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흑백텔레비전꺼짐]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존재’를 느끼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모두 자신의 ‘존재’를 느끼기위해 자신을 표현하는 대체물을 만들고 자신의 ‘존재’를 찾아간다. 그러러나 그 찾음은 타인에의한 확인 일뿐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찾지 못하는 현대인들 이다. 작품속의 몽환적이고 공허함속의 분위기는 ‘자신을 잃은 사람들’이 만드는 느낌들이다. 이들은 역시 자신의 ‘존재’를 찾기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하루를 무작정 살아가며 정체성의 혼란속에서 마지못해 하루를 보내고 있다.때는 새 천년 전야. 서하원은 제주도에서 일도라는 사내를 만나 4박 5일간의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결혼을 하기로 하지만 결혼식날 사라져 버린다. 그녀의 실종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였다. 그녀는 전직 장관의 뿌려진 딸이 였고 중학교 3하년 때 친부에게 처녀를 빼앗긴 뒤 언니와 함께 숨어살았다. 그녀는 이러한 배경이 기인한 어둠으로의 회기였던 것이다. 그녀는 일도라는 사람을 통해 희망을 보았지만 역시 어둠이 익숙한 그녀에게는 희망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그녀가 원했던 것은 무었이었을까? 그녀의 행동은 제주도에서 일도와의 며칠이 자기 인생의 전부였다고 말할 정도로 아끼고 사랑하는 그에게 자신의 버거운 짐을 함께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그와의 새로운 인생을 꿈꾸면서도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던 자신의 저주받은 삶에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에 내린 큰 결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과도 닮은 일출과 일몰이 가장 늦은 섬인 서사모아에서 자살을 할 것이라 한다.그녀는 동남아 섬을 전전하다가 자살전 정원에게 흑백 테이프를 보낸다. 어쩌면 이 흑백테이프가 그녀의 유일한 ‘존재’이며 이것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마음의 벽이 어쩌면 흑백텔레비전일 것이다. 칼라속의 현실이지만 과거의 슬픔속에 잠기어 흑백텔레비전을 깨지 못하고.. 희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새천년를 가장 늦게 맞이하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텔레비전은 꺼지게 될 것이다.고독을 채워줄 뜨거운 설탕을 찾아 어둠을 응시하는. 욕망을 헤메는 존재인 일도. 그역시 그녀가 없어지자 혼란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정원역시 고독한 존재라는 것이 들어나고 서로는 자신을 알지 못한체 욕망 속으로 빠져든다.
결혼은 미친짓이다.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일반적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있다. 가령 10대에는 학생이어야 한다는 것이나 30대 이후에는 가정을 꾸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 밖에도 우리 사회가 묵인적으로 일반화 시키는 것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과거 유교 사회의 가부장적 사회구조 같은 것이 있다. 사회는 자꾸 자꾸 변해가는데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달라질 줄을 모른다. 물론 100년, 200년을 지속해온 사회적 인식과 규범이 요즘처럼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사회에 맞춰 바뀌기란 힘들지도 모른다.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면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합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지만 점점 더 외로워지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 관계에 더 집착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관계의 절정에 있는 것이 연인관계이다. 정신적인 욕구와 신체적인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존재가 연인일테니 말이다. 그러한 연인들은 서로 삶을 살아가면서 더 많은 부분을 공유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선택을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결혼의 본질적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결혼의 필요조건이 사랑이 아니라 조건이 되어가는 것이다.영화 속의 여자 주인공은 결혼적령기의 여자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외모를 가진 여자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위치에 있는 여자이다. 그녀는 외모가 아름답다는 이유로 남자에 대한 선택권을 가진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여자로써 스스로 삶을 즐기며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사랑하는 남자보다는 조건적으로 사회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남자와의 결혼을 택하는 것이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바람둥이 남자다. 하지만 사실 그는 그의 말처럼 쿨하지 않다. 그는 교육을 통해 사회를 비판할 능력을 부여받은 시간강사이다. 남들이 보기에 그는 깔끔하고 교양있는 남자이다. 하지만 그는 제도적 사회를 비판할 줄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결혼을 하지 않는건 한 여자만을 사랑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해서 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에겐 결혼할 능력이 없다.그녀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를 만난다. 그의 독립을 위해 돈을 빌려주고, 격주로 그를 찾아가 신혼 놀이를 한다. 집을 꾸미고, 밥을 하고, 사랑을 나눈다. 그녀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에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 선택을 한다는 것 말이다. 이 둘은 결국 헤어지기를 결심하지만 그녀는 결국 마지막까지 그를 찾아온다.우리나라의 결혼구조에 관해 감독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특징 때문이다. 서구 유럽의 경우에는 사회적 변화 속도와 사람들의 인식 변화 속도 자체가 비슷했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 우리와 다른 관점을 가지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20세기 초부터 급격한 사회변화가 시작되었고 새로운 사상과 생각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의 인식과 관습이 그 변화의 속도를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독 역시 이 괴리를 느끼고 이를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것이다.그렇다면 결혼은 미친짓일까? 결혼의 의미는 심리적 안정과 재생산에 있다. 결혼이 사랑보다 사회 구성원으로써 그 역할에만 충실해야 한다면 이 얼마나 비극인가.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가 가정에서 심리적 안정감과 사랑을 느낄 수 있겠는가? 모든 기혼 남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속에서 가치전도현상을 겪고 있는 남녀에게 말하는 것이다. 쉽게 ‘우리’라는 인식을 가지지 못하는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현대인들에게 진짜 결혼의 의미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