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의 이해족벌언론과정간법 개정에 관한 고찰.목 차1. 들어가며2.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신문사의 소유구조)3. 일인 사주 체계하에서의 여러 가지 통제.4. 정간법 속의 편집권의 독립과 소유 지분제한 분석.5. 결론1. 들어가며정간법 이란 “정기 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말한다. 정간법은 1987년 11월 28일 법률 제 03979호로 제정되었고, 신문, 잡지등과 같은 정기 간행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에 열린 우리당이 총선에서 과반수의 의석을 획득하고 민주 노동당이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이어 원내 제 3당으로 부각되자 열린 우리당을 중심으로 언론개혁을 입법화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 개혁이란 정간법 개정을 뜻하는 것이며 동시에 기존 신문시장을 과점하고있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대한 규제와 개혁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정간법 개정안은 이미 2002년 2월 8일에 민주당 심재권 의원에 의하여 발의되었다. 정간법 개정이 요구되는 이유는 소수의 신문사가 독, 과점시장을 이루어 발생하는 신문의 폐해를 방지하고 민주적인 여론을 형성해야한다는 신문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 신문사의 소유지뿐 제한, 편집권의 독립, 언론 중재위원회의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밖에도 개정안에서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금지를 강화하고, 경영정보의 신고제도의 신설 그리고 인터넷 매체의 정간법 적용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우리는 신문사의 소유지분 제한과 편집권의 독립이 현재 특정인물이 사주로 있는 언론(특히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2.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인가?신문기사의 문제점점수정치적으로 편파적이다2.78국민의 이익보다 자기회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2.72돈과 힘 있는 사람의 입장을 대변한다.2.68표1. 신문기사의 문제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5점만점 환산)한국언론재단이 2002년 국민을 대상으로 매체별 신뢰도 조사를 실시하였다.보도를 신뢰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방송의 신뢰도는 48.4%에 이르렀다. 발행부수만 보면 200만부를 넘는 3개 신문사가 시장을 과점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불신은 신문의 위기를 뜻한다.이 위기의 뿌리는 신문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있다. 이 3사는 모두 특정가문이 후손들에게 논이나 밭을 물려주듯이 소유권과 경영권을 세습화시키고 이런 권력을 바탕으로 공익을 위한 언론이 아닌 소수를 위한 언론을 만드는 것에 문제가 있다. 이는 신문기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응답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표1참조)신문사의 소유구조그림1. 주요3사의 소유지분 현황 (미디어 오늘2002년 5월 16일자.)사원이 직접 주주가 되어 신문사 경영에참여하는 경향신문과 대한매일.위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신문시장의 75.2%(경향신문, 2004년 6월 23일자.)를 차지하고 있는 3대 신문 (중앙, 조선, 동아일보)은 개인사주 체제이다. 조선일보는 1933년 방응모씨가 조선일보를 인수 한 후 방응모의 양자인 방재윤의 아들들 (방일영, 방우영)씨가 조선일보를 이어받았다. 또한 현재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이며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의 장남인 방성훈씨가 앞으로 조선일보의 실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는 김성수가 1920년 4월에 동아일보를 창간한 이래로 그의 후손들이 동아일보를 운영하고 있다. 인촌기념회란 동아일보의 창시자인 김성수의 호를 딴 것으로 인촌기념회 또한 창립자인 김성수의 후손들의 것으로 동아일보 역시 지배구조가 조선일보와 다를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앙일보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의 아내인 홍라희 호암미술관장의 남동생인 홍석현씨가 사주로 있다. 또한 제일제당은 옛 삼성계열사였던 것을 미루어 보아 삼성과 무관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앙일보 역시 가족경영의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와는 다르지만 한 개인과 기업에 연관되어 있으므로 특정 집단 하의 신문사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이와 같은 신문사 구조의 양상은 사원이 직一人)구조 체제인 만큼 신문의 내용이나 성향에 있어서도 사주의 영향을 받는다. 이에 따라서 신문을 편집하고 발행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통제가 발생하게 된다.3. 일인 사주 체계하에서의 여러 가지 통제.한국 언론의 경우에 회장이나 사장 주재의 국, 실장 회의 등을 통해서 매일 주요 기사 및 사설 아이템이 보고되고 회사 및 사주의 이해나 관심과 직결된 것들은 지침을 받아서 이를 지면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요 경제정책이나 정치적 이슈에 대한 보도에서는 이런 경향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1992년, 1997년 대선을 비롯하여 여러 총선에 걸쳐서 신문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논조를 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사주의 편집방침에 대한 전달 방식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그 중에서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기사 선택 및 면배치, 사진 선정 등 지면에 대해서 사주가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다. 미디어 오늘 1999년 5월 27일자에 의 하면 국민일보 사주 조희준의 경우 1999년 5월 11일 만민중앙교회신도들이 MBC에 난입, PD수첩의 방송을 중단시킨 사건에 대해 야근국장이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해설과 박스기사를 준비하는 등 크게 취급하려 했으나 “연합기사를 받아 1단이나 여울목(가십)으로 처리하라”고 함으로써 축소 보도됐다. 또 1999년 5월 24일 국민일보 방송 면에 SBS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제화업체의 주장을 실었으나 조회장이 “SBS와의 관계를 고려해야한다”며 문화부장에게 삭제를 지시했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는 사주가 사장과 주필 그리고 편집국장을 사택에서 면담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지침을 내리는 것이다. 현재 삼성그룹의 회장인 이건희 씨가 1994년 2월에 중앙일보의 사주였을 때에는 기자실명제를 시행하면 어떤가, 조간 혹은 석간의 문제에서는 조간을 발행해야 한다는 등의 소신을 나타냄으로써 간접적인 지침을 내리는 것 이다.이렇게 간접적인 방법으로 편집에 참여하는 것 이외에도 사내 인사를 통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총체적인 책있는 인물을 내세운다. 이런 이유로 편집국장은 사주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일보의 전 편집국장인 김영호 씨는 다음과 같이 사주와 편집권의 연관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족벌신문의 독점적 소유형태에서는 자본과 편집의 분리가 불가능하다. 인사권을 장악한 경영주가 편집권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업주의 입장에서는 정치권력과 밀착하면 어떤 형태로든 반대급부를 얻을 수 있어 권력 지향적 편집방향을 요구한다. 또 출세 지향적 편집 간부들은 그 같은 요구에 영합한다.” 이와 같은 위계구조 속에서 신문사 소유주의 제재는 기자들이 뉴스를 선택하는 과정에 있어서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서 기자들이 뉴스를 작성하는데 있어서 자기 검열의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 소유주의 지시가 없더라 하더라도 ‘이런 식의 기사는 소유주가 좋아하지 않는 것인데 혹시 기사화 했다가는 잘못 보이는 것이 아닌가?’ 라는 식으로 정신적으로 통제당하는 것을 말한다.우리는 위에서 일인체계의 신문 기업의 구조가 그 신문의 방향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았다. 조선, 중앙, 동아 일보는 우리 국민의 절반이상이 구독하는 신문임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같은 일인구조 체재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공정성을 띄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정간법 개정이라는 법률 개정이다. 정간법 개정내용은 첫 부분에서도 제시되었지만 그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편집권의 독립과 소유 지분 제한이다.4. 정간법 속의 편집권의 독립과 소유 지분제한 분석.ㄱ. 겸영 금지. 소유 지분 제한 (소유 분산 및 지배 구조 개혁)현행 정간법에서는 대기업과 그 계열기업의 경우에도 2분의1까지 신문사 지분소유가 가능하고, 또한 대기업의 총수 개인을 매개로 한 신문사 소유에는 그나마 제한도 없어 사실상 대기업에 의한 신문사의 전면적인 지배가 가능하게 되어 있다. 이에 따른 언론의 자유에 미것으로 하였다. 또한 현행 정간법에서는 우리나라 언론의 소유 문제 중 그것도 재벌신문만이 소유제한 대상으로 되어있다. 대기업이 아닌 특정인이나 친인척의 소유는 전면가능하다고 본다. 이러한 법이 재벌. 족벌의 신문 지배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정안에는 특수 관계에 있는 자까지 포함해서 주식 또는 지분의 20%이상을 소유할 수 없음을 요구했다.그러나 개정안에도 약점은 있다. “특수 관계”라는 표현이 모호한 것이다. 어느 특정집단이라고 지적하지 않고 광범위한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규제대상이 불분명해지는 오류를 낳았다. 만약 규제대상을 혈연의 범위로만 제한해 놓는다면 학연이나 지연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 신문사의 경영권을 가지려는 시도는 계속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현재의 신문사의 구조와 다를 것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좀 더 명확한 규제 범위 대상의 확충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선, 중앙, 동아일보와 같이 특정신문이나 기업이 신문사를 독점하고 있는 실정에서 소유지분 제한이 어느 점에서 시작되어야 할지 분명하지가 않다. 현재 사주들의 반발도 상당할 것이며 지금 가지고 있는 지분을 강제적으로 처분하게 할 방법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소유지분 제한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신문사를 소유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신문이 중립적일 수 있는데 기여할 수 있다.ㄴ. 편집권 독립현행법은 편집권을 선언만 했을 뿐, 구체적인 실천조항이 없기 때문에 언론기관의 편집권은 언론 사주를 비롯한 경영진의 권리라해도 용인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에 따라 언론의 편집방향이 언론을 소유한 족벌. 재벌의 이해관계에 따라온 것이다. 이러한 언론의 투명성과 공익성 확보를 위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편집권의 독립에 관한 법 규정이 필요한 시기이다. 언론종사자의 권리인 편집권은 헌법상 자유권적 기본권으로 인정된다고 보아야하므로 편집권의 경영권에서의 독립이 보장되어야 한다.개정안에는 언론사의 발행인에 대하여 편집규약의 비치를 의무화하였으며 그 제정 및 개정을 편집다.
플라톤의 대화편 을 읽고...글을 시작하기 전에 동서양 고전 중의 명저로 손꼽히는 책을 과제라는 절차를 통해 읽을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이 대화편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들 중에서도 시기적으로 비교적 선두에 끼이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메논은 뎃살리아의 젊은이이고, 이듬해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노예소년들을 많이 데리고 올 만큼 부유한 귀족집안의 아들이며, 고르기아스의 가르침을 받은 일이 있다. 그래서 그는 이 대화편에서 고르기아스를 대신해서 대답을 하는 셈이다. 이 대화편은 초기의 대화편들과 중기의 대화편들을 연결짓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초기의 대화편들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의 물음 형태를 취하고, 이 물음의 내용이 윤리적인 개념들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물음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답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도 외견상 비슷한 유형의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그러나 우선 물음의 내용이 ‘용기’나 ‘절제’처럼 어떤 한 가지의 부분적인 훌륭함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훌륭함이라는 점에서 나 등과 구별된다. 그리고 그런 초기의 대화편들에 비해서 이 대화편에서는 제기된 물음에 대한 본질적인 대답이 현시적으로 암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한 다르다.또한 이 대화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온 지도자들이 현실적으로 아테네에 기여한 바가 크고 그런 점에서 그들은 분명히 지혜로운 사람들일 텐데도 그들이 왜 참된 지자일 수 없는가를 밝혀 보인다. 그들이 지닌 앎이 현실적으로는 큰 기여를 한 ‘바른 판단’ 내지 ‘참된 의견’ 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식일 수 없는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메논은 소크라테스에게 훌륭함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수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배울 수도 없는 것이되, 사람들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지거나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주어지는지 물어본다.이에 소크라테스는 대화법(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문답식으로 학습을 진전시키는 방법)을 통해 훌륭함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훌륭함에 대한 대화 중 소크라테스의 중요한 답을 간추려 보면..훌륭함에 온갖 종류의 많은 것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들 모두는 동일한 하나의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이로 인해서 그것들이 훌륭함들일 수 있네. 또한 훌륭함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사람에게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그걸 훌륭히 설명해 줄 수 있는 것도 이에 유의함으로써일 걸세. 내가 말하는 바를 모르겠는가?모든 사람들의 훌륭함이 동일한 것이므로, 훌륭함을 고르기아스가 그리고 그와 의견을 같이하는 자네가 무엇이라고 보는지 말해 주고,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상기시켜 주게나.소크라테스는 또 메논에게 훌륭함에 관해서 전체적으로 말하게 하고 다시 메논의 답변에 문제를 제기하는 식으로 대화를 전개한다.그건 방금 전에 훌륭함을 쪼개서도 또는 토막 내서도 안 된다고 내가 자네한테 요구했는데, 그러면서 또한 대답을 함에 있어서 따라야 할 본보기들까지 제시해 주었는데도, 자네는 이를 소홀히 하고서 훌륭함은 좋은 것들을 올바름과 더불어 획득할 수 있음이라고 내게 말하기 때문일세. 하지만 자네는 올바름을 훌륭함의 부분이라 말하겠지?소크라테스는 우리들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배움이라 일컫는 것을 상기라 한다.이를 메논의 노예소년을 통하여 증명해 보여준다.이 아이가 나에 의해서 상기를 하게 되는지 아니면 나로부터 배우게 되는지, 자네가 보기엔 어느 쪽인지 아무쪼록 유의하게.메논, 자네는 내가 이 소년한테 전혀 가르치지는 않고 모든 걸 묻고만 있다는 걸 보고 있겠지? 그런데 지금 이 소년은 8평방 피트의 도형을 생기게 할 변의 길이가 얼마인지를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네. 자네한텐 그렇게 안 보이는가?그는 어쨌든 그 두 배의 길이로부터 그 면적이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아무쪼록 이 아이가 마땅히 상기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 차례로 상기해 가는 걸 지켜보게나.소크라테스는 아이의 내재해 있는 의견들을 끌어내면서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도 자기가 모르고 있는 것들에 관한 참된 의견들이 내재해 있음을 메논에게 알려준다.그러니까 아무도 가르쳐 주는 일 없이 다만 질문만 할 뿐인데도, 그 자신이 스스로로부터 지식을 되찾게 됨으로써 인식하게 되는 거겠지?스스로 자신 속에 있는 지식을 되찾는다는 것은 상기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나?그러면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 탐구해야만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합의를 보았으므로, 훌륭함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함께 탐구해 보도록 할까?어떤 것이든, 지식이 아니고 지식과는 다른 것으로 생각되는 것으로서, 때로는 해롭게 하되 때로는 이롭게 하는 것이 있지 않은지? 이를테면 용기를 생각해 보게. 가령 용기가 지혜 아닌 대담한 것과 같은 것일 경우를 말일세. 사람이 지성은 없이 대답하면 해를 입지만, 지성이 있고서 대답하면, 이롭게 되지 않는지?절제와 쉬 배움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지성과 더불어 배우고 단련된 것들은 유익하지만, 지성은 없이 배우거나 단련된 것들은 해롭겠지?그런데, 만약에 훌륭함이 정신적인 것들 중의 한 가지이고, 또한 유익한 것임이 필연적이라면, 훌륭함은 마땅히 지혜여야만 하네. 그건 모든 정신적인 것들이 그것들 자체로는 유익하지도 해롭지도 않고, 지혜가 덧보태어졌는가 아니면 어리석음이 덧보태어졌는가에 따라, 해롭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하기 때문일세. 이제 이 주장에 따르면, 훌륭함은 어쨌든 유익한 것이기에, 마땅히 지혜의 일종이어야만 하네.인간에게 있어서의 다른 모든 것들은 마음에 달려 있으나 마음 자체의 것들은 이것들이 좋은 것들로 되려면 지혜에 달려 있다고 말일세. 이 주장에 의할진대, 유익한 것은 지혜일세. 뿐만 아니라 우리는 훌륭함이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네.그렇다면, 훌륭함은 지혜라고 우리들은 말하겠지? 전체의 지혜이든 또는 그 한 부분이든 간에 말일세.만약에 이게 이러할 것 같으면, 훌륭한 사람들로 되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 아닐세.메논, 내 말해 줌세. 훌륭함이 지식이라면, 그것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여 이를 취소하지는 않네. 훌륭함이 지식이 아니지 않을까 하고 내가 의심하는 것이 자네 보기에 합당한 것으로 여겨지는지 생각해 보게. 다음 물음부터 대답해 주게나. 비단 훌륭함만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 간에, 만약에 그것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라면, 이의 선생들이나 배우는 사람들이 있을게 필연적이겠지?혹시 그것의 교사들이 있을까 해서 여러 차례에 걸쳐 찾느라 온갖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발견할 수 없었네.그렇지만 선생들도 배우는 사람들도 없는 그런 것은 가르쳐질 수도 없는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어쨌든 우리들이 이미 합의 했네.바른 판단은 행위들과 관련해서는 지식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을뿐더러 못지 않게 유용할 것이며, 바른 판단을 가진 사람 역시 지식을 가진 사람에 비하여 마찬가지일 걸세. 뿐만 아니라 훌륭한 사람이면 유익하다는 데에도 우리는 동의했네.그러므로 나라들에 훌륭한 사람들이 정녕 있다면, 그들이 있고 또한 유익한 것은 비단 지식으로 인하여서 뿐만이 아니고 또한 바른 판단으로 인하여서이기도 하지만, 이 둘 중의 어느 것도, 즉 지식도 참된 판단도 사람들에게 날 때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습득되는 것도 아닐세. 혹시 자네에겐 이들 중의 어느 것이건 타고나는 것으로 생각되는가?타고나는 것이 아니기에, 훌륭한 사람들도 날 때부터인 것은 아닐세..만약에 우리들이 지금의 이 모든 논의에서 과연 훌륭하게 탐구하고 논의 했다면, 훌륭함은 타고나는 것도 가르쳐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그것이 어떤 사람들에게 있게 되건 정작 있게 되는 것은 지성을 떠나 ‘신적인 섭리에 의해’ 있게 되는 것일세. 정치가들 중의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자기와 같은 그러한 정치가로 만들 수 있지 않은 한은 말일세....그러므로 우리들이 보기에 이 추론으로부터는, 훌륭함이 누구에게 있게 되건, 신적인 섭리에 의해서 있게 되는 것 같으네, 메논. 그러나 이에 대한 분명한 것을 우리들이 알게 되는 것은, 훌륭함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있게 되는지에 앞서, 먼저 훌륭함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그 자체로서 탐구하도록 해볼 때에 있어서일 걸세....책 중의 메논 편은 그리 두껍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세 번을 반복해서 읽고 (첫 번째 읽을 때는 통독하겠다 생각하여 내용의 흐름도 제대로 잡지 못했고, 두 번째에는 내용의 흐름만 겨우 잡을 정도였으며 세 번째 읽으면서 문장의 의미를 생각하며 볼 수 있었다.) 나서도 문장 속에 들어 있는 깊은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면밀히 문장마다 분석을 통해야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