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한이 국가수립 이후 1954년까지 전개한 외교정책의 주요 쟁점인 국가승인 외교와 함께 한국전쟁기간의 전시외교, 전후복구를 위한 외교 등을 확인 (2)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이후 북한 외교정책의 변화와 지속이라는 측면에 미친 영향과 의의를 파악 (3) 소련 : 국가수립~한국전쟁 이전까지 전형적인 위성국가인 북한의 대내외정책 통제 (4) 중국 : 한국전쟁 참전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대 (5) 북한 : 국가수립 이후 1954년까지 사회주의 진영에 국한된 진영외교*의 양상 * 진영외교 : 동서냉전이라는 국제환경에서 어느 한 진영에 속해서 외교정책을 추진함을 의미<중 략>한국전쟁으로 인한 북한의 대외관계의 변화 (1) 북한이 소련의 후견으로 공산진영내에서 합법적인 외교적 승인을 얻음 (2) 유엔이 북한을 침략국으로 규정하고, 남한에 유엔의 이름으로 대규모 지원 (3)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국가위신의 실추 감수 (4) 중국군의 전면참전으로 인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 (5) 소련의 미온적인 대북지원은 양국관계를 재평가하는 계기 (6) 미국과 유엔은 북한의 전쟁당사자였으므로 미국은 북한의 지속적인 제1공적 (7) 남북한관계에서는 전쟁을 수단으로 한 통일달성의 어려움이 부각되었고, 주한미군의 주둔에 따른 북한의 불안감이 지속된 측면도 있음<중 략> (1) 북한이 다변외교의 논리를 발전시킨 후 실제 외교정책의 전개 1) 사회주의국가들과의 관계 강화 2) 신생독립국가들과 친선협조관계의 확대와 민족해방투쟁지지 3) 자본주의국가들과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입장 표출 4) 평화통일에 관해서 1961년에 남한의 4.19혁명과 제1공화국의 와해라는 상황에 대처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의 성명 발표했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남북조선 학생회담 준비위원회 등을 결성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했으며,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루어낸 것으로 전세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성장에 밀려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북한 핵’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현재 남북한이 군사적인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핵’개발·보유는 군사적 불균형을 유발함은 물론, 한반도 전체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불안요소들은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감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를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북한의 핵에 대한 불안은 비단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 특히나 북한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국제적 영향력에 타격이 클 수도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문제는 눈에 가시나 다름없다.따라서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 공동의 관심을 갖고 있는 한국과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해 살펴보고, 향후 우리가 어떤 과제를 안고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중 략>북한은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가 탈퇴한 유일한 국가이다. 북한의 핵 개발정책은 어떠한 일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는 예측불허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우리나라와 미국은 항상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 대응할 수 밖에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졌다. 하지만, 모든 문제해결의 최선은 후속조치보다는 ‘예방’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북한 핵에 대해 북한의 핵 도발을 포기시키기 위한 한국과 미국의 노력은 과거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이에 북한의 핵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노력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으며, 양국은 북한 핵에 대해 어떤 정책적인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독특한 민족성과 특유의 정치제도로 당 중심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의 변화를 겪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절대 권력으로의 변화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정치적인 변화는 러시아의 권력구조 개편과 푸틴 3기의 강력한 리더십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따라서, 소비에트체제의 붕괴 시점에서부터 최근 2012년 러시아 대선까지의 변화된 과정을 통해 러시아의 향후 정치제도와 권력구조의 변화를 전망해보고자 한다.<중 략>소비에트체제 붕괴 이전의 소련 권력구조는 소련공산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공산당 중앙위원회라는 최고정책결정기구를 통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구조였다. 국가의 나머지 기구들은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채택된 결정을 이행하는 종속적인 도구로 인식되었던 전형적인 당국가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헌법에 권력구조와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1980년대 말까지 권력주체들 사이의 공식적인 권력분립은 명시되지 않았고, 1917년 혁명 이후 70여년 동안 공산당이 실질적인 최고권력기구의 역할을 담당했다.하지만, 1988년 제19차 소련공산당회의에서 불명료한 권력분립을 수정하고, 책임있는 대통령제를 채택하였다. 고르바초프가 추진했던 정치체제개혁의 일환으로 같은 해 12월 헌법 수정안이 채택되었다. 이는 러시아(구소련)의 권력구조가 당국가에서 대통령중심제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한편, 공산당의 권력독점권한을 삭제함으로써 전통적인 공산당 기득권 세력에 대한 강한 도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부분은 결국 고르바초프의 정치체제개혁의 한계를 가져왔다. 이전 브레주네프 헌법의 대부분이 그대로 효력을 지속하였고, 1990년에 실시된 소련대통령 선출도 인민대표회의를 통해 간접적으로 진행되었으며, 1991년 5월 개정된 헌법에서 대통령을 의회의 종속적인 지위로 남기고, 의회와 대통령 간의 권력분립 등 권력구조의 세부사항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했다.
프롤로그(Prolog)오성과 한음 이야기는 우리가 어렸을 적, 교과서나 각종 위인전에서 흔하게 접해왔던 이야기이다.그래서 지금도 친구사이의 우정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오성과 한음"이다. 그만큼이나 우리에게는 우정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오성과 한음이 근래에 들어 꾸며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도 오성과 한음은 5살이라는 나이차이가 있어 친구사이라기보다는 친한 선・후배이자 동료로 지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벼슬을 하면서 각각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져 활동해 왔다는 것이 역사에서 기록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당시의 복잡한 상황들 속에서 개인적인 친분과 그들이 각각 속해있는 당파의 입장을 적절히 조정할 수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이 오성과 한음이야기를 다시 재해석하여 스토리텔링으로 발전시킨 계기가 되었다. 본격적인 이야기(스토리텔링)갑작스러운 이조전랑 오건의 사임으로 궁궐 안은 어수선하였다.이조전랑은 비록 품계는 높지 않았으나, 내외 문・무관을 천거・전형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고, 각 조의 장관인 판서도 관여할 수 없는 특유의 권한이 부여된 자리이기에 모두가 탐내는 자리임에 틀림없었다. 또한, 문・무관을 임명할 때 반드시 이조전랑의 동의가 있어야 했기에 그 권한은 실로 막강하였던 것이다.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의정부는 물론이고, 여러 대신들의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당파가 나뉘어지고 있는 것이다.당시 심의겸을 지지하고 있던 이항복(오성)과 김효원을 지지하고 있던 이덕형(한음)은 지금껏 친형제이상으로 느껴왔던 감정들이 혹여 이 문제로 인해 틀어질까 노심초사하게 되었다. 이에 오랜만의 술자리를 이항복(오성)이 아우인 이덕형(한음)에게 권유하면서 자연스레 둘은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다."오랜만이네.. 아우.. 이 얼마만의 자리인가?""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워낙 조정이 어수선하여 형님을 찾아뵙지도 못하였습니다.""이번 이조전랑에 김효원이 천거되었다 들었네만, 조정에 그리도 인물이 없단 말인가.. 내 생각에 김효원은 자기 주장이 강하여 막강한 인사권까지 쥐게되면 조정에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라 별로 일 듯 싶네만"한동안 아우인 이덕형(한음)은 말이 없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문장이 바로 이 문장이었다.주변의 정황설명이나, 아무런 언급도 없이 불쑥 내던져진 말이 바로 이 것이었다.끝까지 책을 읽고 난 후에야 난 이 말이 담겨진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그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작가와 독자의 질책일 수도, 더 신랄하게 비판하자면 엄마를 읽어버리고 난 후에야 엄마라는 존재를 다시금 돌아보는 어리석은 가족들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을 것이다.이렇듯 시작부터 어떤 강렬한 느낌을 받은 채 나는 조금씩 책에 빠져들고 있었다.작품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생일상을 받으러 상경한 노모의 실종"으로 요약할 수 있다.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는 소재로 어떻게 작가는 두툼한 한 권의 책을 글로 꽉 채울 수 있었을까.그리고 그 책을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꼼꼼하게 읽어가고 있던 내가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벌써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이 들게 되었을까.평소에 책을 열심히 읽고, 좋아했던 나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이야기겠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그것은 소재와 사건은 간단하지만, 그 안에 내가 평소 알지 못했던-이는 아마도 우리가 숨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엄마라는 존재를, 그리고 그 엄마를 뒤늦게 회상하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질 때 느껴지는 그런 감정이었다.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라는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