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9089 화학과 문희선1. 문체 비교?운수 좋언 날 : 욕설, 강하고 거칠은 언어 → 빈민층의 정서, 문화를 잘 표현김첨지의 상황이나 심리를 직접적으로 서술사실적인 묘사→김첨지의 비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화수분 : 온순하고 부드럽고 체념적인 어조 → 주인공의 성격과, 주젤를 잘 드러냄이야기를 소설의 제 3자가 객관적으로 보고, 들은 것을 서술하면서 이야기를이끌어 감 ( 마지막 부분은 제외)2. 남자 인물의 비교운수 좋은 날화수분사회적 지위인력거꾼머슴가족에 대한 태도아내를 사랑하는 자신의 본심과는 달리 욕을 하는등 반어적인 태도를 보임, 가난하고 궁핍한 노여움을 아내에게 품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우애가 돈독함가난에 대한 태도가난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며 원망함가난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잉며 체념적인 태도를 보임3. 작품의 상징 분석?공통적으로 제목이 반어적 →현실의 생활과 반대적인 뜻을 갖는 표현을 사용.?운수 좋은 날 : 추적추적 내리는 비→비극적인 주제를 암시 ,시대의 암울한 분위기, 주인 공의 복잡한 심리,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 조성아내의 부탁 →긴장감을 조성하며, 불길한 결말을 암시, 소설의 핵심임 김첨지의 심리적인 갈등을 느끼게 하는 원인설렁탕 → 취한 상태에서도 아내가 먹고 싶어하는 설렁탕을 잊지 않고 사오는 김첨지의 아내에 대한 사랑?화수분 : 눈→포근하고 밝은 이미지의 눈을 사용함으로써, 결말에서의 따뜻한 인간미를 부각시킴 (아이가 햇살을 받고 웃고 있음)밤중에 우는 화수분 →화수분 일가의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내버린 감꼭지 → 행랑방에 사는 화수분네의 처절한 빈곤과 큰아이의 음식을 탐하는 이유가 (성격이 이상한 이유로 볼수 있음) 가난때 문이라는걸 알려줌.4.결말의 차이와 그 의미?운수 좋은 날 :아내가 죽었으며, 그의 아들은 죽은 아내의 시체 옆에서 울고 있었음
?웅녀 신화 디시 읽기?웅녀신화라고 부를 때 신화란 말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사회적 신화’라는 뜻으로, 웅녀 신화 이야기는 우리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어 원형적 사고를 이루어 집단적 무의식을 형성해온 사회적 신화다.이 신화는 한국 여성의 원형은 곰-여인이라는 것을 아무 판단 없이 받아들이며, 여성의 특질을 끈기와 인내, 순박하고 우둔하며 점잖은 곰의 특성과 결부시켜왔다.단군신화에서 하늘은 남성이며, 법은 남성적 존재에게 오는 땅의 존재를 하나의 주체로 만드는 아버지의 이름들의 법까지 상징한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여자인 웅녀는 하나의 주체로서 등장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이름이 만든 주체를 지칭하고 사회적 지위를 부여해주는 금기에 갇힌다. 그리고 격리, 시련 견디기, 성취의 금지에의 희생을 통해 사회가 바라는 가치(여성성)를 지니 존재가 된다.호랑이성은 용맹, 투쟁, 광능성, 자기애 등을 나타내는 반면, 곰성은 수동적이며 인내하고 자기 희생적인 면을 나타낸다. 곰과 호랑이를 두 개의 다른 동물로 생각한 단군신화와 달리 이 글은 곰과 호랑이를 한 사람 전체성 속에 공존해 있는 곰성과 호랑이 성으로 해석한다. 사람은 원래 양성적인 존재였으나, 아버지의 법에 의해 나에 대한 이상적 감각이 형성되면서, 양성적인 안정된 주체는 분열된 주체가 된다. 단군신화에서도 자연 여자 상태에서 곰성과 호랑이성을 동시에 지닌 원초적 존재는 가부장적 사회에 맞는 젠더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기 위해 아버지의 법이 내린 금기에 따르게 된다. 이제 여자(웅녀)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이고, 문화에 의해 순치될수 없는 강력한 야성, 호랑이성을 상실하고 자기 상실의 길로 들어선다.자연상태에서의 웅녀는는 사회적 주체성을 얻으면서 자기상실 자기소외를 겪는데, 첫번째 상실은 태초에 양성적이던 원래의 상태에서 호랑이성이 추방된 것이고, 두번째 상실은 웅녀가 여성으로서의 다른 삶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잉태하기만을 기원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자기애의 상실이다. 웅녀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단지 모성에만 두고 있다.그러면서 웅녀는 절대적인 초월적 주체가 아니고 분열된 주체, 즉 쪼개진 자기분열의 틈을 뚫고 호랑이성의 무의식이 끊임없이 도전받는 주체, 교란당하는 주체로 살아가게 된다.무의식 속에서 사회적으로 호랑이성의 어머니를 금지하는 것을 민담 ‘해와 달’에서 알 수 있다. 남편도 없이 곰여인처럼 묵묵히 인내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단일주체로서의 어머니가 밤의 숲이라는 무의식의 원시적 공간을 헤쳐나갈 때 공격적인 호랑이성이 분열된 그녀의 주체의 틈을 뚫고 그녀를 위협한다. 추방되었던 무의식의 호랑이성은 주체에 도전하여 결국 어머니를 삼켜 버린다. 호랑이가 되어 나타난 어머니를 아이들을 피해 도망가고, 하늘은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아 썩은 동앗줄을 내려보내 죽음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이 민담은 자신의 곰성을 부정하고 호랑이성을 복원한 여성은 아이들로부터, 하늘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전통적 여성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인간은 ‘무서운 어머니’와의 결별을 통해 우주질서 속의 하나의 주체로 비로소 활동하게 된다.
?이어령의 아침의 사상?천부인 세 개를 가지고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세계를 다스렸다는 하늘님의 아들 환웅이 인간이 된 곰과 결혼하여 단군이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의 운명과 영혼이 선명하게 담겨진 우리의 집단 무의식 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시공을 초월한 상징형식, 즉 문화의 원형이다.환웅이 태백산에서 내려와 베풀었다는 도시 신시는 환웅이라는 천상의 신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곰이라는 땅의 것이 하늘로 올라가려는 그 욕망의 자리에서 비롯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중간적 위치에 있는 상직적 마을, 한국의 정신적 고향이다. 이것은 신과 인간을 종속관계가 아닌 하늘은 하늘 땅은 땅이라 동등히 여겼던 의식을 보여준다.그 ‘신시’에서 신분이 다른 인간으로 화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인 두 존재가 혼례를 올려 완성된 인간이 탄생한다. 하늘과 땅 사이를 방황하는 고통과 슬픔과 불안에 가득 찬 분열의 중간자로 인간을 인식하는 서양과 달리 단군신화에서는 하늘과 땅의 결합, 화합, 창조, 탄생인 존재로 인간을 본다. 이 신화는 인간을 그리워하는 환웅과 짐승이 인간 사회로 뛰어들어온 인간 스스로를 중시하는 인간주의적인 사고 밑에서 생겨난 인간 긍정의 출발점이다. 또 철저하게 계층으로 분할하여 인간의 일방통행적 지배성을 보여주는 단절의 역사관인 창세기와 다르게 신과 곰의 똑같은 협조인 천상의 힘과 지상의 힘이 서로 결합된 조화 화합의 역사관을 볼 수 있다. 즉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조화의 공간 신시에서 하늘과 땅을 화합시키는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는 긍정적인 존재인 촉복받은 인간이 탄생한 것이다.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곰뿐이 아니었다. 호랑이도 인간이 되고 싶어했고, 한국인과 친숙한 것은 곰보다도 호랑이 쪽이다. 그런데 왜 단군신화에서는 곰이 인간이 됬을까?곰과 호랑이는 산악속의 짐승을 대표하는 맹수이다. 그러면서도 곰과 호랑이는 서로 다른성격을 띠고 있다. 호랑이는 현실적이고 외적인 힘, 투쟁의 세계를 상징하는 동적 정복자인 영웅의 이미지인 반면에 곰은 이상적이고 내적인 힘의 변별적 특징을 보여주는 힘을 안으로 간직하는 우둔하고 점잖은 끈기와 참을성 있는 인자, 성자의 이미지이다. 환웅은 쑥과 마늘 스무개를 주고 이것을 먹으며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다. 쑥과 마늘은 쓰고 매운 역겨운 것이며, 인간에게 있어서 어둠은 하나의 공포이며 절망이여 죽음이다. 쓰고 맵고, 답답한 어둠은 고난이다. 그리고 이 고난은 외적 투쟁이 아닌 내적 투쟁이며, 남이 아닌 자기 마음과의 투쟁이다. 곰과 호랑이는 이러한 고난,시련을 통해서만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곰의 승리는 외적인 투쟁보다는 내면의 투쟁을, 남을 정복하기보다는 스스로 어려움을 견디어 내려는 고난 의식을, 용맹과 투쟁의 가치관 보다는 인과 순박을 더 높이 샀던 , 그러한 가치관을 둔 한국인의 선택이며, 고난을 통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통해서만 존재론적 동굴의 의미 전환을 이룩할수 있다는걸 보여준다. 이런 곰의 속성이 바로 한국인이 지향하는 인간상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