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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방한계선(NLL) 평가A+최고예요
    목차Ⅰ. 들어가는 글Ⅱ. 북방한계선ⅰ-북방한계선 이란?ⅱ-주요 사건ⅲ-군사적 요충지 서해 5도ⅳ-북방한계선 주변(서해 5도) 전력비교Ⅲ. 북방한계선에 대한 남북한의 입장ⅰ- NLL에 대한 남측 입장ⅱ- NLL에 대한 북측 입장Ⅳ.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Ⅴ. 맺는 글Ⅰ. 들어가는 글남과 북이 분단된 상황 속에서 현재 남북은 많은 논란과 과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과제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북방한계선(NLL:North Limit Line)이다.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본격적인 안보 현안으로 부각한 것은 1999년 6월 연평 해전 이후다. 당시 NLL을 월선한 북한 경비정을 해군이 선체를 충돌해 밀어내는 전법으로 막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부상자가 발생했다. 2002년 서해교전은 NLL이 남북간 일촉즉발의 대치선임을 실감케 해준 사건이다. 이에 따라 NLL은 지금까지도 대체로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영토’ 개념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NLL 문제는 본격적인 남북 협력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안보 분야의 핵심 현안이다. 이에 여기서는 NLL이 정확히 무엇이며,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나아가 그 문제 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논하려고 한다.Ⅱ. 북방한계선ⅰ. 북방한계선 이란?북방한계선은 애초 유엔연합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미 육군 대장이 한국전쟁중 외부로부터 중공군과 북한군으로의 무기ㆍ물자 공급을 막기 위해 정전협정 직후 북한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북한에 공식 통보도 하지 않은 해양의 한계선으로, 서해 5도인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를 따라 그은 해안 경계선이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당시 유엔군과 북한군은 육지에 대해서는 양측 대치 지점에 군사분계선을 긋고 이를 기준으로 남북4㎞에 이르는 비무장지대를 설정하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해상경계선을 어디로 정할지는 합의하지 못했는데 특히 서해의 경우 국군이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끝에 확보한 남북 분계를 위한 의도가 전혀 없었던 이 선은 정전협정 발효 한 달 뒤인 53년 8월27일 폐기됐다. 하지만 정전협정 이후에도 북진 통일을 희망하던 당시 이승만 정권의 서해상 군사행동을 막기 위해 미국이 이 선을 남측 군사행동의 한계선으로 삼았고, 이후 NLL로 굳어졌다는 것이다.NLL 문제는 1953년 정전협정에서 서해상의 남북 군사분계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데서 태동했다. 정전협정은 서해상의 남북 분계를 이른바 ‘한강하류 수역’(한강과 예성강 합류 지점부터 강화도와 교동도 북쪽 해안을 지나 황해도 굴당포 앞바다까지 수역)의 남북 중간선에서 강화도 서쪽 약 30㎞ 지점 우도(隅島)까지 연결한 선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NLL이 지나는 100여㎞ 서해상에는 분계선을 정하지 않았다. 정전 당시 서해 섬의 대다수는 제공권과 제해권을 장악한 유엔군이 점령하고 있었지만, 논란 끝에 섬의 통제권을 ‘전쟁 발생 전날인 1950년 6월24일’을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협정에서는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이른바 ‘서해 5도’만을 유엔연합군 총사령관 통제 하에, 그 해역의 다른 섬들은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의 통제 하에 둔다고 규정했다.ⅱ. 주요 사건북한군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연평도와 백령도 인근에서 10여 차례 남한 어선을 납치했다. 하지만 당기까지만 해도 공식적으로 북방한계선(NLL)을 문제 삼진 않았다. 북한이 정면으로 NLL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73년 10월부터 11월까지 연평도 대청도 백령도 근해를 43차례 월선한 이른바 '서해 사태' 이후이다. 서해 사태 직후 열린 제346ㆍ347차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에서 북한은 처음으로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이북 지역이 자신들의 연해라고 주장하면서 서해 5개 도서에 출입하는 남측 선박이 사전허가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 국방부는 이때 북한이 정전 이후 처음으로 NLL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국가적인 의사 표시'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이후 북한군은 경비정은류하다 남측에 의하여 구조되었으나, 인양도중 로프가 끊어져 북측 경비정 2척에 의해 나포됐다.논란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및 불가침 부속합의서 채택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1999년 6월15일 연평해전을 계기로 불씨가 되살아났다. 휴전 이후 남북 해군간 첫 교전으로 기록된 연평해전 에서 북측 어뢰정 1척과 중형 경비정 1척이 침몰했고, 남측도 고속정과 초계함 일부가 파손되고 장병 7명이 부상했다. 대한민국 해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비정의 선체 뒷부분을 고속정이 부딪쳐 막는 일명 "밀어내기 작전"으로 대응하였다.2002년 6월29일 일어난 서해교전은 북한 꽃게잡이 어선을 경계하다 NLL을 넘어온 북측 경비정을 남측 고속정이 막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선제 포격을 가한 북측 경비정은 남측 고속정과 초계함의 반격으로 화염에 휩싸여 20여분에 물러났다. 이 교전으로 남측은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다. 남측은 연평해전을 계기로 교전규칙을 소극적 대응에서 적극적 응전 개념으로 수정하여,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밀어내기 작전)-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의 5단계 대응에서 "시위기동-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의 3단계 대응으로 개정 하였다.2009년 11월 10일에는 대청해전 발발하여 대한민국 해군은 함선 외부격벽에 15발의 탄흔 피해를 남겼으며, 북측의 해군은 함선이 반파되어 퇴각하여 사상자는 4명으로 추정된다.2010년 1월 27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전날 선포한 항해금지구역에 포 90발 발사. 대한민국 국군은 즉각 벌컨포로 대응하였다. 2010년 3월 26일에는 대한민국 해군 2함대 소속 1,200톤 급 포항급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해 46명이 전사 하였으며, 2010년 11월 23일에는 연평도에 북측이 해안포를 100여 발 발사 한국군 2명, 민간인 2명을 포함 십여 명의 사상자와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ⅲ.군사적 요충지 서해 5도서해5도란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를 말한다. 서해 5도는 본래 황해도 옹진군과 벽성군, 장연군 등에되어 있다. 하지만 북방한계선 덕분에 북한군의 해군, 공군의 활동 범위를 좁힐 수 있는 군사적 요지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서해 5도가 북한 관할이 였다면, 북방한계선이 무력화되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이 실질적 해상 분계선이 될 뿐만 아니라, 서해 5도가 북한의 새로운 전초 기지가 될 수 있다.ⅳ.북방한계선 주변(서해 5도) 전력비교-남한서해 5도에 우리 군이 보유하고 있는 포 중 적 진지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것은 K-9 자주포(사거리 40㎞)와 105ㆍ155㎜ 견인포(사거리 30㎞) 정도다. K-9 자주포는 연평도와 백령도에 각각 6문, 155㎜ 견인포는 백령도에만 10여 문이 있다. 수상 전투함 160척과 잠수함 10여 정을 보유 중인 우리 해군은 평택 제2함대사령부 소속으로 구축함(3500t급), 호위함(2000t급), 초계함(1000t급), 최신예 유도탄고속함(PKG) 윤영하함(440t급), 고속정 등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서해 5도 해안에 배치됐거나 구축함에 장착된 사거리 130㎞의 하푼 대함미사일과 고속정 편대, 대청도에 해병 1개 여단과 해안포, 레이더 기지를 각각 갖추고 있고, 북측 황해도 방사포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신형 자주포를 백령도 등에 배치해 놓고 있다. 백령도와 연평도 등에 주둔하고 있는 우리 해병대 병력이 5000여 명이고, 유사 상황이 발생할 경우 1차로 3000여 명이 즉각 증원된다고 한다.-북한현재 북한군은 각종 군 자료에 따르면 장산곶과 사곶, 해주, 옹진반도, 개머리, 무도 등 서해안 주요 해안 기지와 섬에 130㎜ 대구경포와 사거리 54㎞의 170㎜ 곡사포 등 1000여 문의 해안포ㆍ곡사포를 배치하고 있다. 연평도와 인근 해역을 포격한 황해도 강령군 개머리 기지와 무도 기지에는 사거리 27㎞의 155ㆍ130㎜, 사거리 12㎞의 76.2㎜ 해안포가 집중 배치돼 있다. 또 해군사령부 예하 남포 서해함대사령부 산하에 6개 전대가 420여 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함정 중 절반 이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청도·연평도·우도의 5개 섬 북단과 북한 측에서 관할하는 옹진반도 사이의 중간선을 말하는데, 북위 37。 35'과 38。 03' 사이에 해당한다. 1953년 설정 이후 1972년까지는 북한도 이 한계선에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준수함으로써 남북 사이에 별다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그러나 1973년 들어 북한이 서해 5개 섬 주변수역이 북한 연해라고 주장하면서 이 수역을 항행하려면 사전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하는 한편, 빈번히 북방한계선을 넘어옴으로써 남한 함정들과 맞닥뜨리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국제법적으로도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은 아니라는 것이 국제법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는 하지만,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유엔사령부가 NLL 확정에 대해 통보했을 당시 북한 측의 분명한 이의 제기가 없었고, 이후 20여년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한국군은 이 선 남쪽을 실질적으로 관리해왔으므로, 남북 양측이 새로이 합의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NLL을 서로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약에 관한 빈 협약'은 "상대방이 조약의 단서를 통지 받은지 12개월 내에 이의가 없으면 이를 수락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국제법적으로 북한은 NLL에 대해 합의한 것으로 간주된다. 또 20년 이상 분쟁 없이 국제적인 관행이 유지되면, 법률적인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국제법의 원칙이다. 실제 북한도 지난 1984년 수재구호물자 제공 당시 이 선에서 우리측에 배를 인계하고 돌아갔고, 수역 침범에 대해 경고하는 즉시 후퇴하는 등 사실상 이를 존중해왔다는 것이다.1992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 11조의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는 점 등을 들어 이를 침해할 경우 명백한 정전협정 정신 위반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ⅱ NLL에 대한 북측 입장북한은 서해 NLL의 경우 '유엔사가 일방적능하다.
    사회과학| 2011.05.31| 7페이지| 1,500원| 조회(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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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기념관 기행문 입니다.
    정문을 통하여 들어간 입구에 거대하게 전시되어 있는 조형물은 처음부터 나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다. 이 조형물은 두 남자가 끌어안고 있는 동상으로 설명을 보기 전에는 단순히 남북의 평화를 염원하는 조형물이라고 생각 하였지만, 이는 사실 한국전쟁 당시 국군장교인 형과 북한군 병사인 아우가 전쟁터에서 극적으로 만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과연 전쟁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형제에 동상 아래에 나타난 분단선은 지금도 남북의 분단 상황을 상기 시키게 하였다.이러한 조형물 말고도 옥외 전시장에는 제2차 세계대전 및 6·25전쟁 그리고 월남 전쟁 등에서 피·아 간에 운용하였던 차량, 전차, 야포, 항공기, 장갑차, 함포, 잠수함, 레이더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관람객들이 직접 장비의 내부에 들어 가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어렸을 때 이 전시물들은 단지 멋있는 무기였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이를 보고 우리 나라의 안보력과이들이 갖고 있는 잔혹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무기들은 방패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유용한 도구 이지만, 창으로는 수 많은 생명들을 희생 시키는 도구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생각을 갖고 실내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중에 익숙한 장소가 눈에 보였다. 그곳에는 수많은 전사자의 이름이 위령비 안의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전사자들 중 대부분은 젊은 나이의 청년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꿈이 있었을 것이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이런 이들을 피 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내몰았고 이들은 꽃다운 나이에 쓰러져 갔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전쟁이 일어난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 젊은 나이에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그리고 그들을 잃어버린 부모와 가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들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만을 안겨준다. 전쟁은 그 목적과 명분이 무엇이던 간에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희생이 민족분단 이라는 비극적 상황에서 현재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이었다.1층은 전쟁역사실로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의 전시물을 전시해 놓았다. 이곳을 둘러 보면서 느낀점은 우리 민족은 역사 속에서 무수히 많은 침략을 당해 왔으며, 그 침략에 맞서 싸워 왔다는 것이고, 그러한 침략은 외세가 강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약한 시기에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안보에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독후감/창작| 2011.05.31| 1페이지| 1,000원| 조회(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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