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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Jules and Jim을 보고
    【Jules and Jim】『쥘 앤 짐』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적인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의 세 번째 영화이다. 원래 소설이었던 작품을 각색하여 영화한 것이다. 초등학교 중퇴를 한 트뤼포 감독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초등학교 중퇴 후 소년원을 전전하고 군대에서는 탈영병이 되었다. 영창에서 앙리 삐에르 로샤의 소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영화화 시켰다. 그러면서 이 소설을 꼭 영화화 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영화가 바로 4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영화 학도들에게 필수 영화가 된 『쥘 앤 짐』이다.독일 출신의 쥘과 프랑스출신 짐은 문학 동료로써 절친한 친구이다. 이들은 같이 다니면서 같이 어느 조각상의 미소에 매료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카트린느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카트린느의 신비스러움과 새로움, 아름다움에 쥘과 짐은 그녀에게 매료된다. 예전에 보았던 조각상과 닮은 여자 카트린느에게 쥘은 청혼을 하고, 결혼을 한 뒤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진다. 쥘과 짐은 다른 편으로 전쟁에 참전한다. 전쟁이 끝날 무렵 짐은 쥘에게서 자기 집에 놀러오라는 편지를 받게 된다. 쥘은 카트린느가 언제 자기에게서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고 있다. 쥘은 짐에게 카트린느와 결혼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셋의 기이한 동거가 시작된다. 한 여자에 남자 두 명. 이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짐이 떠난다. 얼마 후 이 세 사람은 영화관 앞에서 마주친다. 카트린느는 쥘이 보는 앞에서 짐을 차에 태우고 끊어진 다리로 향해 동반 자살한다.이 영화의 기이한 삼각관계와 세 인물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 소재이다. 그중 카트린느라는 인물은 당시로써 아주 파격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 한 남자에게 안주하지 못하고 두 남자를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결국 짐을 데리고 동반 자살한 것은 그녀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트뤼포 감독은 소설에서보다도 더울 매력적인 인물로 그녀를 만들었다. 연극관람 후에 카트린느가 세느강에 뛰어든 장면에서 원작에서는 강에 뛰어들고 난 뒤 남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카트린느로 하여금 유유히 헤엄치게 함으로써 남자들을 더욱 강하게 사로잡고 그녀가 주도권을 잡도록 한다. 이렇게 카트린느는 소설 속의 카트린느보다도 더욱 매력적이고 독립적인 캐릭터로 새롭게 창조된 셈이다.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우며 자유분방한 카트린느와 결혼한 쥘. 그는 그녀에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녀에게 먼저 청혼하고 결혼한다. 그렇지만 평범한 가정을 꾸리지는 못한다. 자신에게 안주하지 못하고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자기 부인을 보내줄 수도 있지만 자기 옆에 만이라도 있어주길 바란다. 그래서 자기의 가장 절친한 친구에게 자기 부인과 결혼해 달라고 청한다. 짐이 카트린느 방에서 자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전혀 질투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마지막에 카트린느와 짐이 같이 동반 자살을 하고 그들의 장례를 치러준 후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인다. 그 표정은 해방감의 표현이었고, 자신 스스로는 벗어나지 못하지만 이런 식으로 카트린느에게 벗어난 것에 시원함을 느낀 것이다. 마지막 인물은 짐이다. 짐은 카트린느를 좋아하지만 스스로 고백하지는 못하고 친구를 통해서 카트린느와의 사랑을 이룬다. 카트린느와의 사랑이 문제가 있을 것을 자신 또한 인식하고 다른 여인과의 사랑을 이룰려고 노력 하지만 그 또한 카트린느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에 까지 이른다.카메라는 이 세 인물을 객관적으로도 때론 주관적으로 그려낸다. 영화 안에 빠져들어가 이미지를 그려내다가 어느 순간에는 아나운서와 같이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며 주인공과 떨어져서 이미지를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감정동화와 브레히트의 소외효과의 중간선을 그으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시킨다. 그들의 대화와 그 가운데서 또박또박 들리는 나레이션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작품이다.이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을 배경으로 경쾌하게 시작해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기 이전까지의 20여 년간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시대배경은 정교한 세트와 당시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빛바랜 사진 톤으로 재현되는데 이 영화의 시간적 변화는 분장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파리 모습과 제 1차 세계대전의 다큐멘터리 필름, 여러 점의 피카소의 작품과 짐이 줄과 까트린느에게 선물하는 피카소의 작품, 또 까페에 걸려있는 피카소의 작품전 포스터에서 볼 수 있는 표현기법의 변화를 통해 시간적 변화를 가늠하게 된다.이 영화는 세 명의 주인공으로 거의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3항구도가 많이 나온다. 이 구도 안에서 인물의 배치에 따라 인물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 되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까트린느가 남장을 하는 장면에서는 짐과 함께 있다가 쥘이 프레임 안에 들어오면서 2항 구도에서 3항 구도로 변한다.전쟁 후 라인 강변에 살고 있는 쥘과 카트린느를 찾아간 짐이 방안에서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대 카트린느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인데. 이 장면에서 그들은 3항구도 안에 관계가 보인다. 왼쪽 전면에 카트린느가 앉아 있고, 중앙에서 왼쪽으로 치우친 후면에 그의 남편 쥘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 전면에 짐이 앉아있다. 이 장면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된다. 아직까지 쥘과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카트린느와 쥘의 거리가 더 가깝고 짐은 카트린느와는 떨어져 있다. 그리고 마치 쥘이 짐과 카트린느를 연결시키는데 가운데 역할을 할 듯이 쥘은 중심에 앉아있다. 아직까지는 짐과 카트린느 사이에는 쥘이 있다는 것을 인물 구도를 통해 보여준다. 나중에 짐과 카트린느가 연결된 뒤에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의 인물구도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이 장면에서는 쥘이 왼쪽 후면에 있고. 카트린느가 중앙 전면에 있으며 쥘보다는 가까운 거리의 반대 쪽(오른 쪽) 전면에 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중심인물이 카트린느가 되었고, 카트린느는 두 남자사이에서 짐과 더 친한 관계인 상황을 보여준다. 그리고 쥘은 후면에서 세 명의 관계에서 약간은 빠져있는 것 같이 보여 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카페에서 그들의 인물구도를 보면 카트린느는 중앙 전면에 위치하고, 짐은 왼쪽 후면에 쥘은 오른쪽 후면에서 세 명이 정확히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정 삼각형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짐이 둘을 떠나와 카트린느나 쥘이나 어느 누구와 더 친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고, 아직까지도 중심인물은 카트린느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카트린느 또한 이제까지는 짐이랑 더욱 친하기도 했고, 또 쥘과의 관계가 더 우호적일 때도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둘 다 모두를 사랑하는데 성공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인물들이 어떻게 배치되었느냐에 따라서 인물들과의 관계가 잘 표현되었다.
    예체능| 2009.01.07| 3페이지| 1,000원| 조회(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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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를 읽고 평가B괜찮아요
    ▶들어가기. 신은 왜 우리의 성을 남자 or 여자로 나누어서 창조를 하신걸까? 이 작품을 읽고 분석하면서 내 속에서 끝임 없이 반복해서 던져지는 의문이었다. 남자로서의 삶과 여자로서의 삶 그리고 모두 갖춘 삶, 어느 삶이 완벽한 삶일까? 아니 완벽한 삶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일까? 한 인간 안에서의 남자로서 그리고 여자로서의 경험들로 인하여 비쳐지는 세계는 과연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이 작품을 통해 생각해보자.올란도.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늙지 않고 사백여년 간 남성과 여성으로 사는 올란도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란도라는 이름에서도 작품의 성격을 파악 할 수 있다. 영자를 한자씩 따로 떼어 보았을 때, O.R.L.A.N.D.O 여기서 앞의 두 자를 이으면 OR이 된다. L을 빼고 세자를 이으면 AND가 된다. ’혹은‘과 ’그리고‘.. 주인공의 이름에서 남자 혹은 여자, 남자 그리고 여자를 읽어낼 수 있다. 이 작품의 시점 역시 작가가 올란도의 전기를 쓰는 전지적인 시점이지만. ’그‘를 ’그녀‘로 부르 것으로 작품이 반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남자 올란도. 첫 장에 등장하는 올란도는 남성이고, 나이는 열 여섯이며, 신분은 귀족이고, 경제적으로 대단히 부유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작품의 첫 시작에서 올란도는 남자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인간의 양성론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남성인 주인공에게도 그가 나중에 여성으로 성이 전환되었을 때 드러나는 특성이 비록 배태의 상태로나마 존재하는 것으로 처리되어 있다. 따라서 남성인 올란도에게서 여성의 특성도 발견한다.사샤 그리고 사랑. 올란도는 사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곧 배신의 아픔을 맛보게 된다. 아직은 전혀 정신적으로 성장이 되지 않은, 설익은 그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사랑이 실패로 끝날 것은 예정되어 있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샤는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의 구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분명히 주인공과 사샤를 동일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올란도와 사샤의 유사성은 겉으로 보기에 둘이 다 양성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다고 하겠다.고독한 삶 & 칠일간의 깊은잠. 사샤 사건 이후 온갖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그는 그의 저택으로 돌아와 완전한 고독 속에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아침. 이날 올란도가 늘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서 하인이 가보니 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이 잠은 만 칠 일 동안 계속 되었다고 되어 있다. 칠일째 되는 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늘 일어나던 시간,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7시 45분에 일어났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지만 그의 정신세계에는 묘종의 변화가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작가는 잊지 않고 덧붙인다. 이 혼수상태는 올란도의 인생 여정의 중요한 시점에서 몇 번 발생하는 혼수상태 가운데 그 첫 번째 것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연상시키는 이 수법은 환타지라든가 가벼운 재미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상징적 차원에서 좀 더 심오한 과정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칠일 간의 잠을 빌미로 해서 올란도는 삶, 죽음, 고독 등의 원초적인 문제에 대한 명상을 더욱 많이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전기가로 살짝 변장해서 작품을 써나가고 있는 작가 자신의 죽음에 대한 명상도 곁들여져 있어서, 전기가 아닌 소설의 주제 '삶과 죽음의 본질'이 뚜렷이 부상된다.시간관. 닉이 이 저택에 도착한 정확한 시간을 4월 21일 월요일 7시라고 밝힌다. 소위 시계 시간을 무시하고 주인공이 열여섯 살에서 서른여섯 살이 되는 사이에 삼백여 년의 역사적 시간이 경과하게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따금 이와 같이 월, 일, 요일, 시간까지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은 독자에게 기인한 느낌 마져 들게 한다. 그러나 좀더 차분히 생각해보면 작가가 이렇게 함으로써 종래의 소설이나 전기의 형태를 희화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의 시간의 이중적 취급, 즉 시계 시간과 심리적 시간의 처리는 작가의 문학론, 특히 소설론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이다. 이 장에서 작가는 시간의 이중성에 관해서 마치 그녀가 문학론을 쓰고 있기나 한 것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이 시간의 이중성은 인간의 이중성, 즉 외면적 측면과 내면적 측면과도 맞물려 있다고 하겠다. 이리하여 이 작품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삶의 이십 년 간만을 다루지만 역사적으로는 삼백여 년이 경과되게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엘리자베스조, 왕정복고기, 신고전주의 시대, 그리고 빅토리아조를 두루 다루고 있다. 또한 시계시간을 무시해버린 것이 올란도의 양성성을 더욱 부각시킨다.여자로서의 올란도. 올란도는 또 다시 혼수상태에 빠진다. 혼수상태가 계속된지 또 칠 일째 되는 날 올란도는 깨어나 보니 그의 성이 바뀌어, 이제는 더 이상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처음에는 남자로 등장하는데, 이는 초기 단계에서는 그가 남성의 세계의 특징인 자아 중심성에 치우친 인물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 소설의 전반 부 백여 쪽에서는 주로 남성 올란도의 발달 과정을 작가가 탐구하는데, 이것은 성전환이후 여성으로의 재탄생의 서곡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여성이 된 올란도는 자아의 허영을 깨닫고는 이 허영에서 벗어나 진리의 세계를 추구하게 된다고 한다. 작품 도처에서 작가는 남자였을 때와 여자였을 때의 올란도의 동일성을 누차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올란도가 이미 정신적으로 성숙해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양성론을 주장하기 위한 발판마련 작업을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단지 가부장 사회가 양성을 인위적으로 갈라놓고 각 성에게 다른 역할을 부과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사실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올란도가 완전한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남성성의 체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양성으로서의 올란도. 여성으로 성이 전환된 올란도의 몸에는 남자 특유의 힘과 여자의 우아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명실공이 양성적 인물이 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여성으로 성이 전환된 올란도에게 여전히 남자 특유의 힘이 건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으로 인해서 작가가 ’자기만의 방‘에서 개진한 인간의 양성론을 이 작품에서 구현했다고 볼 수 있는 소지가 생긴다고 할 수 있다. 즉 남자와 여자란 가부장 사회에서 갈라놓듯이 그렇게 이질적이고 확연히 양분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자에게도 여성적인 요소가 남성적인 것과 공존하고, 여자에게서도 남성적인 요소가 남성적인 것과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이 남성적인 요소가 한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조화를 이루어나갈 때 그 인간은 조화로운 개성을 갖게 됨은 물론이려니와 이런 정신세계야 말로 이상적이고 창조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남성성이 여성성을 억누른다든가 또는 그 반대인 경우 인간의 정신세계는 일그러져, 우리 인간이 기아하고 파괴적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또 깨어난 날 터키에 반란이 일어났는데 반란군이 올란도의 방에도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그는 죽은 듯이 누워 있었기 때문에 , 반란군이 그는 건드리지 않고 그의 관과 공작의 공식 의상만 훔쳐갔다고 되어 있다. 이것도 상징적으로는 그가 성이 전환 된 상태에서 깨어나면서 정신적 성장에 거추장스러운 세속적 영예는 벗어버린 것을 뜻한다고 해석 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메시지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07.06.07| 4페이지| 1,000원| 조회(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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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러닝머신`을 보고..
    『러닝머신』을 보고..하염없이 같은 곳에서 반복적으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걷고, 뛰고 있지만 결국은 제자리인 기계가 바로 러닝머신이다. 어쩌면 인생 또한 그것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매일 매일 반복되고 열심히 살지만 언제나 어딘가에 끌려 다니는 삶... 적어도 러닝머신을 벗어나 넓은 초원을 달리기 전까진 말이다. 게다가 그 러닝머신은 너무 낡아 시끄러운 소리만 낸다. 이 연극은 러닝머신이라는 현대적이고 일상적이지만 낡아서 반품조차하지 못하는 기계를 이름으로 걸고 시작한다. 마치 그 러닝머신이 과거의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상에서 삐그덕 거리며 살아가는 인물들을 대변해주듯이 말이다.정희와 무영은 과거의 연인이고 낡은 아파트에 살았다. 어느 날 정희는 말없이 사라지고 무영은 둘의 친구인 유리와 결혼을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정희는 그 아파트에 엄마와 같이 돌아와 살게 되고, 무영과 유리 역시 새집으로 이사 가기 전 임시거처로 이곳을 찾게 된다. 이렇게 네 명의 인물이 낡은 아파트라는 공간에 모인다. 이극의 첫 시작은 흥미롭다. 다른 공간이지만 같은 습관을 가진 무영과 정희의 행동은 같다. 그리고 이것은 무대라는 한 공간 안에서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같이 일어난다. 무대 활용이 돋보이는 것과 동시에 다른 사람과는 다른 무영과 정희의 같은 습관 (늦잠을 자고, 블랙커피를 즐긴다.)을 보여주며 둘은 아직 서로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효과적이었다. 또 이 장면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다시 보여 지는데, 이때는 다른 공간에서의 네 사람의 행동이지만 알고 보면 한 공간 안에서의 네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이 연극의 네 인물은 과거의 사건에서 벗어나려 무더니 노력하지만 벗어나지 못한다. 주인공 남녀인 무영과 정희는 과거의 사랑을 잊으려 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예전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블랙커피, 등산 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무영의 부인 유리는 과거에 너무나 닮은 두 사람을 인정했다 하더라도 지금은 자신의 남편이고 그 남편의 옛 여인인 과거의 미련을 깨뜨리고 싶다. 그래서 새집으로 가길 원하고 둘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의 감정은 자신에게 향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과거 감정으로 가장 괴로워하는 인물이 유리이다. 마지막으로 정희의 엄마 구숙자는 겉으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밝아 보인다.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계속 다이어트생각이고 러닝머신도 정말 열심히 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인물이다. 과거 남편에게 버림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남편이 방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는 계속 예뻐지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 결국은 그게 허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딸조차도 그녀를 떠난다. 이 연극의 네 인물은 자의에 또는 타의에 의한 과거의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꿈인지 현실인지는 구별되지 않는 공간 안에 네 명의 인물이 같이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 작가는 어차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면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 하다고 보여주려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연극을 계속 보면서 느낀 문제점은 첫 번째로 템포가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연출은 이 연극을 인물의 내면심리 묘사에 공을 들였고 대사보다는 그사이의 침묵에 집중해야한다고 밝힌다. 하지만 그 침묵도 어는 정도이다. 연극 안에 대사는 정말 괜찮은 부분들이 많았고, 대사와 대사 사이의 침묵 안에서 배우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연기를 하는지도 다 알겠다. 요즘관객들의 수준은 높아졌다. 4-5초의 시간만으로도 표현 할 수 있을 것을 거의 30초 넘게 가지고 있는 포즈에서 답답함을 넘어서 짜증까지 난다. 어쩌면 연출은 두인물관계가 관객이 그 순간에 느끼는 답답함처럼 얽혀있기에 그 답답함을 느낀다면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한, 두 번일 때 통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 반복되면 관객은 이 연극자체를 위와 같은 감정으로 평가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즈를 가지고 연기를 하는 것이 배우들에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안다. 대사와 대사사이에 다른 말과 감정이 있다면 내면에서 변화하는 심리적인 부분의 변화가지도 호흡으로 느껴지고 굳이 겉으로 크게 표현되어지지 않더라도 관객들에게 전달되어야하는 얼마나 어려운 연기인가? 하지만 그 포즈 안에서 배우들은 화만내고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다. 도대체 무슨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물론 모든 배우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몇몇 배우가 나오는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기에 답답할 따름이다.
    독후감/창작| 2007.06.07| 3페이지| 1,000원| 조회(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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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체능]정동극장에서 하는 `전통 예술 무대`공연을보고
    정동극장에서 하는 전통 예술 무대라는 공연을 보았다. 전통 예술 공연이라 전통무용은 물론 전통악기연주와 판소리, 사물놀이와 함께한 판 굿까지 볼 수 있었다.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은 나와 같이 간 일행을 빼곤 거의가 다 일본, 중국 사람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를 관광하러온 외국인 관광객들의 여행코스 중 한 부분인 것 같았다. 그래서 였을까? 내가 느낀 공연은 한국의 전통예술을 통합해서 다 보여주는 것 같았다.첫 번째 공연은 전통 악기 연주와 어우러진 살풀이의 무대였다. 거문고, 가야금, 아쟁, 해금, 대금, 피리, 장구, 징. 8개의 악기연주가 시작된다. 장구가 리더가 되어 각각의 악기의 솔로부분들도 있고, 합주부분도 있다. 합주가 진행되고 있는 중간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한손에 흰 수건을 들고 나와 춤을 춘다. 한 사람이 나와 춤을 추고 있지만 어느 군무보다도 무대가 꽉 찬 느낌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동작이 조심스럽고, 꾹꾹 밟아주지만 동작이 무겁지는 않다. 한 마리의 새처럼 치맛자락과 흰 수건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수업시간에 우리도 살풀이를 배우긴 하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아름다운 춤 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배운 동작들도 가끔 보였다. 살풀이는 어느 춤보다도 무용수의 감정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형태가 자유롭다는 말을 들었다. 공연을 보면서, 연주는 빠르지만 동작은 느려지고, 또 연주는 느리지만 무용수의 발은 빨라지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을 보고 정말 기본 동작들을 착실히 익히면 어느 노래에서라도 감정을 잡고 춤을 출 수 있는 춤이라는 것을 알았다.두 번째 공연은 판소리 공연이었는데 고수와 소리꾼이 나와 흥부가를 들려주었다. 이 공연을 살짝 지루했다.세 번째 공연은 삼고무 이다. 7명의 무용수가 나와 삼면을 둘러 사고 있는 북을 치는 무용이다. 이 공연의 매력은 7명의 무용수의 절도 있고 정확한 동작이다. 7명의 무용수가 한사람같이 박자, 소리, 동작이 똑 부러지게 맞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공연이었다. 각각의 무용수가 내는 소리는 작을지 몰라도 여러 무용수가 똑같은 소리를 내니 웅장함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7명의 무용수가 한사람과 같이 동작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땀과 피가 서려있는 무대였다.다음은 피아노와 해금의 합주무대이다. 동서양의 조화라 할 수 있는 이 공연은 많은 건반으로 여러 소리를 내는 피아노에 비해 두 개의 현으로만 소리를 내는 해금이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악기가 잘 어우러져 환상의 하모니를 들려주어 삼고무로 살짝 들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다섯 번째 공연은 궁중무용이라 할 수 있는 태평무의 순서였다. 전체 공연 중 의상이 가장 화려한 무대였다. 처음에는 가채까지 올리고 나와 저 무거운 것을 올리고 어떻게 춤을 출까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잠시 후 가채를 내리고 온 무용수들을 보니 이런 걱정은 사라졌다. 원래 궁중무용은 정형화된 동작과 동선을 가진다는 말을 들었다. 오른쪽에서 두 명의 무용수가 나왔으면 왼쪽에서도 두 명의 무용수가 나오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유는 궁중 무용은 왕 앞에서 추는 춤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동작을 즉흥적으로 했을 경우 왕이 신변에 위험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정해져있고, 예상가능 한 동작들만 한다는 것이다. 태평무의 동선이나 동작 역시 그러했다. 두 팀으로 나누어져 한 팀이 앞으로 나오면 또 다른 한 팀은 뒤로 들어가는 등의 동선과, 정형화된 동작들을 선보였다. 태평무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정형미가 있었다. 태평무의 또 다른 매력은 화려한 의상에 다른 매력이다. 파란 치마 속에 빨간 치마를 겹쳐 입은 무용수들이 치마를 살짝 들고 발짓을 할 때 마다 살짝 보이는 빨간 치마가 예뻤다. 크게 동적이지는 않지만 절제된 동작 안에서의 매력이 태평무에는 있었다.
    예체능| 2007.06.06| 2페이지| 1,000원| 조회(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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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평론 더 벤치
    벤치라는 공간은 우리주변에 작지만 편안하게 다가오는 공간이다. 무심코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공간인 벤치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의 인생을 보낸다. 버스를 기다릴 때, 연인을 기다리며 책을 읽을 때, 쇼핑하다가 다리가 아플 때, 간단한 점심식사를 할 때, 또는 점심식사 후 담소를 나눌 때,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누거나, 싸울 때...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시간을 벤치에서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벤치를 크게 인식하지 못한다. 바쁜 일상 안에서 약간의 휴식과 여유를 주는 공간인 벤치. 이제껏 어떤 장면의 배경이 되기 쉽던 벤치가 이 극의 주인공인 된다. 극단「오늘」은 이제껏 일상생활의 아름다움, 또는 인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등.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주로 많이 다루었다.『THE BENCH』역시 그와 상통하는 이야기이다.극은 에피소드 식 구성으로 진행된다. 처음에 나온 장례식 이야기는 의문을 많이 남긴다. 이미지 적으로 구성되어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 보다는 관객이 느끼는 것을 초점을 두고 구성하였지만 전체적으로 가장 붕 떠있는 느낌이 든다. 물론 아이 역으로 나온 배우의 연기와 퍼포먼스 속에 죽은 자와의 관계에 따라 각자가 느끼는 슬픔. 아이가 느끼는 슬픔을 다르게 표현하는 세심함과 전체적인 통일감을 주는 퍼포먼스 적인 요소는 참 좋았다. 특히, 아이가 처음에는 장례라는 것에 동화되지 못하다가, 다른 사람들을 보고 웃으면서 행동을 따라하다가 결국 동화되어 울음을 터트리게 되는데, 아이라면 정말 그렇게 장례식이라는 것을 접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이 첫 번째 에피소드가 말하고자하는 바가 이 작품이 하고 있는 이야기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 작품이 전체 작품들과 떨어져있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침의 모습을 나타내는 에피소드와 사랑의 감정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에 나타나는 퍼포먼스적인 요소들이 각각의 에피소드를 구성하는데 적절한 수단으로 보였기 때문에 퍼포먼스적 요소가 강해서 동 떨어진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의 소재이자 키워드인 벤치라는 요소가 빠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벤치라는 요소를 가지고 배우들이 역할극 식으로 연습하다가 그것이 다듬어지고 굳어져서 작품으로 탄생 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에 비해 이 에필로그에 벤치는 빠져있다. 더구나 마지막에 정부와 아내가 마주치는 것은 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처음부터 정부가 어딘가에서 장례행렬을 지켜보고 있었다고만 가정하고, 그것이 드러나기만 해도 벤치와의 연관성은 생긴다. 정부의 공간 안에 벤치는 충분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연출가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는 모르지만 전체주제와 연관성 문제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의문이 생긴다.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영상을 사용하여 도시인의 바쁜 상황을 더 부각시켰고, 세트가 거의 없는 무대공간을 잘 채워 주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벤치라는 공간의 성질 가장 잘 드러난 것 같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들안에서의 벤치는 누군가의 공간으로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잘 벤치의 속성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 안에서 누군가가 와주길 또는 그냥 그 자리에 묵묵히 있는 벤치. 또는 벤치가 있는 장소를 알긴 하지만, 또 그 장소에서 편안한 시간을 때론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필요 없을 때는 그냥 지나치며 외롭게 방치해 두는 벤치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음악과 더불어 배우들의 행동과 연기로 형상화 되는 장면이 참 예쁘게 느껴졌다.다음 에피소드는 벤치하면 생각나는 사람들, 벤치를 침대삼아 잠을 자는 노숙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벤치에는 왠지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이 에피소드는 완성도가 부족하다. 돈 버는 방법(구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관객을 웃기려면 확실하게 웃기던가.. 말장난을 하려면 확실하게 하던가..다른 장면들에 비해 완성도가 확실히 떨어진다. 충분히 재미있는 소재인데 그 재미를 못 살린 것 같아서 아쉽다. 또 두 명의 노숙자와 가출한 청소년 이 나오는데 두 명의 노숙자의 캐릭터 도 차별성이 없다. 캐릭터 안에 좀 더 확실한 성격을 부여하고 그 캐릭터들이 충돌하면서 상황을 만들었다면 평면적인 노숙자 이야기보다는 살아있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 같다.한 소녀의 상상이 만들어 내는 에피소드는 정말 괜찮았던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움직임을 많이 사용하여 구성한 장면인데 음악과 적절히 잘 어우러졌고, 안경을 통해 상상과 현실을 구분지어준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우리들은 가끔 기상천외한 상상들을 한다. 그 상상들이 모두 다 행동으로 옮겨질 순 없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잘 반영한 에피소드로 독특하고 재미있었다.다음 에피소드에는 뇌성마비의 언니와 그 동생이 나온다. 뇌성마비언니 때문에 힘이 들었던 동생이 언니를 소풍 와서 놓고 가는 이야기이다.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언니를 놓고 가는 동생 때문만은 아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직도 많이 걱정하고 사랑하는 언니를 포기 할까? 라는 생각과 또 이런 상황이 현실에서 충분이 많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서 일까? 보고 있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다. 이 에필로그에서 돋보였던 점은 뇌성마비 언니 역을 연기하는 배우이다. 장애우를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그 연기는 자칫 잘못하면 어설퍼져서 눈살을 찌푸리거나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여지가 커 집중력이 깨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는 배우의 진지한 연기로 인해 관객들이 잘 집중할 수 있었다. 혹시 진짜 장애우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말을 하지 못하지만 행동을 통해서 감정표현을 하는데 마음이 아팠다.
    예체능| 2006.10.27| 2페이지| 1,000원| 조회(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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