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Metaphysical Poetry1) 기원형이상학파(metaphysical)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이다. 드라이든은 『풍자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글 』에서 던이 철학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형이상학파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특정한 시적 양식을 나타내는 현재의 이상학파 시로서의 개념은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에서 유래한다. 존슨은 『카울리론(Life of Cowley)』에서 “17세기경에 형이상학파 시인들이라 불리는 일군의 시인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의 기지는 조화 속의 부조화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유사하지 않은 이미지의 결합 내지 외견상 다른 것에서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이 이들의 기지다. 이 시인들은 이러한 기지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가장 이질적인 생각들도 폭력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라고 평하며, 17세기의 한 시파로서 형이상학파 시를 규정하고 있다.존슨의 규정 이래, 형이상학파 시는 유사한 시적양식을 사용한다는 점, 또 엘리자베스 시대의 관습적 표현 방식, 특히, 페트라르칸식 비유(Petrarchan conceit)에 반발해서 시를 쓴다는 점에서 하나의 시파를 형성하는 것으로 여겨진다.2) 시적 특징첫째, 이들의 주된 특징은 기상(metaphysical conceit)이다.형이상학파 시인들은 감정과 정신적 사고 사이의 연결을 추구했다. 시적 이미지는 서로 다른 사물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점에서 생긴다. 사실 비슷하기만 한 사물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점은 놀람의 효과가 없다. 대립과 분열에 흥미를 가졌던 시인들에게는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비유보다는 논리적인 것이 요구되었고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표현이 요구되었다. 또한 심각하고 육중한 문제를 평범하고 가벼운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현대적인 감성이었다. 이것은 바로 형이상학적 시의 기질을 만족시켜주는 형이상학적 기상이었다. 존 던의 「고별사」에서 연인들을 컴퍼스의 두 다리로 비유한 것이 한 가지 보기이다. 완전한 사랑을 표현함에 있어서 여인은 고정된 다리이고 남자는 움직이는 바깥 다리로서, 남자가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것은 컴퍼스의 두 다리의 만남과 같다. 여자가 중심에서 확고부동함은 남자의 여정을 안전하고 완벽하게 끝내게 한다는 논리이다.즉, 기상이란 서로 성질이 전혀 다른 생각이나 사물들을 일치시키는 비유라고 볼 수 있다.둘째, 형식의 화술이다. 시인이 청자에게 긴급한 혹은 열띤 논의 극적 수사학적 형식을 취하여 자신의 견해를 설득하고자 하며, 시인의 연인에게 말을 하거나, 신에게 말하거나 항의하는 매우 돌연하고 사적인 어조로 시작된다.또한 시어가 구어적이다. 이는 논의, 항의 권유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자연히 논리적, 분석적, 혹은 심리학적으로 되기 마련이다. 또 형식에 있어서 그 당시의 유행의 절정에 달했던 소네트와 다른 복잡한 서정시의 시 형식이 그들의 마음에 들었다.셋째, 단어는 그들의 정서의 지적 등가물로 발견하려는 시도 때문에 연상이 짙지 않은 낱말들을 택했다. 즉, 정서를 함축하지 않은 일상적인 용어와 상업, 과학, 신학, 지리 등의 용어들을 사용하였다.넷째, 시적 리듬은 엘리자베스조의 시같이 고전적 유산, 혹은 음악의 필요성에 의해 암시된 그런 것이 아니라 의미의 지배를 받는다.그래서 리듬이 귀에 거슬리거나 거칠게 들리는데 ,현대적 관심에서 보면 그것은 오히려 훨씬 활기차고 발랄하고 극적인 효과를 얻는다. 또한 겉보기와는 달리 조화롭다.다섯째, 흔치 않은 구문을, 즉 압축된 생략적 구문을 쓴다. 이렇게 쓰면 난해성은 더할지 모르나 의미의 탄력과 밀도가 생기고 표현이 집약적이 된다.여섯째, 형이상학 시는 분석적이다. 그 분석은 의식적이고 고의적이다. 분석의 과정에는 형이상학적 기지가 작용한다. 존 던의 「벼룩 The Flea」은 그 좋은 보기이다. 연인들이 피를 빤 벼룩은 세 목숨 his, hers, and flea's을 가심 셈이다. 벼룩을 죽임으로써 세 가지 살인죄를 범한 격이 여인이, 그래도 그녀도 남자도 더 약해진 것이 없다고 하자, 나자가 말하기를, 그러니깐 영자의 정조란 벼룩이 물어 간 피 한 방울 정도에 지나지 않는 역공격함으로써 여인의 재치를 능가한다.여섯째, 모순과 과장의 수법을 즐겨 사용하였다.과장은 여인들에게 지나친 찬사를 보냈던 페트라르크식의 엘리자베스 조의 시풍을 일면 조롱하고 공격한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해학과 강조의 목적도 있었다.일곱 번째, 거친 운율(rough meter)을 사용한다. 운율의 거칠음이 삶의 복잡성과 어울린다는 이유에서 거친 운율을 선호하였다.2. Metaphysical poets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던의 시에 나타나는 지적 복합성과 이미지의 응축을 지지하는 동시대의 영국 시인들을 가리킨다.1) Jone Donne(1573~1631)그는 최초의 런던출신 시인으로 Oxford와 Canbridge에서 교육을 받았고, Lincoln's Inn에서 법률 공부도 한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이었지만 Ann More와 비밀리에 결혼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고생도 많이 하였다. 1615년 그가 영국 교회의 성직자로 임명되기 까지 그의 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초기의 혼란스럽던 생활태도가 사라지고 생의 근본을 심각하게 성찰하는 경건한 자세가 그의 후기 생애를 지배함에 따라서 그의 작품도 세속적 애정시에서 거룩한 종교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의 초기 풍자시와 애정시 들은 바쁜 대도시의 분위기를 가득 담고 있으며, 최고의 걸작이라고 여겨지는 연가나 소네트는 상호 모순되는 태도, 역설, 우발성 등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어 도시생활의 근대적인 모습을 실감나게 한다. 또한 그의 시에는 지성적 정열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데, 생의 기원과 종말에 왕성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는 인생을 새로운 각도에서 예리하고도 냉철하게 관찰하였고, 그것을 새로운 기교로 표현하였다. 그는 인습적인 시의 주제에 대해 식상해했고,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시의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Donne의 형이상학 시는 철학적인 사상을 포함하며, 감정의 충동을 영탄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지성으로 통제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생활 경험, 과학, 종교, 철학 등)으로 시를 전개시켰다. 논리적인 복잡성, 역설, 당시 지나친 이상주의에 대한 풍자도 그의 시의 특징이다.그는 초기에 "Elegy"라는 명칭으로 애정시 20편과 “Songs and Sonnets"라는 명칭으로 50여 편의 시를 쓴 것을 비롯하여 경구시 20편, 풍자시 5편, 서간시 30여 편, 애도시 10여 편, 종교시 30여 편을 남겼다. 또한 그는 산문 활동도 많이 하였고, 당시의 가장 유명한 설교가로서 기운차고 극적이고 감동적인 설교를 많이 남기기도 하였다.그의 시는 구어체 리듬을 채택하고 되도록 자연스러운 용어를 애용하고 당시의 관심을 끌던 신학문의 술어를 과감히 도입하였다. 또한 그는 리듬의 법칙까지 깨뜨리기도 하였고 시의 극적 상황에 따라 어조도 자연스럽게 바꾸었다.그는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심상을 이용하여 정열에 넘치는 진지함을 드러내기도 하였다.열정 속에서 결합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는 지성과 관능은 종교시에도 나타나 있다. 그러나 종교시에서는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모순 때문에 정열은 더욱 숭고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애정시와 마찬가지로 종교시에서도 적극성을 띤 Conceit를 사용하여 서로 분리되는 것들을 규합시키고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것들을 조화시키고, 구체적인 심상을 가지고 추상적인 논리를 전개하며 실질적 사실을 철학적 인유와 추론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것을 보고 Dryden은 Donne이 “형이상학을 즐겨 사용한다.”고 평가하였다.2) George Herbert(1593~16633)그는 명문가 출신으로, 훌륭한 가문과 뛰어난 재능으로 말미암아 세속적 출세의 길이 약속 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랜 갈등 끝에 결국 영국 교회의 성직을 수락하였다. 세속적인 출세욕과 소명의식 사이의 갈등과 고민이 긴장감을 조성하며 그의 시에 뚜렷이 그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유일한 시집인 『The Temple』은 사후에 출판되었는데, 여기에는 160여 편의 시가 들어있다. 여기에는 외적, 물리적 성전과 내적 성전인 인간의 마음과의 비유적 관계가 여러 시의 기초가 되어 있다. 또한 그는 자기의 다양한 종교적 체험을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형을 개발하고 실험해 보았다. 그의 문체는 매우 명확하고 투명하고 소박하며 단순하다. 일상용어와 가정 생활의 심상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여서 깊이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시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오한 종교적 신앙 체험이 수반되어야 한다.
현행 한국대통령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Ⅰ.서론한국은 현대정치 반세기 동안 권력구조를 놓고 늘 불안한 대통령중심제를 시행해왔다. 정권 초기에는 대통령제를 시행하다가 정권 말기로 가면서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역대 최고 집권층으로부터 언제나 표출되어 왔다. 그러나 논의의 시점이 정권 말기여서 정권마다 그러했듯이 공방을 벌이다 논쟁으로 끝나버렸다. 또한 반세기 남짓 짧은 헌정사에 두 차례의 학생?시민봉기(60년 4.19혁명?87년 6.10항쟁)와 세 차례의 쿠데타(61년 5.16혁명?72년 10월유신?79년 12.12사건), 그리고 9차례의 개헌을 통해 지금의 5년 단임 직선 대통령제에 이르렀다. 그러기까지 내각제 하의 윤보선 대통령을 포함해 8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통령중심제가 안정된 정착을 하지 못하고 불안한 권력구조를 유지하고 있다.이에 대해 현재에도 한국의 대통령제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오고 있다. 이러한 비판과 관련하여 현행 한국 대통령중심제의 특성과 직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점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개선방안으로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이 현행 대통령제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제하에서 원활한 국정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당, 선거, 의회, 정치자금제도 등 중위 수준의 정치제도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보다 더 현실적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현행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특성과 문제점(1)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특성우리나라의 정부형태는 주로 대통령제의 모델을 기초로 의원내각제의 요소를 가미한 ‘변형된 대통령제’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한국 정부형태의 원형은 바로 건국헌법으로부터 주조되었다. 건국헌법 제정 당시 헌법초안을 만들기 위해 구성된 헌법초안위원회 유진오 원안과 권승렬 참고안을 중심으로 토의를 진행했는데, 이 두 가지 안은 양원제 국회, 의원내각제 정부형태와 위헌법률의 소를 가미한 변형된 대통령제가 유지되어 온 것이다. 제3공화국의 헌법 역시 대통령제의 원형에 가장 근접한 정부형태를 취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이 역시 정부의 법률안제출권, 국무총리제에 의한 행정부의 이원적 구조, 국무총리?국무위원의 국회의원 겸직, 국무총리?국무위원에 대한 국회의 해임건의권 등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중심의 절충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현행헌법상 정부형태 역시 ‘변형된 대통령제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행헌법은 대통령의 비상조치권, 국회해산권 등을 폐지하고 대통령직선제를 도입함으로써 이른바 ‘제5공화국’ 헌법의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대폭 정리하였으나 정부의 법률안제출권, 국무총리제에 의한 행정부의 이원적 구조, 국무위원의 국회의원 겸직, 국무총리, 국무위원에 대한 국회의 개별적 해임건의권 등 의원내각제적 요소들을 여전히 유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2)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문제점최근의 정부형태 논의는 주로 대통령에의 과도한 권력집중과 효과적인 견제, 균형장치의 결여, 그에 따른 국회의 위상 및 기능의 상대적 저하, 대통령에의 권력집중에 따른 부정부패의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전개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대통령제의 문제점 중 주로 대통령에 대한 권력집중의 폐단을 구성하는 문제점들이 논의의 초점이 되고 있으며, 따라서 정부형태를 어떻게 개선해야 그러한 문제점들을 회피, 방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주된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첫째, 우리나라의 대통령제가 지닌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것이 대통령에의 과도한 권력집중을 초래했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됨으로써 자칫 대의제적 민주주의의 원리를 위협할 정도에 이른 헌법현실에서 진자가 권력의 남용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제는 대부분 국가건설의 목적에 의해 정당화된 권력통합적인 구조와 연관되어 대통령의 우월적 지위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화되었고 또 운영되어 왔기 때문이다.둘째, 대통령제는 정당의 견제와 균형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이 되고 말았다. 정당제도와 정당구조 역시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창출하는 정부형태의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셋째,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에의 과도한 권력집중을 통하여 국회의 위상과 기능을 현저히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이는 무엇보다도 국회에 대통령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 균형장치가 부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요인들의 직접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효과적인 견제, 균형장치가 마련되어 있을지라도 이를 행사해야 할 국회가 대통령에 의해 사실상 지배된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의 장’이 되어야 할 국회가 대통령에 의해 사전에 결정된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다수당과 소수의 정당 보스들에 의해 지배되는 야당들이 만나는 '대리정치의 부서‘로 전락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대통령제가 초래한 가장 심각한 폐단이라 할 수 있다.넷째,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불일치할 경우 ‘분점 정부’나 분열 정부, 또는 ‘여소야대’하에 따른 정국의 교착 가능성이나, ‘실패한 대통령’의 출현 가능성,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의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 대통령 교체 시 정책의 계속성 상실과 정치적 책임을 묻는 정치적 제도 취약 등과 같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 되고 있다. 특히 ‘여소야대’에 따른 정국교착이나 ‘분점 정부’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감행된 3당 합당이나 제 15대 국회 초반 신한국당에 의한 야권 및 무소속 당선자영입 등과 같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의회다수를 창출하려고 시도했던 데서 초래된 심각한 정치적 폐단 등은 그 같은 대통령제의 중대한 결함이 현실화된 사례들이다. 또한 분점정부에 따른 정국의 교착이나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의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 등은 대통령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발생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의 단임제로 인하여 더욱 악화된 형태로 나타났던 문제라 할 수 있국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바로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 조정하는 데 상징적 권위체로서의 국가원가 존재할 필요가 있다. 이때 국가원수로서는 현대적 개념의 왕이나 국부와 같은 국민적 숭앙을 받는 전직 대통령이 적절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굳이 왕이나 국부와 같은 대통령이 아니라도 국민들의 추앙을 한 몸에 받는 위인의 존재로서도 거중조정자 역할을 해낼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에는 현재 상징적 권위체로서 거중조정의 역할을 할 현대적 개념의 왕제도가 없고, 국민적 추앙을 받는 전직 대통령이나 위인도 없는 실정이다. 설사 대통령제 하에서도 대통령이 의회?언론?국민들과 심각한 갈등 관계에 있거나, 국가안위나 존망에 관한 사항은 전직대통령들이 경험적 훈수를 하는 등 조정자의 역할을 하면 안정된 국정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2004년도는 대통령탄핵문제?행정수도이전문제?국가보안법개폐문제?과거사진상문제 등으로 온 국민의 의사가 분출되고 불안해하는데도 생존의 전직대통령은 비리 연루 때문인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둘째, 의원내각제는 본질적으로 권력분산과 분산된 권력 간 균형 및 견제를 존립기반으로 한다.한국의 경우 수천년간 절대 권력의 1인 왕조세습체제 하에서 생활해 오다 일본의 강점 끝에 왕조체제가 무너지기는 했으나, 권력분산을 위한 자발적 해체는 아니었다. 따라서 권력분산이 현대적 개념의 민주주의는 싹을 틔울 여지가 없었다. 48년 이후의 현대정치에 와서도 헌법상 제도적?형식적 권력분산은 채택했지만, 실제의 권력구조는 대통령 1인에 권력이 집중되는 신대통령제였다. 그 이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상대적 차이는 있다고 하지만 권력집중화현상은 여전하고, 그로 인한 정책오류나 정경유착, 부패의 구조적 관행성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 바로 이러한 대통령제의 권력집중화 현상이 낳은 폐해 때문에 한국에서는 의원내각제가 적실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제의 폐지론과 의원내각제로의 전환론이 논쟁거리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셋째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공무원은 고위공직자일수록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없다.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제 하에서도 임기 말과 임기 초에 고위공직자 대다수가 스스로의 신분에 불안을 느끼거나, 출세를 위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자에게 정부의 기밀을 빼돌리고 줄을 대거나, 복지부동으로 업무가 마비되다시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정경유착과 부패의 고리가 구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만약 정권교체가 잦은 의원내각제 하에서 이러한 일이 벌여진다면 정국은 극도로 혼란해질 뿐 아니라, 일관성 없는 정책추진으로 인해 국민적 손실이 엄청나게 발생하게 되고, 민심은 극도로 나빠져 산출실패와 지지쇠퇴가 동시에 상승작용할 가능성이 높다.요컨대, 권력구조로서의 의원내각제가 성숙하는데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정당정치발달?지방자치발달?국정조정자의 존재?직원공무원제 확립 등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의원내각제로의 변화는 아직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2) 이원집정부제로의 변화 가능성의원내각제가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이원집정부제를 또 다른 대안으로 검토해 볼 수 있다.한국의 정부형태를 이원집정부제로 변화시키려면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서 첫째,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국무총리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 둘째,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도입방안, 셋째, 대통령제형 이원집정부제 도입방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의 방안은 책임총리제를 말하는 바, 선진민주국가는 몰라도, 후진형 정치를 하는 한국에서는 이원집정부제의 본질인 총리의 대통령견제기능이 불가하기 때문에 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와 셋째방안은 헌법개정을 해야만 가능하다. 어느 유형을 선택하든 여소야대인 현 정국 하에서는 이원집정부제 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원집정부제로의 권력구조 변화를 제의하는 측은 여야를 통틀어 일부세력에 불과하다. 한때 국회 내에서도 상당한 관심이 있었던 이원집정부제가 현재로서는 4년중임의 대통령제로 선회한 셈이다. 더욱이 지난 민선 4기 지방선거(2006.05.31)에서 사상 유례없는 집권당의 참패와 그 패인의
1. 각색이란 무엇인가?문학텍스트와 영화 텍스트 사이의 가장 일반적이며 빈번한 상호교류를 우리는 '각색(adaptation)'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각색이란 무엇인가?각색이란 시, 희곡, 소설 등 활자로 이루어진 문학작품이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되어 영상화되는 것을 지칭한다. 현대의 영화비평가들 사이에서 논의되는 가장 두드러진 이슈들 중의 하나는 바로 이 각색에 관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데 사실 문학작품을 이용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은 거의 영화라는 매체가 지니는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각색에 관한 이러한 비평적 관심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이미 1897년도에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는 기독교 성서를 내러티브의 소재로 삼아 13개의 장면들로 이루어진 초기 각색영화를 선보였으며 1910년대에 이르러서는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고전적 영미소설들을 적극적으로 영화로 각색하기 시작하였다. 이 무성영화 시기의 대표적 각색영화로는 (Robinson crusoe,1902), (Gulliver's Travels,1902), (Uncle Tom's Cabin,1902), (Frankenstein, 1905) 등이 있다. 소설과 영화 두 매체 사이의 교류는 여전히 활발히 이어져서 오늘날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영화의 거의 절반 이상이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나 희곡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 장르로부터 각색된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소설은 특히 영화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내러티브의 원천이 되어 왔었는데 비평가 패트리샤 홀트(Patricia Holt)의 조사에 의하면 영화의 평균 30%정도가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된 작품이며 베스트셀러 명단에 오른 소설은 거의 80% 정도가 각색되어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어진다고 한다. 영화산업에 있어서 소설은 참으로 막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왜 이토록 많은 영화제작자들이 소설 속의 이미지, 장면, 관념, 내러티브 등을 기반으로 영화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반부터 본격화된 소설의 각색을 통하여 영화는 노동자를 위한 오락적 문화양태로서만 인석되던 보잘것 없던 지위에서 문학적 내러티브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존경받을 만한 예술작품으로서의 지위로 향상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실용적, 문화적인 필요성 이외에도 뛰어나다고 인정받은 어떠한 고전적 소설작품이나 당대의 화제작을 시각적 매체로 재창조하고 싶은 감독이나 제작자의 미학적 욕망도 그 기저에 깔려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소설로부터 각색된 영화의 정확한 평가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원작소설을 직접 읽었거나 그 원작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당연히 각색된 영화와의 유사성이나 차이점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서로 상반되는 극단의 영화평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한 영화를 두고 어떤 비평가들은 이 시대 최고의 각색영화라는 호평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비평가들은 형편없는 원작의 훼손이라는 질타를 가하기도 한다. 각색영회에 대한 이러한 종잡을 수 없는 평가의 차이는 비평가 개개인이 가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성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비평가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이론적 패러다임에 의지하여 각 영상작품을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개별적 영화이론가들이 제시하는 각색의 종류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각 이론가마다 각색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서로 유사하게 겹치는 부분도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들 비평가들은 모두 원작에 대한 충실성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유일한 각색영화의 평가기준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론 정도로 바라보고 있다.▶ 지프리 와그너 (Geoffrey Wagner)지프리 와그너는 ≪소설과 시네마≫(The Novel and the cinema, 1975)라는 유명한 저서에서 각색의 세 가지 범주를 "전환", "논평", 그리고 "유사" 등으로 나누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전환(transposition)이란 "눈에 있다(226).▶ 마이클 클라인(Michael Klein)과 길리안 파커(Gilian Parker)≪영국소설과 영화≫(The English Novel and the Movies, 1981))라는 책에서 마이클 클라인과 길리안 파커 두 비평가가 주장하고 있는 소설에서 영화로 옮겨지는 각색과정에 대한 세 가지 주요 접근법으로는 "원작 그대로의 각색"(literal adaptation), "비판적 각색"((critical adaptation), 그리고 "자유 각색"(free adaptation) 등이 있다. 클라인과 파커가 "원작 그대로의 각색"의 예로 든 영화로는 주로 영국의 정전화된 고전소설을 동명의 제목을 그대로 유지하며 시각적인 영상언어로 재연한 (Tom Jones, 1963), (Pride and Prejudice, 1940)등을 들 수 있다.두 번째 종류의 각색은 "비판적 각색"으로 원작소설의 핵심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나름대로 유지하면서도 원작 텍스트에 대한 독창적인 재해석이나 해체적 전복을 시도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러한 각색은 주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기존의 문학적 소재를 새롭게 접근하는 작가주의 감독들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것으로 스페인 태생의 감독 루이스 부누엘(Luis Bunuel)이 각색한 다니엘 디포(Daniel Defoe) 원작의 (Robinson Crusoe, 1954)등의 작품이 있다.세 번째, "자유 각색"은 원작소설의 충실한 재연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원작을 기본 소재로만 이용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데에 집중하는 각색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19세기 말에 발표된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고딕소설 『드라큘라』(Dracula, 1897)를 원작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각색한 워너 허조그(Warner Gerzog)감독의 1979년도 영화 (Nosferato the Vampyre)등이 있다.▶ 더들리 앤드류(Dudley Andrew)저명한 영화이론가 더들리 앤드류는 그의 1984년 저서 『영화이론의 개념들』(Con를 말한다. 변형(transformation)은 “각색에 관한 논의 중 가장 흔하고도 지루한 것”으로 “각색이 해야 할 일은 원작에 관한 어떤 본질적인 것을 영화 속에 재생산하는 것”을 주장하는 이론으로 원작의 충실한 재연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루이스 자네티(Louis Gianetti)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영문과 교수이며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영화이론가 루이스 자네티는 그의 『영화의 이해』(Understanding Movies, 2002;제9판)라는 포괄적 입문서에서 원작소설에 대한 충실도를 기준으로 세 가지 종류의 각색을 제시하고 있다(406-09). 첫 번째는 “느슨한 각색”(the Loose adaptation)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문학 텍스트로부터 단지 어떠한 아이디어나 상황 또는 등장인물을 선택한 후에 그 다음부터는 원작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영화를 진행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충실한 각색”(the Faithful adaptation)으로, 최대한 원작의 정신에 가깝게 문학작품을 영상적 시각에서 재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로는 “원작 그대로의 각색”(the Literal adaptation)이 있는데 이것은 보통 오리지널 연극 작품을 각색하는 경우에만 한정된다고 할 수 있다. 주로 무대 위의 등장인물의 행위와 대사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내는 각색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이처럼 롱 쇼트로 카메라를 객석에 고정시킨 채 실연중인 연극을 찍는 방법은 초기 무성영화 시대부터 많이 쓰였던 방법이기도 하다.2. 각색의 세 가지 패러다임(1) 충실한 각색(the Faithful Adaptation)문학 작품이 영상으로 각색된 영화를 보고 난 후 발생하는 가장 흔하고도 무의식적인 반응은 “영화가 원작과는 사뭇 다르다” 혹은 “원작보다 여러 면에서 못하다”며 아쉬워하는 것일 것이다.가장 일반적이며 가장 오래된 각색영화 평가기준은 “충실성 담론”(the discourse of fidelity)으로부터 나온수많은 “단순화”(simplification)와 “생략”(omission)을 어쩔 수 없이 동반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로 각색되면 거의 예외 없이 원작 속의 여러 장면이나 사건들이 제외되기도 하고, 복잡한 성격의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평면화되거나 어떤 경우 완전히 배제되기도 하며, 복잡한 플롯은 종종 기본 뼈대만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충실성 패러다임에 입각한 비평가들은 영화가 원작소설의 내용과 주제를 충실히 살려주기를 기대한다. 만일 어떤 영화가 원작의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을 상당히 많이 다르게 바꾸어 놓았다면 이 각색은 충실성 비평가들에 의해 아주 형편없는 것으로 평가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만일 원작소설에서 구현된 주인공의 심리적으로 복잡한 성격이나 행동, 그리고 동기 등이 단순화되고 멜로드라마틱해져서 영화가 3차원적인 인물창조에 실패한다면 이 각색은 원작에 대한 ‘배신’ 또는 ‘기만’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따라서 충실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각색의 목적은 문학 텍스트가 제시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영상으로 그대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사실 충실도를 유일한 평가기준으로 삼는 비평가들은 영화적 표현기법이나 시각적 요소들엔 별로 관심이 없다. 이들은 활자로 구성된 문학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된 영상 텍스트 사이의 “차이점”보다는 “유사점”들을 중요시 여기며 문학 텍스트는 영상이라는 이질적인 매체로도 충실하게 표현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오늘날 충실도 진영을 비판하는 일단의 비평가들은 이러한 두 매체 사이의 기호적 일대일 대응관계를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이론에 기초한 상상일 뿐이며 오로지 충실도의 기준에 따라서만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편협하며 바람직한 접근법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2) 다원적 각색(the Pluralist Adaptation)허만 멜빌의 『빌리 버드』(Billy Budd)의 1962년도 각색을 맡았던 드윗 보딘(DeWitt Bodeen)은 “각색의 예술”(“The Adapting Art”)긴다.
1.뇌와 성욕뇌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여러 가지 신경 전달 물질들이 오케스트라를 이루어 성욕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인간의 대뇌는 100억 개 가량의 신경 세포로 이어져 있는데, 하나의 신경세포는 약 1000개 내지 2만 개까지의 돌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만큼의 수많은 신경 세포와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이러한 신경 세포들끼리 서로 정보를 전달해 주고 전달을 받는 장소인 수용체에 붙어서 중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신경 전달 물질이다. 성욕과 관련이 깊은 신경 전달 물질은 세 가지로, 도파민(Dopamine)과 세로토닌(Serotonin) 그리고 보통 약자로 ‘가바(GABA)’라 부르는 감마아미노낙산이다. 간뇌에 있는 시상하부 중에서도 전내측의 시신경 교차 전방이라고 알려졌다. 동물 실험에서 이곳을 파괴시키면 성적인 행동이 없어져버린다. 또 신경 전달 물질 대신 이 부위의 수용체에 작용하는 화학 물질인 강화제를 주면 성적인 행동이 증가하고, 반대로 수용체의 기능을 막아버리는 화학 물질인 길항제를 주면 성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게 된다. 인간의 성욕을 관장하는 부위도 동물과 마찬가지다. 특히 사람한테서 볼 수 있는 성욕의 중추는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쯤 커져 있다. 그래서 아마 성 범죄가 남성한테서 더 흔한가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바로 이 시상하핵들의 크기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노인들의 성욕이 감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셈이다.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고 있는 약물 가운데 성적인 관심을 낮춰주는 약물들이 있다. 그런 약물로는 고혈압 치료제가 큰 문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대개 많은 양을 사용해야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밖에 정신과에서 흔히 사용하는 간질약이라든가 우울증 치료약들이 그런 작용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항우울제는 쓸 수도 안 쓸 수도 없다. 우울증 그 자체로 이미 성욕이 감퇴해버리기 때문에, 어떤 때는 오히려 항우울제로 우울증을 치료함으로써 성욕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성욕을 유지하려면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라는 남성 호르몬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특히 이 호르몬은 에로틱한 환상을 일으키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발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여성에게도 이 호르몬이 있긴 있지만 남성에 비해 약 7-10%에 불과하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젊은 나이에 자궁절제술을 받고서 폐경이 돼버린 부인한테는 이 남성 호르몬이 성욕을 증진시켜줄 수 있다. 이처럼 성욕이란 뇌의 기능이라든지 남성 호르몬과 직접적인 상관이 있다.2. 식욕과성욕일찍이 공자님은 ‘식색성야(食色性也)’라 하면서, 식욕과 성욕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두 욕망이라고 설파했다. 맞는 말이다.이 기본적인 두 욕망은 인간사회가 발전하고, 문명이 진화하면서 각기 다른 길을 걸었는데,식욕은 문명의 발전과 발맞춰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 잡아 가는 반면에, 성욕은 문명이 발전할수록 음지로 숨어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음지로 들어가 발전한 것이 바로 포르노였던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성은 점점 음지로 간다며, 인류문명 초기의 섹스는 상당히 자유스러웠다며 설파한다. 그러면 이 식욕과 성욕은 각각 별개의 욕망으로 봐야 할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공자님이 설파하신 그대로 이 두 가지 욕망은 같은 본능이며, 바로 옆에 이웃하고 있는 욕망이다. 인간이란 동물은 모든 자극과 욕망의 발생을 뇌에서 관장하고 뇌에서 느낀다. 성욕을 느끼는 뇌가 시삭전야, 만복감을 느끼는 뇌가 바로 섭취중추이다. 이 두 개의 뇌는 내측전뇌속이라는 굵은 신경다발이 꿰뚫고 지나가는데, 이 신경다발 속에 ‘A10’이라는 쾌락신경이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웃간이라는 소리다.또한 뇌에는 ‘섹스를 하는 뇌’와 ‘섭취하는 뇌’가 있다.. 이를 각각 배내측핵과 복내측핵(이게 바로 만복중추이다)이라 부른다. 이것들이 바로 우리가 섹스를 할 때나, 밥을 먹을 때 기능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들은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하다는 것이다. 양자간의 거리가 1㎜라니 붙어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공자님이 식색성야(食色性也)를 말씀하시며, 두 가지 욕망이 기본이라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 두가지 욕망은 두개의 욕망이자, 하나의 욕망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남자들의 고전적인 여자 유혹 방법 중의 하나가 모든 동물이 하는 먹이제공이 아니던가? 좋은 식당을 찾거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여자를 만나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지는 것이 식욕을 통해 성욕을 자극하는 방법의 고전적인 레퍼토리였던 것이다.같은 맥락에서 실연당한 여성이 미친 듯이 먹을 것에 탐닉하는 모습 또한 설명할 수 있는데, 채워지지 않는 성욕을 식욕으로 대체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본인 스스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다.3. 성욕과 수명정상적인 남성의 정소는 하루 1억개 정도의 어마어마한 정자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쌓이면 배출하려는 육체의 욕망, 즉 남성의 성욕은 자연스런 배설 욕구라 할 수 있다. 남성은 대체로 여성보다 자위를 일찍 경험하며, 젊은 남성은 몽정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떨까?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난자를 품고 있으며 사춘기 때부터 갱년기가 될 때까지 약 33년 동안에 400개 정도의 선택된 난자만을 배출한다. 수십만개 중에서 선택된 난자인 만큼 상대를 선택하는 데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한 달에 한 번, 그중에서도 한 개만이 성숙해 배출된다. 남자는 사정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반면 여성은 배란하면서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성욕이 최고조로 높아질 따름이다.여성은 상대와 정신적 일체감을 느낄 때 성욕을 느낀다. 그래서 상대를 좋아하지 않으면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성을 능동적으로 즐기며, 성 그 자체를 즐긴다. 여성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여러 번의 오르가슴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다.육체의 결합이 없었다고 해서 사랑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때로는 관계를 맺지 않는 남녀 사이에서 불타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으며, 평생을 성관계를 하며 산 부부 간에도 미움과 증오가 깊게 뿌리내린 경우를 볼 수 있다. 비밀은 뇌에 있다. 뇌하수체 호르몬의 영향으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 영국민은 전통을 존중하고, 변혁을 싫어하는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영국민의 국민성을 한국민과 비교하여 논하시오.1) 국민성이란,한 사회의 성원은 어느 정도 비슷한 공통적인 경험을 하면서 자란다. 따라서 사회 성원의 성격, 즉 인성에는 상당한 정도의 규칙성이 나타나게 된다. 그 사회의 단위를 국가(nation-state)로 잡았을 때 성원들의 인성 구조를 ‘국민성’이라고 한다. 국민성과 비슷한 개념으로 ‘민족성’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언어 ·인종 ·문화 등과 같은 기준에 기초하여 다른 집단과 뚜렷이 구분되는 ‘민족’을 단위로 한다는 점에서 국민성과 대별된다. 다만, 한국과 같이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에는 민족성과 국민성이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다. 한 나라 사람들의 성격을 한 두 가지의 특성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대체로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론을 좋아하는 독일인, 직관적이며 매사를 예술적으로 보는 프랑스인, 개척정신이 강하고 실용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미국인, 전통을 존중하고 신분계급의식이 강한 영국인, 질서를 존중하고 집단의식이 강한 일본인 등, 각 나라의 국민성은 이와 같은 고정형의 평가를 벗어나기 어렵다. 비록 한 사회의 성원은 각자 고유의 인성을 가지기도 하지만, 그 사회에서 생활한 결과로 인해 공통의 인성형을 형성하게 된다. 즉, 정치 ·경제 ·군사 ·교육 제도 등과 같은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제도는 비록 사회적 지위와 참여 정도에 따라 달리 나타나기는 하지만, 개개 성원의 정신적인 또는 심리적인 구조에 구현되어 국민성 형성의 기초가 된다.국민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부분은 육아양식이다. 어느 사회나 거의 공통적으로 따르고 있는 고유의 육아양식이 있다는 점과 함께, 그것이 어린이들의 성격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또한 이 시기에 형성된 기본적인 태도들은 개인의 전 생애를 통해서 지속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이를 요약하면, 국민성이란 한 국가의 성원에게 공통되는 인성(Personality) 및 행동양식을 말한다.2) 영국의 국민성지리적으로 영국은 유럽의 서북방에 있다. 북위 50도와 60도 사이이므로 만주 지방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매우 온난한 기후로써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법이 드물고 한 여름에도 겨울만큼 추울 때가 있다. 폭우가 내리거나 폭풍이 불어 닥치는 일도 드물다. 다만 일광량도 적은 편이고 겨울에는 햇빛 보는 일이 적어 늘 암울하다. 일년 내내 큰 변화가 없는 기후인가 하면 하루에도 비가 내리다가 개이고 어둠침침한 날씨가 갑자기 화창한 날씨로 바뀐다. 크게 보아 연중 큰 변화가 없는 것이 특색이다. 영국 사람들은 영국의 기후처럼 대체로 온건하고 보수적이고 큰 변화를 싫어한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자료를 다각적으로 수집하여 결론을 내는 귀납법적인 사고방식이다. 경험을 토대로 하는 현실주의자의 빛깔이 짙은 국민성이다.영국인들은 형이상학적인 이론에 입각한 급속한 변화를 꺼리고 하물며 혁명 같은 것은 질색이다. 도버 해협 건너 프랑스에는 1789년 피비도의 변혁을 촉진하였다. 영국 사람들은 루소나 보들레르의 계몽사상이나 근대적 민주주의에 호의적이었으나 거기에 쉽게 부화뇌동하려 들지 않았다. 혁명은 아무리 순수한 동기 옳은 목적일지라도 현실적으로는 사람을 대량으로 살상하고 재산을 파괴하는 속성을 뛸 수밖에 없다. 영국인들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점진적으로 방향을 돌렸다. 보수적 기질이 지켜 온 지혜였다. 아직은 군왕제가 건재하고 여왕이 국민적 관심의 초점이며 귀족, 지주가 행세하면서도 그러나 세게 어느 나라보다도 노동조합이 기승을 부리고 근로 계급의 정당이 국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다. 얼른 보기에는 모순 덩어리지만 옛 것을 고수하는 가운데 새로운 것을 찾는 '온고지신'의 미덕을 더 소중히 여긴다. 영국의 웬만한 도시에 있는 정교하고 우람한 교회 건물이 대부분 중세에 세워진 것이지만 부분적으로는 보수하면서 지금까지 잘 보존되며 웬만한 중소도시에 가도 골동품 가게가 널려 있다. 영주 귀족들이 살던 수백의 대저택은 예외 없이 곧 미술관이요, 박물관이다. 역시 옛 것을 좋아하는 경험주의적인 국민성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보수적인 심리, 그리고 '온고지신'하는 성격 등과 연결되는 것이지만 질서 의식이 강한 국민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법치주의'는 다분히 앵글로색슨족이 발전시킨 생활양식이고 통치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법과 규범의 우월성이요, 누군가 힘센 사람이 나서 자의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신념이요, 사람은 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으나 법 아닌 어떤 결정으로도 처벌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고 법은 그 자체가 다수 의사의 집약이어야 한다는 관념이 강하다. 그 대신, 정치제도, 정부의 권위, 그리고 법에 대한 국민적 복종심이 철저하다. "법은 대체로 경우 바른(sensible)것이고 법은 공정하게 집행되고 법은 우리가 선거한 대표들이 만든 것, 그러니까 법을 지켜야 한다"는 준법정신이 투철하다. 물론, 국왕을 정점으로 그러나 국민이 뽑는 대표들이 움직이는 정부 제도에 대한 신뢰가 굳건하다. 영국인들은 경찰관에 대한 신뢰도가 압도적이고, 그들의 지시에 반항하는 일이 있을 수 없으며, 곧 그것은 정부의 권위에 대한 복종을 뜻한다.영국인의 보수성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영국인들의 자제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인내하고 자제하는 법을 배우며 이러한 태도를 익힘으로써 매사에 냉정을 기하고 흥분된 상황에서도 침착을 잃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다. 아무리 화가 나고 즐겁고 하더라도 적어도 밖으로 나타내서는 안 되는 능력을 기른다.마지막으로 영국의 국민성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신사도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신사의 개념도 많이 바뀌었다. 고전적인 의미의 신사는 지주 출신과 귀족 계급에 한정되었으나 지금은 고급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목사, 교수, 변호사, 의사, 편집인, 사립학교 교사 등으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이들은 물질적인 소득에만 전념하지 않고 공공이익에 헌신하는 계층이다. 신사가 갖추어야 할 덕성은 행동과, 감정과, 말의 자제심, 정직성에 입각한 신의와 결백성, 페어 플레이 정신의 공명정대함, 예의범절, 세련된 태도 등이다. 이러한 신사도는 비록 신사 계급에 드는 사람들만이 지녀야 하는 덕이 아니라 신사도를 중히 여기는 일반 영국인의 특성이기도 하다.2) 한국의 국민성옛날 우리나라의 대표적 국민성은 먼저 우리나라의 지리적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한반도는끊임없는 외적의 침략(중국, 몽고 등)과 왜구의 약탈 등에 시달려야 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끝없는 외침과 전란 속에서 살아 남아야 했던 우리는 전쟁을 생활처럼 했으니 성격이 극단적이고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국민성은 대표적으로 조선 시대로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충(忠)이 중시되는 유교적 사회였다. 유교적으로 살다보니 자연 삼강오륜이 중요시 되었다.三 綱(삼강)君 爲 臣 綱(군 위 신 강) 임금은 신하의 근본이 되고父 爲 子 綱(부 위 자 강) 아버지는 아들의 근본이 되며夫 爲 婦 綱(부 위 부 강) 남편은 아내의 근본이 된다.五 倫(오륜)父 子 有 親(부 자 유 친) 아버지와 아들사이는 친함이 있어야 하고君 臣 有 義(군 신 유 의) 임금과 신하 사이는 의리가 있어야 하고夫 婦 有 別(부 부 유 별) 남편과 아내 사이는 분별이 있어야 하고長 幼 有 序(장 유 유 서) 어른과 어린이 사이는 차례가 있어야 하고朋 友 有 信(붕 우 유 신) 벗과 벗 사이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즉 옛날사람들의 대표적 국민성은 충(忠)이라고 정리할 수 있으며 외적의 침략을 받는 동안 지켜온 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도 역시 충(忠)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을 고르게 갖는 것이 옳다고 여기고 외국과의 저항 속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과격하고 극단적인 국민성과 뿌리를 지키기 위해 변형과 왜곡을 거부하는 정통주의도 충(忠)에서 읽어낼 수 있다.근대 우리나라의 국민성은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예로 음식을 들 수 있다. 한국인은 본디 맵게 먹는 민족이 아니었으나 임진왜란(1592)때 고추가 들어옴으로써 300년 동안 맵게 먹어 오다가 세계에서 가장 맵게 먹는 민족이 되었다. 또한 종교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에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은 해방 후 미국이 진주하면서부터 인데 30년 정도 만에 한국의 지배적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고, 30년 만에 전 국민의 35%가 기독교화한 사례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또한 1960년대 이후로 급성장한 경제를 보면 1953년 단돈 67달러에서 1995년 국민 소득 1만 달러로 뛰어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교육열도 세계 제일이라고 할 정도로 학원 열풍과 명문대 진학 경쟁이 치열하다.하루하루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야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 분위기는 조급한 성격으로 변했고, 작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노리는 조급증은 우리나라에 대형 사고를 잇달아 발생하게 했으며 우리나라를 '인재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게 하였다. 또한 이러한 조급한 성격은 냄비근성으로까지 이어진다.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성격이 늘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보다는 임시방편의 미봉책으로 대충 마무리하여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저지르는 문제가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