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학년도 1학기한국의 발효문화-그 대표주자, 김치과 목 :담당교수 :학 과 :학 번 :이 름 :제출날짜 :음식은 맛으로 먹고 맛은 혓바닥으로 감지한다. 혓바닥에는 특정한 맛을 감지하는 영역이 따로따로 발달돼 있는데, 이를 맛을 감지하는 영역이라 하여 미역(味域)이라 한다. 이를테면 소금 같은 짠맛은 혀끝에서 느끼고 쓴맛은 혀뿌리에서 감지한다. 인체의 부위는 쓰면 쓸수록 발달하고 쓰지 않으면 않을수록 퇴화하듯이 맛을 감지하는 미역도 매한가지다. 매운 음식을 많이 잘 먹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혓바닥에는 매운맛 미역이 발달해 있고, 매운 음식 못 먹고 안 먹는 일본 사람들 혓바닥에는 매운맛 미역이 퇴화돼 있다. 한데 우리 한국 사람의 혓바닥에는 딴 나라 사람들에겐 거의 퇴화하고 없거나, 있더라도 미미한 특정한 맛만 감지하는 한 미역이 별나게 발달돼 있다. 음식이 삭아서 우러나는 발효미(醱酵味)가 그것이다. 화학용어로 발효로 생성되는 아미노산 맛인 것이다. 한국 사람의 혓바닥에는 서양에서 말하는 오원미(五原味), 즉 짜고 맵고 시고 달고 쓴 맛의 감지미역보다 발효미역이 유전적으로 몇 곱절 발달돼 있다 한다. 그도 그러할 것이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 동안 먹어 온 음식 가운데 80∼90%가 발효음식이니 발효미역이 유전적으로 발달, 정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역사적으로 먹어 온 발효음식의 두 기둥이 장(醬)류와 김치류다. 장류는 간장·된장·막장·고추장·담뿍장·쪽장·집장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밥상에 오르는 모든 국이나 찌개류에 된장·고추장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또 그 밖의 모든 찬에 간장이 들어가지 않는 요리를 찾아볼 수 없다. 곧 한국 음식의 기조는 장이라 해도 대과는 없다. 삭힌 맛으로 먹는 김치도 배추김치·무김치·나박김치·열무김치·보쌈김치·총각김치·깍두기·물김치·동치미·파김치·쓴김치·갓김치 등등, 옛 어머니들이 서른여섯 가지 장과 김치를 담글 줄 모르면 시집 못 간다 했을 만큼 음식문화의 기조를 이루었던 게 발효음식이다. 그 밖에도 사시사철 한 사계절이라는 기후의 특성으로 인해 동절기 식생활에 대비한 산채류나 야생채류의 저장법이 발 전되면서 오늘날의 김치에 이른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유래한 김치는 고려시대 발전기를 거쳐 조선에 들어와서 오늘날과 같은 김치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이렇듯 김치는 우리민족의 변천사와 궤를 같이 하며, 끊임없이 발달한 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치는 단순히 음식의 차 원을 뛰어넘어 문화이며, 역사인 것이다.김치의 역사는 정착 농경생활을 시작한 삼국형성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여진다. 동절기 소금의 발견과 더불어 동절기에 영양섭취의 주요한 방법이었다. 제민요술(AD439-35)에 의하면, 배추는 소금 물에 담궈 두었고, 순무는 말려서 소금을 친후 기장죽, 보리누룩, 소금을 넣어 담궜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확실한 문헌기록은 없지만, 소금절임이 성행했던 점에 비추어 초기 형태의 김치 가 발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는 '한약구급방'에 처음으로 배추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 시대에는 김치재료로 순무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장으로 절인 순무짱아치는 여름용으로, 소금에 절인 순무절임은 겨울 및 봄·가을 용으로 담궈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김치가 계절에 따라 먹는 조리 가공 식품으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조미료의 발달로 인해 단순한 소금절임이 아닌 향신 료를 섞어 만든 김치가 생겼다. 조선초기에는 고려의 김치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발 전했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초겨울 배추와 무를 절여 저장한다는 침장고(沈藏庫) 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세종실록에서도 김치를 뜻하는 저(菹)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때는 고려후기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소금절임의 김치가 아니라 각종 향신료가 많이 사용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김치가 발전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후기다. 16세기 일본에서 도입된 고추가 18세기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오 늘날과 같은 김치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19세기 김장김치에 적합한 결구배추가 중국으로부터 도입되 어 본격적 담그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신선한 재료 와 적절한 저장온도 그리고 적당한 절이기와 연도 조절이라 할 수 있다.4) 숙성원리김치는 재료에 붙어있는 미생물이 씻고 절여지는 동안 씻겨 나가기도 하지만 일부는 남아서 숙성되 는 동안에 특유의 맛과 향을 내게 된다. 대표적인 것으로 젖산균과 젖산은 처음 김치를 담글때부터 점차 증가하여 먹기에 알맞은 정도로 김치가 익었을 때는 발효유인 요구르트의 일일 젖산균과 젖산양 보다 훨씬 더 많이 생성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각종 유기산은 채소에 함유된 효소나 미생물들의 작용에 의하여 생성되므로 김치재료의 종류와 양, 소금의 농도, 숙성온도 및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김치의 상큼한 맛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성분 인, 탄산가스의 생성또한 김치재료에 함유되어 있는 미생물의 종류와 특성 및 생육 조건 등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한편, 김치의 중요재료인 젓갈류는 김치의 단백질 급원인 동시에 각종 유기 아미노 산으로 분해되어 김치의 감칠맛과 같은 독특한 맛을 내게한다.그 외에도 김치의 숙성중 비타민 C와 비타민 B군과 같은 수용성 비타민의 함량이 증가한다. 또한 김치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식이성섬유소는 젖산, 유기산과 함께 인체내 대장의 정장작용을 원활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같이 김치가 숙성되는 과정에서 해로운 균이나 기생충의 알 등은 사멸 되고 소금에 견딜 수 있는 젖산균, 각종 유기산, 알코올, 탄산가스 등이 생성된다. 또한 단백질의 각 종 아미노산류로의 분해 및 수용성 비타민류의 상승등의 복합작용에 의하여 상큼한 신맛과 탄산미를 비롯한 감칠맛 등의 독특한 맛을 내게 된다.5) 김장김장은 담그는 방법과 시기 또는 재료의 차이는 있으나 어느 지역, 어느 가정에서나 꼭필요한 겨울 설의 중요한 영양공급원으로 겨울의 반양식 이라고 불릴 정도이다.김장을 담그는 시기는 기후에 따라 다르지만 재개는 입동(立冬)부터 소설(小雪)에 걸쳐 실시된다.김장의 재료나 특징도 기후나 풍습에 따라 형성되어 온 식습관 이 다르기 때문에 지클, 야쿠르트 등이 대표적인 음식이라 할 것이다. 특히 김치는 숙성의 과정을 거치는 젖산 발효식 품으로서 젖산균이 증가하면서 병원성 미생물을 살균하고, 채소류에 들어있는 당을 젖산으로 바꾸어 김치 맛을 산뜻하게 한다. 김치발효에 관여하는 젖산균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초기에는 류코노스 톡크 메센테로이데스(Leuconostoc mesenteroides)라는 균이 작용하여 김치를 알맞게 익혀 준다. 그 리고 중기와 후기에는 락토바실루스 플란티룸(Lactobacillus plantarum)가 작용하여 다른 해로운 균 을 사멸시키지만 산을 너무 많이 만들어 김치를 시게하는 원인이 된다. 전자는 Dextran(텍스트란)이 라는 식이섬유를 만들어내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깍두기에 묻어나오는 끈적끈적한 국 물이 바로 덱스트란이다. 이는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으며, 소화와 변비에 효과가 있습니다. 후자는 내산성과 내담즙성이 매우 강한 균으로서 유럽에서는 야쿠르트에 일부러 첨가하고 있다. 이외 학자 들에 의하면 김치에는 30여종의 균이 살고 있으며, 이는 외부적 온도, 습도, 숙성 정도에 따라 균의 비중이 달라진다. 김치의 젖산균은 5℃에서 50일까지 계속 증가하며, 이후 급격히 감소한다. 그래서 50일째정도 숙성이 된 김치가 제일 맛있고, 영양분도 제일 풍부하다. 김치 젓산균의 가장 큰 장점은 김치가 안전한 발효식품으로 숙성하는 것을 도와준다는데 있다. 김치는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채소 를 적절하게 절이기만 하면, 자연발생적으로 다량의 젖산균이 자람으로써 몸에 이로운 식품이 되도 록 만들어 준다. 서양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야쿠르트는 몸에 해로운 대장균이 자라기 쉽기 때문에 우유에 대한 인위적인 살균과 멸균작업을 해야하지만, 김치는 채소와 젓갈, 소금, 고춧가루 등이 섞 인 그 자체 내에서 해로운 균을 살균하기 때문에 따로 살균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 또한 김치는 젓 갈류에서 공급되는 아미노산과 고추, 마늘, 생강, 조미료 등에 들어있는 여러 종류의 성분이 더 없는 상태이 다. 김치의 특성은 일반적으로 김치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200여종이 넘는 김치의 다양성 은 지역 및 계절별로 생산되는 채소원료가 다르고, 양념의 종류, 배합비율 및 숙성방법이 매우 다양하 며, 또 같은 지역일지라도 각 가정마다 전래의 독특한 방법으로 담그기 때문에 솜씨에 따라 각양각색 이며 식생활 양상의 변화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김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만큼 각 지방의 기후와 재배작물에 따라 다양한 특징을 보이고 있 다. 지역 특산물에 따라 김치를 담그는 주재료에 따라 다양한 김치 종류가 생겼으며, 또한 저장방법등 도 지방색을 보인다.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사시사철 계절 감각에 맞는 재료를 이용 하여 김치를 담그는 음식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봄에는 햇배추나 미나리, 얼갈이 배추 등으로 김치를 담그고, 여름에는 열무나 오이를 주재료로 한 김치를, 가을에는 고추나 깻잎, 쪽파 등을 이용한 김치 를, 그리고 겨울에는 양념을 많이 쓴 김장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다.특히 겨울에 담그는 김장 김치는 겨울철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의 보충에 대단한 역할을 한다. 이렇 듯이, 지역적 차이에 의한 김치가 있듯이, 계절에 따라 만들어 지는 김치의 종류 또한 대단히 많다.1 지역별 김치ㆍ서울,경기도우리나라에서는 서울 개성 전주의 세 군데가 음식이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서울과 경기는 지역자체에서 나는 산지 특산물은 별로 없지만, 전국의 다양한 산지 특산물이 집결되는 곳이기 때 문에 음식이 다양하고 사치스럽다. 서울 음식의 간은 짜지도, 맵지도 않은 적당한 맛을 지니고 있으 며, 양반이 많이 살던 고장이라 격식이 까다롭고 맵시도 중히 여기며 의례 적인 것을 중요히 하여, 궁중 음식이 많이 전해져 오고 있다. 궁중음식의 형태를 띄는 고춧잎깍두기, 오이소박이, 장김치 등 이 독특하게 만들어져있다. 이외 전국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만큼, 김치의 종유로 매우 다양하여 배 추김치,나박김치,백김치,열무김치,동치미,깍두기,있다.
학년도 학기한국의 떡{과 목 :담당교수 :학 과 :학 번 :이 름 :제출날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기쁜일이나 슬픈일이 있을때와 행사나 의례때에 꼭 떡을 만들어 의미를 두었다. 떡이란, 대개 곡식가루를 반죽하여 찌거나 삶아 익힌 음식으로, 농경 문화의 정착과 그 역사를 함께 하는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 음식 중의 하나이다. 식생활의 주된 식품이 곡식이다 보니 자연히 곡식으로 만드는 떡이 밥과 함께 대종을 이루게 된 것이다. 떡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만큼 떡에 얽힌 속담도 많다. 예를 들면 떡 주무르듯 한다 는 말은 떡 만드는 솜씨에 빗대어, 뜻한 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고,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라는 말은 떡이 곧 맛난 것, 좋은 것임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이렇게 우리 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떡에 대해 어원, 역사, 풍속, 조리도구, 만들기 기초, 그리고 떡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자.1. 떡의 어원떡이란, 대개 곡식가루를 반죽하여 찌거나 삶아 익힌 음식으로, 농경 문화의 정착과 그 역사를 함께 하는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 음식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떡은 그 어원을 중국의 한자에서 찾을 수 있는데, 한대(漢代) 이전에는 떡을 '이(餌)'라 표기하였다. 이 당시는 중국에 밀가루가 보급되기 전이므로 떡을 쌀, 기장, 조, 콩 등으로 만들었다. 또, 한대 이전의 문헌인 에는 '구이분자(救餌粉咨)'라는 표기도 보인다. 조선 시대의 문헌인 에는 이에 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곧 주에 이르기를 "합쳐 찌는 것이 이(餌)이고 만드는 것이 자(咨)이다."라고 했던 바, 이(餌)는 찧어 가루로 만든 다음에 반죽을 하므로 "떡으로 만든다."고 하였으며, 자(咨)는 쌀을 쪄서 매에 문드러지게 치는 까닭에 "합쳐서 찐다."고 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구(救)란 볶은 콩이고, 분(粉)이란 콩가루이므로 찹쌀이나 기장쌀로써 먼저 가루를 만들어 볶은 콩을 얹어 만든 떡이 구이(救餌)이며, 찹쌀과 기장쌀을 먼저 쪄 쳐서 만든 는 기록이다. 여기서 말 하는 떡이 어떤 종류의 떡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깨물어서 잇자국이 선명하게 날 정도라면 곡물을 쪄 다시 쳐서 만든 흰떡이나 인절미 및 절편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같은 책 에는, "백결선생은 신라 자비왕대(慈悲王代, 458-479) 사람으로 경주에 살았다."는 말과 함께 세모(歲暮)가 되어 이웃에서 떡방아 소리가 나, 부인이 가난하여 떡을 치지 못함 을 안타까워하자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내어 부인을 위로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떡도 떡메로 쳐서 만든 흰떡ㆍ절편ㆍ인절미 등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록은 이 시대에 이미 연말 에 떡을 하는 절식(節食) 풍속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그런가 하면 에는 "공사(公 事)로 갔더니 응당 대접하리라 하고 설병(舌餠) 한 합과 술 한 병을 가지고 ."라고 기록하였는데, 여기 서 '설병'이란 떡이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떡이 구체적으로 어떤 떡을 의미 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설병(舌餠)의 '설(舌)'자가 '혀'를 의미하므로 혀의 모양처럼 생긴 인절미나 절편을 생각해 볼 수 있고, 또 그 음(音)으로 미루어 설병(설병) 곧 설기떡을 생각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이 밖에 에는 "조정의 뜻을 받들어 그 밭을 주관하여 세시마다 술ㆍ감주ㆍ떡ㆍ밥ㆍ차ㆍ과실 등 여러 가지를 갖추고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보 아 제향 음식의 하나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한편,우리의 상고시 대음식을 전수해 간것으로 알려진 일 본의 정창원문서(正倉院文書)에는 대두병(大豆餠, 콩시루떡)ㆍ소두병(小豆餠, 팥시루떡)ㆍ이식( 食)ㆍ전 병(煎餠) 등의 이름이 보인다.따라서, 고려 시대 이전에 이미 치는 떡(인절미ㆍ절편ㆍ흰떡), 찌는떡(백 설기ㆍ콩시루떡ㆍ팥시루떡) 등과 함께 증편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이식, 기름에 지져 만드는 전병 등 이 만들어 졌으리라는 추정을 가능케 하고 있다.(3) 고려시대삼국시대에 전래된에는 관혼상제의 풍습이 일반화되어 각종 의례와 크고 작은 잔치, 무의(巫儀) 등에 떡이 필수적으로 쓰였다. 또 고려시대에 이어 명절식 및 시절 식으로의 쓰임새도 증가하였다.이때 주로 만들어진 설기떡류로는 기존의 백설기, 밤설기, 쑥설기, 감설기 외에 석탄병(惜呑餠), 잡과 점설기, 잡과꿀설기, 도행병(桃杏餠), 꿀설기, 석이병, 괴엽병(槐葉餠), 무떡, 송기떡, 승검초설기, 막우 설기, 복령조화고, 상자병, 산삼병, 남방감저병, 감자병, 유고, 기단가오 등이 등장하였다. 특히 기단가 오와 유고는 이 시기에만 만들어졌던 떡이다. 기단가오는 메조가루에 삶은 대추, 콩, 팥을 섞어 무리로 찐 떡(,1815년)으로, 차진 메조가 생산되는 북쪽 지방의 향토 떡이기도 한다. 한편 유고는 참기름에 소금을 약간 넣어 쌀가루에 섞은 다음 잣과 대추를 잘게 썰어 고명으로 얹어 시루에 찐 것으 로(, 1800년대 중엽) 오늘날의 백편과 유사하다.시루떡 또한 팥시루떡, 콩시루떡 외에 무시루떡, 꿀찰편, 청애시루떡, 녹두편, 거피팥녹두시루편, 깨찰 편, 적복령편, 승검초편, 호박편, 두텁떡, 혼돈병 등이 나타났다. 이중 두텁떡은 찹쌀가루를 쪄서 유자 청 등의 소를 박고 볶은 팥가루고물을 얹어 찐 것으로 조리법이 한층 발달하여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최고의 떡이다. 의 혼돈병은 찹쌀가루, 승검초가루, 후춧가루, 계핏가루, 건강(乾薑), 꿀, 잣 등을 사용하여 두텁떡과 유사하게 조리한 것이다. 그러나 (1776년)의 혼돈병은 이름만 같을 뿐 내용은 매우 다르다. '메밀가루를 꿀물에 타서 줄처럼 하여 질그릇 항아리에 넣어 입구 를 단단히 봉하고 겨불 속에 묻는다'고하여 제법이나 재료가 다른 떡들과 구별되고 있다.찌는 떡뿐만 아니라 치는 떡도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인절미는 찹쌀을 쪄서 치는 단순한 형태였으나 점차 쑥, 대추, 당귀잎을 넣고 쳐서 색다른 맛을 음미하게 되었다. 또한 조인절미라하여 처음부터 찹쌀 에 기장조를 섞어 찌기도 하였다. '긴 다리같이 만든 떡(,1849년)'이었던 흰지로 축소되어 가는 형편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떡은 아직도 중요한 행사 나 제사 등에는 빠지지 않고 오르는 필수적인 음식이기도 하다.3. 떡 관련 풍속(1) 시식과 절식세시가 뚜렷한 우리나라의 옛 풍습에서는 명절 때마다 해먹는 음식이 다르고 또 춘하추동 계절에 따 라 그 시기에 새로 나는 음식을 즐겼다. 철식은 다달이 있는 절기에 따른 명절 음식을 말하고, 시식은 사철에 따라 나는 식품으로 만드는 음식을 말하는데 이것은 떡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거의 달마다하 게 되는 떡은 그 달에 낀 명절과 관계가 있었으며 떡을 해서 조상에게 바치거나 아랫사람에게 하사하 거나 친척끼리 주고 받았다.먼저 음력으로 정월 초하룻날인 설날에는 정초다례 (종묘나 가묘에서 제사 지내는 것)를 올리는데 이 때는 메 (밥) 대신에 가래떡으로 끓인 떡국을 올리고 절편을 크게 만들어 편틀에 올려 차례를 지낸다. 하얀 떡은 순수무구한 경건함을 나타낸 것이다. 정월 대보름에는 약식을 만들어 먹는다. 이월 초하루인 중화절에는 지난 가을에 매달았던 곡식을 내려서 떡가루를 만들어 송편을 빚는다. 큰 것은 손바닥 만 하게 작은 것은 달걀 만하게 만드는데 속은 팥고물을 넣고 솔잎으로 격자놓아 쪄내어 솔잎을 떼고 참 기름을 바른다. 이 날은 특히 노비들에게 나이수대로 송편을 나누어 먹이고 하루 일을 쉬게 한다. 그래 서 중화절을 노비일 또는 머슴날이라고 하였다.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는 삼월 삼짇날은 봄이 왔음을 일러주는 날이다. 겨울 내내 갇혀 살 다가 화창한 봄을 맞아 새 싹이 나고 만물이 소생하며 해방된 기쁨을 만끽하는 명절인 만큼 진달래 꽃 잎으로 화전을 부쳐 먹는다. 집안의 우환을 없애고 소원 성취를 비는 산제를 드리는 날이다. 사월 초파 일에는 석가의 탄생을 축하하는 뜻으로 그 때에 막 싹이 돋은 어린 느티나무 잎을 멥쌀가루에 섞어 느 티떡을 쪄먹는다. 오월 단오는 천중절 이라고 하여 거피팥시루떡을 만들어 단오차사를 지낸다. 이 날 만드는 수리치떡은 절편처럼 수리치를 넣고 떡을 여기서는 전통적으로 떡을 만드는데 있어서 사용된 도구 가운데 중요한 것 몇가지만 알아보자.{(1) 절구와 절굿공이떡가루를 만들거나 떡을 칠 때 이용된다.절구는 통나무나 돌의 속을 우묵하게 파서 만드는데, 그 구멍에 곡식 따위를 넣고 절굿공이로 찧는 것이다.절굿공이는 절구의 종류에 따라 나무절구에는 나뭇로 된 절굿공이, 돌절구에는 무쇠나 돌로 된 절굿공이가 각각 쓰인다.절굿공이 모양은 위아래가 둥글고 손잡이 부분인 중앙 부위만 패여 있다. 절굿공이는 대개 한 가정에 2개씩 구비하게 되는데, 이는 한 절구 앞에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맞공이질을 하기 위함이다. 한편, 절구질을 한 사람이 할 때에는 께낌질 이라고 하여 다른사람이 나무주걱 같은 것으로 곡물을 뒤집어 주기도 한다.{(2) 맷 돌곡식을 가는 데 쓰는 기구이다. 떡을 할 때에는 고물로 얹을 거피팥고물이나 거 피녹두고물을 만들 때 쓴다. 멧돌의 형태는 둥글넓적한 돌 두개가 포개져 있다. 이 가운데 위짝의 것은 '암쇠'라 하고, 아래짝의 것은 '수쇠'라 하며, 위아래 짝을 연결해 주는 것을 '중쇠'라 한다. 또한 윗돌에는 구멍이 뚫려져 있는데, 이 곳으 로 갈 것을 넣어 윗돌 옆에 붙은 나무손잡이로 돌리면 갈리게 된다{(3) 안반과 떡매흰떡이나 인절미를 칠 때 쓰는 용구이다. 곧 안반 위에 찐 떡을 놓고 떡메로 여러 번 내려치면 곱고 매끄러운 떡이 만들어진다. 떡을 칠 때 에는 힘이 센 남정네들이 안반에 놓인 찐 떡을 떡메로 치고, 아낙네들 은 떡이 고루 쳐지도록 손에 물을 묻혀 가며 접어 넣어 섞어 준다.{(4) 시루와 시룻밑시루는 떡을 찔 때 쓰는 그릇이다. 그리고 시루밑은 시루에 떡가루를 안칠때 시룻구멍을 막아 시루 안의 것이 새지 않도록 하는 도구이다. 시루의 모양은 둥글넓적하고 위가 벌어져 있으며, 바닥에는 김이 통하 도록 원혀의 구멍이 중심에는 크게 주변에는 작게 뚫려 있다. 이 구멍 을 통해 뜨거운 증기가 올라와 시루 안의 음식이 쪄지게 되는 것이다.{(5) 솥과 겅그레솥은 떡을 찌거나 떡고물 등
《교육학 개론》“한국 교사 문화의 스테레오 타입”식품영양학과 // 200161199 // 이지원교사문화라는 용어는 주로 교사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교직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 혹은 성향 등을 나타낸다. 이런 교사 문화에는 독특한 스테레오타입이 나타나는데 사회적으로 그리 긍정적으로 바라보진 않는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까?전반적인 교사들의 분위기가 자기에게 주어진 수업이나 학생 생활지도, 기타 업무의 영역에서 기본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지만, 여기에 머물고 더 이상 깊이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처음 교직에 들어와서 3~4년 정도는 아이들에게 열정적이지만, 혼자만 열정적인 것을 주변에서 그렇게 곱게만 보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열심히 하다보면 주위에서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를 주고 교장과도 부딪히는 일이 자주 생긴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한번 교육에 들어오면 평균 35년 정도 교사를 하게 되는데, 이 일에 얼마나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교육의 질어 엄청나게 차이 난다. 하지만 사명감이나 교육적 열정 없이 교육에 임하더라도 기본적인 교사의 신분을 유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 가운데서, 사명감과 열정의 문제를 순수하게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만 맡겨놓는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학교는 학교문제를 외부에 알리는 것을 꺼린다. 교사 모두 문제를 알고 있어도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우리 학교가 자신이 교장이 되지 않는 한 어떠한 좋은 생각이나 역량이 있어도 전체 학교 발전을 위해 펼치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오히려 학교의 문제를 말하고 밝히는 교사들의 설자리를 없애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연약함이든 여러 환경의 영향이든 한번 이러한 사명감과 열정을 놓치고 나면 그냥 이런 것 없이 최소한의 책임만 다하는 것에 안주해 버리고 만다.교사들에게 수평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 즉 교사 소모임의 단절과 약화 또한 교사문화의 한 스테레오 타입이다. 교사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날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교사 소모임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교사 소모임은 그 모임 형태가 교원단체의 분회이든, 교과 혹은 교육 연구 모임이든, 종교적인 성격을 지닌 모임이든 정기적으로 모여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나누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모임을 말한다. 이러한 모임에 참여하는 교사들은 이 모임을 통해 늘 자신을 새롭게 하고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들을 극복해 가지만 그렇지 않은 교사들은 현실 가운데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결국 교사 소모임을 만들거나 있는 모임을 찾아가서 자기의 연약한 부분들을 채워가는 작업인데, 이 작업 역시 교사 개인의 몫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교사들의 자발적인 소모임 활동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작업은 정부의 몫일 수 있는데 우리 교육계는 오랫동안 이러한 모임을 불온시하고 탄압하고 억누르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어느정도 이러한 모임 탄압 분위기는 사라져지만 그때 형성되었던 교사들의 수종적인 관성이 남아 있어서 이런 소모임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관료화된 학교 구조 또한 교사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의 학교도 교육기관으로서의 자율성을 갖기 보다는 철저히 국가 주도적인 관료제적 성격을 갖고 있다. 우서 s수업만 하더라고 국가가 제시한 교육과정과 입시라는 구조, 과열 경쟁적인 교육 분위기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새롭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거나 새로운 평가를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학급운영이나 생활지도 면에서 무언가 새로운 시도들은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학교장의 책임론 그러다가 사고나면 당신이 책임 질거야?)과 복종론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교육에 임하게 되어있어)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분명히 자신의 교육적 양심과 교사로서의 전문성에 비추어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아이들이 좋아하고 교육적 효과를 볼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개별 교사들의 창의적인 노력들은 관료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사장되기가 일쑤이다. 학교가 관료적인 다른 면은 바로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행정적인 업무이다. 학교는 교육부의 말단 행정기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각종 보고와 시행해야할 공분들이 많이 주어지는데 이러한 행정 잡무들은 교사들로 하여금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아간다, 이런 관료적 학교 분위기는 이미 이런 분위기 가운데 충분한 좌절을 맛보고 오히려 그 속에 동화된 선배 교사들의 분위기로 형성되어 있고 이러한 분위기가 또 다른 압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면 학교장의 압력 외에도 동료교사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학교의 불합리한 관행에 도전하려면 무언의 압력을 받게 된다. 이러한 벽에 몇 번 부딪히고 나면 웬만큼 강단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자신의 교육적 열정과 소신을 내려놓게 된다. 그리고 자기만의 교육적 열정과 소신을 주장하지 않고 전체적인 학교의 분위기에 맞추는 것이 가장 쉽게 교직 생활을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것에 굴복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관성에 길들여져 나중에는 벗어나기 힘들어 지는 것이다.
( 이데올로기, 헤게모니, 문화자본 )이데올로기, 헤게모니, 문화자본. 이중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나머지 두 단어는 참으로 낯설다. 하지만 정작 익숙한 이데올로기 마저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다. 아니, 많이 사용하고 많이 들어오면서도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사회에서 어떠한 작용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굳이 책을 찾아보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그 뜻을 대략 짐작해서 이해하고 사용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우린 이 이데올로기로부터, 그렇게 수많이 이 단어를 들어온 만큼, 해리 되어 있을 수는 없다. 이렇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 삶에 크게 작용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그 이데올로기론 안에서 꼭 알아야 할 두 개념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1.이데올로기(ideology) - 이데올로기라 하면 단순하게 사고나 관념 등으로 여길 수도 있고 좀더 나아가 이념이라는 사고체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도 있는데 마르크스주의에서는 허위의식의 개념으로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옹호하기 위해 사회의 구조적 관계를 가리거나 변환시킴으로써 사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왜곡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이 이론은 경제 조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보아 부수적이고 종속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대중매체의 등장과 함께 매체를 중심으로 여러 이데올로기연구가 나타나게 된다. 프랑크 푸르크 학파를 통해 매체는 계급의식을 합법화시켜 허위의식을 생산 유포하는 것으로 여겨지다가 미국의 사회학자를 통해서는 매체가 사회적 합의를 획득한 가치와 규범을 반영하거나 강화, 보강한다고 인식되었다. 그후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강조되면서 매체가 개인의 욕구를 형성하고 결정하고 영향을 끼치는 문화적 힘의 실행과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1970년대 알튀세르에 의한 문화연구에서 본격적으로 이데올로기 문제가 대두된다. 그는 마르크스적 구조주의자로 기존의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해 인간의 행위가 얼마나 구조기의 활동은 공식적인 사회구조인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를 통해 구현되며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행위나 사고를 생산해 내고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이데올로기 생산기구들은 모두가 상대적인 독립관계를 유지하지만 이들은 비슷한 이데올로기를 생산해 내는데 이것이 알튀세르의 중층결정론이다. 상부구조가 토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사회 속의 각 기구들은 명시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밀접하고도 개별적인 연결고리를 유지하는데, 다양하지만 내부적으로 잘 구조화된 전체는 각자의 공통 이해 관계에 따라 연계되는 다양한 수준의 실천을 나름대로 행사하여 구조적 인과성을 가진다. 교육기관과 정치기구, 법률구조들은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지만 교육기관에 있으면서도 구조적인 인과성으로 정치나 법률이 만들어낸 사회의 불평등을 내면화 하게 되어 평등교육이라는 구호 아래에서도 부모의 지위나 계급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류되고 그런 분류가 사회를 유지시킨다는 명목아래 그 흐름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 층위를 다른 층위들을 흡수하고 결정하는 재생산과정으로 이해하고 이데올로기를 지배계급이 자신의 계급 지배를 재생산 할 수 있는 매커니즘으로 본 것으로 다음세대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기존의 질서에 계속 적응해 나가면서 현재의 질서를 재생산해 낸다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문화 연구의 흐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기존의 계급관계가 실제로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설명하고 상부 구조로서의 문화의 독립적 위치를 인정하는데 계기를 마련해 줌으로 비판적 문화론자들에게 활로를 제공하였고 인간이 그들의 구조적 위치가 부여하는 제한된 문화적 자원 내에서 능동적으로 의미를 생산하는 존재로서의 가능성도 제기 되었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의 한계는 아직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개인적 주체는 여전히 구조의 담론에 의해서 규정되는 수동적 존재로 축소되고 경제 구조의 결정론은 배격했지만 최종 심급에서의 경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면 자연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붕괴가 도래할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과 실천 방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순의 극복은 정치적 투쟁을 통해서 성취 될 수 있다는 의식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르크스 사상을 전개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그람시(Gramsci)이다.그람시는 마르크스 사상을 사회와 역사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면서 의식의 실천(praxis)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정치적 행동은 생산양식, 생산 및 소유관계, 사상과 제도, 삶의 방식을 변형시키는 인간의 참된 존재 실현을 위한 실천이라고 본다. 이렇게 의식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은 철학의 궁극적 과제는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변혁시키는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명제에 입각해 있다. 그람시가 헤게모니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배경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지배 방식의 장점을 깊이 있게 분석해 내면서이다. 그는 계급 지배는 강압적인 힘의 사용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으며, 전체 사회에 대한 지적·도덕적 지배를 구축할 수 있게 되고 모든 사회 부문을 이데올로기 적으로 흡수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인식한다. 즉 지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 지배는 단순한 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부르주아 세계관 및 이데올로기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동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본다. 여기서 힘에 의한 지배와는 대조적인 동의에 의한 지배의 바탕인 지적·도덕적 영향력 내지 지도력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헤게모니 개념이다.(Forgacs, 1988 : 422~424) 그람시의 헤게모니는 이데올로기가 고정되고 불변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힘의 관계에 의해서 변할 수 있는 것이며 피지배 계급이나 그들의 문화를 대상으로 그들을 어떻게 포용하여 계속적인 동의를 획득 할 수 있는가 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조정과정이다. 헤게모니는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경험 사이에 발생하는 끊임없는 대립과 투쟁을 전제하며 대중 문화를 미 체계에서의 이데올로기적 투쟁방식을 받아들였으며, 의미투쟁 장소로 이데올로기 상정 주체와의 투쟁 형태로 문화 규정 그리고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받아들여 이데올로기 투쟁이 다지 경제 구조의 반영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것을 주장하였다. 대중문화는 지배적, 종속적, 저항적 문화와 이데올로기적 가치 및 요소들이 뒤섞이는 양자간의 협상영역으로 권력의 협상과 정당화 이뤄지는 영역으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균형된 대중성 내에 상호경쟁세력 인정하였다. 알튀세르는 구조에 의한 의식의 지배라는 설명을 선호해 구조주의적인 해답 제공하였고 그람시 문화연구의 이데올로기 개념 내에서 구조에 의한 힘의 흐름은 인정하지만 그것의 절대성에 대해서는 엄격히 배격하여 오히려 문화를 통한 전복의 가능성 시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헤게모니와 학교 교육)헤게모니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으로부터 능동적인 동의를 얻는 것을 가능케 하는 이론적, 실제적 행위의 총체적 복합체이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헤게모니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대하여 영향력을 미치는 방식에 관련되어 있다. 부르주아 계급지배 방식은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물리적 힘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기존하는 사회질서체제의 유지·존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이데올로기 질서들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지배계급의 세계관과 가치를 확산시키며, 지배계급의 가치들이 타 계급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이들의 권력은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더 이상 강제력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방식에 관련된 교육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학교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며, 또한 이것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이데올로기 장치인 것이다.그러나 그람시에 있어서 교육의 중요성은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 통제에 의한 계급지배 방식을 꿰뚫어 봄으로써 사회변혁을 위한 대항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는 프롤레타리아 지식인을 길러내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비판적 의식으로 무장된 지식인이이다. 그러므로 학교는 개인이 속한 계급적 위치에 따라 계급구조를 영속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정신노동과 육제노동의 위계화가 학교교육을 통하여 확립되어야 하므로 교과내용도 이에 따라 차별적으로 제공되며, 지식과 기술의 위계화가 조장되고, 인간은 능력은 차별적으로 계발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는 자본주의 사회와 역사의 부정적인 측면은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에 자본주의 사회의 학교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개인들은 이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믿고 수용함으로써 지배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주입시키는 역할을 하는 헤게모니 기관이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그람시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모든 사람은 지식인이며, 개인의 계급은 사회분업관계에서 개인이 수행하는 기능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이 수행하는 직업적 역할의 위계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평가방식이다. 모든 사람의 직업적 역할은 사회적으로 동등하게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에 교과내용의 구분을 통한 차별적 학교사회화는 자본주의적 질서체제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참된 인간을 위한 학교의 교과내용은 인간의 사회생활의 총체성을 고려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제공되어야 하며, 계급에 따른 교육내용의 차별은 제거되어야 한다. 학교는 기존의 부르주아의 세계관이 배양되는 방식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에 따른 교육내용의 차별적 부과는 지배계급의 자녀들에게는 생산과 경제에 관련된 내용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그람시는 학교교육은 사회계급에 관계없이 문화적·지적·경제적·정치적 능력이 고루 계발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이루어져 왔던 배타적인 직업구성체제는 무너지고 노동계급도 부르주아계급에 국한되어 있는 직업영역에서 활동하는 시인, 소설가, 극작가, 법률가, 언어학자, 화가, 음악가 등과 같은 직업영역에서 활동하는 전문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즉, 전통적으로 존속
목차Ⅰ. 교칙1. 교칙이란2. 교칙은 왜 필요한가3. 교칙에 대한 생각들Ⅱ. 교칙의 변화1. 옛날의 교칙2. 오늘날의 교칙Ⅲ. 교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1. 두발2. 장신구3. 신발4. 가방5. 복장6. 기타7. 특이한 교칙들Ⅳ. 우리의 교칙 무엇이 문제인가1. 교칙의 문제점2. 원인분석3. 종류별 교칙의 문제점Ⅴ. 교칙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1. 교칙의 바른 제정2. 교칙의 바른 적용3. 학생의 주체적 참여 보장4. 학부모의 공개적 참여 보장5. 교사를 위한 장기적 계획6. 교육 여건의 개선Ⅵ. 결론Ⅰ. 교칙- 먼저 우리는 교칙이란 무엇인가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 만, 하나하나 따져보자1. 교칙이란- 먼저 국어사전에서의 단어로서 교칙은 다음과 같다.교ː칙 (校則) 학생이 지켜야 할 학교의 규칙. 교규(校規). 학규(學規). ¶ ∼ 위반.즉 교칙이란 학교 공동체의 규칙이다.- 교칙에는 학교의 교육에 관한 모든 자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1 학교의 위치, 교장 이하 교원의 자격, 임용규정 등에 관한 규정2 학교의 운영위원회, 육성회 즉 학부모회, 학생 차지를 위한 학생회, 학급 자치를 위한 학급의 운영 등에 관한 규정3 다음으로 학생의 자격, 편입학의 조건 등에 관한 규정4 학교 운영에 따른 재원의 염출, 재원의 지급, 운영 등에 관한 규정5 실제적인 교육에 적용되는 퇴학, 정학 등의 징계조치에 대한 규정과 그 운용에 관한 징계위원회의 개최 등에 관한 규정6 기타 사항에 관한 규정2. 교칙은 왜 필요한가- 그럼 교칙의 발생 원리 및 논리를 알아보자.- 교칙은 학생의 권리와 책임을 명시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교칙준수의 필요성1 학교 구성원들 사이의 원만한 관계 유지2 학교 공동체의 질서 유지3 즐겁고 유익한 학교 생활을 약속하는 출발점4 '가고 싶은 학교, 머무르고 싶은 학교, 즐거운 학교'로 만들 수 있음- 교칙을 위반하는 경우1 자기 중심적이고 편의주의적 사고2 공동체 의식못한 신발류는 제외하며 학교에서 지정하는 단화를 기준으로 함)- 학생신분에 맞는 검소한 것을 착용하되, 다음을 규제한다.(부츠, 사치성 구두, 슬리퍼, 샌들, 군화, 고무신 등)- 학생용으로 검은색 단화 또는 흰색, 검은색, 감색 (곤색의 운동화)(금지사항- 굽이 높거나 통굽 구두, 유행에 따라 변형된 것, 색깔이 있는 것, 광택이 있 는 것, 발에 맞지 않게 큰 것)- 신발은 목이 짧은(복숭아뼈 이하)흰색 운동화를 신는다. 목이 긴 운동화나 굽이 높은 신 발, 방한화, 농구화, 색상이 현란한 패션운동화, 특수화 슬리퍼 등의 착용은 금한다.- 남학생은 단화나 기타 피혁제품의 구두는 착용불허- 남녀공용 운동화착용만 허용한다.- 신발에 새로운 색으로 덧칠하거나, 무늬나 낙서를 하는 행위- 유행에 민감한 형태나 색깔의 신발을 신는 경우(마귀신발, 대발이 신발 등)- 금속성 장식이 없는 검은색 학생용 구두를 신는다.- 특수 목적으로 만든 신발(군화, 작업화, 슬리퍼, 샌들, 등산화 등)- 흰색 운동화만 허용한다.- 글씨와 무늬의 크기는 가로 5㎝ 세로2㎝ 3군데까지 허용- 글씨와 무늬의 색은 검정, 곤색, 회색에 한 한다.- 흉한 신발 금지(에나멜화, 라카화, 슬리퍼, 샌들, 군화, 고무신 등)- 굽 높이가 4㎝이하인 학생용 검정색 구두를 신어야 하며, 학생부는 그 견본을 일정한 장소에 전시해 놓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구두는 허용하지 아니 한다. -신발 굽 높이가 4㎝이상이 구두, 신발 앞 축이 객관적으로 보아 너무 길거나 너무 둥근 것, 구두가 검정 색이 아닌 것, 신발이 발목 복숭아 뼈를 덮는 것.)4. 가방- 양어깨에 메는 박스형태의 헝겊으로 만든 수수한 가방 (가죽 등 특이한 소재나 형태가 독특한 가방은 불허함)- 20×30×40㎝의 학생용 가방을 원칙으로 함 (제외사항: 고가품, 핸드백류, Box가방, 단, Sack 종류는 가방의 밑면에 두꺼운 판이 있어야 함)- 학생용 책가방만 허용한다. 그림이나 문자가 있거나 너무 요란한 색깔의 가방은 불허한 다.- 에 방해가 된다면 생활지도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쉽다. 특히 학부모의 항의전화가 계속되는 등의 상황은 교사를 더욱 괴롭게 할 것이다.그리고 교사들이 교과지도 뿐 아닌 생활지도에 대해서도 준비되어야 하는데 충분한 교육 과 준비가 이루어지지 못한 점도 원인이 된다. 규범에 대한 가치관을 세우고 이를 교육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한 교사가 이를 감당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생활지도가 모든 교사가 해야 할 영역의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변화 : 세대간의 극심한 가치관의 차이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학교 자체의 원인들 보다 더 심각한 것이 바로 더욱 극심해지 고 있는 세대간의 가치관 차이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생들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인정될 때에는 벌을 받고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 벌을 받는 순간에는 기분이 나쁘더라도 나중에는 불만이 없어지고 '내가 잘못해서 혼난 거지 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벌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 벌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불만은 커지게 된다. 선생님에 대한 신 뢰도 사라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적 효과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이전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선생님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학생도 잘못 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원화되고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세대간의 가치관의 차이가 급격히 벌어지면서 이런 최소한의 공감대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잘못된 것이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자명한 잘못인데 학생이 보기에는 전혀 잘못이 없는 일로 여겨지는 것이다. 선생님 세대는 '개성','프라이버시' 같은 것이 중 요한 가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정도는 공부와 단체생활을 위해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으로 여겨진다. 학생들 은 삐삐가 인간 관계 유지를 위한 너무나 소중하고 필수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선생 님은 공부에 방해되는 쓸데없는 물건으로 생각한다. 선생님은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실정이다. 또한 정치활동 금지로 대표되는 독소조항들은 학생회 활 동에 대한 제약을 넘어서서 학생 개개인의 기본적인 시민·정치적 권리를 구조적으로 침해 하고 있다.1 교육의 목적에서 이탈학교내 의사결정과정으로부터 배제되고 자치활동을 억압당한 학생들이 자율성과 자치능력을 가진 사람, 민주적인 협의와 의사결정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다시 말해서 민주시민으로서의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이는 국제인권조약과 국내법에서 표방하고 있는 교육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유엔아동권리협약(제 29조)은 아동의 인격, 재능 및 정신적, 신체적 능력의 최대한의 계발 과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 을 교육의 목적으로 우리나라 교육기본법(제 2조)은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 하게 함을 교육이념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교육은 청소년의 참여를 북돋는 것이어야 한다. 청소년이 가진 교육에 대한 권리는 완전한 범주의 인권을 향유할 수 있는 청소년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삶의 기술(life skill) 을 제공받는 것이다. 교육은 청소년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자신의 인격과 재능, 능력을 발전시키고 사회 속에서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따라서 학교 생활에 대한 참여, 학생회를 통한 활동은 권리의 실재를 학습하고 경험하는 과정의 일부로서 권장되고 증진돼야 한다.2 학생의 기본적인 시민·정치적 권리의 침해학생회칙에 나타난 학교 당국의 권한은 교육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지도 를 넘어선 것으로 통제 의 성격에 치우쳐 있다. 교육적으로 정당한 지도가 될 수 있으려면 학생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할 의무(교육기본법 제 12조) 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학생이 누려야 할 기본적 인권 중에서 표현, 사상, 양심, 종교, 집회, 결사, 정보의 자유 는 시민·정치적 권리에 해당된다. 학생회칙의 정치활동금지, 학교장의 행정사업에 관여 불가, 종교부의 설치, 유명무실한는 학교가 있는 반면에 체육시간 이외에는 운동화 착용을 금지하는 학교도 있다.문제점일상 생활의 필수품인 신발에 대한 규제 또한 지나치게 까다롭고 세세하다. 문제는 이 세세함이 엄격하고 바른 것을 추구하려는 과정의 산물인가, 간섭과 통제에 치중한 결과인 가이다.엄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이해돼야 한 다. 그러나 규제 내용을 살펴볼 때 단정하지 못한 , 흉한 , 유행에 민감한 등 객관적이 지 못한 잣대들이 학생신분에 맞는 이란 전제 하에 자리잡고 있다. 그 결과 나온 규제는 신발 앞축이 객관적으로 보아 너무 길거나 너무 둥근 것 이란 식의 규정답지 못한 규정이 다. 이런 식의 규제로 간섭을 하려들면 끝도 없을 열거가 계속될 것이다. 신발 앞축의 유 행이 바뀔 때마다 학교 당국은 이런 방식의 규제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엄정함이 아니 라 무제한적인 간섭과 통제를 시도하려 들 때 이런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구두만 허용되는 경우, 운동화만 허용되는 경우에서 나타나듯 구두와 운동화를 기준으로 학생다움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문제는 학교 당국이 그런 기준들 을 학생다움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고 있으며, 그에 대한 판단 또한 학교 당국이 독점한다 는 데 있다.- 가방가방에 대한 규정은 형태, 가격 및 사치성, 색깔 등에 관한 내용이다.{규제가 없는 학교규제가 있는 학교기타전체백분률(학교수)1.0(2)41.6(87)57.4(120)100(209)표현의 자의성과 모호함, 지나치게 까다롭고 세세하게 금지하고 있다는 문제가 가방 규 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복장방한복을 검정색 계통 혹은 진한색(회색, 감청색, 남색 등), 학생다운 것으로 규제하는 학교 그리고 방한복의 실내 착용을 금지하는 교칙의 내용도 있다. 속옷도 마찬가지로 속 옷의 착용 유무를 비롯해 속옷의 색깔과 형태까지 제한하고 있다.문제점체감 온도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일률적으로 외투의 실내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