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부자유 중에 병·허약에 속하는 간질의 특성과 간질시 조치방안 및 교육적 방안장애 분류는 세부적으로 15종의 장애로 분류될 수 있지만, 대체로 정신지체, 지체부자유, 시각장애, 청각장애, 정서장애로 나눌 수 있다.특수학교뿐만 아니라 일반학교에서도 수업하는 중에 가끔 접하게 되는 간질 은 병·허약아에 속하게 되고, 이는 또다시 지체부자유에 포함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간질은 넓은 의미에서 지체부자유에 속한다.그러면 각각의 용어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지체부자유란, 우리나라 특수교육진흥법 시행규칙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의를 빌리자면, 상지의 기능장애가 필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곤란한자, 하지의 기능장애가 보행하기에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정도인자로 정의할 수 있다. 지체부자유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간단하게 나타내보면, 출생전 원인으로는 유전적 요인과 임신중 태아의 외부적 요인(산모의 부적합한 의학적 처치, 흡연, 알콜중독, 마약, 산모의 추락 등)이 될 수 있으며, 출생시 원인은 분만시 태아의 뇌손상과 외상, 산소결핍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출생후로는 중추신경으로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의 감염, 낙상, 교통사고 등이 될 수 있다.지체부자유의 여러 종류 중 간질이 속해 있는 병·허약아는 어떤 질병이 완치되었어도 계속 몸이 약하던가 아니면 병에 걸리기 쉬운 상태가 되거나 발육불량 상태가 되는 경우로 정의 할 수 있다. 병·허약아의 하위 영역으로는 천식, 간질, 소아당뇨병, 혈우병, 빈혈, 심장질환이 있다.간질은 뇌 특정부분의 신경세포에 전기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크게 대발작과 소발작으로 나눌 수 있다.대발작은 갑자가 의식을 잃고, 고성을 내면서 쓰러지기도 하며 전신적 경련을 2~5분간 지속한다. 호흡근의 수축으로 호흡곤란이 오며, 침의 분비가 많아지며 혀를 깨물거나 소변을 보는 경우도 있다. 수면을 취한 후 차츰 의식이 회복되면서 정신혼란과 두통 및 전신피로감을 호소한다.소발작은 허공을 응시하거나 실룩거리는 경련, 눈의 초점이 흐려지거나 깜빡거리며 손가락이나 팔을 약간 움직인다. 때로는 입술을 빨거나 저작(씹는 운동) 또는 연하운동(삼키는 운동)을 하기도 한다. 소발작을 하는 사람은 발작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며 약 5~20초 동안 일어난다. 발작이 빈번하며 뇌기능 손상이 오며, 호흡이 과도해지면서 발작이 유발된다.발작을 일으켰을 때 행동요령은,1 발작이 시작될 시 주변의 날카롭고, 위험한 물건이나 책상과 의자 등을 치운다.2 침대에 누위는 것이 좋지만 발작은 갑자기 나타날 경우가 많으므로 교실이나 복도 등에서 나타날 경우 발작을 하는 동안 머리가 딱딱한 바닥에 부딪치지 않도록 젖은 수건이 쿠션등을 머리에 받쳐준다.
Ⅰ. 서론1. 불교의 정의신심 장한 한 불자가 서울역 광장을 걷는다. 목에는 만(卍)자 목걸이를 걸었고 손목에는 단주를 찼으니 보통불자는 아닐게 분명하다. 이곳에 늘 상 포진해 있는 극성스러운 종교의 전도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여지없이 신심 장한 불자에게로 접근한다. 그리고 듣는다. 2천 5백년에 죽은 불교를 믿지 말고 부활해 영생을 누리는 종교를 믿으라고 어째서 젊은 사람이 그런 종교를 믿고 있느냐고 이 불자는 물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불교는 죽었고 그들 종교는 살아있는 종교라는 얼토당토한 억지가 가련하기까지 하다는 눈빛이다. 그러나 이 불자는 내심 크게 당황한 표정이다. 그토록 오래, 그리고 자신있게 신앙해온 불교를 조리있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다.이 이야기는 이곳 서울역 광장을 지난 이 불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어느때 별안간 이교도가 ‘불교가 뭐냐’고 물어왔을 때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를 모르긴 모르되, 이 같은 상황에서 불교를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불자는 그리 많지 않은게 솔직한 우리의 현실이다.교육의 부재라든가 체계적인 불교신앙을 못해온 것 때문이라는 등의 이에 대한 원인 분석도 중요하지만 더욱 시급한 것은 불교를 쉽고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갖추는 것임은 두말의 여지가 없다.불교는 다음의 몇 가지로 정의될 수 있겠다.첫째는 문자 그대로 부처님(佛)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성립된 가르침(敎)을 의미한다.둘째는 역사적 실존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께 의지해서 이루어진 가르침이다.셋째는 부처(佛) 되도록 하는 가르침이다.이것을 흔히 한자어로 의불지교(依佛之敎), 불타지교(佛陀之敎), 성불지교(成佛之敎)로 표현된다. 다시 말하면 3보 즉 불, 법, 승(佛, 法, 僧)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그러나 불교에 대한 설명으로 왠지 이 정도만으로는 다소 허전한 느낌을 지을 수 가 없다. 다분히 문자적이고 고전적이며 정형화된 해석이라는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의 숙명에 슬픔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이러한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깨우쳐야 한다는 비상한 결의를 하고 왕궁을 버리고 29세 되는 어느날 밤에 길을 떠났다. 처음에 저명한 철인 아라카라마, 우다카 라마푸타 등에게 배웠으나 만족하지 못하여, 다른 사람에게 배우기를 단념하고 스스로 당시의 수도법인 고행을 시작, 6년간 강행하였다. 그러나 끝끝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심신만 쇠약해져 이를 중단 이련선하에서 몸을 씻고 우루빈라 촌의 보리수 밑에 정좌하여 깨닫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마귀들이 나타나 이를 방해하였으나 동요하지 않고, 그디어 크게 깨우친 뒤, 45여년간 각지로 순방하며 교화에 힘써 인류를 가르치니 이것이 곧 불교의 시작이다.3. 경전불교경전에는 어떤 것이 있나?흔히 불교의 경전을 팔만대장경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방대해서 담겨 있는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인간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왕도, 정치, 경제, 사회로부터 천문학, 의학, 약학 그리고 유교에서 말하는 삼강, 오륜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경전은 크게 경(經), 율(律), 논(論) 세 가지, 삼장(三藏)으로 분류된다. 경은 석존이 설한 가르침이며, 율은 수행사문과 재가 신도들이 지켜야 할 계율, 규약이며, 논은 석존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주석한 것이다.불교를 크게 소승과 대승으로 나누듯이 경전도 소승경전, 대승경전으로 나눌 수 도 있지만, 둘이 갈라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석존의 가르침이 경전으로서 문자회된 것을 석존 멸후 100년 경에 처음으로 편찬, 제일결집(第一結集이라고 함)되기 시작한 후 600여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렇게 편찬된 경전은 주로 범어(梵語 : 인도의 고어)와 파리어(남방불교 경전에 쓰인 말)로 되어있던 것을 중국에서 1천여년에 걸쳐 번역하였고, 우리나라에는 한역된 경전이 들어왔다.불교의 경전을 통틀어 또는 이라고 한다. 대장경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에 이미 성립된 파리어 삼장으로서 대승경전은 포함되 요소와 조건들이 변하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고정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무상한 것일 수밖에 없다.* 사성제(四聖제)사성제에서 제(satya)란 진리 또는 진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성제란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말이다. 이것은 고(苦)성제, 집(集)성제, 멸(滅)성제, 도(道)성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단하게 고집멸도라고도 한다. 사성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고와 고의 원인 그리고 고의 소멸과 고의 소멸에 이르는 것이다.사성제는 불교의 모든 교리 가운데서 가장 처음으로 설한 것이다. 붓다가 녹야원에서 다섯명의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벌을 설했을 때로부터 시작해서 쿠쉬나가라에서 반열반에 들 때까지 45년 동안 가장 많이 설한 가르침이 바로 사성제이다.사성제의 가르침은 불교의 궁극목표인 고에서의 해탈을 위해 만들어진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간단한 교리이다. 붓다는 인생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의사가 병을 치료할 때와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고성제(苦聖제)불교에서 말하는 고(苦)란 무엇인가. 고라는 말인 duhkha를 일반적으로 괴로움, 고통, 슬픔 등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실은 이것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신체적, 생리적인 고통 또는 일상적인 불안이나 고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현대적인 말로 표현하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우리의 생존에 따르는 모든 괴로움을 망라한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모든 곳은 고(苦)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는 사고(四苦) 또는 팔고(八苦)를 말한다.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등의 네 가지 고(苦)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 오온의 집착에서 생기는 고 등의 네 가지를 합쳐서 여덟 가지 고이다.또한 고를 성질에 따라 고고(苦苦), 괴고(壞 주변의 것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기억해서 반성하고 바른 의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정정은 바른 정신집중 또는 정신통일이다. 마음을 한 점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정(定)을 닦는 구체적인 방법이 선이기 때문에 때로는 이를 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업보윤회(業報輪廻)의 사상근본 불교사상은 당시 인도사상과 비교할 때 거기에는 불교사상이 인도 일반의 사상과 공통되는 점도 있고, 인도의 다른 사상에서 보이지 않는 불교 특유의 사상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직접적으로 시대 환경이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고, 후자는 시대 환경을 초월하여 불교라고 하는 새롭고 독자적인 사상을 성립시킨 것이다. 그 가운데 인도 일반사상과 공통된 것으로는 업보윤회(業報輪廻)의 사상과 수행해탈(修行解脫)의 사상이 있다.선을 행하면 행복한 결과가 오고, 악을 행하면 불행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하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업보사상이 인도에서는 불교 이전에 이미 초기 우파니샤드 시대에서부터 확립되어 있었다. 이러한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인과설은 인도뿐 아니라 동서고금에 있는 관념이다. 그러나 선이나 악의 행위가 그 결과를 이끌기까지의 사이에 그것은 어떠한 상태로 존속하는 것인가, 또 원인과 결과와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하는 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업보사상에서는 원인과 결과와의 연쇄가 반드시 동일 인격내에 즉 자신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과의 연쇄는 전세(前世), 금세(今世), 내세(來世)라고 하는 삼세(三世)에 걸쳐서 행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6. 한국불교의 전래* 불교의 전래한국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 (372년)6월 전진(前秦)의 왕 부견이 순도(順道)스님을 통해 불상과 경전을 보내오면서부터다.고구려에서는 이때 성문사를 지어 순도를 머물게 했으며, 다시 2년 뒤에 아도(阿道)스님이 오자 이불난사를 지어 머물게 했다. 고구려 본기에 있는 이 기록은 한국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을 말해 주는 최초의 기록이다.백제에는 침기도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부처님께 간절히 비는 믿음이며, 참되고 올바른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려는 스스로의 다짐입니다.7. 독경이란?- 불경을 외우거나 읽는 것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리는 것입니다.8. 공양이란?- 깨끗한 마음으로 음식과 꽃, 향, 촛불, 쌀, 물 등을 부처님께 올리는 것이며 또한 우리 이웃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어떤 물건이나 참다운 가르침을 베풀어주는 것을 말합니다.9. 참회-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탓으로 지은 잘못을 자신이 뉘우치는 것으로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는 마음의 다짐입니다.10. 발원- 부처님께 올리는 서원으로 나쁜 마음을 모두 버리고, 부처님처럼 크고, 넓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11. 불교의 명절(음력)1) 4월 초파일(부처님 오신 날)2) 2월 8일(출가재일)3) 12월 8일(성도재일)4) 2월 15일(열반재일)5) 7월 15일(우란분재일, 백중재일)12. ‘스님’이란 뜻은- 스승님의 준말로 제자가 자기 스승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스승이 아니라도 출가하여 수도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13. 삼보(三寶)- 불교의 삼보라 함은 우리의 참 생명과 행복을 지켜주는 것으로써 부처님 불보(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부처님의 제자(僧寶)를 뜻하며, 모든 불교도가 한결같이 몸과 마음을 다해 받들어 의지해야 할 것이다.14. 팔번뇌란- 안, 이, 비, 설, 신, 의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색, 성, 향, 미, 촉, 법, 이 여섯가지 경계를 각각 접하게 되니 6*6=36가지의 번뇌가 일어나게 되는데...이 36가지 번뇌가 과거, 현재, 미래를 합하니(36*3=108) 백팔번회라 한답니다.여기서 주의할 것은 과거 현재 미래라 해서 그 옛날 과거가 아니고, 아득한 미래가 아니라... 방금 지나간 시간 과거와 잠시후의 미래가 포함된다는 것을 염두해 두시면 이해하기가 쉬울 겁니다.15. 대승(大乘)과 소승(小乘)- 대승은 범어 mahayna의 번역으로 마다.
1. 예수의 생애예수는 어머니가 되는 동정녀 마리아와 약혼자인 목수 요셉이 호구조사의 등록을 하러 간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예수가 태어나던 날 밤 천사가 목자들 앞에 나타나 예수의 탄생을 고하며,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루가 2:4). 예수 탄생 후 그 일가는 헤롯왕의 유아살해를 피하여 이집트로 여행하고, 헤롯이 죽은 후 나사렛으로 돌아갔다.나사렛에서 예수는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는데(루가 2:51), 열두 살이 되던 해, 유월절 명절을 맞아 해마다 그랬듯이 부모를 따라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예수는 성전에서 학자들과 성서(구약)에 관한 토론을 벌였다. 학자들은 예수의 지혜와 그 대답에 경탄하고 있었는데, 그를 잃어버리고 찾아 헤매던 부모를 예수는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루가 2:48).예수는 30세경 공생애를 시작하였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예수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마태 4:1) 40주야의 단식기도를 하면서 악마로부터 세 가지의 시험을 받았다. 성서에 기록된 말들을 인용,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마태 4:11, 루가 4:8) 광야에서 머무른 후 예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마태오 ? 마르코 ? 루가의 세 복음서는 예수의 선교활동에 관한 똑같은 기록들을 전해주고 있는데, 예수의 발자취를 정확히 더듬는다든지, 그가 방문한 고장을 차례대로 추적하기란 곤란한 일이다.그러나 에 의하면, 광야에서 나와 베다니로 돌아갔는데, 여기서 첫 번째 제자를 얻어 그들과 함께 갈릴레아(갈릴리)로 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기적을 행하였다. 공생활에서의 최초의 유월절(과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거기서 성전 안의 장사꾼들을 몰아내었다. 예수는 유월절 동안 예루살렘에 머무르면서, 어느날 밤 조용히 찾아온 바리사이파 지도자의 한 사람인 니고데령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심으로 드로아에서 기도하던 중에 환상가운데 나타나셔서 멀리 에게해 건너편에서 마케도냐 사람이 서서 그에게 청하기를 “마케도냐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손짓하거늘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마케도냐로 가게 되었다. 이곳은 그리스 북부지방으로 오늘의 유럽이다. 만일 그때 우리 조상들이 “와서 한국을 도우라”고 외쳤으면 바울이 한국에 왔을 것이 아닌가 라고 추상해 본다. 그렇게 만 되었더라면 한국은 최초의 기독교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다. 그 후 기독교 복음은 유럽을 거쳐 동양과 한국에 전래되었다.3. 종교의 구체적 내용▶ 창시자예수라는 이름은 헤브라이어로 ‘하느님(야훼)은 구원해 주신다’라는 뜻이며,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구세주’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은, 예수 탄생 이래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물음이다. 그리스교도에게는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다. 제 16장 16절에 의하면,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자, 예수는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라고 말했다고 적혀 있다. 에는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모세에게서는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로써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하고, 억눌린 사람들그날부터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요한 11:53). 과월절 전날 목요일 밤에 예수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들고, 그날 밤은 계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였다. 게쎄마니에서 잡힌 예수는 로마의 총독 빌라도 앞에서 십자가에 못박힐 것을 선고받고, 이튿날 아침 십자가를 지고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며 골고타 언덕길을 올라가 거기서 강도들과 삼께 신을 모독하였다는 중죄인으로서 십자가 나무틀에 못박혀 죽었다.일요일 아침, 예수가 묻힌 무덤은 비어 있었다. 예수는 생전에 자신이 예언한 바와 같이 부활하였고,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제자들은 그후 여러 곳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 복음서들은 그 사실과 함께 그가 올리브산(감람산)에서 승천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칭 초대교회에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호칭이다. 그리스도의 승귀한 인격과 그의 최고의 영적 권위를 내포하고 있는바 이것은 사실상 하나님과 동일한 것이다(막 12:36, 빌 2:11). 따라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의 권능이 신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의 본체가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모든 복음서의 일반 칭호이다. 예수라는 명칭은 히브리어 “여호수아”, “예수아”의 헬라이어 형이다. 이것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도움, 여호와는 구원이라는 뜻이다. 우리말 성경에 메시야로 번역되고 신약성경은 그리스도라고 번역되었다. 따라서 예수가 개인적인 명칭이라면 메시야 즉 그리스도는 공적인 명칭이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기름을 부은자’라는 뜻으로 구약의 메시야란 말과 똑같다. 그래서 메시야는 그리스도, 기름 부음을 받은자, 승리자, 구속주 하나님이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그 외에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인자가 있다.▶ 사상예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믿고 그것을 까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자의 마음속에 있으며, 그것은 최후의 심판에 의해 완성된다고 약속하셨다.복음서에서의 그의 가르침는 자는 의롭다함을 받고, 또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겸손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의 선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받은 자에게는 이에 대한 감사의 보답으로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요구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따로 생각할 수 없으며, 이 2가지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가복음 12:28 이하). 그리고 사랑은 원수에게까지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 . 이렇게 예수는 사랑을 철저하게 중시한 결과, 때로는 유대교 율법의 규정에 위배되는 언행도 나타났다.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였고(마가복음 3:1 이하), 법적 ? 사회적으로 약한 여성의 입장을 고려하여 이혼을 금지하였다(마가복음 10:1 이하). 율법에 대한 비판은 유대교에서 볼 때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었고, 예수 처형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4. 기독교의 형성1) 예수그리스도 시대오늘날 세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서력은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는 기원 1년에 탄생한 것이 된다. 그러나 최근 사학자들은 유다 나라 헤롯대왕(BC 37~BC 4?) 통치 말기에 실시한 ‘호구조사령’을 근거로 BC 4년경 출생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예수는 성령에 의하여 처녀인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는 종말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BC 6세기붙 바빌로니아 ? 페르시아 ? 그리스 등 외국의 지배를 받아 왔었다. 특히 BC 3세기 초부터는 그리스의 지배하에서 유대교가 박해를 받아, 예루살렘 성전까지 약탈당하였으며, 많은 이스라엘 민족이 학살되었다. BC 2세기 중반에는 반그리스 전쟁으로 한때 이스라엘 민족이 독립을 하였지만, BC 63년에는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대교도들은 그들의 유일한 신으로 믿고 있는 야훼신(하느님)이 그들 민족을 구하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지금의 세상은 얼마안가 끝이 나고 새로운 세상이 리게 되었다.3) 바울로의 이방인 선교그리스도교를 유대교에서 결정적으로 분리시켜, 인종과 지역을 초월한 세계종교로 발전시킨 것은 사도 바울로의 선교활동이었다. 바울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엄격한 유대교도로서, 처음에는 그리스도교 박해의 선두에서 활약하였으나, 마침내 결정적 계기에 의해 그리스도교 신앙에로 회심한 이후 열렬한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의 전도대상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이방인도 포함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유대민족의 범주를 벗어나 지중해 연안의 종교로, 세계종교로 확장되기에 이르렀다.사도시대로부터 바울로의 이방인 선교시대를 ‘원시 그리스도교 시대’라 하는데, 이 시기에 초대교회가 형성되었다. 초대교회는 유대교와 로마정부 쌍방으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는 가운데 형성되었지만, 개인의 집이나 카타콤 같은 데서 비밀집회를 가지면서 그 조직을 이끌어 나갔다. 바울로가 초대교회에 보낸 서신들에 의하면, 그 무렵에 이미 사제로서의 감독 ? 장로, 부제로서의 집사 등의 교직이 정해져 있었다. 이 시대는 또한 신약성서가 쓰여진 시대로서, 그리스도교 신학의 기초가 확립된 때이기도 하다.5. 한국의 그리스도교(한국에 전파된 과정)▶ 그리스도교의 수용서 로마가톨릭교회는 보통 천주교로 알려져 있고, 프로테스탄티즘은 개신교 또는 기독교로 부르고 있는데, 가톨릭교는 18세기에, 프로테스탄트교는 19세기에 한국에 처음으로 전래되었다. 가톨릭교는 18세기에 프로테스탄트교는 19세기에 한국에 처음으로 전래되었다. 가톨릭교는 중국에 진출한 선교사 M. 리치의 와 같은 한역서학서들이 조선에 도입되면서, 서학이라 하여 남인학자들 사이에서 학문적 관심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1784년(정조 9)에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J.J. 그라몽에게 영세 받고 돌아와 이벽 ? 정약전 등과 함께 교리를 연구하고 신앙집회를 가짐으로써 비로소 교회가 창설되었다. 94년 베이징 주교 A. 구베아는 중국인 신부 주문모를 선교사로 조선에 파견하였다. 복음전파를 위한 명도회의 조직과 성공적인 전교활동갔다.
서론브라만교의 철학을 배경으로 하는 전통적이고 민족적인 제도와 관습을 망라한 인도의 민족 종교이다.“힌두”란 본디 인더스강의 산스크리트 명칭인 ‘신두’로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다.그러므로 힌두교는 넓은 의미로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를 포함하는 말이 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배다(인도의 정신적 지주)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자이나교를 배제한 좁은 의미로 사용된다. 또한 실제에 있어 힌두교는 하나의 종교를 넘어서 인도인의 삶 전체를 지배해 온 성스럽고 다양한 사상적 전통들과 행위의 관습들을 총망라한 매우 포괄적인 문화적 전통을 가리킨다.본론1. 힌두교의 말뜻이 말은 산스크리트어 Sindhu의 페르시아 어형인 Hindu에 바탕을 둔 것이다.산스크리트어 Shindhu는 원래 ‘하천’ 특히 ‘인더스 강’을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나중에 인더스강 유역의 Shindhu라는 말은 페르시아를 거쳐 유럽어인 Hindu가 된 뒤 인도인전체를 나타내는 의미로서 쓰여 히말라야 산 이남의 전 인도 반도를 힌두스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힌두이즘이란 이와 같이 인도인을 나타내는 hindu에 ism을 붙여서 만든 말이며, 넓게는 ‘인도인의 가름침, 인도인의 종교’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학자는 힌두교 또는 인도교를 넓은 의미로 서 ‘본래 인도에서 발생하여 전개된 것으로서 인도인이 받드는 독특한 가르침’이라고 정의한다.그러나 인도인이 신봉하는 종교일지라도 실제로는 베다계의 종교가 있는 반면 불교나 자이나교와 같이 베다의 전통을 부정하는 것도 있다.따라서 힌두교를 말할 때, 이들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인가, 아니면 보다 더 한정되어 사용되는 것인가를 우선 검토해야 할 것이다.인도에서 발생하여 전개된 과거 및 현재의 인도인의 사상?종교 전체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었고, 또 어떤 경우에는 더 한정된 것으로 사용되었다.이들을 넓은 의미로부터 좁은 의미의 용법 순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① 드라비다 이전의 힌두교. 인도 최초기 원주민의 종교② 드라비다 인의 힌두교③ 베다의 종교④ 어원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BC 2500년경의 인더스 문명에까지 소급될 수 있으며, 아리안족의 침입(BC2000~BC1500?)이후 형성된 바라문교를 포함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아리안 계통의 바라문교가 인도 토착의 민간신앙과 융합하고, 불교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300년경부터 종파의 형태를 정비하여 현대 인도인의 신앙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같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기 때문에 특정한 교조와 체계를 갖고 있지 않으며, 다양한 신화 ? 성전 ? 전설 ? 의례 ? 제도 ? 관습을 포함하고 있다.이러한 다양성을 통일하여 하나의 종교로서의 구체적인 기능을 가능케 하는 것은 카스트 제도이다. 이의 기원은 바라문에 규정된 사성(四姓 : 브라만 ? 크샤트리아 ? 바이샤 ? 수드라)제도이지만,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변천하여 현대의 카슽 제도에는 종족 ? 직업 ? 종교적인 제조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인도인의 종교생활과 사회생활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도인은 힌두교로 태어난다고 하며 카스트 제도에는 엄격하지만 신앙에는 상당히 관용적이다.고대 바라문교와의 차이점으로는 바라문교가 베다에 근거하여 희생제를 중심으로 하며 신전이나 신상이 없이 자연신을 숭배하는데 비하여, 힌두교에서는 신전 ? 신상이 예배의 대상이 되고 인격신이 신앙된다는 점이다. 또한 공희(供犧)를 반대하여 육식이 금지되고 있다.힌두교의 근본 경전은 베다 ? 우파니샤드이며, 그 외에도 브라마나, 수트라 드으이 문헌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은 인도의 종교적 ? 사회적 이념의 원천이 되고 있다. 또한 경전에 준하는 것으로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라마의 기행의 2대 서사시가 유명한데, 특히 전자의 일부인 바가바드 기타는 널리 애창되고 있다. 이 외에 푸라나, 타트라, 아가마, 상히타 등이 힌두교 각 파에서 존중되고 있다.힌두교는 바라문교에서 많은 신관 ? 신화를 게승하고 있기 때문에 다신교 같아 보이지만, 신들의 배후에 유일한 최고자를 설정하고 그 신들을 최고신의 현현이라환영처럼 실재하지 않고 브라만만이 실재한다고 설법할 때가 있다. 우주의 중간에 있는 대지는 메루산을 중심으로 한 원반으로, 그 중요부분이 바라타바르샤 즉 인도이다. 이 우주는 브라마의 하루 동안 즉 1칼파(지상의 43억 2000만 년) 동안 지속되고 하루가 끝나면 다시 우주는 브라마로 돌아간다.② 업과 윤회 : 인간은 죽어서 무로 돌아가지 않고 각자의 업에 따라 내세에서 다시 새로운 육체를 얻는다. 이처럼 생사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 윤회로서, 현재 각자의 성격 ? 계급 ? 행복 ? 불행 등은 모두 과거에 행한 업의 과보이다. 업 ? 윤회사상은 우파니샤드 가운데에 처음으로 명확한 형태를 취한 것으로 힌두교의 핵심적 교의가 되었지만, 운명론이나 결정론과는 본질을 달리하고 있다.참고>> 우파니샤드의 사상가들은 업 ? 윤회로부터의 완전한 자유 즉 해탈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았다. 해탈에의 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지만 중요한 힌두교 성전인 바가바드기타에서 다음 세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행동의 길 : 가족관계라는 맥락에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 지식의 길 : 요가와 고행을 통하여 지식의 개화를 추구하는 것* 헌신의 길 : 인격신(비슈누 또는 시바)에 대한 헌신과 사랑의 길이다.③ 법(다르마) : 행위규범으로서, 중심과제는 종성법과 생활기법이다. 종성법은 브라만 ? 왕족 ? 서민 ? 노예의 4계급에 부과된 법이다. 생활기법은 학생기 ? 가주기 ? 임서기 ? 유행기라는 인생의 4시기에 관해 규정한 규범이다. 종성제도는 카스트제도와 연결된 것으로 오늘날에도 농촌사회를 중심으로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다르마의 실천은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실리 ? 애정 ? 성애를 추구하는 애욕, 그리고 해탈과 함께 힌두교도 인생의 4대 목적으로 되어 있다.④ 해탈 : 우파니샤드의 사상가들은 업 ? 윤회로부터의 완전한 자유 즉 해탈을 인생의 최고로 목표로 삼았다. 해탈에의 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지만, 중요한 힌두교 성전인 에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첫째, 행동(카르마)의 길 실질적으로는 비슈누 신의 화신 개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러한 화신개념은 여러 지방, 부족, 카스트의 신들을 비슈누 신과 시바 신으로 통합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4) 힌두교의 신은 인간적인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힌두교에서는 신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비교적 덜하다. 또한 신과의 계약이라는 관념도 없다. 힌두교의 신이 모두 시바나 비슈누처럼 위대한 신인 것은 아니다. 이들보다 힘도 약하고 기능도 제한되어 있지만, 인간적인 친근감을 주는 신들이 많이 있다. 파괴의 신으로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인 시바 신도 자비를 베푸는 자혜로운 신이기도 하다. 비슈누 신의 화신인 크리슈나는 어린아이로서의 크리슈나, 소치는 여인과 즐기는 크리슈나, 인드라 신과 싸워서 소를 지키는 목동으로서의 크리슈나,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라다와의 사랑의 유희에 흠뻑 빠진 크리슈나 등으로 등장한다. 그리하여 그 신에게 절대적 신앙을 바치면 어떠한 사람도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5) 힌두교에는 다양한 종파가 있다.힌두교는 수천 년 동안 계속되면서 여러 종파적 교리를 모두 받아들여 왔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 힌두교는 인도에서 생겨나고 성장한 여러 가지 교리나 학설 등을 포함하는 매우 방대하고 복잡한 종교적, 문화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힌두교에는 사상이 서로 다른 종파는 물론이고, 거대한 신도가 있는가 하면 극소수의 신도가 있는 종파, 옛날부터 그 전통을 이어온 종파가 있는가 하면 최근의 성자들에 의하여 새로이 성립된 종파 등 다양한 종류의 종단이 있다. 그 중 어떤 종단은 뚜렷한 교의나 교설도 없고, 어떤 종교적 사유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 여러 신을 동시에 숭배하는 종파도 있고, 한 신만을 믿는 종파도 있으며, 어느 신도 믿지 않는 종파도 있다. 그리고 같은 종파 내에서도 각자 서로 다른 신을 믿는 경우가 있다. 힌두교는 그 모든 종파들의 교리나 학설들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힌두교를 어느 한 종파적인 입장에서 파악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알 것으로 생각한다. 어느 신을 믿든지 결국에는 브라흐마에게로 귀착되게 된다. 따라서 시바 신자와 비슈누 신자가 서로 싸울 이유가 없다. 서로가 배타적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힌두교가 갖고 있는 신앙 행위의 관용적인 면을 발견하게 된다.따라서 인도에는 신들에 따른 종파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시바 파, 비슈누 파 같은 것이 있지만 이들은 특히 그 신을 믿으면서 공양을 바치며 기원을 한다는 것뿐이다. 시바파의 신자가 비슈누 파의 사원에 가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 등은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사실상 그러한 일들이 흔히 행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베나레스 즉, 바라나시의 거리는 시바거리라고도 할 만큼 시바신의 색채가 짙은 곳이지만, 이 곳에는 모든 종파의 힌두교도가 모여 목욕을 하고 사원에 참배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의 불교나 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종파와 힌두교의 종파와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우리는 그 가장 큰 이유를 신앙 행위의 관용성에서 찾을 수 있다.8) 힌두교는 출생 종교이며, 그런 면에서 배타성이 강하다.힌두교도의 부모에게서 출생했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힌두교의 구성원이 된다는 점에서 힌두교는 엄격한 출생 종교이다. 그리고 힌두교는 한번 추방된 자를 영원히 공동체와의 모든 관계로부터 배척해 버리는 종교 모독죄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배타적이기도 하다. 힌두교도에게서 태어나지 않는 자는 최소한 원칙적으로는 힌두교의 신성한 여러 가치에 접근하는 것이 거부된 자로 남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힌두교는 다른 종교 사상에서 보여주는 평등과 사랑과 자혜와 같은 정신으로 인류를 포용하려는 의지가 비교적 약한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9) 힌두교는 점진적이고 온건한 변화를 추구한다.힌두교는 수천 년에 걸친 과정을 통해 급진적인 개혁과 변화를 용납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이나 사상도 거대한 힌두교의 테두리 안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부다 같은 위대한 인물이 나와 사유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을 때도 일반 대중문이다.
(유태교)1. 유태교의 기원?역사유태교의 역사는 유태민족의 역사와 함께 유구핟. 셈족에 속하는 반유목민인 유태인의 조상이 미족이동이라는 큰 조류를 따라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 동쪽 연안에 정착한 것이 BC18세기 무렵이라고 고고학자들은 추정한다. 12장 이하의 아브라함기사가 이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유태교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사건은 모세의 지도하에 이집트에서 탈출하고 시나이산에서 여호와와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다. BC 13세기 전반의 일이라고 추정되는 이 사건은 전승(출애굽기)이 말하는 전민족적인 사건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서 기근으로 인해 이집트로 간 요셉족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민족 전체에 관한 신의 구원이라 여겨져 그들 민족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려졌다. 여호와와 그의 백성은 각각 주체적인 선택에 의해서 관련을 가지며, 그때 계약의 근저가 되는 이 되기 위해서 교의?관습?윤리를 포괄하는 이 계시되었다. 이 율법에 유태교의 일신성(一神性)과 윤리적 성격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BC10세기 예루살렘성전을 건립한 뒤 이 민족의 역사는 망국?이산(離散)?박해?학살 등 비극의 연속이었고, 언제나 민족의 주체성을 추구하는 투쟁의 역사였다. AD 70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성전 파괴는 유태교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신전제의(神殿祭儀)를 중심으로 했던 그때까지의 종교의 존재양식이 근본적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율법을 엄격히 준수한 바리새파(波)식의 규범적 유태교 때문이다. 그들은 신전제사를 대신하여 시나고그에서의 기도와 일상적인 율법 연구를 중요시했고, 신의 말씀으로서의 율법 속에서 유대인의 행동규범을 추구했다. 성문율법 외에 구전된 전승까지도 인정하는 입장이 위기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탄력성을 부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전율법이 후에 탈무드로 집대성되어 유태교는 탈무드 이후 규범적 종교로서의 특질이 강조되었고, 한편으로는 이 규범성에 의해서는 충족 될 수 없는 인간의 종교적 측면을 중시하는 신비주의적 경향도 하나의 큰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은 율법과 탈무드의 문자 뒤엣 감추어진 진리를 영적 노력에 의해서 파악하려는 사상이다. 이 흐름은 중세에스파냐와 팔레스타인에서 성해Te. 카발라라고 불리는 이 유태교 신비주의사상은 ‘조하르’ 등에 잘 나타나 있다. 근대에 와서 이 흐름을 이어받아 기도에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신과의 신비적인 교제를 원하는 하시디즘이 폴란드에서 생겨 동유럽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태인은 중세를 통해서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이산되어 고립된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나 근대 서유럽의 계몽사조가 그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인간성의 해방이라는 형태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의 경우 인간성의 해방은 동시에 민족성의 배제이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독일에서 생겨난 개혁파는 시나고그예배의 근대화를 추진했으며, 기도서에서 시온의 재건과 예루살렘 신전제사의 부활을 삭제하는 등 민족성 배제이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독일에서 생겨난 개혁파는 시나고그예배의 근대화를 추진했으며, 기도서에서 시온의 재건과 예루살렘 신전제사의 부활을 삭제하는 등 민족성 배제의 경향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들은 보편성이 강한 예언자의 윤리사상을 특히 강조했다. 이 개혁파가 가장 자유스럽게 활동한 곳이 전통에 대한 속박이 없는 미국이었다. 전통과 현대성 사이의 긴장을 문제시하면서도 지나치게 앞서가는 개혁파의 움직임을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보수파 유태교가 생겼다. 그들은 전통적 유태교의 본질을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역사적 근거가 있는 개혁을 받아들여 현대사회에 대한 적응성을 높이려고 했다. 그래서 유태교가 걸어온 길을 역사적으로 검증해볼 필요가 생겼고, 이것이 이른바 ‘유태학’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세기의 개혁파와 보수파의 움직임에 동조하지 않았던 유럽의 유태인들은 모두 정통파라고 불린다. 정통파 가운데 극히 일부는 일체의 개혁을 거부하고 중세적 전통주의 유태교를 지키려고 했다. 그들은 텔레비전과 신문을 비롯하여 모든 현대문화를 거부했다.그러나 그 밖의 대부분은 이른바 ‘신정통파’라 불리는 사람들ㄹ로서 현대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수용했다. 이것은 시대의 흐름에 대한 양보가 아니라 환경사회의 문화를 흡수하고 그 사회의 언어를 사용해서 유태교의 가치와 사상을 표현하는 것은 과거의 duer사에서 그러했듯이 유태교 본래의 필연성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역사비평적 연구방법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백하나 일상행동의 규범이 되는 할라카의 해석과 기준의 적에는 유연성이 발견되었다. 이처럼 현대에는 정통파?보수파?개혁파 등 3파가 병존하고 있다.2. 종교의 구체적인 내용1) 성전(聖典)유태교의 성전은 헤브라이어의 성서이며 내용적으로는 프로테스탄트의 ‘구약성서’와 같다. 특히 서두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만수기’, ‘신명기’ 등 이른바 ‘모세 5서’는 토라(율법)라 하며 신성시한다. 이것은 신이 자신의 뜻을 모세에게 직접 계시한 내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에 유태교의 전승에 따르면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받은 계시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에 유태교의 전승에 따르면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받은 계시의 내용은 성문화되어 있는 토라뿐만 아니라 구전율법(미슈나)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문율법 ‘모세 5서’와 함께 미슈나도 똑같이 신적 권위가 있다고 여겼다. 이 미슈나는 200년 무렵 총주교 유다에 의해서 모아졌으며 후에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의 율법학자들이 이것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 다양한 토론을 거쳐 주석을 달았다. 이 토론과 주석을 미슈나의 본문과 함께 집대성한 것이 탈무드이다. 4세기 후반에 팔레스타인에서 완성시킨 것을 ‘예루살렘(팔레스타인) 탈무드’라고 하고, 이와는 별도로 500년 무렵에 메소포타미아지역 학자들의 성과를 집성한 것이 ‘바빌로니아의 탈무드’이다. 조국을 잃고 세계 각처에 산재한 유태인이 탈무드가 제시하는 종교적 행동규범을 따름으로써 유대인으로서의 주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C. 로스가 ‘운반이 가능한 조국’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고, 그래서 유태교에 있어서 탈무드는 준성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