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석 정Ⅰ. 서 론Ⅱ. 본 론2.1 초기 - 목가와 청구원 시대2.2 중기 - 현실과 역사의식의 시대2.3 후기 - 안정과 자연관조 시대Ⅲ. 결 론Ⅰ. 서 론신석정시 연구의 경향을 보면 대개 시사적인 면에서 신석정을 ‘田園詩人’ 또는 ‘牧歌詩人’정도로 다루어 왔다. 어두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연을 중요한 시의 소재로 삼고 자연에 순응하여 새로운 이상 속에서 살고자 한 것이 그의 특색이었던 것이다.그의 시를 제일 처음 언급한 이는 김기림으로 석정의 시를 일러 ‘목가시인’이라고 언급하며 그의 이색적인 출현을, 당시 시 비평에도 뛰어난 관점을 보였던 임화는 신석정을 기교적 시인으로 단정하고 “기교파는 시의 내용과 사상을 방기한다”고 공박하며 부저적인 측면에서 시사상의 결여를, 그런가 하면 당시 시단의 중진 김억은 임화 같은 사람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하여 신석정의 시는 시단의 귀한 좀재임을, 정래동은 단순한 독자의 입장에서 시어의 평이성과 시세계의 아름다움을 들었다. 또 해방 후 우리시가 외래사조의 영향으로 여러 갈래로 퍼져나갈 때도 시단의 보스였던 서정주는 전원풍을 노래하던 초기시의 우수성과 사상성을 정태용은 석정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시정과 표현의 기교를, 박두진은 해방 후 시집에 나타난 현실인식을 강조하였다.이런 시사적인 정리에서 그의 생존시에는 별 뚜렷한 연구가 없다가 70년대 중반부터는 여러 가지 방향에서의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 이르게 되자 더 많은 연구물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80년대에 와서는 많은 연구가들이 신석정시의 특질을 중시하면서 자연친화적인 시 연구에 초점을 많이 두었다. 또 석정의 시정신으로도 1980년대에 와서 많은 연구가들이 신석정시의 全部(시집5권)를 연구하면서 해방 후의 작품 곧 중기 이후의 경향을 현실의식의 방향으로 보았다. 신석정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이외 신석정의 문학정신을 기리며 연구하기 위해 이루어진 석정문학회에서는 그 일차 사업으로 작품에 대한 연구를 하여 「신석정대표시평설」(1986)을 출사상연구에서 진일보하여 작품 하나하나에 깃들여진 시 정신, 구조, 수법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Ⅱ. 본 론2.1. 초기 -목가와 청구원시대2.1.1 『촛불』자연의 품에 깊숙이 묻혀 청구원 주변의 산과 구름과 서해의 해풍을 바라보며 꿈과 낭만을 엮은 신석정의 첫 시집이다. 『촛불』에 실린 첫 편 을 보자. 신석정이 사랑하고 꿈꾸는 자연을 보는 시선이 섬세하게 드러난다.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 잎이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그렇게 가오리다임께서 부르시오면...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말 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그렇게 가오리다임께서 부르시면....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구비구비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임께서 부르시면...파-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그렇게 가오리다임께서 부르시면...「임께서 부르시면」전문이 시는 1931년 「東光」8월호에 발표된 시다. 여기에서의 자연은 임을 향해 가는 자신의 행위를 미화하는 기능을 맡고 있으며, 임에 대한 사랑의 간절함을 자연 형상에 의탁해서 표현하고 있다. 시적 자아는 경건한 속에서 임께서 부르시면 ‘재 넘는 초승달처럼’.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임에게 가고자 한다. 이처럼 순수하게 자연에 동화하는 시적 자아는 평화롭게 묘사된 자연물과 더불어 민족적 감성을 자극하고 전통적인 정서를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신석정 시의 출발점이요, 지향점인 자연은 현실적 상황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어진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의 처절한 운명의 시인은 어떻게 자연과 현실을 수용했는가?꿈이 아니면 찾을 수 없는아 그 꿈에서 살고 싶어라「아 그 꿈에서 살고 싶어라」에서내가 어머니 무릎에 잠이 들 때저 바람이 숲을 찾아가서작은 산새의 한없이 깊은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에서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세요.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신이라고 할 수 있다. 밑줄 친 부준에 나타난 것처럼 그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였다. ‘꿈’을 지니고 동경의 세계를 갈구하였다.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에 대한 동경은 새로운 세계 즉 이상향에 대한 동경으로서 현실의 괴로움이나 암담한 시대 상황과도 관련이 된다고 볼 수 있다.신석정의 초기시에 나타난 또 하나의 현저한 특징은 평화지향적 경향이라는 점이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에서 신석정 시인이 염원하는 ‘그 먼 나라’는 과연 어떠한 나라인가? ‘깊은 삶림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생장미 열매 줅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나라’라고 하였으니 이는 현실의 나라라기 보다는 이상향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인이 노래하는 이상향은 평화로운 나라이며 양처럼 순진하고 선량하게 사는 곳이며, 능금처럼 알찬 결실을 맺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곳은 속세에 때 묻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이므로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무릉도원은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지만 아무나 알고 있는 곳은 아니며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은 더더구나 아니다.신석정 시에 나타난 이러한 평화로운 자연공간의 이상향은 비극적 현실에서 세계와의 동일성을 상실한 자아의 반어적 표현이며, 바로 이 상실된 동일성을 회복하기 위해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부정하고 상상의 세계를 설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신석정의 상상력은 그의 자연친화적인 정서에 의해 아름답고 평화로운 목가적인 이상향을 상징하게 되고, 이러한 이상향의 세계에서 미의 절정을 추구하게 된다.2.1.2 『슬픈 牧歌』『슬픈 牧歌』는 1974년에 출판되었지만 그 제작연대는 1935년부터 1943년까지의 일제치하였다. 이 시는 일제의 탄압이 가장 극심했던 때로, 신석정에게는 ‘악몽’의 시절이며 망각할 수 없는 ‘슬픈 목가’의 시절이다. 『촛불』시절의 자연 친화의 목가세계는 ‘슬픈 목가’의 세계로, 꿈과 낭만의 그리움은 ‘악몽’의 인식으로 돌려졌다.그는 현실을 직시하상을 제시한다. 시인의 시선은 먼 나라에서 돌아와 현재에 고정되고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당시의 참담한 시대적 상황은 「슬픈 構圖」에서는 삭막하기 이를데 없는 지구와 적막하게 흐르는 검은 밤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시적 자아는 아무도 없는 검은 밤 하늘 아래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며 내 마음 둘 곳을 찾아보는 ‘슬픈 구도’에 빠져든다.나와하늘과하늘아래 푸른산 뿐이로다꽃한송이 피어낼 지구도 없고새한마리 울어줄 지구도 없고노루새끼 한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나와밤과무수한 별 뿐이로다밀리고 흐르는게 밤 뿐이요흘러도 흘러도 검은밤 뿐이요내마음 둘곳은 어느밤 하늘 별이드뇨「슬픈 構圖」전문첫시집 『촛불』에서 보여주던 이상향의 갈구가 사라짐은 물론 비극적 현실이 냉정하게 그려져 있다. 이처럼 「슬픈 構圖」는 좌절과 절망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시대의 슬픈 구도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2.2 중기 - 현실과 역사의식 시대2.2.1 『氷河』1956년에 간행된 제 3시집 『氷河』는 해방 이후 6?25를 거쳐 1956년까지 쓰여진 작품들이다. 해방과 더불어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분단의 비극적 현실은, 문학사적 의미에 있어서는 새로운 민족문학의 수립이라는 진로를 모색하게 했다. 뒤이어 밀려오는 6?25의 거센 탁류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낳았으며,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문학은 시대의 갈등과 고뇌를 수용하고 승화시키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러한 문학적 과제 앞에서 신석정은 새로운 자기 세계를 찾아야 했기에, 현실 사회의 넓은 공간으로 시적 자장을 확대시켜 나갔다.그는 해방공간의 혼란 속에서 일제 35년간의 식민사를 「三代」로 시화시켰다.벼슬을 잃으신 할아버지는벼슬과 나라를 고스란히 단념하면서술과 친구와 글에 묻히어말성 많은 세월을 잊은듯이 보내시더니...나라를 잃으신 아버지는육친도 벗도 고향도 단념하면서어무찬 설움에 큰뜻을 세우시고밤길로 밤길로 국경을 넘어가시더니...에미도 에비도 잃어버린 자식은한때 제 몸까지도 단념하면서갈라진 하늘을 목메이게 호흡하더니모조리 아버지, 아들의 삼대로 엮어 점층적으로 전개한다. 신석정은 여기서 일제 식민치하를 살아온 민족의 비애를 ‘단념적 철학’으로 규정짓고 있다. 벼슬을 잃은 할아버지의 조국에 대한 단념, 나라를 잃은 아버지의 혈육과 고향에 대한 단념, 부모 잃은 자식의 자신에 대한 단념이라는 3대에 걸친 비극적인 삶의 양상을 나타내 보여준다. 정지용이나 김기림이 해방공간에서 즉각 시를 쓰지 못했다는 점과는 대조적으로 친일지 「국민문학」에 작품을 게재했고, 신석정은 붓을 꺾고 지조를 지킨 차이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앞의 두 사람의 암담한 식민치하에서 감각을 연마할 때 신석정은 짐승 같은 울음으로 슬픈 목가를 쓰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자연으로 돌아가라구요?아름다운 자연이 어디 있기에말씀입니까?바라보면솔포기 하난 없는 붉은 산소쩍새 한마리 깃드릴 곳이 없다고은 슬퍼하드군요.의지할 하늘일든 어디 있습니까그대서 당신도 자연으로돌아가지 못하고참회록을 쓰지 않었습니까?「小曲六章, 6, 자연과 Rousseu」에서쓰라린 생활과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의지할 하늘은 없다고 말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던 루소에서 ‘당신도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참회록을 쓰지 않었습니까?’라고 반문하지만, 현실의 고통 속에서 아름다운 자연이 없다는 것은, 암담한 현실에서 돌아갈 수 있는 자연에의 동경이 더욱더 간절함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자연친화의 정서는 그가 현실에 깊이 관여할 때에도 그의 내면에 함께 흘러 왔음을, 『氷河』에 실린 자연친화적인 서정시들을 통해 접해 볼 수 있었다.2.3 후기 - 안정과 자연관조 시대2.3.1 『산의 序曲』시대신석정 제4집 『산의 序曲』은 1967년에 출판되었으며 모두 59편의 시가 실려 있다. 『산의 序曲』을 두고 일부 평자들은 역사의식과 사회참여의 정신이 절정을 이룬 시집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산의 序曲』을 자연 친화와 노래로 보고, 『빙하』시절에 내비치던 암울한 분위기나 저항의식이 안으로 가라앉고 『촛불』무렵의 자연 귀의적 시상이 더욱 심화되어 .
미당 서정주에 대해서Ⅰ. 서정주 시의 특징과 위상Ⅱ. 서정주의 시세계1. 초기시의 세계2. 중기시의 세계3. 후기시의 세계Ⅲ. 결론Ⅰ. 서정주 시의 특징과 위상30년대 한국 시문학은 경향파의 퇴조와 함께 등장한 순수문학파와 모더니즘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의 형식에의 치중은 기교주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풍토속에서 아무런 기치도 내걸지 않고 출발한 서정주는 ‘개성’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것이 비록 휴머니즘의 연장선에 서서 행한 발언은 아닐지라도 당시의 문단의 지배세력이고자 했던 프로문학의 이데올로기의 편향성이 배제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이러한 서정주의 등장은 시문학파의 시인들보다 한층 현실에 가까이 다가서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그가 비록 당시의 사회 역사적 질곡과 억압받던 삶의 고통을 투철한 자세로 직시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현실의 고통이 배제된 시문학파의 고답적이고 언어중심적인 태도에서 한발 더 현실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서정주의 시는 자신의 문체를 통해서 강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문학사에서 독자적인 한 장을 차지한다. 그의 시는 자신의 삶의 궤적을 누구보다도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부단히 이전의 세계를 부정하면서 우리 문학의 전통을 심화 확대하려는 노력의 소산이었다.그리하여 그는 ‘언어의정부’가 될 수 있었으며, 우리 문학사의 지평을 확대시킨 ‘서정주 고전’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시인이 된다. 그의 시가 한 시대를 완결시킬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정서적 태도를 통합시키고 있다는 말은 그만큼 우리 시문학의 빈곤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서정주의 실패가 한국시의 실패와 맞먹는다는 지적은 한편으로는 그의 시사적 가치를 높여주는 것이지만, 그의 시가 갖는 한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서정주시의 개성이 그 원형적 속성에 의하여 지워질 수 없는 가치를 갖는 반면에 그 개성의 독자성은 또한 극복되어져야 할 것으로 남는다. 따라서 언어의 개성은 언어가 덜 발달한 사회에서 뚜렷해진다는 지적은 우리 시문학사의 극복되어야 할 커다란 봉우리가 무엇인지를 잘 시사하고 있다고 하겠다.Ⅱ. 서정주의 시세계1. 초기시의 세계서정주의 초기시는 ‘양반’이자 ‘종’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이 내선일체와 창씨개명과 문화말살정책에 의한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과정이 무의식적 심리적 실체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무의식의 요구는 현실의 질곡을 초극하려는 비극적 초월의 의지를 드러내는 인물 속에 구현된다.머리를 상고로 깎고 나니어느 詩人과도 낯이 다르다.꽝꽝한 니빨로 우서보니 하눌이 좋다,손톱이 龜甲처럼 두터워가는것이 기쁘구나.솟작새같은 게집의 이애기는, 벗아인제 죽거든 저승에서나 하자.모가지가 가느다란 李太白이 처럼우리는 어찌서 兩班이어야 했드냐.포올 베르레-느의 달밤이라도福童이와 가치 나는 새끼를 꼰다.巴蜀의 우름소리가 그래도 들리거든부끄러운 귀를 깎어버리마.-「葉書」전문-이 시는 자아가 集團 精神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어떠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지신의 역할을 바꾸어 집단의 기대로부터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詩人과도 낯이 다르다’라는 시행은 단순히 ‘상고’로 깎은 외모의 변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무리로부터 구별되는 자신의 위치를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화자의 의식은 ‘兩班’이라는 신분에 대하여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화자가 유약한 양반이라는 기존의 퍼스나를 한사코 벗으려 했음을 읽어낼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은 화자의 기존의 질서에 대한 부정적 태도로 드러난다.눈물 아롱 아롱피리 불고 가신님의 밟으신 길은진달래 꽃비 오는 西域 三萬里흰옷깃 염여 염여 가옵신 남의다신오진 못하는 巴蜀 三萬里신이나 삼어줄ㅅ걸 슲은 사연의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은장도 푸른날로 이냥 베혀서부즐없는 이머리털 엮어 드리ㅅ걸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구비 구비 은하 ㅅ물 목이 젖은 새참아 아니 솟는가락 눈이 감겨서제피에 취한새가 귀촉도 운다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歸蜀道」전문-이 시의 화자는 파촉으로 간 님에게 헌신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음을 自彈한다. 서정주 시의 화자들이 집단정신에 동일시 되어 있다가 그 동일시를 부정적으로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본능으로의 退行的 復歸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한편 집단정신에 동일시될 때 무의식의 내적 관계기능인 아니마가 투사된다는 말은 서정주 시의 화자의 태도변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2. 중기시의 세계「서정주 시선」에 눈에 띄게 나타나는 현상은 초기의 젊은 열기와 한의 감정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객체를 주관적으로 채색하지 않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연이나 대상이 완전한 객체로서 시인이나 화자에게 인식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오히려 그 자연은 이미 자연의 절대 중립성을 잃어버리고, 시인의 정령관에 의해 새롭게 채색되어 나타나는 혼령의 세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서정주의 중기시는 주체와 객체가 동일화되는 세계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또다른 현장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이월 새 하눌일레 대수풀은 빛나네햋빛에 도란도란 도란그리며햇빛에 나즉히 노래 불러 올리는아릿 땁고 향기론 處女들이 크나니-「二月」-봄이 와 햇빛 속에 꽃피는 것 기특해라꽃나무에 붉고 흰 꽃 피는것 기특해라눈에 삼삼어리어 물가으로 가면은가슴에도 수부룩히 드리우노니봄날에 꽃피는것 기특하여라-「꽃피는 것 기특해라」 -「二月」과「꽃피는 것 기특해라」는 이런 정령화된 자연 속에서 시인이 투시해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햇빛에 처녀들이 크고, ‘꽃피는 것 기특’한 세계는 꽃의 가치중립적 존재가치에 미적으로 거리를 두고 관조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신비주의적 태도로 자연 속에서 영혼을 찾아내려는 자셍니 것이다. 이렇게 주위의 온갖 사물이 ‘혼령이 있는’것으로 비칠 때, 화자는 하나의 육체적 현실적 세계를 사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신화적 세계를 살게 되는 것이다.외할먼네 마당에 올라온 海溢엔요예순살 나이에 스물한살 얼굴을 한그러고 천살에도 이제 안 죽기로 한신랑이 돌아오는 풀밭길이 있어요생솔가지 울타리, 옥수수밭 사이를올라오는 海溢 속 신랑을 마중나와하늘안 천길 깊이 묻었던 델 파내서새각시때 연지를 바르고, 할머니는갑술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갔다가海溢에 넘쳐오는 할아버지 魂身 앞열아홉살 첫사랑적 얼굴을 하시고-「외할머니네 마당에 올라온 海溢」-형식화를 뒷전에 밀어붙이고 한 시인의 경험적 사실을 생생하게 전하는 이 시는 한층 새롭게 독자의 가슴에 다가온다.해일 속에서 ‘천살에도 이젠 안 죽기로 한’ 신랑의 영혼을 보는 할머니의 수줍어 홍조 띤 얼굴이 연지를 바른 것 같다는 이 시는 시인의 시점에서 관찰한 할머니의 영혼 불멸관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한 할머니는 ‘첫사랑적 얼굴’로 ‘새각시때’로 돌아가서 육체적 죽음의 이별을 초극하는 삶을 살게 된다.영적 교류는 초기시의 육체성의 탐구가 빚은 피의 열정을 식힌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영혼의 흐름에 치중한 많은 시들이 무당의 넋두리와 같이 항상 招魂歌를 부르게 되어 현실감각을 무디게 하고 있는 점은 약점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3. 후기시의 세계중기시의 화자들이 신라에서 자신의 뿌리를 발견하는데 반해서, 후기시의 화자들은 현실 속에서 그 뿌리를 확인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서정주는 중기시에서 신비적 세계의 이미지들을 상상력의 몇가지 틀에 의하여 조립 배치하면서 정신의 높은 위치를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지루한 전생의 과정을 드러내 보이려 하였다. 그런데 후기로 넘어오면서 원형질을 토속적 현실 속에서 찾으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 문화의 심층의 모습이며, 끈질기게 간직된 변방의 문화이며, 아직 제대로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은 삶 그 자체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 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읍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 버렸읍니다. 문 돌쩌기에 걸린 옷자락이 찟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읍니다.그리고 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읍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읍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읍니다.
박용철에 대하여Ⅰ. 서론Ⅱ. 절망과 비애의 정서적 승화Ⅲ. 순수시론의 전개 양상Ⅳ. 결론Ⅰ. 서론박용철의 문단활동은 1930년 3월 지 창간에서 비롯되어 그가 타계한 1938년 5월까지 8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한 짧은 문학활동의 기간에도 불구하고, 박용철은 우리문학 사상 누구보다도 화려한 생애를 누려오고 있다.『시문학』의 창간에서 비롯되는 그의 문학사적 업적을 평가해온 저간들의 관점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시문학파의 옹호와 관련된 탁월한 시론의 전개.둘째, 『시문학』『문예월간』『문학』등 순수 문예지를 발간 ? 주재하면서 문학의 본짉과 아울러 시대를 파악했던 놀라운 안목.셋째, 외국의 작품과 문학이론의 번역소개를 통한 한국문학에의 기여넷째, 시작활동으로 구체화된 순수시의 표방특별히 순수시론의 논리적 근거를 탐색한 박용철의 시론은 시문학파의 문학적 특성을 대변할만한 이론이었다. 그는 시에서의 심미적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예술가로서의 시의 장르 확립과 순수이론의 정립에 기여하였던 것이다.Ⅱ. 절망과 비애의 정서적 승화그의 정신세계는 괴테, 실레르, 하이네, 릴케 등의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들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박용철의 순수시관이 눈을 뜨게 되고, 시는 ‘짓는 기교’만이 아니라 ‘속에 있는 덩어리’가 있어야 창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속의 덩어리’는 나중에 그의 본질적 순수시론에서 생리적 필연성으로 이론화 되지만, 이때에는 단순한 비애의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나 두 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거냐나 두 야 가련다안윽한 이항구-ㄴ들 손쉽게 버릴거냐안개가치 물어린 눈에도 비최나니골잭이마다 발에 익은 뫼ㅅ 부리모양주름쌀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든 사람들버리고 가는이도 못 닛는마음쫏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도라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화살짓네압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잇슬거냐나 두 야 가련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거냐나 두 야 간다절망과 허무의식을 표상하고 있는 이 시는, 어느 면에서는 1920년초 우리의 상 문면으로는 정든 항구의 사랑하던 사람들을 두고 떠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쫏겨나는마음’과 다를 바 없는 지향이며 ‘앞 대일 언덕’ 조차 마련 없는 출발이다. 이 시에 나타나는 비애와 정서가 시대의 현실이나 삶의 표랑의식과 무관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박용철의 시가 자아의 무력화와 좌절을 선험적 조건으로 하여 출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박용철은 처음부터 자아와 세계 사이에 장애를 설정하고, 그 두 세계의 정태적 대립을 자기침식의 슬픔으로 수용하였던 것이다.그리고 이 시에서 보여지는 특색은 1연은 4연에서 다시 반복한 것과 같은 운율적 배려에 있다. 특히 ‘나 두 야’와 같이 음절을 띠어 쓴 것은 낭독할 때에 형성되는 운율적 효과를 시도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나 두 야 간다’라는 시행을 첫 행과 끝행에서 반복해 쓴 것은 시구성과 음악성을 함께 시도한 것으로 불 수 있다. 2 ? 3연에서도 “-거냐, -나니, -네”와 같은 옛 말투의 종결어미를 써서 운율적 효과를 시도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떠나는 마음의 슬픔이 짙게 나타나고 있어서 오히려 옛 말투의 어법이 오히려 감상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결과가 된다.그렇다면 이 작품은, 2 ? 3연에서 승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적 전개는 박용철시의 특성이며 동시에 그가 지닌 근본적 결함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의 시적 전개에서 음악적 시구성이 완벽하지 못할 때 그의 시는 필연적으로 감상적 서술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박용철은 이 작품의 창작을 계기로 순수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다. 이 시는 1929년 8월에 쓴 작품이다. 김윤식은 이 시에 대해 “…사랑과 문학이 시인에게 표리의 관계로 은밀히 타올랐던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부터 그이 문학적 생애가 시작되는 것이다.밖을 내어다보려고 무척 애쓰는그대도 설으렷다.유리창 검은밖에 제 얼굴만 비쳐 눈물은그렁그렁하렸다.내 방에 들면 구석구석이 숨겨진 그 눈은내게 웃으렷다.목소캄한 현실은 잠깐의 이별조차 아득한 슬픔에 젖게 한다. 밝은 안과 어두운 밖, 떠남과 머무름의 상황설정은 일반적으로 낭만시의 주요한 주제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1920년대 우리 시의 유미적 상징주의 계열의 시가 속악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에 제재로 삼았던 것처럼 박용철의 시에서도 현실은 어두운 밤과 불투명한 미래에 닿아 있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여정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 보듯이 그것은 경험세계의 어두움을 타개하려는 시도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갈구하는 대상의 성실로 인한 비애의 자기침식은 혼자만의 밀실인 내면의 공동 속으로 자아를 회귀케 한다.요컨대 상실의 아픔과 번뇌에 쌓인 자아가 이러한 고독한 방 속으로의 회귀를 통해 경험적 현실과는 상관없는 자족의 안온한 유미적 슬픔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의 시에는 현실세계와 단절된 미적 관조가 자리함으로써, 비애 자체가 은밀한 일락과 향수의 재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내부의 공동인 자족의 방 속에서 슬픔을 관조적으로 누리려는 태도에서 본다면, 경험적 현실은 이미 없기나 있다 하여도 상관할 바 없는 세계의 저편에 존재할 뿐이다.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시는 듯한 외로움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위로이랴-「싸늘한 이마」위의 인용시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것은 자아의 고립된 밀실이다. 그곳은 삶의 온기조차 빼앗긴 채 화석같이 굳어버린 절망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박용철은 경험적 현실과 시를 분리하는 배타적 밀실 속으로 안주함으로써 심미적 자족의 안온함과 슬픔의 감상성을 구축해간 것으로 믿어진다.비가 조록 조록 세염없이 나려와서…쉬일줄도 모르고 일도없이 나려와서…나무를 집옹을 고만이 세워놓고 축여준다…올라가는 기차소리도 가죽이 드러나니…비에 흠추리젖은 기차모양은 애처롭겠지…비가 조록 조록 세염없이 흘러나려서…나는 비에 훔출젖은 닭같이 네게로 달려가련다…감고 붉은 제비는 매그름이 날러가는 것을…나의 마음은 반득이는 잎사귀보다 더 한들리여…밝은 불 혀행을 18행까지 지루하게 써나가고 있다. 매 행의 끝에 ‘…’을 찍은 것이 내리썼을 때의 빗방울을 시각화하기 위한 것인 듯하나, 전연 공감되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말대로 ‘속에 덩어리’가 있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미숙한 ‘짓는 기교’에 의해 얽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2연에서는 ‘나는 비애 흠출젖은 닭같이 네게로 달려가련다. / 물 건너는 배암같이 곧장 기어가련다’와 같은 비유로 쓰고 있지만, 감각으로 형상화되지 못하고, 산문적인 서술이 되고 만다. 시적 에너지가 저급할 때 은유는 서술과 직유로 끌려간다고 한다. 시적 에너지란 시적 상상력을 의미한다.박용철의 경우 시적 에너지란 그가 ‘속에 덩어리’로 인식한 절망과 비애라고 할 수 있다. 이 절망과 비애가 악화될 때 그의 시적 상상력도 악화되어 산문적인 서술을 하게 된다. 「떠나가는 배」 이후의 그의 작품은 거의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들이다.나는 이제 가네.눈물 한줄도 아니흘리고 떠나가려네.어머니 치마로 눈을 가리지 마서요.너희들도 다 잘 잇거라.새벽빛이 아족도 히미해서 얼골들이 눈에 서투르오.다시 한번 눈이라도 익여둡시다. 공연히 수선거리지들 마려요.남의 마음이 흔들이기 쉬운줄도 모르고-「시집가는 시악시의 말」1연이 시는2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신의 비애가 아니라이다. 시적 긴장감이 전연 없는 산문적 서술이다. 시집가는 여인의 심정을 상식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박용철의 시적 상상력은 현실적 제재보다는 낭만적 꿈의 세계나 자신의 비애의식을 형상화할 때 충분히 발휘되는 것 같다. 이것이 그의 시적 전개에서 나타나는 특성이며 동시에 그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① 절믄이야 가슴뛰여 하지마라저기파란 휘장드런 발근창이반쯤만 열려짓슴 더를 기다림이라고…느릿한 나래질로 나는 공중에 떠다닌다.-「선녀의 노래」1연②여위고 시것다만 다름업는 그대심을눈가며 숨거드니 주검이라 부른다냐이가치 갓가운길이언 둘처다시 못오느냐-애사중에서,「그대의 도라가신날」이 시들은 다 3호에 발표된 작품들이다.①은 ‘ 알 수 있듯이 비애의식을 형상화한 시조이다. 그런 만큼 정형적 율격에 의해 구성된 작품이다.이러한 시세계가 박용철 시의 본령이다. 즉 정형적 율격에 의한 절망과 비애의 정서적 승화이거나, 낭만적 꿈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 그의 시적 본령이다. 박용철이 후자에 주력했다면 그의 시적 전개가 새로운 시의 창작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자에 주력했기 때문에 그의 비애의식이 약화되면서 시적 상상력도 약화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이것은 그의 문학이 시조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랑은 “시조를 쓰고 그 격조를 익혀 놓으면 우리가 이상하는 자유시, 서정시는 완성할 수 없다”고 박용철의 시조 창작을 극구 반대한 바 있다. 김영랑의 이러한 염려는 적중되었던 것이다.결국 박용철은 「떠나가는 배」 창작에서 불붙는 순수시에 대한 열정에 의해 형성의 주역이 되고, 그 불꽃이 타는 동안에 자신의 비애의식을 율격적 시구성에 의해 형상화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적 상상력보다는 지적 논리성이 강한 시인이었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그의 순수시에 대한 열정은 창작시 보다는 순수시론을 통해 의 문학적 방향을 구현한 동인이 된 것이다. 그러면, 그의 순수시론의 전개 양상을 고찰함으로써 동인으로서의 위상을 밝히기로 한다.Ⅲ. 순수시론의 전개 양상박용철의 순수시론은 ‘영랑에게 보낸 서신(1929)’, ‘시문학 창간에 대하여(1930)’, ‘신미시단의 회고와 비판(1931)’ 등에서 볼 수 있는 초기의 소박한 순수시론에서 출발하여, ‘올해시단총평(1935)’, ‘병자시단의 일년성과(1936)’, ‘기교주의의 허망(1936)’, ‘시적변용에 대해서(1938)’ 등과 같은 후기의 본격적 순수시론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보면, 그의 순수시론의 전개에 있어서 1931년에서 1935년 사이의 공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공백기가 실은 박용철로 하여금 탁월한 시론가로 올라서게 한 수련기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시적 한다.
1. 서론2. 본론2.1 「모란이 피기까지는」2.2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2.3 「촉기」2.4 영랑의 후기시3. 결론김영랑에 대하여1. 서론김영랑(1903-1950)은 1930년 「시문학」창간호에 13편의 시를 선보임으로써 시단에 나온 이래 195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20년 동안 80여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지금까지 발표된 김영랑론의 성격을 분류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첫째는 김영랑을 순수 서정시인으로 평가하고, 특히 한국의 전통적 정서를 민족 언어의 운율에 얹어 표현하였음을 강조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김령랑의 시에 내려지는 가장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둘째는 김영랑이 순수서정시에 경도되어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부상되는 부정적인 측면이다. 이는 그가 사회 의식이나 현실 의식과는 무관하게 평이하고 안일하며 개인적인 정서만을 읊은 시인이라는 것이다.셋째는 김영랑의 언어 인식을 중심으로 심미적 내지 유미주의 적인 경향에 집중적인 관심을 두고 리듬과 어휘를 분석한 평가가 있으며, 이밖에도 김영랑시에 끼친 외국 시인의 영향을 비교 문학적 측면에서 고찰한 논문도 있다.여기서는 김영랑을 서정시인으로 보면서, 동시에 민족의 암흑기를 살아온 그가 그 어둠을 어떻게 여과하고, 극복하였으며, 어떻게 승화시켜 서정시로 표현하였는가 알아보자.2. 본론2.1 「모란이 피기까지는」영랑의 초기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으로서 흔히 자아의 내면에 바탕을 둔 섬세한 감각과 민요적 율조가 지적되고 있으며, 이 시기의 시를 ‘燭氣(촉기)’라는 단어로 규정하기도 한다.‘슬픔을 노래 부르면서도 그 슬픔을 딱한데 떨어뜨리지 않는’ 생생한 기운을 ‘촉기’라고 정의한 김영랑은 자신의 시에서 충분히 그 촉기를 살렸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육자배기를 비롯한 우리 민요의 전통적 정조를 시에서 구현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같은 슬픔을 노래부르면서도 그 슬픔을 딱하데 떨어뜨리지 않고 싱그러운 음색의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으로 바꾸어 ‘찬란한 슬픔’이 되게 하였다는 말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령랑의 ‘촉기’는 곧 어떠한 슬픔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는 ‘찬란함’이며 그것은 그의 ‘광명의식’에서 연유된 것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봅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져 시들어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모란이 피기까지는」전문이 시에서 표현하고자 한 정서는 좌절이나 포기가 아니다. 화자가 ‘봄을 잃은 설움에’ 잠겨서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운다고 고백했다 해서 이 시의 주정서를 슬픔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물론 김영랑은 슬픔과 애달픔, 혹은 서러움도 다른 사람의 경우처럼 상실과 애상의 정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광명의 통로를 마련하고 있어서 완전히 ‘딱한 데 떨어뜨리지 않고 싱그러운 음식의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을 가지게 된다.2.2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1930년대의 작품들 중에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을 보면 그 내용이 보통 사람의 감각으로는 쉽사리 이해되기 어려운 덜 분명한 의미가 제시되고 있다.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강물이 흐르네돋쳐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은결을 돋우네가슴에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강물이 흐르네「동백잎 빛나는 마음」전문이 작품에 나타난 강물은 화자의 마음속에 흐르고 있는 강물이므로 일상적 생활의 테두리에서 파악된 것이기 보다 시인의 마음의 세계를 암시적으로 표현한 하나의 상징적 대상으로 제시된 것 같다. ‘가슴엔 듯 또 핏줄엔 듯’과 같이 강물의 소재를 애매하게 말하고 있는데, 실상은 화자의 전신에 두루 편재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 강물은 되풀이하여 나타나 있으며, 또 시인의 마음 속에 살았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심정적 진술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성이 전경화됨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생명성에 대한 확인은 일제시대에 가리워진 존재로서의 민족의 주체성에 대한 대응적 주장이기도 하다. 이 노래에는 한국인의 생명이 전체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시대에 대한 자기확신으로서 영원적 생명을 시화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일제치하라는 정치적,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주체자가 가리워졌지만, 이 시인의 내심을 세계에서는 강물과 같이 줄기차게 살아있고, ‘빤질한 은결’을 ‘도도내’와 같이 생동력 있게 살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2.3 「燭氣」김영랑의 시에서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많이 발견되고 있으면서도 그 비애의 한 모퉁이에 반드시 부활의 횃불처럼 마련하는 광명의 공간, 즉 ‘촉기’는 영랑 초기시의 특징으로서만 머물지 않고 그의 시에 전반에 흐르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내 옛날 온 꿈이 모조리 실리어간하늘가 닿는데 기쁨이 사신가고요히 사라지는 구름을 바래자헛되나 마음가는 그곳뿐이라눈물을 삼키며 기쁨을 찾노란다허공은 저리도 한없이 푸르름을엎디어 눈물로 땅 우에 새기자하늘가 닿는데 기쁨이 사신다지상에서는 빼앗긴 상태이지만 이 빼앗긴 것이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것은, 빼앗긴 것의 순결성과 고귀성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세계는 빼앗는 자이고 자아는 세계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무력한 존재이다. 자아와 세계의 이런 관계는 일제하 삶의 일반적 양상이다. 이 빼앗긴 것, 아직 빼앗기지 않는 것은 주로 ‘내 마음’. ‘혼’이란 상관물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킴’의 윤리적 의미에 ‘촉기’라는 용어로써 미적 의미를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