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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딥스와 아이엠 셈(i am sam) 평가D별로예요
    딥스를 읽고....딥스는 마음에 병이 있는 아이이다. 사람들은 딥스를 바보라고, 또는 뇌에 문제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딥스는 마음에 커다란 병을 가지고 있을 뿐 절대로 뇌가 손상되었다거나 바보가 아니었다. 도리어 딥스는 만 5세의 다른 유아들보다 더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였다. 그런 딥스가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었을까? 그 원인은 딥스를 둘러싼 일차적 환경인 부모에게 있었다.딥스는 부모가 원하지 않는 아이였다. 책에서는 딥스를 임신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엄마의 이야기가 나와 있다. 그 이야기를 잘 보면, 딥스는 사랑으로 잉태되고,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아이가 아니었다. 딥스의 어머니는 딥스를 임신하기 전에 어려운 수술을 두 번이나 성공시킬 만큼 뛰어난 외과 의사였다.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고, 앞으로 유능한 외과 의사로 성공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딥스가 생기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녀가 딥스를 사랑하는 소중한 아기 가 아니라 인생의 걸림돌 로 여겼다는 점이다. 책에서 딥스가 태어나서 우리의 계획과 생을 망쳐버린 거예요. 전 아주 비참하게 실패한 것을 느꼈어요. 딥스의 엄마가 한 이야기다. 어떻게 자기의 자식을 저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딥스의 엄마는 딥스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딥스는 태어났다.부모는 딥스는 부끄럽고 창피해했다. 딥스의 어머니의 이야기로 보아서 딥스는 아기 때부터 정상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딥스는 너무 이상했어요. 이야기도 하지 않고, 걷는 것도 느리고, 작은 야수처럼 사람들에게 달려들고, 우린 너무 부끄러웠어요. 부끄러움이 지나쳐 급기야 부모는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인 관계를 끊기까지 했다. 뛰어난 외과 의사였던 엄마와, 과학자인 아빠. 그 둘은 정상적이지 않은 딥스를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완벽한 만큼, 그렇지 못한 딥스를 창피해 하며 숨기려고만 했다. 딥스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사회성이나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등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딥스의 아빠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아이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까운 듯하다. 딥스는 자신의 방문에 가까이 있는 나무의 가지를 매우 좋아했었다. 하지만 아빠는 나뭇가지가 집 가까이 가면 집을 망치기 때문에 그 나무의 가지를 잘라버렸다. 딥스가 그 나뭇가지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게다가 딥스가 그 나뭇가지를 만지다가 떨어질까봐 딥스의 방 창문에 두꺼운 철망을 치기도 했다. 아이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권위적이고 메마른 아빠. 그래서 딥스는 그런 아빠를 모래 속에 파 묻어버릴 만큼 미워하고 있었다.딥스를 읽으면서 마음이 무척 아팠다. 상처 입은 어린양 딥스. 아름다운 그 아이를 그렇게 병들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은 가족내에 있었다. 딥스의 부모에게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딥스가 병들기 전에 부모가 먼저 마음에 병이 들어있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부모와 상담이 필요한 것 같다. 책에서 보면 딥스의 성장 배경을 딥스의 어머니가 이야기하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딥스의 부모처럼 완벽함을 원하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들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꺼려 할 수 있다. 하지만 딥스의 문제가 딥스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에서 파생된 것인 만큼 부모님들의 노력과 협력이 꼭 필요하다. 특히 아이를 다룰지 모르는 아빠의 경우 꼭 부모 교육을 받도록 권고 하고 싶다.만약에 내가 어린이 선생님 이였다면 하는생각을 해보며, 내가 맡고 있는 반에 이러한 아이가 들어온다면 정말 힘들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딥스에게는 제제보다는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딥스의 이야기를 들어주도록 노력 할 것이다. 딥스는 항상 외로웠다. 그나마 제이크 아저씨가 딥스와 이야기를 나누어 주기는 했지만, 부모의 태도로 보아 그 외의 다른 사람들과는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해와 애정을 가지고 딥스의 이야기를 들어주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액슬린 선생님이 하셨던 것처럼 지나친 관심보다는 아이의 말에 반응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또 유치원에는 항상 너를 기다리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낯을 많이 가리지만 내가 먼저 가서 볼을 비비고, 안아주고,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면 처음에는 반응이 없더라도 얼마 후에는 먼저 다가와서 나를 안기도 하고 인사를 하게 될 것이다. 딥스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점은 딥스가 충분한 애정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딥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격려를 많이 해줄 것이다. 딥스의 부모는 딥스를 창피해하고 숨기기만 했다. 긍정적인 격려보다는 창피해하면서 아이를 무시하는 일이 더 많았다. 딥스의 아버지가 액슬린 선생님의 놀이방에 딥스를 데리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딥스의 아버지는 딥스가 하는 말을 다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었다. 무언가를 잘 해냈다면 긍정적인 격려를 해주어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우리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아이를 위해 노력해야할 제도적 문제를 예를 들어보겠다. 첫째, 요즘은 통합 교육을 한다고 하여 일반 유치원에도 특수한 아동들이 입학을 한다. 하지만 통합 교육을 부르짖기만 했지, 그를 위한 법적인 제도나 환경을 잘 이루어져있지 못하다. 특수 아동을 다루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 단순히 사랑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유치원 교사들은 특수 교육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들이 준비되어있지 않다. 따라서 통합 교육’을 하기 전에 교사들에 대한 특수 교육이 먼저 의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둘째, 특수 교사 채용과 시설에 대한 법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일반 유치원에 특수 교사가 있고, 특수 아동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는 놀이방등이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환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특수 교사를 직접 채용하지 않는 다고 하더라도 전문가가 정기적으로 특수 아동의 상태를 돌보면서, 유치원과 연계되어 치료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셋째, 놀이 치료사, 음악 치료사 등을 육성하기 위한 체계가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놀이 치료사, 음악 치료사 등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길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한다. 개인적인 관심으로 놀이 치료사가 되는 방법을 알아본 적이 있는데, 나라에서 정한 일괄적인 방법이 없고,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대책이 필요하다.마지막으로 부모 교육의 의무화이다. 딥스의 경우 부모님에게 문제가 많았다. 유아는 능동적이고, 사랑 받아야 할 존재인데, 딥스의 부모는 딥스 뿐만이 아니라 유아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조차 알고 있지 못한 듯 했다. 대학 내에 부모 교육강좌를 의무적으로 수강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I'am Sam을 보고...지난 6월 오랜만에 영화파일을 하나 받게 되었다.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친구는 10분만에 눈물이 쏙 나온다는 아이 엠 샘을 받아 보라고 하였다. 그날따라 왜 그리 감동 받을 수 있는 따듯한 영화가 그리웠는지 평소와 는 달리 잔잔한 감동을 내 마음속에서 원하고 있었나 보다. 영화를 보기 전 인터넷으로 아이엠셈 평을 쭉 훑고 예고편도 보았다. 예고편에 나는 8살 아빠는 7살 이라고 나와서 무슨 소린가 했다. 알고 보니 아빠인 샘은 지적 장애로 7살 지능밖에 가지지 못한 것이다.
    사회과학| 2004.05.25| 4페이지| 1,000원| 조회(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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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성호의 아름다운 병
    새로운 시의 도전함성호의 시는 지금까지 배운 시들과 많은 차이가 있다.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알 수 없는 시들이 많아 시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가 건축가였기에 시도 건축물처럼 쓴 것이라 생각된다. 건축물은 각이 딱 맞게 제대로 지어야겠지만 시는 체계성을 맞추어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건축물처럼 쓴 시라고 생각한 것은 고민 없이 그냥 뚝딱 써버린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건물을 지을 때처럼 순식간에 써버린 낯선 시들이 많았다.시는 개념을 언어로 옮기는 것이고 건축 또한 개념의 작업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가 쓴 시들 대부분이 지금까지의 많은 시들과는 다르게 공감할 수 없었고 가볍기도 했기 때문에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80년대의 회상 시들을 공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의 시는 386세대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잘 못 그린 것도, 누가 방해를 한 것도 아닌데 그는 세상을 일그러지게 본다. 시 속에서는 그의 한숨소리가 가득한 듯 하다. 일구구팔년 가을 에서 느낄 수 있다. ,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였기에 시인은 사전처럼 설명을 하기도 하고 그림도 그려 넣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해를 시켜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타인과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불화에 젖어서 시를 쓴다는 것이다. 함성호 시인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아픔을 상기시키는 것이 된 것이다. 아름다운 병 에서 라고 하면서 의지를 가지게 된다. 그 의지의 자리는 이전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에는 이기는 것 보단 버티는 것이 나았던 것이다. 내가 태어난 그 때에 시인은 이미 나이를 먹어 고민에 빠져있었다고 하니 내가 이 시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인문/어학| 2004.05.25| 2페이지| 1,000원| 조회(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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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정에 대한 이광수론
    어설픈 계몽 소설 무정이광수가 총독부의 기관지인 에 연재한 장편소설은 새로운 세대가 구축하고 있는 세계 인식과 현실 감각의 한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이 남녀간의 애정 문제를 축으로 전통과 근대의 긴장과 갈등 구조를 풀어나가 소설적 재미와 함께 작가의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사에서 남녀간의 애정문제는 이래 해묵은 소재였다. 그러나 에서는 애정문제가 단지 소설적 재미를 더하기 위한 장치에서 벗어나 작품의 근본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이 소설에서 다루어진 자유 연애의 사상은 인간관의 근본문제에 기초하고 있다. 즉 신의 예정 조화에 따르거나 공동체와의 관계에 긴박된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원리에 따라 스스로 행위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해서 근대적 자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개항 이후 지식인들이 추구해온 근대 지향이 이제 인간본성에까지 미치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그러면 에 나타난 역사인식은 어떠한가? 이광수는 이 소설에서 우리 사회가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진보를 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과제는 여전히 봉건인으로 남아 있는 대다수 백성에게 '근대'라는 교리를 '계몽'하는 것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근대 지향은 외면상 변화만 주목할 뿐 식민지라는 본질은 외면하고 있다. 이렇게 작가의 역사 인식 속에서 '근대와 계몽'이 현실에 뿌리내리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에서 그리는 근대적 자아가 우리에게는 살아 있는 인간형으로서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역사신문 제 6권 3호에서 인용 -계몽 선각자로서의 이광수무정 의 주인공인 이형식은 다중인격적인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갖는 의식적 알관성이 없으며, 혼란된 상황에 대한 뚜렷한 갈등도 보이지 않는다. 이형식의 고뇌는 작은 일들이 곁가지들만 무성할 뿐이다. 이형식이 영채에 대해 갈등하는 것은 그를 사랑하거나 혹은 그를 사랑하지 않거나, 그의 신분을 중요하게 여겨서가 아니다. 은인의 딸을 구원하긴 해야 하는데, 아직 잔존하는 유교적 가치관에 비추어 보니 그의 신분과 자신의 신분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영채는 아름다운 여자로 젊은 보통 남자인 이형식은 끌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갈등조차 그다지 깊지 않기 때문에 눈앞에 닥친 선형과의 결혼과 유학의 기회를 기뻐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형식의 혼란은 유교적 가치관에서도 근대적 가치관에서도 편을 들어주지 못하고 현실이란 막강한 벽 앞에서 가장 자신에게 이로운 선택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이러한 양상이 나타난 것은 이광수가 지닌 시대적 혼란이 이형식에게 그대로 보여 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대적 전형을 창조해야겠다는 욕심이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적 인간형으로서의 이형식은 지식인으로써 깨달음 의 인간이다. 이광수는 이형식을 선각자로 추켜세우는가 하면, 그를 아직 덜 깨인 사람으로 깍아내리곤 한다. 이는 이형식이라는 인물이 어떤 게기가 주어지면 얼마든지 각성할 수 있지만, 그를 지배하고 있던 고전적인 가치관과 인간적 이기심들이 이를 방해한다는 설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형식이 갖게 되는 민족 계몽 의지나 인류애 등은 스스로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한 장식에 불과하다. 이형식의 깨달음이 단순하고 얄팍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무정에서 나타나 있다.사람의 생명은 우주의 생명과 같다. 우주가 만물을 포용하는 모양으로 인생도 만물을 포용한다.... 사람의 생명도 결코 일 의무나 일 도덕률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인생의 만반 의무와 우주에 대한 만반 의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이는 영채가 자살을 한다는 편지를 남기고 간 후의 이형식의 깨달음이다. 그러나 생명의 소중함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이형식의 개인적 생활에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형식은 영채의 죽음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순간적 애욕에 이끌려 다니다가 그냥 서울로 돌아온다. 그리고 영채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그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당황하게 된다. 애초에 만물의 생명보다는 그 자신의 생명이, 만인의 일생보다는 자신의 일생을 소중하게 생각한 어설픈 계몽지식인이 이형식인 것이다.등장인물들이 한 마음으로 계몽의지를 불태우는 무정 의 마지막 대목은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영채와 마주친 이형식 부부의 갈등을 순식간에 없애 버리고 고전 소설적인 화합의 장으로 마무리 지은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광수는 무정 을 너무 멀리 이끌어 갔다. 환경과 의식이 서로 다른 젊은이들을 계몽의지로 뭉치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애욕이나 인간적인 갈등을 없애 버려야 한다. 이를 위해 우연적인 재해는 소설 구성상에서 꼭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무정 에서 이광수가 소설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시도하려 했던 것이 오히려 소설의 결말을 망쳐 놓았다고 생각한다. 이형식은 고전적 가치관이 머리에 박혀 있는 인물도 아니고 근대적 가치관을 외쳤던 인물도 아니다. 그리고 중간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평범하며, 쉽게 감동하고 체념하고 쉽게 마음을 돌린다. 그 무엇도 이형식에게 절실하지 않다는 것조차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이광수의 자부심은 이형식의 감동과 느닷없는 계몽의지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것은 새로운 갈등이나 인간의 속된 본성에 대한 탐구와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무정 에는 이광수의 확립되지 못한 소설관과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어정쩡한 여인 영채와 선형영채와 선형이라는 두 여인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채란 인물은 이광수에겐 형식의 과거, 민족의 과거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잘 살고 있는 형식 앞에, 분홍빛 장래를 예감하게 해주는 선형과의 만남이 있는 바로 그 날 나타난다. 기생만 되지 않았다면, 신식 교육만 받았다면, 순결한 여염집 색시라면 덥석 안고 싶은 한 여자로 나타난 것이다. 영채가 가진 사고방식 역시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아버지를 구하겠다고 기생이 된 것이며, 아버지의 '너는 형식의 색시 되어라'는 한 마디에 형식을 마음 한 가운데 두고 절개를 지켜간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폭력에 의해 순결을 잃고 그것이 부끄러워 자살하려고 평양으로 떠나는 것 역시 수천 년 동안 우리 여성을 묶고 있던 굴레였다. 영채는 바로 '과거의 여인'인 것이다. 이런 영채에게 새로운 빛을 보여준 이가 병욱이다.아니오. 영채 씨는 지금까지 꿈을 꾸고 지나셨지요. 허깨비를 보고 지나셨지요. 얼굴도 잘 모르고 마음도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마음을 허합니까. 그것은 다만 그릇된 낡은 사상의 속박이지요. 사람은 제 목숨으로 삽니다. 제가 사랑하지 않는 지아비가 어디 있겠어요. 하니깐 영채 씨의 과거사는 꿈입니다. 이제부터 참생활이 열리지요."
    인문/어학| 2004.05.06| 3페이지| 1,000원| 조회(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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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 프랑스의 동거문화 비교 평가A좋아요
    한국과 프랑스의 동거문화 비교1프랑스의 동거문화프랑스 사람들을 한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개방적이고 삶을 즐기기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다. 프랑스의 동거문화에 대해 비디오와 몇 개의 자료들을 찾아보았는데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 할 수 없는 새로운 동거문화였다.먼저 프랑스가 동거 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첫째로는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난 후 남성들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여성들은 그 사이 남성들의 영역으로 들어왔고 남성들이 집으로 돌아온 후 여성들은 가정주부의 역할을 거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여성들은 엄청난 파워와 경제권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프랑스의 5월 혁명으로 기존 사회체제를 부정하며 결혼에 대해 가부정적이고 여성의 지위를 하락시킨다고 주장하였다. 여성의 인권과 평등과 남성으로써의 종속성을 거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 2차대전과 프랑스의 5월 혁명은 프랑스를 변화시켰다.프랑스의 이혼률은 70%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은 대부분 또 다시 결혼을 하지 않는다. 통계자료에서는 결혼을 한 90%정도가 동거 경험이 있다고 한다. 여러 차례 동거를 통하여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이미 프랑스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결혼이란 사랑하는 감정을 법으로 다스리게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언젠가는 변하게 되고 흘러가는 것이므로 법적인 강제적인 무엇으로 다스릴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믿기 어려운 것은 동거는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프랑스에서 결혼 생활을 하다가 이혼할 경우 까다로운 이혼절차 때문에 3년에서 5년 정도가 걸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동거를 더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1990년부터 1999년 까지 동거 커플이 9년간 60%를 넘었다고 한다.비디오에서는 결혼에 실패하여 수차례 동거 생활을 하는 가족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아이들은 대부분 어머니가 맡아 키우며 가끔 바뀌는 새 아버지와 살아가게 된다. 새로운 동거 대상자들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전에 프랑스에서도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부모들이 대부분 이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동거가 사회적 풍속으로 완전히 정착하면서 프랑스 정부는 동거부부에 대해 결혼한 부부와 똑같은 법적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법률혼이 아니더라도 이성간, 동성간 결합을 막론하고 모든 동거 형태를 제도적으로 인정키로 한 시민연대협약(LE PACS)이 체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동거부부들은 각종 법률이나 사회보장제도 측면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 프랑스 이전에도 동거 부부들을 위해 자유결합(UL)이라는 준 결혼 상태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었으나, PACS는 보다 확실한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거는 정식 결혼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지면서도 이혼할 때는 수속이 훨씬 더 간편하다는 장점으로 증가한다고 한다.프랑스의 동거문화는 이미 보편화 되었고 가족의 형태 또한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였다. 프랑스의 어린이들의 절반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다. 아버지의 소중함과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웠다.2우리나라의 동거문화과거에서부터 우리나라는 친족 중심적이고 수직적인 인간관계가 이루어졌고 국가 조직은 친족 집단 연장자가 행하던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었으며 여성은 비주체적인 존재로 권력을 통합하기 위한 혼인 동맹의 매개물로 이용되었을 뿐, 생산물에 대한 권리와 성인으로써의 권리를 상실 하고 생산 능력조차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유교시대의 이러한 모습은 시대가 급변하여 근대 산업혁명으로 인해 국가 경제의 대변화를 거쳐 현대로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 하지만 현재에 사회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여성들의 취업률과 경제적 능력도 성장하여 남녀평등 의식과 더불어 독립심도 증진 되었고, 여성의 취업률 및 경제적 능력 또한 증가함으로써 남성에 대한 의존도가 감소하였고 여성들의 외침에 따라 여성부가 탄생 되었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오면서 호주제 폐지까지 오게 되었다.이러한 사회적 움직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남성과 여성은 동거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사실이다. 동거를 한다면 결혼에 대한 약속이라고 믿고 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 혼인 전 순결 따위의 허황된 욕심만으로 남자들은 여성들의 깨끗함만을 요구하고 있다. 동거를 함으로써 얻게 되는 장점들은 뒤로한 채 문제점만 생각한다. 우리나라 이혼률도 몇 년 사이에 매우 높아졌으며 자신의 질적 삶을 위하여 아이를 포기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에 부딪쳐 동거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것 같다.요즘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계약 동거라는 새로운 형태의 동거가 생겨났다. 동거 사이트도 매우 많이 생겨났고 카페도 생겼다. 사이트에서 만나 계약으로 이루어진 커플이 몇 개월에서 몇 년 정도 같이 살다가 마음이 맞게 되면 결혼을 하는 것이다. 동거는 전적으로 개인이 판단하는 문제를 넘어 급증하는 이혼률, 이혼에 따른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알선 사이트의 게시판에 단순한 섹스 파트너를 구하는 글들이 다수 올라와 있어 매춘 알선 사이트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많다.우리나라에서의 동거는 프랑스의 동거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는 결혼을 위한 동거를 하는 것이지 동거를 위한 동거는 생각하지 않는다. 동거를 했다는 사실이 결혼 후에 알려지게 되어 이혼당한 사례를 본 적도 있다. 여자로써 동거를 한 것은 마약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것과 같이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동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 프랑스처럼 새로운 형태의 합법적인 동거가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대부분 우리나라 여자들은 동거를 하고 싶어 하나 숨기고 싶어 한다.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의 여성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에 물들여져 있는 것이다.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는 남성과 여성들이 자신의 배우자를 단 한번에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평생을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불평 없이 살아가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프랑스의 동거문화와 우리나라의 동거문화가 서로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동거를 거부하기만 하는 우리나라와 개방적이기만 하는 프랑스와 절충된 동거문화를 만들어 낸다면 사회문제를 줄일 수도 있고 자신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 2004.05.06| 3페이지| 1,000원| 조회(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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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소설과 드라마 사평역 비교
    소설 사평역과 드라마 사평역 비교지난번에 보았던 『무진기행』도 소설과 다르게 지루했다. 소설로 재미있게 읽었던 『사평역』 또한 매우 지루했다. 소설과 다르게 영상 속에서는 왜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일까?드라마로 본『사평역』은 소설과 매우 비슷했다. 인물의 대사까지도 소설과 매우 흡사했다. 막차를 타러 사평역 으로 오게 된 사람들의 사연들이 차례차례 줄지어 나온다. 소설에서의 인물 이미지 그대로 나타내려고 했다는 것은 첫 화면 사평역의 늙은 역장에서부터 마지막 중년부인까지 자세히 나타난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 있던 중 몰려드는 졸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가끔씩 웃게 만들었던 것은 등장인물의 설정과 촌스러운 음향 효과 소리였다. 그리고 과거를 회상할 때의 어설픈 빛의 등장 이였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전원주의 웃음소리가 예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줄거리를 통해 느끼는 재미와 즐거움은 없었다. 드라마를 볼 때 유심히 보았던 것은 인물들이 소설과 똑같이 대사를 한다는 것 이였다.드라마에서 가장 크게 나타나는 차이점은 중년사내가 허씨의 노모를 찾았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허씨의 노모가 5년 전에 죽어버리고 빈 집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허씨의 노모가 허씨를 기다리며 홀로 집을 지킨다. 그리고 허씨의 노모를 위해 시장에서 샀던 조기를 가지고 와버린 중년사내는 마지막부분에서 기차를 타지 않는다. 그가 허씨의 노모를 다시 찾아 갔으리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소설과 다르게 했던 이유는 시청자들에게 여운을 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중년사내의 따뜻한 마음을 시청자들이 더 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는 모든 인물들과 사평역이라는 공간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영상으로 본다는 것은 상상을 하지 못하게 한다. 인물들도 이미 정해져 있고 배경 또한 다 정해져 있다. 그리고 이미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드라마는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재미로 드라마를 본다는 목적 이였으면 억지로라도 재미를 눈여겨 찾아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드라마를 본 이유는 소설과 영상의 차이점을 찾는 것 이였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을 기초로 영상으로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작가와 감독이 많은 양보를 해야지만 지루하지 않은 영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원작에 집착하다 보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배경만을 중시하게 될 수도 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소설에 원작을 두어 각색하여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 나오는 몇 몇 작품들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한다. 그 이유는 바로 스토리상의 반전과 볼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흥미진진하게 시청자까지 속여야만 흥행에 성공한다. 드라마『사평역』에서는 잔잔한 사연들이 구구절절하게 나올 뿐 시청자들이 눈여길 만한 커다란 사건이 없다. 그리고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불쌍하고 안타깝다고만 생각될 뿐 별다른 느낌이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부분에서 실제로 사평역은 없다 라는 글귀였다.
    인문/어학| 2004.05.06| 1페이지| 1,000원| 조회(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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