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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회퍼의 급진적 제자도 공동체로서의 교회 평가B괜찮아요
    현대신학개요 Term Paper본회퍼의 급진적 제자도 공동체로서의 교회신학과 3학년 2000101009 김 강 기 명본회퍼의 급진적 제자도 공동체로서의 교회디트리히 본회퍼의 삶과 죽음“나는 무엇? 이 적막한 물음은 나를 끝없이 희롱한다.내가 누구이든 나를 아는 이는 오직 당신 뿐,나는 당신의 것이외다. 오! 하나님”(옥중에서 지은 시)디트리히 본회퍼만큼 삶과 학문의 모든 영역에서 존경받는 현대 신학자가 얼마나 있을까? 그의 신학적 아이디어는 수많은 현대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의 실천적 삶은 오늘날 불의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귀감을 주고 있다. 본회퍼를 읽는 것 자체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나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느껴질 만큼 그의 삶과 신학은 살아있는 영향력을 주고 있다.본회퍼는 1906년 부유한 의사의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23-27년 사이 베를린 대학의 하르낙의 영향 아래에서 신학을 배웠으며 20세가 되던 1927년에 신학박사 학위(Dr Theol.)를 받았다. 23세에는 교수자격 시험을 통과하고 30년부터 목회자로, 교수로 사역하였다. 히틀러 정권의 대두 이후 그는 독일 복음주의 교회에 반대하며, 순수한 신앙을 추구하는 고백교회의 신학자로서 사역하다가, 베를린 대학의 강사 자리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그는 39년에 초청을 받아 미국에 가지만 얼마 가지 않아 조국으로의 부르심을 물리치지 못하고 다시 독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히틀러 암살음모에 가담한 것이 당국에 의해 발각되어 1943년 4월 5일 체포되어 2년간의 감옥생활 후, 1945년 4월 9일 플로센부르크 포로수용소에서 사형 당하였다.그는 그다지 많지 않은 글을 남겼는데, 1930년에 학위논문 Sanctorum Communio를 발표하여 학계의 주목을 끌었고, 그 다음해에는 교수 자격 논문 Akt und Sein을 발표함으로 그 신학의 독자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1934년에 ‘창조, 타락, 유혹’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창조성을 구명함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은혜를 값싸게 보는 우리의 견해는 교회의 대 원수임을 알아야 한다.”본회퍼의 제자도에 대한 신학은 결코 사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사상은 철저히 당시 타락한 독일 교회와 사회 속에서 나온 실천적인 신학이었다. 루터가 살아가던 시대의 독일 교회는 히틀러의 나치즘에 완전히 굴복하여 독일 민족만의 기독교로 변해가고 있었다. 심지어 본회퍼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하르낙 등의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추세에 매우 적극적으로 동조하기까지 하였다.당시 독일 교회는 루터의 ‘옳다고 인정을 받는 신앙’의 교리를 정통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루터의 은혜를 ‘싸구려 은혜’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싸구려 은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그리스도의 제자 됨과 복종의 삶을 살아갈 힘을 잃었다.) 본회퍼가 본 교회의 치명적인 문제는 이 ‘싸구려 은혜’와 ‘복종 없는 신앙’이었다. 그는 싸구려 은혜가 ‘죄인이 옳다고 인정을 받는 것’을 ‘죄가 옳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라 바꾸었다고 말한다.)그는 (허혁 역, 생명의 말씀사)에서 산상설교를 재조명함으로써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름을 듣고, 생각하고, 고려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이며,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문자적인 복종이다. ‘복종’이라는 어휘는 본회퍼가 제자직에 대해서 쓰려고 하는 모든 것의 전제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첫 발자국은 그의 이전의 옛 존재와 상황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레위와 베드로가 자신들의 생업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던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옛 상태 그대로 있으면서 종교적 경험을 즐기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예수와 같이 가는 것이다.) ‘복종’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첫 조건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거부와 십자가의 죽음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제자의 ‘자기 부정’은 일련의 고행이나 금욕주의의 고립된 행동들 이상이다. 숨은 것의 역설을 가진다. 우리의 활동은 보이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보이려는 데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역설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본회퍼는 세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제자 됨의 가시성을 다른 사람들로부터가 아니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숨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서가신 그리스도만을 따라가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 자만해선 안 된다. 비범성은 복종의 열매일 뿐이다.) 둘째는, 제자 됨의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이 결합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이다. 십자가는 비범한 동시에 숨어 있다.”) 셋째로, 비범성과 숨은 면의 모순은 그리스도에 대한 배타적 복종에서 해결된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산상수훈의 명령이 바로 이와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제자도에 대한 본회퍼의 사상은 그의 교회론으로 이어진다.본회퍼의 교회론 - 급진적 제자도 공동체)“대리적 삶을 사는 인간은 그 이웃에게 그리스도이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행동할 수 있고 행동해야 한다.”본회퍼의 교회론은 크게 네 시기로 나누어진다.) 그는 첫째 시기에서는 교회의 참된 형태, 둘째 시기에서는 세상 안에서 세상과 싸우는 교회, 셋째 시기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와 세상의 변증법적 통일, 넷째 시기에는 세상을 위해 고난 받는 교회에 대해 말했다.1.교회의 참된 형태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온 인류를 위한 대리적 죽음이라는 신학적 진술에 근거하여 본회퍼는 교회론을 전개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자신을 내어줌으로 인간과의 친교를 회복하고 인간 사이의 친교도 회복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 인류, 새 공동체이다. 따라서 본회퍼는 그리스도의 대리적 죽음이 교회의 존재근거라고 말하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죽음이 비로소 교회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본회퍼에게 있어 교회는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본회퍼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교회 공동체 안에 있다’는 말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현실인 ‘교회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타인이 더 이상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다.”이러한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교회 공동체 밖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 성경도 교회 공동체 밖에서는 인간의 말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과 공동체 안에서의 설교의 말씀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개인주의적 교회개념은 거부된다. 이 말씀의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죄의 현실과 싸우는 교회이다. 말씀의 교회는 수단인 동시에 목적 자체(성도의 교제)이기도 하다.) 본회퍼는 교회를 설교 공동체로 보고 설교의 주된 사명 가운데 하나를 ‘시대에의 충실’로 보았다. 그는 당시의 독일 교회가 활력을 잃은 부르주아 교회이며, 이 교회의 미래는 이 교회로부터 등을 돌린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보았다.)2. 세상 안에서 세상과 싸우는 교회그는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결코 교리적인 주장-선택과 유기에 대한 사변적인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의 고백교회를 위한 투쟁의 말이며, 고백교회로의 부름이다. 에서 본회퍼는 “교회가 세상 생활 속에 침투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장소를 점령한다.”고 이야기 하였다. 이 교회는 세상 안에 있는 교회지만 세상과 엄격히 구분되는 교회이다. 교회는 “일정한 장소를 세상에 요구하고……. 자신과 세상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당시 히틀러정권과 파시즘이라는 거대한 권력과 절대다수인 독일적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오는 온갖 위협과 갖은 유혹 앞에서 본회퍼의 교회는 싸우는 존재여야 했다.)세상 안에 있는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교회일 뿐 아니라 세상을 위한 교회이다. 교회는 세상을 보존하는 소금이며, 빈곤, 이방인의 외로움, 화평, 핍박과 버림받은 것-다시 말해 십자가를 지는 것-을 세상에 보이는 세상의 빛이다.)3. 교회와 세상의 변증법적 통일본회퍼는 나치와의 투쟁과정에 뿐이다. 즉 기독교적인 것은 세상적인 것에, 성스러운 것은 속된 것에, 계시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그는 문화 위의 그리스도(카톨릭)이나 문화 기독교(19세기 자유주의 개신교)를 모두 거부한다.)그러나 교회와 세상은 완전히 일치하는가? 그렇지 않다. 세상과 하나님의 화해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타당할 뿐이고 세상 그 자체는 타락하여 자신의 근원인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로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적대하고 부정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교회는 이런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것이므로 교회는 세상과 대립 속에 있다. 이 둘의 통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본회퍼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이 하나님과 화해되었다는 사실과 세상은 타락하여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사실의 대립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항상 새롭게 극복되어간다.”)4. 타인을 위해 고난 받은 교회이 시기의 본회퍼의 교회론은 감옥 안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는 지난 1900년 동안 서구 기독교의 선교와 신학은 인간의 종교적 선험성 위에 세워졌으며 기독교는 항상 종교의 한 형태였다고 말한다. 종교의 특징은 개인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이다. 이러한 종교적 기독교는 자연과학과 기술에 의해 자연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해가는 성숙한 세상)에도 맞지 않고 성경의 하나님에도 맞지 않는다.성숙한 세상에서 교회가 종교적인 하나님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 죄와 죽음, 약함에 집착하는 것을 본회퍼는 거부하고, 삶의 한복판에서 생명과 선에서 하나님을 말하려 한다.) 성경의 하나님이 종교적인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은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해진다. 예수의 십자가에는 기복신앙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은 전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함과 고난에 의해서 인간을 돕는다. 본회퍼에 의하면 종교적 하나님이 발붙일 틈이 없는 성숙한 세상은 종교적.
    인문/어학| 2003.12.11| 6페이지| 1,000원| 조회(1,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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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48년 독일 혁명과 부르주아지
    1848년 독일 혁명과 부르주아지 .1848년 독일혁명과 부르주아지*2000101009 신학과 3학년 김강기명차례0. 서론1. 혁명 전의 위기 상황2. 혁명의 발발2.1 독일 비오스트리아 지방의 3월 혁명2.2 비엔나의 혁명3. 혁명의 경과3.1 정치적 협회들과 정당형성3.2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3.3 혁명의 실패4. 혁명의 해석과 부르주아지5. 결론0. 서론1848년 3월 혁명 이후 150여 년 동안 3월 혁명에 대한 해석은 독일이 겪은 정치적, 사회적 변동과 더불어 시대마다, 정치적 입장마다 다르게 전개되었다. 동독 역사가들은 이 혁명의 사회주의적 유산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반면, 서독 역사가들은 민주주의적 법치국가의 유산을 혁명 가운데서 찾으려 한다. 어떤 이들은 이 혁명을 실패한 혁명이라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이 혁명이 남긴 유산을 강조하며 일정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이 글에서는 1848년의 혁명이 자유주의적 혁명이라는 것을 전제에 두고 혁명 시기의 부르주아지들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구동독 역사가들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평가는 혁명의 실패는 부르주아지가 혁명을 배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핵심 테제를 형성하였다. 구서독 역사가들은 이러한 배반테제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구동독 역사가들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해석이 그 계급 내부에 서로 다른 정치, 사회, 문화적 태도들을 가진 다양한 이질적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과연 1848년의 혁명에서 부르주아지는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그들은 혁명의 배반자인가? 아니면 본래부터 보수적 성격을 강하게 가진 계급이었는가?1. 혁명 전의 위기 상황1840년 이후 독일에서는 새로운 혁명적 위기가 점점 심화되고 있었다. 1845-46년에는 감자병이 널리 퍼지고 곡물수확은 파국적이었다. 기아위기는 1947년에 절정에 달하였다. 농업분야의 위기는 공업 분야로도 넘어왔다. 식료품값이 오름에 따라 수공업 및 산업제품의 구매력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수공업분야는 종사자의 수가 급증국가의 예방 및 억압 조치들은 더욱 난폭해졌고, 그 반발도 심해졌다. 소요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투입되었으며 경찰과 군대에 대한 증오와 사회적 차별에 대한 분노, 정부당국에 대한 저항이 확산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의 해결책으로서 근대적 입헌정책과 참정권의 확대, 민중의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1845-1848년의 이 위기를 간접적인 의미에서 ‘혁명의 서곡’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2. 혁명의 발발2.1 독일 비오스트리아 지방의 3월 혁명프랑스의 2월혁명의 소식이 전해지자 독일연방의 전 지역에서 2, 3주 사이에 혁명이 시작되었다. 독일연방 중 구체제의 권위주의적 지배가 강력하였던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에서는 유혈충동을 거친 다음에야 정부가 혁명세력에 양보하였지만, 보다 자유주의적인 중소국가들에서는 아무런 희생도 치르지 않고 혁명세력들이 승리를 거두었다. 주요 도시에서 일어난 대중집회에서 표출된 혁명대중의 요구는 시민층 지도자들에 의해 ‘3월 요구들’로 다듬어져 군주들에게 제출되었다. 그것은 특히 언론 및 결사와 집회의 자유, 성인 남자의 보통선거권, 민중 무장, 무상의 보통 학교 교육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수많은 청원서와 대표단, 흥분한 대중집회들의 압력과 프랑스식의 고삐 풀린 혁명에 대한 심각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지배세력은 많은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새로운 정치체제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각국 수도에서 대부분 저명한 자유주의자들이 총리와 주요 장관에 임명됨으로 ‘3월정부들’이 구성되었다. 그 밖에도 자유주의자들은 각 도시의 시장이나 시정부, 시의회 등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정치개혁을 실현하고자 노력해온 ‘운동정당’은 기대하지 않았던 정치적 승리의 순간에 구질서를 혁명적으로 파괴하는 대신 개량적 노선을 취했으며, 이것이 독일혁명의 차후 방향을 결정지었다.3월의 농민봉기들은 도시의 혁명들과 달리 급작스러운 폭력적 분출로 나타났다. 새로 임명된 자유주의 정부들은 봉건적 부과조를 폐지하는 법률들을 폐지리아 중앙권력은 이렇게 상이한 성격의 혁명운동들 사이에서 반혁명의 기회를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는 당시 인구 40만 명의 거대 도시였으며 한편으로는 시민층의 자유주의 운동이 재상 메테르니히의 지배 하에서 강력한 탄압을 받고 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외의 궁핍한 프롤레타리아들의 문제가 사회문제가 심각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비엔나 혁명에 처음부터 이중적 성격을 각인하였다. 혁명운동에 시발점을 제공한 것은 3월 13일 하부오스트리아 주의 신분의회 소집이었다. 이것은 곧 항의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시민봉기로 바뀌었다. 시내 중심가의 대학생들은 베를린이나 남부독일보다 더 단호하게 행동하였다.오스트리아 중앙 권력은 양보를 통해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13일 밤, 메테르니히가 실각하였고 며칠 동안 언론의 자유, 시민층 민병대와 대학생 연대의 설치, 의회 소집, 헌법 제정 등 시민층 중심의 개혁요구들이 실현되거나 약속되었다. 17일에는 정치 개혁을 주도할 새 정부가 들어섰다. 오스트리아의 신정부는 고급 관려와 귀족들로 구성되었다.비엔나의 시민층 중 온건파는 혁명 초의 국가정책에 만족하였다. 그 이상의 것들은 헌법에 따른 개혁을 통해 성취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비엔나 혁명은 처음부터 목표설정과 사회적 담지계층에 따라 분열된 운동이었다. 시내에서는 시민층이 그들의 개혁소망을 관철시킨 반면에 교회지역에서는 하층민이 관청을 불 지르고 공장을 파괴하였다. 정부는 시민층에게는 무장을 허용하였으나 노동자들은 이 민병대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혁명세력 내부의 대립은 점점 더 심화되어갔다.이러한 분열로 인한 무거운 부담을 안은 채 비엔나 자유운동은 1848년 10월 반혁명세력과 결전을 치르게 된다. 오스트리아 중앙권력이 헝가리 민족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비엔나에 주둔하고 잇던 군대를 투입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자발적인 민중운동이 이것을 막음으로써 10월 혁명이 일어났다. 10월 말 주로 노동자들과 수공업자들로 구성된 봉기자들은 빈디쉬그래쯔가 이끌던 군대에년간 독일 정치를 각인했다.이중 1848년 혁명에 있어서 주목할 계층은 부르주아 계층이다. 시민 진영이 민주주의자와 자유주의자로 분열된 것은 혁명의 경과에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민주주의자 강령들은 국민주권의 확고한 원칙과 단원제, 보통선거권을 요구했다. 그들은 급진파는 공화국을 세우고자 했고 폭력사용도 불사했던 반면, 온건파는 민주적 군주정을 주장했다. 민주주의자들은 수많은 민중협회와 민주협회 등을 세웠으며 조직생활에서 어느 정당보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자유주의자들은 당시 일반적으로 ‘입헌주의자들’이라고 불렸으며 “모든 반동적 노력과 특히 모든 공화주의적이고 무정부주의적 노력들에 맞서 자유와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입헌적 협회들’에 가입하였다. 이들은 당시 왕권과 성문헌법의 화합을 시도하였다. 그 때문에 왕정의 유지, 양원제, 중산층, 지주의 이해관계에 대한 보호, 재산에 따라 하층민들을 배제하는 차등선거제, 입법부에 대한 국왕의 절대적 거부권 등이 강령의 중심내용이었다. 이들은 전국적 조직을 형성하는 데는 민주주의자들보다 명백히 뒤떨어졌다.3.2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1948년 5월 1일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25세 이상 남성의 80%에게 선거권이 부여된 이 선거를 통해 광범위한 민주적 의사형성이 가능해졌다. 선거 결과 교양 시민층이 정치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전체 의원의 약 3/4가 대졸이었다. 빠른 속도로 당파들이 형성되어 국민의회의 의사결정을 용이하게 해주었다. 최대 812명에 달했던 의원 중에 아무 당파에도 속하지 않은 의원이 150명, 나머지 의원들 중 우파 12%, 우파자유주의자 40%, 좌파자유주의자 19%, 자유주의중도파 11%, 온건좌파 12%, 급진좌파는 6%였다.국민의회는 세 차례의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첫 번째는 고대해온 독일 민족국가의 성격과 영역에 대한 논쟁이었다. 두 원리들이 여기서 대립을 보였다. 독일 민족국가를 세우는 데 종족적 동질성과 민족문화적 전통을 기반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권 논쟁은 지배질서와 국가형태 등 장차 독일의 영역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이 논쟁의 초점은 공화국이냐 입헌군주정이냐의 문제로 집약될 수 있었다. 자유주의자의 이상은 중간 신분적으로 각인된 ‘계급 없는 시민사회’였으며 하층민도 장치 교양과 재산을 획득함으로써 사회의 일원으로 상승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그 때까지는 하층민에게 열등한 시민권만을 허용하려고 했다. 그들이 혁명기에 추구한 민족국가는 한시적인 시민적 계급국가로 구사되었으며 군주정은 혁명적 위협에 맞서 시민적 사회질서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공화주의자를 사회 혁명적 세력으로 민주적 공화국을 무정부상태의 동의어로 보았다.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시민층과 소시민층의 대다수는 공화국이라는 국가형태를 결코 사회력명적 목표들과 결합시키지 않았다. 공화주의적 민주주의자들 중 다수는 현실적 세력분석을 기반으로 공화국과 군주정 사이에서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들이 만든 제국헌법의 중요한 부분들은 자유주의자와 민주주의자의 타협에 기반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3.3 혁명의 실패혁명기 독일의 가장 어려운 딜레마는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잇었다. 1848년 10월 국민의회는 오스트리아를 독일계 지역과 비독일계 지역으로 분리시키고, 전자만을 독일제국에 포함시킬 것과 양 지역 사이의 관계는 군주를 통한 인적 결합만으로 제한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다시 세력을 회복한 오스트리아 중앙권력은 오스트리아 왕국 전체를 포함시킬 것을 요구함으로써 국민의회의 대독일적 통일안을 무산시켰다. 결국 국민의회는 49년 3월 프러시아 중심의 소독일적 통일을 결정하고 프러시아 왕을 황제로 선출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황제 자리를 거부하게 되면서 소독일적 민족국가에 대한 희망마저도 실패하게 된다.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에서 성취한 것들을 구하려는 마지막 시도인 제국헌법 수호투쟁은 그해 5월 초에 시작되었다. 투쟁은 지역적으로 고립된 봉기.
    사회과학| 2003.12.11| 7페이지| 1,000원| 조회(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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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성경적 여성관
    남과 여,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님 나라-하나님 나라엔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이다.2000101009 신학과 김 기 명1. 타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 타인의 자리에 서 보는 것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이 우울증은 내가 사춘기를 지나면서 생긴 것이었지만, 병식-병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올해 여름이 지나가면서부터였다.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인식하고 병원치료를 받게 되면서, 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렸다. 그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여자친구도 있다면서 무슨 우울증이냐?”였고, 또 하나는 “기도해. 신학생이 무슨 우울증이냐?”였다. 그들은 우울증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였기에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지만, 내게는 상당히 마음 아픈 말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간혹 있었는데, 그들의 반응은 그저 “많이 힘들겠구나. 치료 잘 받아.”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특징은 그들 스스로가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사람들이나, 상담프로그램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받았던 위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으며,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말투와 표정, 제스처만 보아도 그들이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헨리 나우엔의 책 제목을 빌려 표현하자면, 그들은 ‘상처 입은 치유자’들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이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예수님은 죄에 빠져 허덕이는 인간들의 고통을 하나님의 보좌에서 이론적으로 고찰하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직접 인간이 되심으로 그 고통의 현장 가운데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와 한결같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당하셨다. 그러하기에 그분은 우리를 알고, 우리를 이해하신다. 그리고 우리를 치유하실 수 있는 것이다.이 글에서, 우리가 ‘남’과 ‘여’의 문제를 바라볼 때에, 이론을 제시하기 이전에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서로가 상대방의 자리에 서 서 그런 작업을 다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아마도 유능한 신학자가 평생을 걸쳐 해야 할 작업일 것이다. 다만 우리는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온 남성중심의 해석을 거부하고 전통적인 창조-타락-구속-완성의 틀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성경이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보려 한다.2.1. 창조 - 돕는 배필하나님은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다. 마지막 날에 지은 것은 바로 남자와 여자, 사람이었다. 먼저 창조된 것은 아담이었다. 그는 처음에 혼자였고,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짝을 만들어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동물들을 먼저 창조하였다. 그러나 어떤 동물도 아담과 함께 소통하며 공존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 동물들은 다만 아담에게서 자신들의 이름을 얻을 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잠든 사이에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서 여자를 만들었다. 성경은 그렇게 소통하고 공존하도록 창조된 여자를 남자의 ‘돕는 베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돕는 배필’이라는 말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오해를 가져왔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돕는 배필”(‘ezer kenegdo)이라는 말은 현대어 번역에서 “도우는 자”(a helper; RSV), “배필”(a helpmate; JB), “적절한 도움”(a fitting helper; New Jewish V), “그에게 적합한 도움”(an aid fit for him; AB), “돕는 사람, 곧 그의 짝”(표준새번역) 등으로 번역된다. 우리말 번역의 “돕는 배필”은 독자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마치 여자가 남자의 “조수” 혹은 “시녀” 같은 느낌을 시사할 수 있다. 사실 전통적으로 교회는 “돕는 배필”이라는 번역에 근거하여 남성우월론과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성의 여성 지배론을 정당화 시켰다(Calvin, Genesis 129). 따라서 우리는 “도우는 자”(’ezer)와 “그 맞은편에 있는”(kenegdo)이란 두 용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먼저 “도우는 자”('eze뱀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를 서술하고 있다. 이 중 여자에게 내린 형벌을 성경은,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리리라.”라고 말하고 있다. 개역성경의 이 구절은 표준새번역에서는 위와 같이 번역되어 있다. 공동번역 역시 같은 뜻으로 번역하고 있다. 즉, 오늘날의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인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남성권력의 여성 지배를 다른 형벌들과 마찬가지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 노동은 더 이상 즐겁고 기쁜 일이 아닌, 고달픈 일이 되었으며, 노동 조건 역시 악화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노동을 향한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함으로써 창조의 모습을 최대한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또한 일반은총의 영역에서도 일어난다.) 이와 같이 남성권력의 여성 지배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완전히 혁파될 수는 없을 것이나, 최대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 창조 때의 남과 여의 모습으로 회복되도록 해야 할 소명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또 일반은총의 영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다 하겠다.2.3. 구속과 완성 - 종말론적 긴장 속에서 읽는 바울 서신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여성에게 있어서 해방의 소식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못 해석하여 여성을 부당하게 차별하였다. 이방인들은 더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자주자나 종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였다.(갈 3:2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시에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였던 여성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여겨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 처음 그를 만난 이들도 여성이었다.그렇다면 바울 서신 안에 여성을 하대하는 듯이 보이는 말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통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바울 서신의 정경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여성을 하대하는 듯 보이는 말씀들은 바울의 사견이며, 하나님의 말씀일것을 말하면서 ‘창조 질서’를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지금도 안산홍 증인회나 카톨릭에서 하는 것과 같이 여자들도 예배 중에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것은 당시의 관습이었으며, 그것을 멀리하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졌기에 바울이 권면한 것이라 할 수 있다.디모데전후서에 나오는 여성 비하적 발언, 남성 리더십만을 인정하는 구절 등도 이러한 ‘이미-아직’의 종말론적 긴장 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남성과 여성이 창조 때와 같이 온전한 소통과 온전한 공존을 누리는 것이 성경의 정신이며, 바울 서신의 난해구절들은 당시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가장 교회를 위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방법론적 접근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3. 평등을 넘어서 소통과 공존으로이제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좀 더 철학적인 분석을 해 보자. 이제까지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며 하나님 앞에서 같은 존재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제는 단순한 평등을 넘어서 서로 차이를 가진 존재인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소통하고 공존해야 할지 고민해보자. 과연 남성과 여성의 다름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다름이 권력의 도구가 아닌 상대방을 존중하는 동기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3.1. 몸을 기반으로 남녀는 구분된다. - 환원 불가능성남성과 여성을 근본적으로 구분 짓는 것은 바로 ‘몸’이다. 이 ‘몸’은 단순히 생물학적 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몸의 각인된 사회적, 심리적 흔적까지도 포함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간의 페미니즘이 ‘젠더 담론’ 즉,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 역할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으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몸을 기반으로 한 ‘성차’를 중시한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성차 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sex와 gender의 이분법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sex를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교회에서 배워 온 하나님은 남자들만의 하나님은 아닐는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받은 것은 남성들만이 아닐는지...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그 몸의 차이로 인하여 서로 다른 주체로 구성되고, 그들의 하나님 경험, 사회 경험 역시 그 몸에 따라 상대방이 전혀 알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열등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서로 존중받아야 할 차이점이라는 것이다.3.2. 소통의 가능성 - 언어의 창조그러나 이렇게 서로가 환원불가능한 차이를 보이는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그들의 몸의 차이로 인해 그들의 경험 또한 다를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도 다르다면 어떻게 남성과 여성은 지금껏 소통해왔고, 앞으로도 소통할 수 있을까?그것의 근거로 나는 ‘언어’를 들려고 한다. 창세기 1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고백하며 시작한다. 우리는 이 선언을 들을 때에 보이는 것의 창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보이지 않는 것의 창조에는 그렇게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을 크게 좌우하는 것을 볼 때 그 관심은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다. 특별히 이 글에서 우리가 주목하여 볼 것은 바로 ‘언어의 창조’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사실 하나님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실 하등의 이유가 없다. 마치 여러 신화들처럼, 오줌을 쌓더니 바다가 되고, 눈물을 흘렸더니 하늘이 되더라 등등의 창조도 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언어’의 방법으로 세상을 만드셨다. (이것은 언어가 먼저 창조되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세상이 언어로 창조되었기에 우리는 언어의 형태로 세상을 이해한다. 우리가 어떠한 것에 대해 우리의 감각과 직관 등을 사용하여 그것을 이해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은 ‘언어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하나님은 왜 언어를 창조하시고, 그 언어로 .
    인문/어학| 2003.12.01| 9페이지| 1,000원| 조회(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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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하나님과 문화
    칼빈주의와 문화 독서 보고서하나님과 문화이 책은 20세기 미국의 유명한 복음주의 신학자 칼 헨리(Carl F. H. Henry)의 기념 논문집이다. 저자들과 편집자들은 당시 ‘문화와 대립되는 그리스도’의 관점이 횡행하던 미국 복음주의 신학계에서 ‘문화를 변혁시키는 그리스도’의 관점을 가질 것을 호소한 복음주의 신학자 칼 헨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문화에 관한 18편의 논문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 편집자)들은 미국 문화의 독특한 요소들을 선별하였고, 각각의 기독교 사상가(저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분야들에 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의견을 제시하였다.이 책은 나에게는 분량도, 난이도도 결코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18개의 각각의 주제들은 매우 흥미로운 것들을 다루고 있었으며, 보수적인 복음주의권에서 문화에 대한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읽었던 신국원의 ‘문화 이야기’가 총론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각론을 다룬 책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 책의 내용을 조금씩 풀어보도록 하자.1장 세계는 과연 무대로서 적합한가? 신학 문화 그리고 해석학 (케빈 반후저)은 문화의 정의와, 그리스도인들이 문화를 해석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다룬 장이다.필자는 문화를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궁극적인 신념들과 가치들의 구현’이라고 말한다. 즉, 사람들이 소유한 신앙을 펼쳐 보이는 구체적인 방법이 문화라는 것이다. 필자는 문화의 해석에 있어서 신학의 역할을 고찰하고, 문화에서 신학이 갖는 역할을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서 문화와 해석학의 의미를 먼저 정의하고, 문화가 해석의 대상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역사가, 사회학자, 철학자, 신학자들이 문화를 해석해 온 몇 가지 방법들을 검토한다. 필자는 문화의 해석보다 해석의 문화에 대해서 언급한다. 또한 신학자가 현대 문화의 해석자이며, 비평가가 되는 일이 절실함을 말하고 있다.필자는 신앙의 해석학이 인간의 자유를 낳고 거기에 형상을 입혀 주는 텍스트의 해석에 관심을 갖고 상기시킨다. 종말론은 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에스카톤 안에서의 문화에 관해 말하면서, 모든 재화들, 예술적, 문학적, 기술적, 법률적, 정치적 업적들이 하나님 나라 안으로, 그리스도께로 가지고 나와 총괄갱신된다고 말한다.지상의 도성은 비록 많은 악을 지닌 곳이기는 해도 문화 중심지이기도 하다. 인간의 문화는 해도 많이 끼쳤지만 유익도 많이 끼쳤다. 그 유익이 제 역할을 해왔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어찌 폐하시겠는가? 그는 이러한 문화가 마지막 날에 완성될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한국의 경우, 아직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일반 교회와 성도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이것은 일제와 한국전쟁 등의 암울한 상황과 70년대의 오순절 기복주의 부흥운동 등의 현상이 맞물려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종말론적 신앙 안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교회에서도 서서히 대두되고 있다. 종말론과 문화의 관련에 대한 논의가 더더욱 터져나오길 기대하는 바이다.4장 문화 인류학, 죄, 그리고 선교사(로버트 프리스트)는 인류학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과 그것을 통한 선교의 가능성을 논한다. 필자는 신학과 인류학이라는 상이한 담론을 접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글을 연다. 그리고 문화 인류학이 기독교 혹은 선교와 부딪혀 왔던 많은 부분들을 서술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가 인간에 대한 깊은 인식이 없다는 것을 필자는 비판하며, 그 점에서 문화 인류학과 기독교의 접점-선교 인류학-을 찾고 있다. 선교사들은 적극적으로 기독교인 인류학자들과 협력하여 여러 관심사들을 연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비기독교인 인류학자들의 적대적인 연구만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연구는 연구 주제들고과 분석 도구들을 발전시키려 할 때 성경이 제시하는 개념들과 사상들과 통찰들에서 정보와 영감을 얻어야 한다.이 논문은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경험적인 논문인데, 다른 장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지금의 한국에서는 타문화권 자체에 대한 인식을 갖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필자는 기독교 철학이 단순히 기독교인이 참여하는 철학활동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 철학은 비기독교적 환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철학자들에 의해 발전해 온 철학적 요소들에 선을 댔고, 그 위에 자신들의 철학을 수립했다고 말한다. 또한 기독교 철학은 청중을 구체적으로 겨냥하며, 청중에게 구체적인 영향력을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세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할 것을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다.특별히 철학은 나의 관심분야이기도 한데, 이 글은 일반 철학과 기독교 철학을 너무 대립시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가 밟고 있는 곳은 같은 세상이며, 철학적 분석에 있어서 그 차이점 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지 않을까 한다. 더 깊은 사유를 위해서는 세상의 학문을 정교하게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7장 역사가과 옛적부터 계신 이(루이스 스피츠)는 역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논문이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역사가와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필자는 기독교 문화는 유대교의 영향으로 다른 문화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고 말한다. 그는 특별히 시대 구분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여러 역사가들의 논의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는 역사가들을 ‘뒤를 돌아보는 선지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옛적부터 계신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필자는 뒤와 앞을 동시에 바라보는 선지자라고 말한다.8장 하나님과 경제(이언 스미스)는 기독교적 경제 사상을 말하고 있다. 필자는 성서로부터 경제 사상을 발견해 내려는 시도들이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글을 시작한다. 필자는 경제학을 되도록 윤리와 정치와는 분리시켜서 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신칼빈주의 학자들의 의견을 인용하여 성경의 계시가 경제의 내용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성경의 제도적 규범들은 의미 있는 삶과 경제에서 비롯된 병리적인 산물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견엔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만난 것이다. 필자는 레프의 논의를 빌려 모더니스트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은 결국 포스트모더니스트의 허무주의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을 모더니즘의 신화로부터 이끌어내어 진리의 길로 돌아가도록 인도해 줄 올바른 교사들을 길러내는 일이다.10장 그리스도인과 정치(프래드 캐서우드 경)은 기독교와 정치에 관련된 몇 가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주제는 기독교와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개신교 국가에서 가장 빠르게 실현되어 갔다. 그것은 개인의 존엄성과 책임을 중시하는 기독교의 이상 덕분이다. 두 번째 주제는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장이다. 필자는 정부에 대한 저항권을 대단히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투표권과 언론의 자유를 통한 점진적인 개혁을 말하고 있다. 세 번째 주제는 평화유지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는 미국의 실제 외교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필자는 동유럽 구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바탕으로 한 평화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네 번째 주제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에 대한 문제이다. 다섯 번째 주제는 도덕 명령에 대한 것이다. 모든 사회는 어떤 형태로든 간에 시민법을 지탱하는 일종의 도덕 명령을 필요로 한다. 인본주의자들이 말하는 관용은 오히려 기독교적 도덕 명령 아래에서 더욱 현실성을 가진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악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다. 여섯 번째 주제는 인본주의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기독교적 사회질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모든 사회의 도덕 명령은 명명백백해야 한다. 그 명령은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실제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일곱 번째 주제는 시민으로서의 그리스도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 해야 하는 것이다. 여덟 번째 주제는 정당정치에 대않은가 돌아보게 되었다. 많은 글을 쓰고 있지만, 문학을 가까이 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 창조력이 고갈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지금 쓰는 이 레포트의 경우도, 내가 꾸준히 문학작품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라면 좀 더 창의적인 접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아쉬움을 가져본다.12장 살아 있는 예술 : 그리스도인의 경험과 예술 작품들(에드먼드 클라우니)은 예술과 성경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필자는 오늘날의 예술이 지나치게 아름다움을 신성화한다고 말한다. 그는 아름다움을 계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술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관련지어서 아름다움을 해석하도록 돕는다. 첫째로, 하나님은 아름다움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계시하신 분이라는 것을 성경의 논의를 빌려 필자는 말하고 있다. 그는 십자가의 은혜에 나타난 아름다움이 다른 모든 미학적 표현들을 능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아름다움을 즐거워한다고 필자는 말한다. 하나님의 초월성은 우리로 하여금 경외하게 하며,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다. 필자는 우리가 예술로써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고 있는 청지기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예술은 송영이자 사역이라고 말한다.오늘 날의 교회에서 예술은 매우 양가적인 면을 지닌다. 한편으로 교회는 예술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을 천하고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 안의 음악 사역자들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들을 볼 때 명확하게 드러난다. 필자의 논의에 따르면 우리의 예배와 일상 생활에 있어서 예술의 가치가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13장 그리스도와 문화 : 그리스도인과 대중 매체(래리 폴랜드)는 보수적인 입장에 서서 미디어와 그리스도인과의 관계 맺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필자는 테레사 수녀의 이야기를 통해 대중매체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정신에서 멀어져 있는지, 또한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고 말하며 글을 시작하고 이다.
    인문/어학| 2003.12.01| 8페이지| 1,000원| 조회(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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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개혁 신학에의 한 탐구
    「기독교 세계관과 철학」수업 시간의 마지막 서평과제는 ‘개혁신학에의 한 탐구’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헬라어 공부를 하다가 조금 지겨워져서 이 책을 손에 잡았는데 말 그대로 ‘한 숨에’ 끝까지 읽게 되었다. 기말고사 시험기간이라는 특수성(이 기간에는 교과서를 제외한 모든 책이 다 재미있다.)을 감안하더라도 이 책이 어렵지 않고, 생각할 ‘꺼리’들을 나에게 던져 주었기에 나는 재미있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이 책은 일종의 논문집이다. 총 네 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의 1부는 두 편의 성경 주해, 2부는 하나님 나라와 국가관, 사회참여에 대한 에세이, 3부는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논문과 엘룰, 반 틸에 대한 논문들, 4부는 현대주의 신학자 몇 사람에 대한 비평 논문들, 맨 마지막에 설교 한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일일이 요약하기 보다는 책을 읽는 가운데 생각한 것들을 써 보려 한다.이 책은 95년에 발행되었지만 실린 글들은 대부분 80년대에 쓰인 글들이다.(한 편이 68년에 쓰였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오기로 보인다.) 아쉬웠던 것은 이 책의 글들이 당시의 상황 가운데서 쓰였기 보다는 90년대의 상황 속에서 쓰인 것처럼 느껴질 만큼 나이브하다는 것이었다. 엘룰의 ‘폭력’에 대한 고찰 등에서 80년대를 살아간 기독 지성인으로서의 고민의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신학과 상황을 연결함에 있어서 총론적인 이야기들만 주로 이루어 졌다는 것은 저자뿐만 아니라, 당시의 보수 기독교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것은 ‘인상비평’일 뿐이다. 실제로 나는 나의 유년시절을 보냈던 80년대를 잘 기억치 못할뿐더러 그 시대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직접 겪어보지는 못한 세대이다. 분명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들은 오늘날의 상황에서 실천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다. 그것은 아직도 한국교회가 탈근대는커녕, 전근대적인 질서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리라. 전혀 새롭지 않은 글들을 읽으면서 식상함이 아닌 가슴 뜀을 느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이제 이러한 기초적인 문제의식을 넘어서 더 깊은 사유와 폭넓은 각론이 다루어 져야 하는데...이 책의 1부는 성경 주해이다. 특별히 2장에서 ‘나아가다’의 뜻을 단순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과 관련된 종교적 행위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은 본문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1950-70년대에 선교단체들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제자훈련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역동적인 기도와 선교 등이 한국교회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신앙생활이 ‘코드화’된 형태로, 도식적인 형태로 그려지는 것들도 있었다. 이것은 특별히 1대 1 훈련 과정을 가진 선교단체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이었다. 이러한 훈련 프로그램은 성경의 본문을 조합해서 심도 깊은 주해의 과정 없이 바로 우리의 기도나 선교 등과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히브리서 4장의 이 본문도 그러한 과정 가운데서 기도에 대한 가르침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한국 교회에 받아들여진 듯 하다. 특별히 신학생들은 이러한 선교단체들의 장점을 배우되 ‘코드화’된 신앙생활 양식이 아닌 ‘성경이 말하는’ ‘폭넓은’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깊이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2부는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의 삶’이라는 주제를 달고 있다.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하나님 나라, 국가관, 복음화와 사회참여 등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1년간 휴학할 때에 정훈택 교수의 책과, 섬기는 모임에서의 강의와 공부를 통해 그러한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 역사를 바라보는 훈련을 하였기에 매우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종교생활만이 하나님 나라의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통찰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 자체를 바꾸게 하여 주었다.‘그리스도인의 국가 의식’에서 특별히 눈 여겨 본 것은 혁명에 대한 정당성을 논하는 부분이었다. 필자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논의를 빌려서 혁명을 반대한다. 혁명의 원칙은 반 기독교적인 것이며,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힘을 통해 세계를 세우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리를 과연 모든 시대의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있어서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가령 히틀러의 시대에 본 회퍼 등의 고백교회 운동 등이 구상하였던 히틀러 암살 계획 같은 것들이 신앙 양심에 따른 것이라고 충분히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혁명은 안 된다.’하는 논리가 잘못된 권위의 사용에 대한 모든 저항을 잘못된 것으로 여기게 하는 논리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논리로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반독재 운동, 미국의 인종차별 철폐 운동 등을 ‘빨갱이’. ‘정치 목사’들로 몰아붙인 것이다. 또한 혁명이 과연 폭력을 수반하는가에 대해서도 4.19나 3.1 운동 같은 민중의 활동이 대부분에서 비폭력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과연 모든 혁명을 ‘악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는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복음화와 사회참여’를 말하면서 저자는 복음화 수준1,2,3을 구분한다. 복음화 수준 0은 복음전도이고, 복음화 수준 1은 그것을 영접하고 복음을 적용하여 살아가는 것이고, 복음화 수준 2는 그러한 복음적 삶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음화에 사회적 책임, 사회참여를 포함한 것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그동안의 한국 교회가 복음화를 잘못 이해하여 오직 ‘영혼 구원’의 복음만을 전해온 것에 대해 필자는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사회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할 여지는 남는다. 복음 자체가 사회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에서도 죽음에서도 단순하게 우리를 대신한 우리의 구원자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복음의 사회적 의미이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께서 베푸신 무한한 용서는 영혼 구원을 넘어 우리의 본이 된다. 예수님의 삶에 가득 차도록 있었던 약자들과의 연대와 기득권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의 우리도 본받아야 하는 것이다. 복음화 수준 1과 2를 구분할 것이 아니라 그 둘은 함께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존 스토트는 복음전도와 사회참여 가운데서 전도가 논리적으로는 우선되지만, 실제의 경우에 이 둘은 언제나 함께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로널드 사이더 같은 이는 한걸음 더 나아가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구분되지 않는 ‘온전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3부 ‘개혁신학 탐구’에서 저자는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개혁신학의 독특성’은 여러 학자들이 개혁주의 신학을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지 다룬 글이다. 사실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신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개혁주의가 뭐냐?’는 물음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또 이 글을 통해 느끼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학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부분은 개혁신학은 철저하게 성경 중심적인 신학이라는 것이다. 즉, 다른 신학과의 차이점을 통해서 개혁신학을 정의하기보다는 우리의 신학함이 얼마나 성경적인가를 가지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러한 ‘정경적 원칙의 신학’과 함께 개혁신학의 특징으로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과 ‘하나님 나라의 신학’을 들고 있다. 이 두 특징 역시 어떤 특정한 주제라기 보다는 성경 전체가 말하려 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Leith가 말한 ‘개혁신학은 사변보다는 실천을 중시해왔다.’는 말이다. 우리의 신학함이 논리적 사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인문/어학| 2003.12.01| 3페이지| 1,000원| 조회(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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