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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론] 조지훈론-시적 경향을 중심으로
    조지훈(趙芝薰)론-시적 경향을 중심으로-{1.들어가며조지훈(1920~1968)은 1920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동에서 조헌영의 4남 1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5살 때부터 조부 조인석으로부터 한문을 배우고 3년간 영양보통학교를 다녔다. 하다가 16세에 서울로 상경하여 동향 선배시인인 오일도의 시원사에 머물면서 중학과정을 독학으로 마치고 19세에 혜화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같은 해에 『白紙』라는 동인지에 「춘일」「부시」등의 습작시를 발표하였으며『문장』에 「고풍의상」「승무」로 제 1,2차 추천을 받고 이듬해에「봉황수」로 추천이 완료되면서 등단하였다.1941년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오대산 월정사 불교강원 외전강사로 일하다가 다시 상경하여 조선어학회 『큰사전』편찬위원이 되나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심문을 받았다.『문장』지를 통하여 시단에 함께 등단한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1946년 합동시집『청록집』을 간행하여 한국 현대시사에서 찬연히 빛나는 청록파 시인이 되었다. 48세의 짧은 생애에 모두 5권의 시집을 내놓았는데 제 1시집인 『청록집』(1946)에 수록된 12편을 비롯하여 제 2시집인 『풀입 단장』(1952)의 25편, 제 3시집인 『조지훈 시선』(1956)의 36편, 제 4시집인 『역사 앞에서』(1959)의 48편, 마지막 시집인 제 5시집『여운』(1964)의 28편 외 67편을 포함하여 약 216편의 시를 남겼다.이 글에서는 조지훈의 시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시의 경향을 고찰해 보고 그의 시 세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2.습작기의 다양한 실험지훈이 처음으로 시를 습작하던 1936년은 한국현대시사에서 모더니즘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던 때이다. 20년대부터 정지용이 시단에서 활약하였으며 30년대 중반에는 김기림, 김광균의 모더니즘 시가 시단을 휩쓸었고 이상도 시단에 등장한 때였다. 또한 이 시기에 와일드의 『살로메』를 번역할 정도로 보들레르와 와일드에 탐닉했었다는 사실은 그의 습작시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그의 습작시를 주로 발표한 잡지는 『백지』였다. 끝나 배를 뒤집고 뜬 물고기를 가리킨다. 이 제목 자체가 보들레르의 「송장」,「즐거운 무덤」, 「주검의 무덤」을 연상시킨다.{) 윤석성, 「조지훈론」, 동국대석사논문, 1980, p.12.죽은 모습 자체가 인생사에 대비되지 않은 채 심미의 차원에서노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지배하는 시적 분위기는 암울과 비애이다. 이는 질식 , 질곡 , 만가 , 야왼 , 늑골 , 파창 , 슬픈 , 울어라 , 회한 등의 시어를 통해 감지된다.이 시를 놓고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센티멘탈한 감정으로서의 경향성이요, 표현기법의 외래적 영향이다. 시에 있어 센티멘탈을 추구함은 당시 그의 의식을 지배하는 분위기였다. 표현기법에서는 화미로운 타성 , 쪽빛 질곡 , 야왼 요카낭의 늑골 같은 부분이 보들레르나 그 밖의 상징주의 시인들의 영향을 엿보이게 한다.이외에도 「종소리」,「계산표」,「화연기」「인쇄공장」「갈」「공작2」등의 시에서 다다이즘 및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쉽게 드러난다. 연결이 되지 않는 이미지들의 병치라든가 감각적인 에피세트의 사용, 대담한 비유 등이 이들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지훈의 이러한 실험적 기법은 「화비기」대신 「고풍의상」이 정지용으로부터 추천을 받고, 월정사 시기 이후 무기교주의로 흐르면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지만 그 영향은 꽤 오랫동안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3. 회고적·자연관조의 경향등단 초기부터 8·15 광복 직후에 이르기까지 조지훈의 시는 다분히 회고적이며 세속회피의 단면을 드러낸다.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이 『문장』추천작인 「고풍의상」,「승무」,「봉황수」등이며, 그 후에 발표한 「가야금」,「古調, 「古寺」,「芭蕉雨」,「玩花衫」「律格」, 「洛花」,「피리를 불면」등이다.조지훈은 그의 나이 19세 때인 1939년 4월 「고풍의상」으로 『문장』지의 제 1회 추천을 받았다. 이 때 심사위원이었던 정지용은 「화비기」도 좋기는 하였으나 너무도 앙징스러워서「고풍의상」을 취하였습니다. 매우 유망하시외다. 그러나 당신이 미인화를 그리시랴면 이당 김은호 화백의상」에 대한 지용의 추천사가 지훈의 시 전개양상을 동양적·회고적인 전통시로 변화하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이다.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뿜은 부연끝 풍경이 운다.처마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이 훔어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의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파르란 구슬빛 바탕에자지빛 호장을 바친 호장저고리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살살이 퍼져 나린 곧은 선이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것열두폭 기인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초마 끝에 곱게감춘 운혜 당혜발자취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몃이 문을 열고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호접이냥 사폿이 츰을추라 아미를 숙이고…….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눈 감고 거문곳줄 골라보리니가는 버들이냥 가락에 맞추어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고풍의상」전문「고풍의상」은 옛날 한국의 전통적인 의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를 일제 시대에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의 풍속과 한국적 정서를 되살리고 전통미를 재발견하려는 작가의 회고적인 정서가 역력히 드러나 있다. 이러한 회고적 정서는 한국의 전통 종교 가운데 중 하나인 불교에서 파생된 춤인「승무」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작가는 대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거나 주관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고풍의상 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는 우리의 고유한 문화적 표상이다. 따라서 얼마간의 역사적 시각을 곁들여도 민족의식을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지훈은 이 작품에서 전혀 그런 입장을 용어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까지 객체를 객체로 둔 채 그에게 빚어지는 미감만을 노래한다. 그 나머지 이 작품에서는 정치나 역사, 현실이 의식적으로 배제되는 낌새가 나타난다.초기의 조지훈 시에 나타나는 이와 같은 의식상의 특성을 우리는 순수시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순수는 흔히 서구에서 시도된 절대시의 개념과는 다르다. 현대문학의 단계에서 서구의 시인들은 시에서 일체의 시 아닌 요소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그 나머지 유리알과 같이 투명한 의식을그 존재의의를 다른 영영과 격리시킬 수밖에 없다. 여기서 빚어지는 심리가 조지훈으로 하여금 역사, 현실과 시를 격리시키게 한 것이다. 조지훈에게 있어서 시의 순수는 정치, 경제, 역사가 빚어낼 수 있는 부작용을 경계한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서구 현대시에서 순수는 이와 달리 시자체가 끼어들 수 있는 일체의 다른 정신 영역을 거부하는 일이었다. 이는 조지훈이 생각한 순수시와 상당한 거리가 있는 개념이다.그에게는 시의 예술성 확보가 최우선 과제였고 그 밖의 사상, 관념, 정치적 목적의식은 시를 위해서 배제되거나 부차적인 뜻밖에 지니지 않았다. 이는 자연 대상으로 한 시에서도 드러난다.차운 산 바위 우에하늘은 멀어산새가 구슬피우름 운다.구름 흘러가는물길은 칠백리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술익는 강마을의저녁 노을이여이 밤 자면 저 언덕에꽃은 지리라다정하고 한 많음도병인양 하여달빛 아래 고요히흔들리며 가노니…….-「玩花衫」 전문「완화삼」은 조지훈이 박목월을 만나기 위해 경주로 찾아갔을 때 선물로 지니고 간 작품이다. 그 무렵 그는 아직 혜화전문학교의 학생이었고 당시 한반도의 정세는 일제의 전시체제 강화로 질식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는 산과 가람 그 속에서 관조의 경지에 접어든 사람이 느끼는 정감이 피력되어 있을 뿐 각박한 현실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초세속적이며 현실과 인간에게 거리를 두는 자연관조의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1946년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낸 『청록집』에 실려있는 조지훈의 시작품은 거의 모든 시가 회고적 전통정서와 자연관조의 정신이 드러난다. 예술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의 순수시 지향정신을 정립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지훈 시의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다.4. 인간과 현실의 수용조지훈 시의 또 다른 유형을 이루는 것이 1940년대 말경부터 6·25 동란 속에서 발표된 작품들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조지훈의 작품에는 인간의 일상생활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40년대가 저물면서 조지훈의 이런 시세계에는 뚜렷하게 균열 현상이관물이다.{) 『조지훈 시선』, 정음사, 1956, pp.174~175.이 시 이전에 조지훈의 객체는 모두가 인생의 고뇌, 갈등을 초탈한 자리에 있었다. 그것이 이 작품에서는 인간적인 애증의 촉매제 내지 등가물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아일체, 일상과 인생에서 초월한 경지가 명백히 아니다. 대체 이 시기의 조지훈의 시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현실수용에의 변모는 무엇을 뜻하는가? 아울러 이것이 그의 순수에 대한 포기인가 아닌가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이 무렵 조지훈의 시가 현실과 대중에서 괴리된 것이며 음풍열월, 봉건시대의 낡은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문학가 동맹의 김동석에 따르면 조지훈이 소속된 청년문학가협회는 물질과 현실을 도외시한 채 꿈과 관념만 뒤쫓는 바보들의 집단이다.{) 김동석, 「청년문학가에게 주는 글」, 『예술과 인생』, 박문출판사, 1947, pp.102~103.『청록집』을 전후해서 조지훈이 반계급주의의 입장을 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무렵 그의 시가 인간을 전혀 뒷전으로 돌린 것은 아니다. 광복 직후에 쓴 그의 시론 가운데 하나를 살펴보면 조지훈이 배제한 것은 정치에서 출발하여 정치 로 돌아가는 시였다. 이때부터 그는 사상과 시대 현실도 시의 자료 일 수 있다고 보았다. 다만 그런 것들이 시의 목적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순수시의 지향」, 『조지훈 전집』(3), 일지사, p.212.이렇게 보면 이 시기에 나타나는 조지훈 시의 인간수용은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조지훈 시의 필요한 변모양상이라 할 것이다.5.현실참여의 시50년대 후반기에 접어든 다음 우리 문단에서 일종의 유행어가 된 말이 참여 이다. 본래 참여의 반대개념을 지닌 말은 순수로 문학이나 시에서의 순수란 인간과 사회, 정치, 경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돌라고 예술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입장이다.지훈이 현실에 관심을 두고 시를 쓴 것은 광복 이후부터이다. 스스로도 나의 시는 해방을 계기로 일대 전환점에 들게 되었다 {) 조지훈, 「나의 시의 편력다.
    인문/어학| 2005.04.29| 8페이지| 1,000원| 조회(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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