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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력의비밀을 보고
    기억력의 비밀-슈퍼기억력을 찾아서-처음부터 엄청난 인물을 만났던거 같다. 숫자 몇십 개가 되는 것을 순서대로 안틀리고 외우는 걸 보니 신기 할 따름이다. 이런 결과 전엔 역시 엄청난 노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방해상황속에서 훈련을 하여 실전에서 더욱더 높은 효율을 보여주는 이런 훈련방식을 보고 나도 영어단어를 외울때도 이런 방식을 쓰면 좋지않을까 하는 심심한 생각도 해보았다.두번째로 나온사람은 영화속 레인맨의 주인공인 킴픽이란 사람인데 자폐증장애인이었다. 장애인같지않은 머리를 보니 저걸 부러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 돌머리라도 이런 내가 좋다. 서번트신드롬으로서 일상생활은 어렵지만 천재두뇌를 가진걸 보니 참 신은 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기억의 한조각을 찾아서 부분에선 얼굴실인증환자가 나왔는데 사람의 얼굴을 보고도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최상범씨는 그렇다 치더라도 부인은 무슨 죄인가? 정말 같이 살고 있어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어쩌면 이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부분을 보고 들었다. 정말 신기한 능력이다 이사람은 능력자다. 단한순간도 잊지 못하는 고통이라니.. 참으로 이것이야 말로 저주가 아닌가 싶다.물론 행복한 것을 잊지 못하는 축복이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굳이 축복이나 저주냐를 따지자면 저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난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을 생각해내라면 안좋은 일들이 더 생각이 많이 나는 거 같기 때문인데 이건 내가 좀 부정적인 경향이 강해서일까?
    독후감/창작| 2009.09.12| 1페이지| 1,000원| 조회(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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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기 노인과 성
    국내 노인문제 전문상담기관에 의하면 상담 전화의 10% 가량이 고독과 소외 문제이며, 고독과 소외 문제로 상담을 하는 사람의 80%가 이성교제를 희망한다고 한다.상담 전화의 한 사례를 보면 남편과 사별한 60대 후반의 한 여성이 역시 혼자 된 남자를 만나 사귀게 되었고 마음이 통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 여성은 자식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말하는 게 좋겠냐고 상담해왔다. 상담원은 “먼저 아들의 허락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딸은 같은 여성인 어머니를 이해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먼저 아들을 설득하라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아들은 의외로 “어머니가 좋으실 대로 하라”고 선뜻 동의했다. 그러나 딸은 “엄마가 지금 팔자 고치겠다는 거냐”고 펄쩍 뛰었다. 딸은 어머니에게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 대신 애들 봐줄 사람이 없는데 엄마가 어떻게… ”라며 극구 반대했다.이 사례는 노인의 성과 재혼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습과 도덕을 보여준다. ‘여자는 한번 결혼하면 일부종사해야 한다’는 여성차별의 관념과 ‘혼자 된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자식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통념이 지배적이다.한국 사회는 노인의 성적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다. 노인이 되면 성적 욕구가 꺼져버리는 것으로 간주한다. 노인이 성적 욕구를 드러내면 ‘엉큼하다’ ‘주책없다’ ‘추접하다’는 등의 표현으로 가차없이 매도한다.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의 성 윤리는 개방적으로 변했지만 노인의 성에 관해서 만큼은 과거와 변함이 없다.노화가 진행되면서 인간의 모든 생물학적 기능은 서서히 퇴화한다. 그러나 성욕은 감소하는 여러 능력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는 능력 중의 하나다.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질환이 없는 경우 90세까지 성 반응이 유지된다는 것이 의학계의 결론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남자 노인의 89.4%, 여자 노인의 30.9%가 정상적인 성기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통계에서는 66~70세 노년층의 62.2%가 월 1~5회 성관계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노인의 성에 대한 해법은 무엇보다 먼저 노인의 성욕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화여대 보건복지학과 문인옥 교수는 몇 해 전 ‘고령화 사회의 적극적인 재혼대책’이라는 칼럼에서 노인의 성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사람이 늙어갈수록 섹스는 중요하다. 섹스는 쇠퇴해가는 생물학적 과정에 마지막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의 정서적 건강에는 성행위가 더욱 중요하다. 성교 횟수는 연령과 함께 감소되지만 성적 만족도 함께 줄어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노인의 성생활의 사례를 보면 서울의 한 비뇨기과에 70대 초반의 여성이 남편과 함께 찾아왔다. 이 여성은 그 동안의 부부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뒤 원장에게 남편의 ‘수술’을 부탁했다.70대 부부는 60대까지 원만한 성생활을 유지했다. 그런데 70대가 되면서 남편의 성기능에 급격한 변화가 왔다. 음경의 강직도가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부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부부생활을 계속 시도했지만 만족도가 좋지 않았다. 결국 70대 여성은 수술 요법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남편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것이다. 수술 후 그 70대 여성은 원장에게 ‘감사하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면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추사 김정희(1786~1856)는 18세기에 태어난 인물로 70년을 살았으니 장수한 사람이다. 추사가 남긴 유명한 글귀 중의 하나가 ‘일독이호색삼음주(一讀二好色三飮酒)’다. ‘내가 살면서 좋아하는 게 세 가지 있는데, 첫째는 독서요, 둘째 호색(好色)이요, 셋째는 음주다.’추사도 당당하게 인생의 두 번째 즐거움을 호색이라고 말했다. ‘완당평전’에 따르면 이 글을 쓴 시기는 추사가 제주도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한양에서 살던 64~66세 때로 추정된다. 추사 역시 인생의 만년에서도 색에 대한 욕망이 강했음을 보여준다.보통 65세가 넘으면 노년층으로 분류된다. 배우자와 사별한 65세 이상의 노인 중 90% 이상이 이성교제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실에서 이성교제와 결혼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 알아보면 먼저 혼자된 남성의 경우, 독신 남성이 경제력이 없으면 재혼은커녕 이성교제도 꿈꿀 수 없다. 그렇다고 경제력이 있다고 이성교제나 재혼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이성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돈이 결혼을 하려고 할 때는 거꾸로 장애물로 등장한다. 아버지가 재혼 의사를 밝히면 자식은 대부분 상속 때문에 반대한다. 배우자가 있는 남성 노인이 사망할 경우 상속분은 배우자가 1.5, 자식은 수에 관계 없이 1씩 돌아간다. 배우자는 자식보다 50%를 더 받게 되어 있다. 자식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상속분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변호사들에 따르면 자식들이 혼자 된 아버지의 재혼을 반대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상속분의 손실에 있지 않다. 자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버지가 새 부인에게 재산을 모두 줘버리는 상황이다.혼자 된 여성의 경우를 보면 여성은 재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남자와는 다른 이유로 주저한다. 첫째는 먼저 간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다. 둘째는 다른 남자를 만날 경우 자식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걱정한다. 셋째는 가족과 친인척, 그리고 시댁 쪽에서 자신을 어떻게 볼까를 우려한다.65~75세의 노인 17명(여성 3명 포함)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노인들은 노년기의 성이 삶에 활력을 주는 긍정적 요소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들이 내가 성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걸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여성이 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그렇지 않다”라는 반응을 보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 노인들은 ‘정숙한 여인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다. 대부분의 여성은 노인이 되어서 성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을 ‘정숙하지 못한 행동’으로 여기고 있다는 의미다.30~40대의 대부분은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고 손주를 안겨드리는 것만으로 효도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혼자된 노인에게 가장 절박하고 절실한 것은 본능에 따른 기쁨이다. 즉 “이성을 만나러 나갈 때의 기대감, 마음이 통하는 이성과의 신체적 접촉에서 오는 기쁨이 노인을 진정 행복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사회과학| 2008.05.30| 3페이지| 1,000원| 조회(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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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편한 진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심각한 환경 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킬리만자로, 몬타나 주 빙하국립공원, 콜롬비아 빙하, 히말라야, 이태리 령 알프스, 남미 파타고니아 등등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전 세계에 자연의 경이로움을 자랑하는 빙하와 만년설을 가진 곳이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지구 역사 65만년 동안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했던 2005년, 대부분의 빙하 지대가 녹아내려 심각한 자연 생태계의 파괴를 불러왔다. 모든 것이 지구온난화 때문이다.그 모든 것의 원인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미국 전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는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심각한 환경위기를 전 인류에게 알리고자 모든 지식과 정보가 축약된 슬라이드 쇼를 만들어 강연을 시작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지구온난화의 진행 속도와 영향력은 심각하다. 인류의 변화된 소비 행태가 부추긴 CO₂의 증가는 북극의 빙하를 10년을 주기로 9%씩 녹이고 있으며 지금의 속도가 유지된다면 오래지 않아 플로리다, 상하이, 인도, 뉴욕 등 대도시의 40% 이상이 물에 잠기고 네덜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 빙하가 사라짐으로 인해 빙하를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인구의 40%가 심각한 식수난을 겪을 것이며, 빙하가 녹음으로 인해 해수면의 온도가 상승, 2005년 미국을 쑥대밭으로 만든 '카트리나'와 같은 초강력 허리케인이 2배로 증가한다. 이와 같은 끔찍한 미래는 겨우 20여 년 밖에 남지 않았다.기온 상승은 국가를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기온이 상승함으로 인해 어떤 지역은 대홍수, 또 다른 지역은 극심한 가뭄을 겪을 것이며 기후까지도 완전히 뒤바꿔 놓을 것이다. 이는 인류의 생명과 지구의 안위를 위협할 것이며, 우리는 결국 평생의 생존 터전과 목숨까지도 잃게 될 것이라고 앨 고어는 경고한다. 지금부터라도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천하고 행동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고 앨 고어는 이야기한다.현재 우리는 인류역사상 위험한 시기 중 한 시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근래에 내가 직접 본 뉴스, 다큐멘터리만을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무시될 수 없다. 아니 심각하게 고려되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져간다.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투모로우라는 영화가 계속 떠올랐다. 그 영화에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의 온도가 올라가고, 그로인해 현재 지구 열순환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 해류의 흐름이 끊겨, 전 지구적으로 엄청난 기상 이변이 일어나는 내용을 보여준다. 결국 강력한 태풍 후 지구 전체의 북반구 지방은 온통 눈으로 뒤덮히게 되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보여준다. 어쩌면 지구온난화의 최종단계일지 모른다.현재 이산화탄소의 배출 수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이다. 최근 몇 십년사이 엄청난 양의 빙하가 모두 사라졌으며, 2003년 여름 유럽에서는 엄청난 혹서로 인해 수천명이 사망했다. 지난 몇 년간 초대형 태풍들이 발생했고, 그 빈도수도 많아지고 있다. 우리의 이웃나라 일본은 2004년 10번의 태풍으로 사상최다 태풍기록을 세웠으며, 원래 태풍생성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던 남대서양에서도 2004년 태풍이 발생했다. 그리고 2005년 초대형 카트리나가 미국 플로리다를 거쳐 뉴 올리언즈를 쳤다. 그리고 한반도 크기보다 큰 얼음덩어리가 2006년 여름 한해에 녹아 없어졌다고 유럽우주국이 밝혔으며, 몇 해전 cbc뉴스는 미식축구장의 11,000배 만한 크기의 북극 얼음이 잘려나간 후 현재 바다를 떠다니고 있다고 보도했고 이것은 30년만에 일어난 가장 큰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캐나다의 벤쿠버는 얼마 전 시속 120km 의 폭풍에 의해 세 차례 걸쳐서 강타 당했다. 춥기로 유명한 매니토바 주는 원래 연초가 되면 온도가 영하 30도 정도 까지 내려가야 하지만 영상 1도를 웃돈다.위의 사실들 외에도 수 많은 이상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 정도의 보도들만 보더라도 현재 환경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영화 투모로우의 내용은 과장되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바다에서의 해류의 흐름은 적도지방의 뜨거운 열과 북극지방의 차가운 열을 순환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흐름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멕시코 만류이다. 이 만류를 타고 올라온 따뜻한 물은 북극 근처에서 식으면서 짜고 밀도 높아지는데 그렇게 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다시 적도지방으로 흐르게 된다. 하지만 빙하가 녹는 것이 가속화 될 경우, 그 주변의 물의 농도가 낮아지게 되고 그러면 물이 가라앉지 않게 되어 흐름의 중요한 부분이 끊기게 된다. 이 북부 대서양 쪽의 해류의 흐름이 끊기면 그곳에서 따듯한 공기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아, 유럽을 비롯한 아시아지방, 그리고 미국 동부는 영화처럼 얼어붙게 된다.
    독후감/창작| 2008.05.30| 2페이지| 1,000원| 조회(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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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존경하는 인물(박정희)
    역사적으로 보면 위대한 분이나 뛰어난 분들은 많다. 그들 중에서 내가 가장 뛰어나고 생각하고 가장 본 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전부터 前 박정희 대통령이다. 난 그의 강한 리더쉽으로 이루어낸 경제발전에 대해 예전부터 동경해 왔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어려운 시기에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서 모두가 불가능 할 것이라 생각 했었던 일들을 해냈고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기반을 마련했다. 국민의 80%이상이 농업을 생계로 살아가던 아시아의 한 가난한 나라를 세계 경제규모 12위권의 나라가 되도록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본 시설/기반 등을 탄탄히 만들었다는데 누구보다도 크게 기여한 점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인정할 것이다. 그의 업적 중 가장 큰 것이 경제 발전이고 그 외에 많은 업적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 분이 위대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점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결코 부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前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충분히 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었다. 그래서 이번에 과제겸 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박정희(朴正熙), 경북 선산 출생으로 1917. 6. 15 태어나 1979. 10. 26 에 김재규에게 권총으로 피격당해 사망했다. 호는 중수(中樹)이고, 가난한 농부인 박성빈(朴成彬)과 백남의(白南義) 사이에서 5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소학교(聞慶小學校)에서 3년간 교직에 몸담았는데, 일본인 시학관과 충돌해 스스로 사직했다. 이후 장래를 고민한 끝에 1942년 만주에 있는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해 2년 과정을 수석으로 수료한 다음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1944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8·15해방 이전까지 주로 관동군에 배속되어 중위로 복무했다.8·15해방 후 1946년 귀국해 국군창설에 참여했고,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제2기로 졸업하고 대위로 임관했다. 육군본부 정보국 작전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1949년 여수순천10·19사건을 계기로 군내 공산주의자와의 관련 혐의를 받고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동료장교의 감형운동으로 석방되어 문관으로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다가 6·25전쟁 이후 소령으로 복귀,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장을 지냈다. 소령으로 복귀되는 과정에서 군고위급 장성 사이에 그의 과거 공산주의자와의 관련 사실을 두고 의견 차이가 있어 복귀에 어려움도 있었다. 1953년 준장으로 진급했으며 육군포병학교장, 제2군단 포병사령관, 제5·7사단장, 제1군 사령부참모장, 제6관구사령관, 육군군수기지사령관, 제1관구사령관,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제2군 부사령관 등을 역임했다.1961년 소장으로 제2군 부사령관에 재직 중 "누란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하고 도탄에 빠진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겠다"는 등의 혁명공약을 내걸고 청년장교들과 함께 5·16군사정변을 주도했다. 같은 해 7월 군사정변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입법권·사법권·행정권을 장악한 '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해 2년 7개월간의 군정을 실시했으며, 1962년 3월 윤보선 대통령의 사임으로 그때부터 대통령 권한대행도 함께 맡았다. 군정기간 동안 전면적인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정당·사회단체 해체, 용공분자와 깡패 검거 소탕, 댄스홀 및 고급요정 폐쇄, 부정축재처리법을 공포해 7억 2,000만 환에 이르는 부정축재환수 등을 단행했으며, 국민의식개혁을 위해 '재건국민운동본부'를 설치해 생활간소화·가족계획·문맹퇴치운동 등을 실시했다. 경제시책으로는 농어촌고리채정리와 화폐개혁 등을 단행했으며, 역대정권의 무관심과 무기력 속에 방치된 국토 및 경제개발계획에 착수함으로써 그가 내세운 조국근대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당시 이런 개혁정책들은 대다수의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군정기간 동안 중앙정보부에 의해 ' 4대의혹사건'(증권파동의 부정, 회전당구 사건,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이 발생했으며, 군정실시 2년 후에 민정이양을 하겠다고 공언해 1963년 '2·27선언'으로 원대복귀를 약속했으나 '4·8조치'로 군정연장을 발표했다가 국민여론에 밀려 철회하는 등 비난을 받기도 했다.대통령 취임 이후 부존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상황에서는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기치하에 수출을 독려·촉진하기 위해 매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직접 주재해 수출 목표를 확인하는 한편, 전세계에 나가 있는 해외공관을 활용해 수출에 주력했다. 제3공화국 기간 동안 수출주도의 고도성장 및 경제개발5개년 계획, 사회간접자본인 산업기지건설 등을 이룩해 경제발전을 위한 기본토대를 구축했다.1964년 수출진흥 체제 구축의 일환으로 해외시장 개척을 전담하는 한국무역진흥공사(KOTRA)를 설립한 데 이어 1965년부터 수출진흥회가 개최되었다. 애초에 이 회의는 국무총리가 주재했었다. 제1회 회의는 정일권 국무총리의 주재하에 중앙청에서 열렸으나 제2회부터 청와대 응접실에서 박정희 대통령 주재하에 회의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수출진흥 확대회의로 개칭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순수 민간사업도 하나하나 계획대로 준공되어야만 나라 전체의 경제개발이 이루어진다면서 각 부처는 민간사업일지라도 이것을 준 국가사업으로 간주해서 총력을 기울여 지원하라고 독려했다. 정부의 직?간접 지불보증하에 외국차관을 도입한 사업의 부실은 국민 부담으로 직결되며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우리나라 신용도를 손상시켜 추후의 차관도입에 지장을 준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자 축소 조정되었던 당초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원래 경제성장률 7.1%로 계획하였던 것을 5%로 하향 조정하였지만 결과적으로 8.5%라는 실적을 올려 목표를 초과 달성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수출은 두 배 가까운 실적을 올렸다.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마무리 된 66년 말 수출은 2억5천만 달러를 달성하고 연말 외환보유액도 2억4천만 달러에 달했다.이러한 1차 연도 계획의 성공에 힘입어 2차 5개년 계획에 석유화학공업과 종합제철이 핵심적 사업으로 결정되었으며 1973년 중화학공업 선언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수출은 64년부터 92년까지 연평균 26.3%가 증가, 같은 기간 중 대만의 20.9%보다 높은 증가세를 유지해 왔다.한창 수출주도 정책을 펼쳐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박대통령은 수행원들과 공장을 순시하러 나갔다. 10대 소녀가 대통령이 옆에 와 있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박대통령이 갑자기 그 소녀의 손을 덥썩 잡으며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소녀는 너무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재차 소원이 뭐냐고 묻자 그 소녀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또래 아이들처럼 교복 한번 입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산업체 부설학교를 지어 어떤 학교와도 구별되지 않는 졸업장을 주라고 엄명했다. 교육부에서는 야간에 체육도 못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했다가 대통령으로부터 재차 엄명을 받고 학교를 설립, 소녀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었다. 60년대를 흔히 여자들이 꾸려나간 시대라고 말한다. 지금은 중년부인이 되었을 당시 공장에서 일한 소녀들에서부터 최고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수출증대에 불탔던 시대. 그때가 있었기에 오늘의 발판이 공고히 마련된 것이다.이러한 정책 이행을 통해 국민의 정치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던 그는 1967년 7월 제6대 대통령 재선에 이어 1969년 10월 17일 '3선개헌'을 통한 장기집권을 모색했다. 미국의 주한미군철수론,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의 국론분열(영남·호남 간의 지역감정 격화), 북한의 남침위협, 근대화에 따른 갈등과 모순 증폭 등의 국내문제와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의 변화, 오일 쇼크의 엄청난 충격 등 국내외적인 정치적·경제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3선 개헌에 의해 1971년 7월 제7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침내 1972년 국회 및 정당해산을 발표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 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신헌법을 제정해 제8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이른바 '유신시대'라 불리는 제4공화국이 시작되었다.그는 장기집권의 유신시대에 국민의 의식을 한데 모으기 위해 '새마을운동'이라는 일대 개혁적인 운동을 펼치고자 했다. 1971년에 제창된 새마을운동은 '조국근대화'라는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을 가지고 국민 개개의 생활 향상과 자유로운 성장은 물론 국가의 발전과 중흥을 이룩하려는 사회혁신운동이라고 내세웠다. 새마을운동은 농촌·도시·학교·공장을 불문하고 전국적으로 일어났다.난 박정희 대통령의 절대적인 추종자는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모든 부분에 대해서 잘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도 분명 문제점이 있었다. 이 운동은 민간주도가 아닌 관주도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보다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한 강제성을 띠었기 때문에 부작용도 많이 발생했다.결국 유신시대를 통해 절대빈곤은 해결되었지만 날로 심화되어 가는 상대적 빈부의 격차와 장기집권에 따른 정치적 부작용 및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로 국민의 지지가 약화되자 '긴급조치' 발동으로 정권을 유지해갔다. 그러나 장기집권과 반민주적인 통치를 반대하는 학생·지식인·종교인·정치인의 민주화운동과 고도성장의 경제적인 분배에서 소외당한 근로자·농민·도시빈민의 생존권 요구를 긴급조치로 억압함으로써 국민의 저항에 부딪쳤다. 유신시대 동안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0%라는 기록적인 기록을 보였으나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화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모순과 갈등 속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신시대 초기에는 남북한통일문제를 제기해 남북적십자회담과 남북조절위원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1973년 '6·23선언'이라 불리는 '평화통일외교정책'에 관한 '대통령 특별성명' 등을 발표해 이를 구체화하고자 했으나 북한측의 태도변화와 국내사정으로 말미암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인문/어학| 2008.04.28| 4페이지| 1,500원| 조회(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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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음측정보고서 ppt
    생활 소음 측정소음과 진동실험 목적저희 조에서는 소음측정기로 우리가 생활하는 곳과 주변의 생활 소음, 즉 지하철, 버스, 구내식당, 도서관, PC방, 노래방, 오락실 등등 우리가 평소 생활하고 취미생활을 하고,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공부하는 곳을 집중적으로 소음도(dB)을 측정해서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몇 dB의 소음을 겪고 있는지, 얼마의 소음도(dB)에서 생활하는지를 알아본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주위에서 들을 수 있는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소리를 측정하고 분석해 봄으로써 소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측정 장소(일상생활 소음)목 록 ★지하철 안, 지하철 밖 ★지하철이 지나갈 때 ★버스 저속일 때 ★버스 고속일 때 ★버스 정지 했을 때 ★도서관 1층 열람실 안 ★도서관 1층 열람실 밖 ★도서관 3층 안 ★오락실 ★PC방 ★구내식당(학생회관) ★노래방측 정 값버스 버스 저속일 때 76.5dB 버스 고속일 때 93.1dB 버스 정지 했을 때 64.4dB dB평균 88.4dB지하철 지하철 안 72.6dB 지하철 밖 47.1dB 지하철이 지나갈 때 82.8dB dB평균 78.4dB기타지역 오락실 74.3dB PC방 68.5dB 구내식당(학생회관) 71.8dB 노래방 80.6-92.7dB도서관 도서관 1층 열람실 안 36.3dB 도서관 1층 열람실 밖 ① 사람 많을 때 70.2dB ② 사람 적을 때 55.1dB 도서관 3층 안 34.6dB dB평균 64.3dB소음도(dB) 측정 그래프결 론이번 실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생활 소음에 대한 실험을 하면서 소음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잘 알고 있는 권장하는 실내 소음도는 45dB, 실외 소음도는 65dB입니다.우리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는 노래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만큼 높은 dB이 측정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주 타고 다니는 버스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나와서 귀에 무리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버스와 노래방은 소음에 아주 높게 나와서 우리 귀에 무리를 주게 되므로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가급적이면 주의를 하면서 생활해야 하겠다.지하철은 버스와 비교해서 dB과 dB합이 우리가 생각 했던 것보다 소음이 많이 적게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하철이 지나갈 때는 조금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급적이면 버스보다는 소음이 적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우리의 청력(귀)에 정서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우리가 학교에서 자주 가는 도서관은 아주 낮은 소음 측정값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부를 할 때는 가급적 강의실에 가지 말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하겠습니다. 최종 결론으로 우리 인간의 청력(귀)에 이상을 줄 수 있는 생활 소음 환경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 할 수 있도록 각별히 많은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nameOfApplication=Show}
    자연과학| 2007.12.02| 10페이지| 1,000원| 조회(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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