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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의 공(空)사상
    ‘공(空)에 대하여’- 들어가며지난 몇주간 나는 공(空)이라는 것에 대해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꽤나 많은 사실들을 새로 알게되었고, 또 어느 정도 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도 지엽적인 끄트머리들만이 머리 속에 맴돌고 있고, 그토록 경계해야하는 공(空)을 색(色)하게 생각하는 오류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머리 속의 뇌세포로만 그런 의미들을 분석하고 곡해하여 어렴풋이 새겨내고 있을 뿐, 진정 가슴으로 그 의미들을 깨닫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직도 학점에 연연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마음이 불안하여 하루하루 또 초조해지곤 하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아직 배움의 길에 있는 상태고, 또 이런 배움들과 삶의 경험이 쌓이며 그 어느 날에는 문득 깨달을 수 있으리라 헛된 기대를 품어보기도 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언제나 말을 시작할 즈음부터 깨달음에서 멀어지는 듯한 불안에 차마 다음 단어를 잇지 못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잘 쓴 글들을 구해서 멋지게 이어놓은 한 편의 레포트를 쓰기보다는 아무리 얕다해도 자신의 이야기와 깨달음이 한방울의 피만큼이라도 섞여들어가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어쨋건 끊임없는 노력으로 언젠가는 이 티끌 세상 속에서도 진정 맑아질 수 있기를 바라며 그간 내가 느끼고 보고 배운 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련다.- 공(空) 이야기공(空)..공이란 무엇인가. 혹자는 이것이라하고 혹자는 저것이라하니 진실을 알기 어렵다. 하지만 공이라는 것은 엄연히 실체가 아니요, 수많은 현인들이 가르쳐주고자 한 것은 공 그 자체가 아니라 깨달음을 향한 길 중간에 하나의 표지판으로 서있는 공이었을 따름이다. 찬란한 아침햇살 아래 조용히 빛나는 국화의 그 노란 빛깔을 차마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해, 애쓰며 어떻게든 그 노랗고 아름다운 색조를 전해주고 싶은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 노랗고 아름다운 색조를 볼 수 있다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무주상보시의 마음으로 현인들나의 허무한 관념의 보탬일 따름이지만 잘만 살펴보고 찬찬히 들여다보며 생각할 수 있다면 불현듯 깨달을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이런 저런 말들로 복잡하고 헷갈리게 늘어놓던 수많은 현사들도 결국 그 어느 순간에 한눈에 꿰어보아질 수 있는 것이다. 불교의 관념들이라는게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한 관념을 완전하게 깨닫게되면, 그 다음 순간에는 그간 뚜렷하게 알지못하고 있던 모든 다른 개념들도 보름달 아래처럼 청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조금은 무책임하게 써놓은, 도가적인 사상에서 많이 발견될 법한 앞의 ‘비어있음이요 비어있음이 아니다’는 말은 나의 경험담에 대한 이야기 뒤에 자세히 고찰해보도록 하겠다.그렇다면 우리의 일상 속에서 공은 어떻게 발견될 수 있는가. 순간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죄 공(空)이다. 예를 들어, 적록색맹자에겐 단풍이 붉게 보이지 않는다. 단풍이 한창인 요즘같은 계절에는 모두가 단풍이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또 단풍을 더 많이 즐기러 일부러 멀리까지 나서기도 하지만 결국 색맹자에게는 그 모든게 비어있고 의미없을 뿐이다. 그에게는 여름에나 가을에나 똑같은 나무요, 나뭇잎인 것이다. 그리고 찬바람이 불면 그 아름답던 단풍도 날아가버리고 앙상한 가지에 그저 마른 잎사귀나 바스락거릴 뿐이다. 또 다른 예로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해 보겠다. 예전에 동아리에서 어느 아름다운 섬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동아리는 연극 동아리였는데, 선배들과 기존에 있던 회원들이 신입회원들을 상대로 소위 ‘양치기’라는 것을 행하는 전통이 있었다. 양치기는 쉽게 말해서 다같이 짜고 속이는 것인데, 연극부라 어찌나 다들 연기를 잘하던지 모두들 깜빡 속아넘어갔다. 그때 난 너무도 철석같이 그 상황들을 믿고있어서, 나중에 선배들이 장난이었다고 얘기해 줬을 때에도 전혀 그 말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당황되고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게 바로 공(空)이라는 것이구나..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토록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어서 와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이 일을 계기로 공이라는 개념에 대해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었기에 소개해 보았다.앞의 예를 통해 심정적이고 직관적인 공에 대해 어느 정도 다가설 수 있었다면, 이제 공이라는 것에 대해 학문적으로 경전과 참고서적에 의거하여 접근해보도록 하겠다. 교과서적인 의미에서 공이란 말을 사전에서는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공(空): 1. 공사상(空思想)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근본교리이다. 2. 현상계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들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생멸하는 존재이며, 고정불변하는 자성(自性)이 없다. 3. 사물은 단지 원인과 결과로 얽힌 상호의존적 관계에 의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말은 어렵게 써놓았지만 그 의미는 바로 핵심을 찌르고 있다. 공이라는 것은 비실체(非實體) 논리의 결론적 개념이다. 태초에 성경에서부터 나타나는 실체 의식이 낳은 모든 고통의 역사들은 이런 비실체 논리로써 말끔히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아담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음으로써 알게된 모든 것들에 대한 구분과 ‘부끄러움’이라는 관념. 그런 것들이 인류 역사를 거쳐 내려오면서 겪었던 많은 고뇌들의 원뿌리인 것이다. 물론 성경의 이야기들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성경이 지어진 것이 꽤나 오래전의 일이기에 실체시(實體視)의 관념은 인류의 역사에서 오랜 굴레로 작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된 실체 의식은 이후로 그것이 올바른 것인가하는 많은 성찰들을 거쳤고, 결국 불교에 와서 그것이 결코 실체가 아니라는 결론을 맺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비어있고, 또 진정으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의 교리는 그런 면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이고, 인류 역사에 그 만큼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앞에서 얘기한 바 있는 ‘공이란 비어있음이요, 또 비어있음이 아니다’라는 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공’이란 말이 비어있다는 것은 그것에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따라서 공이라고 하는 것을 색을 떠나서 있는 다른 어떤 것으로 여기지 않고, 바로 그 ‘색’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각성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런 개념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기에 ‘공은 공하다’,즉 ‘공이란 비어있다’라는 부수적인 가르침이 나오게 된 것이다. 또, ‘색즉시공’이라는 구절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마치 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듯한 어감을 풍기는 ‘색은 공이다’라는 말을 쓰기보다는, ‘색은 공하다’라고 하는 편이 그런 오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어쨋건 그러므로 공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고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을 아예 비어있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단정짓기도 쉽지 않다. 비어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엄연히 존재하는 ‘공’이라는 단어, 혹은 개념을 어찌 깨끗이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공에 대한 딜레마가 시작되는 듯하다. 마치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이미 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공 또한 분명 말해질 수 없는 것이고 비어있는 것인데도 ‘공’이라고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아무리 열심히 쉽게 설명하려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가엾은 중생들과 관련된다. 이미 말로 하지 않아도 공을 깨닫고 있는 이들에겐 이런 논쟁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이미 초탈해있는 이들에게 여러 관념들과 난무하는 개념들은 그야말로 비어있는 것일 뿐이다. 다만 진정한 깨달음에 이른 이들은 다른 못 깨달은 이들을 구제해야하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해도 모순적인 여러 관념들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공’이라는 개념은 본질상으로는 ‘비어있음’이지만 이를 아직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들에게는 여전히 ‘완전히 비어있지 않음’이다. 비어있는게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어찌 하나의 관념이라도 깨끗이 비워서 생각해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공’을 향한 깨달음의 길에 참여할 수 있을까.불교에서 일체개고(一切皆苦)라 할 때 세상의 모든 약 그런 실체 의식을 지워버린다면 모든 것에 대한 가치부여는 사라질 것이고, 괴로움이라는 것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추론해 볼 수 있는 이런 과정이 바로 불교의 깨달음의 과정인 것이다. 가장 기저에 내포되어있는 사상을 얘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실체의식을 지운다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며, 오랜 공부와 경험으로만이 진정으로 이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쨋건 공을 깨닫고 실체 의식의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핵심적으로 해야할 일은 자신이 가장 집착하고 있는 어떤 것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집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주 간단하게도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지금 땅을 밟고 서있고, 공기를 들이마시고, 말을 하는 한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그 자신이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상식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견 못하는 이는 없겠지만, 심정적으로는 자신이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바로 이런 철두철미하고도 집요한 실제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에 무척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일이고, 또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이런 깨달음을 일컬어 아공(我空)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아공을 넘어서서 천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것을 법공(法空)이라고 한다. 이런 아공과 법공을 깨달음이 공을 깨닫고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길인 것이다.그렇다면 공사상에 대해서 가장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요약을 했다는 반야심경에서는 공을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반야심경은 불교경전 중에 무려 600권이나 되는 반야경을 단 260자로 간추려서 쓴 경전인데, 그 짧은 어구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말들만이 들어있어서 그야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어구들로 공(空)사상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평가된다. 반야심경을 보면 이런 말들이 나온다.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사리자여, 삼니라.)
    인문/어학| 2003.11.17| 6페이지| 5,000원| 조회(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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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서양중세철학사Augustinus의 고백록1. 들어가며아우구스티누스뿐 아니라 중세철학 전반에 있어서 선과 악의 문제를 비롯하여 자유의지, 그리고 은총과 구원 등의 문제는 너무도 긴밀하게 엮여있어서 그 중에 한 부분만을 떼어내어 그것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에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한 개념을 확실하게 익힌 후에 그 개념에 대해 의문점을 품게 될 즈음이면, 어느새 다른 영역에까지 발을 들여놓은 후라서 어쩔 도리 없이 그 개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개념화를 진행시켜야만 설명을 마무리지을 수가 있다. 수많은 교부철학자들이 설명한 문제들이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다른 관점들에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의지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얘기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여러 저작들에서 자유의지를 비롯한 의지의 문제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진행시켰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의지에 강조점을 둠으로서 주의주의 철학자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선을 긋고 있는 의지개념의 한계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가 정욕의 어두움을 벗고, "네가 네 습관의 주인이 되어라”고 했던 의지의 구체적인 영향력은 어디까지인가는 아직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의 의지 개념을 종합한 후라 해도 그것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2. 고백록 중에서우선 아우구스티누스가 생각하는 의지 개념의 범위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한편 나는 내 마음에 꼭 맞는 것만을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할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었던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설령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 여기에 의지와 능력이 일치하고 의욕 그 자체는 이미 행위가 되지만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중략) 만일 정신이 정신에게 의욕을 가지라고 명령해도 그럴 마음이 없으면 명령한 것을 이행하지 않을 것입니다.이 부분에서 그는 두 가지 마음에 대해 얘기하면서, 마음이 육체에 명령하면 육체는 즉시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것이 의지는 스스로가 명령받는 자로서 하나의 의지가 되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사실 이런 현상은 반은 의욕을 가지고 또 반은 의욕을 갖지 않은 정신의 병에 불과하다고 얘기한다. 결과적으로 정신은 진리에 의해 떠받쳐지면서도 습관에 눌려서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종의 의지박약의 상태를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크라시아(akraia)'라고 일컫는데, 이는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에 배치하는 행동을 하는 것. 즉 정신에 따라 행위하지 못하고 습관에 의해 행위하며, 완전한 의지를 가지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올바로 되어질 거라고, 또 노력을 하면 자연히 좋은 품성을 유지하며 바르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고전윤리학에 대하여 반기를 들 만한 이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의지 개념과 직접 맞닿아있다.위의 얘기에 이어 아우구스티누스는 의지의 분열에 대해 설명하며, 선한 의지와 악한 의지의 싸움에 대해 잠시 탐구한다. 한 사람의 내부에서 여러 의지들이 싸우고 있다면, 그 의지들을 선한 것과 악한 것으로 분명히 분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결국 그것을 가르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며, 한꺼번에 여러 개의 선한 의지가 싸우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여러 의지의 분열이 꼭 여러 가지의 실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짓는다.1. 상반되는 의지의 수효만큼 상반되는 본성이 존재한다.2. 마니교도의 모임에 참석한다와 극장으로 간다는 각각 선한 의지와 악한 의지이다.2.1. 각각은 선한 본성과 악한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3. 교회로 간다와 극장으로 간다 역시 같은 구도를 가지고 있다.3.1. 서로 모순됨에도 불구, 하나의 선함과 하나의 악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마니교도들은 결국 당황하면서도 교회에 가는 것이 선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두 가지 모두 악하거나, 두 가지 모두 선한 것으로, 모든 것의 본성과 그로 인한 의지의 대결은 선, 악에서 파생한다는 그들의 주한다고 해서 그것이 선과 악의 서로 상반되는 영혼에서, 혹은 두 가지 실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그렇다면 두 가지 의지가 모두 나쁠 경우나 여러 가지 의지가 모두 선할 경우도 상상해 볼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의지가 여러 개의 실체를 의미한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인간의 내부에서는 다수의 의지가 흩어져 서로 싸우는 상황이 존재한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영원한 것이 우리를 초대하고, 낮은 곳에서는 시간적인 선의 향락이 놓아주지 않을 때, 그 영혼은 온전히 전체가 된 의지를 가지고 어느 것을 원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결국 예의 아크라시아 상황은 하나는 진리이기 때문에 영광을 돌리면서도, 다른 하나는 관습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영혼의 고통상황은 계속되게 된다.아크라시아 상황에서의 고통을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욕에 휩싸여있던 젊은 시절에도 그는 끊임없이 진리를 갈구했지만, "나에게 정절과 절제를 주소서"라고 기도하면서도 "그러나 지금 주시지 말고 조금 있다가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는 사실 정신적으로 진리와 믿음을 갈구하였지만, 내심 하느님께서 기도를 속히 기도를 들어주셔서 정욕이라는 병을 고쳐 줄까봐 오히려 두려웠던 것이다.이런 아크라시아의 상태를 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충분하고 완전하게 알지 못해서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설명할 법하다. 그에게 이런 상태는 병적이고 완전하지 못하므로 오히려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이런 것은 인간 모두의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의지로서 선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모든게 의지에 의해서 통제될 수도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그가 왜 네가 네 습관의 주인이 되게 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지적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올바른 품성을 유지해야하는 고전주의 윤리학과 달리 그는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올바로 살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너무도 인간적이며, 또 의 지적통제를 벗어난 마음의 부분으로서, 아크라시아 상태처럼 앎과 행동 사이에 어떤 괴리를 내포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의지에는 차이가 없지만, 행복에 대한 잘못된 개념으로 인해서 죄를 짓게 된다면서, 잘못된 지식이 악일 뿐 의지에서 악이 나오지는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고전주의 윤리학에서 높은 지식의 축적으로 결국 행복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윤리학에서는 신앙을 통하여 최고 수준의 통찰을 이루는 것이 지복에 이르는 길이다. 결국 하느님의 의지를 아는 통찰로서 믿는 것이지, 지식의 축적으로서 정점에 이르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 단계에서 쉽게 이해하기로는, 극한 상황에서도 의지의 극대화로서 인간은 최고수준의 통찰에 이를 수 있으며, 굳이 지적인 통찰을 거치지 않고서도 하느님의 진리와 지복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3. 구원의 가능성의지의 문제와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논쟁에 대해 논점이 날카롭게 대립되는 것은 흔히 ‘은총론’이라고 부르는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였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원죄를 부정하고, 구원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선한 행위에서 온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아담의 죄는 그에게서 그칠 뿐, 인류 전체에게 소급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선택한 선으로 인해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의 은총은 인간의 선한 행위에 부수적으로 뒤따르는 것으로, 언제나 선한 행위가 선행한다고 보았다. 그의 주장은 인간의 유전된 죄성을 부인함으로서, 인간의 도덕적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는 인간이 죄를 지을 수도 있고 또한 짓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다고 고백합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에 따르자면 원죄의 유전 혹은 본성의 타락은 인정되지 않지만, 점진적인 타락은 인정되며, 이런 연유로 하느님은 율법을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려보내셨다. 그리고 죄짓는 습관에 빠진 인간이 이런 하느님의 뜻으로 회귀하는 것은 전으며, 인간의 연약함을 지원하기 위한 초자연적인 도움, 즉 선행하는 은총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하지만 이에 대비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과 은총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크게 제한하였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신의 은총을 감소시키며, 인간이 선을 행하는 것은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의 은총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는 펠라기우스의 반-원죄론에 대항하여 인간의 전적타락을 주장하면서, 신의 특별한 은총만이 이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인간은 멸망당할 자의 무리(massa perditionis)에 속하며, 성경에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15)라고 하셨듯이 인간은 펠라기우스가 말했듯이 의지와 행동의 ‘선천적인 가능성’도 물론 받지만, 그에 이어 의지와 행동 그 자체까지 돕는 은혜를 받는다고 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의 논리를 분석하며, 그의 은혜론은 ‘가능성-의욕-행동’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중에서 하느님은 우리의 의욕과 행동은 도우시지 않고, 의욕과 행동의 가능성만을 돕는다고 주장하는 것을 지적했다. 그런 은혜라면 “아버지에게서 배운 사람이라면 올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실지로 오며”라는 성경말씀처럼 가능성의 발동과 함께 의지와, 행위의 실천이 모두 뒤따르는 것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주장하였다. 아울러 그는 펠라기우스가 강조하는 ‘율법’에 대해서 “참으로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는 율법을 준수할 수 없으며, 이 율법을 완성하는 것은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의지 속에)) 붓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이라고 강조하였다.여기서 펠라기우스는 자유의지에 따르는 인간의 ‘공로’에 대해서 논하며 이렇게 말한다."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자유의지를 이용해서 믿음을 가지게 되며 그 공로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인데, 허락된 그 자유를 악용했으니 당연히 심판과 정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바르게 사용하여 그 공로"
    인문/어학| 2003.11.17| 4페이지| 5,000원| 조회(1,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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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톤 - 뤼시스
    서양 고대 철학 과제뤼시스- 소크라테스식 대화에 대하여 -# 플라톤의 서술방식플라톤은 저작 를 비롯하여 그의 여러 책에서 자신은 직접 등장하지 않고, 그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엄연히 철학책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라고 불릴만한 플라톤의 여러 저작들은 하나같이 어떤 뚜렷한 논증구조나 주장을 천명하는 바 없이, 주로 소크라테스를 주요인물로 하여, 그가 겪었던 주위의 사건들에 대해 기술해 놓았다. 게다가 시작은 대개 소크라테스가 어느 시기쯤에 무엇을 하러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는 식이거나 누구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등 등장인물과 사건 중심적으로 기술해 놓았다. 만약 대사의 앞머리마다 사람 이름만 써놨더라면 희곡집이라 해도 큰 손색이 없는 구조이다. 그리고 대화의 전개와 결말 자체도 매우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이 들어있어서, 실제로 플라톤이 연극적인 체계를 염두에 두고 서술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혹자는 그의 대화편을 통틀어 ‘철학적 희곡’이라고 명명하기도 하였다. 제목까지도 자신의 주장내용이나 논증주제 같은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이름이다. 문학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식의 설정까지 플라톤의 저작을 매우 특이한 형식으로 분류하게 하는데 일조한다.플라톤이 서술한 여러 대화편들은 일견 철학책이라기 보다 그저 역사적으로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기술해놓은 전기라거나 자신의 상상이 가미된 수필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들에 등장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과연 그의 스승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느냐의 여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주로 내려진 결론으로는, 적어도 초기의 저작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실제로 존재했던 소크라테스의 모습과 흡사하며, 후기에 들어 플라톤 자신의 의견이 섞여 들어가기는 했지만, 대체로 신뢰성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든, 이 저작이 철학적인 가치가 있는 텍스트이냐 하테스는 언제나 아테네의 거리나 체육장에서 아름다운 청소년들을 상대로, 또는 마을의 유력한 사람들을 상대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착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묻고, 또 그들의 대답을 듣고 또 다른 질문을 하였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주로 실천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문답의 끝에는 ‘아직도 그것은 모른다’는 무지의 고백을 문답자가 서로간에 인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이 때 상대방은 종종 소크라테스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자기는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 자기의 무지를 폭로 당한 수치심에 때로는 소크라테스의 음흉한 수법에 분노하였다. 이렇게 모른다고 하면서 아는 것처럼 보이던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참뜻은, 모든 사람이 자기의 존재 의미로 부여된 최종적인 앎에 대한 무지를 깨닫고, 그것을 묻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데 있었다. 이렇게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을 ‘무지의 지’라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이 최종적인 근거를 안다는 뜻은 아니다. 소크라테스 자신 또한 궁극적인 근거에 대한 무지를 깨닫고, 그것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통하여 이 막다른 벽 속에 머무는 데 그의 철학 혹은 앎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이 있다. 그것은 자신을 근원부터 질문 당하는 치열한 곳에 놓아두는 것이며, 이러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온통 근원에서부터 조명하는 것이다.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aporia라는 말인데, 그리스어로 ‘통로가 없음’ 혹은 ‘길이 막힌 것’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물에 혹은 사태에 관하여 해결의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난관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는 해결이 곤란한 문제를 가리키는 말인데, 소크라테스는 대화 상대를 aporia에 빠뜨려 무지를 자각시켰으며, 플라톤의 경우에는 대화에서 로고스의 전개로부터 필연적으로 생기는 난관을 aporia라고 하였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문제를 무시해 버릴 수 없는 고통을 가지고 있다고 호소한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느끼는 고통이 그 문제와 관련된 어떤 임신을 하고 있는 데서 오는 고통이라고 진단하고, 산파술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산파술은 스스로 자식을 생산할 수 있는 이의 소관이 아니다. 산파는 전에 아기를 낳아보기는 했으나, 지금은 낳을 수 없는 여자들이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임신 여부에 대하여 전문가이며 약을 주거나 진통을 일으키거나 완화시키고, 어려운 출산도 가능하게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하는 일을 이러한 산파의 일에 비유한다.“.....나의 산파술은 남자를 상대로 한다는 것과,(아테네의 시민은 남자이므로) 영혼이 진통할 때 그것을 돌보는 것이지 육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구별되네. 내 산파술의 요체는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이 가짜인지 진짜 아이인지를 철저하게 분간해내는 데 있네.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 즉 나는 다른 사람에게 질문만 할 뿐, 그 대답은 알지 못한다는 말은 완전히 옳은 말이네. 신은 나를 산파로 점지했지만, 아기를 낳지는 못하도록 한 것일세. 따라서 지혜도 없고 내가 창안한 것이라든지 내 영혼의 소산도 없지만, 나와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득을 본다네. 나의 대화 상대자들은 관계가 깊어 가는 동안에 놀랄만한 진보를 보인다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나에게서 아무 것도 배운 바가 없다는 것은 분명히 말해 줄 수 있네. 그들은 훌륭한 것들을 많이 알게 되지만, 그건 모두 그들이 낳은 것이라네......”또 다른 대화편인 에서도 소크라테스는 이런 방식의 대화법을 메논과 메논의 한 노예 소년을 데리고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철저하게 메논의 말을 논박함으로써 그가 탐구에 동참하도록 이끌고자 한다. 우선 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를 묻는 메논에게 자신은 덕이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대답함으로써 그를 놀라게 하며, 자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다고 말하고, 덕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말하도록 요청한다. 메논이 남자, 여자, 어린이, 노인 체념 상태의 무지에 있는 자가 아니라 지로 나아가는 도상에 있는 자이다.이렇게 경이 또는 당혹감, 놀라움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소크라테스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일체의 지적 활동은 ‘상식과의 투쟁’ 또는 ‘일상생활의 안정감을 상실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학문 활동은 이제까지 상식적으로 완전하고 안정되어 보이던 세계를 (혹은 자신의 세계관을) 물음을 통하여 분석의 도마에 올려놓는 행위이다. 이런 행위를 통하여 전까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던 상식의 세계는 비로소 문제화되며, 지적 긴장감이 발생한다. 하지만 테아이테토스나 메논은 결코 스스로 그런 의문의 과정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이 없었다면 애초에 그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산파의 역할은 학문적 견해에 대비되는 상식적 견해에 대해 빈틈없이 알고 있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답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하여 자신이 대답을 찾게 도와주는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철학적 물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도달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철학의 행위를 마쳤을 때, 배운 자는 답을 얻은 사람인가 아니면 문제를 가지게 된 사람인가. 이제 뤼시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에 들어가 본 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겠다.# 뤼시스힙포탈레스와 크테십포스의 초청으로 토론장에 간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뤼시스와의 대화를 즐긴다. 그는 조리 있게 뤼시스의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정교하게 질문을 던짐으로서 결국 뤼시스가 분별 있는 자(phronimoi)가 아님을 밝힌다. 가볍게 농담하듯이 던지는 질문들에서 소크라테스적인 날카로운 대화양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아무 것도 유별나게 주장하지 않았지만 사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듯이 보였고, 단지 그것을 뤼시스에게 깨닫게 해주기 위해 질문을 던져 이리저리 그를 몰고 다닌 듯이 보인다. 어쨌건 그와의 짧은 대화가 그치고, 이어 등장한 메넥세노스와 소크라테스는 친구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다. 별 생각 없이, 혹은 훌륭한 것들은 그 스스로 자족하며 완벽한 상태이며 아쉬움이 없기 때문에 또한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슷한 것끼리 어울린다는 명제는 다시 반박된다. 반대로 헤시오도스를 인용하여 등장한 다른 것끼리 서로 부족한 것을 메꾸기 위해 친해진다는 명제는 훌륭한 것이 나쁜 것과 친구가 되어야한다는 모순을 낳게 되어서 역시 기각된다. 이런 방식으로 논의는 계속 진행되고, 뤼시스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만 보인다. 이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의 중요한 한계로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는 스스로 가장 많은 말들을 하고, 또 가장 많은 명제들을 만들어낸다. 자기는 지식의 산파일 뿐이라고 얘기하면서도 그 아이를 낳는 당사자가 따라올 수 없는 단계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앞에 들었던 메논의 노예소년을 다시 예로 들자면,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기하학의 기본적인 원리 중의 하나를 가르치는데, 역시 같은 방식의 문답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리 전제되어야할 무리수의 성질에 대한 소년의 지식은 점검하지 않은 체, 그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자 문제의 본질에서 빗겨난 방식으로 질문을 쉽게 바꿔서 이해시키고 넘어간다. 이는 소크라테스 자신은 사고의 단계적인 변화전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근본적으로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매우 정교화된 방식의 대화이면서도 그 과정이 완전히 이해되지 못한다면, 이는 완전한 산파술이라고 볼 수 없으며, 이것의 중요한 결점은 혹은 논의방식에 있다고 지적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그 자신이 높은 수준의 지적 성취를 이룬 철학자인 관계로 본질적으로 상대와의 대화에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으며, 그가 행하고 있는 사고실험은 이미 상대를 만나기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된 정교한 질문들로 구성된, 하나의 논증체계이다. 결론은 상대를 ‘무지의 지’로 일깨우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함으로써 새로운 문제의식에 눈을 뜨게 한다는데 있지만, 소크라테스가 강조하는 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그는 이미 자신이 완벽
    교육학| 2003.11.17| 7페이지| 6,000원| 조회(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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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리학 - 주자의 사상
    성리학 레포트주자의 사상에 대하여- 주자의 철학주희(AD 1130-1200)는 송대의 유학자로 관료이자 지주, 철학자, 문학가, 고생물학자, 혹은 천체 물리학자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의 학문 활동을 펼치며, 공자 이래로 내려오던 유학의 전통을 이어서 당시 송대에 유행하던 이학(理學)을 집대성하였다. 아울러 공자 이래의 학술사상을 집대성하여 유학의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하였다. 2천5백년 전에 살았으며, 살아있는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공자의 사상과 저술에 대해서는 하늘이 낸 대성인이라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불과 8백년 전의 인물이며, 참고할 만한 문헌들이 많이 남아있는 주자의 경우에는 경우가 달라서, 아직까지도 수많은 논쟁의 근원지가 되고 있다. 또한 그가 이루어온 학문의 성과가 연대별로도 잘 정리되어 있어서 세밀한 논쟁과 비판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측면도 있다.그의 작업은 이전의 방대하고 뛰어난 저술들을 워낙 간명하고 자신 있게 정리하였기 때문에, 이전에 공자의 사상을 연구한 수많은 유학자들과 비교해 봐도 단연 돋보인다. 그의 정리 이후로 유학은 더욱 융성하게 되었으며, 주자와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주장들과 쟁점들은 날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분석과 천착이 심해졌다. 이는 마치 파르메니데스가 최초로 ‘being'의 개념을 강조하고, 모든 being만이 의미 있으며, non being은 존재할 수도, 생각될 수도 없다고 주장한 뒤, 이후의 모든 철학자들이 좋든 싫든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과 흡사하다. 서양 철학사에서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 동조하든 혹은 반대하든 어떤 식으로든 그의 주장을 논파하거나 정당화시키지 않고는 이후의 사상에 대해서 논하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주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간명한 대이론을 정립한 이후로 이에 대한 수많은 비판과 검토 작업들이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중국의 유학사는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한 자원들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재까지도 중국유학사를 논하였다. 주자는 사서삼경을 중심으로 모든 책들에 주석을 달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의 철학을 세워가기 시작했다.이전에도 쉬운 이해와 모순의 해결을 위해 주석을 다는 유학자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과연 그 말들이 실제와 부합하는가- 혹은 고증될 수 있는가 등의 측면을 중시하였다. 주자는 이들과 전혀 차별화된 태도로, ‘공자의 마음으로’ 생각을 해본다면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를 중시하였다. 이는 결국 공자의 마음으로 생각을 진행하는 주체, 자신의 생각이 어떤가를 밝힌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그의 평생 작업은 자신의 철학으로 이전의 경전들을 해석하고 모두 하나의 일관된 체계를 이루도록 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런 그의 학문적인 태도는 근대 이전의 학문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루어졌던 ‘권위에 의한 논증’이라는 방식으로 규정될 수 있겠다. 해석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역이용해서 고전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 주희. 이는 비단 주자 뿐 아니라 근대 이전의 권위적인 해석과 설명의 자세를 특징으로 하는 중세적인 유통이라 할 수 있다.그렇다면 이전의 여러 경전들을 통하여 주자가 이루어낸 창조적인 해석과 철학체계에 대해 알아보겠다. 그 첫 번째로 주자의 가장 중요한 이론체계 중 하나인 이기론(理氣論)에 대해 알아보고, 두 번째로 심성론(心性論)의 체계를 정리하였다.- 이기론 (理氣論)이기론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풀어보자면, 이는 우주론과 형이상학 정도에 해당하는 이론이다. 북송 이학(理學)의 네 선생 중에 두 명의 정씨 형제가 우주론과 형이상학적인 측면에서 연구한 업적이 그리 많지 않은 반면에, 나머지 둘인 주렴계와 장횡거는 이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남겼다. 주자는 이 가운데 주로 주렴계의 을 주로 삼고 횡거의 을 참고해서 그의 이기론을 확립하였다.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기(氣)는 실질적인 부분을 가르키며, 이(理)는 실질에 내재해 있는 성(性)에 해당하는 것으로 실질적인 껍데기의 안에야 한다.’ -주자어류 62‘사람이 모두 이 도리를 하나의 공허한 물건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학‘에서 궁리를 말하지 않고 다만 격물만을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사람들이 사물에 대해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주자어류 15이상에서 보듯이 주자는 이와 기를 분리하여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설명하려 한 것이 아니며, 다만 이와 사가 일체라는 것을 주장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이와 기를 분리하여 서로의 관계를 설명한 부분을 보면 더욱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주자는 물상(物上)에서 보면 이와 기가 혼재해 있어서 분간할 수가 없지만, 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비록 물체가 아직 없다 해도 이미 물의 이(理)는 존재한다고 하였다. 즉, 어떤 물건을 생산해낸다고 할 때, 물건은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그 물체의 이는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동시에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으며, 더욱이 물건이 생기고 난 후에 이가 비로소 생겨났다고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주자는 극단적으로 ‘만일 세상이 온통 없어진다 할지라도 여전히 이는 그대로 여기 있을 것이다’라고 단정하였다.이는 재미있게도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과 비슷하게 맞닿아 있다. 플라톤은 등에서 우주도 제작된 것이라는 관점을 내세우며 신 또한 제작자(demiourgos)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우주가 제작될 때의 표상은 이미 그 이전에 존재하는 이데아의 모습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 이후의 그리스 철학의 전통을 심화시키며, 감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앎의 수준이 가장 낮은 성질의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심지어 감각을 통한 것은 ‘하찮다’는 표현까지 쓰면서 이성을 통한 세계의 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였다. 파르메니데스의 being의 세계와 같이 플라톤의 idea의 세계는 오직 만이 가득하다. 관점의 차이나 어떤 감각이나 지각에 의한 차이를 허용하지 않는 극치. 그것이 바로 이데아의 개념이다. 그는 감각을 통한 앎을 불신하면서 감해서 주자(周子)의 ‘무극이 태극이다’란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주자의 이런 이기일체(理氣一體)의 우주관은 간단해 보이지만, 이학사상에서 볼 때, 이전까지의 복잡한 사상들을 완벽하게 통합하면서 간명하게 정리한 독창적인 견해였다. 예를 들어 주렴계는 주역 계사전을 바탕으로 태극과 음양에 대해서만 말했는데, 주자는 이를 간단하게 이와 기, 두 가지 개념으로 간단하게 하였다. 이는 이론의 절약성의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간명하며, 또 그 의미가 분명하고 확실해졌다. 또, 장횡거는 ‘정몽’에서 태허와 기에 대해서 말했는데, 이는 간단하게 무극이면서 태극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깊이와 확신 있는 표현이 되지 못한다. 또한 이전에 천리와 인욕을 대비하여 서술한 정명도의 이론도 있었지만, 여기서 천리(天理)는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일에 관련하여 말한 정도로, 주자가 얘기한 이기론의 이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주자는 이전의 사상들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거의 빼놓지 않으면서도 이를 간명하게 정리하였고, 또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으로 발전시키기까지 한 작업을 완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이기론에 이어 두 번째로 심성론에 대하여 논의를 이어가겠다.- 심성론(心性論)심성에서 심은 마음을 뜻하는 말이며 성은 그 성질, 성격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의 이기론과 이어서 설명을 해보자면, 성은 이에 속하고 심은 기에 속한다. 주자는 특히 정이천이 ‘성은 바로 이다’라고 한 말을 크게 칭찬하며 좋아했는데, 실제로 이천은 주자가 나중에 응용한 것과는 약간 다른 뜻으로 이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은 이인 것이니 이른바 이성(理性)이라고 하는 것이다. 천하의 이가 그 비롯된 바에서는 선하지 않음이 없다.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기 전에야 어찌 선하지 않겠는가’ 라고 하였는데, 이는 맹자의 성선(性善)의 뜻을 밝히면서 다만 인생계에 한정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자는 이를 우주 전체로 확대하면서 우주계에 통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성은 단지 이일 부착되는 이와 성이 결코 허한 것이 아니라고 규정하였기 때문에, 일단 만물의 허(虛)함과 공(空)함을 강조하는 불교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그럼 주자가 강조하였던, 또 허하지 않고 실(實)하다고 믿었던 마음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주자는 이와 기 중에서는 이를 중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인간계의 차원에서는 성보다도 오히려 심(心)을 중시했던 것 같다. 이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우주의 참된 이치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스로의 마음을 이용해서 깨달아야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기본적으로 기의 영(靈)인데, 오직 인간만이 이 마음을 가지고 이(理)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하지만 아무런 과정도 거치지 않고 심이 이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은 하나의 지각능력일 뿐이다. 모름지기 심이 지각하는 바가 모두 이가 되고, 심이 온통 이로 가득차기를 기다려야 비로소 심즉리(心卽理)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맹자는 일찍이 마음에 대하여 ‘심은 사람의 신명(神明)이니 뭇 이를 갖추어 만사에 대응한다’고 하였다. 사람은 심을 갖추었으므로 신명도 갖추었으며, 성인의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심의 본체를 온전히 하고 심의 운용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모름지기 성인이 되기 위해 이학가가 해야되는 공부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을 닦는 것이다. 하지만 심즉리설(心卽理說)을 가장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불교의 논리이다. 주자는 불교의 심즉리를 비판하며 선종의 도가 천리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결국 심을 닦음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심을 주재로 인정하여, 마치 마음이 전부인 것처럼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여기서 주자는 특유의 이약기강설(理弱氣强說)을 펼치며 마음이 비록 이를 받아들일 수 있고, 깨달을 수는 있지만 마음이 곧 이는 아니라고 하였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는 하나의 주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소극적인 주재로서 기의 활동이 이의 영역에 침범하지 못하는 정도로 주재할 뿐 어떤 활동이 일어나도록 하는 능동성은 띠지 못한다. 따라서 현실
    인문/어학| 2003.11.17| 9페이지| 5,000원| 조회(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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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현대예술과 연극
    현대예술의 이해현대 예술과 연극연극은 공연 예술이며, 종합 예술이다. 연극은 삶을 모방하여 재현하며 제시한다. 따라서 현장성, 즉각성, 즉시성 (지금 여기- Here and Now)을 띠며, 일회성의 예술 (순간의 예술)이자 종합 예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연극의 내용과 양식을 크게 나눠보자면, 현실을 모방하는 정도와 방법에 따라 ‘사실주의’와 ‘반 사실주의'로 나뉠 수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분류가 가능한데,1) 시대별: 고대극, 중세극, 근대극, 현대극2) 표현 수단: 대사극, 무언극, 무용극, 음악극, 인형극3) 극적 분위기: 비극, 희극, 해결극, 소극, 멜로드라마4) 문학 형태: 운문극, 산문극5) 표현 방법: 사실극, 시극, 표현주의연극, 상징주의연극, image극6) 목적: 정치극, 종교극, 교육극, 오락극, 축제극, 위문극, 공공극..우리는 발표에서, 시대 순서로 시대 배경과 연극의 변모 과정을 고찰하고, 현대 연극은 어떤 배경에서 어떤 모습을 취하게 되는지를 ‘9. 현대연극’에 이르러 살펴보고자 한다.1. 그리스-로마 시대@ 그리스 :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중 아테네는 가장 지적이고 예술적인 중심부였다. 동시대의 정치와 예술 사상들이 연극의 융성을 도왔듯이, 연극은 아테네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아테네의 문화와 연극의 밀접한 관계는 연극 공연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리스의 극장은 우수한 시민들을 수상하는 장소이면서, 덕망 있는 외국 내빈들이나, 아테네의 부유층들이 즐기는 곳이었다5세기 경 그리스의 극장 구조를 보면, 원형으로 이뤄진 공연 구역인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관람석이 둘러져 있어 원형에 가까운 극장 형태를 보인다. 그리스는 구릉이 많아서 그런 지형 조건에 맞춰 언덕 변에 극장들이 설치되었다. 보통 15,000명에서 17,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던 계단식 객석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대를 내려다보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객석 구조는 아테네 시민들의 사고방식을 잘 보히 야외무대 스타일을 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무대 구조가 대부분이었다.4. 엘리자베스 시대엘리자베스 시대는 영국의 르네상스로, 국가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특히 스페인과의 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력을 과시하게 된다. 중세 연극의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던 연극계에서도 셰익스피어 같은 위대한 극작가가 등장을 하고, 연극 무대 발전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특수한 극장들이 소개되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여관의 마당이나 거리의 임시 무대에서 공연되던 극들은 지구 극장과 백조극장 같은 반-옥외 극장으로 옮겨졌다. 르네상스의 영향이 늦게 전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로나 셰익스피어, 존슨과 같은 극작가들에 의해 연극상연은 매우 활발하였고 인기가 높았다.이들 중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때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그의 비극은 로마의 작가 세네카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자주 등장하는 음모와 복수라든가, 무대 위에서 폭력, 유령 (햄릿의 부왕 유령), 정신이상 행동, 잦은 광기와 독백 등은 다분히 세네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이 시대의 무대는 매우 가변적이며, 햄릿의 경우에서처럼 무대 위에서 대칭-비대칭, 혹은 불균형 등의 효과들이 자유롭게 구현되었다. 무대 자체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도록 극히 단순한 돌출 무대와 고정된 뒤 배경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무대에서는 최소한의 무대 장치만이 요구되었는데, 바위, 나무, 가구 정도만 있었다. 또 공연이 대부분 낮 시간이므로 조명이 필요치 않았지만 극중에서 밤을 표현하기 위해 장작불, 촛불, 등잔불 등이 사용되었다.한편, 후기에 이르면 ‘프로시니엄 아치’와 같은 이탈리아의 무대양식이 영국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엘리자베스 무대에서 주요 장면이 펼쳐지는 중앙 누각의 발전은 이탈리아의 테아뜨로 올림피코의 대형 중앙 문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배우들이 프로시니엄 아치 안쪽에서 연기하기 시작하면서 스타일에서 과장도 적어지고 행동이 자연스러워졌다. 사람의 손으로 이 장치를 움직일 수 있었다. 객석은 직사각형 모양이며 말굽모양의 박스 줄을 구성하였다. 이런 구조에서는 관람석 앞쪽 중간만이 무대를 보는데 적합했다. 객석에는 좌석이 없었으며, 관객들은 서있는 상태로 보았다. 무대 밑의 넓은 공간에는 장치전환을 위한 기계들이 설치되었다.조명은 천장에 매달린 촛불을 사용했다. 가끔 풋라이트가 사용되기도 했는데 촛불에 반사경을 달아 만든 이 장치는 무대 앞쪽 가장자리에 설치되었다. 무대 양쪽의 날개들은 바닥의 틈을 통해 캐리오트라는 장치에 연결해서 움직였다. 무대장치는 채색된 캔버스 판으로 구성되었으며, 자연풍경이나 건물들이 그려졌다. 무대 뒷면은 길이가 큰 배경 판과, 중앙에 위치한 닫개가 있었다. 따라서 무대가 매번 바뀔 때마다, 다음 장면을 위해 날개와 닫개, 하늘 채색의 배경 판들은 뒤쪽으로 물러나야만 했다.17세기 후반이 되면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의 영향이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방탕하고 자유분방했던 로코코의 반동으로 신고전주의가 주류를 차지했다. 신고전주의는 엘런 포의 말대로 ‘영광은 그리스의 것이요, 위대함은 로마의 것이다’를 실천하기 위한 사조이다. 따라서 역사적인 소재들을 많이 취해서 무대화하였다. 대표적으로 꼬르네이유의 와 라신의 그리고 몰리에르의 작품 등이 있다.신고전주의는 시간, 공간, 행위의 삼일치를 주장했다. 신고전주의적인 일반성과 보편성에 따라 무대장치는 특수화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여러 작품에 사용되었다. 막은 시작과 함께 열리고, 극중에 닫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장면 전환은 관객의 눈앞에서 이뤄졌다. 소품은 하인에 의해 옮겨지거나, 닫개 뒤편에서 미리 이뤄진 다음, 닫개가 다음 장면을 위해 열릴 때 나오기도 했다.7. 낭만주의18세기가 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의 물결이 높아졌다. 섬유산업이 퇴조하고 제조업과 무역업이 발달하였다. 무역이 성장하면서 중산층 자본가 계급이 넓어지고, 정치적 세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또한 계몽주의가 확산되면서 중산층의 지식 욕구를 부추기고 있었다작품을 장기적으로 공연했으며, 관객들의 취향과 복잡해져 가는 무대를 책임질 연출가의 역할이 필요해지고 있었다.극장 건물도 대형화 되어갔지만 기본적인 무대와 객석의 구조는 여전히 전 시대의 유형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변화가 있다면 영국에서는 돌출무대(에이프런)이 관객을 더 많이 수용하기 위해 줄어들었으며, 오케스트라 석이 설치된 점이었다. 관람석에 고정적인 의자들이 설치되었으며, 넓어진 갤러리는 극장 뒤편에 여러 층으로 구분되었다. 발코니는 일반적으로 말발굽 모양이나 U자형이 되었다. 무대 기술 또한 계속 발전해 어떤 종류의 연극이든지 환상극적인(illusionistic) 방식을 선호하였으며 장면 전환에서도 고도의 기술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장면들이 견고한 3차원의 구조로 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전기의 발명 때문이었다. 전기가 발명되면서 극장의 조명기법은 급속히 발전하여 20세기 연극에 혁신적인 영향을 주었다.조명의 밝기 조절이 가능해지면서 몰래 훔쳐보는 연극(Peep show)라는 형태의 연극이 완성되었다. 배우들은 누군가 들여다본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빛 속에 갇혀서 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실제와 같은 무대장치 틀 속에서 배우들은 관객을 향하던 종래의 틀을 벗어버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대사를 하기 시작했다.19세기 말이 되면서 진짜 가구, 창과 문들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 환상과 거리감을 나타내기 위해 무대 바닥이 대부분 경사졌던 낭만주의 초기 무대는 3면이 벽으로 된 상자형 무대 (박스 세트)로 변화를 보였으며 이때부터 바닥은 평평해지기 시작했다. 상자 무대가 탄생하면서 연극에서 사실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환상을 지속시키기 위해 장면 전환을 할 때 막이 내려졌다. 19세기 연극은 위대한 속임수의 시대였다. 19세기 연극의 주요한 3가지 형태는 낭만주의, 멜로드라마, 잘 만들어진 극(well-made play) 이었다.@ 멜로드라마멜로드라마는 노래극 혹은 음악극을 의미하였다. 멜로드라마의 특색은 서스펜스와 공포감 그리고 염원과 같은 플롯의 구조와 원칙은 오랜 세월 동안 극작가들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졌다. 즉, 이런 연극적 관습은 극작가가 사건의 장면이나 상황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행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게 된다.작품 속에는 극적 행위가 존재하도록 도와주는 어떤 논리적인 원인과 진행 그리고 결과가 있게 된다. 연극 작품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제약된 시간 내에서 이뤄지는 예술이다. 따라서 연극 작품은 제한된 조건하에서 극적 사건들이 진행되고 해결되어야 한다. 프레이타그의 에서 소개되고 있는 희곡의 다섯 가지 요소 -도입부, 발단, 위기, 절정, 해결 -을 중심으로 희곡의 구조를 살펴보자.(1) 도입부 : 극의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사건이 벌어질 장소와 시간 그리고 등장인물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 도입부는 관객들에게 작품의 이해를 얼마나 잘 도와줄 수 있는지에 따라 성패가 달린다. 전개될 사건의 배경이나 인물의 성격 등을 제대로 암시하지 못하거나, 혹은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는 경우, 관객들은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도입부는 마치 사람의 첫인상과도 같아서 제대로 자기 소개를 못하거나 인상이 좋지 못하면,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는 것과 유사하다. 의 처음, 이아고와 로드리고의 대화에서 이아고는 오델로에게 불만을 갖고 있음을 털어놓으며 어떤 사건을 일으킬 것임을 알려 준다. 그리고 이 짧은 부분에서 오델로와 데스데모나가 부러벤쇼 몰래 결혼을 한 것을 알게 되고, 게다가 이아고를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들의 성격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2) 발단 : 극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앞 단계. 극의 전개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부분으로 사건의 방향이 결정된다. 이때, 발생되는 사건이나 인물들의 행동은 자연스러워야 하며, 특히 논리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부러벤쇼가 오델로를 이끌고 원로원 회의에 참석하여 오델로를 고발하는 장면은 의 발단이 시작되는 부분이다.(3) 위기 : 발단을 겪으면서 사건의 분위기가
    인문/어학| 2003.11.17| 12페이지| 5,000원| 조회(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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