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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소설, 독후감, 평론]김동리 등신불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 독후감소설 '등신불'은 1961. 11. 와 1967년에 김동리 대표작선집1에 수록된 김동리의 작품이다.우리는 살아가며 온갖 역경과 난관에 봉착될 때가 많다. 그 때마다 '날개가 그냥 꺾이느냐, 아니면 다친 날개를 추슬러 다시 날갯짓을 할 것인가.'에 갈등하는 것이 인간이다.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에 십대애행(十代碍行)중에 處世不求無難 世無難則驕奢必起 是故大聖化人 以患難爲解脫란 말씀이 있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어려움이 없으면 반드시 교만함과 사치스러움이 일어난다. 그래서 옛 성인이 이르기를, 어려움으로써 해탈을 삼으라.'라는 뜻이다.인간에게 난관은 언제 올지 모르며, 원하지 않음에도 찾아온다. 주인공인 '나'는 일제 강점기때 태평양 전쟁에 학도병으로 징병되어 중국의 남경까지 끌려간다. 이것이 주인공의 첫째 어려움이다. 먼저 '난관'이라는 모티브로 이 소설을 살펴본다면 앞서 얘기한 '어려움으로써 해탈을 얻는다.'는 보왕삼매론에 근접하리라 생각된다. 주인공 '나'는 일본군에 소속된 한국인으로써 곧 인도나 인도네시아로 파병을 가게 되어 개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사람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 목숨을 부지하고자 진기수라는 불교 학자를 찾게 된다.주인공인 '나'를 불신하는 진기수 앞에서 과감히 식지를 물어뜯어 혈서를 쓴다.주인공이 쓴 혈서의 내용, 원면살생 귀의불은(願免殺生 歸依佛恩)은 '원컨대 살생을 면하게 하옵시며 부처님의 은혜 속에 귀의코자 하나이다.'란 뜻이다.불교에서 살생은 절대 금기시하고 있으며, '남을 죽일지언정 차라리 나를 죽이는 게 낫다.'라고 가르친다. 또, 식지를 물어뜯어 혈서를 쓴 주인공의 행동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굳건한 의지를 보여주고 신뢰를 갖게 만들었다.목숨만 건질 수 있다면 식지쯤이야 대수롭지 않겠는가. 이처럼 사람은 살아가며 위기에 봉착할 때 '최소의 희생'으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돌발적인 주인공의 행동에 심경 변화를 받은 진기수의 도움에 의해 양자강 북쪽에 있는 정원사라는 절로 찾아간다.절에서 주인공은 사람 크기와 같은 결가부 좌상 금불상을 접하게 되는데, 아름답고 거룩하고 존엄성 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불상의 모습과 전혀 거리가 먼 모습에 충격을 받고 만다.그 불상은 허리도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우는 것도 아닌 웃는 것도 아닌,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그러면서도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가진 모습인 것이다.희곡 '느낌, 극락 같은'이란 작품이 있다. 주인공중의 한명인 동연은 불상을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 그 속에서 부처의 마음을 찾으려 하고, 서연은 부처의 마음이 담기지 않는다면 완벽한 형태는 무의미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내면적인 면을 중시하는 서연이 만든 불상의 모습이 제 각기 다르고 어설픈 반면 동연이 만든 불상들은 사람들이 부처의 모습으로 각인하고 있는 획일화된 모습이다.등신불의 주인공 '나'가 불상의 외모에 대한 편견에 빠져 실망한 것처럼, 우리 중생들은 중생이기 때문에 편견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 열반의 경지 중에 하나이다.주인공 '나'는 등신불의 그 특이한 내력을 원혜대사로부터 전해 들으며 놀라움과 충격을 받는다.이 등신불은 옛날 만적이란 스님이 자신의 몸을 불살라 부처님께 바치면서 타다 남은 몸에 그대로 등신불로 만든 것이다. 만적은 법명이요, 속명은 기, 성은 조씨다. 어머니 장씨는 사구라는 사람에게 개가를 했는데, 사구에게 한 아들이 있어 이름을 신이라 했다.그런데 만적의 어머니가 사씨 집의 재산을 탐냄으로써 전실 자식인 식을 없애려고 하자, 만적이 이를 말리며 슬퍼하고 사식은 결국 자기 스스로 집을 나가고 만다. 만적이 이복동생을 찾기 위해 집을 나왔다가 승려가 되는데, 어느 날 문둥이가 된 사신을 만나게 된다. 착하고 어질었던 신이 자신 때문에 집을 나가게 되어 결국 문둥이가 되어버린 사실에 속세의 인연을 끊은 스님의 신분인 만적으로서도 눈물을 금할 수 없었으리라.그리하여 만적은 미뤄왔던 소신공양을 하게 된다.소신공양(燒身供養)은 부처님에게 공양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으로, 〈약왕보살 본사품〉에 약왕보살이 향유를 몸에 바르고 일월정명덕불(日月淨明德佛) 앞에서 보의(寶衣)를 걸친 뒤 신통력의 염원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 몸을 불살랐다 한다. 경전은 이를 찬양하여, '이것은 참다운 법으로써 여래를 공양하는 길이다. 나라를 다 바치고 처자로 보시하여도 이것이 제일의 보시이다.'라고 하였다.어찌 보면 소신공양은 사회적인 인식이나 표면적 혹은 사전적인 해석으로는 자기 가학, 자해행위에 불과할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소신공양은 이 세상에서의 번뇌와 업(業)을 떨쳐버리고 극락왕생할 수 있는 행위로서 그 의미는 심오하다.만적이 소신공양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이복동생에게 고통을 가져오게 된 근원적인 죄라는 인식과 그 죄의식이 가져온 번뇌로부터 자기를 구원하면서도 문둥이가 되어 버린 사신마저 구원하는 뜻이 있다. 모든 인간들이 가진 숙명적인 고통에 대한 절대자의 자비를 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그런데 만적이 소신공양하는 날 갑자기 신불 앞에 바친 돈이 쏟아지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 돈으로 타다만 몸에 금물을 입힌 것이 바로 이 등신불이었다. 굽은 등과 고개, 우는 듯 웃는 듯 기묘한 표정의 이 불상은 거룩함보다는 온갖 번뇌가 서려 있는 느낌을 준다.
    독후감/창작| 2003.10.14| 3페이지| 1,000원| 조회(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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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고려사]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 대한 견해 평가A좋아요
    1. 묘청은 누구인가?정심(淨心)이라고도 한다. 서경(西京: 平壤) 출생. 검교소감(檢校少監) 백수한(白壽翰)을 통하여 근신(近臣)들과 접촉, 도참설(圖讖說)을 이용하여 중앙정계에 진출하였다. 1127년(인종 5) 왕실 고문으로 추대되자 왕의 서경 거둥을 주청하여 실현하고, 당시의 혼란한 내외정세를 이용, 개경(開京) 출신 구신(舊臣)들의 세력을 꺾기 위하여 서경천도(遷都)를 획책하였다. 1129년 신궁을 낙성,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청하고 금나라 공략 등을 건의하였으나 김부식(金富軾) 등 사대주의자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1134년 삼중대통지 누각원사(三重大統知漏刻院事)에 오르고 왕에게 천도를 계속 주청하였으나 불가능해지자 1135년 서경에 기반을 두고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라 하여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을 조직,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반란군은 원수(元帥) 김부식에게 섬멸되고 묘청 자신은 부하 조광(趙匡)에게 피살되어 개경에 효시되었다.2. 묘청의 서경 천도설에 대해.1) 묘청 등이 왕께 아뢰기를 "서경에 궁궐을 세워 거처를 옮기시면 금나라가 폐백을 가지고 와 스스로 항복할 것이며, 36개의 나라가 다 신하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정지상 등이 왕께 아뢰기를 "대동강에 상서로운 기운이 있으니 이는 천 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청컨대 위로는 천심과, 아래로는 백성들의 바람에 따르시어 금나라를 타도하소서." 하였다. 왕이 어찌 하면 좋은가 물으니 이지저가 "금나라는 강적이니 가벼이 하지 못할 것입니다."라 하니 왕이 그만두었다. 황주첨 등이 또 칭제 건원할 것을 아뢰었으나 왕이 듣지 아니하였다. [고려사 묘청 ]2) 서경 전역(戰域)을 역대의 사가들이 다만 왕사(王師 : 김부식)가 반적(反賊)을 친 전역으로 알았을 뿐이었으나, 이는 근시안의 관찰이다. 실상은 이 전역이 낭(郎) 불(佛) 양가 대 유가(儒家)의 싸움이며, 국풍파 대 한학파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이 전역에서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이 승리하였으므로 조선의 역사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 사상, 즉 유교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거니와,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승리하였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 진취적 방면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 전역을 어찌 '일천년래 제일대사건(一千年來第一大事件)'이라 하지 아니하랴. [ 신채호 조선사 연구초 ]3.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 대한 분석.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귀족 사회 내부의 모순과 폐단이 표출되는 속에서 귀족 사회 내부의 족벌과 지역의 대립, 이념의 대립, 외교 정책의 대립, 고구려 계승 의식에 대한 대립 속에서 개경파와 서경파와의 대립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자겸의 난 이후 "개경의 지덕은 쇠하고 서경의 지덕은 왕성하므로 서경으로 천도하면 국가를 중흥시킬 수 있다."라는 풍수 지리설을 배경으로 서경에 대화궁을 건설하며 서경 천도에 나서는데, 이는 실은 중흥 공신으로 권세를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천도가 세력의 근거지를 잃는 것이었기에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개경파는 서경 천도에 반대하게 되고, 천도의 좌절 속에 묘청은 국호를 대위국, 연호를 천개로 삼아 봉기하나 김부식에 의해 1년 만에 진압당하고 만다. 이로써, 서경파는 몰락하고 분사 제도 폐지로 서경의 지위는 격하되고, 금에 대한 굴복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고려의 북진 정책은 좌절되고 만다.4. 묘청의 난에 대한 가설.만약 묘청의 난이 성공했었더라면 단채 신채호 선생의 주장대로 우리 한국사의 역사가 바뀌었을까? 물론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묘청의 주장대로 자주국이 되었을지 의문이 든다.1) 서경파가 개경파를 몰아냈을 것이다.우선 개경파를 몰아내고 과거 정종조(왕건의 子)에 왕식렴이 추구했던 서경천도를 단행했을 것이다. 우선 묘청의 난은 명분이야 '대위국'이란 국호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지만 묘청 스스로가 궁예처럼 임금을 칭하지 않고 인종 임금을 추대하였다고 한다. 이는 묘청의 난 성공이 고려의 붕괴로 이어지고 국명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패배한 개경파와 개경귀족의 불만을 피해 서경에 정착, 왕권의 안정을 꾀했을 것이다.2) 금국(金國)과 화해를 할 것이다.묘청은 당시 중국 북송을 붕괴시키고 양쯔강 이북의 중국 절반을 장악한 욱일승천하는 금국의 위세를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묘청은 송나라와 혐공하여 금국을 정벌하자고 인종에게 건의한다. 이건 단지 서경의 지지를 얻기위한 정치쇼에 불과할 뿐, 당시 송나라(북송)도 금국에 멸망당하여 거의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니 만큼 묘청의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인문/어학| 2003.10.14| 2페이지| 1,000원| 조회(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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