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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문화 도시(배낭여행계획)
    Culture Cities of World배낭여행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는 단어인 것 같다. 나는 오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도시들을 찾아 떠나려고 한다.10987654321Culture Cities of World이번에 열흘간 떠날 도시들은 문화가 발달한 도시들을 선택했다. 소개될 도시들은 천재적 예술가가 태어났거나 유명 예술작품의 배경이 된 덕에 문화도시가 된 곳과 유서 깊은 도시 분위기를 살려 성공한 문화도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천적 노력으로 태어난 문화도시들을 찾아 떠나겠다. 막연히 배낭을 메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이 도시들의 화려한 성공을 보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는 우리의 문화 도시를 어떻게 가꿀 수 있을까에 대한 작은 조경가로서의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1Culture Cities of World스페인의 바로셀로나로 가다 마드리드에 이어 스페인 제2의 도시인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다. 피카소와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활동했으며, 예술과 관광뿐 아니라 국민 총생산의 20%를 차지하는 스페인 최대의 상공업 도시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곳이다. 바로셀로나에 가면 도처에서 살아있는 가우디가 보인다고 한다. 천재 예술가로 꼽히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그가 백년전 바로셀로나에 지어놓은 건축물은 3ha가 넘는 구엘공원을 비롯해 시내와 근교에서 12개가 된다.1Culture Cities of World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Sagrada Familia) 거대한 옥수수 4개가 하늘로 치솟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은 1882년 3월 19일 성 요셉의 날에 시작된 건설 작업이 1세기 이상이나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 되고 있으며 앞으로 완성까지는 200년이 더 걸린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완성된 것은 지하 예배당, 아프스부, 현관 하나와 탄생문으로 중앙에는 160m의 탑이 설 예정이다.1Culture Cities of World파라시오 구엘(Palacio Guell) 람블라스 거리에서 노우 데 람블라 거리를아름답다. '안데르센의 동화와 같은 건물'이라고 형용될 정도이다.2Culture Cities of World카사 밀라(Casa Mila) 자른 돌을 그대로 쌓아올렸기 때문에 일명 '라페드레라'(La Pedrera)라고도 불린다. 철저하게 직선을 배제하고 일그러진 곡선을 강조하는 이 세기말적인 건물은 20세기에 나타난 신고전주의자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개인 주택이기 때문에 안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옥상에는 올라갈 수 있다. 묘하게 생긴 굴뚝이 볼 만 하다.2Culture Cities of World파르게 구엘(Parque Guell)-구엘공원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조용한 공원으로 가우디의 작품이 여기 저기에 있다. 벤치의 모자이크, 작은집, 울퉁불퉁한 돌을 이용한 기둥과 벽등, 색다른 것은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주위의 꽃나무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또 다른 공원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공원 안에는 가우디가 디자인한 의자, 벤치, 체스트 등이 전시되어 있는 가우디 미술관 Casa Museu Gaudi 도 있다.2Culture Cities of World바로셀로나!!!! 바로셀로나엔 피카소 청색시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피카소 미술관도 있고 미로가 디자인한 람블라스 거리의 보도블럭도 있지만 가우디 건축은 이 도시 문화적 향기의 대표다. 바로셀로나 시는 92년 올림픽때 마라톤 코스를 가우디 명건축과 피카소 미술관 등 명소를 순회하는 시티투어 코스처럼 잡아 전세계에 공짜로 광고했다. 이러한 시의 정책으로 인하여 바로셀로나는 스페인 두번째의 관광도시로 도약했다. 위대한 예술가 하나의 숨결과 족적이 한 도시에 문화적 향기를 진동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곳이 바로 바로셀로나다.스페인의 빌바오로 가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자치주 해안도시 빌바오. 몰락의 길을 가던 공업도시 빌바오는 세계최고 현대미술관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을 97년 10월 유치한 이후 문화의 도시가 되었다.3Culture Cities of World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 설 하는 두개의 심장이다. 줄리엣의 생가 뿐만 아니라 2000년전 로마 유적부터 중세수도원, 그리고 전설적 성악가들 자취가 깃든 아레나 원형극장까지 도시 어느 곳에서든 문화와 역사와 이야기가 발길에 채인다. 그래서 베로나 시내를 거니는 것은 공간 이동이자 시간 이동이라고도 한다.이탈리아의 베로나로 가다 이탈리아의 베로나는 21세기엔 문화 없이 산업과 관광을 말할 수 없다는 전략적 계산 아래 간판으로 내세운 문화가 도시를 먹여 살린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 베로나!!!!!4Culture Cities of World체코의 베로나로 가다 프라하 성 아패 녹색 돔을 머리에 인 성니콜라스교회까지, 로마네스트-고딕-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아르누보 건축물로 빼곡하다. 시가지 전체가 1000년 건축양식을 온축한 건축 박물관이다.역사적인 건축물들로 둘러싸인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Staromestske namesti)은 매우 훌륭한 공공 장소다. 첼레트나 거리나 오보크니트르거리는 보행자 전용 거리다. 프라하의 굴곡 많은 역사 중의 일부가 구시가 광장 주변의 건축물에 보존되어 있다. 광장 북쪽에는 바로크 양식의 성 니콜라스 교회의 흰색 정면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동쪽에는 당대 최고의 건축물 2개가 뽐내며 서있다. 고딕 양식의 시궁을 개조한 '석종이 달린 집' 과 로코코 양식의 골즈 킨스키 궁전이 그것이다. 이 밖에 파스텔 색조의 건물들이 줄지어 광장을 메우고 있다. 또한 로마네스크나 바로크 양식의 기원이 되는 화려한 집들이 구시가 광장 남부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첼레트나 거리와 체레즈나 거리 사이의 구역이 특히 아름다우며, 언제나 분주해 보이는 광장은 여러 개의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 화랑 들이 들어서 있는 프라하의 요지이다. 카를 교 근처의 좁은 거리들은 중세 프라하의 도로 계획에 따라 닦인 것인데 수세기 동안 카를 거리(Karlova)는 구시가를 가로지르는 주요 도로였다. 아름답고 구불구불한 이 길에는 르네상스, 바로크양식의 상점과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4있는 웅장한 바로크 식 궁전들이 많은 소지구 광장 주변은 이 지역 특유의 전통적 특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가파르고 좁은 거리와 계단들은 낭만적 신비감을 풍기며, 골목골목에서는 조각으로 장식된 환상적인 건물이나 주택표지들을 만날 수 있다. 캄파 섬에 있는 대수도원장의 물방아는 지금도 여전히 돌고 있으며, 이 곳을 지나는 순례자들은 성모 마리아 빅토리우스 교회에 있는 '프라하의 신성한 아기'상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또한 이곳에서는 모차르트가 여기 머물던 때와 다름없이 교회와 궁전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다리 거리의 양편에는 조용히 퇴락해 가는 광장과 그림 같은 궁전들, 그리고 교회와 정원이 있는 고요한 세계가 펼쳐진다.5Culture Cities of World프라하 성과 흐라드차니 9세기에 보리보위왕자가 프라하 성을 건립함으로써 프라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블타바 강 상류에 유리한 위치를 점한 프라하 성은 프레미슬리드 가가 다스리던 영토의 중심부가 되었다. 성안에는 한 채의 궁전과 세 채의 교회, 그리고 한 채의 수도원이 있다. 1320년경에는 '흐라드차니'라는, 프라하 성 외벽의 일부를 이루는 마을이 건설되었다. 성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개축되었으며, 특히 카를 4세와 블라디슬라프 야기엘로가 다스리던 시절의 공사는 그 성과가 두드러진다. 1541년의 대화재로 심하게 파괴된 건물들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되었으며, 루돌프 2세 때에 이르러 그 전성기를 구가했다. 뒷날 합스부르크 가가 비엔나에 거주하면서 때때로 프라하 성을 사용하곤 했다. 1918년부터 프라하 성은 체크 공화국 대통령의 거처로 쓰이고 있다.5Culture Cities of World1348년 카를 4세 때 조성된 신시가(Nove Mesto)는 세심하게 구획이 나누어진 지역이다. 신시가에는 대략 세 군데의 번화가가 펼쳐져 있는데, 건초시장(세노바쥬네 광장), 소 시장(카를 광장), 말 시장(바츨라프 광장)이 그것이다. 신시가의 면적은 구시가의 두 배 가량 되고, 주로 대장장이, 목수, 양조, 이 같은 학구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듯 광장의 중심부에는 작가나 과학자들의 동상이 많이 서 있다. 광장에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도 몇 채 보이며, 슬라보닉 수도원은 강을 바라보는 위치에 고풍스러운 빛을 발하며 서 있다.76Culture Cities of World핀란드의 사본리나로 가다 헬싱키 북동쪽 300Km, 러시아 국경에 인접한 사본린나(Savonlinna)의 고성에서 해마다 7·8월에 걸쳐 한달간 열리는 '사본린나 오페라 페스티벌'이 올해도 지난 3일 개막, 8월 3일까지 오페라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축제보다 1년 앞서 1912년에 시작한 사본린나 오페라축제는 성 안마당에 2100석 객석을 만들어 성채의 한쪽 벽을 '열린' 무대로 활용하는 북구 최대 오페라축제. 전통적으로 풍부한 성량의 '헤비 보이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무대로도 유명하다.98Culture Cities of World영국의 헤이 온 와이로 가다 잉글랜드와 웨일즈 접경 지대의 작은 마을 헤이 온 와이 이곳은 헌책의 메카이다. 세계 곳곳에서 흘러 들어온 헌 책들이 이곳에서 새로 생명을 부여 받는다. 꼭 필요한 책을 사러, 희귀본을 찾으러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일년 내내 헌책방들이 문을 열고 있으며 이를 찾는 사람의 수는 연간 수십만명에 이른다. 해마다. 책 페스티벌이 열흘 동안 열리는 5월 마지막 주가 되면 인구 1300명 마을에 수만명이 한꺼번에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Culture Cities of World세계의 문화적으로 성공한 문화 도시를 돌면서 내가 무엇을 얻고 오고 싶은 여행이다. 여행지는 모두 문화의 도시로서 천재적 예술가가 태어났거나 유명 예술작품의 배경이 된 덕에 문화도시가 되거나 누구의 노력으로 인하여 문화 도시가 된 도시들을 여행 목적지로 삼았다. 나는 여행을 마치고 성공한 문화의 도시를 보고서 얻을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의 문화 도시를 어떻게 가꿀 것인가? 라는 질문과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만 할 것 같은 사명감 아닌 사명감을 가져
    생활/환경| 2004.05.19| 19페이지| 3,000원| 조회(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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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 중국의 결혼문화 평가A+최고예요
    II.본론1. 결혼의 유래결혼이란 자연인으로서의 남녀를 사회의 가장 기본적 인간 관계인 부부로 인정하고 가정이라는 하나의 사회 단위를 구성하기 위한 절차이다. 일남일녀를 배타적인 한 쌍의 배우자로 공포하는 혼인의 의식은 인류 사회에 보편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매우 오래된 관행이다. 그러므로 각 문화권마다 고유한 절차가 있어서 부부의 관계를 신중하게 맺고 그 관계를 평생토록 유지하는 것을 무엇보다 소중한 일고 여겨왔다. 동양에서는 혼례 또는 혼인이라고 결혼을 칭하는데 지금은 한자로 '혼인할 혼'자를 쓰나 다른 예서에는 '혼인할 혼'자를 쓰지 않고 '어두울 혼'자를 쓰고 있다. 이를 미루어보아 옛날에는 결혼을 혼시 즉 저녁에 했던 것으로도 해석된다.또 원시시대의 어떤부족에서는 처녀를 밤에 약탈해 가는 약탈혼이 있었으므로 '어두울 혼'자를 썼다고 말하기도 한다. 혼례는 일생의례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서 조상들은 특히 혼례를 대례, 혹은 대사라고도 불렀다.(1)우리나라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의 전통적 혼인 의식에 대하여는 기록이 상세하지 않다. 북부여의 해모수 설화나 동명왕 설화에는 약탈혼의 흔적이 보이기도 하지만, 동일한 지역에서 음행을 엄벌하는 관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혼인과 유사한 절차가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고구려의 서옥이나 동예의 예서제에는 남자가 여자집에 가서 혼인을 허락받고 동거하는 형태로서 후대의 입장(入丈) 관습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에 나타나듯 친영(親迎), 상견(相見), 우귀(于歸)등의 격식을 갖춘 수로왕의 혼인절차는 후대의 예서(禮書)에 정식화된 혼인 절차와 그 골격이 거의 유사하고, 중국인이 기록한 위서에서도 삼한의 혼인풍속이 이에 맞고 남녀의 분별이 있다고 하였다. 삼한 시대의 혼인 의식은 당대의 중국인이 보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후대의 관습과도 일정한 맥락을 유지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혼인 절차는 그 유래가 매우 오래 된 것이다.(2)중국중국에서 혼례를 상례와 함께 중시되던 예속으로 ,단순한 성인남녀의 색 실을 함께 보내는 집이 더러 있다. 납채는 혼인의 약속을 확정하는 일이기에 시속에서는 정혼(定婚) 또는 언정(言定)이라 하기도 한다.납채의 의식은 본디 위와 같이 혼인 허락에 대한 감사의 뜻을 서찰에 적어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시속에서는 납채서와 별도로 사성(四星) 또는 사주단자라 하여 신랑의 생년월일과 탄생 시각을 적어 보내는 풍습이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 왔다.이를 신부집에 자제를 사자로 삼아 신부집으로 보내는데 신부측에서 납채서와 사주를 받아들이는 것은 곧 혼인을 허락한다는 의미이다 . 납채서와 사주를 받아들이면 그 속에 있는 홍실을 나누어 문 앞에 걸어놓고 혼처가 결정된 처자가 있음을 표시하고 혼인 예정자인 처자는 색실을 몸에 걸쳐서 호너가 결정되었음을 표시한다.4청기와 납길혼례의 진행 날짜를 정하여 통보하는 절차이다. 에는 이 절차가 생략되어 있다. 의 사혼례(士婚禮)에 의하면 신랑집에서 길일을 택일하여 신부집에 고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신부집에서 대례(大禮)의 의식을 치르고 나서 신랑집으로 돌아오는 반친영(半親迎)의 방식을 취하는 집이 많기 때문에 대례를 치르는 신부집에서 혼례식의 날짜를 정하여 신랑집에 통보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었다사주단자를 바든 신부집에서는 신랑집에 납폐와 전안(奠雁) 정하여 날짜를 적은 택일단자를 보내면서 혼인 날짜를 확정해 줄 것을 청한다. 혼인 날짜를 알리는 것을 연길(涓吉)이라 하고 연길을 보내면서 혼인 날짜를 확정해 주기를 청하는 것을 청기(靑旗)라고 하는데 실은 한 가지 일이다.5납폐연길가 의제장을 보내는 절차가 끝난 뒤, 신랑집에서 보통 결혼식 전날 신부용 혼수(婚需)와 혼서(婚書) 및 물목(物目)을 넣은 혼수함을 보낸다. 이것을 납폐라 한다. 혼서는 신부에게는 무척 소중한 것으로서 일부종사의 의미로 일생동안 간직하였다가 죽을 때 관 속에 넣어 가지고 간다고 한다. 신랑집이 가난한 경우 혼서와 함께 채단만을 보낸다. 채단은 보통 청색과 홍색의 비단 치마감을 일컫는다. 여유 서당을 돌아다니다가 동상에 허름한 의복을 입고 늠름하게 앉아 있는 서생을 만나 사위로 삼았다는 데에서 유래한다고도 하고, 조선조 때 권율이 동상에서 공부하는 이항복을 사위로 삼고 동료들에게 한턱 낸 데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ㄴ혼례의상i)신랑의 의상신랑은 친영을 위하여 사모관대(紗帽冠帶)로 장속한다. 사모관대란 사모를 쓰고 단령포를 입은 다음 각대를 띠고 목화를 신은 옷차림을 말한다. 사모관대는 조선조 벼슬아치의 관복 중 평상복에 속하는 것으로서 초기에는 당상관에 한했으나 이후 당하관에게도 이의 착용이 허용되었다. 이에 따라 단령포의 색과 혁대의 장식 재료에 의하여 품계를 가리었고, 또한 흉배에도 도안의 구별이 있었다.이러한 옷차림은 신랑의 나이에 이미 벼슬길에 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므로 당시 혼인을 인륜(人倫)의 대사(大事)라 하여 비록 가장 낮은 품계(九品)의 것이긴 하더라도 특별히 배려하여 예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단령은 녹포였고 여기에 단학 흉배를 가식하였으며 흑각대를 띠었다. 이 차림은 서민층 혼례 때에도 허용되었다.ii)신부의 의상신부 혼례복은 혼인날 신랑과 신부가 마주서서 교배례를 거행할 때의 복장을 일컫는다.신부의 혼례복으로서는 활옷과 원삼을 들 수 있는데 활옷은 원래는 궁중에서 의식이 있을 때에 왕비가 입던 대례복이었으나 후에는 서민의 혼례복으로도 사용되었다.활옷은 상류계급에서 착용한 것이고 일반인은 활옷 대신에 원삼을 입었다. 원삼도 활옷과 같이 활수의 포의에 대대를 갖춘 조선조 여인의 일반 예복이었다활옷은 홍색비단에 청색으로 안을 받쳐서 만들었는데 이는 청색(여성)과 홍색(남성)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이다.홍색바탕 천에 숭고함과 부귀와 장수를 상징하는 연꽃 모란꽃 십장생 등을 가득히 수놓아 만든 활옷은 앞길이 짧고 뒷길이 긴 모양이며, 소매끝에는 색동을 대고 흰색 한삼을 덧붙였다.2)중국의 전통혼례ㄱ)혼례의 절차위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우리말에서도 있는 육례(六禮)라는 것은 중국에서 먼저 있었다.다음의 중국의 전통혼례의 절차를 살펴을 연주하며 골목을 돌기도 하였다. 납징때 신랑이 꺼리는 예물은 신발이었다. 신부가 신고 달아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신부는 납징의 예물 중 식품류는 돌려보냈다. 신부의 혼수 중에는 이불도 있었는데 이불은 항상 10월에 만들었다. 10은 滿數로써 십자(열 아들)를 상징했다.5. 請期 (청기)정혼 후 신랑 측이 길일을 택하여 혼례 일자를 정하고 신부 측에 알린다. 신부가 신변상에 문제가 있을 경우 취소하고 다시 정할 수 있다.6. 親迎 (친영)결혼 당일 신랑이 친히 중매인과 함께 예물을 가지고 신부집을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신랑이 먼저 신부의 부모에게 절을 올리고 다시 신부 측 조상의 사당을 배알하며 예물을 올린다. 그런 다음 신부를 가마(花轎나 官轎. 집안의 경제력에 따라 한 대 이상)에 태우고 돌아간다. 신랑이 먼저 내려 문밖에서 신부가 가마에서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방으로 함께 든다. 먼저 天地에 절을 올리고 부모님, 그리고 부부 순으로 절을 한다. 절이 끝나면 신부는 신랑의 옆자리에 앉되 신랑의 왼쪽 소매를 신부의 오른쪽 소매에 올려놓는다. (座帳: 남자가 여자를 거느린다) 그런 다음 신랑이 붉은 보자기로 싼 저울대로 신부 머리의 빨간 덮개를 들춰내고 깔고 앉는다. (여자의 악기를 없앤다) 다음 만두(餃子: 신부집에서 만들어 신랑집에서 익힌 것)와 장수면(신랑집에서 준비)을 먹는다. 저녁이 되면 喜宴을 열어 손님 접대를 하고 합방을 한다. 합방 전 미혼 남녀들은 이 부부와 장난을 치며 놀기도 한다. 다음날(3일째, 5일째) 신부집으로 가서 신부 측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다. 이때 신부의 친구들이 신랑에게 장난을 치기도 한다.ㄴ)중국의 전통혼례 의상일단 결혼일이 정해지면, 결혼식을 위해 가장 좋은 옷을 선택한다. 오늘날, 홍콩에서는 대부분의 신부들이 결혼식과 손님들을 맞이할 때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입는다.그러고 나서 콰(kwa)라는 전통혼례복으로 갈아입는다.이 옷은 붉은색 비단 또는 수가 많이 놓여진 공단인데,신부는 집에서 전통적인 "신랑맞이하기"나 차마시이제 개방 이후부터는 경제 성장의 여파로 서양식 결혼의 풍습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3)각 국의 현대의 결혼문화(1)한국의 현대의 결혼문화1)결혼의 형태(절차를 중심으로)한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사회 전부분에서 커다란 구조적 변화를 결험하였다. 산업, 경제구조의 변화는 물론이고 가족 구조에 있어서도, 핵가족화가 가속되었으며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변화 속에서 가족 형성의 출발점이 되는 결혼과정 및 양상도 많이 변화하여 온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결혼문화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절차가 간소화 되었지만 여전히 전통적으로 행해지던 관혼상제인 사례(四禮)의 원형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현 한국의 결혼문화를 살펴보고자 한다.ㄱ중매혼 VS 연애혼결혼이 형태는 대개 중매와 연애의 두가지로 나누어진다.-중매혼중매는 조선시대 사례(四禮)의 하나인 의혼(議婚)에 해당된다. 의혼이란 먼저 중매를 시켜 양가를 왕래하면서 여가의 허락을 받아내는 과정이다. 먼저 남녀가 혼인 할나이가 되어 일가 lscjr들 사이에 혼인말이 오가면 상대방을 구하기 위하여 중매인을 시켜 양가를 왕래하며 말을 통하도록하고 여가의 허락을 받아 낸 후 신부측에 사주(四周)를 전달함으로서 비로서 결혼이 결정된다.이러한 조선시대에는 중매없이 직접 통혼하는 것을 수치로 여길 만큼 중매 결혼은 결혼의 합법절 차가 되었으며 배우자의 선택권을 결혼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집안을 대표하는 가부장 에게 있었다.이러한 중매혼의 형태는 지금에도 존재하지만 사회변화에 따라 다양화되어 가고 있다. 즉 과거에 는 중매인이 그 집안과 신분이 두터우며 양가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으며 혼인결정의 선택권은 가부장에게 있었다.그러나 이러한 결혼의 형태는 점차적으로 변화하여 한국보건사회연구원(1992)의 연구결과를 보면 결혼결정에서1964년 이전까지는 전적으로 부모 우세한 상황(39.4%),그것이 다시1970년대 이후에 는 선본인결정, 후부모동의 의
    인문/어학| 2003.06.29| 13페이지| 2,000원| 조회(4,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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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일본의 결혼 문화 평가B괜찮아요
    일본의 결혼문화.서론결혼은 종족 보존의 수단과 사회를 유지 시켜주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또한 결혼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그에 따르는 인륜적 책임 내지는 규범, 도덕, 등의 이행을 두 사람에게 요구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결혼은 한 쌍의 남녀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회가 부과하는 모든 규범적 책임을 받아들일 것을 약속하는 일종의 사회적 계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 글에서는 동아시아, 특히 지리적으로 인접해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유교문화권에한자문화를 가지고 있어 오랜 역사동안 각 나라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한국, 중국,일본의 결혼 문화를 비교. 검토해보고자 한다..본론1.결혼의 유래{http://home.kidp.or.kr/1999/wedding/혼인의 유래고대 중국에서는 예제(禮制)가 있은 후로 남녀가 혼례의식을 거행하지 않고 결합하면 그것을 혼인으로 보지 않았고 또한 그들을 부부로도 보지 않아 그런 이들을 부르는 말도 '처'나 '부인'으로 부르지 안았다고 한다.예전부터 음양오행에 관한 동양의 정신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가 짝을 지어 부부가 되는 일을 음과 양이 만나는 이치로 여겼기 때문에 그 예식에 있어서도 낱과 밤이 만나는 저녁 무렵에 거행했다.이런 연유에서 날 저물 '혼(昏)'자를 써서 혼례(昏禮)라고 했고 후세(한나라때)에 이르러서야 날 저물 '혼(婚)'자와 구분하기 위하여 혼인할 '혼(婚)'자가 만들어져 비로소 '혼례(婚禮)'라고 명명하기 시작했다.예기(禮記)에 따르면 혼(婚)은 남자가 장가를 든다는 뜻이고 인(姻)은 여자가 시집간다는 뜻이므로 '혼인'은 남자가 장가들고 여자가 시집간다는 뜻이라 했고 '혼인지도(婚姻之道)'라 하여 그 예식을 중히 여겼다.현행 우리나라 헌법이나 민법에서도 그 의식을 가리켜 혼인이라고 한다.{http://myhome.shinbiro.com/~jepark/html/default.htm혼인의 유래와 변천원래 혼인의 혼(婚)자는 혼(昏)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혼례는 어두울 때 행하는 것이 예로 되어 아내가 시댁으로 옮겨가는 시기는 시부모와 자신들 부부와의 별거생활이 전제가 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시부모와는 완전히 따로 살기 때문에 재산도 음식도 달리하고 고부간의 관계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아버지 부재기간에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 책임하에 양육되고, 경제적인 부담도 어머니 친정에서 맡는다.2.고대쯔마도이콘하쯔무코이리(사위가 장인, 장모와 대면하여 친자맹세를 하는 의식)로 혼인이 성립, 이후일정기간 동안 처가쪽에서 혼인생활을 갖는 일시적 통혼이다.이 시기의 혼인형태는 거의 남편이 밤마다 아내한테 가는 쯔마도이 식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다니러 오는 부부별거의 형태로, 부부는 각자의 씨족안에서 생활하였다. 이러한 혼인형태에서는 아내는 오로지 찾아오는 남편을 기다릴 뿐인 존재였다. 남편의 경우 아내에게 계속 애정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다니러 오지만, 일단 애정이 식으면 발길을 끊어버리는 것이다.10세기 헤이안 중기가 되면, 부부생활의 초기에만 남편이 아내의 집으로 찾아왔는데 마침내는 상주하게 된다.가마쿠라시대가 되면 처가쪽에 평생 사는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이 지나면 시가로 처자를 맞이하는 혼인상태가 이루어진다.3.아시이레콘이 혼인방식은 혼인성립 축하가 요메이리콘과 마찬가지로 시가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간단한 혼인성립 축하의식을 행한 후 바로 시가쪽으로 옮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바로 호적에 올리지 않을 때도 있고, 며느리의 피로연을 뒤로 미루든가 생략하는 일도 있다.혼인형식상 무코이리콘에서 요메이리콘으로 옮겨나는 과도기에 생긴 방식으로, 며느리의 신분은 아직 친정에 속해 있는 것이다. 혼인생활은 일시적 쯔마도이를 전 단계로서 수반한다.이즈, 도시마의 경우는 시가쪽에서 혼인성립축하를 치른 후 며느리는 낮에는 시가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친정으로 침소 귀가를 한다. 남편은 처가로 다니게 된다. 며느리의 침소귀가가 끝나는 것은 시부모가 사망 또는 은거할 때이고 동시에 며느리가 그 집안의 주부가 되는 때이기도 하다. 며느리의 재물도 이를 기점으로 비로소 처가로 니면, 이처럼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부분 편지를 주고받다가 남자가 여자의 집을 다니면서 관계를 가지고, 그것이 계속 되면 자연히 공인된 부부로 인정받는 것이 보통이었다는군요.(2)현대일본의 결혼문화1)결혼의 형태결혼의 형태는 1940년을 경계로 해서 크게 변했는데, 이 변화는 결혼식이 자택에서 예식장으로 옮겨감에 따리 일어났다.일본의 결혼 형태는 1990년대 이후 약85%이상 연애결혼이고 그 밖의 대부분이 중매결혼, 소수의 사촌간 결혼, 국제결혼 형태도 존재한다. 상대는 학교, 직장, 친구, 선후배, 사촌 등이 있다.일본인이 결혼하는 평균결혼나이는 남자는 만28.5세 여자는 만26.2세이다(1994년)1945년(쇼와 20년)까지는 남편과 아내는 4살 차이가 보통 이었지만, 그 이후는 남편과 아내의 연령이 가까워져서 세 살 차이나 두 살 차이의 부부가 보통이 되었다.{http://www.pusanwedding.co.kr/culture/foreign/index.asp?a_no=408임신 후 결혼일본에서는 연예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이처럼 혼전임신 사실을 당당히 공개하는 일이 다반사이다.그러나 이 같은 현상이 비단 연예계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일반적인 신혼부부들 사이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일이라는 통계가 나왔다.일본 언론들이 후생노동성 통계를 토대로 16일 보도한 데 따르면 이른바 '데키삿타 겟콘'(아기가 만들어져서 하는 결혼)을 하는 커플이 20년 전과 비교해 배로 증가했다.지난 2000년 일본에서 결혼한 부부 사이에 태어난 56만9천명의 첫째 아기들 가운데 결혼 전 임신으로 출생한 아기들이 14만명에 달해 전체의 26%를 차지했다. 1980년에는 이 비율이 13%였다.특히 10대의 경우에는 지난 80년의 47%에서 2000년에는 82%로 크게 늘어나 대부분 임신한 뒤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세에서 24세까지의 연령층에서도 혼전임신 사례가 58%나 됐다.이에 따라 결혼에서 출산에 이르는 기간은 20년 전에는이노의 품목1. 목록(目?)2. 나가노시(長?斗 · ながのし · 전복 말린 것을 얹는 종이) - 건조 식품 중에서도 최고의 진미. 비린내 나는 것이 경사 날에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3. 코소데료(小袖料 · こそでりょう) - 약혼을 증거로 주는 돈을 의미한다. 칸토 지방에서는 기모노를 입을 때 쓰는 띠인 오비에다가 돈을 넣기도 하기 때문에 '오비료' 라고도 한다.4. 토모시라가(友白? · ともしらが · 마로된 실) - 부부가 흰머리가 될 때까지 살라는 뜻.5. 수루메(?留女 · するめ) - 옛날에 장시간 보존 식품이므로 귀중하게 여겨짐.6. 콘부(子生婦 · こんぶ · 다시마) - 자식 운이 있으라는 뜻.7. 카츠오부시(勝男節 · かつおぶし · 가다랭이포) -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많이 썼음.8. 스에비로(末? · すえびろ) - 하얀 부채 끝이 퍼져 나간다고 해서 운이 좋다는 뜻이기도 하나,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때 남자가 부채에 와카(和歌 · 일본 고유형식의 시)를 써서 좋아하는 여자에게 줬다고 한다. 말하자면 프로포즈의 원점이라고 볼 수 있다.9. 야나기다르(家?喜多留 · やなぎだる) - 버드나무로 만든 통으로 술을 담아 2통을 보냈지만 너무나 고가였기 때문에 돈을 넣어 보내게 되어 현재에도 그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 모두 홍백이나 금은색으로 된 끈을 걸쳐 1~9개를 상 위에 올려놓는다.노시는 장수를 상징하고, 가다랑이포와 오징어는 예로부터 경사에 이용되었으며 무사에 출진 때는 카츠오부시(勝男武士)라 이름하여 이것을 주어 식운(式運)을 빌었다고 한다. 다시마(昆布)는 곤부(子生婦)로 표기하여 왕성한 생명력과 자손의 번영을 축복하기 위한 것으로 며느리로 들어와서 아이도 잘 낳고 착한 며느리가 되어 줄 것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애용되고 있다. 삼베실(麻絲)는 토모시라가(하라 표기하고 백년해로의 의미로 부부의 금슬과 건강을 상징하는 것이고, 부채(扇子)는 스에히로(末廣)라 표기하고 그 끈부분이 점점 넓어진다는 번영을 의미한다. 술(柳樽)은 야나기타루(家內喜多留. 혼례식 당일에 신부는 우지가미나 절 등에 가서 참배하거나, 자신의 집의 가미다나 일가의 조상신을 참배하는 일을 각지에서 행한다. 또한 신부측에서는 혼례당일이나 전날 이웃, 친척들을 불러 연회를 여는 곳도 있다. 신도식 결혼식에는 신랑,신부,나코도(중매인) 부부,가족,친족만이 참석한다.-신도식 의례 순서-1) 모든 이들은 식장에 들어가 앉는다. 입장순서는 신랑, 나코도(중매인), 신부,나코도(중매인)부인, 이어 신랑 측 부모, 신부 측 부모, 신랑 측 부모, 신부 측 가족 순서로 한다.2) 식이 시작되면 전원이 일어선다. 간누시(신관)가 누사(신에게 기도할 때, 혹은 액풀이 할 때 쓰는 종이)와 다마구시(비쭈기 나무가지에 닥나무 섬유로 만든 베 또는 종이 오린 것을 신전에 바치는 것)로 액풀이를 하는 동안 가볍게 머리를 숙인다.3) 신랑, 신부가 신전으로 인도되어 간누시와 함께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치고, 한 번 절하고 자리로 돌아온다.4) 산산구도의 술잔의식(三三九度杯)을 시작된다. 신랑은 가장 윗 잔을 양손으로 들고 미코(신이나 신사에 봉사하는 여성)가 따르는 술을 받는다. 이를 세 번에 나누어 마시고 다음은 신부 다시 신랑으로 똑같은 동작이 반복된다. 두 번째 잔은 신부, 신랑, 신부의 순으로, 세 번째 잔은 다시 신랑, 신부, 신랑의 순으로 반복하여 모두 아홉 번의 술잔을 비우게 된다. 이로써 두 사람은 부부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 때 결혼반지를 교환하는 경우가 많다.5) 신랑, 신부는 다마고시 앞에 서서 신랑이 신전을 향해 결혼서약서를 읽으면, 신부는 마지막에 자기 이름을 말한다. 각자 다마고시를 신전에 바친다. 두 사람은 자리로 돌아오기 전에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 치고, 한 번 절하게 되는데, 이 때 참석자 모두 서서 두 사람에 맞추어 행한다.6) 양가를 대표하여 나코도 부부가 야마구시를 바친다.7) '친족결합의 술잔의식'으로 옮겨져 모두 함께 세 번에 나누어 술잔을 비운다.-기독교 결혼식기독교에서는 결혼은 두 사람의 애정에 의입는다.
    인문/어학| 2003.06.29| 26페이지| 2,500원| 조회(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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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작가] 김수근에 대해서... 평가D별로예요
    {김수근은 1931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지만 곧 서울에 올라와 서울 북촌에서 소년 생활을 보낸다. 1950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입학하였다. 그 당시 한국에서의 건축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1952년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2년에서 중퇴하고 일본으로 밀항, 1954년 도쿄 예술대학에 입학한다. 1958년에는 그 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에는 도쿄대학 대학원 석사학위에 진학, 카야마연구실에서 수학하고 1963년에는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다.미국의 「타임」紙에서 ‘한국의 가장 경탄할 만한 훌륭한 건축가’라고 평하기도 했던 건축가 김수근은 ‘건축은 예술’ 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연 김중업과 함께 한국현대 건축의 1세대로 평가되는 김수근은, 경기중 2학년때 영어회화를 가르쳤던 미군병사의 영향으로 건축에 눈을 뜨게 된다.그 뒤, 일본말로 된 세계문학전집을 읽고,明暗을 알기 위해 아버지를 졸라 거금을 주고 산 라이카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수학 공부에 몰입했다.60년 일본인 아내 야지마 미치코(矢島道子)와 함께 귀국한 그는 남산 국회의사당 설계공모에서 1등으로 당선, 단번에 주목 받는 건축가로 떠올랐다. 그 이듬해에는 주식회사 공간연구소의 전신인 김수근 건축연구소를 창설했다.김수근은 55년동안 그의 200여개 이상의 뛰어난 건축물을 설계했다.이들은 거칠고 황량한 우리의 도시에 건축의 고귀한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으며, 한국 건축의 새로운 이념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건축가로서뿐만 아니라 건축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장르를 통합하려한 한국의 대표적 문화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다.1966년 종합 예술지 공간이 창간되는 것은 그가 모색하던 공간의 개념을 대리하는 매체이기도 하며 한국 문화예술의 본질을 캐는 학습장이었다. 김수근이 건축에 전념하지 않고 예술영역과 관계하여 미술, 음악, 공연예술이 풍성해지는 자리가 마련 되었다.김수근의 항성이며 궁극성은 공간의 공간이다. 공간 사옥은 그 면모를 3단계에 걸쳐 완성되기 위해 1971년부터 1977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거기에는 그의 궁극성을 향한 1. 조형 2. 한국성 3. 공간 4. 자연 5. 테크놀로지 6. 종교는 시간적인 상황의 겹이며 진화하는 인식의 켜가 점철되어 있다.한국의 현대 건축 모더니즘이 김중업을 가졌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으로 평한다면 김수근은 한국의 모더니즘의 폭을 넓혔다는 데 중요한 자극으로 평하고 있다. 두 한국의 근대 건축은 이 두 건축가에 의해 조형과 공간을 세계화한 것으로 평하고 있다.건축설계에서 제 1공간은 생활의 공간이고 제2의 공간은 노동공간이다. 제 3의 공간의 Mood space이다. 여기에서 김수근의 Mood space는 조형예술적 개념으로 이해된다. 건축가 김수근은 Mood space의 개념에 대해서 언제나 새로운 해석을 해 볼 수 있다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시도중에 나온 새로운 해석이 「자궁공간」을 「궁극공간」으로 비유해 보는 것이었다. 태아를 위하여 모든 것을 갖춘 것이 자궁공간이다. 가장 편안한 공간이다. 가장 안정된 공간이다. 그러면서도 태아의 성장에 맞추어 변화하는 탄력적 공간이다. 여유 있는 공간이다. 유연한 공간이다.건축가 김수근이 말하는 궁극공간은 인간에게 자궁공간과 같은 편안함과 여유를 줄수 있는 공간이다.∴자궁공간 : ‘집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나의 집은 자궁(子宮)입니다. 내 집은 자궁이고 자궁의 집은 어머니이며 어머니의 집은 가옥이며 집의 집은 환경입니다. 집을 주택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환경입니다. 환경이 철학적으로는 공간이 되겠는데, 공간은 집의 집의 집입니다…”김수근을 말할 때 원서동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4층의 검은 2층 건물 공간(空簡) 사옥을 빼놓을 수 없다. 그 건물은 공간연구소의 120명 직원뿐만 아니라 숱한 대학생, 장안의 문화, 예술 인사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큰 사랑방 구실을 해냈던 것이다.또한, 그는 계속되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건축, 환경 전문 월간지「공간」을 펴냈고, 77년에는 소극장을 개관하여 전위극, 무용, 전통, 연희 등 각종 공연을 연간 500여회씩 치뤄 내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물놀이패 김덕수, 춤꾼 공옥진 등도 그가 소극장 ‘공간사랑’을 통해 발굴해낸 인물들이다. 여기에서 ‘건축은 언어가 아니라 시멘트, 목재, 돌, 철재, 강철, 알루미늄, 세라믹, 유리를 사용해서 짓는 詩이며 건축가 중에 시, 소설 모르는 놈은 별 볼일 없다’고 단언한 그의 종합예술가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그는 한국 전통건축물의 아름다움을 흠모하고 우러러 보았다. 일제에 의해 단절되었던 우리 전통의 흐름을 서구 건축문화와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70년대에 이르러 한국건축이 가지는 공간과 조형의 본질적인 멋인 인본주의적, 자연주의적 건축언어를 만들어내었다.대학교수, 국전 심사위원, 공간연구소 대표이사, 국민대 조형대학장, 올림픽위원회 문화위원, 한국은행 총재고문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게 활동했던 그의 꿈은, 도자기, 회화, 건축, 조각 등 한국의 미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그의 너무 이른 죽음으로 생전에 이루어지지 못했다.한국 현대건축의 효시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수근은 1986년 6월 간암으로 숨을 거두었다.【김수근의 건축개념】-1960년 김수근은 다른 건축가들의 건축언어를 차용하던시기였다.예) 요시무라 준조--성북동 주택/회현동 주택 리차드 노이트라--힐탑바 르꼬르뷔지에/단게 겐조--자유센터(김수근 건축론 p54)-1970년대는 김수근의 건축론이 체계화 된다.▶ 자갈리즘(공간을 잘게 잘라나아가는 방식) - 퐁피두센타 현상안에서 사용(이후, 현실적으로 보다 구체화되어 공간사옥을 설계하게 됨); 건축환경8903-88▶간(間) - 사상가 마샬 맥루한의 개념인 "해프닝이 있는 여유공간", "일과 놀이가 합일이 되는 창조적인 공간"의 개념을 김수근이 영향을 받아서 한국의 문방공간, 궁극공간으로 전용되어 1970년대 초의 김수근의 주요 건축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 간(間)이란 개념이 고"사이가 있다"라는 의미이고, 이것은 곧 "여유가 있다.","놀이가 있다."라는 의미로 전환 될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 사이(間)를 잇는 사람의 가치:결국 인간은 개인만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성장을 위하여 사는 것이라는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곧 인간의 가치를 올리는 일이다.【김수근 인생철학 공간】▶궁극공간에서 네가티비즘 범태평양상 수상연설을 통해 제 3공간과 궁극공간에 대해서 이야기 함 -인간이 먹고, 자고하는 등의 기본 생활공간은 제1공간, 생산활동을 위한 공장, 사무실과 같은 제2공간외 에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고 사색과 창조를 위한 공간으로서의 제 3공간, 즉" 궁극공간"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모태공간"이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이 아늑한 공간이면서 그속에서 항상 해프닝이 일어날 수 있는 가변적 공간을 뜻한다. 가장 아늑한 공간, 모태공간 혹은 움스페이스의 의미가 네가티비즘을 정리되면서 한옥에서 그런 공간을 찾으려고 하였고, 인간의 입장에서 자연이나 건축을 볼것이 아니라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해결 되어야겠다는 의도였다.·1970년대 : 「 조형의지의 완숙미와 자기어휘 」에의 고집이 뚜렷했던 시기로 해석된다.70년대초 공간사옥(71)을 필두로 서울대 예술관(74), 덕성여자대학 캠퍼스(76), 마산성당(77), 문예회관(77), 샘터사옥(77), 해외개발공사(77)등으로 이어지는 작 품행로 위에 건축적 어휘에의 자기정립, 작품의 성격을 틀잡은 건축활동의 가장 중심지대가 되어지고 있다.·1980년대 : 공릉사옥(85) 및 국민은행 전산본부(81), 법원청사(85), 뉴 자이안트 호텔(85)등대규모 건축계획 속에서 70년대의 두터운 어휘를 깨는 새로운 기법들이 엿보이고 있다.1969년부터 김수근이 가장 관심을 기울인 문제가 「인간이 필요로 하는 생활공간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건축이 어떻게 하면 자연환경의 균형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켜 나갈 수 있느냐」는것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연과 기계와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건축행위가 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말이암아 어떤 부정적 결과가 야기」되는가, 이런 「부정적 측면도 아울러 고려」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요구조건만이 아니라 자연의 필요조건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건축사상을 그는 「네가티비즘」이라고 표현했다.『네가티비즘이 시사하는 공간개념들은 세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생활공간의 한계성에 관한 것으로, 둘째는 공간의 이용을 계획하고, 공간을 설계하는데 관계되는 윤리문제에 관한 것으로, 그리고 섯째는 공간설계에 있어서 공간의 기능과 양식 또는 형태에 관한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네가티비즘의 공간개념들1. 생활공간의 한계성 : 소모되지 않은 자원이 무제한 공급 될 수 없다.가. 적정공간: 필요이상의 공간을 차지해서는 안된다.나. 자연공간: 이용 한계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공학/기술| 2003.06.19| 5페이지| 1,000원| 조회(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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