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수영? 여성수영?남성수영 여성수영?영화 워터보이즈를 통해 바라본 수영의 남성성과 여성성. 과연 존재하는가?수영 그것은 남성의 성향을 띄는가? 여성의 성향을 띄는가? 이 물음에 대해 아마도 대부분은 남성의 것도 여성의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싱크로나이즈 스위밍은 남성의 성향을 띄는가 여성의 성향을 띄는가? 하고 묻는다면 여성 쪽의 대답이 대다수일 것이다. 이것은 싱크로나이즈 스위밍의 미덕인 표현의 미적 아름다움 추구가 여성적인 인상을 주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과연 여성의 스포츠가 따로 있고 남성의 스포츠가 따로 있는 것인가?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끈임 없는 생존경쟁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가 관건이 되어버렸을 만큼 삭막해져가고 있다.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처럼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인 동시에 사회의 구성원들을 경쟁의 상대로 바라보며 치열한 삶의 다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는 건 어떤 면에서 비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다. 하지만 냉정함이 미덕이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스포츠가 아닌가 한다.그것은 냉정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승자와 패자를 가려내어 우열을 가리고 순위를 매기며 기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권투는 인간의 폭력성을 합법적으로 드러내도록 허락하고 그 안에서 우위를 가리는 경기이다. 비단 인간 대 인간의 대립이 이루어지는 레슬링이나 유도 등의 격투종목의 운동경기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을 내 비취는 역도나 창던지기 또는 마라톤 등의 종목들 역시 결국 타인과의 우열을 가리는 생존 법칙에 충실하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 볼 것은 대부분의 스포츠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 중 너무나 큰 부분은 바로 남성성이 강하게 뭍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흑백논리를 내세울 생각은 없다 근래 주목되고 있는 여자 복싱 등 남성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부분들에 여성들의 진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등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여기서 열거하진 않도록 하겠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힘과 스피드라는 점이며 이것은 모든 스포츠에서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이러한 성향이 남성성과의 관련이 짙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스포츠에 남자용 여자용이 따로 있는가? 분열되어지고 있는 성정체성 사회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어떠한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 근래 선호하는 남성의 스타일은 여성적인 꽃미남 스타일이고 여성들 중 남성처럼 강인함을 뿜어내는 스타일이 선호되기도 한다. 성 정체성이 무너져 가고 있는 징조인 듯 보인다. 그렇지만 스포츠는 이 남성성에의 호소를 더 하고 있기에 그러한 듯 보인다. 남성용 스포츠 그리고 여성용 스포츠! 하지만 인간의 본연에 내재되어 있는 남성의 감정적 요소는 남녀노소를 무관하고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영화 워터보이즈는 2003년 7월부터 9월까지 일본 후지tv에서 방영하던 tv시리즈물이었다. 꽤 인기리에 방영되었었는데 여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싱크로나이즈드란 종목을 남자가 그것도 고등학생들이 한다는 이색적인 점에 출발점을 두고 있다. 드라마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에 의해 영화로까지 제작되어 큰 흥행을 거두었다. 그 줄거리를 잠시 살펴보면 해체 위기에 몰린 타다노 남자 고등학교 수영부의 부원은 수영대회에 출전한 여덟 명 중 8등을 하는 3학년 스즈키 단 한 명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모의 여교사 사쿠마 선생이 수영부를 맡게 되고, 수영부에는 단번에 서른 명의 지원자가 몰려든다. 그러나 그녀의 전공은 수영이 아닌 '수중발레.' 남학교에서도 수중발레가 가능할거라 믿는 사쿠마 선생의 의욕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겁하며 도망치고, 스즈키를 포함한 5명만이 얼떨결에 수영부에 남게 된다. 수영실력은 변변치 않지만 수중발레의 매력에 반해버린 스즈키, 농구부에서 왕따 당해 수영부로 들어온 사토, 깡마른 몸을 근육질로 만드는 게 꿈인 오타, 맥주병에 공부벌레인 가나자와, 여자 같은 사오토메. 이들 다섯 명이 모인 수중발레 팀 '워터보이즈'는 학교와 친구들의 놀림 속에서 그들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수중발레 퍼포먼스를 학교 축제에서 해 내는 것이다. 발생 자체는 그다지 기발해 보이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금기되는 것들에서의 탈피는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주는 신선함이 있다. 싱크로나이즈드 즉 수중발레는 남성종목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국제적인 기준이며 또 국내 실정이다. 올림픽 싱크로나이즈 종목에도 여자부만 있다 미국의 남자 수중발레 선수 한 명이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하려고 그랬는데 결국 못 나갔다는 이야기를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전문 선수는 아니더라도 순수 아마추어로 수중발레를 하는 남자들이 있긴 있다고 한다. 또한, 올림픽에는 없지만 남자들이 참가하는 수중발레 대회도 있다. 아무튼 각설하고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정인 것이다. 영화의 내용 중 스즈키를 비롯한 부원들은 내내 자신들이 싱크로나이즈드를 한다는 것에 대하여 부끄러워하는 내색이 역력하다. 스즈키는 행사 당일 무대에 오르기 바로 직 전 까지도 좋아하는 여학생 때문에 풀로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적인 갈등의 요소로 사용되어진 이러한 부분들이지만 역설적으로 돌아보면 남성이 싱크로나이즈드를 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갈등의 요소로 사용되어질 수 있는 우리의 사회, 아니 세계적인 사회적 추세를 반증해 주는 것이다. 수중발레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일컫는 말로써 경기 종목은 솔로 듀엣·팀의 3종목이 있고, 경기의 참가자는 규정종목과 선택종목을 연기해야 한다. 연기시간은 솔로는 3분 30초, 듀엣은 4분으로 규정되어 있다. 5∼7명의 심판원이 완수도와 음악과의 동조, 연기·아름다움 등에 따라서 채점을 한다. 그렇다면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종목에 여성만이 참가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그 유래를 찾아보면 수중발레는 처음에는 스포츠가 하닌 쇼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었다. 싱크로가 명실 공히 스포츠로 인정받게 된 것은 1945년 미국 체육 연맹이 처음 국내선수권대회 종목으로 채택하고 부터이다. 이때부터 싱크로는 쇼가 아닌 스포츠로서 발전되기 시작하였다.싱크로가 스포츠로서의 면모를 이룩한 가장 오래된 경기기록은 1892년 영국의 요크샤 에서 처음 열린 여성만의 대회를 들 수 있는데 여성들만의 경기였다는 점이 이채롭다. 이때 부터였을까? 싱크로나이즈 스위밍 수중발레는 남성들과는 잘 맞지 않는 이미지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 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영화 워터보이즈에서 이들은 수중발레를 하겠다는 것에 대하여 주위 친구들의 놀림의 대상이 된다. 선생님 역시 장난으로 받아들이곤 해버린다. 때문에 관객들은 주인공들과 한 편이 되어 이들을 무시하는 무리들을 깨부수기 위해서라도 꼭 보여 주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키우게 되는데 이 시점에서 관객은 왜 수중발레를 하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웃기게만 생각하는가? 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바로 금기가 왜 금기인가 하는 원론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남자가 수중발레를 하면 안 된다는 어떠한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빌리 엘리어트라는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있었다. 유년기에 복싱을 배우는 것이 당연시되던 영국 북부의 작은 마을에 살던 빌리라는 소년이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고 싶어 하는 발레를 하면서 행복을 찾아낸다는 소소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와 워터보이즈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주제가 있다. 그것은 사회적인 편견과 보수적인 사상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꿈을 꺾을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길을 뚝심 있게 지켜 나가는 것이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라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기획론근래 한국 영화의 흐름에 대하여한국영화는 90년대 중 후반 이후부터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 하면서 한국인만의 정서를 담아내는 특유의 분위기와 색채를 만들어 내었고 한때는 조폭 시리즈라는 신조 장르를 만들어 내는 등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시장을 형성하면서 성장해 왔다. 조폭 시리즈뿐만 아니라 코미디/엽기 때론 호러에 이르기 까지 비약이 될지는 몰라도 작은 시대적 구분을 지을 수 있을 만큼 유행 아닌 장르의 유행을 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의 장르가 흥하면 유사 영화들의 복사 본 들이 속출하고 그것들이 식상해 지기 무섭게 영화인들은 그 기본의 장르를 비틀어 새로움을 과잉 홍보하며 판매하려 했다. 영화적 상품이기 이전에 영화적 예술품이라는 인식이 사실은 무색한 것 같아서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지 않나 싶다. 그와 더불어 최근 유명 여배우 이은주씨의 자살 사건은 영화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으나 이 또한 하나의 이슈로 쉽게 불씨가 꺼져 버렸다. 본인은 이러한 한국 영화 또는 한국 영화계의 상업적 흐름에 관하여 진정한 영상/영화 예술을 표방하는 영화인들의 자세가 어떠한 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 하고 싶다. 한국영화의 장기적인 발전을 바라보았을 때 옳은 현상인가 아니면 한시 적인 , 너무 짧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길지도 않을 붐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결정적인 이유가 되진 않았지만 흥행만을 바라본 영화 제작업자들의 안이한 태도는 우리 배우들과 영화인 그리고 영화를 좀먹고 있는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에 대한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이전에 2005년 이후 개봉한 영화들을 통해 바라본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도록 하겠다. 우선 너무 거만해 진 것인지 군기가 빠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것 인지 모르겠다. 헐리우드 영화들을 보면 그저 돈을 쏟아 붇고 펑펑 터지는 액션을 제외하면 볼거리가 없다고 아우성치던 90년대 후반. 이때는 정말 한국영화들의 애틋함. 작은 소재의 신선한 시선과 그 감독들의 감성적 풀이법들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이주의 개봉작란에 소개된 영화들을 바라보노라면 관객들의 입맛. 단지 현재 이주 개봉작으로 바라본 입맛은 단연 외국 수입영화 들이었다. 코러스, 레이, 네버랜드를 찾아서, 피와 뼈(한국인 감독), 스노우 워커, 숨바꼭질, 나인야드2 등등 넘쳐나는 뷔페식의 다양한 소재와 줄거리들로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에 반해 파송송 계란탁(코미디), 레드아이(공포), 제니, 주노(적어도 이슈화되기를 노린 청소년의 성문제), 등등 그렇고 그런 뻔한 장르의 답습이 예상되는 영화들만 스크린을 채우고 있다. 관객들은 더 이상 한국영화가 국산이기 때문에 표를 사는 애국자들이 아니다.
금리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주가의 변동에 악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요인을 악재라고 하는데 시장외적인 악재와 내부적인 악재가 있다 금리 인상, 경기침체 등과 같이 장세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시장외적인 악재라고 하며, 신용거래의 과다나 대주주 또는 기관투자가의 대량매도 등과 같은 것을 시장내부의 악재라고 한다 반대로, 호재는 시세를 올려 줄 수 있는 좋은 재료를 말한다. 주가 변동은 이렇게 경제적, 경제외적, 시장내부, 기업개별 요인등이 있는데 금리는 이중에 경제적 요인에 포함된다. 경기가 좋거나 나빠지거나 또는 경제가 성장하거나 통화량의 증/감소 등이 주가에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경제적 용인의 세부적인 사항을 살펴보면경제적요인경기금리경제성장통화량물가환율경상수지주가상승확대하락상승확대하락인하흑자주가하락축소상승하락축소상승인상적자위의 표와 같이 주가의 상승과 하락에 영향을 끼치는 경제적 요인은 경기 금리 경제성장 통화량 물가 환율 경상수지등 그 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있다. 은행은 5~6%정도의 예금 금리와 7~8%정도의 대출금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예금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 만약 금리가 4~5%정도로 하락을 하게 되었을 때 은행에 예금을 하기 보다는 주식에 투자를 하는 편에 훨씬 낫겠다라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에 투자자는 늘어나고 당연히 주가는 상승하게 된다. 반대로 금리가 상승하여 6~7% 가 된다고 했을 때 위험성이 있는 주식에 투자를 하기 보다는 안전하면서도 이자가 많이 붙는 은행에 예금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여 은행으로 발길을 돌려 주식에 투자는 줄어들고 주가는 하락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꼭 그렇다고 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금리와 주가의 관계는 둘만의 문제로 변동이 심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타 문제 (위 표에 제시된 경기, 물가, 통화량 등등)와 상호관련이 있기 때문에 전체를 바라보아야 한다.한 예로 들면 전쟁으로 인해 석유값이 오르고 있다. 그로 인한 여파를 예를 들어 본다면 석유값이 올라감에 따라 외부로 나가는 국고($)는 원가에 비해서 많은 양이 지급되어 나가게 되며 경상수지는 적자로 될 수 있다. 그에 따라 국내의 석유 사용기업들은 제품의 가격을 올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물가가 상승하게 되고 국민들은 비싸진 물가로 인해 예금을 할 여유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예금을 유치하지 못한 은행들은 예금을 부추기기 위해 금리를 상승시킬 수 있는데 이렇듯 물가가 상승하고 경상수지가 적자가 되어 금리가 상승하게 되면 주가가 하락하게 되는 시나리오가 나오는 것이다. 극단적인 이야기로 치닫아 버린 듯 하지만 이렇듯 단순한 논리로 알 수 있듯이 금리는 그 자체로써는 변동 요인이 불분명하며 여러 사회적인 현상들과 맞물려서 그 추이가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여러 요인들 중 주가의 상승과 하락역시 여러 가지 여건들과 맞물려서 그 변화가 이루어진다.
「유린타운」을 보고‘즐거움과 감동, 휴머니티 but 좌절과 한계가 공존하는 오줌마을’10월 23일 목요일 나는 형과 함께 이 뮤지컬을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자취를 하는 나로서는 서울 행은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하지만 과제이기에 아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양재 행 통학버스에 몸을 실었다.군대가기 전 1,2학년 때 과 친구들과 함께 뮤지컬을 한번 보긴 했다. 그래서 그런지 뮤지컬이라는 것이 예전 처음에 보았을 때는 낯설고 멋있고 환상적이라는 막연한 느낌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왠지 종합예술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유린타운이 어떠한 내용인지는 전혀 모르고 간 상태였지만 뮤지컬이라는 것에 대해 재미는 있겠구나라는 생각은 들었다. 뮤지컬은 춤과 노래, 그리고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담겨있기에 정극보다는 재미있었다. 극장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무지 많았다. 평일 저녁인데도 객석은 꽉 찼다. 사람들의 문화수준이 높아져서인지 유린타운이 그 정도로 재미있는지... 아무튼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더욱 기대가 되었다. 시작하기 전에 객석에서 어슬렁 어슬렁 대던 배우들이 연주의 시작과 함께 객석 뒤에서부터 무대로 등장하고 불이 꺼지고 막이 시작됨을 알리는 ‘여기는 유린타운~~’이라는 노래로 극이 시작되었다.시작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흥미로왔다.사실 내가 봤던 뮤지컬은 대형극장에서 했던 것이라 관객과의 거리가 멀었지만 유린타운은 극장 자체도 뮤지컬 공연장 치곤 작은 무대인데 대형극장에서의 스펙터클함은 없지만 가까이에서 관객과 호흡할 수 있고 배우들의 감정 상태나 배우들 간의 호흡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점점 기대가 되고 극에 빠질 수 있었다.유린타운은 1,2막으로 나누어져 공연되었다. 유린타운을 보고 느낀 점을 간단히 말하자면 앞에서 언급했듯이 ‘즐거움과 감동, 휴머니티 but 좌절과 한계가 공존하는 오줌마을’ 이라고 짧게 표현할 수 있다.유린타운의 이야기 구조는 선악구도의 권선징악의 액자구조이지만 또한 해피엔딩도 아니다. 유린타운은 인간의 배설의 본능을 돈이 있어야지만 해결할 수 있다는 약간은 과장된 설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돈이 없는 스트롱 할아버지는 참다못해 노상방료를 해 결국 사람들이 아주 지독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유린타운으로 쫒겨나게 된다. 배설할 수 있는 공중변소는 배설주식회사에서 운영하는데 악덕업주는 돈을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이에 민중은 봉기를 한다. 그러던 중 봉기의 선봉 바비 스트롱과 배주(배설주식회사)의 사장 딸 호프는 사랑을 하게 된다. 바비 스트롱은 봉기를 하다 잡혀가 결국 배주 옥상에서 죽음을 맞이 하게 되는데 유린타운(오줌마을)이라는 곳이 다른 곳이 아닌 자기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민중의 포로가 되어있던 호프는 민중을 이끌어 선봉장이되어 아버지와 대적하게 된다. 결국 공중변소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지만 심한 가뭄으로 인해 사람들은 다시 고통속에 빠지게 되며 이 극은 끝을 맺는다.유린타운은 어찌보면 단순한 구조이지만 그 구조에서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듯 하다.정말 지저분하고 가난한 동네의 민중들과 그들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배주사장과 경영진들...이러한 구도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유사하다. 또한 이 뮤지컬이 해피엔딩이 아닌 ‘결국 민중의 봉기로 승리를 하긴 했지만 다시 고통에 허덕인다’라는 결말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정말 비극적이고 한계적인 뼈대이지만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음악과 춤이라는 즐거움, 남녀간의 아름다운 사랑등으로 이 지저분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감동적 휴머니티로 이끌어 냈다. 극중 경찰이 이야기는 해피하지 않지만 음악이 해피하기 때문에 우리는 즐겁다라는 말을 했듯이 이 뮤지컬은 정말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있다.
실험 기록 영화론 레포트동성애? 아니 흑인동성애!- ‘풀어헤쳐진 말들’을 보고나서..일반적으로 동성애를 다룬 다큐들의 특성은 음지의 문제를 드러냄으로서 그들의 인권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에 있다. 때론 있는 현상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영화들도 있지만 아직까진 동성애 다큐로서 일반화 된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우리나라 일반인들의 조사 결과 동성애에 관한 의식정도는 - 동성애를 이해는 하지만 나의 일과는 관계가 먼 일 - 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얼마전 하리수 등으로 성이라는 정체성의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와 사회적으로 말이 많아졌었지만 사실상 언론과 매체에서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된 것이 사실이다. 오랜 기간 동안 문제시 되었던 사안이지만 정말 현실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쉬쉬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사회의 인식은 거론과 논란거리로 부각시키는 문제조차도 막으려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동성애 영화 중에, 특히 흑인 동성애라는 생소한 단어에서 오는 느낌은 뭐랄까 아직은 의식적 레벨이 안 되는 상황에서의 문제랄까 뭐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말론믹스의 영화 ‘풀어헤쳐진 말들’은 흑인 게이들의 일종의 비디오 시집이랄까 아무튼 그의 감상을 영상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나 역시 동성애에 대한 영화라면 ‘해피투게더’ ‘로드무비’ 정도의, 솔직히 관심도 없었던 사안이었다. 동성애에 혹은 그 문화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탓에 말론믹스의 언어를 이해하기는 정말 힘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흑인들의 ‘스냅’이란 단어가 흑인 게이들에게 차지하는 의미를 냉소적으로 바라본 것 같다.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거짓말이겠고 어느 정도 긍정적(?)인 자세로 영화에 임했을 때 말론믹스의 작품은 게이라는 이미지에 있어서 미국 백인들이 독차지했던 게이다운 모습에서 벗어난 흑인 게이라는 문제를 의식하도록 해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 같다. 말론믹스가 왜 이러한 흑인 게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말론믹스는 분명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위해 기꺼이 그는 영화의 내부로 파고 들어가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려 한 것 같다. 그들과 함께 입고, 먹고, 마시며 생활 깊숙이 들어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찾아낸 흑인게이들만의 언어, 그것은 그저 자신들이 존재한다는데 대한 깨달음과과 기쁨을 담고 있다. 그것들은 자신의 생활하는 모든 공간에 끌려 다니지 않고 자신의 분노, 자신의 흥분을 내색할 뿐이다. 그들만이 통하는 눈빛과 언어 그리고 행동만으로 알아 챌 수 있는 말의 특성들이 그들이 비로소 존재함을 일깨워주고 자신과 타인이 만나게 되는 통로를 제시해 줄때, 그 말들은 시처럼 다가온다. 말론 릭스는 그 시 속에서 흑인게이들 정체성을 이해 할 수 있는 뭐랄까 미래라고 할까 그것을 찾아냈다고 보여 진다. 영화는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동성애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하나,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이러한 생소한 영상언어, 혹은 문제점들에 대하여 더 많은 조우를 하고 더 많은 생각들을 여러 사람 또는 사회와 공유할 때에 그 인식의 발전을 이루고 비로소 객관적으로 보아주는 시선이 생기는 것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