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대학의 발달1. 중세대학 성립배경11세기 이후부터 유럽은 시민사회가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하고 자치권의 자유도시가 활발해 지고 동서 문화의 교류가 빈번하여 상공업이 발달해지니 자연히 직업도 전문적으로 분화되고 조합(Guild)사회의 성립에 따라서 시민정신이 생기게 되면서 시민문화가 형성되어 지금까지의 수도원교육이나 기독교 교육중심의 종교교육만으로는 변천되어 가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었음을 인식하고 더 높은 학문연구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즉, 대학발달의 동기는첫째, 십자군 전쟁의 결과 상공업의 발달, 자유도시 시민계급의 발생, 동서 문화의 교류.둘째, 사라센(Sarasen)의 문화적 영향.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 못하나, 거기에 간접적 자극을 주었다. 사라센인이 유럽의 코르도바, 그라나다 지방으로 발전하여 일대 제국을 건설한 일과 유럽인이 십자군에 참가하여 동방의 사라센인의 대학을 견문하는 일은 유럽의 각국에 대학이 발달하는 데에 큰 자극과 영향을 주었다.셋째, 조합제도, 도제교육, 시민교육의 발달에 의한 시민사회 시민문화의 형성으로 대학의 발달을 촉진시켰고 종교상의 제약 없이 순수한 학문의 단체. 조합으로서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학자들과 학생들의 단체 또는 조합으로서 출발하게 되었다.중세 후기의 세속적 교육의 발달은 무엇보다 상류유한 계층을 위한 고등교육 즉 대학교육의 발달이다.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또는 지적 문화를 계승하는 교육기관으로서 많은 공헌을 한 중세 대학은 중세의 본산학교(성직자 양성)나 수도원 학교를 모체로 하고 스콜라철학이라는 사조를 기도로 하여 성립된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것은 원래 국가나 교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순수한 학문단체나 조합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채 다시 말해 학자와 학생의 자유로운 화합에 기인하여, 국민이나, 민족의 구별 없이 일반인도 참가할 수 있는 성격을 지닌 채 자연스럽게 성립되고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오늘날의 대학(university)의 명칭은 학자와 학생의 조합 또는 단체(universitas magistrorum et scholarium)'에서 나온 말이고 단과대학(college)이라는 명칭은 조합 또는 단체의 구성원인 학생들이 숙식하고 연구하는 기숙사(collegium)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리하여 처음에는 연구단체 이었으나 그 세력이 점차로 확대됨에 따라 교회나 교황이 대학을 자기의 세력을 권내에 넣기 위하여 여기에 특권을 부여하여 공인하였다. 그 결과는 장차 대학을 교황이나 국왕의 인가에 의해서만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관계가 생기게 된 셈이다.2. 중세의 대학들가장 처음으로 생긴 대학은 이탈리아(Italia)의 살레르노(Salerno)대학으로 11세기경(1060년)에 설립된 것으로 전해지고 의학대학으로 유명하나 대학이라는 기관의 성장에 대한 기여는 크지 않았으며 세계의 대학으로 공인된 것은 1231년이었다. 고등 교육의 발달에 현저한 기여를 한 대학은 북부 이탈리아의 볼로냐(Balogna)대학으로 이 대학은 이탈리아 최고의 법학대학으로 유명하며 1088년에 설립되었고, 1158년에 프리드리히 Ⅰ(Frederick Ⅰ)세 로부터 대학의 특권을 인가받았고, 13세기 중엽에는 교황도 이를 인가하였다. 다음은 Paris대학으로 북유럽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이 대학은 원래는 노틀담(Notre Dam) 사원 내에 자리 잡은 대학으로서 1109년에 설립되었고 1180년 루이7세(Louis Ⅶ)로부터 공식인가를 받아 1198년 로마법왕의 인가를 얻었다. 그리고 이 대학은 중세 대학중의 가장 모법적인 신학과 철학의 총 본산이라는 점에서 유명하다. 13세기 중엽에는 소르본느(Robert de Sorbonne)라는 승려가 신학 연구를 위하여 합숙소(Collegium Sorbonne)를 세웠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소르본느 대학의 기원이다. 프랑스에는 이때부터 각지에 Collegium이라는 대학이 발흥하였다.영국에서는 Oxford대학이 교회와는 관계없이 많은 학교의 설립으로 Paris대학의 본을 따서 개교하였는데 설립 연대는 Rashdall에 의하면 Oxford의 기원은 1167년 말 혹은 1168년 초로 본다. 처음 자치권의 신장에는 시 당국이냐 대학 당국이냐 하는 격심한 대립이 있었으나 마침내는 시 당국의 관리에서 독립자치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1214년에는 시민들에게 공포된 교황사절의 칙령이 Oxford대학이 자부할 수 있는 특권의 특허장의 성질을 가진 첫 서류가 되었다. Cambridge대학은 1209년에 설립되었는데 oxford대학에서 불만을 품은 학생과 학자들의 분산의 결과로 대학의 정통으로부터 새로운 피난처를 얻기 원하는 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두 대학은 발달과정과 교육내용에서 유사성이 많다.독일에서의 최초의 대학은 1348년에 설립된 Frague대학과 1365년의 Wien대학, 1386년 Heiderberg 대학, 1392년 Erfurt 대학, 1409년의 Leipzip 대학 등의 대학이 일어났는데 이들 모두 주로 파리 대학을 모범으로 하여 세워진 것이다.이렇게 중세의 대학이 번창하여짐에 따라서 대학주변에는 학교 촌, 학교도시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서 당시에 대학은 일반연구소(stadium generale)라 하여 유럽 각국에서 모여든 국가 국민 계급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있었다.3. 중세 대학의 특징당시 대학의 몇 가지 특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먼저, 각 대학은 국제적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과 교수는 국적에 따라, 국가 단위로 집단을 만들고, 각 대학의 학생 감독감은 국적별로 집단 된 국가를 대표한 사람이었고 교수는 분과를 단위로 하여 나뉘어져 있었다. 대학의 조직은 학부에 따라 상급과정으로 신학과, 법학과, 의학과, 그리고 예비과정으로 문과 혹은 인문학부가 있었는데 이 문과에서는 문법학교의 교사, 및 상급과정의 입학을 위한 준비단계였다. 여기서 칠자유과와 Latin어를 교양필수과목으로 중시하였고 이 칠자유과의 기초를 쌓고 상급의 대학부 즉, 신학, 법학, 의학부를 선택하게 된다. 특히 이 당시에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철학이 중요시되었다. 그리고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으로서 물리학이, 도덕철학(moral philosophy)으로서 윤리학과 정치학이, 그 다음으로 정신철학(mental philosophy)으로서 형이상학이 중요시되었다. 각 학부의 수업연한은 일정치 않으나 대체로 4~7년, 8년 이었다. 조직에 있어서 그들은 민주주의 행정을 채택하여 각 교수는 분과 대학장(Dean)을 호선하고, 각 분과대학장은 다시 총장을 선출하였다.둘째, 교수방법은 주로 강의, 반봅학습, 토론의 형식이었다. 강의는 교수가 교재를 학생들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고, 그에 대한 논평을 첨가하는 방식이었다. 반복학습은 강의 내용을 복습하는 것이었으며, 토론은 특정한 논문을 규칙에 따라 논의하는 방식이었다. 필사서적도, 인쇄술도 희소하였던 당시로서 강의는 대체로 요령을 얻지 못하였으며, 토론도 주로 형식논리학의 삼단논법(Syllogium)에 따라서 어떤 주제를 설정하고 반론을 전개시켜 마지막에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법이 행하여졌을 뿐이다. 학생들의 과외활동은 비록 대학당국이 허용하거나 지원해 주지는 않았지만, 매우 다양하였다. 테니스와 같은 운동, 악기연주, 애완동물 키우기 또는 여러 사회활동 등은 강의나 연구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대학에서 금지하는 규칙을 발표하기도 하였다.셋째로, 중세의 대학은 독립정신과 자유정신이 그 특징으로 대학을 통제하고 감독할 수 있는 기관은 교회나 국왕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고 학문의 자유를 사수하고 자치권을 행사하기 위한 투쟁이 있었다. 그리하여 대학은 나라 가운데 있는 나라'(Imperium in imperio)라고 불렸다. 그래서 학문의 자유를 위해서 진리탐구를 위해서 어떠한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명예였다. 예컨대, 옥스퍼드 대학의 위클리프 (J. Wycliff)의 추방 Fraque대학의 총장인 J. Huss의 분형사건이 그것을 입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