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심 경향과 Postcolonialism 문학{탈중심 경향과 Postcolonialism 문학 - '98 이두영- 탈식민주의와 문화적 제국주의 -1. 탈식민주의 연구의 중요성과 문제점탈식민주의 Postcolonialism는 제국주의로 점철된 세계 근대사의 후유증과 문제점들을 자각한 예전 식민지 지식인들과 작가들이 그와같은 폐해들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을 수립하기 위해 시작한 최근의 중요한 지적 움직임이다. 이 운동이 세계적인 사조로 확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세계인구의 4분의 3이 식민지 경험을 갖고 있을 만큼 제국주의의 폐해가 컸기 때문이고, 그것의 후유증이 아직도 도처에서 면면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탈식민주의가 국제적인 호응을 받게된 또하나의 이유는, 60년대 이래 세계 지성계에 불어닥친 탈중심주의 사상과, 그동안 제외된 주변부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조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 혁명적인 인식의 변화를 몰고온 탈중심주의는 그동안 특권적인 위치를 누려왔던 중심부의 절대성과 유효성에 회의를 제기하게 되었고, 주변부로 밀려난 작은 목소리들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오랫동안 제국의 그늘에 가려져왔던 주변부 국가들의 위상과 존엄성을 회복시켜주었다. 더욱이 제국주의 시대가 끝나면서 영국을 위시한 서유럽 국가들의 권력이 약화되고, 냉전시대가 끝나면서 미소 두 강대국의 위상이 축소되자, 이제는 수많은 예전 위성국들과 약소국들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탈식민주의는 바로 그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시작되었으며, 세계 각국에서 강력한 호소력을 갖고 현재 예술과 문화의 각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탈식민주의가 우리에게도 중요성을 갖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영토적, 문화적 식민지 경험을 가진 우리가 탈식민주의를 통해 그 후유증을 극복하고 진정한 정체성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탈식민주의가, 그동안 별 생각없이 서구에 의해 주어진 그대로 외국문학 교육과정을 만들고 점을 갖고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탈식민주의는 자칫 단지 제도권(영문학) 안에 편입되기를, 그래서 제국(중앙)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영어로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편리한 출세 장치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탈식민주의의 또하나의 문제점은, 서구의 정전들을 다시 해석하고 패러디하는 작업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탈식민주의의 주요 전략중 하나는 제국의 정전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해서 기존의 해석을 전복시키고 패러디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작업은 재미있고도 중요한 전략이지만, 언제까지나 그러한 해체와 전복 작업만을 계속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탈식민주의에 대한 최근 국내의 비판은, 그것이 제삼세계의 사조가 아니라, 사실은 일세계 내에서 다문화주의로 포장해 국제시장에 내어놓은 또하나의 문화상품이라는 지적이다. 즉 탈식민주의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처럼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상품이며, 다양한 소비자의 구미와 요구에 맞추어 만든 국면전환용 판촉상품이라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세기말에 등장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탈식민주의의 가능성과 전망에 대해 다각도로 논의하고 또 점검해, 다가오는 시대의 세계조류와 인식의 변화에 대처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실 한국이야말로 35년동안의 식민지 경험이 있고, 더 나아가 20세기 후반에 문화적 제국주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탈식민주의에 대한 연구는, 서양문학연구에 대한 우리의 인식 뿐만 아니라, 우리의 외국문학 교과과정과 교육까지도 다시 재점검해보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며, 그것은 결국 우리 민족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2. 문화적 제국주의와 텍스트제국의 지배는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이루어졌지만, 동시에 문화적으로도 이루어졌고, 거기에 가장 충실하게 복무한 것이 바로 문학작품을 비롯한 각종 문헌들과 텍스트들이었다. 그와같은 문화적 제국주의는 주로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식민지에 대한 문헌들을 연구해 필요한 정보와 지인데, 그의 번역본은 오늘날까지 가장 권위있는 「아라비안 나이트」로 알려져있으며, 그에게 불후의 명성과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갈랑에 의해 처음으로 「천일야화 Book of the Thousand Nights and a Night」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아랍 학자들은 그동안 「천일야화」를 아랍의 정통 고전문학에서 제외시키고 야담 정도로 무시해왔지만, 이 책은 콜릿지, 드 퀸시, 스탕달, 테니슨, 포우 같은 서구작가들을 감명시켰으며, 많은 서구 지성들을 매료시켰다.그런 의미에서 버튼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알려진 T.E. 로렌스만큼이나 아라비아 문화에 정통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버튼이나 로렌스가 영국과 유럽에 아라비아 문화를 알리는데 공헌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들이 나름대로 서구 제국주의의 형성에 일익을 담당하고 공헌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고고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된다. 서구의 고고학은 물론 그 자체로 상당한 수준에 이른 학문분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것이 발굴과 연구라는 미명하에 식민지의 유물을 훼손하고 찬탈함으로써 서구 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해 봉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3. 제국주의 시대의 문학텍스트들또다른 형태의 문화적 제국주의는, 자국의 문화 텍스트를 통해 제국의 우월성과 식민지의 열등성을 주입시키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도 제국인들은 두가지 방법을 사용했는데, 첫째는 식민지에 세운 교육기관을 통한 세뇌와 이데올로기의 주입이었다. 식민지 관리들과 제국인 교사들은 교과과정을 임의로 조정하여 식민지의 학생들에게 제국의 문학을 먼저 가르치고, 그것들의 위대성을 강조했다. 제국의 문학은 언제나 모든 것의 중심부에 있었고, 교양과 지성의 척도가 되었다. 자국의 문학보다는 제국의 문학에 먼저 접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동경과 선망을 갖도록 유도된 식민지인들이 주변부로 밀려난 자국 문학에 대해 열등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둘나 수많은 원주민들이 학살당했을 때, 카알라일이나 러스킨이나 존 스튜어트 밀이나 아놀드 같은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들과 사상가들은 원주민들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이 다만 질서회복을 위한 폭동진압만을 주장했다. 또 1764년부터 1771년 사이에 영국이 아프리카로부터 바바도스 Barbados에 들여온 35,397명의 노예들 중 열약한 노동 환경으로 인해 무려 31,897명이 죽었을 때에도, 빅토리아시대 영국작가들과 사상가들은 영국의 비인도적인 노예매매와 노예제도를 비판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심지어는 영국내의 착취받는 계층을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강도 높은 사회비판을 가했던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까지도, 영국의 해외 식민지 착취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침묵으로 일관했다. 뿐만아니라,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1860-1) 같은 소설에서 디킨스는 대영제국과 식민지와의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핍은 어렸을 때 에이블 맥위치라는 죄수를 도와주는데, 오스트레일리아로 추방된 맥위치는 나중에 핍에게 막대한 돈을 보내주어 그 은혜를 갚는다. 핍은 그 돈으로 교육을 받고 성장한다. 그 돈을 전달해주는 변호사가 그 사실을 비밀에 붙였기 때문에, 핍은 그 돈을 보내주는 후원자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당시에는 한번 오스트레일리아로 추방당하면 다시는 영국에 돌아올 수 없었지만, 맥위치는 불법적으로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범법자의 돈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핍은 처음에는 화를 내고 맥위치를 박대한다. 그러나 작품의 마지막에 핍은 맥위치와 화해하고 현실을 받아들인다. 맥위치는 영국인 죄수들을 추방했던 장소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문명의 중심인 런던으로 법을 어기고 돌아왔지만, 핍은 중병에 걸린 맥위치를 자신의 대리 부친으로 받아들인다.오스트레일리아는 18세기에 쿡 선장이 발견했으며, 도저히 구제불가능한 죄수들을 추방했던 영국의 교화 식민지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디킨스는 맥위치에게 오스트레일리아로까지에서는 제인 Jane이 리버스 Rivers목사 자매를 만나 그들과 생활하게 되는데, 리버스 목사는 그녀에게 구혼하며 함께 인도로 가서 선교사업에 헌신하자고 권유한다. 이 소설에서도 인도는 유럽의 종교와 문화를 전파해 문명화시키고 교화시켜야 되는 대상으로 제시되고 있다.그러한 편견은 탐정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코난 도일 Sir Arthur Conan Doyle의 추리소설들에서도 발견된다. 예컨대 도일의 이 추리소설에서 범인들이 살인에 사용하는 도구인 단검이나 독약 또는 독사 같은 것들은 거의 다 인도나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것들이며, 범인들 역시 식민지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이 많다. 영국은 문명의 중심이며, 사악하고 나쁜 것은 모두 멀리 떨어진 야만적인 지역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제국주의적 생각은 브람 스토커 Brom Stocker의 『드라큘라 Dracula』(1897)에서도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악의 화신 드라큘라는 문명의 중심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어둡고 음산한 트렌실베니아(동유럽으로서 지금은 러시아의 일부가 되었음)지방 출신으로 제시되어 있다. 사건의 발단은, 드라큘라가 런던에 집을 사면서--즉 머나먼 곳의 무질서하고 야만적인 힘이 이성과 문명의 중심인 대영제국의 수도에 침입하면서--시작되고 있다. 무질서와 야만의 그러한 파괴적 힘에 맞서 런던을 수호하는 것은 적절하게도 이성과 문명의 상징인 에이브러햄 반 헬싱 박사와 그의 추종자들이다.영국 제국주의의 상상력을 지지했던 키플링 Rudyard Kipling의 소설 『킴 Kim』 역시 교묘하게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인정하고 있는 작품이다. 백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소년 킴이 제국의 관리인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에서 광활한 식민지는 오직 제국의 관리를 필요로 하는 스스로의 역사가 없는 미개한 지역으로만 제시된다. 그럼으로써 『킴 Kim』은 인도의 현실이 무제한으로 영국의 지배를 필요로 하고있다는 제국주의자들의 고정관념을 보여주고 있다.물론 그 보다 더 단순한 형태의 제국주의적 소설들다.
{Marxism - 98 이두영Marxism(마르크스주의)사실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원천은 다양하고 불평등한 재산의 분배에 있어왔다... 가진 자들과 재산이 없는 자들은 일찍이 사회에서 구분되는 이익을 형성해왔다. - 제임스 메디슨, 연방주의자 # 10* 교재의 주요 단어 소개(교재는 Literary Criticism -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Practice Second Edition 참고)- dialectical materialism : 변증법적 유물론- base : 기저- superstructure : 상부구조- bourgeoisie : 중산(시민) 계급- proletariat : 무산 계급- ideology : 관념학(론), 이데올로기- reflectionism : 반영론- vulgar Marxism : 저속한 마르크스주의- Weltanschauung : 세계관, 인생관- the epic theater : 서사 연극- hegemony : 헤게모니, 패권, 주도권- production theory : 생산 이론- interpellation : 질문, 설명 요구- political unconscious : 정치적 무의식- dialectical criticism : 변증법적 비평. Introduction(소개)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공산주의가 정치적으로 좌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 문학 이론은 여전히 상당한 학문적, 비평적 지지를 받고 있다. 그것이 권위와 고정된 문학 규준이나 전통을 위한 이론적 근거를 의문시하기 때문에 문학도들에게 호소력을 지닌다. 이 문학 이론은 문학을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과정에 연관시키고 문학의 해석에서 순수한 형식주의적 강조를 거부한다. 대부분의 다른 비평 방법은 유력한 중산층 사회의 이익을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비평가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것처럼 보인다. 대신 마르크스주의는 문학을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세력의 넓은 맥락 안에에는 관리사회(管理社會)의 문화라든가 지배적인 실증주의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고, 60년대의 국제적인 학생소요 때에는 마르쿠제를 비롯하여 신좌익적(新左翼的)인 현대사회비판론(現代社會批判論)으로 일약 각광을 받았다.아도르노의 《부정적 변증법》(66),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41), 노이만의 《비히모스》(42), 마르쿠제의 《1차원적 인간》(64), 하버마스의 《이론과 실천》(63) 《인식과 관심》(68) 등은 이들 연구성과의 일부이다.. Antonio Gramsci(안토니오 그람시)-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는 레닌을 이어 헤게모니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람시는 '진지전(陣地戰)'과 '기동전(起動戰)'을 구분한다. 기동전은 사회의 구조가 흔들리고 급박한 혁명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때 필요하다. 그람시는 1917년 3월부터 1921년 3월(러시아 내전의 종식)까지는 기동적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람시의 당대 유럽에 필요한 것은 진지전이다.(이 점에서 그는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대상은 파시즘이다. 레닌이 제국주의 시대에 반제국주의를 위해 투쟁했다면, 그람시는 파시즘 시대에 반파시즘을 위해 투쟁했다고 할 수 있다.- 1929년의 공황이 자본주의를 패망시키지 못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이미 성숙했으며, 따라서 폭격을 해도 별 타격을 받지 않는 '참호(塹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은 단지 전쟁이나 혁명 또는 기타 방법에 의해 국가 권력을 쟁취하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 사회 자체를 정복해야 하는 것이다.(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시민들이 과연 사회주의적 '인간들'이었나를 상기할 것) 특히 그람시는 자본주의 국가의 손발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의 변화에 큰 관심을 쏟았다. 그리고 시민 사회는 민족적 특징을 띠기 때문에, 헤게모니는 민족적인 특수한 토양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요청한다.- 그람시에게 혁명이란 정치적-경제적-군사적인 것 못지 않게 도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2리얼리즘의 문제문학이 일정한 계급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동시에 그것이 계급투쟁에서 피지배계급의 편에 서서 사회적 모순을 제거하고 혁명을 앞당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이 주장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이해되어 정작 그들이 바라고 원했던 변증법적인 문학·예술의 기능과 소임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르크스주의 비평이론을 고찰할 때, 그 중요한 통로로서 리얼리즘 이론을 함께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1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예술 창조는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현실을 지각하고 이해하는 방법들 중 하나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마르크스주의 비평이 인식론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2 리얼리즘 이란 문학이 현실을 반영할 때, 그저 막연하고 피상적인 현실의 단순한 모사나 복제에 그치지 않고, 한 사회가 특정한 시기에 직면하고 있는 고유한 모순과 현실 운동의 본질적인 연관을 얼마나 정확하고 적절하게 그려 내는가에 관한 예술적 방법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이 정의를 통해 정리해 낼 수 있는 충실한 현실 재현의 조건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세부적 진실이며, 둘째는 전형적 상황, 그리고 셋째는 전형적 인물이다.3리얼리즘 이론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전형성 개념인데 게오르그 루카치는 전형성의 창조란 예술가가 어떤 구체적인 인간들의 운명 속에 그들이 속해 있는 특정 시대와 국가와 계급을 가장 잘 표출하는 어떤 역사적 상황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을 구현시기는 것 이라고 하였다.4엥겔스는 이념적으로 훨씬 진보적이었던 에밀 졸라보다도 발자크의 소설에서 혁명 전후의 프랑스 사회가 훨씬 더 정확하고 풍부하게 그려져 있음을 지적하고 발자크를 리얼리즘 작가의 훌륭한 범례로 높이 평가한다.5엥겔스는 19세기 후반 당시에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그러한 정치적 이념을 소설 속에 담아냈던 이른바 독일의 경향소설 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문학은 작가의 이념을 장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A spectre is haunting Europe)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첩보경찰 등 구유럽의 모든 열강은 이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다.집권당으로부터 공산당이라는 비난을 받아보지 않은 반대당이 있는가? 또한 그 공산주의라는 비난의 낙인을 오히려 자기의 반동적 적들에게, 뿐만 아니라 보다 진보적인 다른 반대당에게 되돌려지지 않는 반대당이 있는가?이 사실로부터 두 가지 점이 도출된다.1. 모든 유럽의 열강은 이미 공산주의를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했다.2. 지금은 공산주의자들이 당 자체의 선언을 통하여 전세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견해, 목적, 경향성을 발표하고 공산주의의 유령이라는 그 옛날이야기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알맞는 시기이다.이러한 목적을 위해 여러 국적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은 런던에 모여 다음과 같은 선언을 초안하고 이를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플랑드르어, 덴마크어로 출판하게 된 것이다.I.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장인과 직인, 한 마디로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상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숨겨진, 때로는 공공연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각각의 싸움은 그때마다 대대적인 사회의 혁명적 재편 또는 경쟁하는 계급들의 공동파멸로 끝났다.이전의 역사적 시대에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사회가 다양한 질서, 잡다한 사회적 서열의 등급으로 복잡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로마에는 귀족, 기사, 평민, 노예가 있었고, 중세에는 봉건영주, 가신(家臣), 길드장인, 직인, 도제, 농노가 있었다. 이들 계급의 거의 대부분은 또 부수적인 등급들로 나누어져 있었다.봉건사회의 폐허로부터 싹튼 현대 부르주아사회는 계급적대를 없애지 못했다. 단지 낡은 것들 대신 새로운 계급, 새로운 억압의 조건, 새로운 투쟁형태들을 만들어냈을 뿐이다.하지만 우력으로 회복하고자 한다.이 단계에서 노동자는 아직 전국에 흩어져 있고 자기들 간의 상호경쟁으로 분열되어 있는 지리멸렬한 대중에 머물러 있다. 설사 그들이 모여 보다 긴밀한 결합체를 이룬다 해도 그것은 아직 그들 자신이 연합한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연합한 결과이다. 부르주아계급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프롤레타리아트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게다가 아직 당분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의 적, 즉 절대군주제의 잔재인 지주, 비산업부르주아, 쁘띠부르주아지와 싸우는 것이다. 이리하여 전체 역사적 운동은 부르주아적 수중에 집중된다. 그렇게 얻어진 승리는 모두 부르주아지를 위한 승리인 것이다. 그러나 산업이 발전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숫자가 증가할 뿐 아니라 보다 큰 무리로 집중되어 힘이 더욱 성장하며, 그 힘을 더욱 자각하게 된다. 기계가 노동의 모든 차이들을 소멸시키고 거의 모든 곳에서 임금을 동일하게 낮은 수준으로 감축시키는 것과 비례하여 프롤레타리아트 대열 내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생활조건은 더욱 더 평준화된다. 부르주아들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그 결과 상업공황이 일어나면서 노동자의 임금은 갈수록 동요하게 된다. 기계가 급속히 발전하고 끊임없이 개선되면서 노동자의 생활은 갈수록 불안정해진다. 따라서 개별 근로자와 개별 부르주아 간의 충돌은 갈수록 두 계급간의 충돌이라는 성격을 띠게 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에 반대하는 결사체(노동조합)를 결성하기 시작하며, 임금율을 높이기 위해 한데 뭉치고, 때때로 일어날 충돌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단체를 창건한다. 여기저기에서 싸움은 폭동으로 터지게 된다.때때로 노동자는 승리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이다. 싸움의 실제적 결실은 직접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팽창하는 노동자들의 단결에 있다 . 현대산업이 만들어낸 전달 수단으로 인해 여러 지역의 노동자들이 서로 접촉할 수 있게 됨으로써 단결은
{『자기만의 방』 - 모더니즘을 통한 페미니즘 : '98 이두영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 모더니즘을 통한 페미니즘Ⅰ - 서론 : 버지니아 울프와 모더니즘 그리고 페미니즘80년대 중반 해체주의가 도입되기 전까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연구는 그녀의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을 별개의 것으로 보는 이분법적 경향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것은 울프 문학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며, 문학 비평에 관한 울프 자신의 접근방식과도 상반된다. 울프는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을 통해 여성의 본질과 소설의 본질 을 탐구하고 여성의 본질을 드러내는 소설을 쓰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페미니즘과 모더니즘을 하나로 융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가부장 사회 속의 여성 작가가 겪는 심리적 억압과 표현의 부자유를 쟁점화한다. 그러나 당대 남성 작가나 독자들이 잘 모르는 영역인 여성들의 체험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기법을 실험한다. 『자기만의 방』의 의도는 한 마디로, 소설 양식의 혁명적 변화를 통해 여성적 형식을 세워나가는 것이다.그 의도는 이미 『자기만의 방』보다 앞서 나온 에세이 「베네트 씨와 브라운 부인」( Mr Bennett and Mrs Brown", 1924)에서 강하게 표명되었다. 여기서 울프는 앞 시대 에드워드조 작가들의 리얼리즘 소설 양식은 가부장적 남성 주도의 문화적 산물이며 지금까지의 소설은 남성들의 이야기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실재(reality)가 외면 세계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공적이고 외부적인 삶을 허락받지 못한 채 사적이고 익명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여성을 없는 것 으로 여긴 것이다.반면에 인간의 의식 안으로 들어가는 모더니즘적 방식은, 이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인 여성의 세계를 부재 가 아닌 엄연한 존재 로 부각시키는 페미니즘적 이념을 드러낼 수 있다. 물론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도 진정 중요한 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다고 믿고 여러 실험적 서술 문이다. 여성이 상징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만큼, 기호계와 여성의 관계는 특별하다. 이처럼 여성은 기호계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까닭에, 글을 통해 그 세계와의 밀착관계를 표출하는 독특한 글쓰기를 할 수 있다.Ⅱ - 본론 : 『자기만의 방』을 통해서 본 페미니즘이 레포트의 논지 역시 여기서 출발한다. 울프는 이 에세이에서 기호계와 상징계 사이에서 위태롭게 균형잡고 있는 여성 주체를 그려내는 여성적인 방향의 글쓰기를 모색하고 있다. 『자기만의 방』은 자기만의 방 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의 공간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할 것인가를 탐구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1928년 10월, 뉴넘(Newnham)과 거튼(Girton)에서 가졌던 두 번의 강의를 기초로 한 『자기만의 방』은,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일차적인 논점 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울프는 이 논점을 바탕으로 여성 작가들을 억압해 온 여러 사회적, 경제적 요인들을 짚어 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의 본질과 소설의 본질 같은 보다 중요한 문제들과 씨름한다.울프는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에세이의 도입부분에서, 여성과 소설이라는 제목은 여성과 여성에 관한 정의... 여성과 여성이 쓴 소설... 여성과 여성에 대해 쓴 소설, 혹은 이 세 가지 모두가 서로 섞여있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고 말함으로써, 주제를 둘러싼 담론의 골자를 제시한다. 울프는 이 네 가지 접근 방법을 통해서 여성과 소설에 대한 이전의 생각들에 반기를 들고, 수세기에 걸쳐 여성에 관해 또는 여성에 의해 쓰여진 소설과 담론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여성상 및 소설 형식의 가능성을 모색한다.이 에세이의 첫 세 장은 남성의 담론이나 남성이 쓴 소설이 지금까지 누려온 역사적 특권을 이야기한다. 제1장에서는 가상의 남자 대학교 옥스브리지(Oxbridge)와 여자대학 퍼넘(Fernham) 사이의 현격한 차이를 지적한다. 제2장에서는 대영 박물관에 넘쳐나는 남성이 쓴 비평 및 소언어 이전 단계의 비조직적 의미화 과정이며 아버지의 법 이 지배하는 상징계 이전에 존재하는 어머니 중심의 기호계 이다. 크리스테바는 이 기호계의 코라적 파열이 상징 체계를 전복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울프도 여기서 메리 베튼의 내면 세계를 그리는 의식의 흐름 서술을 통해 언어에 틈새와 빈 공간을 만들어 어떤 공간을 창출하고 그 곳에서 여성의 마음을 묘사할 새 언어의 가능성을 묘사한다. 이것이 울프가 언어를 해체시키는 방식이다.그런데 크리스테바는 「권력과 거부 사이」에서 울프의 의식의 흐름 서술이 지닌 특성을 논할 때, 버지니아 울프는 정지된 상태와 민감한 감각들, 그 중에서도 특히 초록빛이나 파랑색 같은 색채의 묘사를 잘한다. 하지만 울프는 조이스처럼 언어를 분해하지는 않는다 고 말함으로써 언어를 해체하는 울프의 기법에 점수를 주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울프는 정지된 상태를 통해 내면의 의식과 상징계의 언어가 서로 갈등하며 부딪히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메리 베튼의 내면 속에서 갑자기 응집되어 의식의 표면으로 드러난 상념들은 글이나 말로 발화될 수가 없다. 사색의 과정을 통해 여자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한다는 보잘것 없는 생각에 도달하지만, 울프는 그 과정을 상징적 언어체계로는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음을 인식한다. 이처럼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없게 되자 여성과 소설에 대한 여러 상념들이 대단한 파도와 격량을 일으키 게 만든다.이렇게 울프는 코라적인 의식의 흐름이 보여주는 내면의 관점으로 복귀함으로써 상징적 담론이 지닌 한계를 지적한다. 이것은 크리스테바가 「시적 언어의 혁명」( Revolution in Poetic Language")에서 주장한 기호계에 의한 상징계 언어의 해체 개념과 일맥 상통한다. 파열과 리듬으로서의 코라는 증명 가능한 모든 개연성의 법칙에 앞서고 공간성과 시간성을 초월하며 , 사실상 우리의 모든 담론은 그것에 기반하는 동시에 그것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코라와 함께, 또한 코라에 반하여 진행 되는 것이다. 주장하는 것은 그의 관심이 여성의 열등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성에 있기 때문 임을 간파한다.이렇게 남성들이 담론 속에 자기들의 우월성을 심어 놓으려 하는 의도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울프의 면모는, 프랑스 페미니스트 시몬 보봐르가 『제2의 성』에서 표현한 바 있는 기본 명제를 앞서 보여 준다.울프는 남성은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여성은 비본질적인 타자로 규정짓는 가부장제의 지배를 해체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울프는 여성을 열등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상황들을 분석하고 남성들의 글에 내재된 억압성을 초월할 방법을 찾아 나간다. 이 시점에서 울프는 지금 우리가 해체주의적 글쓰기라고 부르는 방식, 즉 담론에 이중성을 끌어들여 바로 그 담론이 지닌 이중성을 폭로하는 글쓰기를 실천하는 것 같다.가부장제의 지배가 해체되기 위해서는 남성의 우월성 역시 해체되어야 한다. 울프는 사회 제도 자체가 남성 우월을 지지해왔음을 지적하면서 여성은 지금까지 수세기에 걸쳐 남성을 본래의 두 배 크기로 비춰주는 마술같은 위력을 지닌 거울 역할을 해왔다 고 말한다. 그 거울은 남성의 정체성은 반영하지만 여성의 정체성은 보여주지 않는다. 가부장적 사회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남성을 위한 거울로 존재할 때만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사회에서 여성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으로, 남성 행동의 흔적과 표시와 망상을 반영하는 장소가 된다. 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남성의 거울 역할로 전락한다. 그러나 울프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여성을 주체로 상정시킴으로써, 여성을 거울 역할에 자리매기는 가치관에 저항한다.메리 베튼이라는 인물을 이제 화자의 숙모로 등장시켜 다시 소개하는 울프는, 화자가 숙모로부터 평생 동안 연간 500파운드에 달하는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 준다. 이제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진 화자는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를 놓고 자기만의 의견을 써갈 채비를 갖춘다. 이렇게 화자가 자기 주체를 주장하게 되자 거울 속의 형상은 조그맣게 줄어들고 쓰기 와 관련된 성차의 문제이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말하는 모든 주체의 내부에는 어떤 양성성이 내재해 있으며 그것은 모든 지시 기호의 원천인 동시에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물에 의미를 부여, 증대, 파괴시키고 결국에는 또 다시 복원시키는 힘이다 . 이처럼 의미의 근원을 양성성에서 찾는 크리스테바의 말은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가 논한 양성적 정신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울프에게 가장 바람직한 글쓰기는 양성적인 것이다. 그녀는 의식의 흐름 기법 을 이용한 내면 서술을 통해 인물의 정신 속에 깃든 여성적인 면과 남성적인 면 모두에 주목한다. 미노우 핑크니(Minow-Pinkney)의 말처럼, 울프의 양성성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하나로 통합된 단일한 상태가 아니라 이질성으로 복합된 전체성이다. 울프에게 전적으로 순수하게 남성 또는 여성이 된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 이다. 그같은 편파적 의식에서 나온 글은 더 이상 의미의 창출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양성적 글쓰기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이점보다는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연결 고리들을 더 강조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4장에서 울프는 17세기 동시대의 두 여성 작가, 윈칠시 부인(Winchilsea)과 아프라 벤(Aphra Behn)에서 시작해 19세기의 작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과 브론테 자매들(Bront s)로 이어지는 여성 작가의 전통을 도출해낸다. 윈칠시 부인이 쓴 시를 인용하면서, 울프는 그녀의 시를 펼치면 온통 여성의 지위에 대한 분노의 외침만이 들려올 뿐 이라고 말한다. 윈칠시 부인의 시는 그녀가 예술의 창작과정을 거치면서 개인적인 적대 감정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울프의 비판처럼, 윈칠시 부인의 정신은 결코 모든 장애를 뛰어 넘고 찬란하게 작열할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울프는 이같은 적대감을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 )에게서도 보았다. 울프는 『제인 에어』(Jane Eyre)를 읽으면서 이렇게 평가한다 : "그녀는 조용히 마음.
{Tess of the D'Urbervilles에 나타난 페미니즘 - '98 이두영Tess of the D'Urbervilles에 나타난 페미니즘Ⅰ - 서론 : Hardy와 작품 TessThomas Hardy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상과 과학의 변화 그리고 산업화라는 사회 변혁기 과정에서 인간이 자연과 사회 속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애정과 연민의 눈으로 그려낸 작가다. 근대정신과 전통의식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그 당시의 현실을 직시했던 Hardy는 단순 소박한 농촌을 배경으로 인생의 진실을 탐구하면서 인간의 행복에 장애가 되는 부조리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이 때문에 그는 고뇌와 실망으로 가득찬 인생과 영국 사회의 모순된 제도에 공감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암담한 어둠 속에서 구제의 방법을 찾아보려 애썼던 인도주의 작가였다. 특히 그는 그 시대의 여러 사회 문제들 가운데 성과 결혼에 대한 개념 및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으며 여성 참정권, 이혼법 개정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따라서 그는 여성의 성적 경제적 억압, 여성이 결혼한 후에 받는 부당한 대우, 남녀의 평등한 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자유로운 결혼 등을 소설의 주제로 많이 다루었고, 이 때문에 그의 여성에 대한 진보적인 견해는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소설에서 당시 남성작가로서는 드물게 남성중심의 성 이데올로기를 과감히 비판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하나의 주체적 인격체로 간주하지 않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자아를 성취할 기회를 갖지 못한 여성이 얼마나 좌절하고 고통받는가를 잘 묘사하였다. 따라서 D. H. Lawrence를 비롯한 다수의 비평가들은 Hardy가 여성인물들을 그의 소설에서 가장 생동감을 주는 중심인물로 부상시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Hardy의 대표작인 Tess of the D'Urbervilles가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남자에게 농락 당하고 버림받은 시골 처녀의 이야기를 기존의 이야기 패턴을 따르지 않고 비극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독자들의 을 살펴보고자 한다.Ⅱ - 본론 : Tess의 줄거리와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분석Tess of the D'Urbervilles의 플롯은 단순한 사랑의 삼각관계로 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의 시선은 자기의 과거의 죄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여성과 그런 죄를 저지른 여성에게 요구되는 이중적인 도덕규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Hardy는 Tess에게 강력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면서 그녀의 입장을 독자와 동일시하여 사회의 도덕과 그 도덕의 손아귀에 있는 그녀의 운명에 질문을 던진다.Tess의 집안은 농촌의 몰락해 가는 중간계층으로서 종신 임대권(lifeholder)을 가진 아버지 John Durbeyfield가 Prince라는 말로 생활을 꾸려 가는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 놓여있다. 더구나 아버지는 게으른 술주정꾼으로 가정을 부양할 수 없는 처지이다. 이러한 집안의 장녀로 집안을 꾸려 가는 Tess는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강해서 어머니의 집안 일을 거들고 많은 동생들을 돌본다. 화자는 의무교육을 받고 표준지식을 갖춘 Tess와 부모 사이의 세대 차가 이 백 년이나 된다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가정에서 생활하는 그녀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대변해 주고 있다. 어느 날 John Durbeyfield는 자신이 영국 명문 귀족 D'Urbervilles가의 후손이라는 말을 목사로부터 듣고 허망한 꿈에 사로잡힌다.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가 술에 취해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하자 Tess는 아버지 대신 시장으로 벌통을 운반한다. 그리고 가는 도중에 Tess는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니가 Trantridge에 있는 친척 남자와 자신을 결혼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잠시 졸던 Tess는 불행하게도 사고로 내고 집안의 생계수단인 말 Prince를 잃게 된다. 그녀의 부모는 계속 D'Urbervilles 가문에 대한 환상에 빠져 돈 많은 친척집으로 Tess를 보낼 생각을 한다. 이로 인해 순박한 Tess는 가기 싫지만 가족의 압력과 말을 죽인 죄책감 때문에 부유한 가짜 친척 Traess는 Alec이 베푸는 친절이나 열정에 넘어갔었던 점은 인정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에게 자신이 성적 소유대상 이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 그를 떠나기로 결심한다는 사실이다. 이 당시의 도덕관념에서 보면 Tess는 당연히 첫 남자인 Alec과 결혼해야 하는 것이 관습일 것이다. 그러나 Tess는 어머니가 행동을 조심하지 않은 사실을 질책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Alec과의 결혼을 생각해 보는 것에 대해 자신의 감정은 결코 그렇게 될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Alec에게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그의 꼭두각시가 아니라고 소리친다. 그녀는 사회적인 비난을 면하기 위해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매달려 신분상승을 이루거나 경제적으로 의존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Alec을 마음에 두었던 일이 없었고 지금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주장한다.미혼모가 된 그녀가 임신으로 인하여 원치 않는 형식적인 결혼을 하기보다 Alec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위선적인 삶을 거부하고 그녀 스스로 다가오는 새로운 이상을 추구함을 알 수 있다. Tess는 Alec과의 사건 이후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로부터 타락한 여성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어떤 고통도 참고 견디겠다고 다짐한 그녀는 세상의 이목과 편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입장을 객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어 타락한 여성의 슬픔이나 죄의식을 보여 주지 않는다. 자연과의 교감에서 절대적 자유를 느끼는 그녀는 여자의 순결이 자신의 삶을 대신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그녀가 자신에 대한 성찰과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슬픔을 딛고 누구의 도움이나 동정도 없이 자기 삶을 스스로 창출하려는 그녀의 노력과 의지는 미혼모로서 사생아를 낳았다고 비난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맞서는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강인한 생활력을 지닌 Tess는 정신적인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들판에 일하러 나와 주변의 시선을 무릅쓰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열심히 에서 Angel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정화함으로써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 부분에서의 Tess가 보여주는 여성적인 매력은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육체적인 모습으로 긍정적이고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신사의 신분을 버리고 농부가 되기로 결심한 Angel은 낙농장 생활을 통해 자연이나 인간에 대해 새로이 눈을 뜨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목사의 아들인 그는 목사로 만들려는 부모들의 희망을 저버리고 대학교육도 포기하면서 지적 자유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농업을 배우려 한다.Angel과 Tess의 관계는 Tess에 대한 Angel의 뜨거운 열정과 천진무구한 Tess의 Angel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사랑으로 인해 거의 낙원의 아담과 이브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Angel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자신의 존재의 숨결이자 삶 그 자체 가 되며 지난 과거의 슬픔과 우울함, 수치심 등을 잊도록 해 준다. Tess는 그를 지성인이며 성자로 간주하고 남성미의 표본으로 생각한다. 이들의 사랑이 진전되어 가는 과정에서 Tess는 항상 Angel이 자신이 속한 계층 밖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이는 Angel의 Tess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Tess의 감각적인 육체적 매력에서 생기와 온기를 발견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적인 사랑은 현실을 벗어난 듯한 경향을 보인다. 그는 Tess를 있는 그대로의 농촌처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환상적인 사랑을 꿈꾸면서 신비로운 순수함을 지닌 이상화된 관념으로만 파악하려 한다. 그리하여 Angel은 그녀를 영적인 결정체로 보아 그리스 여신과 같은 환상적인 이름으로 그녀를 부르기까지 한다.그러나 Tess는 Angel이 자신을 한 개인으로서 또 낙농장의 농사꾼 처녀로서 인정해 주길 바란다. 때문에 Tess가 자기의 이름을 불러주길 요구하는 것은 주체성에 대한 주장이기도 하다. 한편 Angel은 자기 아내가 순진한 시골 처녀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D'Urbervilles이라는 귀족의식하지 못한다.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만 반응하는 그가 사랑했던 것은 그녀의 모습의 다른 여자였던 것이다. 이것은 신사 Angel이 빅토리아조의 왜곡된 성윤리와 위선을 대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던 당대 중산층 남성들은 여성을 순결한 도덕적 존재로만 인식하고 복종적이며 순결하며 여성적 미덕을 갖춘 집안의 천사(Angel in the House)와 같은 여성을 원했다. 따라서 여성들은 내조자로서 필요한 도덕성과 순결이 엄격하게 강요되었다. 때문에 남성의 과거는 용서되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결정적인 오점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성적특권에 기반을 둔 남성중심 사회의 불합리한 이중기준과 여성을 속박하는 순결 이데올로기에 의해 내면적인 진실과 가치에 관계없이 육체적으로 순결하지 못한 Tess는 용인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Tess에 대한 사랑 이면에 차갑고 허물 수 없는 완고함을 가진 Angel은 여전히 관습과 인습의 노예로 이상과 현실과의 거리를 극복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Tess를 가엾게 여기면서도 도저히 그녀를 용인할 수 없는 Angel은 정신적 고통으로 마치 몽유병 환자와 같은 행동을 하기까지 한다. Angel이 Tess를 석관에 눕히는 행동은 순결을 상실한 그녀의 실재를 부인하는 행동이다. 마침내 Angel은 서둘러 브라질로 떠나고 혼자가 된 그녀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닥친다. 그러나 Angel을 절대적이고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체험을 한 Tess는 Angel과의 결별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성찰하며 더욱 주체적인 인간으로 발전해 나간다. 그리하여 그녀는 사냥꾼의 총을 맞고 고통으로 몸을 비트는 꿩을 보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목을 비틀어 죽이기까지 한다. 이는 고통스러운 고문에서 꿩들을 해방시키는 자비의 행위이며 자기운명에 대한 통한의 표출이다. 그래서 그녀는 죽어가는 꿩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망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피를 흘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에 대한 연.
Women in Love는 로렌스(Lawrence)가 자신의 일생에서 아내 프리다나 그 밖의 여인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던 <현실결핍(lack)>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남녀가 각기의 자아를 상실하지 않고서 “마치 별들이 개체를 잃지 않고 형평을 유지”(as the stars blance each other)하면서 원초적인 생명의 흐름에 일치 시킬수 있을까? 하는 자신의 욕망을 창작물인 소설을 통해서 실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로렌스의 이러한 창작활동의 주요 원인은 Sons and Lovers(1912)에서 잘 나타나고 있듯이 그의 어린시절의 성장과정에서 모친으로부터 생긴 <억압의 산물(repressed-production)>이라고 생각 하는바 이를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프로이드(Freud)가 작품이나 꿈은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부족하게 느꼈던 <현실결핍(lack)>충족시키기 위해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왜곡시킨 창조물(distorted production)이라는 <꿈의 해석>적 견해에 입각하여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분석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고에서는 인물들의 <현실결핍>에 대한 소망충족의 과정과 그 <근원(the 'Origin')>을 추출하는데 있어서 과거의 신화에 바탕을 둔 프로이드의 <환원 방법(reduction method)>을 적용하여 제Ⅱ에서는 인물들의 개별적 성격을 분석하고, 제Ⅲ에서는 인물들의 유기적인 <심리변형(reaction displacement)>을 고찰하고, 제Ⅳ에서는 로렌스의 <자아완성(self-fulfillment)추구와 프로이드의 <소망충족>에 대한 <the 'Origin'>유추가 일맥상통함을 이해하고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의도적인 왜곡이 무엇인지 알아내어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