 필요성 및 추진 여부 검토Ⅰ. 프로그램 주체- 익산에 거주하는 학생 및 지역 주민.Ⅱ. 프로그램 개발 요청자의 근본 의도.- 컴퓨터사용과 인터넷 보급이 급속도로 늘어가는 이 시점에서 지역주민과 학생들에게기본적인 컴퓨터 교육에서 중,고급적인 교육까지 다양한 교육을 함으로써 그들의 지식과 발전에 도움을 주기 위하는데 목적이 있다.Ⅲ.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이유.- 익산지역은 다른지역보다 그리 크게 발달된 곳이 아니기에 많은 주민들이 컴퓨터 사용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고 학생들 역시 중,고급적인 교육을 받기위해선 많은 비용을 들여 배워야 하는 것을 보고 학교 컴퓨터 동아리와 평생교육센터가 연계하여 더욱 값싸고 다양하며 많이 이들이 접할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기에 본 프로그램을 개발하려 한다.Ⅳ. 프로그램을 통해 얻고자 하는 궁극적 목적.- 컴퓨터와 인터넷,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좀 더 쉽고 빠르게 정보를 얻고 이에 따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주민을 만들고 싶은데 궁극적 목적이 있다.Ⅴ. 프로그램 예상효과 및 장애요인- 본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지역주민과 학생들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하여 더욱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수 있을거라 예상한다. 이에 장애요인으로는 교육의 진도를 빼먹은 학생,주민은 다음 강의에 영향을 미치기에 그들의 노력과 협조적인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Ⅵ. 지금까지의 검토결과에 비추어 프로그램 추진 여부 결정- 여러 장애요인으로 프로그램 수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프로그램을 실시함으로 예상되는 효과가 훨씬 크므로, 장애요인을 잘 분석하여 최소화시킨 뒤에 프로그램을 실시한다.2. 프로그램 환경 및 상황분석.Ⅰ. 익산시와 익산에 거주하는 학생들.- 익산시는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많고 상,공고가 많이 밀집되어 있으므로컴퓨터,인터넷 을 배우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고 이에 따른 교육시설이 부족하기에 프로그램을 실시하는데 아주 적합하다. 이에 따라 초급~ 고급까지 단계를 나누어 교육을 실시하여 모든이들이 배우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함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3. 프로그램 선정.Ⅰ.내용 및 일정.1) 기간 2003년 12월 16일 ~ 2004년 2월 17일2) 시간 : 초급반 : 매주 월,수, 금 (PM 2:00~ 4:00)중,고급반 : 매주 화,목,토 (PM 2:00 ~ 4:00)Ⅱ. 프로그램 내용 및 일정.초급반중,고급반내용12월 16~12월 31일인터넷 일반인터넷일반인터넷 기본에서 고급까지1월 1일 ~1월 20일홈페이지 제작홈페이지 제작 고급나모웹에디터를 이용한 홈페이지 제작.1월 20 ~ 2월 5일워드,파워포인트플래쉬강의초급반은 워드와 파워포인트의 사용과 기능을 배우고 중,고급반은 플래쉬를 이용하여 더욱 멋진 홈페이지와 고급작업을 시행.2월 5일 ~2월 17일포토샵포토샵,일러스트레이션포토샵,일러스트레이션을 이용한 사진,그림을 멋지게 꾸미고 많은 분야에 사용할수 있도록 지도.Ⅲ.교제와 교육시설 및 강사.- 교제 : 기본적인 교재는 직접 제작하여 배포.- 교육시설 : 원광대학교의 새천년관 실습실과 평생교육센터 강의실에서 강의.- 강사 : 원광대학교 SGI동아리와 정보전자상거래학부 재학생.4. 인적자원 선발 및 관리인적자원인터넷 일반강사 2인홈페이지 제작 강사 1워드 강사 1파워포인트 강사 1포토샵 강사 1학습지도 자원봉사자 5* SGI동아리와 정보전자상거래학부생을 중심으로 실력있고 마인드 있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구성.5. 예산편성Ⅰ. 총예산 수급방법.- 학교측의 도움으로 강의실을 기본적 전기료,난방료만을 내고 교육할수 있도록 하고 프로그램 홍보비용과 강의료는 학생들의 수업료로 충당한다.Ⅱ. 수강료 결정의 적절성.- 타 학원에 비교하여 값싼 수강료를 책정하며 많은 이들이 부담없이 강의를 즐길수 있도록 하기위해 1개월당 4만원의 수강료를 징수하는 것으로 한다.6. 홍보.Ⅰ. 홍보대상.- 익산시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과 학생들이며 쉽고 재미있게 교육을 하며 값싸게 많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야 한다.Ⅱ. 구체적 홍보방법.- 각 학교홈페이지와 대자보를 중심으로 홍보.- 홍보용지를 만들어 분배.(SGI동아리와 정보,전자상거래학부생,대학생 봉사자 이용)7. 평가.1. 참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평가.익산지역주민 컴퓨터소양 증진 프로그램을 마치고.이름 :본 프로그램에 참가한 후 느낀 점을 솔직하게 써주세요.1. 어떤 과정이 가장 흥미로웠나요?2. 어떤 과정이 가장 지루했나요3. 프로그램의 시설과 강사는 어떠했나요?4. 프로그램의 참가 인원수는 적당했나요?5. 이외의 다른 프로그램이 포함됐음 하는 내용이 있음 모두 써주세요.
일시 : 경향신문 2003.11.26(수) 19:33사례:?여학생 치마 교복 강요 성차별?=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여학생들에게 치마 교복만 입게 하는 것은 남녀차별이라는 심의결과가 나왔다.여성부는 지난 24일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열어 중?고교생의 교복 착용에서의 남녀차별사항에 대한 직권조사 사건을 심의한 결과, 치마 교복만 입게 하는 것은 남녀차별의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26일 밝혔다.개선위는 이에 따라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 여학생들이 치마와 바지 교복을 선택해 입을 수 있도록 일선 학교에 지도하도록 권고키로 했다.여학생이 있는 전국 4,036개 중?고교 가운데 교복 착용 학교는 96%였으며 여학생에게 치마 교복만 입도록 강제하는 학교는 전체의 54%인 2,181개인 것으로 나타났다.개선위는 ?교복이 치마여야만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부족하고, 치마만을 입을 경우 행동과 태도를 규제하게 되어 차별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송현숙기자 song@kyunghyang.com〉나의 의견일상생활속에 자리잡은 나의 생각 역시 편견속에 잡혀있다는 것을 이 기사를 통해 알게되었다. 나역시 치마=여성의 산물 이라고만 생각했고 남성이 치마를 입는다는것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저 코메디나 연극에서 나오는 내용으로만 생각했다. 남성과 여성의 옷입는 것 하나하나까지도 우리의 생활속에서 어느덧 익숙해진 편견이며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트랜스젠더 하리수 역시 치마를 입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누구도 크게 비방하진 않는다. 그이유가 무엇일까? 치마역시 우리에겐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남성의 눈을 위한 작은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여학생들에겐 치마는 불편할 것이다. 활동에 불편하며 추위를 쉽게 느끼며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바지가 더 유용적일 것이다.여성학을 배우며 생활속에서 무심하게 지나쳤던 성차별에 대한 것들과 나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하며 지나쳤던 성차별 사례들을 하나씩 알게된다. 이 기사를 통해 평소 친구들에게 정중한 자리에서는 치마를 입는걸 제시했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이런 기회를 통해 하나하나 나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나가야 겠다.일시 : 2003년 11월 21일 금요일사례:학교 총학생회장 출마에 통큰반란의 후보로 남자가 아닌 여성이 나오게 되었다.흔히 학생회장에 남성, 부회장에 여성이란 인식이 있지만 이번 기호1번은 회장이 여성 부회장이 남성이라는 모습으로 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능력과, 리더쉽, 그리고 자질이 있는 후보와 그에 따른 공약을 보고 선거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올바른 생각이지만 주위에선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온다.여성이 나왔다는둥........ 어떻게 할 것이라는 둥........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들은 더욱더 그러하다. 사회역시 이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다. 직장에서의 여성대표가 무시당하고 능력보다는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우리의 현실.이것이 성차별이 아닐까?나의 의견총학생회장에 출마한 기호1번 박지인 후보는 나의 개인적 친분이 있는 선배이다. 검도를 같이 하며 박지인후보의 성품과 자질, 그리고 리더쉽을 알고 있었던 나에겐 그리 선배의 출마가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주위의 걱정스런 이야기들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선거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따가운 눈초리를 주고 그 능력과 공약보다는 누가 나왔느냐 남자냐,여자냐를 먼저 보는 시선들.우리의 주위도 비슷한 것 같다. 현 여성장관을 바라보는 시선들과 국회의원들의 언행은 공인으로써 지켜야할 것들을 포기하고 있는 듯하다. 능력과 자질이 중시되어야 할 것들이 어느덧 가부장적인 과거의 인습을 버리지 못하고 이어나가는 현실.....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그 빛을 보지 못하는 모습....우리가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의 제도를 바꾸고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며 이에 따라 여성들 역시 당당하게 자신의 발언을 해야 할 것이다.점점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주위가 빨리 변화되었음 좋겠다.일시: 11월 29일사례:
과제명 : 자신의 전공분야 또는 관심분야에서 성공한 최고경영자(CEO)에 대하여 고찰하고, 그에 따른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시오.롬멜... 그를 최고경영자(CEO)라 칭하기가 조금은 어색하지만 나에겐 그 누구보다 배울점이 많은 존재이기도 하다. 장교로써 군에 뜻이 있는 나에게 있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한 존경할만한 인물 롬멜. ‘사막의 여우’라 불릴만큼의 뛰어난 전략과 부하를 아끼는 마음, 가족을 사랑하는 그의 모습은 나의 목표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성공한 CEO라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그는 아군에게 보다 적군에게 더 평가를 받았고, 2차 대전때 등장했던 수많았던 전쟁영웅 중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했다. 처칠의 입에서 ‘Master of War’란 말이 나오게 만들었던 인물, 언제나 열약한 상황에서 승리를 이끌어낸 그의 탁월한 전략전술과 비장한 그의 최후...그리고 전쟁터의 한가운데를 달려나갔던 장군으로 보기엔 너무도 인간적인 그의 또다른 면모를 우리는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1891. 11. 15.뷔르템베르크 하이덴하임에서 출생1910. 3.바인가르텐에서 뷔르템베르크 왕실 제6보병 연대 국왕 빌헬름 1세 제 124 보병 사단의 사관후보생으로 지원1913. 12. 8.발부르가 슈템머(walburga stemmer)와의 사이에서 영원한 [조카]로 불리우는 딸 게르트루트 출생1914. 8. 3.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함께 종군1916. 11.휴가 기간 도중 첫사랑이었던 루시에 몰린(Lucie Mollin)과 결혼1917. 10.마타주르(Matajur)산 습격에서 그의 존재를 두각시키기 시작1917. 11.훈장을 뺏길뻔 했음1918. 1.참모로 전출1918. 10. 18.대위로 진급, 대위 진급 3주만에 종전1920. 12.슈투트가르트 보병 연대의 참모로 보직, 이후 8년동안 이곳에서 생활1928. 12.결혼생활 12년 만에아들 만프레트(Manfred)출생 훗날 만프레트는 슈투트가르트에서의 이 인연을 가지고 슈투트가르트 시장으로 변신 4선시장카데미의 지휘관이 됨1939. 3.체코슬로바키아로의 행진에서 총사령관으로서의 임무를 맡음.1939. 8.1.독일군 최초로 서열을 무시하고 소장으로 진급1939. 8. 23.히틀러 총통 본영 경호대대장으로 보직. 1940년 2월 14일까지 히틀러의 경호대대장 역임1940. 2.15.정확히 364일 동안 제7기갑사단장으로 활동...[유령사단]으로의 신화시작1941. 2.15.아프리카 군단장으로 보임 이후 아프리카 기갑집단 사령관, 아프리카 기갑군 사령관, 독.이 기갑군사령관, 아프리카 집단군 사령관으로 역임. 이 기간동안 소장에서 중장으로(1년), 중장에서 대장으로(5개월), 대장에서 상급대장(6개월), 상급 대장에서 원수(5개월)...이란 놀랄만한 진급속도를 자랑하며 제3제국이 배출한 19명의 독일원수 중 최연소란 타이틀 획득1943. 5.14.아프리카 집단군 항복 다음날 “롬멜 임시 사령부”에 부임. 2개월 유지1943. 7. 15.프랑스 주둔 B군 집단군 사령관으로 부임(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전장이 된 오마하 비치 방어력 확충에 열중. 덕분에 미군들 떼죽음)1944. 7.17.캉 동남쪽 30킬로미터 지점 리바로에서 공중공격으로 피격. 두부부상,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음1944. 9. 4.육군 최고사령부 대기1944. 10.14.히틀러에게 [청산가리 사약]을 받음. 가족의 안전을 담보로 자살, 대외적으로 발표 된 사인은 [서부 전선에서 근무 중 입은 부상에 따른 심장마비]로 발표, 히틀러 암살 쿠데타에 연루된 혐의는 묻혔고, 영웅의 비참한 최후로 성대한 장례식으로 포장 됨흔히 전쟁사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사막의 여우'라는 별칭과 함께 회자되는 '롬멜'이란 장군에 대해선 다들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2차세계 대전 당시 태어난 수많은 영웅들과 장군들 중에서 우리의 기억속에 그마나 이름 석자라도(넉자도 있구 두자도 있지만서두) 제대로 “아 그넘~”이라는 반응을 보일만한 장군들은 맥아더, 패튼, 니미츠 정도이고, 좀 마이너틱하게 들어간다면 구데리안이나 만슈타인, 야보면, 편제 조차도 완편이 아닌 반쪽 기갑사단으로 그만한 전과를 올렸다는 자체가 경의로울 정도이다.또한 그는 기갑전의 핵심을 파악하고 내놓은 기갑전에 대한 좌우명을 보더라도 그의 강한 리더쉽과 통솔력을 볼수 있다..- Sturm(돌진), Schwung(충격), Wucht(중압)손자병법을 보면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선 이길만한 상황을 만든 다음 전쟁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전쟁은 이미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서 승리의 확인 과정을 거치는 요식행위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롬멜은 충분히 신화로 자리매김할 만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그의 황금기...바로 아프리카에서의 2년 남짓의 시간들은 이길수 없는 전쟁을 이겨나간 한 영웅의 이야기였다. 병력과 장비의 열세에 보급또한 불충분한 상황에서 오로지 '롬멜'이란 신화에 기대어 독일군은 승리 하였다그의 일생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1891년 11월 15일 뷔르템베르크 하이덴하임안데어브렌츠 출생. 1944년 10월 14일 울름 근처 헤를링겐에서 사망. 롬멜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교사였으며 어머니는 고위 관리의 딸이었다. 1871년 독일 제국이 수립된 이후에는 독일 남부의 중산층에서도 직업장교가 인기직종이 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집안에 군인 출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910년 제124 뷔르템베르크 보병사단에 사관후보생으로 들어갔다.제1차 세계대전 때는 중위로 프랑스·루마니아·이탈리아에서 싸웠다. 부하들에 대한 깊은 이해, 남다른 용기, 천부적인 리더십은 아주 일찍부터 대성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롬멜은 프랑스의 참호전을 경험한 뒤 이탈리아 산악부대로 이동하였다. 서부전선에서 경험한 참호전에서 무의미하게 쓰러져가는 부하들을 보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보여준 기동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탈리아 산악부대를 지휘하면서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던 기동력을 살린 기습공격으로 큰 전과를 올렸다. 그는 철십자훈장을 수상했다.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뒤 롬멜은 군대에 남았다. 프로이센-독일군에서는관계가 있었다. 롬멜이 지휘하는 부대를 사열하던 히틀러는 친위대가 있는 한 사열을 할 수 없다는 롬멜대령의 주장을 시작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히틀러를 경호하는 임무를 맞아 히틀러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또한 독일군 수뇌부가 대부분 귀족출신이란 점이 히틀러의 평범한 출신인 롬멜에 대한 애착을 크게 했는지도 모른다. 롬멜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왔다.1940년 2월에 제7기갑사단의 사단장직을 맡은 것이다. 그는 기갑부대를 지휘한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공격임무에서 기계화된 기갑부대의 엄청난 가능성을 재빨리 파악했다. 프랑스 해협 연안에서의기습공격은 그의 대담성과 창의력을 알려주는 최초의 증거가 되었다. 롬멜이 지휘한 제7기갑사단은 연합군으로부터 "유령사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부대는 구데리안과 함께 전격전, 기동전이 무엇인가라는 대답을 해주었다.1년 후인 1941년 2월 롬멜은 리비아에서 패배 일보 직전에 처한 무능한 이탈리아군을 지원하기 위 해 파견된 독일군 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북아프리카의 사막은 그가 가장 큰 전공을 세운무대가 되었으며 동시에 월등히 우세한 적에게 패하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의 전쟁터에서 대담무쌍한 기습공격을 감행한 그는 아군과 적군으로부터 '사막의 여우'로 불렸으며 굉장한 명성을얻었다. 그러한 성공에 감동한 히틀러는 즉시 그를 육군 원수로 승진시켰다. 그러나 그는 이탈리아 동맹군과 사이 좋게 지내기가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영국군에게 더 호감이 갔다. 그는 초대 중동지역 연합군 총사령관이며 북아프리카에서 그의 적수가 된 아치볼드 웨벨 경이 저술한 전투책자의 애독자였다.그는 이탈리아 동맹군뿐만 아니라 직속 최고사령부와도 의견이 맞지 않았다. 히틀러의 견해로는 북 아프리카는 지엽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중되는 보급의 어려움으로 지친 부대를 철수하게 해달라는 롬멜의 요청을 무시하고 1942년 여름 히틀러는 카이로와 수에즈 운하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렸다. 롬멜이 이끈 독일-이탈리아군은 알렉산드리 맡았다. 이때 기 동전으로 승리를 얻었던 롬멜은 해안 방어시설들을 건설하는 데 비상한 창의력을 발휘했다. 그는 적이 대규모의 교두보를 설치하는 것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저지해야 하고 반격에 대비하여 해안의 방어선 뒤에 강력한 예비대를 배치해 두어야 하며 적군을 바다로 퇴각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 하면 침공전의 운명은 첫날에 결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룬트슈테트는 연합군을 내륙 깊이 유인하여 기갑부대로 전멸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항공전을 경험한 롬멜은 제공권이 없는 상태에서의 기갑부대 이동에 제한을 받을 것이며 적이 교 두보를 구축하기 전에 해안에서 적군을 격파해야 한다고 했다. 롬멜은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른 지휘관들은 대륙과 가장 가까운 깔레에 상륙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롬멜 의 주장은 1944년 6월 6일이 되면서 모두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미 제공권을 상실한 독일군 은 후퇴하면서 전멸당하는 것 뿐이었다. 롬멜은 상륙당일 아내의 생일로 베를린에 있었다. 전선에 복 귀했을 땐 이미 전선은 무너져 가고 있었다.일찍이 1943년 가을에 정치적 욕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순수한 직업군인이었던 롬멜은 전쟁을 도저히 승리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또한 그는 히틀러가 그 사실을 직시할 자세도, 연합국들과 강화를 맺어야 한다는 불가피한 결론을 내릴 준비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 었다. 롬멜은 총통에 대한 군인으로서의 충성과 조국에 대한 애국심에서 심하게 갈등했다. 1944년 봄 비밀리에 결성된 히틀러 반대파에 가입한 롬멜의 친구 몇 명이 그에게 접근하여 히틀러가 축출된 뒤에는 롬멜이 국가 원수직을 맡아야 한다고 제의했다. 그는 그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지만, 독일을 전쟁으로부터 구출하려는 공모자들은 히틀러 암살계획을 롬멜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은 롬멜이 정치적인 목적의 살인을 옳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히틀러가 내리는 일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고.."교육"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생소했던 나에게 그와 관련된 책들을 찾고 감상문을 쓴다는 것들은 조금은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내가 배웠고 또 계속 해야하는 것이지만 그것에 대해 고민한 적도 깊게 생각한 적도 없었던 나였기 때문이다.도서관에 도착하여 교육에 관한 책들을 찾던 중 마침 나의 눈에 들어오는 한권의책이 있었다."위대한 교육 사상가들"이란 제목의 책으로 고대에서 근대 초기까지의 교육사상가들의 사상과 그들의 삶에 대해 알고 또 그들이 생각한 교육의 길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그 중 중 ,고등학교를 거치며 나에게 친숙한 이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나에게 흥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 감상문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은 후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작게나마 적어 가보려 한다.그리스시대의 대표적 사상가중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노력과 천재성이 있었기에 위대한 사상가로써 이름을 남길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다른 것보다 그의 환경이 더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궁전의 의사로써 그는 집안의 관례에 따라 어릴 적부터 해부학 실습을 도우며 여러 가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또한 그는 플라톤이 설립한 아케데미에 들어가 20년 동안 배우고 연구를 하며 그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것이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천재성과 노력은 필수이지만 요즘을 돌아보면 그 환경 역시 그 사람의 인격과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부유하지 못한 환경으로 인해 공부를 포기해야 했던 사람들과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집안의 부와 명예로 자신마저 높아진 몇몇의 사례들을 보면 환경 역시 성장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환경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는 그의 스승 플라톤과는 조금 견애가 달랐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그는 진보적이고 자신의 주관이 뚜렸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보통 제자는 스승의 모습을 닮아가며 지켜나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스승에게 배운 것들과 자신의 주관을 적절히 표현할 줄 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이 나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다.그는 영혼을 삶의 개념으로 파악했다. 영혼에 의해 인간은 개별적 특징을 지닌 사람으로 되며 인간은 '정신적 영혼을 지닌 동물'로서 정신적 영혼이란 육체의 궁극적 의미로 존재형식이라 말할 수 있다 주장했다. 또한 인간이 도덕적이고 정신적 활동을 통해 질적으로 높은 쾌감과 만족을 찾아내고 선택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믿었다.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도덕적 준칙, 즉 덕(德)이란 인간의 감정과 행위 사이에서 나타나는 결핍과 과다에 의해 파괴되기 쉬운데 이는 중용에 대해 보존될 수 있다 주장했다.고등학교때 배웠던 '중융의 덕'....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자 주장했던 그의 생각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이 동감하고 있다. 나 역시 그의 이런면이 참 좋았다. 또한 인간의 사회성을 가능케 하는 사교성을 '우정'이라는 덕목아래 총괄했던 그의 생각은 나에게 가장 귀감이 되었다. 학교생활 ,동아리 생활, 학군단 생활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느끼고 부딪이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우정'이 있기에 ... 또 그것을 위해 우리 스스로 애쓰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정을 지키고 또 그것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멋지지 않은가?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선량하고 유덕하게 되기 위해서는 자연적 본성, 사회적 습관 그리고 이성적 정신 이 세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런 본성 ,습관 ,정신 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그 밖의 것들은 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교육을 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이런 그의 주장과 함께 그의 실천철학적 교육이론의 특징으로는 자연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개개인의 개성을 중시한 것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