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조 애정 형상의 비교문학적 고찰-사설시조와 현대시의 비교를 중심으로[ 목 차 ]1. 들어가며2. 사설시조에 대한 개관3. 사설시조에 드러나는 애정의 유형3-1. 성적 욕망을 다루는 외설적 시조3-2. 고달픈 생활에서의 탈피3-3. 남녀 간의 진솔한 애정표현4. 현대시의 애정형상과 사설시조와의 비교5. 결론※ 참고문헌1. 들어가며조선 전기는 유교를 기반으로 한 가부장 중심의 사회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시대의 여성들은 상류층 몇몇을 제외하고는 여느 양반집 사대부의 남성들처럼 학문을 닦으며 심성을 수양할 수 없었다. 또한 가부장제를 중심으로 한 조선사회에서 양반 남성들은, 자신의 부인 외에도 기방의 기녀들과 접촉하면서 풍류를 즐기고 때로는 육체적인 교감까지 나누는 처지였다. 이러한 연유로 기방의 기녀들은 양반들과의 교류에 있어서 악곡을 가창(歌唱)하고 때로는 직접 창작 시조를 지어 읊기도 하였다. 이처럼 시조는 이미 조선 전기에 사대부의 중심문학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그 내용과 주제, 형식면에서 점차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였다.이렇게 해서 사설시조가 등장하게 되었고 평시조와는 조금 다른 파격에 가까운 모습을 띄게 된 것이다. 사설시조의 경우 다른 평시조의 주제와는 다르게 성적 정서가 짙은 섹슈얼리티한 경우가 적지 않고, 성의 해방에 대한 담론을 보다 더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도 그 나름의 위상을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사설시조들이 그러한 면모를 보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그 범위를 어디까지 제한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논점은 남아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사설시조의 불규칙한 주제의 특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설시조에 드러나는 다양한 애정관과 이들이 드러나는 양상을 비교해보려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애정형상이 시대가 한참이나 흐른 뒤인 현대의 문학에서는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지 현대시를 중심으로 파악해보도록 하겠다.2. 사설시조에 대한 간략한 개관평시조의 변형의 정도가 심해서 2행 이상이 6구로, 어생동성을 불어넣어 주는데 애정을 주제로 한 사설시조에서는 이것이 다소 노골적이고 강한 묘사로 나아가면서 에로티즘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종래의 관습화된 시적 표현을 뛰어넘어 인간의 욕망을 세속적으로 묘사하고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성이라는 주제를 시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문학의 소재를 보다 넓혔다는 점에서 애정형상이 드러나는 사설시조는 그 나름의 의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설시조는 중세의 보편적 이념을 탈피하고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근대로 나아가는 이행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겠다. 이제, 서론에서 밝혔던 것처럼 사설시조의 애정형상에 대해서 몇 가지 유형으로 대표되는 몇 개의 작품을 통해 비교 분석해보자.3. 사설시조에 드러나는 애정의 유형1)성적 욕망을 다루는 외설적 시조얽고 검고 킈 큰 구레나룻 그것조차 길고 넙다쟘지 아닌 놈 밤마다 ㅂ에 올라 죠고만 구멍에 큰 연장 너허 두고 흘근할젹 제 애정은 니와 泰山이 덥누로 듯 放氣소릐에 졋 먹던 힘이 다 쓰이노라아므나 이놈을 ㄷ려다가 百年同住 ㅎ고 永永 아니온들 어ㄴ 개ㄸ년이 싀앗새옴 ㅎ리오[현대어 풀이]얽고 검고 키 큰 구레나루 그것조차 길고 넓다잠기지 않는 놈 밤마다 배에 올라 조그만 구멍에 큰 연장 넣어두고 흘근할근할제는 애정은 커니와 태산이 덮누르는 듯 잔 방귀 소리에 젖먹던 힘이 다 쓰이노매라아무나 이 님을 데려다가 백년동주하고 영영 아니온들 어느 개딸년이 시앗새옴 하리오이 작품에는 화자의 성 경험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남녀의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직접적으로 이뤄져 있고 다소 낯이 뜨거운 비속어의 등장도 예사롭지 않다. 그렇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성적인 묘사로써만 이 작품을 해석하면 곤란하다는 점이다. 분명, 이 시조는 성적인 표현을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의식은 단순하지가 않다. 일단 시조에 등장하는 남성은, 자신의 성적인 매력에 자신감이 넘치고 얼핏 보아도 성경험이 적지 않은 사내임에 틀림없다. 얽고 검은 큰 구다는 의미로 해석하기에는 다소 밋밋한 감이 있다. 즉, 화자는 가부장적 위치에 있는 상대남성의 욕망 표출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욕망 표출을 위해 상대남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조차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의 시조를 단순히 사실로써 보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즉, 이렇게 외설적인 내용을 닮고 있는 시조는 사실에 바탕을 두는 것뿐만 아니라, 욕망의 분출에 대한 어떤 갈망을 담고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2) 고달픈 생활에서의 탈피어이려노 어이려노 싀어마님아 어이려노쇼대 남진의 밥을 담다가 놋쥬걱 잘눌 부르쳐시니 이를 어이려뇨 싀어 마님아져 아기 하 걱졍마라스라 우리도 져머신제 여러흘 부르쳐 보왓내[현대어 풀이]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시어머님아,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間夫의 밥을 담다가 놋주걱 자루를 부러뜨렸으니 이를 어떻게 합니까 시어머님,아기야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도 젊었을 때 많이 부러뜨려 보았네몇 백 년이 지난, 요즘의 시대에도 충격적이고 놀라움에 눈이 번쩍이게 되는 내용의 사설시조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시어머님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라는 초장으로 시작하는 이 시조는 며느리의 외도를 시어머니가 눈감아 주는 형태로 고부간이 서로의 성적인 욕망과 현실의 한계에 대해 동감해주는 양상을 그리고 있다. 초중장은 샛서방의 밥을 담다가 주걱을 부러뜨린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자신의 허물을 밝히는 내용이다. 아마도 시어머니로 지칭되는 인물은 제3자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종장에 ‘져’라는 원칭지시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즉 바로 앞에서 대화하고 있는 대화 당사자가 아닌, 단지 위로를 해주는 대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아마도 화자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비난과 질책보다는 타인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조의 내용은 다소 놀랍고 충격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요즘 같이 자유분방하고 성의 개방도가 예전에 비해 비교적 커 城(성) 안에 담 싸고 담 안에 집을 짓고 집 안에 두지 노코 두지 안에 櫃(궤)를 짜고 그 안에 너를 必字形(필자형)으로 結縛(결박)하여 너코 雙排目(쌍배목) 외걸쇠金(금)거북 자물쇠로 슈긔슈긔 잠가 있더냐. 네 어이 그리 아니 오더니.한 해도 열두 달이오 한 달 셜흔 날의 날 와 볼 할니 업스랴.[현대어 풀이]어찌하여 못 오던가, 무슨 일로 못 오던가?너 오는 길에 무쇠로 성을 쌓고, 성 안에 담을 쌓고, 담 안에 집을 짓고, 집 안에 뒤주를 놓고, 뒤주 안에 궤짝을 짜고, 그 안에 너를 오랏줄로 꽁꽁 묶어 넣고, 쌍배목, 외걸쇠, 금거북 자물쇠로 꼭꼭 잠가 두었느냐? 너 어째서 그렇게 오지 않았느냐?한 해는 열두 달이요, 한 달도 서른 날인데 나를 찾아올 하루의 여유가 없단 말인가.삶과 가장 맞닿아 있으면서도 인간에게 있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쉽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남녀 간의 애정이다. 위의 사설시조는 단순하지만 해학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님에 대한 그리움을 고상한 기품에 녹여 승화시킨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원망 섞인 말투로 자연스레 투정을 부린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데도 수많은 장애가 있듯이 이 세상엔 사랑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들이 너무나도 많다. 때론 그 장애물이 눈에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왜 님은 오지 않는 것일까? 님이 떠난 것일까, 아니면 이미 세상을 떠나기라도 해서 오려 해도 올 수 없는 것일까? 아마도 전개되는 글의 양상으로 봐서 전자에 더 가까울 듯하다. 그렇게 많은 시간들 속에서도 단 한 번도 화자를 찾지 않는 님에 대한 원망이 서려 있는 것이다. 누구나 떠난 사람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어 본다면 그 원망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하다보면 필시 상대방에게 원망을 하게 된다. 자신을 더욱 사랑해 달라고 호소하는 투정과 이미 떠나 버린 님을 원망하는 것에는 커다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원망을 해학과 과장을의 아궁이와 굴뚝에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지잡탕 찌개백반이며 꿀꿀이죽인나의 사랑 한 사발을 들고서,그대 연명하고 계신지그대 문간을 조심히 두드려봅니다.최승자 시인의 라는 시이다. 얼핏 보면, 사설시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대’라는 시어에 힘을 실어서 사랑에 대해 읊고 있는데 표현이 사뭇 진지한 듯 하면서도 재미있다. 즉 가벼운 듯 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물론 화자는 상대방인 ‘그대’와 이별한 상태이다. 그렇지만 님에 대한 원망이나 열망 어느 것 하나 노골적으로 표현된 곳이 없다. 결과적으로 시를 모두 잃고 난 후에, 무엇인가 느껴지는 듯 하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곧바로 알아낼 수 없다. 시의 맛은 오묘함에 있다는 옛말도 있듯이, 이별에 대한 감정을 애달프게 이야기하면서도 절제의 경계는 절대 넘지 않는다. 1연에는 이별한 후에도 여전히 ‘그대’를 잊지 못하고 있는 화자의 내면이 영혼의 살림집과 불기를 통해 묘사된다. 화자에 대한 ‘그대’의 사랑이 아직 식고 있지는 않은지, ‘그대’는 이미 화자를 잊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그리워하고, 그것을 아궁이와 굴뚝, 그리고 연기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그렇지만 이 시가 갖고 있는 의미는 2연에 있다. 잡탕 찌개백반과 꿀꿀이죽은 보잘 것 없고 형편없으며 심지어는 더럽기까지 한 속성을 갖고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모아 만든 잡탕 찌개백반과 며칠을 굶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입에 대지 않을 꿀꿀이죽을 화자 자신의 사랑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자학의 의미를 갖지만, 한 발 더 나아가서는 그러한 자학을 통해 ‘그대’를 향한 자신의 심정을 비꼬아서 표현한 것이다.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렇게나 큰데 당신은 왜 나의 마음을 몰라주느냐와 같은 신파성 자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다음 구절을 통해 재확인된다. 화자는 어느새 ‘그대’가 있는 문간 앞에 서 있다. 그러한 찌꺼기 같은 화자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서 ‘그대’로 대변되는 상대방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조심다.
목차1. 서론2. 프랑코의 생애3. 프랑코 정신분석의 목적4. 프랑코에 대한 심리 분석5. 결론※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연보※ 참고문헌1. 서론프란시스코 프랑코는 히틀러, 무솔리니와 함께 20세기 전반기에 세계사를 결정지은 대표적 인물이다. 이전까지 나는 프랑코에 대해,「쿠데타를 일으켜 파시즘 국가를 설립하고 2차 대전에서 독일을 지원한 강력한 독재자」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가 권력을 쟁취하기 전까지의 과정은 모른 채, 오로지 틀에 박힌 사고로써 그를 평가했지만 프랑코는 독재자이기 이전에, 지략과 언변이 뛰어난 지도자이며 하나의 인간이었다. 이런 인물이 만약 현대에 다시 출현한다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도 독재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그들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현대사에 있어, 여러 명의 독재자를 통치자로 둔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도 눈여겨 볼만한 문제이다. 지금껏 우리는 그의 독재자적 모습에만 치우쳐 그의 인간적 기질과 면모를 살펴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한 인물이 성장하는데 있어 주변 인물과 환경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생애와, 나아가서 그의 심리분석을 통한 정신세계를 알아보고자 한다.2. 프랑코의 생애-프랑코의 정신분석을 위해 그의 어린 시절을 보다 더 자세히 조사했으며 청년 이후의 시간들은 주요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술하였습니다.① 프랑코의 어린 시절:프랑코가 태어난 곳은 스페인 서북부의 갈리시아 지방에 있는 엘페롤이라는 곳으로,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마을이었다. 1892년 12월 4일 낮 12시 반에 태어난 그는 당시의 스페인 사회의 관습대로, 프란시스코 파울리노 에르메네힐도 테오둘로 프랑코 이 바아몬데(Francisco Paulino Herme-negildo Teodulo Franco y Bahamonde)라는 긴 세례명을 줄줄이 갖게 되었다. (‘바아몬데’ 라는 마지막 이름은 그의 어머니의 성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생 동안 대부분 그냥 ‘프랑코’ 라고만 알려져 왔다. 프랑코가 태어나던 시기의전혀 불평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고, 고요함과 품위를 절대로 잃지 않았다. 결혼한 지 1년 조금 넘어서 아들을 낳았는데,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니콜라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이듬해가 거의 다 갈 무렵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태어났다. 그 후에도 아이를 셋 더 낳았는데 그들의 이름은 필라르, 라몬, 파시타였다. 남편 니콜라스는 직업은 물론이고 소일거리로 하는 일마저도 집에 붙어서 하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게다가 필라르에게 너무나 적은 생활비를 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궁색한 살림 속에서 겨우 체면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가족들이 ‘파키토’ 라고 부르던 프란시스코는 아이들 중에서 아버지의 외박과 어머니의 불행을 가장 민감하게 받으들이는 성격이었고,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었다. 형 니콜라스와 동생 라몬은 둘 다 아버지와 성격은 둘 다 아버지와 성격이 비슷해서 외형적이며 만사태평이었으나, 프란시스코는 점점 더 속으로 움츠러들면서 수줍음을 잘 타고 내성적으로 되어 갔다. 프랑코는 여러 면에서 자기 어머니를 닮았다. 체격도 보통 소년들보다 작았으며(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160센티미터가 채 못 되었다) 손발도 자그마했고 눈동자는 연한 갈색을 띠고 있었으며, 입술은 두툼했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고기잡이를 하거나 수영을 하면서, 축구를 하거나 해적놀이를 하면서 소년은 해군이 되어 바다에 나가는 꿈을 꾸었다. 자기 아버지처럼 책상 앞에 앉아서가 아니라 전쟁에 직접 참가하여 공을 세우는 용사가 되고 싶어 했다. 프란시스코가 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는 이 소년의 장래뿐만이 아니라 엘페롤과 전(全)스페인의 미래가 암울해 보였다. 스페인이 얼마 남지 않은 귀한 식민지들을 거의 모두 잃어 가고 있던 시기였다. 스페인 군대가 쿠바의 게릴라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장난 수송선들이 엘페롤 항이나 또 다른 항구에 느릿느릿 들어와서는 열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쇠약한 병사들과 선원들을 잔뜩 내려놓고 갔다. 그렇지 않아도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던 프란시스코의 어머니에게는 또 보병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모로코에서는 봉기한 부족들이 스페인군과 싸우면서 좋은 전과를 올리고 있었고, 프랑코는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할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② 성인이 된 프랑코:알카사르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09년부터 에스파냐령 모로코의 리프족(族)의 민족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활약하였고 1921년 장군이 되었다. 1928년 사라고사에 신설된 사관학교 교장이 되었으나 1931년 공화제가 수립되자 공화정부에 반대한 이유로 1933년 사관학교는 폐쇄되고 발레아레스 섬으로 좌천되었다. 1935년 10월 무어인 부대와 외인부대를 이끌고 아스투리아스의 노동자봉기를 진압, 참모총장이 되었다. 1936년 2월 ‘인민전선정부’가 수립되자 즉각 반(反)정부 쿠데타 준비에 착수하였으나, 정부에 의해서 카나리아제도(諸島)의 수비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그해 7월 모로코로 가서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얼마 후 반란군 측의 주요인물이 사망 혹은 체포되었기 때문에 프랑코의 세력이 커져 10월 국민당 정부 수반 및 군총사령관이 되었다. 그 후 2년 반에 걸친 에스파냐내란에 승리, 팔랑헤당(黨)의 1당 독재에 의한 파시즘국가를 수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명목상으로 중립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독일 ·이탈리아를 지원하였기 때문에 전후에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기는 표면적으로는 자유화의 기운이 돌았고 1955년 미국의 반공정책에 따라 국제연합에 가입하였다. 1966년 종신주석의 지위를 확립하고 1969년 국회에서 그가 죽거나 집정이 불가능해지면 부르봉가(家)의 후안 왕자 카를로스가 왕위에 오를 것을 선언하였다.3. 프랑코 심리분석의 목적정신분석은 프로이트가 창안하여 오늘날까지 정신과 임상에서 사용되는 치료 기법으로, 인간의 행동과 심리 속에 잠재한 무의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인간의 행위 속에는 의식적인 동기 뿐 아니라 무의식적인 동기가 잠재해 있어서 그 무의식을 잘 살펴보면 현재의 정상적인 그리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다 잘 이해할로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수백만 국민들에게 존재하는, 그리고 그것이 스페인뿐만이, 아닌 모든 문명국가에서 어느 정도 발생할 수 있는 인간유형의 한 종류로써 파악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러한 인간유형의 발달 요인들을 부추기는 심리적인 기제를 발견하고, 우리 사회를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그것을 전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4. 프랑코에 대한 심리분석◆ 프랑코의 초기경험을 통해프랑코의 아버지는 모순 덩어리로서의 자신을 보여주었다. 스페인 해군 행정부대 소속의 장교였던 아버지의 성격이 괴팍하며, 방탕하고 낭비가 심하여 어린 시절의 가정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프랑코의 아버지는 외적으로는 해군 소속의 건실한 장교였지만, 그의 실체는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술과 여자에 탐닉하는 한심한 가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프랑코는 혼란을 느끼게 되고, 적응을 위한 안내자 역할의 명확한 모습을 스스로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그 자체가 심한 장애일 뿐 아니라, 주변 세계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아이는 왜곡된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당시 자신의 세계는 집이고, 나중에는 집을 바라보던 시각으로 바깥세계를 판단하게 된다. 프랑코의 경우 세계는 매우 위험하고 불확실하고 부당한 곳으로 보였을 것이며, 어린 시절 거기에 대처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곳을 피해 가능한 한 먼 곳으로 도망쳐야겠다는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불안감은 아버지가 집에 왔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 혹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뭘 기대할지 미리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심화 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사랑과 안정감을 심어줘야 할 사람이 불안과 어려움과 불확실성을 채워준 것이다.아버지와는 달리 절제되고 진지했던 프랑코는, 경건하고 보수적인 중상류층의 가톨릭 교도였던 어머니와 자연스레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결국 어머니와 아들 간에는 강력한 *리비도적 애착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프랑코는 떼를 쓰고 칭얼대는 성향이 있긴 했지만, 그다지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떼를 쓰는 행동의 즉각적인 발달단계에 따른 분석1) 구강기:프랑코는 친밀한 대인관계 형성 능력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학창시절을 보면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급우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고 비협조적이며 소극적이어서 늘 놀림거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구강기의 고착적 성격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동적이고 미숙하다는 점에서 구순 동조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순 동조적 성격의 원인은 어린 시절 그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어머니에게만 지나치게 의지하며 자라났다는 점에서 불만족보다는 과도한 에너지의 투입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의 질이 결정적인데, 어머니는 유아의 개별적인 욕구를 민감하게 보살피고 문화적으로 전수된 양육방식으로 자녀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프랑코는 어머니와는 매우 밀접한 신뢰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아버지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고 이러한 편향적 사랑이 프랑코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2) 항문기:프랑코의 어머니는 매우 깔끔하고 단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런 면에서 그녀의 배변 훈련은 다소 엄격했을 것으로 보인다. 배변 훈련 과정에서의 좌절은 아이들에게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적대감은 환상의 표출 통로를 찾고 있는 유아적 공격성과의 연합을 촉진한다. 그것들은 대개 더럽힘, 모욕, 파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이 후, 그의 다양한 가학적 행위의 근간을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유아들이 배변훈련을 거치면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코는 그런 상황들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잠재된 폭력성을 더욱 억압했을 수다고 볼 수 있다.남편에 대한 실망감과 더불어, 그의 어머니는 프랑코에게 집착 성향을 보였다. 프랑코는 그의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매우 연약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프랑코의 성격을 거의 버려놓을 정도로 그의 변덕을 다 들어주었으며 과보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 단계에서 프랑코는 과보호로 인해서 자
김천택 시조의 작품세계1. 남파 김천택의 생애조선 후기의 시조작가 가객, 평민 출신으로 숙종 때 포교를 지냈다. 그는 72편의 시조를 남긴 조선 후기 여항시의 대표적 시조 작가, 가객이다. 당시 시조는 단가短歌로 불리며 문학보다는 노래말의 범주에 속했고 따라서 당시에 시조를 짓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기에 그를 시조 작가 겸 가객이라고 한다. 그는 중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한문을 능히 구사할 줄 알았기에 당시 양반들과 한문, 한시문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한문을 익힌 중인이 사대부의 전유물인 한시의 영역에 뛰어든 것은 17세기 중엽부터였는데 여기서 또 하나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김천택의 경제적 기반이다. 한시를 알고 한문으로 글을 지을 수 있기 위해서는 거기에 전념해서 공부할 여건이 되어야 하는데 포교나 노래꾼으로는 여의치 못하기 때문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김천택은 선대에 이미 상당한 재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하게 한다. 생계유지를 위해 허덕이지 않아도 좋을 만큼의 경제적 기반을 물려받은 바탕에서, 사대부의 전유물인 영역에 뛰어든 중인, 그러나 그 재력이나 지식으로써 사회나 국가를 위해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게 하는 신분제의 장벽이 그로 하여금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따라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노래와 부르고 시조를 짓거나 모으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김천택의 모습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같은 평민 출신인 노가재, 김수장 등 걸출한 가객들을 모아 ‘경정산가단’을 조직해 조선 후기 시조의 흐름을 주도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는 것도 이해가능하다. 또한 1728년에는 조선 시대 시조를 모으고 이론을 정리하여 이라는 시조집을 편찬하는데 이는 국문학사상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당시에는 한시에 비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시조가 오늘 날 우리 민족의 문학적 전통을 대표하는 갈래로 ‘시조’를 떠올리게 된 것도 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정도로 그 국문학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2. 남파 김천택의 작품 세계지금까지 남파가 남긴 시조집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그에 반해 ‘시인’으로서 김천택의 작품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편이다. 현재 김천택의 작품으로 확인되는 것은 총 72편인데, 그 중 27편은 자신이 엮은 에 자신의 노래로 밝혀놓은 것이고, 나머지는 김수장이 엮은 에서 김천택의 작품으로 밝혀놓고 있다. 72편은 상당히 많은 수이기에 김천택의 작품경향이나 세계도 획일적일 수는 없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태극을 김천택 시조의 내용에 따라 22항목으로 나누고 7항목으로 정리하기도 하였다(이태극. 남파시조의 내용고. 1970).제일 먼저 김천택 작품 세계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히는 것이 ‘사대부 지향’적 성격이다. 실제로도 공맹의 가르침을 찬양하거나, 충효, 절의 등을 강조하는 등의 교술성이 강한 유교지향적인 작품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 김수장과는 다르게 서민의 장르인 사설시조의 창작에 소극적(사설 시조는 한편도 짓지 않음)이었다는 특징을 보자면 김천택의 작품의 사대부 지향적인 성격을 부인할 수 없다.두 번째 특징은 시대와 사회현상에 대해서 고뇌, 그에 대한 좌절의 성격이다. 이는 김천택 외에도 중인 계층의 가객들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성격으로 주로 신분상의 한계로 인한 탄식, 좌절, 불만을 표출한다. 특히 書劍, 長劍등의 시어를 주제로 하는 작품들에 많이 드러난다. 김천택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포교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로 인하여 사회적 활동에 제한을 받았다. 그는 끊임없이 양반의 신분으로나 가능한 높은 이상을 꿈꾸며 작품을 통해 이상의 좌절과 탄식을 표출하였다.이러한 불만을 풀어내는 방법들 역시 김천택 작품의 한 성격을 이루고 있다. 하나는 술로써 사회에 대한 고뇌, 좌절 등을 달래는 술노래 작품이다. 정철의 술노래와는 달리 김천택의 술노래에는 원천적인 자포자기의 성격이 강하다. 두 번째는 歸自然(귀자연)의 노래이다. 특히 김천택의 작품 중에서는 적지않은 강호시가들이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사대부들의 강호시가와 흡사하다. 여기서도 김천택은 그럴듯하게 양반흉내를 내며 상층 세계의 의식에 지나치게 경도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김천택의 귀자연에는 속세와 깨끗이 절연하고 강호자연에 파묻혀 스스로 만족하고 살겠다는 정서가 담겨있다. 김천택의 강호시가에서는 비록 귀자연이 신분으로 인한 좌절, 불행으로 인한 도피에서 시작되었지만 자연 속에서 ‘불행 속의 행복’을 찾으려 했다고 할 수 있다.3. 작품 세계의 주요 경향 및 시조 해설(1)叩馬諫 不聽커? 首陽山에 드러가셔周栗을 아니 먹고 ?츰내 餓死키?千秋에 賊子의 ?음을 것거 보려 홈이라.고마간 불청커늘 수양산에 들어가서주속을 아니 먹고 마침내 굶어죽기는아주 오랜 세월 동안 적자의 마음을 겪어 보려 함이라· 叩馬諫(고마간) : 말이 못 가게 붙들고 간(諫)함. 주나라 무왕武王이 주나라를 칠 때 백이와 숙제가 말렸던 고사에서 비롯함.· 首陽山(수양산) : 중국 산서성에 있는 산으로 백이와 숙제가 굶어 죽었다는 산· 周栗(주율/주속) : 주나라에서 나는 곡식· 賊子(적자) : 불충, 불효한 사람(2)知足이면 不辱이오 知止면 不殆라 ?니功成 名遂?면 마? 거시 긔 올흐니어즈버 宦海 諸君子? 모다 조심 ?시소지족이면 불욕이요, 지지면 불태라 하니공성명수하면 그만 두는 것이 옳으니어즈버 환해제군자는 모두 조심하시오· 知足不辱 知止不殆 (지족불욕 지지불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벼슬길이나 물욕에 대해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음· 功成名遂(공성명수) : 훌륭한 공적을 이루고 명성을 크게 떨침· 宦海 諸君子(환해제군자) : 벼슬길에 든 모든 분(3)섭 시른 千里馬를 알아 볼 이 뉘 잇시리十年 ?上에 속졀업시 다 늙?다어듸셔 살진 쇠양馬는 외용지용 ?는이.섶 실은 천리마를 알아 볼 이 누구 있으리십년 역상에 속절없이 다 늙었다어디서 살찐 둔한 말은 외용지용 하느니· 섭 : 섶 · 十年 ?上(십년 역상) : 말이 십년 동안 마판 위에만 있어 헛되이 세월만 감· 쇠양마 : 둔한 말 · 외용지용 : 말이 우는 소리를 형용한 말(4)?면 다시 먹고 醉?여 누엇신이世上 榮辱이 엇덧튼동 나 몰?라平生을 醉裡乾坤에 ? 날 업시 먹으리라.깨면 다시 먹고 취하여 누었으니세상 영욕이 어떻든지 나 몰라라평생을 취리건곤에 깰 날 없이 먹으리라· 엇덧튼동 : 어떠하든지
굿과 연극의 상관성에 대하여- 위도 띠뱃놀이를 중심으로[ 목 차 ]1. ‘굿 논쟁’을 통해 본 극과 연극-‘굿’ 논쟁의 발단2. 굿과 연극의 상관성에 대한 논의에 대하여3. 위도 띠뱃굿에 대하여3-1. 띠뱃굿의 전승현황3-2. 띠뱃굿의 진행과정4. 띠뱃굿의 변화 양상5. 띠뱃굿의 축제적 재구성과 의미6. 결론※ 참고문헌1. ‘굿’ 논쟁을 통해 본 극과 연극- ‘굿’ 논쟁의 발단김명곤 작?연출의「점아 점아 콩점아」는 극단 ‘아리랑’에 의해 1990년 5월 9일부터 31일까지 ‘예술극장 한마당’에서 초연되었다. 작가이자 연출가인 김명곤에 따르면, “마당극적인 구조에 무극의 요소가 강하게 접목된 마당굿”인 이 작품은 1980년 5월 민주화운동 때 죽은 총각과 6.25때 폭격으로 죽은 북한 처녀를 혼례시켜 그들의 원통한 한을 풀어준다는 내용의 ‘망자 혼례굿’을 소재로 하여 굿의 연극화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더불어 통일의 염원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연희단 거리패’의 「오구‘-’죽음의 형식」과 함께 『한국연극』 1990년 8월호에 실린 연극평론가 이상일의 이 두 작품에 대한 비평이 발단이 되어 ‘굿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다음은 그 논쟁의 일부이다.1) 부산‘연희단 거리패’의 『오구-죽음의 형식』, 극단 ‘아리랑’의『점아 점아 콩점아』-이상일“우리의 전통적인 굿은 저승과 현세를 연결시키는 부첩의 기호학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거기에서 민간신앙이나 기층문화권의 소망을 읽고 민족극의 원형을 운운하는 것은 민중기호학의 주관적 확대에 불과하다. 굿은 굿이고 연극예술은 아니다. 그것은 제의이며 따라서 굿에서 원시 종합예술의 씨앗을 본다고 해도 씨앗을 키워서 예술로 만들지 못하면 결국 굿은 굿이고 그 굿은 지난 생활문화의 잔존물일 뿐이다.”(『한국연극』, 1990년 8월호)2) 굿과 연극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위하여, 『한국연극』 7월호의 이상일 교수의 「공연과 비판」을 읽고 -이윤택“단적으로 말해서 굿은 우리 민족의 원형연극이다. 바꾸어 말해서 우리 통을 느끼게 될 때니라능적으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욕구가 작용하여 되며 이 욕구는 바로 쁿람들이천이 된다. 삶에서 맺힌 고통을 풀어주는 것이 쁿람들이리께풀어냄으로써 쁿판은 응집력을 발휘하게 되고 역동감과 생명력을 갖추게 된다. 종교적 제의의 형태를 빌리곘 또는 예술적 유희의 형태를 빌리곘 본질적으로 해방에의 욕구가 그 모든 행위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욕구는 신명이라는 현상이라고 분출된다. 고통이 깊으면 해방되려면 욕구도 강해지고 ?신명도 높아지게 되는데 한껏 높아진 개개인의신명은 한데 모아져집단적신명풀이로 진행되고 이집단적신명 각자의들의 해방빌리곘한 가장 강력한 힘람들이천이 된다.”(『한국연극』 1990년 11월호)2. 굿과 연극의 상관성에 대한 논의에 대하여굿의 제의적 절차에 대해서는 민속학적, 문화인류학적 연구가 꾸준히 이뤄져왔다. 또한 무속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학문적 연구에 있어서 필연적일 수도 있다. 굿의 연극적 고찰도 굿거리의 단순한 관찰로써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굿의 표면적인 형태를 뛰어넘어, 굿의 미학적 의미를 밝히는 보다 깊은 연구에까지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굿의 연극학적 접근은 먼저 굿의 제의적인 면과 놀이적인 면의 구분에서 시작될 것이다. 기존의 연구에서 논의됐듯이 대개의 경우, 제의 절차가 중심이고 축제 형식은 종속적 행사로 간주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굿의 종류에 따라 즉, 신을 어떻게 대하고 놀리느냐에 따라 굿이 놀이가 될 수 있고 제의 자체가 놀음이 될 수 있다. 또한 여기에서 우리는 굿을 행하는 주체자인 무당의 역할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당이 굿을 하는 의도가 잠재적으로 금전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즉 무당이 굿을 얼마나 잘하느냐 하는 문제는 얼마나 구경꾼들의 갈채를 얻어내고 내용적으로 굿거리가 그들을 감격시키느냐와 관계가 없지 않다. 무당이라는 굿의 연출자 겸 연기자는 그러한 목적추구의 제의집행자로서 굿의 결과에 신경을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제해서는 안 된불어넣으려는 의지인 것이다. 신을 즐겁게 만들로 이예언을 얻어내려는 오신과정에서, 인간을 즐겁게 만드는 굿거리는 그만큼 연극적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신을 즐겁게 하고 모여든 관객들을 기쁘게 만드는 가무오신의 과정 다음에 벌어지는 공수 과정에서 우리는 신의 주술적 흉내를 내는 무당을 발견한다. 신이 내린 무당은 완전히 자기 자신이 신으로 변신한다. 「영매」에서 신들린 한 무당은, 신이 들린 채로 돼지의 내장을 입으로 물어뜯기도 하지 않았는가! 신들린 무당은 신의 말을 전하고 신의 의지를 관객들에게 명확하게 각인시켜줘야 한다.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병마를 쫒고 풍년을 빌거나 풍어를 바라는 굿에 있어서 그에 알맞은 행위를 통해 소망을 형상화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당들은 굿의 목적에 따라 ‘제의적 놀음’을 통해 신의 말을 보다 현실감 있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부가적으로 대가를 얻으려 하며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연희적 놀음’을 통해 신의 말씀에 보다 더 귀를 기울이고 나아가 세속에 찌든 자신을 해방시키는데 신을 떠올리며 마음의 짐을 덜어내려 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각각의 놀음은 놀음을 행하는 주체(무당인가, 관객인가)에 따라 그 성격 또한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무당의 ‘제의적 놀음’과 관객의 ‘연희적 놀음’은 서로 나름대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둘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점 역시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바로 그것이, 신과 인간의 영역에서 드러나는 공백이라고 생각하고 그 공백에 획을 긋고자 시도하는 것이 굿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이제 나는, 내 구체적 경험을 통해 그 둘의 경계점을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해보려고 한다.3. 위도 띠뱃굿에 대하여나는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로서, 반드시 복무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를 바다에서 다했다. 그 중 1년을 전북 부안군 위도라는 섬에서 보냈는데 이때 나는 아름다운 섬과 더불어 낯선 문화들을 많이 체험했었다. 위도 대리마을에서 선박 출입확인 업무를 담당했던 나는 당시 마을 주민들 띠뱃굿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위도 띠뱃놀이’라는 이름으로 1978년 제1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마을 주민들이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1985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부터이다. 197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위도 띠뱃놀이’가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후,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전통 문화 유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긍지와 자부심을 토대로 1980년 ‘위도띠뱃놀이보존회’를 결성하고 이 고장의 어촌 민속과 전통의 원형을 보존 계승한다는 취지하에 ‘띠뱃놀이’를 국가 무형문화재로 만들려는 노력을 지속하여 1985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기에 이른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마을 주민인 이복동 씨와 세습무 조금례 씨가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받았다.위도 대리마을 인근에는 치도리, 벌금, 진리 등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들에도 각각 무녀가 살았었고 각 마을마다 무굿으로 이루어진 마을굿이 있었다고 하나, 무녀가 사라지면서 마을굿도 차차 소멸하였다고 한다. 대리에 남아있던 조금례 무녀도 1995년에 세상을 떠나자 대리 마을에서 오랫동안 그 굿을 지켜보고 참여해 왔던 마을주민인 안길녀 씨가 이어서 무녀의 역할을 하였으나 안길녀 씨조차 1998년 사망하여 현재는 각지의 무녀를 알아봐 서 초빙하여 굿을 하고 있다. 위도 띠뱃굿은 현재 전승되는 전북의 마을굿 가운데 무굿 중심으로 연행되는 풍어제 성격의 도서형 마을굿으로 유일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위도 세습무의 무굿이 단절된 상태로 전승 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그 연행의 형태나 의미도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즉, 전승 과정을 거치면서 특정한 행위들이 선택되거나 배제되고, 강화되거나 약화되면서 조정되고 관습화된다.3-2. 띠뱃굿의 진행과정위도 띠뱃놀이는 무굿을 중심으로 한 마을굿이라서 제의적 행위의 조정과 관습화 문제는 주 연행자인 무녀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우선 띠뱃놀이 연행의 전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마을회의 → (2성들이 이 굿 절차에서 여성들이 많이 마을 앞에 나와 있다가 이후 용왕제부터 줄밥 뿌리기에도 여성들이 적극 참여한다.용왕제는 무당이 중심이 되며 마을 액을 제거하고 바다 원혼을 달래며 풍어를 비는 여성중심 제의이다. 띠뱃놀이가 진정한 대동적 놀이가 이루어지는 절차이다. 여자들이 주축이 된 풍물패가 한복 입고 고깔 쓰고 함께 어울리는 신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축제’가 시작된다. 풍물패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고, 원당제에서는 배제되었던 부녀자들의 참여가 활발히 일어나기 시작한다. 무녀의 용왕굿 이후에는 죽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골고루 풀어준다는 의미에서 해변을 따라가면서 ‘줄밥/가래밥’을 바다에 뿌린다. 무녀가 앞장서고 풍물패와 부녀자들이 뒤따라간다. 무녀가 줄밥을 바가지로 퍼서 바다에 뿌리면서 ‘가래질 소리’나 ‘술배소리’를 선창하면 풍물패가 풍물을 울리며 뒤따르고, 상쇠를 중심으로 그 노래의 뒷소리를 받는다. 여기에 “여자들이 끼어야 더 재미가 있다”고 해서 풍물패 뒤에 마을 부녀자들이 따라가면서 소리를 하고 어깨춤을 추고 흥을 돋구었다.4. 띠뱃굿의 변화 양상마을굿에서 제의적 진지성을 고양하는 것은 바로 금기를 통해서이다. 금기는 신과 인간의 세계가 만나기 위해 속세의 인간이 신성의 세계에 거치는 단계로서 과거에는 제관의 금기, 행동의 금기, 장소의 금기, 제물에 따른 금기 등 온갖 금기가 엄격하게 지켜졌다. 현재 제의성이 약화된 띠뱃놀이에서는 금기를 지키는 것에 대해 의미부여를 과거만큼 하지 않는다.특히 부정한 외지인을 출입을 막음으로써 마을 공간을 신성화하는 것은 중요한 금기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외지인의 출입을 장려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외지에서 오는 사람은 대개 진지한 참여자들이거나 방송국 기자들, 학자들, 학생들이다. 부정한 마을 사람은 올라가지조차 않았던 당에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원당제를 보러 올라간다. 제의에서 청관중이 이처럼 외지인이 많이 방문하게 된 것은 위도 띠뱃놀이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널리 알려지게 되한다.
초등미술교육 구성주의 저학년 평면(그림자 놀이+여러가지 표현)구성주의는 학습자가 스스로 활동을 통해 의미를 창출하고 지식을 구성해가는 것이다. 학생이 학습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지식을 구성해 나가며, 교사는 학생의 학습을 도와주는 안내자이자 공동 학습자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 수업은 단지 여러 가지 표현방법만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학생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의미를 만들고 지식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돕고, 창의성과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냄으로써 구성주의에 입각하여 학습목표를 적절하게 제시하였다고 생각한다. 수업의 첫 부분에서 외계인 이야기를 이용해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미술 지식을 구성하도록 동기를 유발하는 것, 아이들 스스로 어울리는 표현 방법을 찾아 평면에 표현하도록 한 전체적 흐름이 구성주의와 연결되었다고 생각한다.도입부에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선생님 옷에 낙서가 돼 있었어요. 이것도 외계인 친구가 그린 거에요. 어떻게 그렸을까?”, “여러분이 본 게 그림자인데, 그러면 그림자의 특징이 뭘까?” 와 같은 발문을 하여 외계인으로부터 편지가 온 설정을 하여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시킨 점이 좋았고, 그림자 동영상을 보고 난후 그림자에 대해서 발문함으로써 활동으로 이어지는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수업 전개면에서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외계인의 편지와 그림자 동영상을 소재로 수업을 도입하여 수업전개 과정에서 여러 가지 표현기법이 사용될 수 있음을 눈앞에서 보여줌으로써 흥미를 유발하였고, 스스로 그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한 점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구성주의 수업은 학생과 상관없이 교사가 임의대로 마련하여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도록 하기 위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이다. 따라서 교사가 예시작품을 제시하고, 그 작품에 쓰인 기법들을 학생들이 직접 나와서 한번 씩 해보게 하는 것이 잘 된 점이라고 생각한다. 모둠별로 다양한 표현방법을 선택하여 전지에 표현한 것도 구성주의에서 중요시 여기는 학습자의 상호작용에 의한 의미화를 가능하도록 하였던 것 같다.이 수업에서는 특별히 적절하지 않았던 활동은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잘 된 수업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만 아쉬운 점은, 그림자 동영상에서 볼 수 있었던 학생들의 활동을 직접 해볼 수 없었다는 점을 들고 싶다.이 수업에서 학생들이 그동안의 경험 속에서 이미 미적 표현활동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 왔다고 하더라도 미처 알지 못했던 각 표현방식기술을 익히게 되고, 자신의 작품과 의미를 구성해가도록 한 전반적인 학습흐름이 잘 연계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기초기법의 소개와 탐색을 제공하고, 궁극적으로는 학생 개개의 창조적인 사고와 활동을 계발시키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동기를 유발해 주고 학생을 관찰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이 수업이 구성주의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런 점에서 전반적으로 학습목표와 활동의 연계가 잘 이루어진 것 같다.초등미술교육 DBAE 중학년 평면(보색과 유사색)이 수업은 DBAE의 장점을 잘 살린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DBAE 수업은 더 좋은 시각 환경을 구성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이 수업은 구성주의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게 DBAE이론의 미학, 미술사, 비평, 제작의 4가지 영역이 조화롭게 잘 구성되었고, 수업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수업이었던 것 같다. 학습목표를 제시하는 모든 교구를 수업의 목표인 색상환의 원리에 맞추어서 제작한 것을 보면서 역시나 교사의 철저한 준비 없이는 DBAE 수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걸 느꼈다도입부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의 유니폼은 하얀색과 빨간색이 있는데 왜 우리나라 선수들은 빨간색을 안 입었지?”, “풀 속에 있는 메뚜기보다 무당벌레가 더 잘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와 같은 발문은 축구선수의 유니폼을 사용하여 아동의 흥미를 유발하였고, 메뚜기와 무당벌레의 확연한 색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점차 색에 대한 접근을 통하여 보색에 대한 아이들의 이해를 돕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도입 부분에서 아이들이 관심이 많은 축구의 유니폼을 이용하여 흥미를 유발한 것이 좋았고, 다양한 시각 자료를 제시하여 자칫 딱딱해 질수 있는 색상환의 원리를 아이들에게 적절한 동기부여를 해주며 진행된 수업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활동에서 지루하다고만 여겨질 수 있는 색상환의 원리를 직접 꾸며봄으로써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었고, 재미있는 수업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무리에서 플래시를 통해 색상환의 원리를 다시 정리해준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였다.이 수업에서 아쉬웠던 점은 아이들은 아직 정확한 보색개념이 충분하지 않아서 스스로 색상환을 만드는 것은 조금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별활동을 할 때 이미 그려진 그림을 준비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실제 초등학생들은 그림 그릴 때 색깔에 대한 생각보다는 오히려 그림을 그리는데 더 치중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술사 부분에서 종교시대, 르네상스, 야수파, 인상파 등 용어를 설명해주었는데 초등학생에게 약간 좀 어려운 내용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도입에서 흥미유발을 위한 자료들이 흥미로웠고, 전체적인 수업구성이 잘 짜여진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색상환을 만들면서 색에 대해 알아보고, 그 색을 이용하여 조별로 명화를 색칠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체계적인 수업이었다. 또 명화를 비슷한 색, 반대의 색으로 색칠해봄으로써 색의 조합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볼 수 있어서 색의느낌이라는 단원과 잘 결합되었던 것 같고, 여러 가지 시각적인 자료도 많이 제공하여 DBAE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미술사 부분이 약간 어려웠다고 생각하지만, 수업의 맥락이나 일관성에 있어서는 색에 대해 알아보고, 미술사적 내용과 배운 조형원리를 자신이 직접 표현하고, 비평할 수 있는 DBAE적 흐름이 잘 연계되었다고 생각한다.초등미술교육 후기DBAE 중학년(모자)처음 이 동영상을 볼 때는 VCAE수업모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후기 DBAE이론과 VCAE이론이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수업은 DBAE이론에 입각한 수업에 더 가까웠다. VACE이론이 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문화적 경험을 중점으로 하는 반면, DBAE이론은 제한적인 지역과 시대를 살아가면서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에 대한 개념을 중점으로 한다. 이 수업에서 모자는 학생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이지만, 또 그런 만큼 아무생각 없이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의미는 현대에 와서 많이 달라졌지만,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회문화적으로 많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자에 대해 살펴보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고민해보고, 미래 사회에 어떤 모자가 사용될지 만들어보자는 학습목표는 DBAE이론에 기반하여 적절하게 제시되었다고 생각한다.도입부에서 “이 여인들은 왜 이런 모자를 썼을까요? 이 여인은 어떤 계층이었을까요?”, “그럼 우리 현대의 모자는 어떨지 한번 알아봐야겠죠? 그럼 이제부터 민정이가 가족 얘기를 해줄거에요.” 와 같이 두 여인의 그림 비교에서 왜 이 여인은 이런 모자를 썼는지 교사가 발문함으로써 그 당시 계급사회에서 모자가 갖는 상징성을 이해하고, 또 한 가족이지만 가족의 성별, 직업, 용도 등에 따라 다른 모자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현대에서 모자가 갖는 상징성을 학생들이 이해하는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도입 부분에서는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제시하여 흥미를 유발하였는데, 이 때 과거 서양여자들의 모자뿐만 아니라 다른 시대적 공간으로써 조선시대의 갓, 산업혁명시대의 모자 등 계층, 직업 등을 나타내는 다양한 모자를 통해 그 상징성을 살펴본 수업구성이 좋았던 것 같다. 주제를 이끌어내기 위해 모자를 사회적 신분 등과 연결하여 간략히 잘 설명하였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한 제작과정에서는 여러 재료를 제시하여 창작의 자유를 주었던 것이 DBAE에 맞게 적절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제작 후에 조별로 짧은 역할극을 연출하는 장면은 재미있었고, 또한 동시에 적절한 학습활동이 된 것 같다.이 수업에서 아쉬웠던 점은 조별 토의를 하기 전에 먼저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토론에 들어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별로 토론할 때 먼저 아이들이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또 다양한 재료들로 미래의 모자를 만들어보는 활동도 좋았지만, 미래라는 시간에 한정짓는 모자를 만들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모자에 달아보라는 식의 실생활과 연계된 활동도 좋았을 것 같다.전반적으로 수업이 통일성 있게 집중되어 흐름이 잘 연계된 것 같다. 수업목표가 명료하고, 토론을 토대로 조별로 합동제작을 하고, 만들어진 작품으로 역할극을 하는 구성이 잘 되어 있었다. 모자라는 평범하지만 독특한 소재를 선택한 것이 일단 좋았고, 옛날에는 모자가 신분과 직업을 나타낸 것에 착안하여 수업을 진행한 것이 DBAE수업을 진행하기에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래에는 어떠한 모자를 쓰고 다니게 될 지에 대해 조별로 토론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 보는 활동과 역할극을 하는 활동 또한 학습목표에 부합하여 잘 연결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