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목 명 : 한국고전문학사담당교수 :제출일자 :제 출 자 :鄕歌 담당층에 대한 一고찰- 작가의 실존(實存)과 신분(身分)을 중심으로 -Ⅰ.들어가며Ⅱ.연구사 검토와 연구 방향Ⅲ.작가의 실재(實在)과 가상(假像)3.1. 역사의 설화화3.2. 설화의 역사화Ⅳ.작가의 신분(身分) 문제Ⅴ.결론을 대신하여Ⅵ.나가며Ⅰ. 들어가며향가(鄕歌)는 삼국시기와 고려 초?중기 까지 크게 성했던 우리의 옛 노래이다. 지금 남아 전하는 작품의 수는 몇 수 안되지만 신라 사람들은 향가를 숭상했고 또한 나라에서도 임금 스스로가 향가의 가치를 높이 사서 이를 수집했다는 기록이 전한다.향가의 해독과 그 문학적 해석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풀지 못한 난제가 많다. 이는 향가 해독에 있어 만족할 만한 경지에 이르자면 넘어야 할 고비가 아직도 많기) 때문인데 본고에서는 그 고비의 하나로 향가작가에 대한 검토를 시도하고자 한다.작가를 생산자에, 작품을 생산품에 비교하자면 일반 제품도 메이커가 중요하듯이 작품도 누가 썼느냐 하는 작가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작가를 모르면 그 작품이 생산된 시기를 모르게 되고, 그 작품이 생산된 시기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도 모르게 된다. 따라서 작가를 알면 문학작품을 바르게 해석하고 옳게 감상하여 고전문학을 공부하는 즐거움이 더하게 될 것이다.우선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이 향가의 “향유층”이 아님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창작을 중심으로 하였던 “담당층”에 초점을 두어 작가의 실존여부와 신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것이며 그 외의 문제들은 논외로 하겠음을 밝혀둔다.Ⅱ. 연구사 검토와 본 연구 방향과 과정그간의 향가 연구는 국문학 연구 초창기부터 활발히 이루어져서 연구논저가 현재 2000여 편을 넘을 정도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각도로 이루어져왔다.)향가의 작품세계는 향가 각 편과 맞물려 있는 산문전승(散文傳承)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그 해석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一然)은 주로 설화적 관점에서 향가를 설화 속에 수하는 독립된 작품들이 아니라, 대주제는 같고 소주제만 약간씩 다른 연작시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많은 실증 자료를 제시하면서 논리?체계적으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제기된 향가 작가에 대한 주요 이설들을 검토하면서 제가들의 논의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언급하도록 하겠다. 향가의 담당층에 대한 이번 과제를 통해 우리의 옛 노래, 향가에 대한 이해와 문학적 상상력, 해석의 가능성의 폭을 넓힐 수 있길 기대한다.Ⅲ. 작가의 실재(實在)와 가상(假像)향가작가의 실존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향가 각 작품의 작가가 ‘누구인가’라는 시비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겠으나 본고에서는 작가의 “실존여부”와 “신분”에 대한 논의가 중심을 이루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 필자는 『삼국유사』에 명기된 작자명을 따르겠으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견에 대해서만 소략하게 언급하면서 넘어가도록 하겠다.『삼국유사』소재 향가의 작가명을 살펴보면 서동, 융천사, 광덕, 득오, 견우노인, 신충, 월명사, 충담사, 희명, 영재, 처용 등이다. 이들 작자명을 놓고, 이들이 실제로 신라 당대에 살았던 실존인물이냐, 아니면 후세에 일연이 유사를 편찬하면서 작명한 이름이냐 하는 문제가 양립된다. 이러한 차이는 그 『삼국유사』의 편찬 의도가 “역사의 설화화”냐 “설화의 역사회냐” 하는 문제로 귀착하게 된다.3.1. 역사의 설화화『삼국유사』의 편찬 의도를 역사의 설화화로 보면 향가 작가들의 이름은 신라 당대 실존(實存) 인물의 이름이 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김선기는 「향가의 새로운 풀이」를 시도하면서, 의 작자 문제에 대하여, 이 노래의 작자로 등장한 서동은 여덟 가지 점에서 元曉(원효)라는 인물의 일화와 일치한다고 보았고, 그래서 이 노래의 작자는 武王(무왕)이 아니라 元曉(원효)라고 보았다.) 박노준 또한 향가 작자명을 역사상의 실존인물로 간주하면서, 신라가요 14수와 관련된 인물 중 득오(得得)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차자(借字)로 인물명 즉 죽지(竹旨)?기파(耆婆)들을 설화상에서 형성된 작위적인 가공(架空) 인물이라고 논의한 최철의 견해를 살펴보겠다.설화와 공존한 면에서 해석할 때, 그리고 일연의 『삼국유사』편찬태도, 『삼국유사』의 속성 등을 고려할 때, 향가 작자를 역사상 인물로 해설하는데 대한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곧 향가 작자들은 실존했던 인물들이기보다는 작품의 형성 과정에 따른 설화의 역사화, 사실화, 또는 당대 시가들의 일반적인 특성, 그리고 일연의 『삼국유사』편찬 태도에 따른 설화 채록의 특성 등을 고려해 볼 때, 작자명은 일종의 설화상에서 형성된 작위적(作爲的)인 가공인물명(架空人物名)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인용된 글에서 최철은 향가작가들은 실존했던 인물들이기보다는 작품의 형성과정에 따른 설화의 역사화, 사실화로 형성된 작위적인 가공인물명이라고 했다. 특히, 향가의 작자들로 알려진 인물명을 설화상에 나온 가공인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향가와 배경설화의 내용에 맞게 작자명이 지어졌기 때문이란 것이고, 그러한 실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의 서동은 어려서 마를 캐어서 이를 팔아 생업을 삼았으므로 薯童.의 융천사는 혜성이 심대성을 범하는 이변이 일어났는데,노래로 천괴 혜성을 없애고 천체운행을 융화?조절했으므로 融天師.의 광덕은 자신만 서방정토에 간 것이 아니라 친구 엄장(嚴莊)까지그곳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므로 廣德.의 신충은 신하로서 임금에게 신의를 다하고 충성할 것을 다짐했으므로 信忠.와 의 경우 월명사는 피리를 잘 불어 지나가는 달까지 멈추었다는 점,그리고 二日竝現(이일병현)과 오누이 관계를 일월에다 비해 月明이란 이름을 붙임.와 의 충담사는 신하로서 국왕께 충간(忠諫)했다는 점에서 忠談.의 희명은 5세 영아의 득명(得明)을 천수관음 앞에서 기원했다는 점에서 希明.의 영재는 산중 군도(群盜)를 만났을 때 재치와 뛰어난 말솜씨로그들을 회개시켰으며 이는 노래의 재주가 뛰어났다는 의미까지 내포되어 永才.의 처용은 아내의 간부를 보고도 노래와 춤을 추면서 물러나는 등관대한 처분을 했으므로 處容가 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가명의 작가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실존하는 향가 작품을 지은 비실명의 작가는 실재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름은 가명으로 전해지지만 그 신분에 대해서는, 향가와 그에 따르는 설화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Ⅳ. 작가의 신분(身分) 문제현재 남아 전하는 향가는 모두 25수인데, 이중 14수는 『삼국유사』에 전하고 11수는 『균여전(均如傳)』에 전한다. 『균여전』에 전하는 11수는 균여대사(均如大師, 923-973) 한 사람이 지은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 한편만이 실려 있는데 비해 《삼국유사》에 전하는 14수는 그 형식, 내용 그리고 작자(신분층)가 다양하다.《균여전》에 기록된 11수는 승려의 전기 속에 나오는 것이므로 차치하더라도, 『삼국유사』에 전하는 14수의 작자 가운데는 의 월명사(月明師) 또는 의 충담사(忠談師), 의 융천사(融天師)와 같은 불교 승려가 있는가 하면, 의 견우노옹(牽牛老翁)같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도 있고 의 신충(信忠)과 같이 선비층이나 정치세력에 연관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의 희명(希明)이나 의 광덕(廣德)처럼 불교적 믿음이 깊은 신도도 있으며, 의 서동(薯童)과〈풍요(風謠)〉처럼 작자를 알 수 없는 경우인 공동작도 있다.)앞서 언급했듯이, 본고에서는『삼국유사』에 명기된 작자명을 가지고, 향가에 따르는 산문전승을 통하여 『삼국유사』소재 향가 작가 중에서도 신분을 파악하기 어려움이 있는 몇 작가에 대해 논의하도록 하겠다.먼저, 를 지은 서동은 그의 배경설화를 통해 유년시절에는 무명, 커서는 왕이라는 신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이 작품이 민요라는 점을 중시해서 이라고 볼 수 있다.다음은 혜성가를 지은 융천사의 신분 문제이다. 융천사에 대하여는 승려, 화랑, 사제자, 무격, 일관, 낭승(화랑에 속한 승려)이라는 제설이 분분하다. 이는 융천사 혜성가조에 있는 배경설화 어디를 보아도 융천사의 신분을 알아차릴 수 있는 힌트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배경설화에서 세 화랑의 무리도 처용의 존재에 대하여 사제자, 남무(男巫), 호족의 아들, 이슬람 상인, 창부무(倡夫巫), 강신무, 역신을 물리치는 신격, 약자의 상징적 인물 등 각양각색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의를 주관하는 사제자와 남무(男巫)로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룬다. 배경설화를 보면 처용은 동해룡(東海龍)의 일곱아들 중 하나라는 것이고, 임금이 불러 級干(급간)이라는 관직까지 준 것을 보면 벼슬아치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처용의 신분을 용의 아들, 사대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배경설화의 “”라고 하는 제목을 주의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의 이름자 뒤에 “~郞”자를 붙인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이 확실하게 일 때만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란 말은 이라는 이름 아래 화랑이라는 뜻의 자를 붙여 화랑이라는 신분임을 명확하게 드러낸다고 본다.이상으로 필자는 각 작품의 작가의 신분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작품을 지을 당시로 소급하여 작품의 탄생과 함께 했던 작자의 신분을 밝혀나갔다.Ⅴ. 결론을 대신하여《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향가들은 거의 전부 작자를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작자명은 노래나 이야기 속의 주인공 이거나 등장인물 명이다. 따라서 향가의 작자명은 그 모두가 역사상 실재(實在)한 실작자(實作者)라 인정할 수 없다.구체적으로 향가 작자로 명기된 서동(薯童), 광덕(廣德), 희명(希明), 영재(永才), 융천(融天), 충담(忠談), 월명(月明), 처용(處容), 신충(信忠)은 설화 속의 인물명으로 이들의 작명은 이야기와 노래말에 담긴 내용과 주제에 맞추어진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현존하는 향가 작자명과 노래의 내용과 그 배경설화의 내용은 일정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았고, 그 결과 향가 작자명의 인물들은 대부분이 역사상의 실존인물이라기보다는 설화상의 가공적 인물들이라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향가 작가 모두를 역사상의 실존 인물로 취급한다든가 반대로 그 모두를 설화상의 가공 인물로 취급하는 등의 흑백논리에 빠지는 일은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