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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체예술] 뉴미디어아트-실험적이지 않다면 예술이 아니다 평가B괜찮아요
    -2004년 1학기 매체와 예술 레포트0320695 사회계열김형민현대 매체예술의 특성실험적이지 않다면예술이 아니다1. 서론2. 현대매체예술의 기원3. 현대매체예술의 분류3.1. 미디어 퍼포먼스3.2. 비디오 아트3.3. 비디오 설치3.4. 디지털 아트4. 결론-현대매체예술이 가져온 변화※ ‘현대 매체 예술’이라는 용어는 ‘뉴 미디어 아트’ 라는 용어와 혼용될 수 있습니다.1. 서론우리가 흔히 미디어아트, 특히 비디오아트 같은 개념을 말할 때 그것은 20세기 후반의 예술경향을 말한다. 20세기 미술의 특징 중 하나는 재현 매체로서 특권을 누린 회화의 오랜 전통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도전해왔다는 점이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예술의 표현수단을 캔버스만으로 국한시키려 하지 않았다. 20세기 초, 브라크와 피카소가 신문지, 노끈, 직물 등 일상적인 소재를 회화에 도입하기로 한 결정은 그들이 ‘캔버스와의 투쟁’을 시작하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추상, 초현실주의, 개념주의 등은 모두 전통 회화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데서부터 시작했다.따라서 현대 미술가의 작품은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을 그린 것’, 즉 대상을 재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자신의 작품에서 이 점을 분명히 밝힌다. 파이프를 그린 그림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귀를 삽입함으로써 현대 미술은 더 이상 ‘그림’이 아님을 선언한 것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기하학적, 수학적 사유와 가까워진 현대 미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추상 미술이라는 부적절한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은 과학기술적인 세계가 구성되어 있는 영역에서 온당한 기능을 갖는다.”)하이데거는 현대미술은 차라리 과학기술적인 요소에 훨씬 더 가깝다고 주장한 것인데, 사실 20세기 후반의 예술은 테크놀로지 혁명과 맞물려 있다. 예술가들은 테크놀로지의 변화에굴하지 않고 그 변화를 인식하여, 오히려 테크놀로지가 가져다주는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려 했다. 예술영역 바깥의 발명들(사진에서 영화,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20세기 후반 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아니, 어쩌면 미술사 전반에 걸친 특징이 될지도 모른다-그 ‘실험적’ 본성에 있다. 이 ‘실험적’이라는 것은 예술가들이 항상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며 미술사에서 새로운 미술사조가 생겨날 때마다 특징적으로 보여지는 특성이기도 하다. 이런 실험적 본성이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절정에 달한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표현수단의 다양화’가 이끌어낸 상황이기도 하다.전통 회화와 조각을 넘어서서 일상의 사물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예술가들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표현수단에 흥분해서 가능한 한 모든 짓을 다 해보고 있다. 어느 샌가 ‘실험성’과 ‘새로운 것’이 미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어떤 주제나 단어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미 어느 곳에선가 다른 사람에 의해 예술작품이 되었을 정도이다. 현대 예술은 이제 다음과 같은 명제를 만족시킬 정도로 새로운 시도와 빠른 변화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모든 예술은 실험적이며, 그렇지 않다면 예술이 아니다.”)2. 현대 매체예술의 기원현대 매체예술에 대해 논의할 때 마르셀 뒤샹을 빼놓을 수 없다. 뒤샹은 그 어떤 미술 관념의 틀에도 갇히지 않았다. 사실 마르셸 뒤샹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곧 20세기 후반의 미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의미할 만큼 뒤샹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그 말은 그의 레디메이드 작품(예술로서 전시하려고 선택한 자전거 바퀴, 삽, 옷걸이 등)인 ‘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곧 20세기 미술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샘’이라는 작품은 1917년 뉴욕의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인데, 흔한 변기를 뒤집어 놓고 'R.Mutt'라는 정체불명의 서명을 해놓은 작품이다. 뒤샹의 변기는, 예술작품은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며 또 그것이 창작물이 아니라 레디메이드일지라도 사물은 이미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뒤샹은 ‘미술작품’이라는 것이 더 이상 그 결과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드러내는 것으대 말 미술계는 음악가 출신의 존 케이지, 최근에 내한공연이 예정중인 안무가 머스 커닝햄 등이 주도하고 있었다. 동양철학과 실험음악을 독자적으로 종합한 존 케이지는 1954년부터 블랙마운틴 대학교 뉴욕 뉴 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강의를 통해 다양한 영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조지 브레히트, 앨런 카프로우, 딕 히긴스, 테리 제닝스, 로버트 모리스, 오노 요코 등이 이 강의를 거쳐 갔다고 한다.)케이지는 동양의 선종사상과 마르셀 뒤샹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불교 연구와 미래주의자들의 견해를 기초로, 예술에서 ‘우연’이라는 요소를 작품제작의 한 가지 방법으로 사용했다.케이지는 그가 1952년 작곡한 에서 아예 음악적 요소를 소멸시켰다. 그해 8월 29일 뉴욕의 매버릭 콘서트홀에는 많은 관중이 케이지의 새 작품 의 연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위 피아니스트 데이빗 튜더가 무대에 올라왔다. 그러나 튜더는 4분 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은 채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에게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케이지의 음악은 그전까지 음악이라고 생각되어 왔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침묵과 소음, 관객들이 어리둥절하여 웅성거리는 소리를 포함했다. 그것은 이제까지 작가 즉 고매한 창조자가 완성한 완전한 예술품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상하던 관객의 역할, 또 작품이 전시되거나 연주되는 공간의 역할이 드디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물과 공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간은 이미 사물에 앞서 존재하며, 그것은 어떤 사물에든 무차별적인 균질적 공간이 아니다. 근원적인 공간은 사물들에 의해 비로소 열려지며 각 사물이 나름대로 주변과 상호보완?이질적 관계를 가지는 혼성적 어울림이라 할 수 있다.”‘개념’과 의도 중심의 예술관념을 가지고, 삶과 예술에 있어 ‘우연’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 예술가들은 ‘플럭서스 그룹’, 또는 ‘플럭서스 운동’을 통해 그 의지를 이어 나갔다. 이 플을 이뤄냈다. 백남준과 볼프 보스텔이 이 그룹의 핵심 멤버였으며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통하고 있다. 플럭서스는 흐름, 변천을 뜻하는 라틴어로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리투스의 “만물은 창조의 ‘흐름’ 속에서 유전한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플럭서스는 反예술이었으며, 특히 권위있고 고급스러운 예술에 대한 반발이었다. 조지 마치우나스는 플럭서스의 존재이유를 “고급예술이 지나치게 많다. 그래서 우리는 플럭서스를 한다”)고 언급함으로써 예술을 ‘심각하지 않은’ 방향으로 끌어 내려고 하는 의도를 보인 바 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있어 비디오아트나 여타 매체예술이 그 이전 미술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에 비춰볼 때, 안타깝지만 예술의 저급화는 실패로 돌아간 것 같이 보인다.3. 현대 매체예술의 분류뉴미디어 예술에 대한 분류를 하거나,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우리는 뉴미디어 예술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가 반세기도 안 되는 예술영역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도 아니기에 간략하게 기술하려 한다.3.1. 미디어 퍼포먼스행위예술의 역사는 그 극적인 요소 때문에 연극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1490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파라디소’로 명명된 연회에서 출연자들을 혹성으로 나타내기 위한 의상을 입혀 시를 낭송케 했다고 한다. 좀더 현대로 와보면, 1949년의 화가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에서 행위예술, 퍼포먼스가 예술의 한 형태로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미디어를 이용한 퍼포먼스는 움직임을 강조하거나, 비디오의 즉시성을 이용하는 행위, 또는 이미지를 왜곡하는 행위 등 다양한 형태로 보여진다.3.2. 비디오 아트텔레비전을 이용한 예술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텔레비전의 범람에 맞서 텔레비전을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당시 텔레비전이 사회전반에 걸쳐 작용하는 영향력과 지배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20세기 초의 ‘탄환이론(the bullet theory)'에 따르면 “매스미디어는 그 수용자 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텔레비전의 정보독점에 도전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관점의 주장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재사용이 가능한 비디오테잎의 성질과, 촬영내용을 즉석에서 재현 가능한 즉시성을 통해 피드백 즉 인터랙션(interaction)이 가능해 진 것이다. 이것은 예술가들에게 있어 매력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상업적 목적을 기반으로 하는 텔레비전보다 비디오가 더 예술적으로 매력 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텔레비전이 대중매체인데 반해 비디오는 개인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비디오 아트는 이미지를 왜곡하고 망가뜨리는 형식이나, 개인적인 표현수단으로서의 비디오 기록, 또는 비디오의 즉시성을 통해 개념을 전달하는 형식 등으로 표현되고 있고 백남준과 볼프 보스텔이 이 분야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3.3. 비디오 설치비디오 설치미술은 비디오 아트에 ‘조각’의 의미를 덧붙인 것이다. 비디오 아트가 단순히 그 영상자료와 영상의 의미와 개념을 예술의 주제로 사용했다면, 비디오 설치미술은 텔레비전과 구조물들 그 자체, 그것의 배치, 공간도 예술의 주제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비디오 설치는 이미지의 총량을 방대하게 증가시킴으로써 시간의 조작 가능성을 극적으로 확대시키는데, 이것은 비디오 예술가들의 핵심 개념인 ‘시간’에 대한 탐구를 극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사실 비디오 설치와 비디오 아트, 설치미술의 경계는 모호한데 흥미로운 것은 비디오 설치가 퍼포먼스나 비디오 아트보다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비디오 설치는 조각 및 여타 친숙한 영역에 접합되어 있기 때문에 시각 미술 비평의 어휘목록에 우아하게 첨부될 수 있었을 것이다”) 라는 말에 아주 잘 나타나 있다.3.4. 디지털 아트디지털 아트는 컴퓨터가 발달하게 되면서 등장한 뉴미디어 예술이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이제 예술의 경계는 사라져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퓨터로는 이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이미지, 필터, 색채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예술가들은 그것이 영상있다.
    예체능| 2004.11.08| 8페이지| 1,000원| 조회(1,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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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재정선의 만폭동도
    -2004학년도 1학기 미술사 레포트겸재 정선의만폭동(萬瀑洞)0320695 사회계열김형민-목차-Ⅰ. 겸재 정선과 만폭동도1. 겸재 정선의 생애와 그의 미술사적 의의2. 만폭동도를 선택한 이유Ⅱ. 만폭동도의 감상Ⅲ. 다른 작품과의 비교1. 정선의 다른 만폭동 그림들2. 다른 화가들의 만폭동Ⅳ. 만폭동도에 쓰인 준법의 종류Ⅰ. 겸재 정선과 만폭동도1. 겸재 정선의 생애와 그의 미술사적 의의정선은 자가 원백(元伯)이고 호는 겸재(謙齋) 또는 난곡(蘭谷)이라 한다. 1676년 숙종 때 태어나서 1759년 영조 때 94세로 죽었다. 겸재는 애정과 소신을 가지고 평생 우리나라의 산하를 그렸으며, 특히 금강산과 서울 근교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금강산은 정선이 일생에 걸쳐 수차례의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그의 금강산 그림들은 나이에 따른 그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척도 역할을 한다.겸재 정선은 한국의 자연을 나름대로 재해석하고 독창적인 표현의 ‘진경산수화’라는 화풍을 만들어 한국 회화의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실경(實景)을 그리는 전통은 고려나 조선 초?중기에도 유행했지만, ‘진경산수화’라는 회화 장르를 정형화시킨 것은 정선이 처음이다.진경산수화의 ‘진’은 ‘참 진’ 자이다. 실제 경치라는 표현을 차치하고, 참된 경치라는 표현을 굳이 쓰는 이유는 그것이 한국의 경치를 정말로 보고 그려냈다는데 있다. 이것은 한국의 경치를 실제와 똑같이 그려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국 사람이 한국 경치를 한국식 표현으로 그려냈다는데 그 의미를 둔다. 겸재 이전에도 실경을 그리는 화풍이 유행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중국의 화풍, 즉 중국의 산하를 그리는 방법으로 우리 산을 그린 것이었으며 정선의 초기 작품에서도 그런 느낌의 그림들이 여럿 보인다. 조선 후기 제일의 평론가였다는 강세황은 에서“중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산천을 둘러보고 비로소 겸재의 그림이 신필임을 알았다”)고 한 것은 이것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그런데 당시의 문인인 김창협은 정선이야말로 송, 원, 명의 역대 문인화가들만, 정선은 현재에는 한국의 경관에 어울리는 한국적 화풍을 구축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2. 만폭동도를 선택한 이유보통 ‘겸재 정선의 만폭동도’라고 하면 서울대박물관 소장의, 정선이 노년기에 그린 만폭동도를 말한다. 역시 노년기에 그린 인왕제색도와 비슷한 느낌에 빠르고 호쾌한 느낌의 붓놀림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내가 다루고자 하는 만폭동도는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정선이 좀 더 젊은 시기에 그린 만폭동이다.정선에 대한 서적이나 자료들을 찾아보면 만폭동에 대해서는 노년기에 그린 그림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있거나, 두 그림이 모두 언급된 책에서도 노년기의 그림이 훨씬 세련되고 잘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하지만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대겸재전’에서 본 젊은 시기의 만폭동도는 결코 허술한 그림이 아니었으며 나는 오히려 노년기의 그림보다 훨씬 더 생동감 있는 산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두 그림의 차이는 성숙함과 미숙함의 차이가 아니라 단지 표현방식과 정서의 차이라고 생각한다.Ⅱ. 만폭동도의 감상만폭동은 금강산 절경 중의 절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내금강의 상봉인 비로봉 일대의 물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암산 계곡을 따라 골짜기마다 나뉘어 흘러오다가 합쳐지는 곳이 바로 만폭동이다. 동국여지승람 47권에는 “백 가지 길로 흐르는 시내가, 골짜기로 쏟아져 내리는데, 그 형상이 하나도 같지 않아 만폭동이라 이름 한다.”) 라는 말로 그 이름의 연유를 설명하고 있다.그림에서 봤을 때 좌측하단에 공터가 있는데, 이것이 비로봉에서 시작된 물길이 모이는 너럭바위이다. 너럭바위 위에는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 한명과 선비 두명이 서있고, 그 아래로 양 쪽으로 나뉘어진 물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이 보인다. 너럭바위 뒤쪽으로 우뚝 솟아있는 절벽은 오인봉(五人峰)이다. 오인봉을 중심으로 화면을 상하로 나눌 수 있는데, 위쪽에 있는 세 봉우리의 이름은 왼쪽에서부터 대향로봉, 소향로봉, 좌선암봉이고 좌선암봉 옆에 붙어있는 암자는 보덕암이라고 한다. 그 뒤로는 뾰족한 산들이 펼쳐져부분이 되어 시선이 먼저 가게 된다. 그리고 이와 대조적인 직사각형 틀에는 기암괴석들과 봉우리들이 배치되어 있어 압도적인 부동감에서 나오는 압력과 힘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정선은 이 그림을 그릴때 관객의 시선을 철저히 고려하고 자신의 뜻대로 그림을 읽게 만든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그림의 타원형, 즉 너럭바위 부분에 시선이 먼저 가게 할 의도를 그곳에 사람을 배치함으로써 확실히 했다. 관객들은 너럭바위쪽에 시선을 줌으로써 세 사람의 시점에 이입을 하고, 그 세 사람의 시점으로 우하단에서부터 좌상단까지의 경치를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세 사람의 시점이 우하단에서 좌상단까지의 반시계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생각은 나의 경우를 확대해석한 것이지만,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유를 추론해낼 수 있다. 너럭바위의 위쪽의 소나무숲은 오른쪽 아래의 소나무숲과 더불어 타원의 우상단 부분을 그리고 있다. 소나무들은 바람을 온몸으로 받는 것처럼 역동적인 형세를 취하고 있는데 소나무잎을 좌우로 흩뿌린 듯한 붓질의 효과로 보인다. 타원의 좌하단 부분은 합쳐지는 계곡 물길이 완성하고 있다. 이 소나무와 물길이 그려내는 너럭바위 부근의 경치는 흡사 골골이 모인 바람이 합쳐져 거센 회오리바람을 만든 모습 같아 보인다. 이렇게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듯한 부분의 경치가 외부의 산봉우리들과 ‘안개’를 경계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시점의 이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림 중앙 부분의 안개는 이 그림을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는 구실을 한다. 하단에는 근경을 그렸고, 상단에는 대소향로봉과 좌선암봉을 중경으로 넣고 그 뒤로 깎아지를 듯한 뽀족한 봉우리들을 배치하여 원경을 삼았다. 이렇게 상단과 하단의 경계를 확실히 하면서도 ‘오인봉’이 그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선의 치밀한 구성력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중경의 세 봉우리는 일렬로 배열되어 있는데, 각자 그 나름대로의 멋을 풍기고 있다. 만약에 소향로봉을 그림의 정가운데에 위치시켰다면 이 그림은 단순한 구도의 밋밋한 산수화가객들은 세 봉우리의 멋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다.원경의 백색 암봉들은 중향성 일대의 절벽들로, 실제로 보면 병풍을 두른 듯한 모습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치 백만 군사가 창검을 세우고 열병식을 하는 것 같이 보여 임진왜란 당시 사명당이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고 한다.이곳은 인간의 백옥경,유리동부에 중향성 있네.떨어지는 만 갈래 폭포,천봉에 눈이 쌓인 듯,휘파람 한 번 길게 불어대니,천지가 깜짝 놀란다.)이렇듯 만폭동도는 하나의 그림에서 다양한 산의 모습을 읽을 수 있고, 그 표현이 매우 역동적이고 힘차다. 특히 바위의 표현은 재미있고 아기자기하다. 여기서 아기자기하다고 함은 그만큼 무게감 있고 커다란 바위가 보이지는 않아서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재미있는 바위 표현이다. 그림에 있어서 약간의 파격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한다. 대향로봉 뒤쪽 절벽 위에 구름 같은 것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구름이 아니라 ‘사자암’이다. 또 좌선암봉위에는 사람모양으로 귀엽게 그려놓은 ‘좌선암’이 있다. 이런 요소들이 자칫 황량해지기 쉬운 바위산 그림을 재미있고 부드럽게 하고 있으며, 바위 틈틈이 보이는 소나무들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Ⅲ. 다른 작품과의 비교1. 정선의 다른 만폭동 그림들정선은 금강산을 여러 번 여행했고, 여러 번 그렸다. 정선이 그린 만폭동 그림 중 초기작품으로 여겨지는 것, 즉 간송미술관 소장 만폭동도 이전의 작품을 보면 구도에 있어서나 묘사력에 있어서나 한참 떨어진다.이 시기의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은 ‘성오틸리엔 화첩’에 실린 만폭동이다. 성오틸리엔 화첩에 실린 만폭동도는 기이하게 솟아오른 지면, 비스듬히 기울어진 암석 봉우리들, 원뿔 모양으로 경사진 언덕을 중앙에 배치한 대칭구도의 그림이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은 그림 전경 좌우로 안정된 모습으로 배치된 바위들에 둘러싸여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이 그림은 U자 모양의 너럭바위 위쪽으로, 소향로봉이 뒤집어진 U자 모양을 하고 위치해 있다. 따라서 화 만폭동 이후에 그린 노년기의 만폭동은 일반적으로 전자와 비교하여 훨씬 좋은 평을 많이 받는다. 정선의 그림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린 것이라 성숙하고 세련된 미가 두드러진다는 평이다.를 보면 겸재의 적묵법과 스스럼 없는 필치가 뒤엉켜 있는데 그빠른 필치로 화면상에는 더할 수 없는 동감이 일어나고. 마치 내금강 계곡의 물소리가 울려퍼지는 듯한 생동감이 일어난다. 두 만폭동도를 비교해 보면 초년작과 만년작의 차이를 한눈에 느끼게 되며 과연 같은 화가의 솜씨인가 의아심조차 일어나게 된다. 만년의 원숙한 노필이 갖고있는 위력이 바로그것이다.)두 그림을 비교해 보자. 편의상 간송미술관 것을 전자, 서울대미술관 것을 후자라고 칭하겠다. 전자가 구도상으로 역동적인 형세였다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전자에서 타원형의 구심점이었던 너럭바위가 후자에서는 오인봉과 함께 화면 가운데로 위치를 옮기면서, 그림이 중심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회오리바람을 연상시키던 타원형 구도는 깨져버렸다. 후자가 안정감을 가지게 된 이유를 더 찾아보자면 왼쪽하단에 오른쪽과 대칭되는 절벽을 하나 세웠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상하단을 나누는 안개를 V자로 배치함으로써 균형감 있는 중경 경치를 만들어냈다.두 그림의 분위기가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정선이 후자에 사용한 적묵법 때문인 것 같다. 인왕제색도에서도 보듯이 하얀 바위를 검게 칠하여 색다르고 무게감 있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따라서 전자는 날카롭고 험준한 분위기가, 후자는 묵직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전자에 있었던 사자암과 좌선암 같은 유머감각은 후자에 와서는 사라졌다. 대신 후자의 가장 윗부분을 보면 비로봉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2. 다른 화가들의 만폭동금강산 만폭동은 금강산 중에서도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기 때문에 여러 화가들이 그림의 주제로 사용해왔다. 김홍도도 만폭동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 있다. 정선이 너럭바위 위의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하면서도 위에서 본 풍경을 그린 반면, 김홍도의 만폭동은 너럭바.
    예체능| 2004.11.08| 9페이지| 1,000원| 조회(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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