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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사] 강희제
    만력제, 옹정제, 그리고 강희제 중에서 누구에 대한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강희제를 선택했다. 강희제는 황제의 신분이었지만 참 인간적이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던 인물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역사적인 인물의 이야기라 어렵고, 지루할 줄 알았는데 저자가 업적만을 나열하는 구성방식이 아니라 마치 강희제가 직접 이야기하듯이 구성하여서 나름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강희제는 정말 대단한 인물인 것 같다. 그렇기에 현재까지도 본받아야할 인물로 간주되고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단지 강희제가 청나라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국내의 치안 같은 것만을 잘 유지시켜, 큰 사고 없이 나라를 유지시킨 인물인 줄 알았다. 어쨌든 백성들의 불평소리가 적고, 평화롭게 지내게 한다면 그 것 역시 훌륭한 황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희제는 1661년부터 1722년까지 중국 청조의 황제였다. 그는 1,8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황제제도 속에서 아버지한테서 제위를 물려받아 황제가 되었다. 그 당시 황제의 권력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었다. 따라서 그는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면서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이 세상의 상징적인 중심이 된 것이다. 그는 어떤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더라도 황제로서의 관습적인 행동양식과 부합해야 했다. 강희제는 자신의 신민(臣民)과는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한 존재였다. 그 혼자만이 황제로서 얼굴을 남쪽으로 향하였고(南面), 모든 신하들은 북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그를 우러러보아야 했다. 그 혼자만이 붉은 먹물로 글씨를 쓸 수 있었고 모든 신하는 검은 먹물만 사용해야 했다. ‘황제’라는 글자는 어떤 문서에서나 줄을 바꾸어 새로 시작해야 하고 다른 줄의 첫머리보다 올려서 써야 했다. 또한 다른 어떤 사람도 황제가 입는 옷과 모자의 색이나 무늬를 사용해서는 안되었다. 모든 신하들은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조아리고 절해야 했다. 심지어는 황제가 자신을 가리키는 짐(朕)이란 말조차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강희제의 업적을 살펴보자면 이러하다. 그는 1673년부터 1681년까지 지속되었던 삼번(三蕃)의 난을 평정하여 청조 지배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1684년에는 타이완을 20년 동안 장악하던 정성공일당을 토벌하였고, 헤이룽장 방면의 러시아를 몰아내었으며, 1689년 중국 역사상 최초의 대외 조약인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스타노보이산맥의 서쪽 지역을 회복하였다. 1690년에는 외몽고까지 침입해온 준가르의 갈단을 토벌하고, 세 번의 친정으로 갈단을 자살하게 만듦으로서 외몽고를 판도 안에 집어넣었다. 또한 1718년에는 갈단을 계승한 체왕 아라푸탄이 티베트에 들어가 세력을 떨치게 되자 티베트에 원정하여 그 지배권을 빼앗고, 중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특히 삼번(三蕃)의 난 평정 이후에는 이에 소비되던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지 않게 되어 국가 재정에 여유가 생겨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리하여 50년간의 면세 총액이 1억 냥을 넘었으며, 1712년에는 인두세를 정액화하는 등 내정 상으로 안정된 시대를 이루었다. 청의 입관 이후 강희제는 청의 기틀을 닦았고, 중국 역사상 최대의 황금기인 강희제-옹정제-건륭제를 잇는 청의 전성기의 근간을 이루었다.강희제는 사냥을 즐겼다. 사냥을 하기 위해 순행하기도 하였는데 그는 순행 길에서 만난 이색적인 식물과 새, 동물을 수집하고 비교하는 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사냥이란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운동을 위한 것이므로 사람을 다치면서까지 사냥을 행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냥은 단지 사냥이 아니라 바로 전쟁훈련이며 훈련과 조직에 대한 시험이기도 하다고 하였다. 그는 사냥의 분대를 군사원칙에 따라 조직하고, 그 원칙에 따라 1년에 두 번 씩, 봄에는 강을 따라 사냥하면서 배를 다루는 훈련을 하고, 가을에는 야영하면서 기마궁술을 익히도록 한다면 병사들은 대항할 자 없는 불굴의 용사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사냥과 전쟁을 다르지만 사실은 같기도 한 활동이란 것이다.강희제는 사람들의 죄에 대해 형벌을 사용하는 데에 항시 정확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형벌을 내리는 이유는 죄인을 벌하여 반성하게끔 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 더 이상 형벌을 가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태상(太常)시 소경(少卿) 후젠징과 그의 가족들이 장쑤 성의 고향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것이다. 그들은 백성의 토지는 물론 부녀자를 강탈하고 양민에게 도둑의 누명을 씌워 죽이기도 했다. 백성들이 고발하자 장쑤 성 순무는 이 사건을 차일피일 미루며 처리하지 않았고, 이를 알게 된 형부에서는 후젠징의 벼슬을 박탈하고 3년의 징역형을 내려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강희제는 형부에서 내린 형량은 너무 작다고 생각하여 후젠징을 그의 가족과 함께 고향에서 처형시켰다. 그들을 처형시킴으로써 강희제가 그런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방의 신사(紳士)들을 깨우치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그가 모든 경우에 형벌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목숨은 중요한 것이기에 생사(生死)를 다루는 일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대학사와 그들의 보좌관들은 사형판결문을 보면서 명백한 유죄로 알려진 살인범들을 다시 살펴서 그 살인 동기와 배경을 검토하여 많은 사람을 살려주기도 했다. 어떤 시기에는 63명을, 중 16명을 다른 때에는 57명 중 18명을, 또 다른 시기에는 83명 가운데 33명을 살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형(死刑)을 포함한 모든 재판사건을 평가하는 강희제의 태도로 보건대 중국의 사법제도가 무원칙한 것은 아니었다. 법령은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특정한 법령의 조문을 보았을 때 누구나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판례들도 한 곳에 모아져 있었다.강희제는 인간의 육신이 언젠가는 쇠약해진다는 사실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식이요법이나 질병ㆍ약ㆍ기억력에 대한 관심으로 넓혀 나갔다. 그 당시에 늙지도 않고 특별한 힘을 회복하고 얻을 수 있다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을 호기롭게 말하는 도사들이 있었다. 강희제는 이들이 전혀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했다. 강희제가 그들을 몇 년 동안 지켜보았으나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늙어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불로장생을 말하는 자들은 허풍선이에 불과하며 만일 그들이 불사의 존재라면 왜 천한 이 세상에서 괴로워하는 것인지 그들의 주장이 엉터리임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금방 드러난다고 하였다. 또한 강희제는 셰완청이라는 도사는 처음 말한 것과 후에 말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았고, 또 그 자신의 눈은 흐릿하고, 이는 빠지고, 머리는 희고, 다리는 휘청거렸으며, 기력(氣力)은 쇠약해서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했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불로장생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면 믿었겠지만, 항상 그런 말뿐인 자들만 있고, 실재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데 어찌 믿겠냐고 하였다. 강희제는 물론 사람들을 가급적 믿고 싶기 때문에 만사에 내포된 잠재적 가능성까지도 철저히 검토하곤 하지만, 불로장생의 경우는 아니었다고 한다.강희제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기 때문인지, 자신의 애정을 할머니와 아들 인렁에게 쏟아 부었다. 강희제는 그의 아이들에게 늘 검소함을 일깨우려고 하였다. 그리고 학문과 무예에 있어 근면한 모습을 보이기를 요구하였다. 천박한 사람들처럼 지껄이지 말고, 분노와 욕망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젊더라도 지나친 성생활은 하지 말 것이며, 건장하다고 너무 많이 싸우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곤 하였다. 특히 그는 둘째 아들인 인렁을 총애하여 글 읽기를 몸소 가르치고, 한림원의 뛰어난 학자들로 하여금 도덕을 가르치게 하였다. 게다가 강희제가 갈단정벌을 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을 때, 그를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게 하였다. 그러나 인렁은 궁궐 내 동성애 사건에의 연루, 조공품을 가로챈 일, 그의 말을 허락도 없이 탄 일, 그리고 그의 처소의 휘장을 찢고 안을 훔쳐본 일 등으로 그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강희제는 동성애를 극히 혐오하였던 터라 인렁이 동성애에 탐닉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고 암시하였을 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렁이 사는 궁궐을 방문한 세 명의 요리사와 소년 시종들을 가차 없이 처형하였다. 그리고 밀정들에게 강남지방에서 어린 소년들을 사온 주범을 색출해 내도록 명령하였으며, 가장 신임하는 경호원을 불러 언제나 황태자의 옥체를 ‘순결하게’ 보호하였다는 사실을 천명하도록 하였다. 결국 강희제는 황태자를 폐위시켰다. 그런 후에 다시 인렁이 그의 맘에 들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 때엔 파당과 결탁한 황자들 사이의 암투가 벌어졌고, 결국 그는 다시 인렁을 폐위 시켰다.
    독후감/창작| 2005.05.03| 4페이지| 1,000원| 조회(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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