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사회, 엄기호내 마음대로 평: 책을 덮으면?내 '곁'에는 누가 있을까, 혹시 모두 내 '편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책을 펴내며'에서부터 이끌린 책이다. '편'을 강요하고 '곁'을 밀치는 사회라는 머리말은 과연 현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문장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갑론을박 따질 때, 정작 곁에 있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혹시 모든 사람들이 어느 편(정치적인)인지를 묻고 있지는 않는지.?머리말에서는 밀양송전탑 문제에 대해 말한다. 누가 곁에 있으면서 글을(칼럼) 썼는지 묻는다. 나는 세월호가 떠올랐다. 책이 출판되고 한 달후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2년 9개월이 지난 지금, 세월호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빨갱이가 되어버렸다. 에서도 지적했 듯, '곁'에 머무르려 하지 않고 '편'이 되어버리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듯 하다.과연 대한민국은 다. 공론화라는 말은 새삼스럽다. 억압과 폭로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자기검열하거나 침묵, 또는 앞장서는 사람에게 '좋아요'만 누를 뿐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글의 제목이?'오늘만 사는 사람'이란 것은 이를 반증하는 듯 하다. 이는 정치적인 공동체, 즉 공론화의 장이 대한민국에 사라졌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있었던 것인지 의문스럽다. 공론화의 장이 무너졌다는 것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데에 문제점이 있다.신자유주의의 정치 체계의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경제 논리로 돌아가다보니 나와 타자는 경쟁적 관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관계는 결국 '타자화'된다. 친구가 없다. 오로지 자신의 오롯한 공간에서만 '좋아요'를 외친다. 소통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정작 소통하고 있지 않다. 밤마다 카톡 목록만 확인할 뿐이다. 카톡이라도 오면 자신의 외로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목록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만 보다가 시간이 얼마 지난 후 확인한다. 이것이 소통은 아닐 터이다.이는 가족 공동체 내부도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엄기호 작가는 말한다. 현대의 가족 사회는 기획과 관리의 공동체이다. 아이들의 대학문제, 취직 문제로 언제나 기획되고 관리될 뿐이다. 부모는 부모나름대로 잘 되라고 하는 이유를 붙이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결국 가족의 부모자식간에도 끊임없이 서로에게 접속하지만 또 차단된다. 어쩌면 각자의?유리방 안에 같인 현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얼굴을 맞대고 살이 부딪히는 만남이 아닌, 그저 유리창에 비친 타자를 만날 뿐이다. 끊임없이 타자를 향해있지만 정작 유리방에 갖혀있기에 현대인은 외롭다.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엄기호 작가는 타자와의 만남, 그리고 경청이라고 말한다. 어찌보면 뜬금없는 너무 당연한 말이 아닌가 싶지만, 사실 우리는 그 본질적인 부분을 바라보지 못한다. 우리는 타자와의 만남을 진정으로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우정이라는 말도 어느 때부터인가 오글거리는 말이 되었을 정도로 생소해져버렸다는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우정을 나누지 못하는 데에 기인한다. 만난 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고통에 귀기울이고, 진심으로 '너'가 '내'가 되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나 또한 요즘들어 사회문제에 시선을 돌리고 있는데, 내 스스로도 내 주위가 아닌, 사회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귀기울여본적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과 실천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밖이지만 오늘은 광화문엘 가야겠다.? ??내 마음대로 추천:?관계에 대해, 특히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추천
죽음의수용소에서, 빅터프랭클내 마음대로 평: 삶에 대한 에너지는 사랑이다.인간에게 실존적인 죽음이 현실 앞에 놓여 진다면 과연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까??아이처럼 울며 고통을 단순히 대처하기 싫으니 치워달라고 억지를 부릴까??아님 초연한 태도로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일까??이런 수용과 거부의 태도가 죽음의 상황에서는 유용하기는 할 것일까??이 책은 인간이 극한 상황,?죽음 앞에 놓여있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분석과 올바른 행동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저자는 추상적인 죽음의 상황이 아닌 저자의?2차 세계대전 당시,?특별히 한 수용소에서 있었던 환경 자체가 자기의 생명에 대해 결정권이 없었던 공간에서 자신이 대처한 방법들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인간은 죽음 앞에 마주치게 되었을 때?비정상적인 반응들을 보이고 사람들은 죽음의 방어기제로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없는?무감각증에 빠진다고 관찰한다.?이는 극한 정도까지 집을 그리워하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소진시키게 되어 옆에 동료가 고통을 받고 죽던 말던 아무 관심이 없어진다는 것이다.(특이한 점은 이런 무감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모멸감,?치욕,?모욕감은 느낀다는 점이다)?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혐오감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이런 극한 고통 속에서 저자는 우연히 자신을 항구히 사랑해 주었고 자신이 사랑한 아내를 떠올리게 된다.?때때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별들이 하나둘씩 빛을 잃어가고,?아침을 알리는 연분홍빛이 짙은 먹구름 뒤에서 서서히 퍼져가고 있었다.?나는 온통 아내 모습뿐이었다.?나는 그녀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머리 속으로 그렸다.?그녀의 진솔하면서도 용기를 주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실제든 아니든 그때 그녀의 모습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보다 빛났다.?그 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많은 사상가들이 그토록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프랭클에게 고통을 잊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그도 상설한 정신 상태에 있었던 한 사람이었다.?그렇지만 우연히 자신을 사랑해주고 믿어주었던 아내를 정신적으로 떠올리게 되었고 나아가 그 힘을 받아들여 죽음 앞에 버틸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게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요약하자면 피할 수 없는 내-외적 고통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은 내적인 사랑의 힘이었다.?그 힘으로 말미암아 살려고자 하는 의지생성이 이루어 진 것이다.?이 글이 시간 순으로 기록되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때부터 글의 내용은 행동의 적극성,?예술을 찾고 즐김,?사소한 것에서 찾는 행복을 느끼며 긍정적인 분위기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여기서 중요한 이야기로 보이는?“테헤란에서의 죽음”의 비유를 통해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한다.?한 돈 많고 권력 있는 페르시아 사람이 어느 날 하인과 함께 자기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그런데 그 하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방금 죽음의 신을 보았다고 했다.?죽음의 신이 자리를 데려가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하인은 주인에게 말 중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말을 빌려달라고 애원했다.?그 말을 타고 오늘 밤 안으로 갈 수 있는 테헤란으로 도망을 치겠다는 것이었다.?주인은 승낙을 했다.하인이 허겁지겁 말을 타고 떠났다.?주인이 발길을 돌려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죽음의 신과 마주치게 되었다.?그러자 주인이 죽음의 신에게 물었다.“왜 그대는 내 하인을 겁주고 위협했는가?”그러자 죽음의 신이 대답했다.“위협하지 않았습니다.?다만 오늘밤 그를 테헤란에서 만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그가 아직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을 뿐이지요.”?그 골자는 살기위해 알려고 하는 죽음의 시기,?죽음에 대한 걱정을 회피하고자하는 우리의 생각들의 많은 부분은 오류가 허다하다는 것이다.?이는 책에서 말하고 있는 인간의 고귀한 능력인?“선택”?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선택에 대한 올바른 동기 인식을 강조하는 것 같다.?죽음에 대해 피하려고 했던 동기가 결국 그 죽음을 향하도록 이끌었던 것이다.?만약 그 하인이 죽음의 신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고 그 의미를 받아들였다면 아마 살 수 있지 않았을까??이에 대한 수용소 안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자.?자유를 향해 간다고 믿었던 감옥을 탈출한 친구들은 트럭에 실려 막사로 이송되었고 그곳에 갇힌 채로 불에 타 죽었다.?그에 반하여 저자는 똑같이 탈출을 결심하였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환자를 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 계획을 보류한다.?곧 그 수용소는 미군에 의해 해방되었다.?그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 도식을 그려볼 수 있겠다.인간 실존의 무의미 상황->?우연히 찾아온 사랑의 느낌을 받아들임?->?삶에 대한 의지 생성?->?정확한 동기 인식과 올바른 선택?->?인간 실존의 의미가 충만해짐.?결론적으로 이 책의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내용은?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 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내 마음대로 추천: 무기력증에 빠진 학생 또는 직장인들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책내 마음대로 요약: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첫날 밤에 우리는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침상에서 잠을 잤다. 각 층(길이 6.5피트에 폭이 8피트인 곳이다)에 무려 9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바닥 위에서 함께 잤다. 9명에게 배당된 담요는 단 두 장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옆으로 누울 수밖에 없었고, 서로 몸을 꼭 붙인 채 비비면서 잠을 자야 했다. 날이 혹독하게 추웠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자는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는 했다.
순교자, 김은국내 마음대로 평:?희망이 환상이라도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다.오래 전부터 말로만 들어왔던 김은국의 첫 장편소설?를 접했다.?미스터리 소설의 기법으로 써진 이 소설은 북한에서 한국 목사 집단살해사건의 진상을 밝혀가는 과정을 통해 신과 구원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이것이 소설??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소설 속의 신 목사는?6.25?전쟁의 처절한 상황 속에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강한 신념으로 끝까지 살아남아서 구원을 외친다.?나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신과 인간의 관계 안에서 희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고찰하게 되는 계가기 되었다.소설?에서 신 목사는 신도 천당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목사들과 신도들에게 그러한 것의 존재를 역설하고 있다.?이러한 신 목사의 역설은 배교하게 된 다른 목사들을 보며 느낀 심리적인 압박감에서 자신의 고통을 합리화한 것으로 보인다.?그에게 있어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며 주관적인 것으로 파악된다.?진리가 상대적이고 주관적일 때에는 진리 탐구가 무의미한 것일 수 있으며 진리의 결정 기준은 실제적 상황에 있다고 한다.?곧 인간 생활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진리요 그에 반한 것이 허위인 것이다.?이를 염두에 두면,?작가는 이 세계에서의 진리와 진실은 상대적,?주관적인 것이며 실제 그 상황에 따라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나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목사라는 신분과 하나님을 다룬다는 점에서 기독교 문학으로만 한정짓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신의 존재와 인간의 보편적 영성의 차원에서 본다면,?아마도 작가는 기독교의 하느님뿐만이 아닌 모든 초월자라고 생각되는 것과 인간의 구원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지도 모른다.?이 소설에서도 보이는 바와 같이 주인공 신 목사는 역설적이게도 무신론자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그리고 이 사상에 의해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구원하고 사람들을 구원한다.?소설에서 신 목사에 의하면 인간은 신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존재가 아닌,?스스로 만들고 행동하는 희망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나온다.?또한 동시에 신 목사는,?신이 없다는 사실을 믿으면서도 사람들에게는 신이 있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그들을 희망으로 인도하고 있다.?결국 작가는 이 소설에서 신의 존재여부를 떠나 인간을 구원할 존재는 바로 자신들이며 희망만이 절망과 괴로움을 극복하는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내가 찾아 낸 것은 괴로움과…죽음,?냉혹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뿐이었소.”“그리고 죽음의 다음은?”“아무것도 없소!?아무것도!”그의 창백한 얼굴에는 엄청난 고뇌가 일고 있었다.“날 좀 도와주시오,?내가 내 백성을,?불쌍하고 고통 받는 내 교인들,?전쟁과 굶주림과 추위와 질별,?그리고 삶의 피곤 앞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 할 수 있게 도와주시오,?괴로움이 그들의 희망과 믿음을 움켜쥐고는 그들을 절망의 바다로 떠내려 보내고 있소.?우린 그들에게 빛을 보여주고 그들을 기다리는 영광과 환영이 있다는 것,?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레미제라블, 빅토르위고내 마음대로 평: 불완전한 선, 그것이 바로 인간성의 본질.?우리는 모두 장발장이다.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나아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언제나 내 삶에 중심을 차지한다.?그런데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레 미제라블』이라는,?우리나라에서는 장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유명한 작품을 통해서였다.?세계의 고전으로 이미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레 미제라블』은 비인간적 체제에 대한 비판과 억눌린 계층에 대한 애정을 담아 그린 작품이다.?이를 통해 주인공인 장발장이 자신의 고유한 의식 아래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완성하면서 어떻게 세계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준다.소설이 그리는 장발장의 과거는 산업혁명 이후의 프랑스 대도시 노동자의 삶을 언뜻 비춰 주고 있다.?농촌 형태의 대가족 구조가 도시로 고스란히 유입되면서 발생한 대규모의 기아,?그리고 그 모든 인구를 수용할 만큼의 산업발전이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의 도시 노동자의 삶은 비참했다.?장발장과 그의 가족도 별반 다른 처지가 아니었으며,?이러한 현실은 결국 프랑스 혁명의 단초가 되는?‘앙시엥 레짐(구제도의 모순)’으로 폭발하기도 했다.?당장 먹을 것의 해결이 불가능한 인간의 삶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제도―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의 이유를 소멸시켰고,?합리라는 이름 하에 성립된 법률에 의해 장발장은 징역을 살게 된다.이러한 정신 없는 변혁의 시대를 살아간 이 장발장이 소설?『레 미제라블』의 주인공이다.?장 발장이라는 이름의 이 사내는 익히 알려져 있는 대로,?일곱 아이를 키우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진열장 유리를 깨고 빵 한 덩이를 훔쳤다가 체포되어,?여러 번의 탈옥 실패 끝에 총?19년 형의 징역을 살고 나온?40대 후반의 남자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소설의 도입부는 사실 장발장이 아니라 바로 이 주교, ‘비앵브뉘 밀리에르’?주교의 삶과 철학에 대부분의 묘사를 할애했다.?『레 미제라블』이라는 분량 많은 장편소설이 다루는 인간이라는 주제에 대해 작가가 꿈꾸는 이상향은 바로 이 주교의 모습에서 거의 다 그려져 있는 듯하다.성직자의 권위가 아직까지도 상당한 위세를 떨치던 시절,?주교 정도의 위치라면 누릴 수 있었던 모든 호사를 비앵브뉘 주교는 모두 던져버린다.?훌륭하게 지어진 정원까지 딸린 거대한 주교 저택은 셋이서 쓰기에 너무 크다며 좁아터진 병원과 맞바꾸어 버리고,?주교 마차비를 주겠다는 시청의 지원은 고맙다고 받아서는 병원 침대 두 개를 더 사 버리기도 한다.?세간에 악평이 가득 난 인물의 마지막 죽음을 기꺼이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도 하고,?심지어는 모두가 두려워하는?19년 징역의 전과자 장발장이 먹고 잘 곳이 없어 찾아오자?‘왜 눈치보고 들어오느냐?’며 훈계까지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굳이 전과자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소.?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집이오.?이 집을 찾아오는 이에게 나는 이름이나 경력을 묻지 않소.?단지 오는 이가 괴로운지,?아닌지를 물을 뿐이오.?당신이 괴롭고 목마르고 굶주렸다면 잘 찾아온 거요.?여기 있는 모든 것은 괴로워서 안식처를 구하는 당신의 것이고,?그래서 내 집에 당신을 맞은 것이 아니라 당신 집에 당신이 온 거요.?게다가 나는 당신이 말하기 전에 이미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소.?당신은 내 형제요.”-?『레 미제라블』?1권전과자에 험악한 외모,?누가 봐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장발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환대,?그리고 그런 그가?‘아니나다를까’?주교의 믿음을 배신하고 은식기를 훔쳐 달아났음에도 불구하고 잡혀온 그에게 은촛대마저 내주어버리는 센스.?이것이 바로?『레 미제라블』의 주제인 인간에 대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간론의 핵심이 아닐까.인간의 본성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인 것이 바로 비앵브뉘 주교라고 말하는 듯하다.?원래 인간은 그런 것이고,?우리는 인간의 선한 면만을 보고 사랑할 것이 아닌,?그런 인간의 모든 모습 자체를 사랑하는 법을 비앵브뉘 주교는 보여 준다.?그는 선과 악을 가려 사랑하지 않으며,?선과 악이 수시로 뒤바뀌는 인간 그 자체를 포용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을 넘어서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원수가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밀라던,?사실 아무도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그리스도교의 대명제?‘사랑’을 그는 온몸으로 실천한 것이나 다름없다.?그리고 그 결과로 장발장이라는 인간의 전인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그런 장발장을 끊임없이 쫓는 대립적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형사 자베르 경감이다.?법과 질서를 상징하는 자베르는 냉혹하기 그지없는 형사로,?장발장이 출옥 후 길가에서 동네 꼬마의 돈을 강탈한 혐의와 전과자로서의 편견을 덧씌워 그를 체포하고자 온 힘을 다한다.?장발장이 동네 시장의 자리에 오르고도 자베르는 끊임없이 의심의 끈을 놓지 않으며 끝까지 추적하는 자베르는 소설의 마지막까지 장발장과 대립한다.그렇다고 자베르가 반드시 악역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법과 질서의 수호자라는 경찰의 옷을 입고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그의 입장이 과연 냉혹하기만 한 것인지는 판단하기가 어렵다.?대립점은 범죄와 질서,?냉혹과 온화라는 선악의 이분법이 아니라 가치와 가치의 충돌이기 때문이다.?당장 살아남기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는 사람에게 우선순위는 법보다 자신의 생존이며,?남의 재산을 훔치는 행위를 막아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라는 집단을 관리하는 자의 목표다.?결국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의 문제가 아닌,?그 대립과 갈등 자체에서 오는 인간성에 대한 물음이 핵심이라고 생각된다.냉혹한으로 묘사되는 자베르도 그러나 서서히 변화한다.?코제트를 키우기 위해 파리로 이주한 장발장은 코제트의 연인이자 공화파 혁명론자인 청년 마리우스를 만나게 되고,?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코제트의 후견인인 장발장을 마리우스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지만,?마리우스가 혁명 와중에 크게 부상당하자 그를 파리의 하수도를 통해 탈출시키는 것은 장발장이었다.?그리고 그런 그들을 마지막 순간에 추격하던 자베르는 끝내 두 사람을 체포하지 못하고,?오히려 사회질서와 인간 개인이라는 두 가치가 대립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자베르는 그만 자살하고 만다.
플라톤의 네 대화편: 파이돈을 읽고이 대화편은 에케크라테스가 소크라테스의 임종을 궁금히 여겨 잘시 현장에 있었던 파이돈에게 그 상황을 묻고 파이돈이 이에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파이돈은 에케크라테스에게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임할 때도 행복해 보여 참으로 두려움이 없고 고귀한 최후라고 전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소크라테스가 형을 집행 받는 날, 케베스와 심미아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고통과 쾌락에 대해 이 두 가지 것은 동시에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법은 없으면서도 그 중의 하나를 추구해서 얻으면 반드시 다른 하나도 얻게 된다고 하며 쾌락이란 참 이상야릇한 것이라고 하였다. 쾌락과 고통, 우리가 슬픈 영화나 글을 통해서 그 슬픔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나 마라톤, 등산 같이 신체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후 성취되는 쾌락 등이 이 말과 같은 것일까? 쾌락과 행복에 젖은 인간은 고통을 꿈꾸며 이를 통해 더 큰 쾌락을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Ⅰ. 죽음에 관한 논의소크라테스의 이야기가 적당히 흐를 즈음하여 케베스가 묻는다. 사람이 자살을 해서는 안 되지만 철학자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함은 무슨 까닭인지를. 여기서부터 소크라테스의 긴 논쟁이 시작된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신의 소유이자 신은 인간의 보호자이므로, 신이 부르기 전에는 함부로 자살할 수 없다고 하며, 참 철학자란 죽음이 임박했을 때 기쁜 마음을 가질만한 이유가 있고, 죽은 후에는 저 세상에서 최대의 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영혼이 육체에서 이탈하는 것을 죽음이라 정의한다. 다음으로 육체와 영혼의 관계를 육체는 ‘사멸하고 가변적인 것’으로 영혼은 ‘불변하고 불변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인간의 죽음, 즉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통해서 영혼의 해방(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살아 있는 동안에 자신의 영혼의 정화를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지혜를 향유하려면 하데스에 가야만 한다고 소크라테스는 확신한다.이어 케베스가 영혼의 사후 존재에 애해 이의를 제기하자 소크라테스는 ‘반대되는 것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생성된다.’ 는 논증으로 케베스의 입장을 논박, 영혼 불멸설을 증명한다. 삶과 죽음도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이 불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지식을 태어날 때 잊어버리고 있다가 하나씩 상기해 나가는 것이라는 ‘상기설’을 통해 우리의 출생 전 영혼의 존재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사람마다 다이몬 이라는 것이 있어 사람이 죽으면 그 다이몬의 인도를 따라 저 세상에서 심판을 받기에 이 생에서 지혜와 덕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 말한다.파이돈은 생각할 점을 던져주는 대화편이란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 그리고 과연 영혼은 불멸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여야 하는가. 고정 불변의 보편적 진리는 있는 것인지에 관한 것들. 파이돈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견해가 동의하게끔 만드는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게 하였다.Ⅱ.혼의 불멸성에 관한 논의먼저, 영혼 불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의견이다. 소크라테스의 영혼 불멸에 대한 논증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죽음은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현상이다.2)반대되는 것을 가지는 모든 것은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생성된다.3)삶과 죽음은 반대되는 것이다.4)인간은 반드시 죽음으로 그 반대인 삶도 반드시 있다.5)육체에 영혼이 깃든 것을 삶이라 볼 때 영혼은 불멸함이 증명된다.여기서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럼 과연 최초의 인류가 발생하였을 때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인류가 있기 전에 인류의 죽음은 없었다. 물론 다른 생명체들도 처음 생기기 이전에 그 개체가 죽을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돈의 초반부에서 신은 인간의 주인이며 인간은 신의 소유물이라 생각한다고 하였다. 즉, 최초의 인간은 이에 따르면 신에 의하여 창조된 피조물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어떤 개체이던 최초에는 그 영혼이 창조되었어야 한다. 소크라테스에 의한 영혼은 신적이며 예지적이고 한결 같다고 하였으므로 창조되지 않고 자연 발생 되었다고 보여 지지는 않는다.우리 인류는 지금 그 인구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죽는 사람보다 태어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즉, 영혼의 재창조 없이 윤회만 된다면 그 수요에 맞는 공급이 이루어 질 수 없다. 다른 개체들을 보아도 통틀어 사라져 가는 것보다는 늘어가는 것이 많으므로 영혼이란 것이 있다면 창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영혼의 창조라는 것의 반대 개념을 영혼의 소멸이라고 해보자. (삶과 죽음 사이에 하데스가 있어 반대가 되듯, 영혼의 창조와 소멸 사이에는 자연 발생 이라는 중간 개념이 있어 모순 개념이 아닌 반대 개념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위의 5)에서 영혼의 불멸이 증명되었지만 다시 2)에서 그 이론에 따라 영혼의 소멸이 발생하였으므로 소크라테스의 이론은 모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