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의 해독과 이해Ⅰ. 들어가며Ⅱ. 향가 해독의 원리Ⅲ. 향가 해독에 어려운 한자Ⅳ. 향가해독의 실제ⅰ) 향가 원문ⅱ) 여러 해독ⅲ) 나의 견해Ⅴ. 나오며Ⅰ.들어가며鄕歌라는 명칭이 가장 먼저 나오는 문헌은 「균여전(均如傳)」이다. 이 외에도 삼국사기 권11과 삼국유사 권5 등의 문헌에서 발견되며, 향가 작품을 지칭하는 명칭 詞腦歌?兜率歌 또는 鄕謠?短歌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옛 기록들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향가를 제외한 다른 명칭들은 모든 작품들의 특성을 반영하기에는 무리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일반론적으로 향가의 명칭을 사용하기로 하며, 향가의 명칭으로 이러한 작품群을 지칭하기로 한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결국 향가란 중국의 시가(詩歌)내지는 불교음악에 상대적인 개념이며 國歌, 즉 신라 시대 고유의 노래, 동방 고유의 노래를 뜻하는 것이다.향가는 이미 신라 3대 유리왕 때부터 불리던 노래다. 향가의 창작 시기에 관해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현재 작품이 전하는 신라 진평왕 21년(599)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서동요에서 헌강왕 5년(879)의 처용가에 이르는 약 280여 년 동안에 생성된 것이며, 고려 광종 때 均如가 지은 普賢十願歌 11수는 광종 24년(973) 그가 죽은 해 이전에 성립한 것이다. 悼二將)까지를 향가로 본다는 설도 있어 여기에 따른다면 예종 15년(1120)까지 연장된다. 현전하는 작품으로는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 도합 25수이다). 또한 「삼대목(三代目)」이라는 향가집이 산실되어 현재는 전하지 않고, 現存하는 향가 외에도 많은 향가가 지어졌다는 문헌의 기록을 볼 때, 향가의 역사는 더욱 길 것이다.향가의 작가로 현재 그 이름이 전해지는 사람들은 당대의 승려나 화랑들이 대부분이며 특히 忠談師?月明師?均如 등의 작품이 뛰어나다. 그러나 향가를 향유했던 계층이 성안의 남녀와 실명노인까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전 계층이 창작하고 향유한 점은 미루어 볼 때 지배적 향유층은 어느 특정 계층이 아니었고 國民藝術로서독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讚耆婆郞歌와 怨歌에 보이는 ‘月’의 주격형 ‘月羅理’는 ‘?라리’를 나타내기 위한 것인데, 願往笙歌에 있어서는 같은 ‘?라리’가 ‘月下伊’로 표기되어 있다. 앞의 것에서는 ‘라리’가 ‘羅理’로 첨기되어 있고 후자에서는 ‘아리’가 ‘下伊’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이 말음첨기는 향가의 해독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고대국어의 음운론과 형태론 및 통사론 연구를 위한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脈絡一致의 基準은 해독된 단어는 문맥의 의미와 일치되는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단어란 홀로 쓰이지 않고 문장 안에서 쓰이는 것이다. 타당한 해독이란 그 문맥에 일치되는 의미와 語形을 가지는 것이다. 차자 표기는 訓讀과 音讀의 양면성을 가지며, 같은 훈독 내에서 한자의 多義性과 훈의 가차라는 요소들을 고려해 볼 때 한 어구만을 독립적으로 보아도 여러 가지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향가를 문맥 속에서 해독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원문의 비판에서 저자가 광수공양가에 나오는 두 ‘手’자를 ‘香’자로 고쳐 읽은 것이 있다. 이는 ‘손’(手)이라는 단어가 이 문맥에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手焉法界毛叱色只爲?’에서 ‘焉’(?)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손’이라는 어형이 올 수도 있지만, ‘佛前燈’을 고치는 ‘손’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이 肉身의 一部를 영원무궁하라고 비는 것일까. 그리고 여러 인물이 상정되어 있지 않아서 손은 둘밖에 없으므로 ‘手良每如法叱供乙留’라 하여 ‘마다’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한편 최행귀의 번역시나 화엄경을 보면 ‘손’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고 ‘香’이 주제가 되어 있다. 번역시에 나온 ‘香’자가 두 개로서 본문의 두 ‘手’자에 대응되고, 화엄경에서는 ‘香’의 온갖 종류를 늘어 놓고 있어 이 정도의 ‘香’이면 ‘香에마다’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香’이 ‘手’자로 전와된 구체적인 과정 연구는 차치하고, 문맥상 ‘手 마?서방을 밤에 불을 품고서 갈거냐8. 홍기문 ; 셔? 지블 바므란 안고 가다9. 김완진 ; 薯童 ?? 바매 알? 안고 가다0. 전규태 ; 맛둥?을 밤애 몰 안고 가다11 정렬모 ; 마동방을 밤의 알 안겨 가요12 황패가 ; 서동방을 밤의 몰? 안고 간다0. 정창일 ; 薯童房? 바? 卵을 안겨 가여서동요의 연구는 오랜 연륜과 연구결과물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연구결과가 혼미를 거듭하고 여러 異見들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이는 삼국유사와 균여전의 향가와 그 기술물들은 모두 역사적 사실과 설화적 사실의 결합물이라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텍스트의 역사적 사실과 설화적 사실을 혼돈하여 이 두 가지를 모두 역사적 텍스트로 인식하거나, 또는 설화적 텍스트로 인식한데서 해석의 차이가 나왔다.양주동은 마지막 행의 ‘卯乙’을 음독하여 ‘몰(몰래)’로 해독하고, 김완진은 훈독하여 ‘알(卵)을’이라고 해독하였다. 이러한 차이로 뒤의 두 구(句)가 '서동 방으로 밤에 몰래 안겨 간다'나 '서동 방을 밤에 알을 안고 간다'등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남녀간의 정사(情事)를 묘사한 전체 골격은 크게 다르지 않다.삼국유사의 기록에 서동요는 세 구절로 나누어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향가의 인식에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네 구절로 인식하고 있고, 또 한국의 고유시형의 흐름으로 볼 때 4구체의 시형 인식이 무리가 적기 때문에 4구체시로 거론되어진다.서동요는 신라 眞平王 때 백제 무왕이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지어 불렀다는 노래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무왕의 어머니는 연못가에 살고 있었는데, 그 못에 사는 龍과 정을 통하여 그를 낳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薯를 캐어 팔아서 생활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서동(薯童:맛둥)이라 불렀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신라의 수도 경주로 가서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얼어 두고 맛둥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라는 노래를 지은 후, 아이들에게 마(薯)를 나누어주고 이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진평왕의 오해를 산 ?? 일은 ?? 이? 뎌? 뎌딜 닙?5. 김선기 ; 아나 가쌀 일은 바람애 어긔 뎌긔 따?질 이삐다6. 김준영 ; 어? ?? 일은 ??매 이의 뎌의 ?어딜 닙다이7. 서재극 ; 어? ?? 이른 ??? 이? 뎌? ?라딜 닙?8. 홍기문 ; 어느 ?? 이른 ??매 이리 뎌리 ?러 딜 닢다?9. 김완진 ; 어? ?? 이르은 ??매 이? 뎌? ?러딜 닙?0. 전규태 ; 어? ?? 이른 ??매 이에뎌에 ?러딜 닙다이11 정렬모 ; 어내 가슬 이른 바라매 이의저의 떠러딜 입처로12 활패강 ; 어? ?? 이른 ??? 이의뎌읩 더러딜 닙다이0. 정창일 ; 어? ?? 이른 열? 此矣彼矣 ?러딜히 ?려一等隱 枝良 出古 去奴隱 處 毛冬乎丁1. 소창진평 ; 한 무리? 가지예 보고 가논 골 몰으은?2. 양주동 ; ?? 갖애 나고 가논 곧 모?온뎌3. 지헌영 ; ?? 가재 나고 가? ? 모?오져4. 이 탁 ; ?나힌 갖애 나고 가논 곶 몯온?5. 김선기 ; 까단 가달애 나고 까논 곧 몰은?6. 김준영 ; ?? 갖애 나고 가논 곳 모?온뎌7. 서재극 ; ?? 가자 나고 가논 곧 모?론?8. 홍기문 ; ?? 가재 나고 가논 곧 모?혼뎌9. 김완진 ; ?? 가지라 나고 가논 곧 모?론뎌0. 전규태 ; ?? 가지애 나고 가논 곧 모?온뎌11 정렬모 ; 한길은 가지에 나고 가는 곧 모도오뎌12 황패강 ; ?? 가지? 나고 가논 곧 모?온뎌0. 정창일 ; ??? 가자 나고 가누은 ? 뫄겨혼?阿也 彌?刹良 逢乎 吾 道 修良 待是古如1. 소창진평 ; 阿耶 彌?刹애 맛나온 나 道 닥가 기다리고다2. 양주동 ; 아으 彌?刹애 맛보올 내 道 닷가 기들이고다3. 지헌영 ; 아으 彌?刹애 맛보올 내 길 닷가 기드리고다4. 이 탁 ; 아라 彌?刹애 맞오 내 길 닷아 기드리고다5. 김선기 ; 아아 미따더래 맞은 우리 깔 대달아 기두리고다6. 김준영 ; 阿也 彌?刹애 맛보온 나 道 닥아 기들이고다7. 서재극 ; 아으 彌?刹아 마조 나 道 닷가 기드리고다8. 홍기문 ; 아야 彌?刹애 맞보호 내 道 닷가 기드리고다9??? ?? 좆누아져3. 지헌영 ; 郞? 디니다샤온 ??? ?흘 좆누아져4. 이 탁 ; ?여 디니??온 ?? ?? 돚?아?5. 김선기 ; 님이야 디니디 깔샤온 마사매 갇깔 좆나라재6. 김준영 ; 郞여 디니ㅈ다샤온 ??메 ?? 좆아나져7. 서재극 ; 郞이야 디니히다시온 ??? ?흘 ??아져8. 홍기문 ; 랑야 디니디 답샤온 ??? ??? 좆누아져9. 김완진 ; 郞이여 디니더시온 ??? ?? 좃?라져0. 전규태 ; 郞? 디니다샤온 ??매 ?흘 좃누아져11.정렬모 ; 랑이라 가지로기녀샤 감온 마픳 갓흫 보내려져12.황패강 ; 郞? 디니다샤온 ??? ?? 좇누아져13.신재홍 ; 郞야 디니이기다시오ㄴ ??? ?ㅅ? 좇?아져14.유창균 ; ??야 디니기 ??시온 ??? ??? 좇?라져15.금기창 ; 郞여 디닛다샤온 ??? ?흘 좇?아져16.강길운 ; 마루의 디니다손 마?의 가?글 좇나?17.유창선 ; 郞이 디니샤온 ??애 ?? 조?제18.김상억 ; ?애 디니다샤온 마자매 갖흘 좇누아져19.최학선 ; 郞? 디니다샤온 ??? ?? 좇누아져20.권재선 ; 郞여 디니ㆆ 녀샤온 ??? ?? 좇?아져21.양희철 ; 郞야 디니입다시온 ??메 ?흘 좇?아져22.최남희 ; 郞야 디니히더시온 ??? ?? 좆?아져00.정창일 ; 郞야 / 디니러엿드오? 心긋 際싈흘 조?엇제阿耶 栢史叱枝次 高?好 雪是 毛冬乃乎尸 花判也1. 소창진평 ; 阿耶 잣 ㅅ가지 놉하 눈이 몰 나올 花判이요2. 양주동 ; 아으 잣 ㅅ가지 노파 서리 몯 누홀 花判여3. 지헌영 ; 아으 ?뇸가지 놉허 서리 모?누홀 불한여4. 이 탁 ; 아라 잣ㅅ갖아 놉?오 서리 몯?올 곶ㅂ한여5. 김선기 ; 아으 자싣 가지 놉은디고 서리 몰라올 화랑이야6. 김준영 ; 아- 자시ㅅ가자 노ㅈ호 서리 모?나올 花判여7. 서재극 ; 아으 잣ㅅ갖 놉괴호 서리 모??올 花判이야8. 홍기문 ; 아야 자? 가지 놉호 서리 모?누올 꽃한야9. 김완진 ; 아야 자싯가지 노포 누니 모? 두폴 곳가리여0. 전규태 ; 아으 잣ㅅ가지 노? 서리 몯누올 화한야11.정리고
{신소설의 이해-이인직의 『혈의 누』1. 신소설이란 무엇인가?신소설(新小說)이란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에 나온 새로운 일종의 과도기적 소설로서 고소설 혹은 구소설(舊小說)과는 다른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란 의미로 쓰였다. 이 명칭은 일본에서 쓰이던 것인데, 1906년 『대한매일신보』(1906.2)에 게재된 『중앙 신보』의 광고문에서 처음 보였고, 『혈의 누』가 단행본으로 간행되면서 ‘新小說 血의 淚’라고 밝힘에 따라 이후 보편적인 명칭으로 굳어졌다.개항 이후 외세의 근대 문물이 유입되고, 전통적 가치보다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의 고조되어 조선후기 이래 꾸준히 성장해 온 국문 해독층과 독서 대중이 19세기 말 이래의 계몽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또한 기업적 성격을 지닌 근대적 출판사의 등장으로, 새로운 소설을 수용할 만한 여건이 갖추어지고, 1900년대부터 출현하기 시작한 민간 신문들은 독자를 확보하는 방안의 하나로 당대의 문제와 생활을 다루는 소설을 게재하게 되면서 신소설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게 된다.신소설이 등장한 시기는 봉건사회가 해체되고, 새로운 사회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봉건과 전통이라는 낡은 토대 위에 서있던 한국인들에게 현대 라는 낯설고 위협적인 타자(他者)였다.{)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 장석주, 시공사, 2000, p.24봉건체제를 극복하여 근대화에 도달해야하는 동시에, 외세에 대항하여 자주적 민주국가를 건설해야 했던 것이다. 자주와 근대라는 두 가지는 서로 의존적인 관계이면서도 또한 서로 모순되는 성격도 가지고 있었는데, 신소설에는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시대상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1910년대 한국문학과 근대성, 소명출판, 김복순, 1999. p.341반봉건, 문명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과제에 당대 현실생활의 반영으로서 봉건적 가족제도의 혼란과 부패상에 대한 폭로와 비판, 자주독립과 문명개화로의 지향 등 근대사회사상을 고취하고 있고, 고소설의 틀을 벗어나 당대의 인물이나 사건을 기초로 하여 언문일치의 한글로 산나지 못하고, 신소설이 내세우는 반봉건 문명개화사상도 근대민족국가를 이루려는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친일적인 순응주의와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측면이 강해졌다.신소설은 근대 소설의 효시로 삼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많다. 그렇다고 문학사에서 간과하고 넘어가도 될 만큼 의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 소설사에 있어서 주체적인 전통계승의 문제에까지 상도(想到)할 때 신소설의 매개적인 역할은 컸다. 만일 신소설의 단계가 없이 춘원의 작품이 나왔다면 우리는 현대소설에 있어서의 자시 전통에 대한 관점이 일층 박약(薄弱)하였을 것을 가설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인직연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 논문집, 전광용, 1977(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에서 재인용)봉건적 왕조시대로 표상되는 낡은 질서의 해체라는 당위의 시대정신을 머금고 있던 신소설은 개화기의 근대문명으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기적 문학양식이다.2. 이인직의『혈의 누』분석2.1. 작가의 생애1900년 이인직은 정치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마흔이 다된 나이에 쟁쟁한 젊은이를 물리치고 관비유학생이 된 이인직은 어떤 인물이었을까?그는 누구 못지않게 정치적 열망을 가졌던 인물이다. 벼슬 없는 한미한 집안의 양자인 그는 출세하는데 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출시에 따른 열패감은 차츰 봉건사회에 대한 증오로 커졌다. 따라서 그는 일치감치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에 가서 자신의 열망을 보상받으려 한 것이다. 조선은 개화의 바람이 불었어도 아직 낡은 전통과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서구문물을 앞서 습득한 일본에 경외감마져 느끼게 된다.이 무렵 그는 자신의 출신과 상관없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한다.그 것은 신문 정치 소설이었다. 그 당시 도신문사의 견습공으로 일하는데 여기서 신문의 위력, 생리 같은 것을 엿보았다. 따라서 그는 유학시절부터 신문이라는 매체가 얼마나 유용한지 잘 알고 있었다.1906년 드디어 『국민신보』의 주필이 되나 정간(停刊)이 되자, 곧 『만16년 생을 마감한다.2.2. 줄거리 요약일청 전쟁의 막 지나가고 평양의 한 산중에서 삼십세 가량의 여인이 실성한 듯이 사람을 찾으며 허둥거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여인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아내를 잃고 찾아 헤매던 어느 외간 남자와 부딪혀 봉변을 당하기도 하다 일본 순경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인은 남편 김관일과 딸 옥련, 세 식구가 난리통에 서로 헤어져 찾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서로 엇갈리는 운명으로 세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부인 최씨는 남편이 집을 떠난 다음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는 남편과 딸을 다시 만날 길이 없음을 알게 되자 대동강에 투신하여 자살을 기도하지만 뱃사공에게 구출된다. 그 전날 김관일은 집으로 찾아오지만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채 나라의 큰일을 하겠다고 결단을 내려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그러다 여인의 아버지가 사위의 소식을 듣고 평양으로 오면서 남편이 외국으로 유학을 간 것을 알게 되어 한 시름을 놓지만 여전히 옥련의 생사가 걱정이다.한편 옥련은 피난길에 폭탄의 파편을 맞아 부상했으나 일본군 군의관의 호의로 그의 양녀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간다.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원래 총명하고 예쁜 탓으로 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그러다 군의관이 전사하자, 부인으로부터 냉대를 받게 되고 갑자기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어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그러나 꿈에서 어머니를 보고난 후 또 다른 삶을 찾던 중 구완서라는 청년과 알게 되어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구완서는 부국 강병의 뜻을 품고 조선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유학길에 오르던 중이었다. 옥련은 그곳에서도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신문에 기사가 실린다. 그 신문을 이미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 김관일이 보고 부녀는 극적으로 10년만에 만나게 된다. 이런 가운데 아버지의 청유로 옥련과 구완서는 일생의 반려가 되기로 기약하며 약혼을 한다. 구완서는 우리나라를 문명한 자유연애와 신 결혼관 고취, 신교육과 신문명에의 필요성, 남녀평등사상 역설 등 문명개화를 통한 자강이라는 문제가 당대 사회의 각 방면에 걸쳐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그 중에서도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보다도 봉건정치체제에 대한 증오를 통한 문명개화 자강을 역설하는 것에 있다. 봉건제도 및 탐관오리에 대한 증오는 김관일과 그의 장인의 하인인 막둥이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1910년대 한국문학과 근대성, 소명출판, 김복순, 1999, p.349김관일이 ''범같고 곰같은 타국사람들이" 조선 땅에서 "싸움을 하느니 지랄을 하느니 하는 전쟁에 대한 반감을 보이며 원인을 생각한 끝에 우리가 강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바로 봉건정치체재의 모순 때문이다.봉건체제의 모순인 족벌체제를 타파하고 우리나라도 남의 나라와 같이 밝은 세상이 되고 강한 나라 가 되면 외국군대의 각축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천하각국을 다니면서 남의 나라 구경도 하고 내 공부 잘한 후에 내 나라 사업하리라 하고 유학을 떠난다. 작가는 여기서 김관일을 통해 반봉건의식과 반외세인식을 강렬히 드러낸다.김관일의 봉건 정치에 대한 증오에 평민상층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면, 하인 막동의 증오는 평민 하층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작품의 흐름은 그 당시 현실적 변화를 따라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신분제에 관한 것이다. 모든 것이 나라가 약한 탓이니 자손을 보존하려면 나라를 위하라는 주인의 충고에, 그 동안 자기 같은 하인들은 제 목숨조차 양반에게 내놓고 살아야 했으니 이 모든 것은 양반의 탓이라고 호되게 비판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나라는 평민의 것이 아니라 양반의 것이었다는 막동의 말은 이 작품에서 가장 날카로운 말이다.이뿐 아닐 『혈의누』는 그 당시 관습의 변화도 보여주고 있다. 그중 하나는 속신(俗信)의 세계에 대한 부정이다. 옥련이가 외로움에 지쳐 자살을 결심했을 때, 옥련은 부모가 죽는 불길한 꿈을 꾼다. 꿈의 예시적 기능대로라면 옥련에게 나쁜 일이 생겨야 에 도움을 주지만 이인직에게 신문명이 일본적인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다.작품 전반에 있어서 이인직은 청은 배척하고 일본을 유난히 선호한다. 한 가족이 불행하게 된 발단은 청일 전쟁이지만, 아무리 작품을 뒤져봐도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일본을 원망하는 내용은 없다. 그저 우리가 못났다고 탓하거나, 청나라 잘못으로만 돌리고 있으며, 오히려 청나라 사람들 때문에 피난 중에 피해를 입었다고 표현되어 있다. 또 일본군대가 옥련을 일본에 보내는 것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부분, 또 옥련이 가는 배안에서의 친절한 일본인의 모습, 전쟁중에 일본인이 남의 집을 드나드는 모습을 합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즉 청나라는 우리를 불행으로 몰아넣은 원수요, 청나라 사람은 죄 없는 백성을 겁탈하고 물건을 빼앗는 나쁜 인간으로, 반대로 일본은 우리는 돕는 나라요, 일본인은 매우 인격적이며 시혜적인 인간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한편으로 이 작품은 일본의 정치소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이 '청일전쟁'을 굳이 '일청전쟁'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점, 일본군을 옹호하고 청나라 군사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는 점, 작가가 자주 전면에 등장하여 당시의 사회현실을 비판하는 점 등이 이 작품의 정치소설적인 성격에 대해서 생각게 하는 요소들이다.옥란과 미국에서 공부하는 구완서는 문명 개화를 선도하는 선구자적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는 급진적 인물이다. 구완서의 당대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역사적 현실인식과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김관일의 그것과 대비해 보면, 양자는 개화주의자로서 문명 개화의 당위성과 시급성에 대한 인식이 일치되는 반면 간과할 수 있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김관일은 탐관오리들의 탐학과 전란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며 타국 군대가 국내에 진입하여 벌이는 전쟁도 모두 나라가 강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의 문명 개화주의는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하고 외세의 개입을 배척하려는 방책으로, 그 근저에 자강논적 국가주의가 깔려 있다.반면97
[무진기행 구조주의 비평] 2003.2.6 01.갱쓰{아내의 권유로 '나'는 무진으로 떠난다. 젊고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을 했고, 얼마 후 제약 회사 전무가 될 서른세 살의 '나'는 어머니의 묘가 있고 더 젊은 날의 추억이 있는 무진으로 간다. 짙은 안개, 그것은 무진의 명물이었다. 과거에도 무언가 새 출발이 필여할 때면 무진에 오곤 했었다. 그러나 늘 어두운 골방 속에서의 화투와 불면과 수음, 그리고 초조함이 있었을 뿐이다.무진에 온 날 밤, 중학 교사로 있는 후배 '박'을 만난다. 그와 함께, 지금은 그곳 세무과장이 된 중학 동창 '조'를 만난다. 그는 '손금이 나쁜 사내가 스스로 손금을 파서 성공했다.'는 투의 얘기에 늘 감격해 하던 친구다. 거기서 하인숙이라는 음악 선생을 소개받는다. 대학 졸업 음악회 때 '나비 부인'의 아리아 '어떤 개인 날'을 불렀다는 그녀는 술자리에서 청승맞게 유행가를 부르고, 둘만이 함께 있을 때 무진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을 '나'에게 간청한다. '나'는 그녀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다.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한다.이튿날,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방죽 밑에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본다. 바다로 뻗은 방죽, 거기 '나'가 과거에 폐병으로 요양했던 집에서 하인숙과 정사를 갖는다.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끝내 말하지 않는다.다음날 아침, 아내로부터 온 급전(急電)이 과거의 의식에 빠져 있던 '나'를 깨운다.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쓰나, 곧 찢어 버린다. 이제는 영원히 기억의 저편으로 무진을 묻어 두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 곳을 떠난다.◐무진기행의 구조◑나 의 떠남, 중대한 경험, 돌아옴(교재 p.117~119 참조) 구조를 무진기행 에서도 볼 수 있다. 주인공인 '나'가 서울을 떠나 무진으로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는, '떠남→추억의 공간(에서의 경험)→복귀'의 여로(旅路) 구조를 가진다.1.떠남: 아내가 있는 서울이라는 세속적이지만 현실적인 가치의 공간을 떠남2.추억의 공간: 무진으로 나른하고 축축한 몽환의 세계3.복귀: 다시 일상의 세계로의 복귀이러한 과정은 나 이 가지는 구조적 틀과 유사하다. 구조주의 비평이 요소 를 전체와의 관계 를 통해 파악함으로서, 요소 는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관계 를 의식하려는 사고방법이라 정의했을 때 무진기행의 위의 이야기들과는 서로 상이한 요소를 가지더라도 그 관계는 동일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즉 표면구조로 볼때는 상이한 이야기들이 심층구조로 파악하면 동일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의미화 과정(롤랑 바르트)◑일상과 꿈, 현실과 몽환(夢幻)이라는 대립적 가치를 '아내 - 인숙', '서울 - 무진'의 틀로 설정하여,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일탈(逸脫) 심리를 보여 주고 있다.{요소일차적 의미화 과정(외연)이차적 의미화 과정(내포)삼차적 의미화 과정(신화)1안개공기속의 수증기가 차가운 지표와 만나서 나타나는 일기현상, 무진의 명물
한국어의 계통에 관한 고찰{{1. 들어가기1.1. 한국어의 계통1.2. 알타이어와 한국어 계통연구사 개관2. 알타이 제어의 특징2.1. 음운론적 특징2.2. 형태론적 특징2.3. 통어론적 특징3. 알타이 제어와 한국어의 비교3.1. 음운론적 비교3.2. 형태론적 비교3.3. 어휘적 비교4. 마치면서1. 들어가면서1.1 한국어의 계통우리는 매일 같이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국어의 原流가 어디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어의 뿌리는 어디일까? 우리 한민족이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국문학을 공부하고 있으면서도 굳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국어의 역사에 대해 한번쯤 의구심을 가져 보았다면 누구나 가져보는 질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어디서 것일까?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일지라도 이러한 물음에 막연해지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보통 한국어의 뿌리를 우랄·알타이어족이라고 배웠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또한 한국어가 우랄어계와 알타이어계가 서로 다른 계통을 가진 언어라는 사실과 우리 한국어는 그중 알타이어계와 좀더 가깝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의 언어는 어느 語族에 속하는 것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우랄·알타이어계 언어란 무엇일까?「한국어의 계통」이라는 책을 통해서 아직 미흡하지만 한국어의 뿌리를 찾는 불빛을 발견했다고 생각되어진다. 우리는 흔히 한국어의 기원을 찾는다.먼저 계통이라는 말을 보자. 한국어의 기원이라는 것 보다 계통에 대해 필자의 초점이 모여져 있다. 엄격히 말하자면 한국어의 궁극적인 기원을 언어학적으로 구명할 수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언어학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계통」이라고 할 수 있다.언어의 계통을 살핀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언어의 족보를 살피는 것과 같다. 하나의 언어가 갖는 소리와 형태 및 의미에 주목하여 다른 언어와 비교해 보고, 그 두 언어 사이의 친족 관계를 밝히는 비교언어학의 관타이어'로 불리게 된다. 알타이어에는 몽고어, 퉁구스어, 터키어 등이 포함되는데, 포페에 의하면 알타이어 공통 祖語에서 한국어가 일찍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국어는 같은 알타이어에 속하는 몽고어, 퉁구스어, 터키어와는 차이가 현격하다고 하였다.1.2. 알타이어와 한국어 계통연구사 개관유형적인 면에서 알타이어는 한국어와 현저한 유사성을 보이며 유사한 낱말도 발견된다. 따라서 일찍부터 한국어와 알타이어가 친근 관계에 있으리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뒤 이둘 사이의 친근 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여러 비교 연구가 계속되었다.19세기 후반 로니(Rosny), 달레(Dallet), 로스(Ross)등은 한국어와 타르타르語(대체로 우랄-알타이어에 해당)의 유형적 유사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피상적인 관찰에 그쳤다. 그 뒤 20세기 초에 이르러 白鳥庫吉의 연구에서 구체적인 비교연구가 나타났다. 많은 허점이 보이지만 한국어의 낱말을 알타이제어와 비교한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한국어와 알타이어의 친근 관계에 대한 보다 실증적인 연구가 나타난 것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한국어와 알타이어의 친근 관계를 음운과 형태면에 걸쳐 보다 과학적으로 다룬 뽈리바노프를 이어 1928년 람스테트의 「韓國語에 관한 관견」이라는 논문이 발표되면서 진정한 알타이 語學이 시작되었다. 그는 비교언어학적 방법에 의해서 일정한 음운 대응을 관찰하고 또 문법 형태소를 분석하여 한국어와 알타이어의 친근성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람스테트에 이어서 한국어와 알타이어의 친근 관계를 한층 깊이 있게 연구하려고 한 것은 포페였다. 그에 의해 알타이어족說은 한층 정밀화되었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알타이제어와 한국어의 관계가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한국어에 적어도 알타이어 기층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라고 신중하게 말했다. 그는 '한국어의 위치는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고 전제한 다음 한국어의 계통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1) 한국어는 알타이제어와 친근 관계가 있을 수 해방 후에 비로소 전개되기 시작하는데 그 후 한국어의 계통연구가 어느 정도 본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우리의 한국어 계통연구는 처음부터 일관해서 알타이제어와의 친근성을 구명하려는데 집중되어 온 것이 특징이다.2. 알타이 諸語의 특징2.1. 음운론적 특징알타이제어의 음운 체계는 대체로 일치한다. 그중 알타이제어는 모음조화라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모음조화 현상은 알타이제어의 어느 한 시기의 어느 한 방언에서 낱말 혹은 어간과 접미사 사이에서 共存할 수 있는 홀소리에 제한이 있는 현상을 말한다. 현대 국어에서는 모음체계의 변동으로 완벽하게 지켜지고 있지는 않지만 몽골어와 터어키어 등에서는 비교적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모음조화는 각 언어의 변화단계 또는 方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모두 적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포페는 한 낱말에느 일정한 모음만이 나타난다고 하였고, 야곱슨(Jakobson)은 開母音끼리 공존하든가 아니면 閉母音끼리 공존하는 것을 말하였다. 服部四郞은 알타이제어에 두 종류가 있음을 예로 하여 前舌-後舌의 모음조화와 開-閉의 모음조화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開-閉의 모음조화는 前舌-後舌의 모음조화보다 불안전하며 전자는 모음조화가 쇠퇴된 방향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았다.다음으로 알타이제어는 長·短 모음의 대립한다. 그러나 1차적(기원적) 장모음은 오늘날 알타이어 중 몇몇 방언에만 남아 있을 뿐,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단모음으로 변화했다. 반면 2차적 장모음은 어떤 음운群에서 후세에 장모음으로 변화한 것이다.이런 2차적 장모음도 단모음과 대립한다. 튀르크어, 몽골어, 퉁그스어에서 대부분은 첫 음절에 강세가 있으나 음운적인 기능은 없다.알타이제어의 자음 체계에서는 有氣音과 無氣音의 대립이 없다. 어느 언어에서는 口開子音과 非口開子音이 존재한다. 몽고어가 그렇다. 알타이제어에서는 語頭와 語未에 子音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튀르크어에서 語未에서 자음군이 나타나고, 몽골어의 방언에서 예외적으로 語頭에서 일정한 자음군이 나타으로는 각 접미사가 한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알타이제어에서의 品詞는 印歐語와는 조금 다르다. 알타이語學에서는 명사, 동사, 분사의 세 품사로 크게 구별되어지는데, 이 때 명사에는 형용사, 대명사, 수사 등이 포함된다. 명사와 형용사는 형태상으로 구별되어지지 않는다. 한국어에서처럼 형용사가 따로 있어서 동사가 활용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몽고엉[서는 하나의 단어가 명사인 동시에 형용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퉁구스어에서는 특수한 접미사가 붙어 형용사를 형성하는 경우가 있으나 물론 활용하지는 않는다.알타이 제어의 또다른 특징은 명사에 첨가되는 소유접미사와 인칭접미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만주어를 제외한 몽골어 方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몽골어와 만주어를 제외한 모든 퉁구스어에는 반조-소유접미사가 있으나 튀르크어에는 없다.포페에 의하면 알타이제어의 동사적 특징은 어간과 접미사가 없는 명령형 만이 순수한 動詞形이고 時制, 動名詞, 副動詞 등의 모든 동사형은 기원적으로 명사형이라는데 있다. 또한 알타이제어는 전치사가 없고, 후치사가 있는 접이 특징이다.2.3. 통사론적 특징알타이제어에서 보통 한정사는 被한정사 앞에 온다. 또한 한정사와 피한정사 사이에는 印歐語에서와 같이 수나 격의 일치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語順은 알타이제어에서 대부분이 주어-목정서-서술어의 순서를 취한다.3. 알타이제어와 한국어의 비교3.1. 음운론적먼저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모음대응에 대해 살펴보자. 이를 살펴보려면 먼저 한국어의 모음 체계의 변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먼저 한국어에서의 모음 체계의 변화를 도시하면 다음과 같다.{(1)고대한국어*i * * *e* *o *u *a(2)7모음체계*i * * *e*o *u *a(3)중성모음i의 출현*i * * *e* *o *u *a(4)6모음체계*i * * *e* *o *u *a{{이와 같이 중세 한국어에 이르는 모음체계의 변동을 고려하면 중세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모음대응은 다음과 같다.{(1)(2)(3)(4)(5)(6)(7)(8)음조화의 변화를 살펴보면 前舌-後舌의 조화에서 高舌-低舌의 조화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前舌-後舌의 조화는 高舌-低舌의 조화보다 안정하고 후자는 모음 조와의 쇠퇴의 방향으로 한걸음 나아간 것이라 볼 수 있다.다음 子音에 관해 비교해 보자. 일반적으로 알타어 祖語와 한국어의 파열음 계열의 대응관계를 다음과 같이 나타낸다.{{{{{{{알타이 祖語한국어*p *b *t *d *k *gp t k그러나 한국어에서 파열음 계열의 대립은 다음과 같다.p p t t k k{{{pp tt kk이러한 한국어의 대립관계와 알타이 祖語의 대립관계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는 것일까? 일반적인 견해는 한국어의 有氣音 p , t , k 와 된소리 pp, tt, kk는 모두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한 것이고, 알타이 祖語에서 有聲/無聲으로 대립하는 *p-*b, *t-*d, *k-*g가 한국어에서는 무성음 p, t, k로 변화했다고 보는 것이다.또한 알타이諸語의 특징으로 들었던 語頭子音群의 기피 현상이 몽골어의 방언에서 후세에 독자적으로 발달한 어두자음군이 나타난다. 또한 중세 한국어에서도 후세에 발달된 것으로 믿어지는 어두자음군이 나타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音價에 대해서느 두가지 견해가 있다. 첫 번째는 각 字가 각기 제 음가를 가졌던 것, 즉 모두가 자음군으로 발음되었다고 추정되는 견해와 둘째는 -p계만을 자음군으로 보고 -s계는 된소리로 표시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한국어의 어두자음군에 대해 처음 언급한 사람은 람스테드이다. 그는 자음군C¹C²-가 기원적으로 C¹VC²-에서 母音(V)가 소멸하면서 형성된 것이라 하였으나 그 소멸 원인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러한 어두자음군의 형성에 관한 원인을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더많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3.2. 형태론적 비교알타이제어에서는 명사와 형용사가 형태상 구별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어는 다른 알타이어 와는 달리 형용사가 活用한다. 따라서 한국어는 형용사가 활용한다는 점에서 동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에 있다.
교육과정의 원리와 이해-Tyler와 Walker의 모형의 비교·분석{Ⅰ. 교육과정이란 무엇인가Ⅱ. Tyler의 교육과정 모형ⅰ) 교육목표의 설정ⅱ) 학습경험의 선정ⅲ) 학습경험의 조직ⅳ) 학습성과의 평가Ⅲ. Walker의 교육과정 모형ⅰ) 플랫폼ⅱ) 숙의ⅲ) 설계Ⅳ. Tyler와 Walker의 모형 평가와 비교 분석Ⅴ. 결론Ⅰ. 교육과정이란 무엇인가교육과정의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에 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교육(敎育)의 개념을 한마디로 완벽하게 정의하기란 어렵다. 오늘날 우리의 교육적 사고와 행위에 큰영향을 주고 있는 플라톤(Plato, 482-328 B.C)과 「에밀」의 저자 루소(J. J. Rousseau, 1712-1788), 미국의 진보주의 철학자 듀이(J. dewey, 1859-1952)의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이란 이상적인 상태를 실현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라고 보인다. 교육이란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정의로운 국가의 형성이, 루소에게는 자유로운 개인의 성취, 그리고 듀이에게 있어서는 참된 민주 사회의 건설이었다.{) 교육과정과 목적 Walker D. & Soltis J. 허숙 譯, 교육과학사, 1986 p.20어쨌든 교육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간 행동을 계획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고 정의 할 수 있겠다.그렇다면 교육과정이란 무엇인가? 교육과정은 교육의 수단,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간 행동을 계획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작용하는 수단이다. 이처럼 교육과정을 인간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볼 때 이 과정에는 왜(목적), 무엇을(내용), 어떻게(방법), 얼마만큼 달성되었는가(평가)의 문제가 포함된다.{) 교육과정 및 교육평가, 김창걸, 교학연구사, 1995, p.11즉, 교육과정의 기본적인 질문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로 시작하여 일반적으로는 왜 가르치는가를 묻게 되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묻는 것이다.타일러는 교사들의 수업 계획을 유심히 관찰한 후에 교수(teaching)가 문서화된 노트와 관계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교수가 문서화되지육과정을 구성하고 운영할 단계에 와서 가장먼저 부딪치는 일은 학교에서 달성하고자하는 교육목표가 무엇인가 이다. 그의 모형에 따르면 교육목표(educational objectives)는 교육과정의 순환과정에서 제일 먼저 결정되어야 하는 요소이다. 그렇다면 교육과정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가 교육의 개념을 인간의 행동 양식을 변화시키는 과정 이라고 규정한 것을 볼 때, 타일러가 지칭하는 교육목표란 학습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이루고자 하는 행동의 변화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타일러는 교육목표를 설정하는 기준이 되는 자원, 즉 교육목표 추출의 원천을 학습자, 현대사회, 교과전문가로 보고 목표선택의 준거(準據)로서 교육철학, 학습심리에서 찾고 있다. 이 교육목표 추출의 원천은 잠정적인 목표를 추출하기 위한 것이고 이렇게 잠정적으로 추출된 교육목표는 목표선택의 준거를 통해 비로써 타당한 목표로 설정되는 것이다.타일러가 교육을 인간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고 본 것을 전제로 할 때 학습자는 교육과정구성의 전제가 되며, 중요한 원천이 된다. 학습자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필요(needs)와 흥미(interests)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에는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적 소망상태와 학습자의 현재상태가 차이날 때 나타나는 교육적 필요와 유기체가 내적 긴장상태에 있을 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인 생리적·심리적 필요가 있다.현대사회는 복잡하고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지식을 취사선택하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하기 위해 현대 사회의 분석이 필요하다. 또 다른 필요성은 교육내용이 개인의 사회생활에 전용되기 때문에 학습의 전이(轉移)효과를 가져다 준다.그러나 현대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현실을 토대로 하여 다른 요인들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한다. 특정교과의 성격과 학습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교과 전문가들의 제안은 교육목표 추출의 또 다른 자원이다. 그러나 너무 전문적이고 특수한 소수를 위한 내용보다 다수의 일반 학생들제 해결의 경험을 직접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올바른 사회적 태도를 함양하기 위해서는 주위사람들의 태도를 흡수·모방하는 방법, 경험의 정의적 결과로 인한 방법, 충격적인 경험을 통한 방법, 직접적인 지적 분석의 과정을 통한 방법이 있다. 이중 학교에서 활용 가능한 것은 주위환경의 동화·흡수와 경험의 정의라고 하겠다. 학습동기를 유발시키는 수단으로서 또한 윤택한 개인 생활을 위한 흥미를 기르기 위한 학습경험을 세울 땐 학습자에게 만족감을 주고 다른 경험과의 연결을 제공해야하며 학습경험을 다양하고 참신하게 꾸며주어야 한다.ⅲ) 학습경험의 조직만약 어떤 교육목표가 여러 지 학습경험의 계속적이고 누적적인 결과로만 성취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경험들은 마땅히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들로 조직되어야할 것이다. 교과들 간에서 또는 한 교과 내에서 학습자들이 갖는 학습경험이 단편적이고 상호 괴리될 때 교육목표의 효율적 성취란 기대하기 어렵다.이렇게 효율적으로 학습경험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학습내용의 종적인 관계, 즉 시간적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배열·조직하는 것과 학습내용의 횡적인 관계, 즉 어느 한 영역과 다른 한 영역의 상호적인 배열·조직이 필요하다. 이는 교육과정을 조직할 때 고려해야할 측면인 수직적(垂直的) 조직과 수평적(水平的) 조직이다.이처럼 효율적인 학습경험의 조직을 위해서는 반드시 계속성, 계열성, 통합성의 3가지 준거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계속성(繼續性)의 원리란 학습경험의 수직적 조직에 요구되는 것이로써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목표의 성취를 위해서는 유사한 경험들을 반복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보다 충분한 학습을 유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계열성(系列性)도 학습경험의 수직적 조직에 해당하는 원리로서 계속성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계열성을 경험의 반복적 체험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보다 높은 수준을 높여서 그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는 더욱 심화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열성을 시퀀스(sequence 알아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바람직하고 실현성 있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명백하게 진술하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교육목표를 평가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평가장면(test situation)을 선정해야한다. 적절한 평가 장면이란 평가하고자 하는 목표행동이 반응되어 나올 수 있도록 고안되어야 한다. 세번째 단계로 평가도구를 직접 제작하거나 기존의 도구 중 알맞은 것을 고르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정리하는 것이다 평가를 실시할 때는 평가받는 학습자의 목표행동이 잘 드러나도록 조건은 마련하고 능력검사, 정의적 특성 검사에도 적절한 상황과 평가 태도를 고려해야한다. 이렇게 수집된 행동에 관한 결과는 적절한 기준에 의해 정리되고 이 평가 결과의 정보와 재료는 교육과정 전반의 피드백(feedback)과정에 유용하게 참고 자료가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육과정의 개선, 학습지도, 교육정책, 장학 행정 등의 다방면에 쓰인다.타일러는 교육과정의 개발과정을 목표설정의 단계에서부터, 질적 관리에 이르기까지 6가지 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에서 요구되는 평가에 관한 내용을 요약하였다. 먼저 교육목표는 교육철학 및 사회이념과의 조화, 학습자의 흥미·필요·발달수준, 중시되는 행동특징 등이 적절하게 사용되는지 평가한다. 다음으로 학습계획을 짜는 단계에서 시안으로 마련된 각종 자료와 계획상에 오류나 결함이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일종의 형성평가라 할 수 있는 소규모의 예비시행 단계에서는 학습기자재의 성능과 프로그램에서의 결함을 수정·보완해 나간다. 다음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의 시행하고 나서 교육체제에 목표한 변화가 적절히 일어났는지를 평가한다. 이렇게 프로그램의 시행을 마친 후에 총괄평가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결과평가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는 의도한 목표의 달성만이 아니라, 부정적·긍정적인 부수 효과도 모두 평가되어야 한다. 또 프로그램 대상과 조건을 다양하게 표집해야 하고, 그 장기 효과를 조사해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다시 새로운 교육과정 단계이다.이와 같은 예비적 단계는 개발 연구자들이 모여서 토대가 무엇이고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토론하고 논의하는 것이다. 워커가 '토대'(platform)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앞으로의 토론에서 기준 또는 기초 혹은 합의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이러한 교육개발의 작업은 개발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그 각각의 제안들이 갖는 이점과 문제점들에 대한 찬반 토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토론은 자연히 구성원들 각자가 가는 플랫폼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재판정의 배심원들이 자신이 갖는 정의와 법률에 관한 신념에 의해 달리 판결을 하듯이 교육과정 개발자들도 그들의 사고와 신념에 따라 사고의 관념이 달라지는 것이다.워커에 의하면, 토대는 일반적으로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한 신념인 개념, 존재하는 개념들 간의 관계에 대한 신념인 이론, 그리고 상대적으로 잘 설정되고 심사숙고된 무엇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신념인 목적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이외에도 어떤 것을 구체화하지 않은 채 막연히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견해인 이미지나 바람직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채 제시하는 방법이나 행동 방침인 절차와 같이 신중하게 사고되지 않은 개념들이 있다.ⅱ) 숙의위에서 개발자들의 신념과 사고를 재판정의 배심원이 가지고 있는 신념에 비유하였다. 배심원들이 그들의 가치고 신념에 따라 무죄와 유죄라는 판결이라는 결과를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육과정 개발자들도 상황에 따라 최선의 방안을 결정하는데 숙의(deliberation)의 방법을 사용한다. 숙의란 본질적으로 적절한 여러 대안들, 대안적 지각들, 대안적 문제들과 대안적 해결들을 찾아내고 형성하고 고려하기 위한 체계적인 방법이다.이러한 숙의는 여러 가지 대안들을 곰곰히 살펴봄으로써 대안들 간의 충돌을 제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숙의는 개발자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적절한 정보를 확인하고 수단과 목적을 분명히 하여 다양한 대안을 상의하고 대안이 가져올 결과를 가늠해 보고 최선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