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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재론에 있어서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 차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견해의 차이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인식의 순서 차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이 존재를 관념적인 경향으로 파악하여 실재적인 경향을 상대적으로 제쳐둔 반면, 그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인 실재적인 것으로부터 관념적인 것을 뽑아내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에 대한 해석을 하는 데 있어 자연세계를 통해 뭔가 얻어내려 했다는 점이다. 이 두 철학자의 보편자와 개별자의 개념을 비교하는 데 있어서 이 문제는 꼭 지적해야 할 문제로 보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의 의견에 어떻게 반대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두 사람의 형이상학적 관점을 비교해 보도록 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substratum)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제1실체와 제2실체로 구분하여 파악한다. 제1실체는 여기 있는 이것(tode ti) 한 특정한 그 자체이며, 제2실체는 이러한 개별적인 제1실체들 안에 내포되어 있는 유개념적인 보편적 특성(ousia)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제2실체는 플라톤의 idea 개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것은 동물이다' 라고 할 때 술어들 중에서 보편명사의 특수한 집합으로써 사용하는 것이 제2 실체이며, 개별적인 것. 이것. 동물 등은 제1실체라는 것이다. 이렇게 실체를 구분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제 1,2실체를 동시에 보아야만 실체를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참된 실체는 제1실체이며,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제1실체일 뿐이라고 말한다.플라톤의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주장을 다시 한번 논의하자면,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idea론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개별적 사물의 원형(panodeigma)이 되는 어떠한 완벽한 실체가 있다고 보아 그것을 idea라고 하고,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상계(phainomenon)는 이러한 이데아의 모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두 사람이 말하는 보편자의 개념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보편자의 개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고 있는 개체들의 공통적인 속성, 즉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성의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플라톤의 이데아는 그러한 의미에서의 보편자의 개념이 아니라, 한 개체의 완벽한 모습. 그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보편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절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체들 사이에 내재된 이데아들 간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고, 그 관계를 통해 각각의 이데아는 결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보편자라는 의미 자체가 틀리고, 플라톤이 보편자만을 강조한 것처럼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은 대상 자체에서부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개체들 그 자체 일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6바퀴로 달리는 자동차를 인식할 수 있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개체도 충분히 이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고로는 우리는 인류의 발전을 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현재 있는 개체들 그것만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는 그러한 개체의 속성을 파악하는 데만 엄청난 시간을 소모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우리는 실제로도 그러한 이데아속의 인식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인 플라톤이 주장한 이데아론의 비현실성을 깨뜨리기 위하여 노력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플라톤의 바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스승의 이데아론을 자신이 생각하는 보편자의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여, 상대적으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개체들의 특수성을 더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이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철학의 전반적인 화두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사한 비판적 방법론 역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존재론은 세상에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학문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존재론은 개체와 속성이라는 두 범주의 존재론을 인정해왔다. 하지만 플라톤은 속성과는 다른 존재자가 있다고 주장을 한다. 이것을 플라톤은 이데아라고 주장을 한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보편적인 속성이 있다고 주장을 한다. 우리는 오늘날 이 존재를 보편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들 보편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만 이 보편자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데 플라톤의 주장을 우리는 극단적 실재론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도적 실재론으로 부른다. 플라톤은 속성들은 존재한다고 인정하지만 예화를 하지 못하는 속성들도 존재한다고 주장을 한다.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즉 둥근 삼각형과 같은 예화되지 못하는 속성들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지만 이데아의 세계에서는 존재한다고 주장을 한다. 즉 속성은 개체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다른 입장으로 다른 세계가 존재해야한다는 것에 반대해 인간의 자연성에 의해서 속성을 파악할 수 있어야한다며 예화되지 못하는 속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속성은 개체가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우리는 중도적 실재론으로 부른다.
    인문/어학| 2008.02.08| 2페이지| 1,000원| 조회(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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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의 숲으로 들어서다
    철학의 숲으로 들어서다.Ⅰ. 들어가면서Ⅱ. 철학이란 무엇인가?1. 철학 기본적으로 관념적이어야 한다.2. 그러나 철학이 형이하의 세계를 버릴때 철학은 더 이상 형이상학이 아니다.3. 철학은 상상이다.Ⅲ. 한국에서 철학적 사유를 증진시킬 방안.1. 철학적 사유의 현실적 유용성.2. 개인적 방안 - 기본적으로 독서.3. 사회적 방안 - 줄세우기식 교육의 개선.Ⅳ. 마치면서Ⅰ. 들어가면서얼마 전 인문학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 선택이 있었다. 고민 끝에 철학과를 선택했다. 학부시절을 철학과에 속해 있어서였기도 하고, 일단 셋 중에 철학 수업이 나와 가장 맞는 수업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문제는 고민이 끝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이 사실을 아버지께 말씀드렸을 때 예상치 못한 그 반대란.. 설득시키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것도 철학 자체를 설명하는 것에는 당연히 실패했고, 교직이수라는 매력적인 이름을 걸고 나서야 말이다. 나는 왜 철학을 설명하지 못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철학에 대해서 아는 것을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잘 알고 설명해드렸어도, 아버지의 고정관념은 바뀌지 않으셨겠지만 말이다. 우연히도 나는 철학이란 숲을 논의하는 글을 써야하게 되었고,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철학이란 숲으로 한 걸음씩 내 딛으려 한다.Ⅱ. 철학이란 무엇인가?1. 철학 기본적으로 관념적이어야 한다.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철학은 사회학이나 경제학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세계를 지탱하는 최고원리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어떤 현실적인 지표를 나타내거나, 실제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림으로 따지면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그런 생각을 통해서 여러 학문들이 스케치를 하고, 색칠을 하면서 하나의 세계가 구성되고, 세계가 윤곽과 체계를 가진 완성작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다분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철학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왔는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비행기가 하늘을 나르고, 우리 주머니에는 휴대폰이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의 사고는 10c 사람들의 사고 보다 훨씬 폭넓어졌다. 역사적으로 과학의 발전이라 알고 있는 것들은 철학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철학은 인간에게 더 많은 희망과 꿈을 갖게 해 주었다. 철학의 목표는 바로 여기서 발견된다. 철학의 목표는 인간과 자연, 우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더 발전시키고, 유용하게 만드는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시대의 철학 역시 그러해야 하며, 반드시 그 목표를 잊어서는 안된다.그러나 교수님께서『향연』의 옮긴이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한국사회에서의 철학은 독일 관념론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이었고, 많이 변화했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철학은 머릿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2. 그러나 철학이 형이하의 세계를 버릴 때 철학은 더 이상 형이상학이 아니다.모 선배가 그리스에 갔을 때 이야기다. 과티를 입고 여행 중이었는데, 한 식당 주인이 과티에 쓰여 있는 'philosophy' 라는 글자를 보고서는 철학을 전공하느냐면서 공짜로 식사를 대접했다고 한다. 과연 우리나라라면 어떨까하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위에서 밝혔던 것처럼, 철학은 세계를 지탱하는 최고원리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철학은 지나치게 관념적인 형이상학에 치우쳐 있고, 나아가 다분히 홀로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겠다고 생각하고 멋진 기획안을 상상했다고 해서, 그림이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철학이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할 때는 다른 학문들과 함께 진행하고 발전하며, 사회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철학과는 취업이 안된다.” “철학은 뜬 구름 잡는 소리다” 와 같은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 돈버는 직업을 우대하는 풍조, 현실세계에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의지하게 된 풍조의 탓도 있겠지만, 분명 철학이 학문의 최고봉, 인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쓸데없는 자만심 때문에 독존할 수 있다고 오인해왔던 것에도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누이 밝혔다시피 철학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현실과 유리되었을 때 그러한 관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도사의 중얼거림으로 전락하게 된다. 유(有)가 무(無)로 인해 가치를 가지듯이 형이상학도 형이하의 세계를 바탕으로 가치를 지닌다.3. 철학은 상상이다.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다 결론을 내린 것은 철학은 상상이라는 것이다. 철학은 시대를 앞서나가기 위한 상상이며,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상상이다. 고정관념을 타파하가 위한 상상이며, 새로운 관념을 창조하기 위한 상상이다. 시대에 따라 철학자들은 각 시대의 시대성을 드러내기 마련이고, 그 시대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얼마 전 읽은 책 중에 『철학의 뒤안길』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자신이 속한 시대에서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잘 반영하고 있는 듯 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윤리 지식에서도 많은 철학자들은 좋은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서두에 밝혔다시피 이러한 철학자들의 노력이 우리의 역사를 진보시켜 왔다. 나는 정치, 경제, 문화 어느 것 하나 철학의 도움을 빼 놓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정치, 경제, 문화 등 여타 다른 분야들의 발전은 철학의 발전과 함께한다. 이제 정체된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 철학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의 한국 철학이 물론 한국의 전통철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뒷짐 지고 바라만 보는 공상이 아닌, 현실과 함께 하는 유용한 상상으로서의 철학을 의미하는 것이다.Ⅲ. 한국에서 철학적 사유를 증진시킬 방안.1. 철학적 사유의 현실적 유용성.한국의 학생들은 사고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오늘 한국에서 철학적 사유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내가 주목하려하는 부분은 교육이다. 한국의 교육은 다분히 고립되어 있으며, 단편적 지식의 전수에 지나친 의미를 둔다. 그러나 철학적 사유는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것이며, 이러한 사유가 없이는 큰 성공이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앞에서 나는 철학을 상상이라고 정의한 바 있고, 이러한 상상이 인류에 미친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철학적 사유의 유용성은 자연스레 증명되는 것이다. 철학적 사유를 가진다는 것은 똑같은 사물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며, 같은 문장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고로 천편일률적인 어떠한 정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화된 사회에 걸맞는 다양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철학적 사유는 현실에 조급해진 우리의 머리와 마음을 쉬게 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 사고의 형성에도 기여한다고 본다.그렇다면 한국에서의 철학적 사유를 어떻게 증진시킬 것인가?2. 개인적 방안 - 기본적으로 독서.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독서이다. 우리가 감각하지 않은 것에서 무언가를 꿈꾸고 상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철학적 사유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개인이 할 수 있는 경험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이것은 독서에를 통해 상당 부분 보충할 수 있다.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고가 담겨 있으며, 그것을 읽음으로서, 우리는 그것들을 이해하고 또 때론 비판하며, 철학적 사고를 증진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는 책의 종류는 무방하다고 본다. 즉, 다독(多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만화책인『몬스터』를 통해서 22세기를 상상해 보았고, 그토록 비판 받는 ‘귀여니’에게서도 배울 것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했다. 어떤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책에서든지 무엇을 느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학교 교육은 교과서를 읽히는 데서 벗어나, 다양한 책과 씨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어학| 2008.02.08| 4페이지| 1,500원| 조회(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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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스토예프스키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읽고
    1. 시작하면서이 글을 읽기 전에 을 통해 알고 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미지는 인간에 대한 긍정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구원의 손길을 찾으며, 악한 사람에게서도 악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사실 그대로의 사실주의(realism) 작가의 대표주자 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은 그다지 솔직하게 그려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모습 역시도 그 인간에 대한 긍정이라는 특유의 선함만은 벗어 던지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이라는 책에서 등장하는 모든 죄수들의 죄를 죄수들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몫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시종일관 그런 모습을 던지지 않은 채, 감싸 안고 포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너무나 실감나게 그려낸 감옥이라는 차가운 배경 안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키워나갔다면 역설적일까?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예를 드는 작은 사건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매우 끔찍하고 잔인한- 역시, 죄 뒤에 숨겨진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감히 책 2번 읽고, 이라는 러시아 문학의 거장인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을 평가하자면 신앙으로부터 비롯된 자신의 가치관과, 특유의 관찰력, 짜임새 있는 문장력이 잘 배합되어 있는 오히려 보다도 더 생생함이 살아있는 맛깔 나는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서양문학사 시간을 통해서 읽었던 책들 중에서, 그 중에서도 또 마지막까지 과 각축 끝에 내가 을 선택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느껴지는 신앙의 향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작품분석논문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문학에 대한 향기를 맡고 나서, 이 책의 맛을 보는 것으로 진행하고자 한다.2. 작품의 분석① 작가와 작품의 배경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로 꼽히는 도스토예프스키는 ‘넋의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내면을 추구하여 근대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은 사실주의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그는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했는데, 이 점은 바로 러시아 도시문학의 선구자로서의 그의 위치를 굳히게 하는 한편, 훗날의 토양주의(土壤主義:러시아 메시아니즘)의 주장에서 엿보이는 바와 같은 농민이상화의 경향마저 그에게서 싹트게 하기도 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하여, 특히 W.스콧의 환상적이며 낭만적인 전기와 역사소설에 흥미를 느꼈다. 16세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병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한 다음에는 공병국에 근무했으나, 싫증을 느껴 1년 남짓 있다가 퇴직했는데, 때마침 번역 출간된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가 호평을 받은 데 힘을 얻어, 직업작가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1846)은 도시의 뒷골목에 사는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적 비극과, 그들의 심리적 갈등을 그려낸 중편으로서, 사실주의적 휴머니즘을 기치로 하였던 당시 비평계의 거물인 V.G.벨린스키에게 인정되어, 24세의 무명작가는 일약 ‘새로운 고골리’라는 문명을 떨치게 되었다. 곧 이어 발표한 《분신(分身)》(46)과 《주부》(47) 등은 벨린스키로부터 심리주의로의 병적인 경향이 있다고 지적되어 호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이 무렵부터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백야(白夜)》(48) 《네트치카 네즈바노바》(49) 등의 가작을 씀으로써, 인간의 정열의 여러 모습을 탐구하는 한편, F.M.C.푸리에의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M.V.페트라셰프스키의 서클로 접근해 갔다. 이 시기의 혁명가들과의 교류는 그의 생애를 통해 그의 창작활동에 큰 흔적을 남기게 된다. 49년 봄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좌되어 다른 서클 회원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총살 직전 황제의 특사로 징역형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되었다. 또한 시베리아의 감옥에서 지낸 4년간의 생활은, 그가 인도주의자·공상적 혁명가에서 변모하여 슬라브적인 신비주의자·인종사상(忍從思想)의 제창자로 사상적 전신(轉身)을 하게 되는 시기였다. 출옥 후 5년간, 중앙아시아에서 사병으로 근무하는 풀 수 있는 열쇠로 일반에게 인정되는 중편 《지하생활자의 수기》(64)가 이 시기에 씌어진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64년 잡지 《에포하》를 발행했으나 완전히 실패하여 그는 거액의 빚만 짊어지게 되어 생활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67년 중편 《노름꾼》(66)의 구술(口述)이 계기가 되어 사귀게 된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와 재혼한 뒤로는, 빚쟁이의 추궁을 피해 4년이나 해외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이 궁핍한 생활 속에서 그의 명성을 불후의 것으로 남기게 되는 《죄와벌》(66) 《백치》(68) 《악령(惡靈)》(71∼72) 그리고 중편 《영원한 남편》(70) 등을 발표했다. 외유에서 돌아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그의 만년의 10년간은 장편 《미성년》(75)과 그의 생애를 통한 사색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79∼80) 이외에도, 73년 이후 시사적 수상(隨想)과 문예평론·단편 등을 포함한 자유형식의 문집 《작가의 일기》를 썼다. 그가 죽기 반년쯤 전 푸슈킨의 동상제막식에서 행한 기념강연은, 열광적인 환영을 받아 불우했던 그의 만년을 장식해 주었다. 《죄와 벌》로 시작되는 그의 후기의 대작은 시대의 첨단적인 사회적·사상적·정치적 문제를 예민하게 반영시킴과 동시에, 인간존재의 근본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점에 그의 특색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론적 살인자 라스콜리니코프에 있어서의 인간을 추구한 《죄와 벌》, 조화와 화해를 초래할 아름다운 인간 미슈킨 공작(公爵)의 패배를 묘사한 《백치》, 네차예프 사건에서 소재를 얻어 혁명의 조직과 사상의 병리를 묘사한 《악령》, 청년의 야심적 생태를 다룬 《미성년》, 존속살해범을 주제로 신과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결시킨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각 작품에서 다룬 소재가 다르면서도 총체적으로는 내면적인 통일성으로 굳게 연결되어 있는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세계’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 《죄와 벌》의 양극적(兩極的)인 인물상(人物像)인 소냐와 스비드리가일로프는그의 저작집 등도 새로 출판이 허용되게 되었다.이 글을 통해 분석 해볼 《죽음의 집의 기록》은 도스토예프스키가 1849년 봄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좌되어 다른 서클 회원과 함께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생활을 하게 된다. 러시아 최초로 감옥과 유형생활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4년간의 유형생활을 생생하게 담은 그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까다로운 검열을 거쳐 1862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는데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은 이 작품이 소설의 하나로 간주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제목의 “기록”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적인 의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다른 작품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전기적(傳記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낭만주의적 상상력에서 벗어나 현실을 바탕에 둔 그대로의 사실을 반영하고자 했던 당대 러시아 문학의 사실주의적 경향과도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의 집의 기록》은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의 전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식주의자들이 용어로 가공하여 여기에 창조적 상상력의 예술성을 부가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단순히 평면적으로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1인칭 서술 형식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나”와 또 다른 “나”를 병치시키면서 작품의 내용과는 무관한 또 다른 서술적 긴장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특유의 작가적 성격이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고 볼 수 있다.② 줄거리를 통한 작품의 이해이《죽음의 집의 기록》은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실제 체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서술하지 않는다. 이 글의 화자인 ‘나’는 알렉산드르 뻬드로비치 고란치코프라는 귀족 출신의 형사범, 즉, 아내를 살해한 죄목으로 10년의 유형생활을 마치고 꾸즈네츠끄 시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하다가 혼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던 한 인물의 수기를 입수하게 된다. 이 수기가 바로《죽음의 집의 기록》의 초본이며, 이를 정리하여 ‘나’가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이다.《죽음의 집의 기록》 안에서의 화자인 ‘나조목조목 들여다보듯이 요약 형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먼저 1장 에서부터 4장 까지는 마치 스케치를 하듯이 옥사와 요새의 마당과 긴 목재 담장, 기이한 죄수복과 덜그럭거리는 족쇄, 삭발한 죄수들의 머리와 얼굴에 찍힌 낙인, 그리고 그 곳에서의 일상 등을 묘사하고 있다. 죽음의 집에 거처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주변 세계에 대해 거리를 둔 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고란치코프는 자기와 같이 생활하는 250명의 죄수들을 “음산하며 시기를 잘하고, 무섭도록 허세를 부리며 오만하고 화를 잘 낼 뿐만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형식주의자들” 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인인 아낌 이끼미치, 특별실 출신의 뻬뜨로프, 악의 화신이자 폭군인 가진에게 당한 수모,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방화를 한 구교도 노인의 종교적 심성, 유대인 이사이 포미치등의 죄수들을 고란치코프는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있다. 감옥에서의 노역이 육체의 힘겨움 보다는 강제적인 까닭에 더욱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고란치코프는 살인범, 강도, 방화범, 등과 같은 죄수들과 부대낌을 통해 죽음의 집에 부대끼게 된다. 그래서 화자는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 질수 있는 존재” 라는 것을 스스로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속에서 고란치코프는 자신의 죄에 대해 스스로를 정당화 하고 있는 죄수들의 심리를 읽게 된다. 그러한 죄수들의 심리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형벌을 집행하는 권력의 주체가 자신들과는 상반된 계층이라는 사실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통해 귀족 출신인 고란치코프는 민중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1부에서, 감옥에서 첫 1년을 보내는 고란치코프는 1년이 지나가면서 죄수들을 죄수로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인간이라는 현상에 대한 이해로 옮겨가는 데, 이것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을 통한 선입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 자체에 융화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수실로프, 시로뜨긴, 스꾸라도프, 아비규환을 연상시키는이다.
    독후감/창작| 2008.02.08| 9페이지| 1,500원| 조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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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개론 주요내용
    1.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라.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인간에게 있어서의 철학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은 생리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많은 동물들 중에 유일하게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과 그것보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자유의지의 표출은 바로 ‘왜?’라는 질문에 있다 할 수 있다. 인간은 수많은 ‘왜?’ 라는 질문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역동적으로 변화시켜 왔으며, 문자라는 고유한 수단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발전은 가속화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인 철학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할 것이며, 따라서 인류의 역사적 발전과정속에 철학의 중요성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2. 철학의 큰 두 가지 특징은?철학은 방대한 영역의 거의 모든 지식을 다루고 있으며, 그 자신이 타 학문에 의존하지 않는 학문의 실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철학의 특성을 단편적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면이 없지 않으나, 크게 두 단어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전일(全一)과 비판이다.철학에도 많은 분과가 있다. 예를 들면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미학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상호관련성을 갖고 있으며, 타 분과의 토대 없이는 다른 분과를 진행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과학에서는 생물학과 물리학이 별 다른 부딪힘 없이 진행될 수 있으나, 철학은 이러한 전일적 특성을 지니면서, 다른 분과와 어깨동무를 포기할 수 없는 학문이다. 칸트의 인식론, 칸트의 윤리학, 칸트의 미적판단론등 한 철학자가 보통 3, 4개의 분과에서 철학적 입장을 내세우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두 번째로 철학은 비판하는 학문이다. 서양 형이상학의 체계를 세운 플라톤을 가장 먼저 비판한 사람은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였으며, 하이데거는 이전 서양철학의 전개과정을 가장 명확하게 정리, 비판하고 나서야 자신의 철학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므로 철학은 비판의 연속을 통해서 더 옳은 것, 더 진리에 가까운 것을 추구하려는 노력의 학문이며, 이러한 비판정신은 철학함에 있어서의 기본적 자세라 할 수 있다.3. 과학과 철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은?과학이나 철학이나 진리를 추구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므로 철학과 과학은 유사한 학문이라 할 수 있으며, 학문적 분리가 명확하지 않았던 고대에 많은 철학자들이 철학자이자, 과학자 였던 점은 이를 증명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그러나 과학은 오래된 과학적 연구사실이 후대에 와서 새로운 사실의 발견과 더 정확한 실험을 통해, 깨어지고 무너지지만 철학은 이전 철학자들의 논의가 현대에 와서도 큰 영향을 끼치며, 많은 문제를 새롭게 제기할 수 있다. 뉴턴의 만유인력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앞에 무너졌지만, 플라톤의『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등은 아직도 많은 가르침을 주는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 받는다.또한 과학은 인간 앞에 펼쳐지는 현상적 사실을 밝히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지만, 철학은 그 현상적 사실을 넘어선 형이상학적인 진리를 밝히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과학의 목적 설정은 철학의 충고를 거절하지 못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4. 종교와 철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은?러셀은 철학이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에 있는 것이고 말하는 데, 종교는 보이지 않는 진리를 목적으로 하는 끊임없는 달리기라는 점에서 철학과 공통점을 가진다 할 수 있다. 종교는 절대자의 진리에, 철학은 인간과 자연을 둘러싼 진리에 대한 부단한 탐구라는 것이다.그러나, 종교는 믿음이라는 감성적 영역을 벗어나서는 절대 성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 믿음의 대상이 불합리한 것이라도 믿음으로 통해서 그것은 진리가 될 수 있다. 성경에서 예수가 앉은뱅이를 걷게한 사실은 이성으로 중무장한 21세기 현대인들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믿음의 영역에서는 사실이 될 수 있으며, 이 믿음을 통해 인간은 신과 소통하고, 그 안에서 신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이성적 접근을 기본으로 하며, 어떠한 원리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름의 논리적, 과학적, 이성적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종교와의 차이가 드러난다 할 것이다.5.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신에 대한 철학사적 흐름을 논하라.중세철학은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교리의 혼재로 설명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시기의 주요 철학적 문제는 신과 관련된 것이었다. 중세의 전반부는 교부철학의 시대였으며, 이 시대의 대표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신에 대한 논의를 수용하고 있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이데아인 절대자, 즉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신을 상정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불완전한 인간을 논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통해 신 존재의 증명과 더불어 악에 대한 논의를 펼쳐나가는데,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서, 자유의지로 인해 낮은 층에 있는 악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것을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해서는 플루티누스의 유출설의 영향을 받아, 조명설을 주장하는데 인간은 신의 빛을 통해, 사물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10c를 지나면서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학문의 발달과 대학의 발달은 철학을 신학으로부터 재분리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 이후 등장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거부하고, 이성과 신앙을 분리하고, 그 조화를 모색하는 새로운 신학을 전개하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이 크다 할 수 있다. 그는 이성과 신앙이 서로 대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이성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은 계시가, 계시가 이르기 전까지는 이성이 개척하는 보충, 보완하는 관계로 파악하였다. 그래서 그는 알기 위해서 믿는 것 뿐만 아니라, 믿기 위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6. 르네상스가 발생하게 된 배경과 그 내용을 설명하시오.중세의 모든 철학과 사상은 신학의 그늘 밑에서 성장했으며, 학문과 예술 역시 종교적 목적에 이바지하고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신의 질서에 순응하면 되었고, 자연의 인간을 위한 신의 선물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은 신앙을 위한 보조수단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이 고대의 역사와 사회를 깊이있게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인간 본연의 사회를 발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무역의 증가와 자본의 성장으로 인한 시민계급의 성장과 자연법 사상의 등장으로 중세적 교리에서 벗어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을 벗어난 인간 본연의 사회를 되찾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고, 그것이 바로 르네상스이다.르네상스 시대는 과학의 발전과 맞물려,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제시하였고, 갈릴레이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탈피하는 초석을 다졌다. 이러한 과학의 발전은 신의 말씀에서 벗어난 이성 중심의 과학 법칙을 가능케 하였고, 브루노는 자연과학적인 철학의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큰 사건인 종교개혁은 신앙을 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성서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라틴어로 되어있던 성경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계몽주의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은 신 없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임을 주장하였고, 합리적, 논리적인 인간 이성에 큰 힘을 부여하였다.이러한 르네상스는 400여년에 걸친 서양 근대화의 초석으로서 후에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역사발전의 전개과정에 있어 중대한 사건이었다 할 수 있다.7. 중세와 근세의 차이점을 설명하시오.중세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한 신을 발견해 나가는 시대였다. 따라서 중세는 ‘철학은 신학의 하녀’ ‘이성이 차단 당했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세는 신의 시대였다. 이러한 신의 시대는 라틴어를 중심으로 한 교회 중심의 세계로써, 이 시대의 학문은 특정계층의 향유물이었다. 그러나 중세 중반을 넘어서면서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학문의 발전과 대학의 설립은 근세로 진행되어 가는 역사적 준비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서양은 점차 근대사회로 이행해가기 시작한다.
    인문/어학| 2008.02.08| 4페이지| 1,000원| 조회(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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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 Heidegger,『존재와 시간』34, 35절에 관한 소고
    M. Heidegger,『존재와 시간』제 34절 “거기에 - 있음과 말. 언어”제 35절 “잡담” 에 관한 소고1. 전통의 해체와 현존재의 실존2. 제 34절 “거기에 - 있음과 말. 언어”3. 제 35절 “잡담”4. 나오면서1. 전통의 해체와 현존재의 실존하이데거는『존재와 시간』서론에 앞선 몇 마디의 언급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존재하는’ 이라는 표현의 본디 의미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묻는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우리는 ‘존재하는’의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 삶과 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역사가 길어 준 우물을 그냥 받아 마시고 있다. 그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들이 가진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그것들을 잘 알고 있으며,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그래왔던, 누구나 그렇게 말하는 것들에 대해 지독한 애정을 쏟아 부으면서, “왜?” 라고 묻는 자들을 시대 안에서 철저히 배격시켜 왔다.하이데거가 보기에, 우리의 이러한 오만과 태만은 불변의 실체만을 고집해 온 서양철학의 역사 속에서 답습한, 반드시 해체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 같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존재론의 방법은, 사람들이 예컨대 역사적으로 전수된 존재론에서나 또는 그 비슷한시도들에서, 충고를 구하려고 드는 한, 최고도로 의심스러운 것으로 남을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론의 역사를 그리스 존재론의 근원적 존재경험에로 해체하는 것을 통해,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보다 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지평을 열어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존재의 지평을 열어가기 위한 가장 첫 작업, 즉, 다른 모든 존재론이 발원할 수 있는 기초존재론은 ‘현존재의 존재론적 분석론’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존재의 존재적 구조는 현존재의 실존구조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기초존재론은 현존재의 ‘실존’의 존재론인 셈이다. 이것은 실존의 존재론적 구조를 풀어 밝히는 것을 의미하고, 실존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삼는 존재자이다. 즉, 물음이라는 존재가능성을 가진 자로써, 다른 존재자들에 비해, 존재적, 존재론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현존재는 막연하고, 평균적인 존재이해를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존재론적 접근이 가능하다. 따라서 현존재의 존재적 구조에 대한 지평을 열어 밝히는 것은, 일반존재론 - 현존재 자체의 존재적 구조에 기초하고 있는, 현존재적이지 않은 존재자들을 주제로 하는 다른 모든 존재론- 의 기본이 됨을 의미한다.‘da - sein (현존재)’에서 ‘da(거기)’는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현장” 이라는 뜻이며, 곧, 세계이며, 다른 말로 ‘밝혀져 - 있음’ 이다.) 이 ‘밝혀져 - 있음’이 바로 현존재의 존재양식이다. 이러한 ‘세계 - 내 - 존재’라는 현존재의 근본구성틀 속에서, 인간은 실존한다. 현존재의 ‘있음’은 자연이 그 자리에 있는 그런 ‘있음’과는 다른 있음으로써, 그 있음 자체를 떠맡고 있는 ‘있음’ 이다. 즉, 자신의 존재를 떠맡아서 스스로의 존재를 이행해 나가며, 존재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실존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각자 자기의 존재를 떠맡아 나름대로 자신의 존재를 존재해야만 한다.”는 실존개념 속에는 현사실성, 존재이행, 각자성 등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그렇다면 현존재는 세계 안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이행해 나가고 있는가?이것은 현존재의 실존론적인 구조를 통해서 파악되며, ‘처해 있음’ ‘이해’ ‘말’이, 이 구조에 속한다.)2. 제 34절 “거기에 - 있음과 말. 언어”현존재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다른 현존재하고의 관계 그리고 세계 안에서 만나는 여타의 모든 존재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가 관계하고 있는 존재자를 이해하면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곁에 있음’의 방식은 우리가 어떤 기분에 처해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 즉, 존재가능에로의 기획투사는 이미 어떤 분위기에 의해, 상황지어 있으며, 이러한 ‘처해 있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이해’는 불가능하다.현존재는 거기에(da) 있으며, 이러한 존재가능에 대한 이해는 오직 현존재만이 가진 능력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 있음(da - sein)은 곧 거기에로 내던져짐인 동시에, 거기를 가능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현존재는 그가 존재하는 한, 언제나 자신을 자신의 가능성들에로 기획투사한다.)그런데, ‘처해 있음’ 속에서, 현존재가 존재자를 이해하는 기획투사는 자신 하나의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끊임없이 말을 통해, 다른 현존재들과 이러한 이해의 내용을 공유한다. 이러한 말은 곧, 이해이며, ‘처해있음’, ‘말’과 함께 똑같이 근원적이다. 즉, ‘세계 - 내 - 존재’의 처해 있는 이해가능성을 의미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이 밖으로 말해져 있음이 바로 언어이다.우리는 도구를 비롯한 다른 존재자들의 다양한 가능성에게로 기획투사할 수 있고, 이러한 가능성들을 분류,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분류, 파악된 다양한 가능성들을 우리는 ‘의미’라고 말한다. 현존재는 말하며, 분류파악 하는 가운데, 의미의 전체를 형성, 획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말은 이해된 것을, 분류, 파악하는 것이며, 말해진 그 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현존재는 그 개념파악을 통해, ‘의미부여 전체’를 ‘열어 밝힐 수’ 있다.그런데 이 ‘말’은 어떤 것에 대한 말이다. 우리는 말을 통해, ‘말의 대상’이 가진 다양한 의미를 잡아낸다. 우리는 그 잡아낸 이해들을 다른 현존재들과 함께 나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며 있다는 것은 서로의 이해가능성을 분류파악하며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말은 그 처해 있음의 상황과도 동일근원적인 것이므로, 우리는 말을 통해, 처해 있음의 내용을 고시, 표명하기도 한다.한편, 우리는 말함과 동시에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 것을 알아듣지 못한다. 70대 할아버지에게 손자가 인터넷에 대해 말한다면, 할아버지는 그것에 대해 잘 알아듣지 못한다. 즉, 그 가능성을 분류파악, 즉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들음’ 역시 ‘말’우리는 잘 들을 수 없을 때,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말해지는 음향자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이해가능의 범주 안에서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며, 따라서 귀를 기울이는 것도, 이해함의 바탕에서만 가능한 것이다.말함의 본질적 가능성의 하나인 침묵 역시, ‘말’과 동일한 실존론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 침묵은 ‘말할 것’을 말하지 않음이며, 그 ‘말할 것’ 스스로가 말하게 함을 의미한다. 어떤 것에 대해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이해의 증진과 결코 비례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본질적 이해를 은폐하고, 몰이해로 향하게 만든다. 때로 침묵은, 벙어리로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말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침묵은 ‘말’에서, 말해진 그것을 삭제함으로써, ‘말할 것’ 그 자체의 본질적인 이해가능성에로 다가가게 한다.“자기 자신에 대하여 본래적으로 풍부하게 열어 밝힐 처지에 있을 때의 과묵함은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잡담’을 눌러버린다.” )그러나 현존재의 이해(말)는 대게, 그들(das man)이 이해하는 방식이며, 스스로의 존재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비본래적인 존재양식 속에, 우리는 대게 “빠져 있으며” 이러한 빠져 있음의 일상적 양태 중 하나가 바로 ‘잡담’이다.3. 제 35절 “잡담”현존재가 실존한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존재가능성들을 문제 삼으면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현존재가 실존하는 한, 언제나 자기 자신의 존재가능성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실존은 현존재의 혼자-있는 각자로서의 성격과 그 각자의 존재를 존재해야 함으로 있는 존재이행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현존재의 존재양식이라 할 수 있다.현존재의 존재가능성은 ‘그들’로부터 길어 올려진 것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의 존재가능성들을 자기 자신에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적으로 ‘그들’의 지배 아래 놓여 있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을 그들의 시각에 따라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다. 그들의 시각은 평균적 이해가능성에 의해 해석되어진 함께 살고,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다. 대부분은 ‘그들’이 생활방식, 습관에 의존하고,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들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일상성 속에서 우리는 ‘남들’이 하는 말들을 뒤따라 말하거나, 그 말을 또 남들에게 퍼뜨려 말한다. 크게 말하면,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잡담’ 들에 호기심을 가지면서, 우리들 자신으로 있지는 못하고, 그들 속에 빠져-있다. 그러므로 이 빠져-있는 현존재는 ‘그들’의 지배하에 있다. 이러한 세계에 머물러 있는 현존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가능을 ‘그들’로부터 길어옴으로써, 결국 자신의 본래적이고, 진정한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비본래적 실존방식이다.이러한 잡담을 통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누군가와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이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무차별적으로 이해하고, 근원적 구별과 차이를 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의 고유한 가능성 닫아 버린다. 일상적으로 평균적으로 해석되어 있는 세계 속에서, 평균적 이해를 위해 근원적 이해마저도 닫아버린 것이다. 또, 이 잡담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과제를 면제시켜 준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조차도 남으로부터 길어오고, 자신의 본래적 가능성마저도 이해하지 못하는 ‘뿌리-뽑힌’ 삶을 사는 것이다.얼마 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의 진위와 관련한 PD수첩의 문제제기가 논란이 되었다. 진위와 상관없는 맹목적인 민족주의자들로 구성된 네티즌들은 벌떼같이 일어나, PD수첩을 공격하고, 황우석 박사를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인터뷰 과정에서 언론윤리를 어긴 사실이 드러나자, 그야말로 날개를 단 듯, PD수첩의 폐지와 담당자들의 처벌을 주장했다. 진위를 검증하자는 주장은 꼬리를 감췄고, 네티즌 절대 다수의 힘 앞에, 진실을 가려보자는 의견은 철저히 말살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서울대의 자체 검증과 검찰조사가 이어지면서, 황우석 박사의 .
    인문/어학| 2008.02.08| 3페이지| 1,000원| 조회(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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