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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학 오디세이 독후감
    를 읽고-마그리트 작품을 통해 현대 미술을 훔쳐보다.2년 전쯤 진중권의 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미학’이라는 개념이 쉽게 다가오지 않아 멍에를 짊어진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갔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의 유쾌한 해설에 빠져 쉽사리 빠져 나오지 못했던 것도.에셔의 뫼비우스 띠 같은 그림을 마지막으로 보여주며 그는 2권에서 더욱 알찬 내용으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는 마그리트의 환상적인 세계를 가지고 정확히 2년 후 다시 나를 찾았다. 책 전반에 펼쳐진 마그리트의 그림과 함께 변화하는 예술에 대한 시선까지 폭넓게 현대예술을 끌어안고 있는 는 전작보다 더 어려워 읽기에 수월하진 않았지만, 그만큼 깊이 있는 배움이었다.이 책은 마그리트를 앞세워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마그리트를 상세하게 다루는 부분은 없다. 오히려 마그리트 시대의 전후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그들 각각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그리트가 보여주고 있는 그만의 세계는 이 현대 예술 사조를 설명하는데 큰 패러다임이 된다. 그림 밖에 있는 세계(그려야 할 대상)의 파괴라든지, 감각과 사유의 일체화, 실재와 가상의 혼돈, 그림 안과 밖의 혼재 등은 마그리트가 가지고 있는 주요 테마임과 동시에 책에서 현대예술을 이야기 하는 작가, 진중권의 기준이기도 하다.현대예술은 ‘폴 세잔’의 꿈에서 시작된다. 그는 당시 주류였던 인상주의에서 다시 고전주의로 돌아가길 원했다. 인상주의는 찰나의 빛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그들의 피사체(특히 이 책에서는 모네의 작품이 언급되고 있다)는 고유의 견고한 특징을 잃고 있다. 반면, 고전주의는 그 대상 자체를 중시했다. 그런 대치되는 두 사조를 세잔은 하나로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간(인상주의)의 ‘지각’으로 피사체의 ‘견고한 사물성’(고전주의)을 그려내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그는 인간의 지각이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믿었다. 고전주의자들이 믿었던 투시원근법을 부정하고 눈에 들어오는 시각적 단편들을 그려내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현대미술의 큰 틀인 ‘입체주의’가 나오게 된다. 피카소가 세잔에게서 평면을 기하학적 단편들로 처리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면, 마티스는 세잔에게서 또 다른 측면, 즉 풍부한 색채와 빛나는 표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또 다른 사조, 야수파의 등장이 이어진다. 세잔에서 시작된 현대미술은 피카소와 마티스로 넘어가면서 20세기의 미술을 이어나가게 된다.이 책에서는 모더니즘 예술을 네 가지 현상으로 분리하고 있는데, ‘추상’, ‘표현’, ‘레디메이드’ 그리고 ‘초현실주의’ 가 그것이다. 추상예술은 대상의 구체적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짙고, 표현 계열의 예술은 대상보다는 주관의 내면적 감정을 표현하는데 주력한다. 그러다 보니 형태가 왜곡되고 강렬한 색채가 사용된다. 한편 ‘레디 메이드’ 경향을 가진 부류는 기성품을 예술작품이라 우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주목했던 (작가가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했던) 초현실주의는 전통적인 화법으로 현실이 아닌 환상의 세계를 그리려 했다. 특히 당시 프로이트의 발견을 열렬히 환영하면서 그들은 꿈의 상징성을 자신들의 주제로 삼았다. 이들의 그림은 ‘응축’과 ‘전이’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꿈(혹은 무의식)에 초석을 두고 있다.사실 책만큼이나 현대예술이 어렵고 생소한 부분임은 자명하다. 인상주의나 사실주의 작품을 감상할 때 필요한 감성이 현대미술에서 통할 리 만무하다. 어떻게 보면 작품과 나 사이의 소통의 부재인 것 같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 가장 먼저 이런 말이 나오곤 하니까. “뭘 그린거지?”그러나 이러한 질문에서 현대미술이 완결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현대 예술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작품의 완성을 독자의 손에 맡기는 데 있다고 한다. 열린 예술 작품은 더 이상 일률적으로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독자는 작품 속에 들어가 작품을 스스로 완성하는 가운데 거기서 무한히 다양한 의미를 끄집어내야 한다.그렇다고 해도 사실 그러기에 현대미술의 벽은 너무 높다. 아무리 감상의 여지를 많이 남긴다고 해도 작품이 갖는 심연의 깊이는 그 끝을 헤아리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 중에 하나를, 작가는 현대 미술의 ‘대상성 파괴’로 설명하고 있다. 파괴되는 것이 의미를 내포하는 기호일 수도 있고, 대상 자체일 수도 있다.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는 언어기호로 기존의 약속들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 뿐 아니다. 캔버스 안의 그림이 캔버스 밖의 풍경과 이어져 있다. 어디까지가 그림이고 어디까지가 실재인지 알 수 없다. 경계, 무게, 그리고 대상들의 관계까지도 철저히 파괴해 버린다. 그리고는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을 ‘낯설게 만들어’버린다. 작가는 마그리트의 작품의도를 ‘낯설게 하기’라 표현하면서 파괴성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하고 있다.이러한 ‘낯설게 하기’ 그리고 ‘파괴성’은 끝끝내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 열린 결말이라는 관대함 속에서 혹 대중을 우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생각하기에도 미술은 엄연한 하나의 소통 체계다. 언어나 문학 같은 다른 기호영역이 ‘약속’이라는 암묵적 동의하에 소통 체계를 이룩해 나갔던 것처럼 미술 또한 그러한 영역 중 하나였다. 작가는 캔버스 밖에 있는 실재 혹은 현실을 재현하고, 작가 나름의 해석을 가미하여 그 실재를 캔버스에 옮겨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보고 환호하거나 비판을 하며 그들을 평가, 감상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로 현대미술을 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이 기호 혹은 약속 자체를 부정하면서 출발하고 있다고 주장하여도, 오히려 그들의 작품을 보려면 ‘해설집’ 혹은 ‘미적기호문서’ 따위가 필요할 듯 하다.
    독후감/창작| 2015.01.21| 3페이지| 1,000원| 조회(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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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을 보고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을 보고2003313360 영상학과 최민하‘햄릿’은 어떤 매체로든 보기 불편한 작품이다. 햄릿의 모습이 아마도 나의 자화상이라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영화는 보기에 좀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햄릿이란 인물에 대해 거리도 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호흡을 가까이서 소통하지 않고 멀리서 관전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상을 배운다는 학생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영화라는 매체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강요한다. 주인공과 일체가 되기를. 연극처럼 같은 공간에서 호흡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화면과 편집의 향연은 내 자신을 다시 햄릿의 지옥 속으로 빨려들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처음 올리비에의 ‘햄릿’을 화면에서 만났을 때 웅장히 퍼지는 음악은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지 못한 자의 비극을 다룬다.’는 자막과 함께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독백이 시작되었다.첫 장면은 뿌연 연기에 둘러싸인 엘시노어 성 전체 모습에서 시작된다. 이 성은 ‘햄릿’의 주요 장소다. 카메라는 경사가 급한 성벽 계단을 훑고 올라간다. 이 때에 계단은 영화 보는 내내 시선을 끄는 장치임이 분명했다. 영화 시작부분에서의 ‘계단’은 각도가 너무 심하여 앞으로 있을 극의 긴장감을 예고하는 데에 사용됐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영화 내내 엘시노어 성에는 수많은 계단이 등장하게 된다. 햄릿이 고뇌하는 부분 역시 계단과 함께 시작되고, 때론 여러 갈래의 계단이 배경에 놓여 있기도 했다. 차가운 돌들이 차곡히 쌓여 있는 계단은 결코 포근하거나 긍정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특히나 콘트라스트가 강한 흑백영화였기에 돌층계가 갖는, 차갑고 견고한 이미지는 더욱 강조될 수 있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올리비에 ‘햄릿’에 자주 등장하는 계단은 끝없이 펼쳐질 주인공들의 고뇌와 방황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보았다. 또한, 계단을 쓴 배경은 연극무대를 연상케 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간 연기가 더욱 궁금해졌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나이뻘로 보이는 햄릿은 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바로 삼촌과 결혼한 어머니 때문에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선왕의 유령을 보았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게 된다.선왕의 혼령을 만나기 직전 햄릿의 모습은 클로즈업을 짧은 컷으로만 연달아 이음으로써 햄릿의 심리상태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심장박동 속도에 맞추어 짧은 컷을 이어 붙였던 덕에 내 심장 또한 같은 리듬으로 혼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표현기법은 영화라는 매체로만 전달할 수 있는 특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고 미스터리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카메라는 그의 검은 뒷모습을 지나 그의 발을 따라가며 잡고 있다. 연극 무대였을 경우 오로지 유령과 햄릿 두 모습이 모두 노출되었을 텐데 영상 속에서는 그의 걸음만을 보여줌으로써 보이지 않는 유령과 비치지 않는 햄릿의 표정을 관객으로 하여금 마음껏 상상할 수 있게 하였고, 그러면서 연극 무대 이상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전달하고 있다.햄릿 앞에 나타난 유령의 모습은 무섭기보다 약간은 초라한 느낌이 들게 했다. 과거의 기술적인 한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유령의 무서움보다는 선왕이 짊어지고 있는 원한의 무게로 연민의 감정을 관객으로 하여금 유도하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던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의 죽은 아버지와 만난 햄릿은 아버지가 삼촌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사실을 혼령으로부터 듣게 된다.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햄릿은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게 되는데, 그 고통을 연기하는 장소가 꼭 평평한 원형의 연극무대를 연상케 했다. 그의 고통스런 몸부림은 클로즈업에서 시작해 점차 화면의 사이트를 늘리며 풀 샷을 잡게 되고 더욱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한다. 이렇게 이 영화는 여러 번 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상연되고 있었다.햄릿이 혼령의 원한을 달래기 위해 동지들과 칼에 대고 맹세한 후에, 그의 의도된 이상행동은 오필리어의 내레이션과 함께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태까지의 연극적인 화면은 이제야 비로소 영화로 돌아온 듯하다. 그리고 독백은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거의 온전히 사용했다고 보인다. 독백과 함께 이어지는 그의 움직임을 카메라는 바쁘게 따라간다.그리고, “햄릿”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레어티스의 조언은 이 영화에서는 짧고도 간결하게 표현하고 지나갔다. 그 뒤에 이어지는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충고 또한 마찬가지다. 언어의 무게는 영상언어를 통해 가벼워지는 모양이다. 텍스트 속에서 느껴졌던 폴로니우스의 충고는 영화 속에서는 어떤 대사보다도 가볍게 느껴졌다.햄릿의 편지를 읽어주는 클로디우스의 모습은 내가 예상했던 무겁고 보수적인 노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클로디우스는 생각보다 왕 앞에서 굳건하고 분명한 태도의 모습이었지만, 무겁거나 진중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외모는 악역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햄릿과 함께 있을 때의 클로디우스는 더욱 간신배의 표정과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햄릿 텍스트를 읽을 때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 클로디우스의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은 이성, 감성 어떠한 판단으로도 납득하기 힘들었고, 연민을 유발하고 했었는데, 여기서 그의 죽음이 더 이상 충격이 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의 클로디우스는 텍스트보다 약간은 간사한 이미지로 끌고 간 탓이지 않나 생각해본다.왕과 클로디우스의 계획에 따라 오필리어는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역시 의도대로 본 햄릿은 그녀에게 다가간다. 이 신에서 눈에 띄었던 부분은 오필리어의 의상이었다. 영화가 흑백영화이고, 성 전체가 극 분위기에 따라 어둠을 강조하다 보니까, 오필리어의 하얀 드레스는 검은 도화지위의 하얀 점처럼 둥둥 떠다녔다. 그러나 화면과 동떨어진 느낌이었다기 보다 그녀의 순수성을 강조하는데 그녀의 의상이 일조했다는 느낌이었다. 그의 독설을 듣고 나서 혼자 남겨 졌을 때 보인 슬픔 또한 그 하얀 드레스로 더욱 극대화되었다.햄릿이 잔인하게 떠나간 후 계단에 엎드려 우는 오필리어는 ‘햄릿’에서 행한 행동을 보면, 사랑과 혐오가 뒤범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뒤에 나올 장면이지만, 햄릿이 준비한 연극을 보기로 했을 때 그는 그녀에게 무릎에 누워도 되냐고 물어본다. 다분히 연인끼리의 대화 같지만, 그의 표정과 풍기는 분위기는 억지로 추행이라도 할 태세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햄릿’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유명한 부분인, 햄릿의 “To be or not To be" 장면은, 이 영화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필리어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 햄릿은 계단을 뛰어 올라 가는데, 그 후 카메라는 햄릿의 속도보다 더 빨리 계단을 훑고 올라간다. 그리고 그 속도는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과 일체가 되어 빠르게 계단을 오르고 하늘을 향한다. 한참을 카메라는 하늘을 잡고 있다. 그러고 나서 햄릿의 고통스런 독백이 시작된다. 그 때에 머리위의 하늘과 발밑의 바다는 고뇌하는 얼굴과 오버랩 된다. 그에게는 두 가지 모두 공포의 대상이요, 삶의 무거움이리라.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햄릿에게 배우들이 도착한다. 그는 울고 싶어도 웃어야 하는 배우의 숙명처럼 그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자신의 욕망과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자 한다. 햄릿은 그들에게 ‘곤 자고의 암살’을 부탁한다. 연극을 통해 왕의 양심을 들춰내고자 하는 것이다. 극은 현실보다 진실 되곤 한다.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거의 400년이 지난 지금도 즐겨 보는 이유 또한 당의로 쌓여있는 이 세상보다 ‘햄릿’에서 그려지는 음모의 세계가 더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이제, 왕과 왕비가 연극을 보러 들어온다. 연극 속의 연극이다. 영화에서는 한 컷으로 보여주지 않고, 컷과 컷 사이에 편집이란 것이 가능하지만, 연극은 실제 시간에 맞춰 한 공간에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연극 속의 연극을 표현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극이 가지고 있는 다소 과장된 연기와 제스처의 특징 때문에 진짜 극인 ‘햄릿’보다 얼마나 더 극적이게 표현되이 넘치긴 했지만, 그가 느낄 수 있는 죄책감과 분노 사이의 수많은 감정이 모두 삭제되고 그의 격한 외침만 들릴 뿐이었다.물론, 바로 뒤를 이어 클로디어스가 홀로 서서 독백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여태까지 보여줬던 가볍고 탐욕스러웠던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가엾은 인간으로 돌아온다. 영화 초반의 클로디어스와 참회하고 고뇌하는 클로디어스는 서로 다른 인격을 가졌던 사람인 것처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 아쉽긴 하였으나, 사실 그런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지금 그의 표정은 어떤 클로디어스보다도 더 불쌍하고 처량하게 느껴지게끔 했다.신께 기도하는 삼촌 등 뒤에 칼을 들고 서있던 햄릿은 그의 오랜 생각 덕에 복수할 기회를 잃고 만다. 그의 그러한 배려는 자신에게 칼머리를 향하는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햄릿은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온다. 거트루드는 폴로니어스를 뒤에 숨기고 아들을 맞이한다. 햄릿이 방황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여태까지 영화나 텍스트나 거트루드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올리비에의 영화는 정확히 전반부는 햄릿의 감정에 거의 의존에서 극을 이끌어 갔고, 나머지 후반부는 나머지 인물들의 감정을 설명하는 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극 초반에서 거트루드는 어떠한 사람인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고뇌하는 햄릿의 대사 안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다 극이 중반을 지나 햄릿과 격렬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부분에서 꽁꽁 감쳐두고 있었던 그녀의 감정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전에는 느껴보지 않았던 것처럼 햄릿이 비난할 때서야 비로소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더욱 그녀의 연기가 연극처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어머니에게 자신의 원망을 토로하고, 뒤에 몰래 숨어있던 폴로니어스를 살해하고 나서 햄릿은 다시 혼령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혼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엎드려 있는 햄릿의 연기만을 주목한다. 선왕의 망령은 엄중하게 목소리만 낼 뿐이다. 햄릿을 잡고 있던 카메라는 카메라 자체가 혼령이었.
    독후감/창작| 2015.01.21| 6페이지| 1,000원| 조회(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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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앤디워홀 평가A+최고예요
    앤디워홀-팝아트의 세계에 입문하다팝아트는 내게 참 생소한 장르였다. 매일 보던 것들이 예술이라니 문화적 충격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예술이란 영역은 내게 있어 성지와도 같은 곳인데, 그것을 가벼운 존재로 전락시키는, 불손한 장르라고 생각했었다. 예술가를 상업가로 만들어 버리고, 감상자를 소비자로 만들어 버렸다고도 생각했다. 이건 우롱 혹은 기만이었다.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인간이란 게, 예술이란 게 원래 그리 무거운 존재였나. 고상한 정신적인 무엇이네 추상적 무엇이네 운운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물론, 팝아트 예술품들 또한 분명히 그들만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감상자의 입장에서 보여지는 팝아트 그 세계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 자체다. 쓸데없이 무겁게 짊어지고 살았던 인생의 짐과 예술이라는 거대한 숙제 앞에 팝아트는 당당히 그것들을 내려놓으라고 이야기 하는 듯 했다.예술이란 영역과 상업이란 영역을 구분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은 만드는 이들과 감상하는 이들 모두의 몫이기도 하고. 팝아트 또한 내게, 이 작품들이 예술로서 평가해야 하는지, 대중소비사회에서 넘쳐나는 또 하나의 상품으로 평가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우선, 고민은 뒤로 미뤄두고 팝아트에 대해서 그리고 앤디워홀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는, 제작자의 입장을 들어보는 일이다.팝아트란, 195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엄숙성에 반대하고 매스 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문화적 시각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구상미술의 한 경향을 말한다.영국의 팝 아트는 사회비판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으며 기존의 규범이나 관습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다다이즘과의 근친성을 보여준다. 영국 작가로 해밀턴을 비롯 P.블레이크, D.호크니, R.B.키타이, E.파올로치등이 있으며, 특히 해밀턴이 바람직한 예술의 성질로 열거하고 있는 것들, 예컨대 순간적, 대중적, 대량생산적, 청년문화적, 성적(性的), 매혹적, 거대기업적일 것 등은 현대 대중문화의 속성을 그대로 압축해놓은 것이다.그러나 팝 아트의 성격은 미국적 사회환경속에서 형성된 미술에서 더 구체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미국 팝 아트의 선배세대인 R.라우션버그와 J.존스는 이미 1950년대 중반부터 각종 대중문화적 이미지를 활용하였는데, 이들의 작업이 다다이즘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고 해서 네오 다다(Neo dada)로 불려졌고, 그 외에 신사실주의, 신통속주의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미국 팝 아트의 대표적 작가는 A.워홀, R.리히텐슈타인, T.웨셀만, C.올덴버그, J.로젠퀴스트 등과 서부지역의 R.인디애너, M.라모스, E.에드워드키엔홀츠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가장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작가가 워홀이다. 그는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등 대중문화의 스타나 저명인사들을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묘사하거나 임의적인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순수고급예술의 엘리티시즘을 공격하고 예술의 의미를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일련의 작품을 발표했다.팝 아트는 텔레비전이나 매스 미디어, 상품광고, 쇼윈도, 고속도로변의 빌보드와 거리의 교통표지판 등의 다중적이고 일상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코카 콜라, 만화 속의 주인공 등 범상하고 흔한 소재들을 미술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이분법적, 위계적 구조를 불식시키고, 산업사회의 현실을 미술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한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다이즘에서 발원하는 반(反)예술의 정신을 미학화시키고 상품미학에 대한 진정한 비판적 대안의 제시보다 소비문화에 굴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같은 표정, 다른 색상의 마릴린 먼로. 팝아트하면 단번에 연상되는 작품이 있고, 작가가 있다. 앤디워홀은 팝아트 작가로, 아니 당대 미술의 작가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도 알고 있을 정도이니.워홀은 미국인들에게 혹은 세계인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대중적 스타들을 조악한 판화기법으로 재현해 낸 작품을 다수 제작하였다. 엘비스 프레슬리, 말론 브랜도, 마오쩌뚱....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마릴린 먼로일 것이다. 그녀가 죽은지도 벌써 몇 십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그녀는 유명인사다. 워홀은 우리에게 지겨우리만큼 익숙한 유명 인사들의 형상을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방법으로 만들어내고 있다.워홀은 원래 광고물 제작같은 일들을 하던 상업미술가였다. 그는 유명한 패션지 나 같은 회사에서 일했었다. 워홀의 판화들은 모두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되었는데, 실크스크린은 통상 광고전단 등을 제작하는 인쇄기법으로 상업미술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워홀의 많은 그림들에선 이미지들이 기계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순수미술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라기 보다는 상업적인 인쇄물을 연상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비개성적이고 기계적인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워홀은 자신이 작품에 대해 지극히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워홀뿐 아니라 기타 다른 팝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다.2면화로 제작된 마릴린 먼로들을 보자. 원래 2면화 혹은 3면화는 중세 때부터 제단화의 일반적인 형식으로 사용되던 것이다. 2면화는 책처럼 접을 수 있고, 3면화는 마치 병풍처럼 접혀진다. 이 작품은 성상을 제작하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인 것이다. 대중사회의 잊혀지지 않는 스타를 숭상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존의 성스러운 것들을 우롱하는 것일까.
    예체능| 2015.01.21| 3페이지| 1,000원| 조회(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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