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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busimess사례] 반 MS진영의 수장들 - 래리 엘리슨과 스캇 맥닐리
    1. MS vs 반MS마이크로소프트(MS)는 퍼스널컴퓨터에 탑재되는 운영체제 시장의 88%, 서버에 탑재되는 운영체제 시장의 42%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기업이다. 1975년 19세의 하버드대학 중퇴생 빌 게이츠가 1500달러로 설립한 MS는 MS-DOS를 시작으로 하여 현재 전세계 PC 10대중 9대에 탑재된 운영체제 Windows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시가총액은 2750억 달러로 전세계에서 GE에 이어 두 번째 규모에 이르는 초거대기업이다.초거대기업 MS에 맞서는 기업과 사람들, 반 MS진영에는 수많은 기술자, 학자, 기업가들이 있다. Windows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Linux(리눅스)의 개발자인 핀란드의 리누스 토르발즈, MIT의 교수이면서 Copyleft(공유저작권)을 주장하며 빌 게이츠의 Copyright에 맞서는 리처드 스톨먼 등 IT 분야의 위대한 인물들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두 명의 특이한 기업가들이 있다. 세계 최대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기업 오라클의 CEO 래리 엘리슨과 Java를 전파하는 워크스테이션/서버 기업 Sun Microsystems의 CEO 스캇 맥닐리가 바로 그들이다.2. Oracle / 오라클과 나는 하나 - 래리 엘리슨1) 오라클의 창립오라클의 창립자 래리 엘리슨은 ‘오라클’에서 자신의 삶의 의의를 찾는 사람이다. 오라클의 회계보고가 잘못되면서 폭락하는 오라클의 주식가격 앞에서도 그는 현금확보를 위해 폭락하는 오라클의 주식은 절대 팔지 않고 당시에는 훨씬 값어치가 있던 다른 회사의 주식을 팔아 현금을 확보했다. 재정컨설턴트회사에서는 엘리슨에게 안정적인 재산증식을 위해 수익률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회사의 주식들을 오라클의 주식을 대체하여 구하도록 권유했으나, 엘리슨은 단호히 그 권유를 거절했다. 이렇게 엘리슨이 오라클의 주식에 집착하는데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회사와 완전히 하나야. 회사는 나의 일부이기 때문에 내 몸의 일부를 잘라 내고 싶지 않거든”)1977년 6월, 오디오테이프 레코더 제조 업체인 프리시전 인스하였고, 데이터베이스 업계에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나서는 네트워크 컴퓨터에 새롭게 도전하고 있다.)사람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카리스마,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고한 믿음, 주저하지 않는 결단,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는 도전정신이 래리 엘리슨에게 성공을 가져다 준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3) SQL을 사용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제품, 오라클SQL을 사용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제품, 오라클은 처음부터 성공적이고 완벽한 제품은 아니었다. 당시 오라클이 강조하던 최고의 장점은 어떤 컴퓨터, 어떤 운영체제에도 이식이 가능한 제품이라는 점 하나 뿐이었다. 오라클이 기반하는 SQL은 IBM에서 이미 시스템 R을 위해 개발한 언어이지만, IBM이 제대로 된 데이터베이스 제품을 내놓기 위해 몇 년을 고심하는 사이에 래리 엘리슨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최초의 SQL을 기반으로 하는 데이터베이스 제품 오라클을 앞세워 막 형성되기 시작한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여기에 한가지 행운이 덧붙여 졌으니, 데이터베이스에 있어서 SQL이 표준으로 제정되는 때부터 , 오라클은 날개돋힌 듯이 성장해 나갔다. 이는 래리 엘리슨의 IBM에 대한 믿음, 즉 시장에 최대의 영향력을 끼치는 IBM이 주장하는 것이 산업표준이 될 것이라는 정확한 판단에 힘입은 것이다.참담한 이야기이지만, 오라클의 제품이 처음부터 제대로 작동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었고, 이는 1988년 11월 출시된 오라클 6의 초기버전 때까지 이어지는 오라클 특유의 전통이 되어버렸다. 당시 출시된 오라클 6은 그때까지 출시된 오라클 제품중 가장 기능성이 뛰어난 제품이었고, 로우 레벨 락킹(Low-level Locking))이 적용된 최신 제품이었다. 오라클 5가 오라클 제품군에서 최초로 제대로 된 작업을 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면, 6은 대단한 성과를 거둔 제품이었다. 하지만 오라클 6은 발매 초기부터 엄청난 버그로 인해 작동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후 버전 6.0.27, 즉 27차례의 조정을 거쳐서야 상품의 가치가 있다고 인용 컴퓨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는 네트워크가 포인트였다. 자신의 데스크탑에 얼마나 많은 전력이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싸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와 윈도우즈 운용 시스템에서가 아닌 네트워크에서 그 전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가게에 가서 소프트웨어 박스를 사가지고 집에 와서 그것을 설치하고 작동해 보고 작업 내용을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네트워크 컴퓨터라는 이름이 붙은 저렴한 가격의 컴퓨터를 사용하여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할 것이다. 사람들은 작업을 하고 작업 내용을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사기업의 서버로 보낸다. 그렇다. 전화회사. 서버는 어디든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오라클 소프트웨어를 운용할 것이다. 곧 그런 날이 올 것이다.’)1995년 8월 24일,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 95'가 출시되었다. 출시 기념식이 있은지 10일 후, 파리에서 열린 유럽 정보기술 포럼에서 래리 엘리슨은 동행한 파자드 디바치의 연설문 초안을 바탕으로 네트워크 컴퓨터(NC)를 공식적으로 언급하였다. 이 연설을 기점으로 래리 엘리슨의 오라클은 단순히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업계의 강자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에 맞설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게 되었다.현재 NC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미 PC의 가격은 NC에 의해 위협받던 무렵에 비해 저렴해졌으며, 1996년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넷PC라는 업무 위주의 사용자를 겨냥한 저가 PC를 내놓기도 하였다. NC가 세상을 지배하리라는 래리 엘리슨의 예측은 빗나갔고, 1996년에 1997년으로 넘어 가는 길목에서 PC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주장한 “우리는 PC가 앞으로도 계속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봅니다. 네트워크 컴퓨터에는 소프트웨어가 필요 없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한 빌 게이츠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엘리슨리의 3인방은 Sun의 최초의 제품은 Sun-1 워크스테이션 개발을 위해 3개월동안 미친 듯이 일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 운영체제로 사용하고 있었던 유닉스 시스템에 불만을 가졌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주립대 대학원 과정에 재학중이던 유닉스 전문가 빌 조이를 영입하게 된다. 야망과 비전을 가진 코슬러, 실용적인 제조기술과 대인능력이 탁월한 맥닐리, 뛰어난 하드웨어 기술을 가진 벡톨샤임, 유닉스의 전문가 빌 조이. 이 4인방에 의해 Sun이 출범했다. 여기에 빌 조이의 버클리대 동창생 존 게이지를 마케팅과 판매를 위해 영입하면서 Sun은 본격적으로 워크스테이션 시장에 나서기 시작했다.초창기 Sun의 기본운영개념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긴축적이고 인색한 운영과 제품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기능은 상황에 따라 임시로 대처하는 것, 맥닐리가 종업원들을 상대하고 사기 진작 문제를 다룬다는 것, 이 세가지로 압축되었고, 이는 후일 코슬러가 회사를 떠날때까지 유지된다.2) 스캇 맥닐리, Sun의 CEO가 되다1984년이 지나면서 Sun의 임직원들은 CEO인 코슬러의 능력 이상으로 Sun이 성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원활한 운영을 위해 사장으로 영입한 오웬 브라운과의 10개월에 걸친 주도권 다툼 끝에 오웬 브라운이 사직하게 되지만, 이를 계기로 코슬러가 과연 CEO 자리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Sun 내부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브라운의 사임 이후, 제조담당 부사장이었던 스캇 맥닐리가 사장으로 선임되었다.창업 초기에는 비노드 코슬러의 높은 이상과 비전은 Sun에 잘 들어맞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Sun의 성장과 함께 코슬러의 문제점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세심하고 꼼꼼하면서, 중간관리층을 무시하고 생산라인으로 달려가 변화를 요구하는 등 코슬러는 차차 Sun과 맞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되게 되었고, 초기 투자자였던 봅 삭크만, 더그 브로일스를 포함하는 사외이사진과 빌 조이 등은 코슬러를 대신하여 맥닐리가 CEO가 다.)맥닐리의 CEO 취임 이후, Sun은 다른 업체들이 개발한 표준에 의존하여 성장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표준”을 개발하는 영역으로 나아갔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의 개발을 위해 독립적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대상으로 주요 무역박람회에서 Sun의 부스를 대여해 주고 Sun의 워크스테이션에서 그들 독립 소프트웨어 업체의 프로그램을 시연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이들 개발업체에 다른 운영체제를 위해 개발한 어플리케이션을 Sun의 운영체제에 맞게 이식하기 위한 포팅비용을 대출해 주거나, 워크스테이션을 대여 또는 할인해 주는 등의 전략을 펼쳐 Sun의 운영체제에서 실행될 수 있는 많은 어플리케이션을 확보하였다.여기에 더해, 그동안 산업분야에 국한되어 진출하였던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금융, 자동차 제조등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였고, 금융시장은 오늘날까지도 Sun의 요새로 남아 있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확보와 새로운 시장 개척에 주력하던 Sun은 1984년 말 네트워크 파일 시스템)을 개발했고, 후일 Java의 확산에서도 도입된 보급 방법인 저렴한 수수료를 받고 다른 워크스테이션 업체들에게도 네트워크 파일 시스템의 소스 코드 사용을 허가해 주는 방식으로 네트워크 파일 시스템을 확산시켜 나갔다. 이는 업계에 새로운 표준을 제공하는 것으로 Sun이 워크스테이션 분야의 선두주자로 나서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되었다. Sun이 그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Sun의 워크스테이션이 타사의 워크스테이션보다 네트워크 파일 시스템 가동에 적합할 것이라는 인상을 고객들에게 심어주었던 것이다.Sun이 늘 성장했고 성공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현재 수입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시장가치는 Sun의 4배 규모로 성장한 시스코가 장악하고 있는 네트워킹 시장을 Sun에서 장악할 기회를 얻었으나 당시 Sun의 주축이었던 코슬러, 맥닐리, 벡톨샤임 모두 그 점에 대해서 간과했고, 이는 나중에 코슬러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가장 멍청한 짓이 바로 시스코를 놓쳤다는 것이다. ‘네트워크가 컴퓨터다’라는 문구를 선전한.)
    경영/경제| 2004.11.30| 12페이지| 1,000원| 조회(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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