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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학]수당불교사
    수당 불교동양사학과 강은지목차1. 통일 전 단계까지의 불교의 중국화 과정 1) 중국 불교의 준비기 : 후한 초기 불교의 전파와 한 제국의 멸망 그리고 위진 시대까지 (65-317) 2) 토착화의 시기 : 남북조 시대 (317-589) a. 남중국 : 귀족 불교, 학문 불교 b. 북중국 : 강력한 불교 국가, 실천적이고 정신적인 문제 추구 2. 불교의 시대적 변화 (1) 통일시대의 불교 (2) 수나라의 불교 정책 a.고조 문제의 불교 부흥 b.양제와 불교 c. 수나라 왕조와 천태 지의(3) 당나라의 불교 정책 a. 고조 b. 태종 c. 당대의 관제사찰 d. 내도량 3. 수․ 당 시기의 중국 불교의 종파 (1) 천태종 (2) 화엄종 (3) 현장의 인도구법과 법상종수·당 불교 개관특징 인도에서 전래된 이질적인 종교의 본질을 갖추면서 동시에 중국의 전통적인 문화적 기반 위에 중국인이 실천 수행할 수 있는 불교의 구축 의의 중국 불교의 형성 과거 불교와의 연장 선상에서 유교, 도교와는 다른 독자적 길을 걸어감 한족 문화 전체와의 완전한 융합 인도 불교와는 다른 독자적 체계를 갖춘 중국적 종파의 성립(천태, 화엄, 정토교, 선종)중국 불교의 준비기남북조 시기 시대적 상황 한 멸망 무렵- 지식인들의 유학에 대한 철학적 도가사상을 통한 반성 위진 남북조-체제 붕괴를 막기 위한 신도가적 모색 북중국의 변방 민족 지배- 불교가 자리잡게 됨 의탁 불교 격의 불교 토착화 시기 각각 독자적 발전을 해오다가 6세기 말 통일 전에 들어서 상호 교류를 통한 공통의 철학적 관심과 공통의 불교 문화 형성수나라의 불교 정책-문제고조 문제의 불교 부흥 문제의 불교 정책 581, 5嶽에 각각 불교사원을 설치 581,양양․수군․강릉․진양의 네군데에 관사를 설치 582, 전국 45주에 대흥국사 설립 583, 법경으로부터 보살계를 받고 스스로를 보살 황제라 칭함 590, “황제는 삼가 광택사 지의선사에게 묻습니다.” 601년, 세 번에 걸쳐 진행된 사리탑의 건립 시작수나라의 불교 정책-문제고조 문제의 권을 목적으로 하고 있던 정책과 관계가 깊음 문제 시기 불교정책의 결과 독자적 불교의 전국적 통일 및 중국 불교의 형성 기반 마련수나라의 불교 정책-양제성격: 불교에 입각한 치국 진왕시절 임지인 강도에서 고승들을 우대하고, 네 곳의 도량을 설치했으며, 법회를 열고 보시 591, 지의에게 보살계를 청하여 總持 보살이라는 계명을 받았으며, 지의에게는 智者라는 호가 봉헌되었다. 황태자 시절 장안에 일엄사 창건- 장안불교의 성황을 가져옴 즉위한 뒤 동도 안에 4곳의 도량을 건립 609, '합병사탑 合倂寺塔' 목적: 고구려 원정을 위해 승려를 병력으로 차출하기 위해 반불교적 정책인가? 수의 급속한 쇠퇴, 그리고 멸망당나라의 불교 정책-고조시대적 상황: 상식을 벗어날 정도의 국고 손실에 따른 국토의 황폐와 군벌이나 농민이 한꺼번에 난립하는 와중 종교적 정책 성격: 종교통제 형태: 당나라 조정의 관사제도는, 항상 도교의 도관과 병행하여 실시 도교와 불교의 논쟁 621년, 태사령 부혁은 11개 조항을 상소하여 불교사원의 폐단을 논함→ 법림은 폐불론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 → 도사 이중경과 유진희는 수나라의 숭불정책에 대해서 강력한 반격이 전개 고조는 두 종교를 함께 도태시킴 626, 각 주별 절과 도관 수의 제한 내용: 수도에 절과 도관 세곳씩, 각주에 절과 도관 한곳씩으로 제한 이는 실질적으로 도교 우대 정책: 당시 사원과 도관이 5:1의 비율로 존재 배경: 노자를 당나라 황실의 시조라는 주장이 유행하고 이 주장이 황실에 수용당나라의 불교 정책-태종태종 즉위시 배경: 돌궐군 10만명이 장안을 향하여 남하 불교 정책 이중적 종교 정책: 私度僧을 극형에 처해야만 한다는 조서 발표 직후 공양법회 개회 및 사찰 건립 등 637, 도선불후의 조서를 발표 결과: 고조와 태종이 채택했던 기본방침은 당나라 왕조를 통하여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불교는 독자적인 방향으로 비약적인 전개를 이룩당나라의 불교 정책-관제사찰관제사찰 각 주에 동일한 절이름을 가진 사원으로 불교를 국가의 중앙집권기 도구로서의 불교 689, 僞經『大雲經』4권을 제작 690(즉위원년), 장안과 낙양의 두 도시와 천하의 각 주에 대운경사를 각각 1개소씩 설치 결과: 도선불후 정책에서 불선도후 정책으로 변화 정치적 상황 무씨 일족에 의한 궁정 내부의 문란 705, 중종은 무후에게 양위를 요구하고, 황제에 즉위하여 당나라의 국호 회복당나라의 불교 정책-중종불교정책 705, 천하의 각 주에 사원과 도관을 각각 1개소씩 설치하고, 대당중흥사大唐中興寺로 명명할 것을 명령 707, 중흥이란 호칭은 당나라 황실이 중간에 단절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용흥사龍興寺 와 용흥관龍興觀으로 바뀜 도교정책 도관을 부활시켜 寺와 觀으로 삼음 노자의 존호인 “현원황제” 부활 결과: 여전히 국가와 불교의 결탁은 의연히 형태가 바뀌지 않음당나라의 불교 정책-현종'선도후불'정책으로의 선회 장안과 낙양 그리고 각 주에 현종황제의 묘 1개소와 함께 숭현학嵩玄學을 설치 선비와 서민의 가정에는 『노자 도덕경』한질씩을 소장케 함 황제 자신도 노자에 주석을 붙인 『소의疎義』8권을 편수케하고, 그것을 세상에 발표하라고 명령 738, 당나라 왕조 최후의 관제사원 설치성당盛唐(712-762)시기: 돈황 막고굴 제 45굴 협시보살입상과 가섭존자, 사천왕상돈황 막고굴당나라의 불교 정책-내도량성격: 황제와 그 일가의 사적인 불당과 도관 목적 및 용도 궁중 안의 종교적인 법회를 거행 불사 황제와 황실의 사적인 기원이나 구복 선왕의 기일이나 황제의 탄생일에 거행 유․불․도의 3교의 담론이나 강경을 기원: 수나라 왕조 때, 복등전福等殿에 불상과 경전을 안치했던 것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다분히 왕실의 자의적 신앙에 의거하여 내도량의 명실상부한 위치를 잡게 됨태국의 내도량내도량의 흥망성쇠철거 및 승려의 축출: 덕종 부활: 순종 궁정불교의 융성: 문종 내도량의 도교 도량화-천존노군상 안치: 무종 결과: 당나라 불교의 쇠퇴. 당나라 말기 오대의 전란으로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 내도량의 회복: 선종 종합: 내도량은 왕조의 흥망성쇠와 함승이 대립해 온 인도 불겨의 역사적 발전 알지 못하고 모두 석가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임 교판의 등장 남·북조 시대 후반기에 여러 경전의 차이 인식하고 통합 시도 남·북조 시대의 교판: 번역된 경전 전체를 평면적으로 정리하고 통합 시도 통일 시기: 각 경전의 우열과 심천을 밝히고자 하는 분명한 종파 의식으로부터 기존의 여러 고판론을 취사선택하여 종파적 교의 형성중국 불교 종파의 이해 -교상판석敎相判釋 과 종파종파 불교는 자각적 정신주의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 사자상승師資相承: 스스로 얻은 사상에 대해 한 지도자로부터 불법의 진수라는 보증을 받음 종파관념: 자신이 믿는 가르침이 불교 본래의 사상이며 다른 모든 불교가 귀속되는 존엄한 것임을 교리적인 측면에서 뒷받침하고자 하는 사유수․ 당 시기의 중국 불교의 종파 - 천태종시조: 천태지의天台智顗 계보: 열반 학파를 수용하여, 남중국 불교(통일 시대 남쪽 변방)의 맥을 이어감 교리의 핵심: 지의가 법화경 사상을 석가 교설의 최종적 결론으로 보고 모든 경론을 정리하고 통합하여 법화경 사상에 결합시킨 천태 사상의 교의를 체계화 천태의 교판: 오시팔교五時八敎 오시: 석가의 설법 순서를 다섯 단계로 구분한 교판의 기준 팔교: 설법의 방법과 형식에 따라 넷으로 구분한 '화의의 사교'와 설법의 내용에 따라 넷으로 구분한 화법의 사교 교판의 원리: 석가에 의해 설파된 모든 불경은 내용의 난이도나 설법 대상의 수준에 따라 방법과 형식과 순서를 서로 달리 하지 않을 수 없음 천태교의 중국불교사적 의의 중국 고유의 사상과 민속을 발판으로 삼아 중국인에게 적합한 불교를 형성하고, 스스로 실천수행 수나라의 남북통일을 전후하여 중국불교사의 시대를 구분하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수․ 당 시기의 중국 불교의 종파 - 화엄종초조初祖:두순 枓順(557~640) 계보: 지론종과 남북불교를 종합적으로 수용 『화엄경』: 석가가 최고의 깨달음을 얻어 그 상태를 어떤 특정한 설법의 대상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스스로 음미하고 있는 내용 영향: 통일 重重無盡: 천태종의 매개적 일승교와 구별되는 본래적 일승교一乘敎수․ 당 시기의 중국 불교의 종파 - 유가瑜伽불교삼론종의 교학과 유가불교유가불교-현장의 서역 여행기록의 근거: 『대당서역기』 기간: 17년 목적 불제자로서 석가의 자취를 순례하려는 일차적 목적 당시 전래된 불전의 미구비와 불충분한 번역에 대한 의심과 불만 새로운 불전의 도입에의 열망 등 경로 장안-과주-천산-이오국-고창국-언기국-구자국-능산(파미르 고원)-열해熱海(이시쿠쿠르)-샤이슈국(타시켄트)-사마르칸드-활국(아프가니스탄령)-박트라-대설산(힌두쿠시 산맥)-바미얀-카피샤국-간다라-인더스 강-나란다사(목적지, 4년 체류)유가불교-현장결과 새로운 불경의 전래 총 657부(이 중 76부 1347권을 번역 및 신역) 내용: 법상종의 교학에 관한 것 법상종의 성립 현장 문하의 장안불교: 중국 뿐 아니라 신라나 일본의 유학생에게도 큰 영향도교와 불교의 대립불교 전래 초기부터 시작된 논쟁 당 고조 노자·공자 ·석가의 순서로 배열, 도선불후 정책 621, 태사령 도사 부혁: 사탑승니사태寺塔僧尼沙汰 11조 상소 622, 불교의 반박:법림의 파사론 , 명개의 결대론 , 이사정의 내덕론 도교의 재반박: 이중경의 십이구미론 , 유진희의 현정론 법림의 변정론 태종 혜승과 도사 이중경 및 채황의 논란 도사 주세영의 소청에 따라 법림이 유배됨 고종 도교와 불교의 대립이 격렬해짐 도교, 노자화호경 위찬 불교, 도교측 경전의 진위를 논하고, 노자 2편 이외의 것 폐기 주장 688, 논쟁 결과 노자화호경 폐기 705, 도관에 그려진 화호성불상 과 사원에 있던 노자의 초상화 철거, 화호경 의 금지도교와 불교의 대립현종 738년 각 주에 개원사관 설치 과거 과목으로 도덕경, 장자 등을 제시 무종 조귀진이나 유현정 등 도사들의 강력한 폐불 상주 819, 유학자 한퇴지의 논불골표 폐불조치 유·불 ·도의 삼파전으로 번지게 됨참고문헌 역사 속의 중국철학, 중국철학회, 예문서원, 1999 중국불교사, 토오도오 교순, 대원정사, 1992 중국의how}
    인문/어학| 2007.05.19| 34페이지| 1,000원| 조회(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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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골목의 역사 (기녀들의 삶)
    뒷골목의 역사목차Ⅰ 서문Ⅱ 본문ⅰ 기녀란 무엇인가?ⅱ 제도적 장치 속의 기녀1. 《춘향전》의 춘향을 통해 알아본 기생의 사회적 지위2. 기녀의 구분(1) 관기a. 경기가. 의녀나. 침선비다. 장악원기b. 지방기(2) 사기私妓a. 유녀화랑b. 여사당패c. 색주가(3) 세 등급에 따라 나눈 기녀a. 일패b. 이패c. 삼패3. 기녀제도 존폐논란ⅲ 기녀의 삶1. 기녀의 교육2. 기녀의 경제(1) 일반기생(2) 의녀(3) 기부3. 기녀의 성적 역할4. 기녀의 외양(1) 의복a. 머리b. 쓰개c. 저고리와 치마ⅳ 명기를 찾아서(1) 명기의 기준(2) 황진이ⅴ 송강첩 강아1. 송강첩 강아2. 송강마을을 다녀와서Ⅲ 결문★ 서울역사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고려대학교 박물관을 다녀와서※ 참고자료◎ 입장권Ⅰ 서문처음 이 과제를 받고 주제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주변인들에게 기녀에 관한 조사를 하려 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은 자료를 얻을 수 있을까 자문을 구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왜 하필 그거냐?’라는 것이었다. 처음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으며 ‘기생’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고 나온 결과는 참담했다. 기녀에 관한 글들이야 차치하고서라도 개인 싸이트에 올라온 글의 제목이나 내용들은 기녀를 깎아내리다 못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음란한 농지꺼리를 해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지 검색에서 나온 갖가지 성인사이트 출처의 기녀 이미지는 기녀의 혹은 게이샤의 옷차림을 한 음란물이었다. 일반인들의 기녀에 대한 관심은 남성들의 아름답고 화려한 창기의 외모와 삶에 대한 성적 환타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역사적으로도 그들을 올바르게 조명한 것은 근대에 들어 이능화에 의한 것이 처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분명 그들도 자신의 삶이 있었을 터인데, 娼妓로만 비추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평소 여성사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여성 운동을 하겠다 생각해 본적도 없었던 내가 평소에는 결벽증 환자처럼 말만 나와도 진저리를 치는 ‘작부’의 원형인 기녀에 대해 조사하겠다는, 급수비의 직무분담을 하는 것도 호장의 권한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고을 아전과 관기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관기는 공물公物이라 여겼기에 그 생사권도 관리들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다.2. 기녀의 구분(1) 관기관기는 관에 속한 비婢였으므로 공적 의무로 역役을 행해야 했다. 따라서 경기의 경우는 국연國宴에서 주악奏樂과 가무를 의무적으로 실시했다.관기들은 대개 15세부터 50세까지 기녀의 소임에 종사하였는데 10대의 어린 기녀를 동기童妓, 이와 반대의 경우는 노기老妓, 퇴역한 후의 기녀는 퇴기退妓 또는 퇴물退物이라 하였다. 이렇게 볼 때 기안에 수십 명이 있다 하더라도 기녀로서 제대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인원은 이보다 훨씬 적은 숫자임을 알 수 있다.기녀로서의 구실이란 사치노예를 말하는 것인데, 동기에서부터 20대까지를 말한다. 관기가 30이 넘으면 수청기들은 뒷전으로 물러나 노동을 해야 했다. 50에 퇴직해야 된다면 조카나 딸 등 하나를 들여놓아야 물러날 수 있는데, 이것을 대비정속代婢定屬이라 한다.기녀나 노비는 그 신분이 기안妓案, 비안婢安에 올라 있으므로 거기서 빠져나오려면 속신贖身을 해야 했다. 고관이나 부자의 소실로 들어가면 일생을 평화롭게 생활하였는데, 이런 경우 돈을 내고 사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경로를 밟아야 했다. 퇴기가 되면 이렇게 양반의 소실이 되거나 술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a. 경기경기의 경우 대개 80여명 전후로 하였는데 이 수로 진연에 등장하는 무원수舞員數보다 적어도 40~50명이 부족하여 지방에서 임시로 선상된 기녀로 충원하였다. 정재呈才 종목이 많아도 중복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가. 의녀의녀는 태종 6년 여인의 진료를 담당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약방기생이라고도 불렀다. 의녀는 의업에만 종사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대개는 종의 딸 출신인 데다가 연산군 때에 온갖 제도가 엉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가무에 동원되어 기생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나. 침선비궁중에서 왕실의 옷을 짓거나 바느질하는 기녀를 침선비針線婢라 하부에서의 반강제적인 구분이었으나 후에 가서는 스스로 각 ‘패’간의 격차를 인식, 구분했다. 그 이전에도 삼패와 15등급의 구분이 있어왔던 것으로 보인다.구한말 이러한 기준을 두고 그들끼리 서로 신경전을 벌인 일이 있었다. 1910년 《문예구락부》 제 16호 제 13호 ‘한초운’의 ‘조선의 기생’ 부분에 수록된 부분이다.조선의 기생에는 대체로 세 종류가 있다. 일패, 이패, 삼패가 그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일패이고, 이패란 상당히 낮은 지위로 예전의 고등내시격에 해당한다. 삼패는 갈보라고 하는데 숙장여랑宿場女郞 또는 밤거리 배춘부 정도의 수준으로 지위가 가장 낮다. 지난해 기생들 사이에서 서양우산이 수입되었을 때의 일이다. 일패, 이패, 삼패 할 것 없이 마치 서로 경쟁하듯 모두 진홍 우산을 쓰고 다녔다. 그러자 일패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일패와 삼패가 구별되지 않아 불합리하다고.그러자 삼패가 말했다. “이 쪽이 알 바 아니다. 돈을 내고 구입했는데 불만이라고 해서 참을성 싶으냐”며 그렇게 서로 옥신각신분쟁을 거듭하다가 결국에는 진홍은 일패에 한해서, 이패는 분홍색, 삼패는 그 외의 색깔로 정해서 마침내 결말을 짓게 되었다. 그래서 기생의 붉은 양산은 일종의 등록상표가 되었다.a. 일패우선 예전부터 있어왔던 관기와 같은 기녀의 신분 중에서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일패가 있다. 《악학궤범》에서는 ‘여기女妓 100인 모두 단장을 입고 수화 ? 칠보잠과 금비녀를 머리에 꽂고 보로와 홍대를 두른다. … 대비전을 위한 진풍정 및 중궁 예연의 여기와 관현맹인의 수는 임시로 정한다.…’) 와 같이 여러 부분에 걸쳐 궁중 연회에서 동원되는 기녀의 수와 복장 등을 정하였다. 유교적 전통이 강했던 조선조에서 궁중으로 불러들인 기녀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음란하고 매춘을 상습적으로 하는 성을 파는 여성이 아닌 예기와 재능, 가무를 파는 여성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관기였으며, 이후 구한말까지도 양반들의 고급문화를 양산?향유하는 그룹의 성격을 유지하였으므로, 일패라 국가 행사 때 선상 되었던 기녀들이 서울 지방에서 행해지는 교육내용을 지방에 유통시키는 데에 일조를 했을 것이라는 점과 각 지방마다 노래와 춤, 악기 등에서 특색이 있었다는 점을 통해 약간의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통춤에는 학춤, 검무, 칼춤이 있었는데 진주의 교방에서는 8명의 여자들이 군복을 입고 추는 검무를 잘 했다고 하며, 제주 기녀는 말 타는 재주에 능했다고 한다.지방에 따라 잘 부르는 노래도 달랐는데, 관동의 기녀는 '관동별곡'을 잘 했고, 평양의 기녀는 '관산융마'를 잘 불렀다고 한다. 또 호남지방의 기녀는 판소리나 단가를 잘 불렀다고 하는데, 호남지방이 판소리의 발생지이기 때문일 것이다.기녀는 이러한 교육을 거치면서 관아에 소속되면 기녀의 우두머리인 행수기생에게 복종해야 했다. 행수기생은 교방 안의 엄한 규율로 기녀들을 다스렸으며, 기녀들의 하루 일과나 자질구레한 부분까지 통제하였다.2. 기녀의 경제(1) 일반기생기녀의 생활은 흔히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활을 누리는 것은 부유한 양반兩班을 기부妓夫로 맞아 경제적 지원을 받는 기에게만 해당한다. 기녀란 나이 아주 어린 동기童妓로부터 노기老妓까지 다양하며 그 외모 또한 모두 다르니 기녀의 화려한 생활은 일부 기녀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법제상 기녀는 금, 은의 장식과 비단 의복이 허용되었으나 이는 기부妓夫의 경제적 지원이 있는 기녀에게만 한한 것이다.하지만 기녀의 생활生活은 다른 여염집 여인의 생활보다는 사치스러울 수밖에 없고 또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많은 옷과 장식들이 필요했으므로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었다.이런 기녀의 생활 자금은 주로 국가에서 지급하는 사미賜米와 부유한 기부妓夫를 두는데서 충당했다. 그러나 국가에서 지급하는 사미賜米의 양은 극히 적어 기녀의 생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국가에서 보조받는 쌀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기녀는 다른 경제적 수단을 찾아야 했다. 기녀는 공도公度에 나아가 주악奏樂 때 의복의 추양반계층 여자들도 복식에서 하층민 특히, 기녀의 복식을 모방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시대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것이므로, 당연히 이 시기에도 가장 아름다운 여성들로 구성된 기녀 집단의 화려한 치장은 유행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기녀의 생활이나 복식 등의 면에 있어서 당시의 일반부녀의 생활문화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기녀의 복식은 조선후기의 풍속화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에 잘 나타난 있다. 풍속화에 나타난 복식을 보면 일반부녀자의 의복과 기본구조는 거의 비슷하나, 의복 색이나 착장 방법, 장신구 등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있다. 김홍도의 『평양감사 환영도』나 궁중연회 때 정재呈才에 참여한 여령女伶의 복식차림 모습을 그린 의궤도를 보면 어느 정도 옷차림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는 모두 조선 후기의 것으로 전기의 기녀옷차림은 자세히 알 수 없다.(1) 의복a. 머리 조선 중기 기녀판소리 소설과 풍속화를 통한 기녀의 가체머리의 습속은 그림에 나타나듯 과장되고 화려한 수식으로 인하여 사치스러운 형태가 유행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3]때문에 기녀의 얹은 머리가 재물의 낭비와 더불어 사치심이 심해져 영·정조 때에는 발제 개혁을 단행할 정도로 사치가 극에 달했다.머리모양은 자기의 머리나 작은 다리를 드려 길게 땋아 검은 자주색이나 흑색 댕기를 드리워서 크게 틀어 올린 트레머리를 하였다. 외출할 때는 전모, 가리마, 장옷, 쓰개치마 등을 썼다. 동기童妓는 땋은 머리를 하고 댕기를 드리거나 새앙머리를 하여 비녀를 꽂았다. 장옷을 입은 여성서민 부녀는 기녀 머리모양과 같은 틀어 올린 얹은 머리형을 하고 있으나, 기녀의 거대한 가체에 비하여 제머리 또는 작은 다리를 드려 그 모양이 훨씬 작았으며, 노동시에는 수건으로 감싸는 등 휠씬 간소한 형태였다.b. 쓰개기녀계층에서의 쓰개는 더 이상 자기의 모습을 가리는 가리개용이 아니라 장식용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천의, 전립, 가리마 등이 착용되었고 .
    인문/어학| 2006.11.24| 19페이지| 1,000원| 조회(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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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엔탈리즘의 해체와 우리 문화 바로 읽기를 읽고
    『오리엔탈리즘의 해체와 우리 문화 바로 읽기』를 읽고[그림 ] 영화 인디아나존스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사랑의 전화라는 복지재단을 통해 아주 저렴한 가격에 캐나다인과 회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캐나다인은 한국에 오래 체류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몇 달 후에는 동남아시아 쪽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내가 그 사람을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이 불교신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동양의 종교인 불교에 매료되어 동양을 여행하던 중이었으며, 아는 사람의 소개로 복지 재단에서 차비와 식비만 받고 ‘신비한’ 동양인과 가까이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이런 모양이 새겨진 반지를 끼고 다녔는데 모양이 아주 신기하고 마음에 들어서 계속 끼고 다닌다고 하였다. 적어도 그의 눈에 비친 동양인은 신비하고, 정신적이며, 종교적인 존재였다. 동양인 중 한국인은 거기에 ‘빨리빨리’만 붙이면 된다고 하여 강의실이 웃음바다가 된 기억도 난다.사실 동양은 서양인이 보기에도, 동양인이 보기에도 신비로운 곳이다. 대표적인 예로 인도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신의 나라’ 내지는 ‘종교의 나라’이다. 지금은 중국의 자치령이 된 티벳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가 과연 좋은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러한 신과 종교의 나라라는 이미지 뒤에는 서양인의 가치판단기준으로 보아 열등한 것으로 생각되는 비합리적, 비이성적, 비과학적, 신비적 등등의 이미지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양인들만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모델을 ‘서구 근대화’로 삼고 있는 대다수 동양의 나라들이 위와 같은 서양인들의 가치판단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여 동양을 다소 미개한 곳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영화, 책, 광고 등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으며, ‘신비한 동양’은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문화 코드가 되었다. 왼쪽의 그림은 그러한 이미지 재생산에 한 몫을 한 영화 《00여년간의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과거에 비해 먹고 살만해진 그들은 ‘미개한’아프리카와 동양들을 개화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대대적인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훨씬 품질이 좋은 면화를 보다 빠르고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됨에 따라 세계최대의 면화생산지였다가 빈곤국으로 전락하게 된 인도를 150여년 동안 감추어 왔던 발톱으로 무참하게 짓밟았으며, 인도의 정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도인을 미개한 인종이라는 논리를 주입했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의 작가 이옥순은 19세기 제국주의자 영국에게 감염된 우리의 ‘인도(혹은 동양)보기’를 오리엔탈리즘이라 명명한다.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서양의 시각 하에 있는 오리엔트지역, 동양에 대한 인식에 대해 논한다. 오리엔탈리즘의 사전적 의미는 근세 유럽에서 성했던 문학·예술상의 한 조류이며, 이 말에 들어 있는 <오리엔트>의 개념은 고고학이나 역사학에서의 개념만큼 엄밀한 것이 아니고, 극동이나 아프리카 북부까지도 포함한 동방세계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낭만주의의 한 요소인 이국정취를 대표하는 것으로, 동방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상의 동인 또는 제재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이러한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것으로 현 시대의 중요한 저항담론으로 떠올랐다. 그의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인식으로 위에 제시했던 예와 같은 독특한 경험적 시각에 근거한다. 또한 사이드는 동양이 유럽으로부터 규정되는 타인의 이미지로서 동양과 서양이 대조되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우실하는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을 ‘우월한 서양’에 대비되는 ‘열등한 동양’이라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과거의 동도서기론과 반대되는 서도동기론에 비유하였다.하지만 나는 우실하가 지적하는 오리엔탈리즘은 과히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실하가 글을 쓸 당시는 어땠을지 몰라도 요즘 서양은 그들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자아비판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부분은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지만, 오리엔탈리즘의 근원지라 일컬어지는 인도가 치안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성스럽게 생각하는 갠지스의 수질이 좋지 않다거나 하는 것들은 우리가 서구 문물에 찌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좋지 않게 생각되는 부분이니 만큼 우리가 동양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서양권과 일치한다고 해서 그것 모두를 오리엔탈리즘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어쨌거나 우실하는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의 한계 극복의 방법에 구체적 대안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대안으로서 ‘동도동기론’을 제시한다. 이는 오리엔탈리즘과도 다르고, ‘열등한 서양’, ‘우월한 동양’이라는 옥시덴탈리즘과도 다르다. 동도동기론에 대한 논의는 잠시 뒤로 미루고 우실하가 우리 안에 침투한 오리엔탈리즘의 경로를 광고를 통해 분석한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우실하는 그의 책 2장에서 ‘우월한 서양’이라는 기호의 소비와 재생산, 3장에서 ‘열등한 동양, 신비한 동양, 고정된 동양`, 4장에서 ’동?서양에 대한 구별적 이분법에 의한 광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먼저 그가 사용하고 있는 광고분석틀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우실하는 까뜨린느 드뇌브가 모델이 된 샤넬 5 향수를 롤랑바르트가 엘르슬레우의 모델에 기초한 도식을 이용하여 광고를 통해 오리엔탈리즘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보여주었다.(84쪽)1. 기표상징표현ex) 샤넬 No.52. 기의상징의미ex) 코코샤넬이 만든 향수이름1차기호체계(일상언어)Ⅰ 외시적 기호상징ex) 샤넬 No.5ⅰ공시적 기표외시적 기호이자 상징표현ex) 샤넬 No.5ⅱ 공시적 기의상징의미ex) …최고의 여배우인 니콜 키드먼이 사용하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이미지2차기호체계Ⅱ 공시적 기호(기호작용)상징ex) 샤넬 No.5[표 ] 소쉬르의 언어학적 모델먼저 우실하가 생략해 버린 소쉬르의 언어체계에 대해 알아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듯 싶었다.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쉬르의 언어학적 모델은 상징을 어떠한 음성언어로 표현되는가 하는 상징표현인 기표와 그러한 각각의 상징의 의미인 것’이라는 개념은 기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책’이라는 기표와 위의 기의의 의미작용을 ‘기호’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호는 각 지역마다 다르게 불릴 수도 있으며, 꼭 ‘책’이라는 기표가 위의 기의를 가질 필요는 없지만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이다”라는 소쉬르의 말처럼 우연히 그렇게 내용없는 빈껍데기인 ‘책’이라는 기표가 ‘…꿰어맨 것’이라는 기의를 갖게 된 것이다.위와 같은 의미작용은 두 가지 층위로 나뉜다. 첫 번째 층위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인 외시적 언어라고 하는 단어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 ‘명백한 의미’ 혹은 ‘상식적인 의미’이다. 우리가 사전에서 찾아보는 말들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두 번째 층위는 기존의 외시적 언어에 다른 기의를 입힌 형태이다. 외시적 기호는 2차 의미를 생산하기 위한 1차 의미를 담고 있는 공시적 기표로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외시적 언어를 기표로 취해 사회 이데올로기적인 기의를 담아 새로이 생산하는 기호가 바로 공시적, 2차 기호이다.광고 속에 들어있는 오리엔탈리즘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인식에 파고들어 ‘동양 속의 동양’이라는 이중적 층위를 형성하며, 특히 광고에서는 우리의 추억을 자극하는 몇 가지 외에는 상당 부분 ‘서양의 것이 더 우월한’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우실하가 서설에서 제시한 외모에 대한 기준도 포함된다.현대 여성들은 쌍커풀진 커다란 눈, 좁은 미간,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조그맣고 갸름한 턱, 하얀 피부, 긴 팔과 다리 등 백인의 체형을 닮아가려 하고 있다. 대체로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광고들은 백인 모델을 기용하여 백인이 되어 갈 것을 종용한다.또한 근대에 외국으로부터 전래된 식품도 마냥 서양의 것이 좋은 것인 듯 광고한다. 서울우유의 ‘셀크’는 ‘선진국의 아침에는 우유가 빠지지 않습니다. 선진국의 식탁은 셀레늄이 빠지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식단에는 부족한 셀레늄! 이제는 우유로 챙기세요’라는 광고 문구로 대체적으로 ‘선진국=유럽, 미국’이라고 인식하는 한국인고에 살아있는데 그마저도 가마솥 전기밥솥, 뚝배기 전자레인지 등 과거에 대한 향수 차원에서 그려진다는 것이다. 더욱이 많은 경우 한국?동양의 이미지는 서구에 비해 열등하고 정체된 모습만이 부각된다고 꼬집는다.광고 속에 많이 등장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주로 영어의 표기, ***에서 온, 신비로운 동양의 색채 등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광고는 각종 관련법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본다면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을 조장하는 것은 관련법에 저촉되지만 엄연히 방송을 통해, 신문과 잡지를 통해 광고되고 있다. 우실하는 이것을 단순히 넘겨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생활 속에 오리엔탈리즘이 얼마나 깊이 들어와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이며, 오리엔탈리즘이 많은 사람들에게 당연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우실하는 책에서 오리엔탈리즘의 해체를 위한 인식 전환의 수단으로 동도동기론을 제시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것은 오리엔탈리즘도, 옥시덴탈리즘도 아니다. 그는 동도동기론을 설명하기 전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재고한다. 사이드는 동서양의 차이점이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거대담론으로서의 ‘동양의 본질’이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도 아니다. 곧 ‘동양화된 동양’,‘오리엔탈리스트의 동양’,‘진실이 아닌 표상 혹은 재존재로서의 동양’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동양’,‘순수한, 형용사가 붙지 않은 동양’,‘스스로의 동양’역시 너무나 거대 담론이기 때문에 여전히 표상이 될 수 밖에 없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드는 이 거대 담론을 구체적인 한 나라에 한정할 때에는 가능하다고 본다. (225쪽)우실하는 기존의 문화적 코드가 서구 중심의 권력 체계를 확고화하는 도구로 작용해 왔음을 지적하고, 이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할 때가 왔다고 이야기한다. 기존의 수동적 소비를 통해 향유되어온 문화는 이제 의심과 부정의 대상이 될 때가 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재발견해가는 과정을 통해, 한다.
    인문/어학| 2006.11.24| 5페이지| 1,000원| 조회(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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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Protestantism Ethic and Spirit of Capitalism차례막스 베버는 누구인가? 베버의 자본주의 칼비니즘(Kalvinism) 칼비니즘과 자본주의 베버 비판 맑스*뒤르켕의 종교 이론Max Weber(1864~1920)양친 모두 신교도 가계의 후손 1883년 군복무를 시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됨 1892년 마리안느와 결혼 1894년 프라이부르크에서 정치경제학 교수직을 얻음 1897년 신경 쇠약을 겪게 됨 1903년 집필 활동을 재개 1904년과 1905년에 걸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발표 1910년 독일 사회학회의 창립을 도움 1920년 사망 베버의 저작은 그의 부인인 헬레네 베버와 제자들에 의해 출판이 됨베버의 자본주의-자본주의 정신핵심: 노동과 이익 증대에 대한 헌신 노동은 목적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진다. “근대 경제질서 내에서 돈을 버는 것은, 그것이 합법적인 한, 소명을 달성하는 것이자 미덕의 표현이고 그 결과(인 듯하)다.” 재산 취득의 활동은 각 단계에서 체계적으로 재조직 되어야 한다. 행동의 규율과 통제를 강조한다.칼비니즘(Kalvinism)이란?16세기 제네바 종교개혁자 J. 칼뱅에게서 발단한 프로테스탄트 신학사상. 넓은 뜻으로는 칼뱅에게서 비롯된 모든 개혁파 교회의 신앙과 사상을 가리키지만, 좁은 뜻으로는 17세기 초 칼뱅의 후계자들이 엄격한 예정론(豫定論)을 중심교의(敎義)로 내세운 신학체계를 말한다.칼비니즘의 핵심 교리절대자인 하느님은 인간의 이해가 불가능하다.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지상에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하느님은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처벌을 단독으로 이미 결정해 버렸다.절대적 예정설이란?위에서 살펴본 칼비니즘의 핵심 교리 중 세 번째 것으로 하느님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어떠한 이유로 인간 집단을 구원 받은 자와 저주 받은 자라는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고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절대적 예정설의 결과베버는 절대적 예정설의 결과를 특히 중요시 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구원 받은 집단인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자신의 구원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내세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 받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징표를 찾기 시작했다. 모든 신자들은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했다.{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06.11.24| 8페이지| 1,000원| 조회(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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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의 음식과 축제 평가C아쉬워요
    독일의 음식과 축제Part ① 독일의 음식 문화3식 2찬 계란 후라이 요리? 코푸는 신사, 맥주 마시는 아이들1. 3식 2찬아침 아침은 빵을 서너개씩 먹으며, 먹을 때마다 치즈와 햄도 듬뿍 발라 먹는다. 베스파 워낙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는 독일인들이라 대개 오전 10시정도 되면 베스파(간단하게 빵이나 간식을 싸온 것)라고 간식시간을 가진다. 점심 집에서 싸온 빵과 과일, 혹은 당근 1개, 오이, 파프리카 같은 것을 먹는다. 출근을 하지 않을 때에는 독일식 요리를 해서 따뜻한 음식을 먹지만 한국의 정식처럼 음식의 가지 수가 많지는 않다. 커피타임 오후 2~3시경에는 케이크와 함께 커피를 마신다. 저녁 저녁에는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기 때문에 대개는 정식으로 따뜻한 식사를 한다.2. 계란후라이 요리?피로 얼룩진 역사 한동안은 오스트리아 전신인 합스르크 왕가의 영주가 관리하던 복속 국가였으며, 국가의 힘이 커질 때마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끊임없는 압박과 견제 등 시달림 때문에 삶의 여유도 없이 항시 싸움과 피로 얼룩진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척박한 땅 바다에 인접한 곳이 거의 없어 해산물을 많이 얻을 수 없고, 산림이 많아 농경을 하기에도 부적합하였으며 독일 북부지역은 일조량이 부족하고 추워 밀과 포도가 자랄 수 없는 곳이다. 합리적인 그러나 맛없는 요리 부족한 음식재료, 그리고 계속되는 전쟁과 불안 속에서 그들의 음식은 점점 간편하게 하지만 실용적이고 영양가가 높은 음식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음식에는 미적인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보기에도 투박한 음식들은 맛 역시 형편없다는 평이다. 계란후라이 요리3. 코푸는 신사, 맥주 마시는 아이들식탁예절 코푸는 신사, 숙녀 바깥쪽이 상석 남은 음식을 싸가는 나으리들 음식은 한 접시에 '한 잔!' 하는 문화의 부재 철저한 가족 중심 독일 호프집에는 아이들이 있다 단골식탁Part ② 독일음식의 특성그 나물에 그 반찬 평범한 음식들 와인 맥주1. 그 나물에 그 반찬지형과 기후의 영향 검은빵과 흰빵 요오드 결핍 환자가 많은 독일 재료의 불충분 맥주의 나라 백포도주의 나라2. 평범한 음식들빵 고기 감자 소시지 우리에게 알려진 것빵(Brot)Brotchen Brot Kuhen Zopf Brezel Hornchen2) 고기돼지고기 슈바이네학센(Schweinehaxen) 아이스바인(Eisbein) 슈니쩰(Schnitzel) 소고기 라인더브라텐(Rinderbraten)3) 야채감자 16세기 말 유입→ 30년 전쟁 이후 재배가 장려됨. 2차대전이 끝날 무렵 1인당 감자소비량은 200kg으로 계속 증가. 초기에는 꽃을 보기 위한 관상용. 감자를 제외한 다른 야채 섭취량이 적음 감자요리:감자볶음, 슈프누델른, 감자튀김 자우어 크라우트 (saukraut) 하얀 양배추를 절인 것으로 우리나라에서의 김치와 같은 것으로 모든 음식에곁들여 먹는다. 아인토프 (eintopt) 집안에 있는 모든 야채를 한꺼번에 넣고 끓인 수프로 빵과 소시지를 곁들여 먹는다.4) 소시지세계에서 육가공업이 가장 발달한 독일 865종류의 소시지(Wurst) 가장 대중적인 길거리 음식Currywurst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소시지도 있어야 한다.5) 치즈치즈 독일 고유의 것도 있지만 주로 스위스나 네덜란드, 프랑스의 것을 흉내내어 만든 것이 많다. 가장 대중적인 치즈는 고우다, 에멘탈러, 에다머, 카망베르 등이 있다. 독일의 피자치즈는 이태리의 노란 치즈를 쓰기 때문에 우리가 먹는 치즈보다 맛이 훨씬 진하다.6) 우리에게 알려진 것햄버거 후랑크 소시지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 돈까스3. 백포도주의 나라 독일와인의 종류 부드러운 독일 와인 와인 라벨 읽기 와인 마시는 법4. 맥주의 나라 독일한 주방장의 실수가 빚은 발명품, 맥주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법은 양조법 연기맛 맥주 rauchbier 맥주 공장의 수, 맥주의 종류 물 대신 맥주 비어가르텐(Biergarten) 단골식탁 낮술을 마시면 부모도 못 알아본다던데.. 술빚는 수도승Part③ 독일의 축제뮌헨의 맥주 축제(Oktoberfest) 카니발(Karneval)1.뮌헨의 맥주 축제(Oktoberfest)연원 규모 개최장소 성격옥토버페스트란 뮌헨의 맥주축제이며, '10월의 축제'라는 뜻이다. 그 기원은 1810년 황태자 루트비히와 작센의 테레사 공주와의 결혼식을 축복했던 축하 행사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이래로 매년 민속의상을 입은 퍼레이드, 기사들의 경마대회를 재현하고 있다. 이 축제는 독일 최대의 행사로서, 해마다 500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하며, 축제기간 동안 소비되는 맥주는 400만 잔 이상이나 된다. 닭은 65만 마리, 소시지 110만 개가 소비된다고 한다. 회장에는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천막이 몇 개식 설치되며,그 속에서는 민속의상을 입은 악단이 신나게 연주를 하고, 테이블 쪽에서는 서로 건배하며 대합창을 하기도 한다. 매년 16일간 벌이는 이 축제는 10월 첫째 토요일이 마지막날이 된다.2. 카니발(Karneval)연원 규모 개최장소 성격 월드카니발(http://www.world-carnival.co.kr/)*참고자료*웹싸이트 야후 독일(http://de.yahoo.com) 독일어권 텍스트 및 문화 산책(http://cafe.daum.net/wkshin) 독일문학 독일어 독일문화 (http://cafe.daum.net/hallo) 참고 문헌 나는 왜 독일을 선택했나, 김흥현, 가람기획 독일 문화의 이해, 이유선, 한국문화사 독일 문화와 사회, 김순임 외, 이유 하이델베르크에서 쓴 독일, 독일인 독일인 어떻게 살(았)지?, 극중광/박설호/전춘명, 한신대 출판부{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06.11.24| 20페이지| 1,000원| 조회(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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