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피켐퍼스의 지식거래시스템현재 인터넷상에는 자기가 직접 작성한 레포트나 논문 등을 팔거나 남이 쓴 레포트를 살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져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기업이 해피켐퍼스인데 이곳은 지식거래소라는 일반적인 시장과 동일한 구조로 되어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지식을 구매하는 사람과 판매하는 사람이 있고, 그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 바로 지식거래소이다. 지식거래소에서는 대학리포트, 논문, 표지/서식, 시험정보, 비즈리포트, 프로그램 소스 등의 다양한 지식이 거래될 수 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지식에 가격을 책정하여 판매하고 또 필요한 지식이 있으면 적정한 가격에 구매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지식거래소인 것이다.해피켐퍼스에서 지식의 구매 및 판매를 가능하게 하는 거래수단은 해피포인트(HP)와 현금이 있다. 지식을 판매하는 회원은 지식의 가격을 해피포인트와 현금으로 책정할 수도 있다. 정보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식거래소에서는 가격에 대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제약을 가하지 않고 있다. 구매하는 사람들의 판단에 의해 가격이 비쌀 수도 있고 오히려 너무 저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식거래소는 판매자를 대신해서 구매자에게 미리 해피포인트와 현금을 판매하고, 그 해피포인트와 금액이 지식이 판매될 때마다 판매자에게 해당 금액을 제공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지식거래소는 지식을 제공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이미 만들어진 지식을 인터넷이라는 망을 통해 지속적으로 판매를 대행해 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판매의 활성화를 위해서 인터넷상의 광고도 대행하고 있는 셈이다. 구매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지식 제공자가 올려놓은 사항들을 검토하고 구매에 앞서 구매 결정을 할 수 있는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구매할 지식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검색 기능들을 제공하고 있다.결국 지식거래소의 구조는 지식 공급자와 구매자가 거래할 수 있는 기능들을 제공하기 위한 근간을 마련하고 상호 당사자간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핵심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이렇게 지식거래시스템은 많은 학생들의 생활패턴을 바꾸어 놓았다. 아마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러한 지식거래시스템을 이용해 보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해피켐퍼스나 레포트 월드 같은 곳에서 레포트나 레포트 표지, 또는 논문 등을 돈이나 포인트 등을 주고 다운받았다거나 자신이 직접 쓴 레포트를 올렸다거나 하는 것이다.한 인터넷 신문의 기사를 보면 손재영이라는 28세의 대학생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팔아 월2백의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 사람은 학교 과제물로 낸 보고서를 재정리해 인터넷에 올리면 이용자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이러한 정보를 이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대학에서 학생들이 과제를 자신이 직접 써서 제출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인터넷상의 자료를 짜깁기 하거나 또는 이러한 인터넷상의 지식거래시스템을 이용해 과제를 다운받아 제출하는 현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지식거래 사이트가 가장 활발한 시기는 대학교의 시험기간이다. 더 좋은 보고서를 만들려는 대학생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온라인 지식거래 사이트를 이용하기 때문이다.2. 해피켐퍼스의 수익구조해피켐퍼스의 수익구조는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한다. 해피켐퍼스를 운영하는 곳은 에이전트소프트인데 에이전트소프트는 지난해 약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중 약 50%가 순수익으로 남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회사의 서울 본사 직원이 10명인 점을 고려하면 1명당 1년에 1억5천만원을 번 셈이다. 말 그대로 ‘알짜 기업’이다.에이전트소프트가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리포트를 거래하는 ‘해피캠퍼스’의 독특한 비즈니스 덕분이다. 다운로드 가격은 올려놓는 학생 스스로 정하는데 보통 1천원 내외이고 표지만 별도로 100~200원에 올라오기도 한다. 졸업논문처럼 품이 많이 들어간 경우는 5천원까지 올라간다. 리포트의 가격 상한선은 1만원이다.해피캠퍼스에 등록된 자료 수는 100만건이고, 회원수는 130만명으로 하루 평균 1만 5천명정도가 로그인한다고 한다. 거래가 성사되면 해피캠퍼스가 60%의 수수료를 챙기고 등록한 회원이 40%를 챙긴다. 1천원에 올린 리포트라면 한 건이 판매되면 600원 가량의 수입이 생기는 셈이다. 많을 때는 하루 거래액수가 4천만원에 이른다. 회원들은 미리 사이버머니를 충전해 놓고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 거래량보다 현금 여유가 생긴다.김정태 해피캠퍼스 사장은 “한번 충전하는데 드는 금액은 5천원이며 학생들이 한 주제에 평균 3개 정도의 리포트를 다운로드 한다”고 설명했다.3. 지속적인 수익창출 방안여기서 생각해 볼만한 문제가 있다. 현재 해피켐퍼스는 거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수익구조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똑같은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는 레포트월드나 그와 유사한 형태의 구조를 가지고있는 다른 회사들과 경쟁을 했을 때 더 좋은 수익을 위해서는 다른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해마다 일정수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그 학생들이 전부다 해피켐퍼스를 이용한다면 좋겠지만 레포트를 공급하는 회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회사와는 다른 차별화 전략을 써야된다고 생각한다.1) 학교별 족보를 이용한 수익창출 방안현재 해피켐퍼스는 레포트의 경우나 시험정보에 대해서 획일적으로 자료를 등록해서 판매하고 있다.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정말로 절실하게 찾고자 하는 자료를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내가 우리학교의 전공과목에 대한 시험정보 즉 족보를 얻고 싶은데 해피켐퍼스에서는 그런 정보는 얻을 수가 없다. 물론 학교에서 선배나 친구들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누가 자신과 경쟁하는 사람과 정보를 공유하려고 하겠는가? 따라서 이런 점을 이용한다면 뛰어난 수익구조를 창출할 수 있을 것 같다.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에 새로운 시스템을 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러 대학 방을 만들어서 거기에 자신의 학교에 해당하는 사람이 들어가서 직접 자료(과목에 해당하는 레포트나 시험에 관련된 족보)를 올리거나 다운받는 것이다. 물론 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전공교수님들은 해마다 같은 문제를 출제하시거나 아니면 2년이나 4년의 기간을 두시고 시험문제를 바꿔가며 출제하신다. 그런 문제들을 총 종합해서 올린다면 점수를 잘 받고 싶은 학생들은 충분히 돈을 주고 그러한 정보를 구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험문제를 알고 시험에 임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 한사람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한다.
★은행 민영화와 그 방향★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자금의 투입을 통해 기존에 정부지분이 있던 은행에 대한 정부출자가 확대되고 일부 은행에 대한 정부의 신규 출자가 이루어지면서 은행의 재무건전성이 상당수준 개선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다수 은행이 또 다시 국유화되는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다. 금융구조조정 초기에 제일·서울은행의 사실상 파산으로 인해 정부가 출자를 확대함에 따라 각 은행지분의 94%를 취득하게 되었고 금감위의 조건부 승인에 따른 한빛·조흥은행의 합병 시 이들 은행지분의 90%이상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이 국유은행의 비중이 높아진 가운데 2000년 말 6개 부실은행의 완전 감자 조치로 인해 이들 은행이 완전 국유화됨에 따라 관치금융의 재현에 대한 우려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외환위기 전후의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할 때 정부의 은행의 소유권 획득은 불가피한 면이 있으나, 대기업 집단의 구조조정계획을 정부가 관리하는 과정에서 금융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정도가 약화될 수 있으며, 은행의 국유화는 이러한 부작용을 심화시킬 수 있으므로 이들 은행의 신속한 민영화는 최우선 순위의 정책과제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나라 은행의 민영화와 관련된 논쟁의 역사는 해방이후 우리나라 정부의 역사와 비교될 정도로 오랜 기원을 두고 있다. 특히 1954년 8월에 시행된 일반은행법의 기본정신이 은행경영성의 독자성 제고 및 건전화 구현 이었다는 것에서 나타나듯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반 백년의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아직도 뚜렷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지 못하다.하지만 최근의 은행 민영화와 관련된 논의들은 외환위기라는 전례 없는 충격과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진전된 금융시장의 개방 및 이에 따른 금융감독 기능 강화, 회계, 공시제도의 정비 등 제도적 측면에서의 구조조정을 배경으로 하는 다음의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과거의 논의들과 차별성을 가진다.첫째, 과거 은행국유화의 원인이 되었던 민간보유 은행주식의 귀속 또는 국고환수와는 달리 국유화가 예금보험기금채권의 발행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의 투입을 통해 이루어짐에 따라 민영화 과정, 특히 정부 보유 주식의 매각에 있어서 매각대금의 극대화가 또 다른 목표로 전제되고 있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민영화의 결과로 나타날 은행경영의 자율성에 관한 관심과 더불어 정부보유 은행주식을 얼마에 팔았느냐에 따라 하는 것이 정치적·사회적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따라서 매각 당사자인 정부도 헐값매각 시비 등의 문제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주식시장 상황 및 이들 은행들의 미래가치 등에 대한 고려를 매우 신중히 하면서 민영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둘째, 과거의 은행 민영화 추진과정에서는 정부보유 주식의 매각대상이 내국인에 한정되었으나 지금은 OECD 가입과 외환위기로 가속화된 금융업의 대외 개방으로 정부로서는 외국자본에 대한 은행주식 매각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 것이다. 즉, 정부보유 은행주식의 매각에 있어서 단골메뉴로 제기되었던 산업자본, 특히 재벌의 은행지배와 관련한 동일인 은행주식 보유한도 제도의 유지 여부에 대한 논쟁과 더불어 외국자본의 은행지배에 따른 장단점에 대한 논의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과거은행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는 그다지 큰 비중을 두고 고려되지 않았으나 최근 우리나라의 은행 민영화에 있어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이러한 두 가지 문제들 중 정부보유 주식매각 대금의 극대화라는 문제를 정리하고 방안들을 모색함으로써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발전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개선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일반적으로 민영화(Privatization)란 주식을 포함한 자산이나 서비스 기능을 공공부분에서 민간부분으로 이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민영화의 협의로는 정부보유 주식을 민간에 완전 매각하는 동시에 정부규제를 철폐하는 민영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광의의 민영화에는 정부보유 주식의 일부를 매각하는 부분민영화, 정부보유 주식을 완전 매각한 후 정부가 기업활동에 개입하여 규제하는 형태, 기업을 정부가 소유하되 그 운영을 민간이 자율적으로 당당하게 하는 것으로서 민간대여와 위탁경영, 프렌차이즈(franchising system)제도, 계약제도 등을 포함한다.민영화는 일반적으로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는 것을 말한다. 즉 국가나 공공단체가 특정기업에 대하여 가지는 법적 소유권이 주식 매각등을 통하여 민간부분으로 이전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영화 개념은 소유권 이전이라는 형식적 요건에 치중한 정의로서 민유화라는 용어가 더 적합할 수 있을 것이다. 민영화의 본질적 목적을 감안할 때, 즉 기업 경영을 민간부문이 담당함으로써 경쟁을 통하여 경제적 효율성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을 감안할 때의 민영화는 단순한 소유권 이전보다는 기업지배 주체의 이전이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필요하다.우리나라의 공기업은 그 동안 사회간접자본이 형성, 기간산업의 건설, 정부사업의 대행 등을 통하여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공기업 경영의 비효율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최근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민간주도형 시장경제체제로의 진입을 강화하기 위해 경제 각 분야에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기업의 경우에도 설립목적을 달성하였거나 민간부문과 경합하여 공기업으로 존속할 필요가 없게 된 공기업의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다.과거의 민영화는 부실적자기업의 정리나 정치적 이유에 의한 기업매각 등과 같은 소유이전이 중요시되었으나 최근의 민영화는 경제적 합리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최근 각 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영화는 경제적 자유의 증진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요청이나 효율성의 제고 또는 재정적자의 감축 등 여러 가지 목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일반적으로 공기업 민영화의 당위성은 공기업의 비효율성과 정치적 이유 그리고 공공부문의 축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장의 실패로 인한 비효율보다 공기업의 비효율적 경영으로 인한 손실이 적을 경우에 공기업은 존립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시장의 실패에는 규제나 조세정책 등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적 놀 리가 아닌 정치적 이유로 공기업이 설립된 경우에는 자유시장경제원리에 맡겨 민간부문과 경쟁시켜야 한다.그러나 위에서와 같이 공기업의 민영화와 은행의 민영화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물론 은행의 민영화는 매우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각 국의 경험을 토대로 국유은행의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금융부문의 발전속도나 안정성이 떨어지는 데다, 실물경제활동의 위축으로 인해 경제성장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유은행의 유지에 막대한 재정비용이 발생함으로써 재정이 부실화될 위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영향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제 또는 제도적 개혁보다 민영화를 통해 소유권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그러나 멕시코가 금융시스템이 취약한 상황에서 민영화가 성급하게 이루어져 금융위기와 같은 폐해를 일으킨 사례를 보면서 은행 민영화는 법률 및 제도적 인프라의 정비와 함께 계획적이고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양문화재의 이해란 교양수업을 들으면서 창덕궁을 답사하라는 과제를 받고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같은 과 친구들과 같이 창덕궁을 답사하기로 하였다.창덕궁은 태종 5년(1405)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불탄 경복궁을 대신하여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으로 사용되었다. 굴곡이 많은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자연과 적절히 조화된 건물배치를 이루고 있다. 특히 후원에는 각양각색의 정자와 수만 그루의 수목과 화초가 가꾸어져 자연의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 전통 정원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처음 들어가는 문이 돈화문이었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정면 5간, 측면 2간의 2층 지붕이다. 궁궐 2층 문루에는 큰 종을 달아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태조 12년(1412) 창건,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원년(1608) 중건하였는데, 이 때의 건물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현존 궁궐 대문으로는 가장 오래 된 것이라고 한다.돈화문을 지나 다음으로 간 곳은 금천교였다. 금천교(錦川橋)는 인정문 앞을 흐르는 금천(禁川) 위에 놓여 있는 다리이다. 태종 11년(1411) 놓여진 것으로 창건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2개의 홍예를 만들고 장대석을 깔고, 돌난간을 세웠다. 난간 네 귀퉁이에는 각각 다른 표정을 한 동물 석상이 놓여 있고, 두 홍예 사이를 받치고 있는 돌 위에도 남북쪽으로 해태상과 거북상을 한 돌짐승들이 다리를 지키고 있다. 이 해태상과 거북상은 속세의 나쁜 기운이 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금천교를 건너면 인정전이 나온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조회를 비롯한 국가의 공식행사가 이루어지던 곳이다. 정면 5간, 측면 4간으로 2층의 팔작지붕이 우뚝 솟아 있다. 건물 내부에는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을 두른 용상이 있으며, 용상을 덮고 있는 보개에는 황금빛 봉황과 여의주를 조각하여 임금의 위용을 상징하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순조 4년(1804) 때 중건한 건물이라고 한다.선정전은 임금이 평상시 신하들과 국사를 논하던 편전으로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지붕이라고 한다. 건물 전면 두 모서리에는 드므라고 하는 청동으로 만든 널찍한 독이 있는데, 이것은 물을 담아두는 곳으로 화재를 막기 위해 불귀신을 물리치려는 벽사적 의미가 크다.희정당은 임금의 침전(임금이 자는곳)으로 순조 때부터는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1917년 화재로 불에 탄 후 복원할 때 경복궁의 강녕전을 이전하여 건립하였다. 건물 앞 부분에 임금이 타는 자동차가 접근할 수 있도록 현관이 돌출되어 있으며, 건물 내부에도 서양식 가구와 커튼 박스, 전등이 설치되고 붉은 카펫이 깔린 모습이 이색적이었다.대조전은 창덕궁 내에 왕비가 거쳐하는 중궁전이다. 1920년 복원할 때 경복궁의 교태전을 이전하여 지은 것으로 다른 침전과 마찬가지로 지붕 위에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無樑閣) 건물이다.다음으로 간곳은 낙선재이다. 헌종 13년(1847) 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은 것으로 1989년 4월까지 덕혜옹주와 영왕비였던 이방자여사가 사시다가 돌아가신 곳이라고 한다. 서쪽부터 낙선재·석복헌·수강재가 배치되고 전면과 측면에 행각이 둘러져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 모두를 낙선재라 부른다. 후원에는 취운정·상량정, 별당인 한정당이 지형에 따라 배치되고 화계·담장의 무늬 등이 주변환경에 어울려 소박하면서도 아담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낙선재 후원 상량정 서쪽 담장에 있는 보름달 처럼 둥근 문으로 궁궐의 협문으로는 유일하게 원형으로 만든 아름다운 문이 만월문이다. 문 좌우 담벽은 수복을 상징하는 길상무늬와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둥근 문을 열면 멀리 백악의 봉우리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창덕궁 뒤쪽으로 돌아가니 후원이 나왔다. 창덕궁 후원은 태종 때 만들어 진 것으로 임금을 비롯한 왕족들이 휴식하던 곳이라고 한다. 후원은 북원(北苑), 금원(禁苑)이라고도 불렀으며, 고종 이후에 비원(秘苑)으로 불렀다. 낮은 야산과 골짜기에 원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꼭 필요한 곳에만 사람의 손을 댄 우리나라의 으뜸가는 정원이다. 부용정과 부용지, 주합루와 어수문, 영화당, 불로문, 애련정, 연경당 등을 비롯한 수많은 정자와 샘들이 곳곳에 있었다.창덕궁 안에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장소로 쓰이던 인정전, 국가의 정사를 논하던 선정전 등의 치조공간이 있으며, 왕과 왕후 및 왕가 일족이 거처하는 희정당, 대조전 등의 침전공간 외에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는 매우 넓은 공간을 후원으로 조성하였다. 또한, 정전 공간의 건축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여 높게 되어있고, 침전건축은 정전보다 낮고 간결하며, 위락공간인 후원에는 자연지형을 위압하지 않도록 작은 정자각을 많이 세웠다.
동북아의 21세기 민족주의에 대해 조사를 하려면 먼저 한·중·일을 빼놓고서는 얘기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먼저 민족주의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민족주의란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을 지상목표로 하고, 이것을 창건(創建), 유지, 확대하려고 하는 민족의 정신상태나 정책원리 또는 그 활동이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또한 민족주의에 대한 얘기는 민족에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방향을 달리한다.민족개념은 민족주의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결론인 것이다. 현재의 이론수준에서 민족개념에 대한 논의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민족의 영속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원초론과 민족을 근대화의 부산물로 간주하는 도구론이 그것이다. 원초론은 인종적 공동체의 영속성에 주목하면서 민족주의가 종족, 조상, 종교, 언어, 영토라는 원초적 유대에 기초해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는 도구론에서는 민족주의란 결코 영원한 실체가 아닌 근대화와 도시화라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발현한 이데올로기라고 간주하며 그 역사성을 강조한다.주관주의적 민족이론은 국가민족이라는 민족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민족공동체에 기꺼이 자신을 귀속시키고자 하는 민족구성원의 주관적 의지가 민족을 만든다고 믿는다.그런데 이 이론에 따르면 민족공동체에 대한 인민들의 자발적 귀속의지를 불러일으킨 역사적 계기는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즉 부르주아가 내세웠던 해방이념인 인민주권론이 세속주의 및 국민적 시장권과 결합되면서 봉건사회의 왕조적 충성심에 질적 전환을 가져와 근대적 민족주의를 나았다는 것이다.이에 비해 객관주의적 민족이론은 문화민족이라는 민족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언어, 공통의 문화유산, 종교, 관습 등과 같은 객관적 기준을 민족의 기초로서 강조한다. 민족은 국가에 선행하며 공통의 역사적 가치와 사회적 유대에 기초를 둔 실재라는 것이다. 즉 민족적 유대감은 국가나 정치 형태에 관계없이 존재하며, 민족주의라는 것도 실상은 이러한 원초적 유대감이 왕조적 충성심을 거쳐 양적으로 성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약간의 편차는 인정되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모든 논의들은 이 갈등을 양극으로 하는 스펙트럼 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이를 더 체계적으로 표현한다면 민족주의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전체 의지의 통일성과 저당성에 관한 생각 및 정주공동체의 자연적 통일성과 가치 및 과제에 관한 관념이라는 두 가지 가정을 토대로 하고있는 정치 사상 및 정치적 결단의 체계이다. 그리고 내셔널리즘은 민족주의, 국민주의, 국가주의라는 여러 가지 뜻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민족주의는 그 역사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동경 또는 고무의 감정을, 혹은 억압과 침략을 뜻하고 있다. 이것은 실제로 근대 세계의 역사에서 정치적 단위를 이루고 있는 민족국가의 다양한 역사적 발자취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가 있다.하나의 예는 민주주의, 국제주의와 연결되는 진보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의 예는 전체주의, 쇼비니즘(chauvinism), 배타주의로 전화하는 반동적 이데올로기의 면이다. 국민국가 형성기에 있어서 유럽의 민족주의 형성이나 현재 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전자의 예이고, 일단 독립국가로서 자기를 확립하였을 경우 민족주의는 권력에 내재하는 공격적이고 침략적인 정서적 성격에 영향을 받아서 반대로 자국의 특권세력의 유지 및 확장에 앞장을 서게된다.1차 세계 대전 후에 독립한 동유럽의 여러 나라, 일본, 독일 및 이탈리아 등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이는 민족주의가 다양한 곳에서 특정한 사회적 교리를 완강하게 고수하기보다는 역사적 변화에 열려 있는 이데올로기임을 의미한다. 격렬한 운동성을 지니는 민족주의는 따라서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사회변동을 주도하는 정치 운동이면 사회운동인 것이다.사회적 총관계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방향과 내용을 수정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역사적 변화에 열려있는 운동으로서 동북아시아의 민족주의를 파악하고자 한다.‘세계화’와 ‘지역통합’, ‘협력’과 ‘공존’이 시대적 명제가 된 21세기 초에 유독 한·중·일 사이에서 역사·영토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이 지역이 근대의 해체기에 접어들고 있는 구미(歐美)와는 달리 아직도 ‘근대의 장년기’를 향해 달리는 ‘민족주의의 격전장’이란 데서 찾는다.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 모두 근대 국민국가의 건설이 여전히 최고의 과제이며, 이를 위해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하는 동력으로서 ‘민족주의(Nationalism)’가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사례에서 알 수있을 것이다.동북아시아 삼국에서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항의, 그리고 한국의 독도 우표발행에 대해 일본외상이 발행중지를 요청하는 등 이른바 삼국의 역사전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외신들은 삼국 내의 민족주의의 대두로 분석하고 있다.중·일간에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이른바 고구려의 자국사 편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한국의 네티즌 13,000여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교사절단이 지난 해 12월 29일 고구려 부흥 프로젝트에 착수했었다.한·일간에는 한국의 독도 우표발행에 대해 일본외상이 발행중지를 요청하자 양국 네티즌들은 서로 설전을 벌이며 양국의 주요 사이트를 마비시키는 등 한·일간의 파문이 확산되고 있었다. 한국의 매스컴은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네티즌간의 공방에 대해 사이버 임진왜란으로 비유하고 있는 실정이다.중·일간에는 일본단체 관광객의 주하이(珠海) 집단매춘 사건,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중일전쟁 당시의 화학무기 폭발사건 등으로 작년부터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화학무기 폭발사고 발생 때는 100만명 서명운동이 펼쳐졌다. 중국 언론들은 최근 중국의 젊은이들이 애국자동맹망(愛國者同盟網) 등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비난하는 항일시위를 벌이자 인터넷 항일전이라고 보도했다.팽창하는 중국의 내셔널리즘의 주류 속에서 국가적 사업의 일환으로서 고구려사의 자국사 편입을 시도하고 있는 중국에서 이러한 학문적 흐름을 기대하기는 아직 어렵지만, 적어도 한·일간의 학문적 흐름은 자국사 내부의 소수파를 돌아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구의 흐름은 자기인식의 전환점이 될 것이고 이것이 학문적 주류가 되는 시기가 되면 자연히 한·일간의 학문의 방향이 일국사의 경계를 허물고 외부의 타자와 교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민족주의는 배타적·공격적으로 흐르기 쉽고, 그 대상은 일차적으로 인접 국가가 되기 마련이다. 이들 세 나라에서 힘을 발휘하는 민족주의는 정부의 주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간이 자발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남다르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다변화될수록 대외협력과 개방의 분위기가 확산된다는 일반 이론이 이 지역에는 적용되지 않고, 오히려 힘이 강화된 시민사회가 배타적 민족주의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게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목 차1. 선물거래의 개념과 속성1) 선물거래의 개념2) 선물거래의 속성2. 선물거래의 역사1) 미국선물시장의 역사2) 영국선물시장의 역사3) 일본선물시장의 역사4) 금융선물 거래의 출현5) 세계선물시장의 추세3. 선물거래 상품의 종류1) 전통적인 상품선물2) 금융 상품선물4. 신금융 상품1) 금리차 선물2) 지수 워런트기타선물의 현황1. 선물거래의 개념과 속성1) 선물거래의 개념선물거래(futures transaction)는 규격, 품질, 수량 등이 표준화되어 있는 특정대 상물을 계약체결시 정한 가격(선물가격)으로 미래 일정시점에 인도 및 인수할 것 을 약속하는 거래로서 계약체결은 거래소 형태의 특정한 장소에서 일정시간동안 경쟁매매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계약만기 전이라도 반대매매를 통해 중도 청산할 수 있는 상거래의 일종이다.2) 선물거래의 속성선물거래는 매매계약의 성립과 동시에 대상물의 인도와 대금지불이 교환되는 현물거래와 대비되는 개념이며, 유사한 개념의 파생상품거래인 선도거래(forward transaction)는 거래소 이외의 장소에서 경쟁매매 방식이 아닌 거래당사자간의 협상을 통하여 미래 일정시점에 인수도가 이루어지는 계약이며 계약의 조기처분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선물거래와 구별된다.선도거래는 대상물을 인도하는 자나 인수하는 자가 자신이 원하는 거래조건을 임의로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자신의 조건을 정확히 충족시켜 줄 거래상대방을 찾기가 어렵고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위험(신용위험)이 따른다.2. 선물거래의 역사역사문헌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부터 시장이 존재하였으며 로마제국과 중세 유럽상인들이 거래의 편의성을 위해 특별한 장소와 시간, 표준화된 상품, 미리 규정된 거래조건 등의 기본원칙 하에 거래를 행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러한 기본원칙이 발전하여 계약증서가 거래되면서 선도거래가 출현했고 선도거래의 발전된 형태로 오늘날과 같은 선물거래가 출현했다. 세계 최초의 선물거래는 17세기경 일본의 도쿠카와 막부의 미곡거래로 추정되나 근대비합리적 요인이 많아 새로운 상거래 방식을 통해 곡물의 수급과 유통의 원활성 및 효율성을 높여보자는 목적으로 1848년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세계최초의 근대화된 선물거래소인 시카고상품거래소(CBOT)를 설립했다.시카고상품거래소 설립 초기에는 현물거래와 선도거래가 주종이었으나 선도 거래가 많아지면서 발생된 신용문제와 표준화문제가 심각해지자 1865년 상품을 표준화해 거래소가 계약이행을 보증하는 형태의 선물거래를 시작했다.선물거래 규제와 관련하여 설립 초기에는 거래소규칙에 의한 자율규제 중심이었으나 연방정부 차원에서 규제법안이 제정되기 시작하여 1936년 상품거래소법의 제정으로 모든 상품선물거래에 대한 규제의 틀이 마련되었다.이후 1970년대 초반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서 금융선물을 도입하면서 금융과 상품을 동시에 감독하기 위해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를 설립해 포괄적인 규제권한을 행사하고 있으며 CFTC법에 의해 1982년 선물협회(NFA)가 공식적인 자율규제기관으로 지정되었다.미국에는 10개의 선물거래소가 있어 상품 및 금융선물을 동시에 거래할 수 있고 한때 세계 선물 및 옵션 거래량의 60%이상이 거래되었으나 미국 외 지역거래소(LIFFE, BM&F, MATIF, DTB 등)들의 거래량 증가로 현재 50%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했다.2) 영국 선물시장의 발달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금속 수요가 증가하면서 금속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환된 이후 수입시에 발생되는 문제점(수송위험, 장기간 소요 등)을 보완하기 위해 선도거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일부 상인들이 런던의 커피숍을 중심으로 정보교환 및 선도거래를 하다 거래규모가 커지면서 1877년 런던금속거래소(LME)를 설립했고 현재 세계 비철금속 시장에 기준가격을 제시하는 금속거래의 메카로 부상했다. 금융선물거래는 1982년 9월 유럽내 금융센터기능 수행을 목표로 런던국제금융선물거래소(LIFFE)를 설립하여 금리 및 주가지수선물을 취급하고 있고 북미지역과 동경, 싱가포르, 시드니 등 극동지역을 연는 금융 서비스업 법이 제정되어 공적규제가 이루어 졌다. 영국은 LIFFE, LME, IPE 의 3대 거래소를 중심으로 금융상품, 금속, 에너지 등 모든 종류의 선물 및 옵션을 거래하고 있다.3) 일본 선물시장의 발달17세기경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미곡거래 제도가 발생했으며 이것이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선물거래소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있다. 도쿠가와시대에 지방의 제후들은 중앙정부가 위치해 있던 에도에서 적어도 일년의 절반이상을 지내야만 했는데, 이는 쇼오군의 명령에 의한 것으로 지방제후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지방제후들은 생활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자기의 영지에서 필요할 때마다 쌀 등을 운반해 와서 에도나 오사카의 현물사장에서 돈을 마련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창고를 지어놓고, 이곳에다 자기 영지에서 생산된 물품을 한꺼번에 보관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내다 팔아 현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농사 기술로는 일년에 한번 밖에는 수확을 할 수 없었으므로 현금이 고갈된 일부 제후들이 가을에 수확할 농작물을 담보로 물표 즉, 창고증권을 발행하게 되었으며 상인들에게 이 물표를 팔아 현금을 마련했다. 이 물표들은 다시 상인 사이에서 거래가 되면서 유통성을 가지면서 일종의 유가증권의 형태로 점차 거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당시에 오사카의 요도야라는 큰상인 집에는 항상 많은 상인들이 몰려들었으며, 이들은 이곳에서 거래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또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요도야의 가격은 점차 오사카 시내의 쌀 가격을 선도하는 가격지표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1650년에는 실제 일본의 첫 상품거래소로 발전하게 되었다. 1697년에 요도야는 자기의 본거지를 오사카의 관할지방인 도지마로 이전하였는데, 이곳이 바로 도지마 쌀 시장으로 이름이 알려진 일본 최초의 상품거래소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4) 금융선물거래의 출현일반상품거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선물거래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로 각국의 통화관리제도가 변동환율제로 전환되면서 금융자산의서 시작했다.그 후 금리선물(1975년), 주가지수선물(1982년)이 도입되면서 수많은 거래소들이 다양한 금융선물 상품을 상장하여 거래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금융선물 거래량이 일반상품선물 거래량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5) 세계 선물시장의 추세세계 선물시장은 금리선물과 주가지수선물 및 옵션의 도입을 계기로 고 성장추세를 지속하여 1997년 기준 선물 및 옵션의 거래량과 거래금액이 각각 1조5,530만 계약과 350조 달러에 달해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선물시장은 전산거래시스템으로의 전환을 통한 경쟁력 제고에 주력하고 있고 지역경제의 블록화에 의한 통합 경제권내에서의 주도권 장악을 위해 선물거래소간 흡수· 합병이 빈번해 지는 등 치열한 경쟁시대에 돌입하였다. 먼저 공개호가시스템과 전산거래시스템의 우수성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은 그동안 공개호가시스템을 고수하던 세계 3대 거래소(LIFFE는 자체 전산거래시스템 개발, CBOT는 EUREX시스템 도입, CME는 MATIF시스템 도입)가 모두 전산거래시스템으로 전환을 발표하면서 전산거래시스템이 우수한 것으로 판명되었다.선물거래소간 흡수·합병 추진은 유럽경제의 통합을 계기로 경제권내의 주도권 장악과 전세계 선물시장의 50%를 점하고 있는 미국 선물시장과의 경쟁을 목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영국의 LIFFE가 92년 LTOM, 96년 LCE를 합병, 유럽 내 맹주를 자처하면서 세계 3위권 거래소로 부상했고 이에 자극받아 독일의 DTB와 스위스의 SOFFEX가공동 출자해 EUREX를 출범시켰고 MATIF, MONEP, MEFF도 전산시스템 통합을 위한 Euro-Globex 계획을 추진했다. 미국은 CBOT와 CME의 청산시스템 공유 시도가 무산된 후 각자 독자노선을 고수하면서 유럽 및 아시아의 거래소들과 연계거래를 활발히 모색하고 있다.3. 선물거래 상품의 종류선물거래는 그 대상에 따라 상품선물거래와 금융선물거래로 분류되고, 최초의 상품선물거래는 농산물을 대상으로 19세기 d of Trade), 귀금속과 원유는 뉴욕상품거래소(New York Mercantile Exchange), 축산물은 시카고상업거래소(Chicago Mercantile Exchange)가 대표적이다. 금융선물거래는 1972년 통화선물, 1975년 금리선물, 1982년 주가지수선물이 도입되어 현재 세계 거래량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대 상 상 품상품선물농산물옥수수, 쌀, 소맥, 대두, 대두유, 원면, 설탕, 코코아감자, 오렌지쥬스, 고무, 팜유 등축산물생돈, 생우, 냉동삼겹살 등임산물목재, 합판 등비철금속구리, 알루미늄, 플라티늄, 아연, 니켈, 주석, 납 등귀금속금, 은, 백금 등에너지원유, 가솔린, 프로판가스, 난방유, 전기 등금융선물통화영국파운드, 독일마르크, 일본엔, 스위스프랑, 호주달러프랑스프랑, 멕시코페소, 브라질레알 등금리미재무성증권(T-bond, note, bill), 일본국채, 영국국채, 독일국채,유로달러, 유로엔, CD, LIBOR 등주가지수S&P500, Dow Jones, MMI, 밸류라인, NYSE종합, Nikkei225, TOPIX, 독일DAX, 스페인IBEX, KOSPI 200 등1) 전통적인 상품선물상품선물은 약 150년 전부터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고, 현재에도 시카고, 뉴욕, 런던 등 세계의 주요 상품거래소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주요 상품선물의 종류는 농산물, 축산물, 에너지, 임산물, 귀금속, 비철금속이 있다.농산물은 장기간의 보존이 가능하고 거래단위의 표준화가 가능해야하는 소맥, 옥수수, 면화, 보리, 대두, 귀리, 감자, 오렌지, 커피, 코코아, 사탕, 고무 등이 있으며, 축산물은 소, 닭, 돼지, 오리 등이 있고, 에너지는 원유, 난방용 유류, 가솔린, 프로판 가스 등이고, 임산물은 목재이며, 귀금속은 금, 은, 백금 등이고, 비철금속은 알루미늄, 구리, 동, 아연, 주석, 니켈, 납 등이다.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원자재를 해외에 의존하고있어 세계의 상품선물시장동향에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