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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독후감
    슬픔으로 성장하는 사랑스런 꼬마 제제의 이야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를 읽고-책을 끝까지 다 읽지 않은 사람도 제목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사실 이 이야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토막 이야기가 살짝 실려 있어서 대충의 내용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내용을 읽고 분석하고 문제를 풀었을 뿐 교과서 외의 내용엔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왜 그토록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눈물을 흘렸던 가슴 찡한 책으로 기억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다.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제제는 실직한 아빠와 공장에 다니는 엄마, 두 누나와 형, 동생과 함께 가난한 가정형편 속에서 살아가는 다섯 살 난 꼬마이다. 그런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제제는 기죽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장난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래키곤 한다. 스타킹으로 뱀을 만들기, 달리는 차의 뒷바퀴에 매달리기, 남의 집 구아버 열매 훔치기 등 제제의 말썽은 끝이 없다. 이런 장난으로 제제는 많은 냉대와 매질을 당하지만 그에게는 밍기뉴와 뽀르뚜가가 있어 슬픔을 달랠 수 있다. 나도 어렸을적 장난을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그런 장난들로 인해서 제제처럼 심하게 매질을 당하거나 욕을 들은 적은 없다. 어린 아이시기란 당연히 장난이 많고 호기심도 많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제제였다면 매질이 너무 무섭고 아프고 괴로워서 아마 집을 나가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렇게 불행한 제제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밍기뉴 나무와 따뜻한 뽀르뚜가 아저씨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결국엔 유일하게 제제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을 가르쳐 주었던 그 존재가 다시 커다란 구멍난 상처로 돌아오긴 하지만 말이다.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책을 손에서 놓아야만 했다. 어린 제제와 뽀르뚜가의 대화가 너무 가슴 저리게 아파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당신도 알겠지만 난 아무데도 쓸모 없는 아이잖아요. 이제 나도 매 맞고 귀 잡히는 데 지쳤어요. 더 이상 주둥이란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오늘 밤에 망가라치바에 뛰어 들기로 했어요.” “안 돼.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마. 넌 앞으로 멋지게 살 수 있을 거야. 날 사랑한다고 했던 게 거짓말이 아니라면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라.”슬픔이 너무 커서 자살을 하겠다는 제제와 제제를 말리는 뽀르뚜가 아저씨. 제제의 자살결심을 말리는 뽀르뚜가 아저씨도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제제는 사랑받고 싶은 아이이다. 너무나 사랑 받고 싶은데 아무도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아서 슬픔으로 멍이 시퍼렇게 들어 버렸다. 문득 ‘우리 주변에도 제제 같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부모 잃은 고아들, 몸이 불편한 사람, 독거 노인들..... 이런 모든 사람들 역시 제제처럼 따뜻한 관심과 넓은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들일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과연 나는 얼마큼의 관심을 보여 주었는지 평가해 보았다. 부끄러워 얼굴이 금방 숙여졌다. 언제나 나는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사랑을 받기만 하는 존재이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책 한권으로 사람이 갑자기 변할 수는 없겠지만 이 시대의 수 많은 제제에게 사랑과 관심을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조금씩 노력해야 겠다란 결심을 하게 된다.
    독후감/창작| 2007.04.30| 1페이지| 1,000원| 조회(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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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행문 평가B괜찮아요
    여행을 떠나며...여행을 떠나기 전 사실 많은 걱정이 되었다. 4학년이 되어서 시간을 내어 여행을 간다는 것이 조금 부담도 되었고 또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가 사정상 못 가게 되어 혼자가야 한다니 조금 두렵기도 했다.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졸업여행도 못 가는데 이렇게 가게 되어서 다행이기도 했다.가기 전에 걱정했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행갈 생각에 난 매우 들떠 있었다.여행을 자주 가는 편도 아니여서 아는 곳도 없고 가 본 곳도 거의 없기에 떠나기전 장소설정이 우선 시급했다.일하고 들어오신 아버지께 어디를 가면 멋진 곳이 많아요? 어디로 가면 사진 찍을 만한 곳이 많나요? 라며 매일 아버지랑 둘이서 갈 곳을 고민하곤 했다.우리 아버지 한참을 고민하셨는지 아침 7시에 나를 깨우며 경주는 어떠냐, 울릉도도 괜찮다던데..제주도는 니가 가기엔 너무 멀겠지?... 라며 잠에 취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나를 붙들며 얘기를 해 주신다.여행장소 결정을 함께 의논하면서 솔직히 여행지보다 오랜만에 당신께 자문을 구하고 얘기를 나누게 된 것이 마냥 신이 나셨나보다. 그런 아버지를 보자 나 역시 마냥 즐겁게 여행준비를 할 수 있었다.그렇게 결정된 곳이 경포대 였다.너무나 잘 알려진 곳인데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기에 그 곳을 여행지로 선택을 했다.내가 겨울바다를 좋아하고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그렇게 혼자 여행을 가게 된 내 마음은 기대와 걱정, 두려움이 가득했다.여행을 가기전날 사진기부터 시작하여 따뜻한 복장, 필름, 종이와 연필등 간단히 가방을 싸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새벽5시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아침을 먹고 일찍 집을 나섰다.물론 어디를 가도 사람조심, 물조심, 차조심... 등의 부모님의 잔소리도 함께 말이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강릉행 버스를 타서 3시간에 걸려 도착한 강릉은 공기부터 달라 보였다.아~이렇게 좋은 공기를 마시는 사람들은 매연 가득한 서울에서는 못 살겠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강릉 시외버스를 타고 처음 도착한처럼 검은 대나무(烏竹)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율곡이이가 쓰던 벼루가 있는 어제각이라는 곳도 들어가 보았는데 아직까지 그가 쓰던 물건부터 그의 저서 격몽요결 이 잘 보존 되어 있었다.이 오죽헌은 본래 선생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집이라고 한다. 원래 신사임당 외조부의 집이었는데, 외조부가 아들이 없어 무남독녀인 신사임당의 어머니에게 집을 상속했다고 한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신사임당 어머니의 집인 셈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신사임당의 친정이자 율곡 선생의 외가인 것이다.율곡 선생은 외가인 이 오죽헌에서 태어나 6세 때까지 이곳에서 자랐다고 한다. 당시 율곡 선생의 본가는 파주에 있었으며, 현재도 경기도 파주에 율곡선생의 무덤과 위패가 있는 {자운서원이 있고, 율곡 선생이 즐겨 찾았다는 {화석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山 中 - 李 珥採 藥 忽 迷 路 ( 채 약 홀 미 로 )千 峯 秋 葉 裏 ( 천 봉 추 엽 리 )山 僧 汲 水 歸 ( 산 승 급 수 귀 )林 末 茶 烟 起 ( 임 말 다 연 기 )세속에 묻혀 살던 시인은 약초를 캐러 산에 올랐다 문득 길을 잃었는데,약초를 찾아 몰두하던 시선을 들어보니, 봉우리마다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합니다.약수터에서 만난 스님이 돌아간 뒤에도 한참을 앉아서 사념에 잠겨있다가, 문득 다시 눈을 들어보니 멀리서 찻물 끓이는 연기가 보인다는 내용입니다.결국 눈 앞의 현실에 몰두해 사는 자신에 대한 발견과 반성이고, 나아가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율곡 이이의 인생관을 잘 엿볼 수 있게하는 시입니다.바로 앞의 현실에만 몰두하여 살고 있는 저의 현재의 모습에 새삼 반성을 해 보았습니다.졸업이다, 취업이다 정말 그 하나에만 급급해서 식구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또 저 자신에게도 너그럽지 못하고 물기 없이 바싹 말라 버린 풀처럼 되어버린 저의 현 모습을요. 율곡이이의 바램처럼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하게 살아갈 순 없겠지만 조금더 여유있고 따뜻한 아늑하게 자리 잡은 선교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행랑채 바깥 마당에 조성된 연못과 그 연못 속에 네 개의 돌기둥을 내리고 서있는 활래정(活來亭)이다.주자의 시 위유원활수래(爲有源活水來) 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 활래정은 손님 접대를 위한 다실까지 갖춘 마루와 온돌방이 물위에 떠 있어서 시원한 정자의 멋을 한껏 뽐내고 있다. 예전엔 이 곳에서 선비들이 연꽃향이 가득한 녹차를 즐겨 마셨다고 하는데 지금도 전주이씨의 후손인 이집 주인은 귀한(?) 손님이 오면 차를 대접한다고 한다. 물론 관광객인 나는 그 연꽃향이 가득향 녹차를 대접받을 수는 없었다.녹차를 좋아하는 지라 그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연꽃향이 가득하다는 그 녹차를 한번 마셔보고 싶다.대문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안채, 서쪽으로 사랑채가 있는데 사랑채에 걸린 열화당(悅話堂)이라는 현판이 눈길을 끈다. 이내번의 후손으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신조로 삼았던 처사 이후가 순조 15년(1815)에 이 사랑채를 짖고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세상 일은 잊어버리자, 어찌 다시 벼슬을 구하랴, 친척의 정겨운 이야기를 즐기며, 거문고와 책을 벗하여 온갖 시름을 잊어버리자." 라는 시구처럼 형제, 친척들이 모여 즐겁게 담소하는 장소로 썼다고 한다. 이런 담소장소이기 때문일까?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고 있는 열화당은 보기만해도 가슴이 훈훈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동별당과 서별당이 있었는데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위치하여 서재와 서고로 쓰였다는 서별당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안채의 부엌과 'ㄱ'자형으로 연결되어 이 집 주인이 가족과 함께 생활했다는 동별당만 남아 있어서 대가족 제도하에서 부부만의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던 다감한 모습을 살피게 한다.일자형으로 길게 늘어선 행랑채는 20개도 넘는 방과 부엌, 곳간, 마굿간으로 이루어 졌는데 현재 각 방은 민속유물을 전시하는 전시방으로 활용되고 있었다.정원 밖에는 요즘 새로 지은 전시관이 있어서 민속품 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왠지 이곳 선교, 앞으로의 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알았도다.실로 내가 길을 잘못 잡아 헤매었지만, 아직은 정도에서 멀리 벗어나지는않았고, 비로소 지금이 옳고 어제까지는 틀렸음을 깨달았노라. 뱃길로 고향을 가노라니 배가 흔들흔들 가볍게 나아가고 바람은 펄럭펄럭 옷자락을 날리누나. 도중에 나그네에게 노정을 물어보니, 고향으로 가는 새벽길이 아직 어두워 주변이 자세히 보이지 않고희미한 것이 애석하구나. (하략)경포호로 가기 전에 경포대를 먼저 가 보라는 동네 한 아주머니(?)의 얘기에 나는 경로를 바꿔 경포대로 발길을 옮겼다. 경포대는 고려 충숙왕에 의해 지어진 누각이라고 하는데 경치가 뛰어나다고 한다.경포대를 보기 위해서는 언덕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짧은 길이기는 하지만 양쪽으로 빽빽이 들어 서 있는 소나무 길을 걷자니 여간 기분이 상쾌해 지는 것이 아니였다. 그렇게 조금을 올라가다 보니 신사임당의 동상도 있고 그 앞바로 경포대의 누각이 보였는데 비록 단촐하기는 하나 그 모습이 매우 늠름하고 씩씩해 보였다.이 늠름한 경포대도 멋있지만 정말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경포대에서 보이는 경포호의 모습이였다. 위에서 누각과 소나무와 함께 내려다 보는 경포호의 모습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는데 이 곳에서 많은 풍류 시인들이 이 곳을 보며 아름다운 시를 많이 지었다는 이야기는 굳이 그 시를 보지 않아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현재 큰 현판에 쓰여진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글귀가 경포대의 풍광을 자부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율곡이 10세 때 지었다고 전해지는 '경포대부(鏡浦臺賦)'도 판액되어 있었다.일찍이 강릉사람들은 경포대에서 볼 수 있는 여덟개의 경치를 일러 경포팔경이라 부르며 풍광을 즐겨 왔다고 한다. 경포대에서 보는 해돋이와 낙조, 달맞이, 고기잡이배의 야경, 노송에 들어앉은 강문동, 그리고 초당마을에서 피워 올리는 저녁연기 등이 경포팔경에 속한다고 하는데 모두를 비록 다 보지는 못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경포대럼 보이고, 신선 궁궐이 구름결에 솟으니 흡사 신기루(蜃氣樓)가 허공에 뜬 것 같구나."석양녘 현산의 철쭉꽃을 잇달아 밟아 신선이 탄다는 수레를 타고 경포로 내려가니,십 리나 뻗쳐 있는 잔잔한 호숫물이 큰 소나무가 둘러싼 속에 실컷 펼쳐졌으니,물결도 잔잔하기도 잔잔하구나. 모래를 셀 수 있을 만큼 매우 맑구나."경포대에서 달 뜨는 밤이면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는 옛날 풍류객들의 표현이 있다고 한다.다섯개의 달은 다음과 같이 일컬어지고 있다. 그것은 1하늘에 떠있는 달 2출렁이는 호수 물결에 춤추는 달 3파도에 반사되어 어른거리는 달 4정자 위에서 벗과 나누어 마시는 술잔 속의 달 5벗(님)의 눈동자에 깃든 달이다. 또한 달이 물에 비쳐 황금물결과 특이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데 이를 달기둥(月柱), 달탑(月塔), 달물결(月波)등으로 표현되고 있다.이처럼 정말 낭만적인 문구가 있다고 하여 들른 경포호의 모습은 정말 도착해 보니 비록 달뜨는 밤이 아니여서 달을 볼 수 없었지만 그런 문구처럼 예쁜 곳이였다.태양빛에 반사되 반짝이는 수면위의 모습도 갈대가득한 모습도 또한 유난히 추운 날이였는데 어울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연인들의 모습이며 곳곳에 서 있는 조각상들까지...모두 그렇게 아름다운 경포호 의 어울려 마냥 아름다운 전경으로 느껴졌다.지금껏 여행다니면서 그저 호텔이나 쇼핑센터 있는 또는 먹을것만이 가득한 곳만 찾아 다녔던 또 여행이라하면 으레 해외여행 을 가야만 여행다운 여행이라 생각을 하고 있던 나 였기에 특히 아름다운 경포호의 모습은 그런 나를꾸짖는 것 같았다. 왜 이제야 찾아 왔냐고...혼자 바라보는 경포호의 모습은 그렇게 나에게 많은 생각과 감동을 주었다.언제나 여름 휴가철이 되면 뉴스에 빠지지 않고 나오던 곳이 바로 경포해수욕장이다.휴가철이 아닌 비성수기에 찾게 된 경포해수욕장은 매우 한산하고 쓸쓸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경포대 해수욕장 입구의 공군 전적비를 지나 송림이 우거진 길을 들어가면 정면으로 환영의 인사가 적힌 현판 뒤로 푸른 바다가 났다.
    인문/어학| 2003.12.06| 10페이지| 1,000원| 조회(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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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한국장편소설의 특징
    ★한국 장편소설의 발생과정과 특징17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우리 문학사에는 장편소설이 본격적으로 대두하여 발전하게 된다.15,16세기 이래로 김시습. 심의, 신광한 등에 의해 단편소설이 꾸준히 지어져 발전하여 왔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17세기 전반에 들어서 민족의 현실과 중세 봉건질서의 제반 모순을 묘사한 여러 단편소설들이 산출됨으로 해서, 이 시기에 장편소설이 발전해 나올 준비는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다.17세기 후반 장편소설의 효시가 되는 작품으로 김만중의 과 이다.이 두 작품은 모두 상당한 분량으로 이루어져 다양한 디테일을 담고 있으면 장회(章回)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이 두 작품은 그 구성의 기교에 있어서나 주제의 구현에 있어서 이전에 우리 소설사에 있어 온 어느 작품보다도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에서 구체화된, 사대부의 출장입상과 가문창달의 이상이 실현되는 줄거리는 이후 18,19세기에 성행하게 되는 가문소설과 18세기 후반 이래 대중적 호응을 얻으며 상당한 인기를 얻어 쏟아져 나오게 되는 일련의 영웅소설에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된다.과 의 뒤를 이어, 18세기에는 이른바 규방소설, 가문소설등이 발전한다. 그리하여 상층 사대부사회에서, 특히 사대부가의 부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며 읽히면서, 서로 필사해 돌려 보거나 혹은 세책가를 통해 세대와 매매로 유동된 것으로 보인다.1786년에서 1790년에 걸쳐 필사된 에 적혀 있는 소설 목록을 통해 어떤 작품들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데, 이 가운데 현재 작품이 남아 전하는 것으로는 , , 등이 있다.체제공(1720-1799)에 의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해 18세기 후반의 상황을 알 수 있다.가마니 살피건대 근세에 규합에서 능사로 삼아 다투는 것이란 오직 패설을 승상하는 일이다.날로 달로 증가하여 그 종류가 천이나 백으로 해아리게 되엇다. 세책가에서는 이를 깨끗이 필사해서무릇 빌려 보는 자가 있으면 곧 그 값을 받아서 이득을 얻는다. 부녀들이 식견이 없어 혹은비녀나 팔찌를 팔고 혹은 동전을 빚내어 서로 빌려다가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18세기 후반에는 이렇듯 가문소설의 발전과 함께 또 다른 하나의 유형성을 띠며 통속적 영웅소설이 나타나 하나의 군집을 이루며 주로 평민층에 수용되어 성행하게 된다. , 등의 작품이 그것인데, 주인공이 처지의 한미함, 정치적 모함, 외적의 침략 등 여러 형태의 고난을 겪으면서도 영웅적인 능력의 발휘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출장입상하여 궁극적으로는 가문 창달에 이르는 내용이 모든 영웅소설에 대동소이하게 엮어져 있다.대체로 1책짜리 방각본의 형태로 유통됨으로써 대중화에 부응하였는바, 소설이 점차 그 독자층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대중적 흥미에 초점을 맞춰 나타나게 된 것이 영웅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의 시기에 , 같은 우리의 역사에서 소재를 취한 영웅소설이 있었고, 17세기 중, 후반에 , , 같은 우리 역사 속의 민중영웅을 그린 역사군담소설이 있었으나, 18세기 후반에 들어 활발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통속적 영웅소석은 이들과는 경향을 달리한다.이 후 근대소설이 발달하게 되는데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로는 1910년 이광수의 을 들 수 있다.은 그것이 최초로 한글로 씌어진, 아니 한글 문체를 처음으로 완성시킨 작품인 것이다.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근대 문학적 특질을 지닌 작품이다.첫째, 형식상 산문성을 띤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둘째, 내용상 자아의 각성을 보여주며 류의 권선징악을 청산한다.셋째, 창작 방법상 심리 추구와 성격창조에 성공한다.이처럼 1910년 이후로는 춘원의 외에도 이래 많은 장편이 발표되었으나 대개는 대중소설의 성격을 띄고 있어 전에는 본격적인 장편은 많이 찾아볼 수 없다.1930년부터 본격적으로 장편화가 되기 시작하면서 우리 소설의 현상 가운데 하나가 역사주의 의식을 수용하고 있는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이른바 가족사 소설, 역사소설이라는 형태의 소설이 그것이었다.1930년 소설이 장편화 하는데 있어서 긴요한 역할을 한 것은 와 와 같은 가족사 소설, , 같은 역사 소설 그리고 관 같은 이른바 세태 소설이다.당시 작품으로 이광수의 , , 염상섭의, , 심훈의 등이 있다.해방 이후에는 황순원의 , , 김동리의 , 안수길의 , 이호철의 , 장용학의 , 전과용의 , 박경리의 , 최인훈의 , 구인화의 , 정을병의 , 이청준의 등은 본격적으로 발전된 근대장편소설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으로 본 근대소설 및 장편소설의 특징조연현은 우리 나라의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의 근대문학적 특징을 형식상의 특징, 내용상의 특징, 방법상의 특징으로 삼분하여 고찰한 바 있다. 그는 형식상의 특징으로 완전한 언문일치와 세밀한 서술과 치밀한 심리분석을 지적했으며, 고대소설이 신화나 전설에서 취재한 데 비해 현실의 실제적인 환경 속에서 취재하였다는 점을 들었다.내용상의 특징으로는 철학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자아의 각성을 병욱과 형식의 의식세계를 통해 규명하였다. 형식의 의식세계는 한국 최초의 조직적인 자아의 각성이며 체계적인 개성의 자각이라는 것이다. 에서 문제되는 자유연애도 이러한 자아의 각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또한 고대소설과 다르게 정조가 유린된 영채를 윤리보다는 생명이 우선이라는 논리로 설득했으며, 악한인 배학감이 현실에서 승리하게 한다든가, 선인인 박진사가 희생되는 비극적 운명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도 근대성이 표양되었다는 것이다. 방법상의 특징으로는 심리추구와 성격창조가 고대소설이나 신소설과는 판이하게 다른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이러한 면에서 우리나라의 장편소설은 으로부터 출발하며, 전근대적인 봉건적 잔재를 청산하고 사실성을 확보한 자아의 각성과 개성의 신장을 그 내용으로 하는 스케일이 큰 작품이란 정의가 가능하다.서구에서 근대 장편소설이 산업사회와 밀접한 연관이 되듯 우리의 장편소설도 산업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엔 식민지를 통한 산업화였기 때문에 서구와는 다르게 이중적인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산업화된 사회에서의 자아의 각성뿐 아니라 식민지라는 상황에서의 민족의 정체성 회복이라는 이중적 압력을 받으며 전개될 수 밖에 없었다. 서구에서 장편소설이 산업화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은 소설의 상업화와도 관련이 있다.인쇄술이 발달하고 보다 싼 가격으로 대중적인 인쇄 매체를 공급할 수 있었던 것도 근대소설이 발달할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하였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였는데, 개화기 소설은 물론이려니와 은 이런 산업사회의 영향을 톡톡히 본 소설인 것이다. 가 없었다면 이란 장편소설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에서 장편소설을 연재해 달라는 청탁을 받지 않았다면 은 지금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신문연재 소설' 이광수가 시작한 근대소설은 이로 인해 김동인에게 비판을 받게 되었고, 그 후 장편소설은 통속소설이고 단편소설만이 순수문학이고 문학성이 있는 양 오인되었으며, 우리 소설사가 단편소설이 중심이 되어 발달해 온 것처럼 잘못 인식되게 되었다.결국 장편소설의 특징은 결코 신문연재 등의 외형적 조건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에서 찾아야 한다. '단편은 젊음의 소산이고 장편은 경험의 소산'이라 하였다. 젊었을 때의 정열로 쓰는 것이 단편이라 하면 장편은 오랜 인생 경험이 쌓인 후에야 쓸 수 있는 중후한 문학 양식인 것이다. 즉, 작가의 뛰어난 사상과 인생관과 사회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 없이는 훌륭한 장편소설은 나올 수 없는 것이다.★한국 장편소설의 유형한국 장편소설은 을 효시로 하여 본격적인 전개는 1930년대 시작되었다. 장편소설이 활발히 창작된 것은 물론 장편소설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때 논의가 된 소설 유형으로는 농민소설론, 대중소설론, 세태소설론, 풍자소설론, 가족사 연대기 소설론, 역사소설론등이다. 여기에 계몽소설과 대하소설까지 포함 시킬 수 있다.①계몽소설-개항 이후 일제가 우리를 강점하였던 초기에 상실된 민족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서구 개화 문물을 받아들이고 조국 근대화를 이룩하여 민족 자존을 실현하려 하였던 시기에 민중을 계도하기 위하여 창작된 일련의 소설이다. 신채호의 , 장지연의 등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3.11.13| 4페이지| 1,000원| 조회(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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