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
검색어 입력폼
  • [국어]한국어의 15세기 음운체계에 대한 고찰
    목차1. 자음체계1.1. 유기음1.2. 경음1.3 유성 마찰음 계열1.4. 각자병서. 합용병서1.5. 합용병서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1.5.1. ㅂ계 합용병서(1) 자음군으로 보는 견해(2) 된소리로 보는 견해1.5.2. ㅅ계 합용병서(1) 자금군으로 보는 견해(2) 된소리로 보는 견해1.6. 합용병서의 변천과정1.6.1 전기 중세 국어1.6.2. 후기 중세 국어1.6.3 근대 국어1.7. 합용병서의 소멸원인과 시기 및 변화 방향1.7.1. 어두자음군의 소멸 원인1.7.2. 소멸시기1.73. 어두자음군의 변화 방향2. 모음체계3. 성조체계4. 소실문자의 실체5. 음운의 변천5.1. 모음조화5.2. 두음법칙5.3. 구개음화5.4. 경음화5.5. 격음화5.6. 어두자음군1. 자음체계15세기의 자음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훈민정음’을 만든 당사자들이 당시의 우리말 자음 체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훈민정음’이라는 음소 문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음소에 관한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훈민정음》과 《동국정운》에는 당시의 우리말 초성(당시의 용어로는 자모 또는 성모)이 23개로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15세기의 초성 즉 자음이 23개였기 때문에 초성 체계를 이와 같이 설정했을까? 이 23 자모 체계는 당시의 우리말 음소 체계와 매우 근접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의 우리말 음소와 1:1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이 23자모 체계는 순수하게 우리말의 음소를 분석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체계는《동국정운》에 서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당시 중국어의 36성모 체계의 틀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이 36 자모 체계에서 설두음과 설상음, 순중음과 순경음, 치두음과 정치음은 우리말에서 변별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 변별되지 않는 서열의 음들을 합쳐 만든 것이 ‘훈민정음’ 23자모 체계인 것이다. 따라서 이 23자모 체계는 당시의 우리말의 말소리 체계를 잘 반영하고 있긴 하지만 이 편 ㅅ계합용병서 ?, ?, ?는 어두와 어중에서 모두 사용되었다. 예 : ?-(覺), ?리-(忌), ?-(夢), ?-(?), ?(雉); ?-(灸), ?-(搗), ?(女息), ?(地), ?(?); ??-(急), ?-(吸), ?-(拔), ?(骨), ?(角); 아자바님?, 아니어니?, ???미니라, ?낱터럭?늘 등. 이들은 현대국어와 비교해 볼 때 얼핏 우리는 된소리를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ㅅ계 합용병서들이 모두 된소리를 표기하고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주저되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훈민정음》에 낱글자들과 각자병서는 모두 음가 설명이 되어 있으나, 합용병서에 대해서는 음가 설명이 되어 있지 않은데, ㅅ계 합용병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합용병서의 각 글자들이 제 음가대로 발음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고 《석보상절》권19에에 ‘??’라는 어형이 ‘갓나?’와 함께 나오는데, 이 ‘??’의 ‘ㅻ’은 자음군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읏듬/으?, 어엿비/어여?, 닷가/다?, 깃브다/기?긔, 갓?/가?니 등,’의 표기에서 예컨대 ‘닷가’가 [taska]로 발음되었다면, ‘다?’도 [taska]로 발음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오대진언집》에 보면 범자를 한자와 한글로 음역해 두고 있는데, 여기에 ㅅ계 합용병서가 많이 나온다. 예 : 史擔[stham] ?, 娑普?多[sporita] ?리다, 瑟恥帝[sthite] ?뎨 등. 이들 표기에서 ㅅ계 합용병서 ‘?, ?, ?’ 등은 자음군을 표기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제1음절 모음의 탈락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보이는 어형들 즉, ‘?, ?리, ?, ?’ 등의 ㅅ계 합용병서를 가진 어형들도 ㅅ계 합용병서가 자음군을 표기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그러나 이들 ㅅ계 합용병서가 된소리를 표기하고 있을 것이라는 증거도 만만치 않다. 첫째 ‘ㅆ’은 기원적으로 전탁 표기(쓰-, 싸호- 등)와 사이시옷과 후행어의 초성 ‘ㅅ’이 합한 것(혀쏘리, 엄쏘리)이 있는데, 이을 사랑하여’인데 「괴?」는 ‘남이 나를 사랑하여’이고, 「소다」는 ‘물건을 쏟아’인데, 「쏘다」는 ‘활을 쏘다’가 되는 따위와 같다.가운뎃소리를 두세 자 아울러 쓴 것은, 우리말의 「과」(현악기의 괘), 「홰」(횃불) 따위와 같다.끝소리를 두세 글자 아울러 쓴 것은 , 우리말의 「?」(흙), 「낛」(낚시), 「??」(닭때, 유시) 따위와 같다. 그 합용병서함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것은 첫, 가운데, 끝소리가 모두 한가지다.”이에 의하면 ‘병서’에는 합용 병서와 각자 병서가 있는데, 각자 병서란 같은 두 글자를 나란히 쓴 것이오, 합용 병서란 다른 글자를 둘 또는 셋을 나란히 쓴 것인데 이에는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의 세 경우가 있다.병서각자 병서?, ?, 쏘첫소리?, ?, ?합용병서가운뎃소리과, 홰끝소리?, ?1.5. 합용병서에 관한 여러 견해합용 병서에 대한 연구를 했던 여러 학자의 견해 중에서 허웅, 이기문의 견해를 중심으로 합용병서의 음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1.5.1. ‘ㅂ-계’ 합용 병서‘ㅂ-계’ 병서자는 제 음가를 가진 자음군으로 보는 견해와 된소리로 보는 견해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 외에 이 견해를 모두 부정하고 ㅂ계 합용병서의 ‘ㅂ’은 일종의 잠재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지금까지 ‘ㅂ-계’의 음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자음군으로 보는 것이 우세하다.(1) 자음군으로 보는 견해♤ 허웅1) 훈민정음 해례에 합용병서의 소리를 설명한 데가 없다. 그러나 자세히 검토해 보면, 이 미 이 속에 그 소리가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첫째, 훈민정음에는 28글자의 소리를 각각 설명하고서, ‘ㅼ, ㅶ, ㅴ, ㅵ’와 같은 합용자 의 소리는 특별히 설명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합용자의 각 글자가 저마다 제 소 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지니, 만일 그렇지 않고, ‘ㅶ’과 같이 합용되었을 경우에 는, /ㅂ/와 /ㅈ/와는 다른 무슨 소리를 나타냈을 것 같으면, 해례의 성질 상 반드시 한 마디 그 소리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둘째, 끝소리의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사실상 ㅄ계와 ㅅ계, ㅂ계가 구별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ㅂ계와 ㅅ계 즉, ㅳ과 ㅼ, ㅄ과 ㅆ의 혼동이 나타난 것은 중간두시언해의 ‘?, ?’을 제외하면, 17세기 후반의 일이라는 사실이 주목된다. 특히 ‘ㅾ’ 표기가 나타난 것은 왜어유해로부터의 일이다.예) ?(상 48) ?(하 33).이보다 앞서 첩해신어에 ‘ㅉ’의 예가 보인다.예)그 ?? (7.19).이렇게 볼 때 17세기에 어두자음군이 된소리가 된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임을 결론할 수 있는데, 그 완성은 17세기 중엽으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소멸 시기에 대해서도 각 학자마다 차이가 있으나 ㅄ계 자음군은 16세기에, ㅂ계 자음군은 17세기 중엽에 소멸되었을 것이라는 의견과 ㅂ계는 18세기에 소멸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학자들은 늦어도 18세기에는 된소리화가 완성되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어두자음군의 불안정성이 결국 그것이 된소리로 귀결된 주요 원인일 것이다.1.7. 합용병서의 소멸원인과 시기 및 변화 방향(1) 어두자음군(초성 합용병서)의 소멸 원인① 체계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기문(1955, 1972ㄱ) - 어두자음군의 출현은 당혹할 만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체계상의 불안정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그것이 소멸되었다.② 분포와 음성적인 요인에 의한 것허웅(1965) - 매우 간극이 좁고 마찰이 약한 음이었기 때문에(‘ㅅ’계합용병서의 ‘ㅅ’), 혹 은 매치성의 국한과 역한 내파성 때문에 (‘ㅂ’계 합용병서), 다음 소리에 동화되어 소멸 하였다.(2) 소멸 시기①‘ㅅ’계 어두자음군의 소멸 시기박창원(1987ㄱ) - 각자병서의 폐기, ‘ㅅ’계 합용병서의 생성 등을 근거로 하여 1460년 대로 추정허웅(1965) - 16세기유창돈(1975) - ‘ㅂ’계 합용병서와 ‘ㅅ’계 합용병서가 병기되고, ‘ㅾ’이 등장하는 것을 근거로 17세기로 추정② ‘ㅂ’, ‘ㅄ’계의 소멸 시기이기문(1955, 1972) -15세기 이전에 이미 변화를 담당하고 있었으므로, 이 음이 비음운화 하는 18세기 중엽까지, 즉 중세국어 말까지 ‘ ? ’ 를 음소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7모음의 음가에 대해서는《훈민정음》제자해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 ? ’ 는 혀가 오그라지고 소리가 깊다. ㅡ는 혀가 조금 오그라지고 소리는 깊지도 얕지도 않다. ㅣ는 혀가 오그라지지 않고 소리는 얕다. ㅗ는? ‘ ? ’ 와 같되 입을 오므린다. ㅏ는 ‘ ? ’ 와 같되 입을 벌린다. ㅜ는 ㅡ와 같되 입을 오므린다. ㅓ는 ㅡ와 같되 입을 벌린다. 훈민정음의 이 단모음 7개의 음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당시의 사람들이 그 때 사용되고 있는 모음들의 음가를 가장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 어떤 견해도 이 제자해에 나와 있는 설명을 도외시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 훈민정음 해례의 설명은 ‘혀 움츠림/안 움츠림, 입술 오므림/벌림, 소리의 깊음/얕음’이란 음성 자질에 따라 7개의 단모음을 분류하고 있다.고대국어의 단모음 체계는 앞서 서술한 대로 ‘i, e, a, u, u’의 5개였는데, 15세기 이후의 단모음은 ‘-’와 ‘ ? ’ 를 포함하여 7개로 늘어난 셈이다. 이 중 ‘ㅗ’, ‘ㅜ’의 음가는 《조선관역어》를 검토해 보면 [o]와 [u]였음을 알 수 있다. 我[o]嫩害 오? ?(明年), 左[tso]色二 조?(粟米), 朶[o]落?格剌 도라니거라(回), 果[ko]吉 고기(肉) ; 谷[ku]莫 구무(洞), 母[mu]勒 무러(問), 杜[tu]路迷 두루미(仙鶴), 兎[t‘u]貴 투구(?) 등. 《몽고자운》과 《사성통해》를 보아도 파스파 문자의 ‘oa’, ‘u’가 훈민정음‘의 ’ㅘ‘, ’ㅜ‘로 표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고대국어의 모음 체계가 15세기에 이르러 부분적인 추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 음은 2단계 걸쳐 소실되었는데, 제1단계의 소실은 비어두 음절에서의 소실이었다. 이 제1단계의 소실은 15세기에 싹터서 16세기에 와서 완성되었다. 그 변화 공식은 ‘ ? ’> ‘.
    인문/어학| 2005.06.11| 36페이지| 2,000원| 조회(901)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7일 수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1:27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