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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일본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비판
    일본과 한국의교과서 문제- 일본 역사 교과서를 바라보는 눈과한국 역사 인식의 비판 -목 차1. 서론2. 본론1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2.1. 일본 역사 왜곡의 배경2.2. 새로운 교과서의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2.2.1 새 역사교과서가 내세우는 역사관의 핵심2.2.2 새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구체적인 왜곡 사례 및 문제점2.3. 일본은 모두 잘못된 것인가?3. 본론2 -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의 비판4. 본론4 - 양국 교과서의 개선점 및 공동 연구5. 결론1. 서론이번 교과서 검정은 검정과정에서부터 검정 신청본에 일본군 ‘위안부’, 난징대학살 등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기술이 대폭 축소, 왜곡된 사실이 보도되면서 사회적인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만드는 모임)’의 검정 신청본이 밖으로 유출되면서, 이에 대한 비판이 역사학자를 비롯한 일본 사회 각계 각층과 한국, 중국 등 인접국가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만드는 모임’이 만든 교과서가 137곳의 수정을 거쳐 검정을 통과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 교과서들이 각 지방에서의 채택과정을 거쳐 2005년까지 중학교 교과서로 사용되게 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현재 일본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운동도 ‘만드는 모임’이 만든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채택을 저지하기 위한 것도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나가 사부로 교과서 재판을 계기로 교과서 검정 제도의 문제점과 교육의 국가 통제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네트 21 등과 같은 시민단체들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또한 이렇게 일본 역사왜곡 사실이 많은 논란이 되었을 때, 한국 교과서도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일어났다. 한국의 국정 『국사』교과서도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위험한 교과서’라는 주장은 예전에는 거의 제기된 적이 없는 새로운 자기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였다. 또한 이는 논쟁의 생산성을 한 차원 높였다고 생각된다. 서는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배제하고 타자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허나 인식론적 차원에서 이 둘의 문제는 민족주의라는 같은 맥락에 있다.이러한 상황하에서는 결코 한, 일 양국 간에 진정한 역사의식상의 ‘상호 이해’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한, 일 양국간의 역사학자, 역사교육자, 학생, 일반 시민들 간에 서로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광범위하고 꾸준한 노력만이 진정한 상호 이해를 가능케 한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발족 등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겠다.2.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에 드러난 왜곡1) 일본 역사 왜곡의 배경① 국내외 정세의 변화를 교묘하게 활용한 국가 전략적 차원의 움직임이다.② 일본적 자신감의 표현이다.③ 장기불황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탈출구를 마련해주려는 고도의 계산이다.④ 패전 이래의 좌파적 역사인식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⑤ 일본역사왜곡의 대상으로 한국을 비교한다는 점이다.2) 새로운 교과서의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 『새 역사교과서』에 드러난 역사관의 핵심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①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사실을 알기 위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는 과학도 아니다.② 일본의 역사는 세계 4대 문명권 이상으로 영구할 뿐만 아니라, 태초부터 最古, 最高의 문명국가였다.③ 일본인은 고대 이래 지혜와 결단이 풍부하고, 일본의 문화는 고유하고 특이한 것이다.④ 신화와 천황은 국민 속에 스며있는 성스러운 존재이다. 효도와 충군은 일본인의 기본적 인격이다.⑤ 일본은 선이고 타국은 악이다. 전쟁의 원인과 책임은 항상 외국에 있었다.⑥ 일본이 벌인 전쟁을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한 성전으로 미화하고, 전쟁에 참가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민중을 영웅으로 부각시킨다. 또 유색인과 백색인의 인종간 대립을 부추기어 일본이 벌인 전쟁이 아시아인에게 독립과 해방을 가져다 준 것으로 묘사한다.⑦ 무장, 침략을 추진한 정치가 외교가를 추켜세운다. 각 인물에 대한 서술이 1페이지에 이른다.⑧ 일본의 대외침략을『새 역사교과서』의 역사인식의 문제점① 아시아에 대한 굴절된 우월감.② 이들은 먼저 ‘과거의 사실을 정밀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역사에 현재라는 시점을 끌어들이는 것에 반대하고 역사를 다양한 시점에서 볼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들이 강조하는 ‘역사를 재판하는 어리석음’을 그만두자는 논리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다양한 시각이라는 것도 일본국가의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교과서에서도 역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볼 것을 강조한 후, ‘국가의 수만큼 역사가 있어도 조금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라고 매듭짓는다. 결국 이들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 국가’의 시각인 것이다. 이것은 교과서 기술에 있어서 주어를 항상 ‘일본은’을 사용하는 데도 드러나 있다.③ 이 교과서의 국가중심적인 시각은 일본 우월주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본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적을 만드는데, 그 적이란 때로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조선이기도 하고, 때로는 앞선 문명의 미국이기도 한다.④ ‘천황에 대한 기술’이 기존의 교과서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기보다는, 일본이라는 국가를 중심에 두고 ‘천황’을 기술하고 있다.⑤ 또한 침략(전쟁)을 축소, 왜곡, 은폐하고 있다. 명성사의 ?새 역사 교과서?에는 ‘침략’이라는 단어가 없다. 심지어 인도차이나반도에 침략한 일본군의 행동을 ‘진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교과서에서는 개전의 책임을 모호하게 하거나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서술양식을 전반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아시아인들의 삶을 제대로 서술하지 않거나, 은폐, 왜곡하고 있다. 그러면서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있다.3) 일본은 무조건 나쁜 놈?-일본 새 역사 교과서 자체를 옹호하는 입장① 일본의 교과서는 일본의 차세대를 교육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어느 정도 미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죄악상을 들추어내며 보복할려는 것인가? 일본인들은 한일합방이 한국 국민 다수의 소망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미안감도 느껴왔음을 일본 천황과 내각수상들도 공식적으로 거듭 유감과 사죄 사과를 해왔다.④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일본은 자신들의 침략과 죄악을 교과서에 올림으로써 다시 그런 일을 못하도록 국민을 재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 하지 않으면 일본인들은 주변국가를 다시 침략할 것이니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그들의 역사 왜곡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허나 이는 설득력이 별로 없다. 현재도 일본 재무장과 헌법개정이 논의되지만 경제 이익과 나라 안보 때문에 주장되는 것이지 과거처럼 일본이 군국주의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설사 일본이 재무장 한다고 해도 세계의 최신 최고의 가공할 무기를 미국이 독점하고 있는데 일본이 어떻게 한국이나 동아시아를 다시 공격할 것이라고 떠드는가?- 일본 교과서 문제를 가지고 일본 전체를 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일본 교과서 문제는 일본의 국가와 사회의 분열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일본의 국가 또는 국민 전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① 역사 해석을 둘러싼 우익-국가 연합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대립하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만드는 모임? 검정 신청본의 내용이 알려진 2000년 8월 이래로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역사교육자 협의회?등은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문제의 교과서를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② 새 역사 교과서의 채택율이 극히 저조하다. 역사교과서의 왜곡은 일본 안에서도 역사학자?교사?학부모?시민단체 등에 의한 격렬한 반대운동을 일어나게 하였으며 특히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 채택 저지에 총력을 집중하였다.③ 검정 처분의 부당성을 문제 삼아, 결국 1997년 제 3차 소송의 최종 판결을 통해 문부성의 교과서의 검정 행정이 위법적 행위임을 인정했다.30년 넘게 자리하게 펼쳐진 ‘교과서 재판’은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역사를 왜곡해도 상사?이다. )에서도 암시되고 있듯이 모든 한국(사회, 사람)의 역사를 국가(‘우리 나라’, ‘우리 국민’)와 민족(‘우리 민족’)의 관점에서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사?에 보이는 모든 역사과정의 위기(특히 대외전쟁과 내란)는 국가와 민족의 위기이며, 또 위기의 극복주체도 항상 국가와 민족이다. 그러나 요즈음과 같은 국가?민족의식은 근대사회의 산물이다.② 국가와 민족의 신성성, 초역사성을 강조하는 역사서술국가와 민족의 신성성, 초역사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강요 혹은 설득하고자 할 때 ‘역사적 실재’로서의 국가(권력)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며, 설득력도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교과서는 곳곳에서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이라는 초역사적 표현을 통해 현실의 국가권력을 ‘탈역사화’하고 있다.③ 국가?민족 내부의 계급?계층적 갈등을 축소 왜곡하는 역사서술?국사?에는 국가와 민족 내부의 계급 계층적 갈등관계, 이런 관계속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실과 사건에 대한 설명을 회피하거나 은폐하고 있는데, 이런 서술은 ‘모임’측의 신청본과 마찬가지로 국가와 민족을 하나의 유기체이자 초역사적 존재로 묘사하고자 하는 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④ 편향적인 일제 침략사=지배정책사 서술앞서 언급한 우리 정부의 ?수정요구의견? 가운데는 일제의 조선침략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이와 관련된 ?국사?와 ‘신청본’의 서술을 비교하면, 양측면 중 어느 한 측면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차이가 엿보인다. 가령, 개발이냐 수탈이냐? 혹은 저항했는가, 반겼는가? 등을 둘러싼 양 교과서의 설명 차이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혹은 일제의 모든 지배정책을 ‘수탈론적인 관점’에서만 설명하고 있다.다른 한편, 우리 근대역사의 온갖 부정성을 일본(왜*), 일제(현대사의 경우는 공산주의, 혹은 북한)에서 구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⑤ 친일파 문제를 거론하는 자는 자학사관론자친일파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는 점, .
    인문/어학| 2005.05.27| 8페이지| 1,000원| 조회(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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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관리 유아교육
    작년, 신문에서 초등학교 4학년생 2명이 홀로 사는 팔순 할머니를 여러 번 폭행하고 돈을 빼앗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어디 그뿐이랴... 한 청소년은 자리를 비키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노인을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까지 한 일도 있었다.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접하게 될 때면 대체적으로 그 아이들보다 그 아이들의 부모에 대해 더 생각을 하게 된다.‘ 대체 어떻게 아이를 가르쳤길래.... ’나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나라 부모들의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인성교육보다는 ‘기능이나 지식위주의 교육’을 중요시 하는데서 찾고 싶다.“ 우리 아들이 이번에 00 대학에 들어갔어요 ”“ 어머 정말요, 참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네여, 정말 좋으시겠어요 ”우리나라의 자녀를 둔 부모들의 대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한 예로, 이러한 대화가 오고갈 때 공부 잘하는 자식을 둔 부모는 무슨 벼슬인양 다른 부모들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다른 부모들의 부러운 듯한 눈초리를 즐긴다.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는 공부 잘하는 것을 아이가 반듯하고 훌륭하게 자란 것으로, 그리고 부모로써 훌륭한 가정교육을 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라고 생각한다.그에 따라 우리의 가정 교육은 온전한 사람을 기르기보다도 지식이 많은 사람을 만드는데 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다.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자녀 교육에 관한 한 최대한의 관심은 자녀들의 학교공부에 주어지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자녀가 공부만 잘하면 어른한테 버릇이 없어도 되고,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규칙이나 질서는 나중에 배워도 된다는 우리의 지육편중적인 교육이 우리의 아이들이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사회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으며 따뜻하고 부드러운 대인 관계를 맺으면서 인생을 살아가게 할 인격이나 사회성 및 적성 같은 것을 매우 소홀하게 하고 있다.프로이트는 인간의 성격은 만 6세 이전에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발달심리학자들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인간의 태도나 버릇, 습관 같은 것들이 6세 이전에 길러져야 한다는 것이다.6세 이전에 잘 길러지지 않으면 이런 습관의 형성이 어렵다고 한다.더욱이 잘못 형성된 습관이나 버릇은 나중에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다.이렇듯 기본적인 인성교육을 통해 올바른 태도, 버릇, 습관 같은 것들을 길러주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우리의 아이들은 한글교육, 영어교육, 각종 학원 등등의 주로 기능적인 전문 교육을 강요당하고 있다.사실상 지식을 습득시키는 학습은 학령에 맞추어서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되어도 결코 늦지 않지만, 어린시절에 꼭 몸에 익혀주어야 할 인성교육을 부모가 조기가정교육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여기서 조기가정교육은 조기학습과는 다른 것으로, 신체를 포함해서 모든 정신이 성장 발달하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기능, 능력, 태도, 습관, 준비성을 만들어 주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예를 들면 피아노를 잘 치는 능력을 길러주기 전에 소리에 대한 민감성을 길러 주는데 힘써야 한다는 말이다. 피아노 등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일생동안 음악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도록 소리에 대한 감각을 길러주는데 초점을 맞춘 교육을 말한다.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흥분하고 기뻐하는 아이가,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피아노를 치는 아이보다 행복할 것이다. 당장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보다 좋은 미술작품을 보면 눈이 휘둥그래질 수 있는 아이를 기르는 것이 이 조기가정교육의 목적이다.가까운 일본의 경우, 일본의 엄마들은 어린 자식을 유치원에 입학시킬 때 유치원 선생에게 부탁하는 말이 첫째, 우리 아이가 유치원의 교육을 통하여 예절바른 아이로 클 수 있도록, 둘째, 우리 아이의 적성과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셋째,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가르쳐 달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엄마들은 자녀를 유치원에 입학시키면서 선생님에게 부탁드리는 첫마디로 대부분의 엄마들이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공부 잘 할 수 있도록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이와 같이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우선 순위의 현격한 차이로 빚어지는 결과는 일본의 국민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친절한 국민, 예절바른 국민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심지어 일본 부모들은 어린 자녀를 대동하고 지하철을 탈 때는 앉을 좌석이 있으면 자녀를 앉히되 신발을 벗어들고 앉도록 하여 옆좌석 손님의 바지에 자식의 신발이 닿지 않도록 배려를 한다고 한다. 또한 복잡한 지하철내나 많은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신발을 밟히게 된다든지 어깨를 부딪히게 되면 밟힌 사람이나 부딪힌 쪽의 사람이 먼저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을 건넨다. 이렇듯 남을 배려하는 공중도덕심은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조기가정교육을 통한 예절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자라온 결과하고 할 수 있다.이렇듯 올바른 태도, 버릇, 습관 같은 것들을 길러주어야 하는 조기가정교육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첫째, 아이에게 피아노나 미술같은 기능교육보다 기본습관이나 조화로운 인성같은 정신면을 교육해야 한다.
    자연과학| 2004.06.20| 3페이지| 1,000원| 조회(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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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감상문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이 곡의 배경핀란드는 13세기경부터 19세기 초까지는 스웨덴의 지배하에 있던 대공국이었으나, 1808년 러시아의 핀란드에의 침공을 스웨덴이 격퇴하지 못했기 때문에, 1809년 이후로는 러시아의 속국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영토화 되었던 것은 아니고, 처음에는 스웨덴 시대로부터 이어왔던 대공국으로서의 대우를 유지했으나,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1세의 시대 이후, 핀란드의 자치권이 침해당해 오다가, 니콜라이 2세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핀란드의 자유는 박탈당하여, 러시아의 속령화 정책이 강제로 추진되었다. 그 때문에 핀란드에서는 애국 독립 운동이 격렬하게 고조되었다.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행사가 벌어졌는데, 그 중의 하나로는 문화적 행사를 가짐으로써 국민의 애국열을 높이고, 나아가 독립 운동의 자금을 모금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그 한 가지로 민족적 역사극 '옛부터의 정경'이 상연되게 되었다. 1899년의 일이었다.시벨리우스는 음악가로서 이 연극의 상연에 참가했다.이 희곡을 위하여 쓴 음악은 각 장면을 위한 전주곡과 대사의 배경 반주음악, 그리고 힘찬 피날레였다. 이 극음악에서 후에 '역사적 정경, 제 1'(작품 25)과 교향시 '핀란디아'가 만들어졌다. 이 작품 속에 담겨진 열렬한 애국심을 오늘날에는 누구든지 금방 감지할 수가 있지만, 처음 발표 당시에는 청중도 비평가들도, 이 곡의 의미를 잘 몰랐었던 것 같다고, 시벨리우스 연구가 칼 에크만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곧 청중은 이 작품 속의 뜨거운 애국심을 알아들었다. 이것을 눈치 챈 러시아 관헌은, 핀란드 국내에서 이 곡의 연주를 불온하다 하여 금지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눈이 미치지 않는 나라에서는 , 다른 타이틀로 바꾸어서 러시아의 눈을 피해 연주한 일이 있었다.그리고 이 교향시의 중간부의 선율에는 후에 베이코 코스켄니에미가 시를 써넣어 '핀란디아 찬가'라는 합창곡으로 만들었다. 이 곡은 오늘날 핀란드의 준 애국가처럼 애창되고 있다.♠이 곡에 대한 감상문조용한 듯 .잠시동안...아주 잠깐 동안의 평온함이 흐른다고 해야될까??영화에서 볼 수 있는 듯한 음악 같기도 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곡 인 것도 같다. 어디서 였을까? 근데 알고 보니 오페라였다. 오페라의 그 뭐랄까? 말 만으론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함이 담겨져 있는 음악인 것 같다. 왜 노래를 듣다보면 경쾌하고 때로는 슬프고 그 노래에 취하는 그런 일이 종종 있다. 이 노래에서도 왠지 모르게 그런 것 같다.악기의 종류는 잘 모르지만 굉장히 높은음을 이용해서 경쾌하고 쾌활한 느낌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낮은음을 이용해서 평온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난 잠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바그너란 인물이 이 음악을 작고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 음악을 처음 지을 수 있게 했던 동기.... 그런 것들이 궁금해 졌다.바그너....그 사람은 이 음악으로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 없었던 걸까???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마... 난 그가 왠지 이 음악을 통해 뭔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역시 탄호이저 신곡은 오페라답게 웅장한 것은 알아줘야겠다. 들으면서 즐거웠고 내게는 좋고, 보람있었던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채 14분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약간이지만 나름대로 얻은 것도 있는 것 같다. 나 혼자 듣긴 아까운 음악이었다는 생각도 든다.베토벤교향곡 제5번 운명♠악장별 곡 감상-제1악장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처음부터 긴장되는 듯한 음이 나온다고 할까?1악장에는 두 가지의 대조적인 주제가 있는 것 같다. 힘찬 제1주제와 대조적인 우아한 제2주제라고 하면 될까?? 우아한 제 2주제가 나오다가, 조용해지며 힘찬 제1제가 나오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형식이 몇 번씩 되풀이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저음부에서는《운명》의 리듬이 계속 울려서 악장 전체가 이 주제로 일관되고 있다는 인상을 가지게끔 한다.전개부는 주로 제1주제를 사용해서 모든 감정을 최고의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놀랄 만큼 긴장도 높은 전개부이다. 운명의 주제로 시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곡은 하이든의 것과 함께 고전파시대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확립하는 작품이 되었다. 하이든과는 1785년경에 직접 알게 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빈시대의 후반에 접어들자 모차르트의 작품세계는 한층 무르익었으나, 그 반면 빈의 청중들의 기호로부터는 차차 멀어져, 생활은 어려워지고 친구들로부터 빌린 빚도 많아졌다. 1786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그러한 상황이 눈에 띄게 나타났는데 이나 등의 오페라는 이 시기의 걸작들이다. 후자가 초연(初演)된 해 4월 베토벤이 찾아왔고 5월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구르크의 뒤를 이어 궁정실내작곡가의 칭호를 받았으나, 이것은 이름뿐이고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이듬해에는 닥쳐오는 경제적인 궁핍 속에서 이른바 3대교향곡 《제39번 E장조>을 작곡하였다. 그 후에도 모차르트는 몇 차례 여행을 하였다. 그 후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9월에는 징그슈필의 대작 《마적(魔笛)》을 완성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레퀴엠》을 미완성인 채 남겨 두고 12월 5일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는 빈시의 성마르크스묘지에 있다.♠이 곡에 대한 감상문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 주피터....모차르트가 죽은 후, 누가 제목을 붙인줄은 모르겠다고 한다.단지 이 곡이 풍기고 있는 웅대한 성격이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모든 신의 왕인 주피터의 이름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붙인 것이라 한다.잘은 모르겠지만 소나타 형식의 악장인 것 같다.이 곡은 혹자가 자신감이 생기는 음악이라고도 한다.처음 부분에서 울리는 악기소리를 들으니 땅땅 울리는 소리....그것은 당당한 위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이어서 현악기만으로 약하게 연주되는 부드러운 표정의 선율이 대조를 뚜 렷 하게 한다.그 다음 갑자기 아까 와는 다른 분위기가 되고....그 다음에는 소박하게 끝나는 것 같다.처음 웅대한 음을 1주제라고 한다면 두 번째 주제는 부드럽고 약간 귀여운 음을 2번째 주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쇼팽의 즉흥환상곡쇼팽에 대해서바르샤 익힌 뒤 1858년부터 4년간 라이프치히음악원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R.슈만과 J.멘델스존의 영향을 받았으며, 게제 ?노르들라크 등 민족주의적인 작곡가들과 사귀면서 독자적 작풍을 확립하였다. H.입센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부대음악(附帶音樂) 《페르귄트》(1876 초연)와 《피아노협주곡》(1868)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몸에 밴 고전적 형식에서 민족적인 음악을 찾으려고 애쓴 그는 《제3바이올린소나타》(1885~1887)에서 피아노곡인 《노르웨이의 농민무용》(1902)에 이르는 일련의 작품 속에 민족음악의 선율과 리듬을 많이 도입하였으며, 민족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다수 만듦으로써 오늘날 노르웨이 음악의 대표적 존재가 되었다.♠이 곡에 대한 감상문그리그의 페르귄트 조곡 제 2번중 솔베이그..난 음악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이 음악의 제목을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예전에 어떤 책을 읽었을 때... 주인공의 이름이 페르귄트였고 여자 주인공 이름이 솔베이그 였던 것 같다.어렴풋이 그 책 내용이 기억 나기도 한다. 음악은 초반부터 중후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웅장하지만 그 뒤에는 여린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는 모르겟다. 이 음악에서 사용된 악기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게 느끼어진다. 관악기 종류의 악기 같기도 하고...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좋다.우아하고 고요하다가 중반부에서는 많이 들어본 듯한 멜로디가 나온다. 익숙한 멜로디는 음악과 내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대표적인 것이 사계이다. 사계의 음악이 우리에게 익숙해서 친근해지는 그런 느낌처럼 이부분도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어디서 들어보았을까?바이올린 연주가 왠지 슬프기도 하고 애수가 남는다.이런 바이올린 연주를 듣노라면 비오는 창문을 내다보며 슬픔에 잠기는 그런 모습이 떠오른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이렇게 많은 것을 표현할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왠지 조용하고 고요함이 잘 나타나져 있는 듯하다....무언가 호소 라하에 가설극장(假設劇場:훗날의 국민극장)이 신설되자 그곳 비올라 연주자가 되었다. 1866년 그곳 지휘자로 취임한 B.스메타나의 영향을 받아, 당시 고조된 민족운동의 와중에서 음악가로서 체코의 민족문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1872년 애국적인 시 《백산(白山)의 후계자들》에 의한 합창 찬가가 호평을 받음으로써 인정을 받고, 1874년에는 성아달베르트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1892년에는 뉴욕의 내셔널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되어 때부터 여러 연주자가 그의 실내악이나 관현악곡을 베를린 ?런던에서도 연주하게 되어, 그의 명성은 국내외로 퍼졌으며 1878년부터 지휘를 시작하여 1884년 이후 영국을 9회나 방문하여 자작곡을 지휘, 대환영을 받았다. 1891년 프라하음악원 교수가 되고, 같은 해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도미했고, 다음해 미국에서의 신선한 인상을 소재로 교향곡 9번 《신세계 From the New World》를 작곡했다. 그리고 1904년 신장병으로 사망하였다.이 곡에 대한 감상신세계교향곡이라고도 한다는 것 같다.이는 그가 뉴욕 국민음악원의 초청으로 미국에 머물고 있던 때의 작품으로 1893년에 씌어지고 같은 해 12월 15일 뉴욕 필하모닉 교향악단에 의해 카네기홀에서 초연 되었다고 한다. 흑인과 아메리칸 인디언의 음악적인 요소를 구사한 가운데 조국 보헤미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아름다운 곡으로 모두 4악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제2악장의 라르고선율이 유명하다고 한다.한국에서도 라는 곡목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고 한다. 2악장은 마치 고요한 바다를 항해하는 듯한 음을 느낄 수가 있다.처음에는 아주 조금 불안한 듯 하다가 이내 평온한 멜로디로 바뀌며 마음이 편안해 진다. 4악장은 강렬한 멜로디로 시작한다 빠르고 경쾌하게 그리고 이내 음악회 등을 소개할 때 많이 들어봤던 멜로디가 나온다.힘차고 당당한 멜로디를 느낀다. 운동경기 소개에나 나올법한 힘찬 곡인 것 같다.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차이코프스키우랄지방 캄스코보트킨스
    독후감/창작| 2004.04.28| 16페이지| 2,000원| 조회(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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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 신문분석
    2004.4.5 한겨레1. 김근태, 실미도서 "박정희때 사건" 지적김근태 원내대표는 실미도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이 사건은 박정희정권때 일어 났다"며 "박근혜대표(한나라당)가 독립된 정치인이 되고자 한다면 아버지의 공과 과 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2. "박대표 수도권 공략"2004.4.5 조선일보1. 실미도간 김근태 "박정희 때리기""독재의 탄압 인권유린 다신 없어야.."2. "불어라, 박근혜 바람.. 수도권까지"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조선일보의 뜻이 담겨져 있 는거 같다.추미애 민심잡기 '3보1배'이 사건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일보 둘 다 중립적인 입장을 나타냈다.추미애의 3보1배가 사람들이 보는 관점에 따라 동정심을 유발하는 행동으로 비판적인 눈으로 보게 될 수도 있고, 정말로 반성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는 사람들에겐 추미애 의원의 지지도가 높아질 수 있다며 조선일보와 한겨레 일보는 중립적인 입장을 나타냈다.2004.4.6 한겨레1면- 1.정치(선거관련) "재원조달 힘든 공약 많다"여러당의 중립적인 입장으로 공약관련 기사2.이라크 시아파 점령군 대규모 유혈충돌미국중심의 서술 (미국이 계획한 작전등을 중심으로 미국이 이라크에 가하 는 사건을 미국의 입장에서 서술)2004.4.6 조선일보1면- 1.정치(선거관련) "열린우리당은 빨리 쪼개져야"한나라당의지지 세력인 조선일보는 다른 당의 부정적 사건기사를 크게 언급 하고 있다.2.이라크서 최대위기 직면미군에 협조적이던 시한파가 지난,...,이라크 상황이 급격이 불안해지고 있 다. (미국과 이라크의 대립을 이라크 중심적으로 서술)2004.4.9 한겨례1면 - 정치 “당선 무효 못 미치는 가벼운 벌금형 관행 부적절”깨끗한 선거 문화 정착을 바라는 국민에 기대해 부응하는 글을 서술하였다.2004.4.9 조선일보1면 - 정치 “선거사범 구속 벌써 180명 ‘16代5배‘…당선무효 쏫아질듯”2004.4.12 한겨례1면 - 정치(선거관련) “정동영 선대위원장 후보 사퇴”‘신지역주의 부활 저지, 탄핵 세력 심판위한 단식 농성 돌입’국민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다루는 말들을 중점적으로 서술되었다.2004.4.12 조선일보1면 - “정동영, 선대위원장직 사퇴“‘비례대표 후보직도…당의 장직은 일단 유지’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말들로 비관적으로 표현되었다.4월 5일자 신문 정치면에서는 각 신문회사별로 같은 내용의 글이지만 글 제목의 어조와 편집방법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먼저 한겨레 신문은 김근태의 말을 지적이라하여 독자들이 별 관심없이 지나갈 수도 있게 편집하였고 박근혜의 선거운동도 수도권 공략이라 하며 독자들의 시선을 크게 뺏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선일보에서는 지지당의 박근혜대표의 기사를 "박정희 때리기","불어라, 박근혜 바람.. 수도권까지"라는 어감이 강하거나 염원의 뜻 비슷하게 편집하여 중립적입장이 아닌 어떤 특정당의 지지일간지 같은 느낌을 주었다.같은 내용의 기사도 작가와 편집가의 주관에 따라 서술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다. 4월 6일자 기사에서는 이라크와 미국의 대립 문제에서 서술을 어느 관점에서 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의견을 찬성 할 수도 있고 이라크에게 동정을 가질 수도 있다. 중립적인 입장의 신문의 기사들도 조금씩은 작가와 편집가의 입장에 따라 지지하는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한겨레신문은 진보적인 글로 대부분의 기사를 다루고 조선일보는 약간은 보수적인 관점의 글이 많은걸 느낄 수가 있었다.
    사회과학| 2004.04.28| 3페이지| 1,000원| 조회(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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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문화 평가A좋아요
    ▶ 프랑스 영화의 역사1)1890년대 - 뤼미에르와 멜리에스(Les Lumiere et Georges Melies)뤼미에르 형제와 조루주 멜리에스에 의해 시작된 프랑스 영화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먼저 영화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1829년 '잔상'이라는 생리적 현상이 알려지면서, 많은 과학자들은 잔상의 효과를 전달하는기계인 카메라의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최초의 실용적인 키네토스코프라는 카메라를 에디슨이 발명했지만 연구실 안에서의 연수로 그쳤다. 자신의 발명품인 원통형 축음기에 시각적 부수물을 덧붙이려는 바램으로 카메라를 발명한 그는 영사기에는 무관심함으로 대중성을 무시하고 무한한 상업적 가능성도 생각 못했다. 그 후에 '시네마토그라프'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는 거리로 나가 실제 생활을 찍었다. 영화의 상업적인 면을 간파한 그들은 최초의 영화유료 상영을 해내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찍으며 일본, 중국 등지에도 영화를 보급시켰다. 뉴스나 르포처럼 사건 그 자체를 그대로 반영하는 영화의 의식을 정립한 그들은 다큐멘터리의 정신을 개척하여 현실임직함(vraisemblance)을 추구하였다. 뤼미에르 형제는 1895년 (Sortie des usines Lumiere) (Arrivee de congressistes a Neuville-sur-Saone) 등 여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멜리에스는 영화에 최초로 극적인 이야기 요소를 가미하였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인 눈속임을 이용해서 페이드/아웃. 디졸브 등의 다양한 편집 기술을 개발하였고 트릭 영화의 초기 장르를 열고 특수효과의 무한한 발전의 기초를 닦았다. 손으로 필름에 직접 염색을 하는 방법을 개발한 그는 마술사 출신답게, 특별한 상상력을 가지고 그것을 영화라는 매체에서 자유롭게 펼쳤다. 멜리에스는 (L'Escamotage d'une dame chez Robert Houdin, 1896) (Le voyage dans la lune, 1902)등을 발표하여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2)1900년대 - 파테와 고몽 그리고 필름 다르(Pathe, Gaumont et Film d'art)이에 자극을 받아 영화의 기업성에 착안하여 파테와 고몽등의 여러 영화제작사가 설립되었다. 특히 파테사는 1910년경까지 멜리에스를 능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영화사까지도 앞지르는 맹렬한 기세로 영화산업을 정착시켰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필름 다르사도 발족하여 코메디 프랑세즈(Comedie fracaise)의 배우들을 출연시키는 영화를 제작, 대중적인 흥행물로부터 영화를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리면서 새로운 관객층을 확보하는데 이바지하였다. 제1회 작품은 1907년에 제작된 (L'Assassinat du juc de Guise)이었으며, 같은 해에 에밀 콜은 최초의 에니메이션영화를 만들었다. 1909년의 단편 란데의 (Zigomaar), 1913년 발표된 루이 푀이야드(Louis Feuillade)의 (Fantomas)는 활극영화의 효시로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파테사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영화계도 거대한 미국 영화 자본의 공세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3)1910년대 - 포토제니(Photogenie)1917년 루이 델뤼크는 '영화는 그 시대의 다른 예술, 미학 운동과 결합시켜야 한다. 영화도 시나 미술처럼 에술로서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포토제니 이론을 제창하면서 '포토(사진)'와 '제니(정령)'의 통합을 주장하였다. 영화는 빛과 그림자에 의한 오케스트레이션, 곧 시각에 호소하는 음악이 내적인 생명을 불러일으킨다는 포토제니파를 형성하였다. 아벨 강스(Abel Gance)는 대표작 (La Roue,1923)에서 기관차가 질주하는 속도를 역동적으로 컷 백하는 등 시각적 표현기법을 구사하였고, (Napoleon, 1925)에서는 3면 스크린을 사용하여 대형영화를 지향하는 대작도 완성시켰다. 루이 델뤼크(Louis Delluc)도 (Silence, 1920) (Fievre, 1922)을 통해 자신이 주창한 이론을 구체화시켰으며, 여류감독 제르멘 뒬리크(Germaine Dulac)는 (La Fete espagnole, 1919)를 발표하여 완전영화 또는 순수영화를 지향하면서 영상의 순수성을 추구하였다.4) 1920년대 - 전위 영화운동(L'avant-garde francaise)1920년대의 시각주의는 문학이나 연극과도 또 다른 영화의 독자적인 미학 추구였지만, 그와 동시에 회화나 문학에 있어서의 다다이슴(Dadaisme)이나 쉬르레알리슴(Surrealisme)의 영향을 받아 영화가 전위 영화운동으로까지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무의식의 세계, 꿈이나 환상, 공포 등 내적인 비전을 표현하고 의식의 합리적인 측면을 대상화하는 꾀르레알리슴 영화는 르네 클레를의 (Entr'acte, 1924), (Un chapeau de paille d'Italie,1928), 만 레이(Man Ray)의 (L'Etoile de mer, 1928), 루이스 부뉘엘(Luis Bunuel)과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Un chien andalou, 1928)등 많은 작품을 낳았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운동은 발성 영화의 출연과 함께 쇠퇴하였으나, 그 전위적인 실험정신은 영화사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5)1930년대 - 시적 리얼리즘과 유성 영화의 황금기(Le realisme poetique et l'age d'or 여 cinema parlant)1930년대는 세계적인 경제 공황이 시작된 뒤, 독일에서는 나치스가 대두되어 마침내 제2차 세게대전이 발발하는 시대에 행당되면, 이 시기를 통해 영화 또한 드라마 속에 자기 의식을 투입해 갔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커져가면서 사람들은 소리를 듣고 싶어했다. 최초의 유성 영화인 가 성공한 것도 변화하는 관객들의 관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이다. 프랑스에서도 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갔고, 그 결과 유성영화가 탄생하게 된다. 당시의 감독 르네 클레르(Rene Clair)는 유성 영화의 첫 작품 (Sous les toits de Paris, 1930)을 감독하였고, 이어서 (A Nous la liberte, 1931) (Quatorze Juillet, 1933) (Le Dernier Milliardaire, 1934)등 사회 풍자극과 서민 영화로 변모해갔다. 또한 이 시기를 통한 연극인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이나 사샤 기트리(Sacha Guitry)등의 영화계 진출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점차 그 속도를 더해가는 영화 기술력의 발전과 탄탄한 자본력, 그리고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프랑스 영화는 발전에 가속도를 붙이게 된다. 1930년대는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로 이 당시 제작된 영화들은 프랑스다운 리듬과 프랑스만의 독특한 색깔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장 비고(Jean Vigo)sms 시적 리얼리즘(Le realisme poetique)의 대표 주자로서 (Zero de conduite, 1933), (L'Ataiante, 1933)을 제작했다.{또한, 자크 페데르(Jacques Feyder),는
    인문/어학| 2003.10.24| 9페이지| 1,500원| 조회(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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