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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glish Plus, Not English Only를 읽고 평가A좋아요
    「English Plus, Not English Only」를 읽고지금 현재 미국에서는 많은 이민자들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있다. 이민자들의 이런 언어습관에 관하여 English Only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으며, 그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주류문화에 편입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English Only를 위한 법적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캐나다 퀘백주의 사례를 통해 English Only를 추구할 경우 미국 사회에 심각한 고립현상이 발생할 것이고 통합보다는 오히려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English Only보다는 English Plus를 통해 자연스러운 통합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English Plus 정책이란 영어만을 강요하기 보다는 개인의 모국어를 보장해주고 여기에 영어를 추가로 배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작가는 English Plus를 통해 다양한 민족의 문화와 언어를 유지해나가며 동시에 이를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지금 현재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영어교육 정책을 장려하고 있다. 즉 제 3 세계를 비롯한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영어를 배워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시각이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영어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非영어사용으로 인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이창래의 글에서 본 것과 같이, 배타적인 언어 사용은 커다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창래가 말한 他언어에 관한 관용의 정신도 필요하겠지만, 정책적 수준의 대응책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이점에서 작가는 English Plus를 통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만약 작가의 말대로 모든 국민이 자신의 모국어와 더불어 영어로 의사소통 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면, 미국과 같은 다민족국가의 다양성과 통합성은 모두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에 여러 언어가 존재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성과 효율성의 측면을 생각해본다면 작가의 English Plus 정책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언어사용을 통해 발생하는 문화적 측면을 배제하고 의사소통의 측면만을 고려해 볼 때,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이상적이다. 그리고 에스페란토와 같은 인공어는 바로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작가의 말대로 언어를 단일화하는 것은 소외 계층과 특권층을 양산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English Plus와 같은 방식으로 언어의 통합화를 꾀한다면 실질적인 언어의 단일화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LA의 코리아 타운의 한인들은 하루 종일 영어 한마디를 사용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물론 그들도 영어의 필요성은 인정하겠지만 그들에게 영어의 사용을 유도하기에는 실질적으로 모멘텀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비록 인간에게 다중언어 사용의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하나의 언어를 완벽히 취득한 사람들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English Plus 정책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만으로 기존의 언어를 모두 배척하는 English Only정책을 쓰게 된다면 작가의 말대로 많은 고립화 현상과 배타적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6.10.29| 1페이지| 1,000원| 조회(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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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GO, Corp Watch(www.corpwatch.org)
    Corp Watch(www.corpwatch.org)칸쿤에서 열리고 있는 WTO 각료회의와 이경해씨의 자살로 인해 국내에서도 反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反세계화 운동을 이끄는 NGO 단체들은 누구이고 과연 그들의 주장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미국의 대표적 反세계화 단체 CorpWatch는 체니 美 부통령의 정경유착을 폭로하거나 미국이 세계무역센터의 오염된 고철을 수출했다는 사실을 주장하면서 국내에도 간략히 소개된 바 있다. CorpWatch는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NGO로서 이 단체의 가장 주된 목적은 교육 및 조직화된 연락망을 통해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를 저지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인권과 환경문제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 단체는 처음에 TRAC(Trans- national Resource & Action Center)라는 단체로 더 잘 알려져 있었으나, 후에 웹 사이트와의 명칭 통합을 위해 CorpWatch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단체는 5년 전부터 웹 사이트 등을 통해 다양한 캠페인을 벌여 대중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대표적 캠페인으로는 다국적 기업의 환경파괴에서 비롯된 기후변화 캠페인 ‘Climate Justice Initiative’와 다국적 기업은 UN이 설정한 각종 문제에 역행하므로 UN의 파트너가 아니라는 ‘UN and Corporations Project’가 있다. 일례로 이 단체는 나이키의 기밀 회계 감사를 폭로하여 해외의 나이키 노동 착취공장의 업무환경을 향상시킨 적이 있는데, 이 사실은 뉴욕 타임스의 일면에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것들과 더불어서 이 단체는 각 지역 및 전 세계의 인권 및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위에서 요약한 NGO CorpWatch의 소개와 달리 우리는 일반적으로 NGO를 세계화에 반대하는 조직적인 모임의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사상이 과거의 쇄국주의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거나, 그들이 보유한 全지구적 네트워크 망과 그들이 사용하는 다국적 기업의 통신장비 등을 예로 들면서 그들의 反세계화 주장은 그 자체로 모순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과연 우리의 이러한 비판은 옳은 것인가?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CorpWatch의 경우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CorpWatch가 주장하는 것을 정확히 규정하자면 그들의 주장은 ‘反세계화’라기 보다 ‘초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대한 반대’라고 해야 한다. 즉 그들은 기업윤리가 세계화의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환경오염과 이윤추구로 인한 각종 폐해 및 인권문제 등을 막고자 하는 것이지, 모든 세계화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CorpWatch뿐만 아니라 실제로 대부분의 NGO에서 하는 주장의 하나이다. 그러나 거리에서 일반인을 접하며 NGO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反세계화(Anti-Globalization)이다. 즉 NGO의 주장은 일반인들에게 다국적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는 세계화에 대한 반대로 각인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보다 선명히 그들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반세계화만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反세계화만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이유로 인해 이번 WTO 각료모임에서 이루어지는 反세계화 운동은 농민의 이익만을 위한 운동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NGO는 ‘反세계화’보다 ‘反기업적 세계화’ 혹은 ‘反기업지배’ 등을 그들의 구호로 내세워야만 한다. 국제비정부기구라는 NGO가 실은 초국가적 혹은 다국가적 단체로 세계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세계화는 이미 NGO에게도 보편적 추세가 되어버렸고, 이러한 점에서 그들은 그들이 주장하고 있지도 않고 주장하게 되면 스스로도 논리적 오류에 빠져버리게 되는 ‘反세계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들의 주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다른 문구를 창안해 내야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들의 주장을 정확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시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사회과학| 2006.10.29| 1페이지| 1,000원| 조회(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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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근대문학과 러시아 근대문학의 비교 평가A+최고예요
    「한국 근대문학과 러시아 근대문학의 비교」1. 서론식민지 시대와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거친 우리나라는 근대성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서구와 다른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우리나라는 자생적으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였고, 결국에는 외세의 힘으로 근대화를 이루게 되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표트르대제 이후에 급작스런 근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와 비슷한 양상으로 근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러시아와 한국의 근대화에는 다소의 시간적 차이만 있을 뿐 위와 같이 급격한 근대화의 현상이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근대화 이후 러시아와 한국의 문학작품에는 근대사회에 대한 비판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러시아와 한국의 문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근대화를 경험한 대부분의 문학작품에서 등장한다. 그러나 러시아와 한국의 경우는 근대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졌다는 공통성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상당히 유사한 형태의 근대사회 비판이 문학작품에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우선 근대사회에 대하여 러시아문학과 한국문학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이를 통해 러시아와 한국에서 다루고 있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의 문제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2.본론① 근대성근대(近代)라는 것은 얼마 지나가지 아니한 가까운 시대나 현대를 지칭하며, 역사적으로는 근고(近古)와 현대의 중간을 지칭한다.) 그러나 위의 정의에 따라서 근대를 하나의 시기로 구분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근대라는 개념은 다분히 상대적이며 자의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정의에 의해 근대를 구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 근대사회는 14~16세기경부터 태동하여 18세기에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섰다고 하며, 다소의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근대사회의 시작은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엽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기적 차이는 위의 사전적 정의의 의미가 얼마나 모호한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위의 사전적 정의는 다분히 상대적인 단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치의 다양성을 존중하지만 동시에 일종의 통제수단의 필요를 느낀 개인은 다수의 합의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법실증주의와 근대법을 근대사회에 도입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근대사회는 절대적인 권위가 붕괴된 사회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권위가 도입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사회의 새로운 권위는 각 개인의 가치 다양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권위와 구분되며, 새로운 권위의 표출방식 역시 그 이전의 권위와는 달리 합리성, 자유, 평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②근대문학과연 문학은 이러한 근대사회의 배경에서 어떠한 일을 하였고 어떠한 일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 근대사회로의 진입은 문학이나 예술마저 하나의 직업적 형태로 발전시켰다. 쉽게 말하면 근대사회를 통해 문학과 예술은 하나의 생계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물론 근대사회 이전에도 문학과 예술이 생계수단으로 사용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겸업을 하거나 귀족이나 왕족의 비호아래 예술 작업을 하였다. 게다가 문학의 경우에는 기타 예술)에 비해 생계수단으로 사용되는 비율이 현저히 낮았고, 연극 등의 공연을 통하지 않고서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출판을 목적으로 한 소설이라는 장르는 근대사회 이전의 문학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희곡이나 詩만이 당시 문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근대이전의 문학은 주로 識者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예술성)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합리성, 자유, 평등의 개념이 도입되어 시민계급이 성장하였고, 근대사회의 문학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쇄술과 문학이 결합하면서 문학의 이러한 측면은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비록 이러한 결과로 문학이 상업적 측면을 띤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문학의 예술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부분에 있어서 문학은, 돈으로부터 독립적이었던 과거의 지위고 위선에 가득 찬 기존의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며 원시그리스도교로의 복귀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문학은 종교적 측면에서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문학은 절대 권력을 대신하여 근대사회에 도입된 새로운 권력인 근대사회, 근대성, 근대법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③러시아 문학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인 뿌쉬낀을 필두로 하여 러시아의 문학은 급속도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뾰뜨르 대제를 통해 러시아에 도입된 서구의 근대화 운동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뾰뜨르 대제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페테르부르그로 옮기고 17세기 말부터 서구화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러시아와 서구유럽은 정치, 문화적으로 사실상 거의 단절되어 있었다. 이는 일본이 강제적으로 한국에 서구의 문화를 이식한 것과 같은 급작스러운 변화를 러시아 사회에 초래하였다. 뿌쉬낀을 필두로 하여 러시아에는 근대성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서구의 낭만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고, 이것은 다시 러시아적 낭만주의로 발전하여 러시아적인 것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만들었다. 뿌쉬낀과 더불어 러시아 사실주의의 효시인 고골은 현실에 대한 낭만주의적 불만을 사실주의로 표현하여,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를 접목하였다. 즉 관념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낭만주의에서 현실성을 가미한 사실주의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위와 같은 러시아문학의 양상은 작품 속에서 현재 러시아의 사회상을 반영한 소인간이나 잉여인간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문학은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전환하면서 인간을 둘러싼 현실의 문제를 보다 집중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1860년대의 급진적 인텔리겐차의 사상을 반영한 투루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이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편 러시아문학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러시아 정교적인 입장이나 슬라브주의를 채택하였다. 러시아 문학이 이러한 해결책을 강구하게 된 데에는 러시아에 계몽주의를 필두로 한 서구의 폐해에 대하여 지적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이는 러시아에서 급격한 근대화로 인해 많은 사회적 폐해가 발생하고, 많은 문학가들이 이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또한 러시아의 슬라브주의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1930년대 이후 서구적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그 결과 민족 문화 부흥운동이 일어나 근대 이전 조선의 문화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와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자세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바로 근대화에 대한 한국문학의 비판적 자세가 일본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은 비합리주의, 反근대, 反자본을 외치며 서구사회보다 월등한 위치에 서고자 했다. 그리고 아직 근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은 한국은 일본의 영향으로 근대사회 혹은 식민지 한국사회의 근대성에 비판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들은 조선의 과거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맹목적인 反서구 사상으로 反서구와 親日을 동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지식인들이 일본의 영향만을 받은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지식인들은 일본이 보이는 서구에 대한 반발을 통해 근대성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었고, 러시아의 톨스토이 등에게서 이에 대한 해법을 구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비록 러시아의 근대화 시기가 한국보다는 다소 길지만,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근대문학이 근대성 및 근대사화와 갈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갈등구조가 사회에 근대성이 도입되는 시기와 큰 차이 없이 거의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러시아와 한국은 서구의 경우와 달리 점진적인 근대화가 아닌 급진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졌으며, 근대화의 시작과 함께 근대화에 대한 비판이 아주 짧은 시간적 차이를 두고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친일 행각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 꼽히는 춘원 이광수는 톨스토이에 대하여 “톨스토이는 지구가 산출한 가는 사람들이 자신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칭하기 때문이다. 지식인이라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알고 있는 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월적인 입장에서 남을 선도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가 계몽주의에 反하는 행동을 보이더라도 그들의 행동은 계몽주의적인 행동이라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이미 그들 스스로가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다수의 세력으로부터 그들을 소외시켰다. 이러한 결과 그들은 다수의 합의를 존중하는 근대사회 및 근대법과 마찰을 겪게 되었고, 결국은 그들 이외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그들이 뛰어나고 지식이 풍부해서 사회의 소외된 부분에 대해 눈을 돌렸기 보다는 그들 스스로가 소외된 계층이었기 때문에 소외된 계층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근대사회 및 근대법을 비판하고 이들과 갈등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러시아와 한국의 근대문학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나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리고 문화적으로나 발 빠르게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러시아와 한국에서는 다양한 소외계층이 양산되었다. 문학을 하는 지식인들에게 소외 계층의 존재는 근대화가 낳은 폐해로 인식되었다. 한국문학 중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나 러시아 문학 중 『청동기마상』, 『외투』 등이 바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물론 서유럽에서도 소외 계층의 존재를 다룬 문학 작품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한국과 러시아의 소외 계층은 유럽과 달리 상당히 단시간에 양산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단기간에 양산된 소외 계층은 서구사회에 비하여 더욱 많은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켰으며 한국과 러시아의 많은 문학가들이 보다 큰 관심을 갖고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문학이란 항상 근대사회 및 근대성과 대결구도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어느 한 지역이나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全世界적으로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문학과 근대성의 대립은 러시아와 한국과 같이 급다.
    인문/어학| 2006.10.29| 8페이지| 3,000원| 조회(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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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공어와 문화
    인공어와 문화인류를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특징으로는 언어가 있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는 원래 자연어로서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제 인간의 언어를 인위적인 창조의 범위까지 확장시켜서 인공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에스페란토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엘프어는 이러한 것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두 언어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발견되는데, 공용어를 만들어 내기 위해 만들어진 에스페란토와 달리 엘프어는 소설에서 사용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즉 엘프어는 그 자체가 사람들에 의하여 사용될 것을 목표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점에서 인공어의 국어사전 정의인 ‘세계의 공통어가 될 것을 목표로 하여 만들어진 언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톨킨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소설 속의 엘프어를 만들게 된 것일까? 우리는 우선 작품 속의 엘프어가 우리에게 사실성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톨킨이 만약 엘프어를 만들지 않고 이를 영어로 대체했다면 우리가 느끼는 엘프족 문화의 사실성은 현저히 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작품의 사실성을 느끼기 위해서 더빙된 외화보다 자막이 삽입된 외화 보기를 선호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사실 톨킨이 엘프어 대신에 독자(혹은 관객)가 알아들을 수 없는 아무런 규칙도 없고 의미도 없는 가상의 언어)를 만들었어도, 엘프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것으로 인해 작품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톨킨이 엘프어를 만든 이유에 대해서 ‘현실감’의 측면에서 벗어나 ‘문화’라는 측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톨킨이 완벽한 언어체계를 통해서 엘프어를 만든 이유로 그가 엘프족의 문화를 보다 완벽히 구현하고 싶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톨킨은 엘프어를 만듦으로 인해서 가상의 문화이기는 하지만 작품 속의 엘프 문화에 스스로 동화될 수 있었으며 엘프 문화의 한 구성원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톨킨이 직접 가상의 문화를 창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엘프어를 통해서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톨킨은 단순히 하나의 언어를 만들었지만 이 언어는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언어와 문화의 상관관계는 현재 엘프어를 연구하며 엘프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로 이어져 내려와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에스페란토어와 에스페란토문화 사이의 관계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즉 새로운 문화를 인위적으로 창조해 낼 수 없는 인간과 달리 인공어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인공어의 이러한 특성은 언어와 문화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인문/어학| 2006.10.29| 1페이지| 1,000원| 조회(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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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오리엔트
    『리오리엔트』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와 사고의 틀을 비판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오리엔탈리즘』이 발표된 이후, 오리엔탈리즘은 사회의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이 점차 공론화되면서 서구의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시각에 대한 비판은 계속 발전하였고, 최근에는 안드레 군더 프랑크가 경제학적이며 실증적인 형태로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을 비판한 『리오리엔트』라는 책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 책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마찬가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그 내용은 아시아가 서구에 비해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서구의 시각이 아시아를 열등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비록 서구의 시각에 대한 본격적 회의는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제창 이후에나 전 세계 각계각층에 대두되기 시작했지만, 아시아가 서구보다 뛰어난 경제, 정치, 문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주장은 사이드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反서구의 형태로 존재했었는데, 反서구사상은 탈식민주의나 탈유럽주의 등의 형태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여러 번 공론화되었다. 예를 들어 일본은 서구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서구식 합리성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탈근대성에 대한 고찰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이것이 심화되어 전체주의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아시아에서 서구식 사상과 시각에 대한 반론은 근대성과 근대문화가 도입된 이래로 꾸준히 지속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동양에서 주창한 탈근대성이나 탈식민주의 등이 커다란 빛을 발하지 못하였고, 대부분의 反서구사상의 사고체계나 기반이 서구의 것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남의 것을 빌어 남의 것을 비판하는 것과 같이 서구를 비판하는 도구로 서구의 것을 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부분의 反서구사상은 서구의 경제를 모방하고 따라잡자는 산업화(근대화)라는 장벽에 막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실질적이고 본격적인 탈서구에 대한 담론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이후에나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유럽이 아메리카 발견을 통해 은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계기는 아시아에 비하여 열등한 유럽이 자족적인 삶을 유지해나가기 위해 유럽 밖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유럽 및 미국은 그 단 한번의 기회로 지금 현재까지도 아시아나 남아메리카 및 아프리카에 대한 우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세계의 경제는 다시 한 번 급격히 변하고 있다. 우선 세계의 경제는 전반적인 침체에 빠지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동아시아 삼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의 급속한 부상은 과거 유럽 및 미국의 독점적 지위를 상당부분 위협하고 있다.유럽 및 미국이 과거의 독보적 위치에 위협을 받게 되면서, 서구 특히 미국의 정치?경제인들은 정치적 신보수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를 기치로 보다 빠른 세계화를 주장하게 되었다. 세계화라는 개념은 약 30년 전인 1974년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발표로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세계화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누구나 추구해야할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동일시되기 시작하였으며, 세계화를 이루지 않고서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이 마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의 시카고학파 출신들이 super-power 미국의 정치?경제부서의 핵심에 포진하면서 이제 정치?경제적 세계화는 국가적인 형태로 국제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계화는 이제 국가적 차원,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 차원의 이슈가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기본사상은 국가간의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 효율적인 이윤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며, 여기서 발생한 잉여생산과 경제적 이윤을 저개발국에 분배하여 전 세계의 발전을 급속하게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기본 개념인 先성장 後분배의 원칙이나 비교우위 이론과 맞닿아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쉽게 공박하기 어려운 사실처럼 보인다. 또한 이미 사회주의의 공동분배와 공동성장이 그 효력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자취를 킬 수 있으며, 심지어는 착취의 형태로 진행될 수도 있다. 이미 기술력을 보유한 선진국들과 이제 기술을 막 개발하고 있는 개도국 혹은 저개발국간의 자유 경쟁은 일방적인 무역에 그칠 공산이 큰 것이다. 기술력 부족으로 자국경제를 보호할 수 없는 국가들은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술력이 부족한 저개발국들은 환경규제와 같은 것은 것에도 커다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과거 선진국에서 갑작스레 오존층 파괴를 전 세계적 이슈로 만들고 프레온가스 사용을 금지시켰던 사례는 이미 대체가스를 개발한 선진국이 저개발국으로부터 자신의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술책이었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프랑크는 “또 하나의 정치경제적 투쟁은 일본?한국?동남아시아의 경제침체를 이용하여 이 지역에서 시장을 빼앗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전 세계의 모든 국가들 특히나 선진국들은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재편하려 할 것이다.프랑크의 이러한 논지를 더욱 발전시켜 생각해본다면 신자유주의를 통한 세계화가 선진국의 논리라는 것은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프랑크에 의하면 세계는 이미 500년 전 더 나아가서는 5000년부터 하나의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에 신자유주의에서처럼 세계화를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규정한다면, 지금 현재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세계화는 실현대상이 없는 허구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세계는 이미 세계화 운동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세계체제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화는 실현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허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화의 개념을 단순히 위와 같이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세계화는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체제와는 다른 개념이며, 선진국의 세계화 논리인 신자유주의 사상 역시 세계체제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세 가지의 관계를 보다 심도 있게 살펴보면, 우리는』에서 말한 여러 문명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각각의 세계체제를 분할된 것으로 잘 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를 통한 세계화는 이미 하나의 체제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세계를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재편하려는 서구 유럽 및 미국의 자기중심적인 방책인 것이다. 여기서 세계화라는 개념을 다시 한번 정의한다면, 세계화는 세계체제 안에 속한 구성원들의 유기적 관계를 보다 굳건히 만들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이러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이에 대해 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서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국제정치에서는 엄연한 힘의 논리와 이윤추구의 논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강대국의 위치에 올라서지 못한 우리나라가 쉽사리 신자유주의에 반대를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강대국이 된다면 우리 역시도 서구와 같은 형태의 신자유주의적인 노선을 걸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제관계에서 힘의 논리에 대한 자조(自嘲)에서 벗어나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선진국의 논리에 우리가 쉽사리 동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세계의 정치와 경제가 힘의 논리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오리엔탈리즘 등의 서구의 편향된 시각에 대한 고찰을 통해, 서구의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간파하고 우리의 것을 지키고 보전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다 정확히 선택할 수 있으며, 프랑크가 말 한 아시아의 부흥을 보다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근대화가 시작된 이후 일본과 한국은 서양의 사상과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근대화를 추구해왔다. 물론 동양적 사고방식에 기초를 둔 경제관념도 그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아시아에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동양적 사고관은 자취를 감추고 서양식 경제모델만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의 근저에는 ‘동양이 서양에 비해 경제적, 정치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동양의 것은 모두 열등하고 서양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컸다고 말하고 있다. (중략) 유럽은 신대륙의 화폐로 아시아 열차에 오르는 승차권을 샀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살펴보면 아시아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유럽에 뒤떨어졌기 때문에 아시아의 모든 체제와 사상 등은 열등하다고 것은 완전히 틀린 것이 되어버린다. 아시아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서구에 우월적 위치를 내어주었을 뿐 나머지 기간 동안은 아시아 특유의 가치관과 제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다. 그리고 프랑크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유럽 예외주의’는 ‘다분히 인종주의적 신화’이며 ‘이데올로기적 허구’라고 비판하며, 19세기 이전까지 세계경제에서 우세를 점한 지역이 있다면 중국이라고 지적한다. 즉 그는 전 지구적 차원의 세계경제는 유럽이 ‘발명’ 했다고 주장하는 근대 이전부터 있었으며, ‘서양의 발흥은 아시아의 쇠락에 편승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앞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이 유럽이 아닌 아시아가 될 것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서구적인 모델만을 답습하는 우리의 근대화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서양에 우월적 위치를 내주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서양의 제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서양에 추월당한 기간이 아주 짧은데도 맹목적으로 서구의 모델을 추구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우리나라에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6.25 전쟁 이후라고 할 수 있지만, 최초로 근대화가 시작된 시기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엽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기타 유럽 열강들에 의하여 강압적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에는 일본의 근대초극 사상에 영향을 받아 몇 차례의 反근대운동이나 미적 근대성)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인문학의 범위에서 멈추는 경향이 많았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까지 여전히 서구적 모델의 근대화를 대부분의 분야에 걸쳐 추진해오고 있다. 물론 근대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가 상당한
    인문/어학| 2006.10.29| 7페이지| 2,000원| 조회(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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