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1. 프롤로그2.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생3. 비운의 천재여성 과학자...DNA 패턴을 발견하다4. 서평1. 프롤로그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그 왕성한 지적 호기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끝없이 지식을 추구하는 행위가 과학이다. 그 중에서도 20세기 들어 급격히 발전한 과학은 다시 한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젖히려 하고 있다. 이 상자에는 생명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다. 지금 인류는 조물주가 창조한 거대한 생명의 설계도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DNA에 대한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고 과언이 아닐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바꿔어 놓을 것이라는 희망에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반대론자들을 게의치 않고 끊임 없이 발전되어 가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은 2차대전후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당시 핵폭탄 개발 계획이었던 맨허턴 프로젝트를 정점으로 양자물리학의 발전은 극에 달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후 많은 입자물리학자들이 생물학으로 관심을 옮기게 되며 많은 입자물리학자들은 입자라는 새로운 무기로 생물학에 접근하여 특히 유전물질의 대명사인 DNA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전쟁후 생물학의 관심은 생명의 과학으로 전환하게 되며 이 책은 그 과정에서 빚을 보지 못한 비운의 여성과학자 로잘린드을 만날 수 있다. 과학자로서 천재적 자질과 열정을 가지고 이중나선 발견의 숨 가쁜 과학사를 만들어간 여성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전기이다.2.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생로잘린드 프랭클린은 1920년 영국 런던 유태인가정에서 태어났다. 귀족이었다던가 엄청난 부를 가진 그런 가문은 아니었지만 친척들이 상당한 고위층에 있었으니 꽤 이름있는 집안으로 알려진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아버지밑에서 로잘린드는 유복하게 자랐으며 다양한 문화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로잘린드의 과학적 능력은 어렸을 때 그녀의 고모가 쓴 편지에 잘 나타나있다. 로잘린드의 고모인 메이미는 로잘린드의 산수실력이 너무 정확하고 놀라워서 걱정스럽다고 편지에 썼다. 남성중심의 영국사회에서 로잘린드가폴여학교는 특유의 독립심과 과학적 능력의 기초를 다지며 줄곧 장학금을 받았고 특히 수학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였다. 그녀는 1938년 케임브리지 대학 물리학과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였으나 여학생이 남학생의 10%가 넘지 않는 등의 남여에 대한 성차별이 심한 당시엔 졸업을 한다고 해도 여성은 학위를 받을 수 없었으며 특히 로잘린드가 입학한 케임브리지 대학은 여학생들을 학부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커턴칼리지와 뉴넘칼리지의 학생’으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서도 로잘린드는 화학, 물리학, 수학을 열심히 했고 대부분 그녀의 성적은 최고 수준이었다.로잘린드는 유럽에서 준동하던 히틀러의 파시즘에 대한 비판과 여자로서 과학자의 길을 선택한 스스로에 대한 다짐 그리고 자신의 딸이 평범하길 바라는 아버지와의 갈등 등으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과학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그녀는 과학자로 가져야 할 충분한 능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아마 그녀가 평생 보여준 다양한 모습들은 케임브리지 대학시절에 형성되었을 것이다.평생 동안 로잘린드는 그녀의 스트레스를 여행을 통해서 풀었다. 언 듯 생각하기에 결정물리학이라는 전공에서 보듯이 로잘린드의 성격이 과학자가 갖추어야할 객관성과 엄밀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쉬운 결정을 할지 모르지만 실제 로잘린드는 과학자의 능력도 충분히 있었지만 문학과 미술 그리고 철학,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물론 아버지와 집안의 가풍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영국 상류층 사람들의 경향이라 일소할 수 있지만 그녀의 보이지 않는 약간은 낭만적인 이러한 성격은 영국과학계의 주류를 이루던 당시의 남성과학자들과 타협하기 어려운 장애가 된 적이 많다. 그녀는 그녀의 동료 학자들을 따분하게 생각했으며 동료들은 로잘린드를 잘난체하고 접근하기 힘든 여자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런 로잘린드에게 휴가 때 떠나는 여행 특히 등산은 그녀의 삶의 활력소였다. 그녀는 여러 산을 등반했으며 도보여행도 상당히 많이 했다. 특히 여행 중에여행경험에서 우호적인 느낌과 또한 영국과는 다른 자유로운 토론이 있고 그런 분위기가 넘쳐나는 곳이기에 파리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프랑스에서 로잘린드는 많은 여행을 통해 그녀만의 세상을 넓혀 갔으며 패션을 최첨단을 달리는 그곳에서 자신의 패션감각을 키웠다. 또한 다양한 프랑스 요리를 배웠으며 자신의 동료 메링를 사랑했지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그녀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미국을 오가며 연구에 박차를 가할 무렵 두개의 종양으로 인해 자궁적출 수술을 받고 예전보다 더 연구에 혼신을 다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정신과 상관없이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갔다. 그녀는 반나절밖에 일할 수 없게 되었을때도 죽음에 직면했다는걸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치료를 받는 시간을 제외하면 연구와 학회 참석 등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반듯한 자세로 임했다. 1958년이 되었을 때 프랭클린는 암세포가 전이되어 화학요법에 방사능 요법등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거의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렸으나, 그해 3월 말 그녀는 마침내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4월 16일 마침내 생을 마감하게 된다.그녀가 죽은 후 와 에서는 바이러스 구조 연구에 대한 학계의 폭넓은 인정을 시인하고 바이러스 병과 유전학에 관련된 핵단백질 구조를 밝힌 진정한 선구자중 한사람이라는 말로 애도했다3. 비운의 천재여성 과학자...DNA 패턴을 발견하다그녀가 남긴 DNA의 나선구조 만큼 그녀의 이야기에서 빠질수 없는 것이 있다. 크릭, 왓슨, 윌킨스 세 인물이다. 그들이 아니였다면 그녀 앞엔 비운의... 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DNA연구에 심혈을 기울였을때는 모리스 윌킨스가 있었던 영국의 킹스칼리지에서 였다. 로잘린드는 이곳에서 X선 사진을 찍고 해독하는 연구를 수행하게 되는데 그녀는 당시 박사과정으로 있었던 고즐링과 팀워크를 맞추어 핵산에 X선을 주사하여 시료의 DNA섬유에서 결정구조 사진을 얻는 실험을 했다. 이 X선 실험장치는 처음부터 로잘린드가 주문과 제작에 모두 참여 X선 사진을 이용하여 석탄과 탄소체에 있어서 학계에 유명세를 치렀으며 당시 그 누구보다 X,선 사진을 선명하게 잘 찍을 수 있고 판독할 수 있었다. 당시 생물학부분에서는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에이버리의 발견이 있은 후 DNA 구조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킹스칼리지의 생물물리학 연구소, 케임브리지의 캐번디시 연구소 두 곳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킹스칼리지 즉 로잘린드가 있던 연구소에서는 윌킨스라는 과학자가 그리고 캐번디시에서는 크릭이 DNA연구의 중심에 있었다. 윌킨스의 연구는 로잘린드의 X선 사진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윌킨스와 로잘린드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윌킨스와의 불화로 로잘린드는 그와 대화조차도 꺼리게 되고 연구소장 랜들은 이들의 연구수행과제를 따로 정해줌으로써 불완전한 타협에 이르게 된다. 이시기에 로잘린드는 물을 머금은 DNA B형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X선 사진을 찍는데 성공하고 DNA를 이루는 인산이 DNA의 바깥쪽을 향해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물을 많이 머금은 B형 DNA의 염기가 나선형이라는 사실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물기가 전혀 없는 A형 DNA에서는 확실한 나선형의 X선 사진을 얻지 못하고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는 DNA가 이중나선형 구조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윌킨스와 대립한다. DNA 자체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던 크릭은 단지 유전자가 어떻게 복제되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윌킨스로부터 DNA의 나선구조 가능성에 대한 킹스칼리지의 연구 상황을 들었다. 이후 왓슨과 크릭은 영국으로 날아가 프랭클린의 강연을 들을 기회를 얻었고, 이에 영감을 받아 DNA 모델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한다. 당시 라이너스 폴링은 단백질의 나선구조를 밝힌 바 있는데, 그는 이를 3차원 모델로 만들어 보였다. 왓슨과 크릭은 이를 흉내내려 했던 것이다. 프랭클린도 윌킨스로부터 같은 제안을 받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확증 없이 추론만 가지고 모델을 만들 수는 없다는의 모델이 가진 허점과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해냈다.1952년 프랭클린은 나선구조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X선 사진을 찍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는 확증이 필요했다. 사진 한 장만으로는 증명하기엔 부족했기 때문에 사진은 잠시 치워져 있었다. 그러던 중 프랭클린은 저명한 물리학자 버널이 있는 버크벡칼리지로 옮기기로 결심한다. 킹스칼리지의 생활이 그녀에겐 그리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프랭클린의 연구 동료이자 그녀로부터 박사 논문 과정을 받고 있던 고즐링은 공중에 붕 뜬 상태처럼 입장이 난처해졌다. 그래서 그는 윌킨스에게 8개월 전에 찍은 X선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윌킨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진을 케임브리지의 왓슨에게 보여주었다. 이때 유명한 51번 사진을 입수하게 되는데 그는 이 사진을 통해 자신이 꾸준히 주장하던 나선구조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이것은 왓슨과 크릭이 같은 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캐번디시가 DNA 연구를 포기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다시 DNA 연구에 돌입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왓슨은 DNA 구조를 여는데 필요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숙지하고 있었고 그 마지막 정보로서 로잘린드의 사진과 그녀의 연구결과는 그가 DNA의 자물쇠를 여는데 성공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던 것 같다. 이중나선 모양을 하고 있는 DNA의 구조적인 설명과 더불어 DNA가 어떻게 복제되어 유전정보를 후대에 전달하는 지까지 완벽한 설명이 가능해진것이다. 그녀의 비극은 여기에서 비롯된다.그들은 급히 네이쳐지에 그들의 연구결과를 보냈으며 중요한 것은 그 논문에 로잘린드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킹스칼리지의 랜들도 윌킨스도 크릭도 그리고 그 논문에 관련된 어떤 과학자도 로잘린드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중나선' 모델을 제안한 이들의 논문이 900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논문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데 남들이 발표하기 전 서둘러 발표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1962년에 그녀가 죽은지 4년이 지난 그 해 이들 세 사람은 40억년 동안 침묵하고했다.
“나는 물리학을 가지고 놀았다”목 차1. 서론2.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누구인가.1) 리처드 파인만이 일궈놓은 물리학은 무엇인가2) 디처드 파인만이 천재 물리학자가 되기까지3. 나는 물리학을 가지고 놀았다-감상평참고서적나는 물리학을 가지고 놀았다 - 사이언스 북스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1,2 - 사이언스 북스미스터 파인만! -사이언스 북스1. 서론이 책은 천재 물리학자 파인만의 삶을 통해 그가 태어나서 이룩해 놓은 20세기 물리학의 역사적인 발전에 관한 사실을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그의 학문과 업적, 삶과 과학을 동시에 소개함으로써, 왜 파인만이 아인슈타인이나 뉴튼, 다윈 등 다른 위대한 과학자들처럼 그들의 이론으로 기억되는 것에 비해 파인만은 자신의 이름으로 기억되는지 충분히 납득이 갈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학이라는 지루하고 따분하게만 느껴지는 학문이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는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는 학문에만 매달려 항상 연구만 한다라는 식의 편견을 깨버리고 인간적이며 사람을 사랑했던 한 물리학자가 어떻게 천재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는 것을 이 한권위 책에 담았다 할 수 있겠다.이에 본문에는 그가 물리학에서 이루어 놓은 업적과 그가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게만든 자라온 생애를 돌아보며 결론적으로 책의 감상과 나의 견해를 적어보고자 한다.2.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누구인가.1) 리처드 파인만이 일궈놓은 물리학은 무엇인가파인만은 노벨상 물리학자로 그가 남긴 유머가 넘치는 자전적 베스트셀러 『파인만씨, 농담하는거죠』로 일반 독자들에게도 알려졌다. 2차대전 중에는 원자폭탄 개발 계획에 참여했으고, 1965년 양자전기역학 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빛과 전자의 상호작용을 도식화 하는 파인만 다이아그램의 창안자로, 1961년부터 1963년까지 학부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책으로 엮은 "파인만 물리학 강의"는 그를 전설적인 인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그 또한 물리학에 대한 가장 중요한 내 공헌은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일 것 이라고 말한다.그 책은 애초에 대학 차원의 교재로 만들어졌지만 독창성 때문에 기초 물리학의 모범적 저술이 되었다. 독자를 위한 여섯 차례의 강의는 1965년 『물리 법칙의 특성』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파인만 강의 스타일 특유의 느낌을 담은 그 책은 중력, 과학과 수학의 관계, 에너지 보존 법칙, 대칭 법칙, 엔트로피 개념 등에 관한 기초적인 입문서가 되었다.1986년에는 병든 몸임에도 불구하고 연방 정부의 위원회에 참여하여로저스 위원회에 참가하여 우주선 챌린저 호의 이륙시 폭발을 조사하는 정부측 심사원으로 임명되어, 파인만이 폭발의 주요 원인이 고무 덮개가 찬 기온으로 굳어진 데 있음을 알아내어 대중 매체의 머리 기사를 장식하게 되었다. 파인만은 챌린저호의 재앙으로 미 항공 우주국 과학자와 기술자에게 가해진 관료적 억압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는 로저스 위원회에서의 활동을 자세하게 그린 『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든 왜 걱정하는가? 』를 1988년에 출판했다.이렇게 많은 책을 저술한 천재 물리학자이면서도 그는 그이 업적에 못지 않은 많은 일화를 남긴다. 어릴적 리처드 파인만은 라디오를 수리하고 타자기를 고치며 온갖 종류의 퍼즐을 푸는 데 명수였다.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퍼즐은 내게 이르게 되어 있다. 나는 사람들이 발명해 낸 모든 빌어먹을 수수께끼들을 알고 있었다." 수학과 과학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파인만은 다른 과목은 몹시 싫어해서 다른 물리학자들처럼 폭넓게 독서하거나 교양을 많이 쌓지도 않았지만, 여동생이 파인만에게 '하늘은 내가 연구할테니 오빠는 절대 연구하면 안돼' 라는 말을 한 후로 파인만은 정말 천문에 대한 연구를 여동생의 허락없이는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천문에 대한 연구를 할 때에도 , 파인만은 '여동생에게 하늘을 연구한다는 허락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의 심성을 충분히 알만한 일화이다.파인만은 그가 만들어 낸 Q.E.D.(양자전기역학)로 같은 시기에 비슷한 방법으로 양자 전기 역학을 재정식화한 줄리언 슈윙거와 도모나가 신이치로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양자 전기 역학을 수정한 것은 전후 물리학의 주요 사건이다. 전자가 전자기장 안에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양자 역학의 용어로 그것을 설명하려면 기본적으로 무한수의 양성자의 방출과 흡수에 말려들게 된다. 볼프강 파울리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숱한 시도를 거듭했지만 계산은 계속 불가능한 해를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근거가 된 이론은 공격할 수가 없었다.파인만의 독특한 접근법은 일련의 다이어그램을 써서 전자와 광양자, 전자가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광양자를 추적할 수 있었다. 이들은 양자 전기 역학이 기술하는 기본 운동들이다. 파인만 다이어그램은 추상적 계산을 구체화함으로써 숫자들을 '되틀맞춤'하고 필요 없는 무한대를 제거할 수 있었다. 이 '경로 적분' 방법의 결과로 양자 전기 역학은 완전히 새로 태어났으며, 오늘날에는 10?9까지 놀라운 정확도를 가지고 계산할 수 있다. 파인만의 방법은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이었으며 그의 다이어그램은 소립자와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광범하게 이용되었다. 20대에 양자 전기역학을 정립한 그의 열정과 천재성은 나이 든 후에도 결코 시들지 않았다. 그 후에도 초유체에 대한 이론, 원자 핵에서 작용하는 약한 상호작용에 대한 이론을 개발했고, 1960년 대에는 양자색역학을 정립하는 데에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양자역학이 형성된 직후 물리학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갔다. 1932년을 경계로 원자핵의 영역이 개발되어 원자의 영역과는 또 다른 원자핵, 소립자의 세계가 열렸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고전압(高電壓)?고진공(高眞空)의 실현에서부터 고에너지 영역으로 파고들어, 양전자?중성자의 발견, 원자핵의 인공변환, 인공방사능, 핵반응?핵분열 등으로 그 진보는 괄목할 만했다.초저온 상태에서 중력을 무시하는 액체 헬륨의 이상한 성질을 설명하는 이론도 그의 업적이다. 또한 '초유동'을 설명하면서 초전도와 관련된 현상을 거의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초전도는 1957년 존 바딘과 리언 쿠퍼, 존 슈리퍼에 의해 밝혀졌다. 파인만은 베타붕괴, 즉 방사성 원소의 점차적인 해체로 증명된 '약력'의 움직임에 관한 이론도 발전시켰다. 그는 60세가 될 때가지 물리학의 최첨단에 서 있었다.2) 디처드 파인만이 천재 물리학자가 되기까지서론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책에서 파인만의 자서전적인면 또한 부각되어진다. 그가 어려서부터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데에는 무엇보다 아버지인 멜빌 파인만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아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과학적으로’생각하도록 아들을 가르쳤다. 그가 유아용 식탁 의자에 앉던 시절부터, 아버지는 타일을 어떤 순서로든 일렬로 늘어세우는 놀이를 했고, 그런 다음에는 이것을 도미노처럼 넘어뜨리다가 패턴을 만드는 일로 넘어갔다. 어린 파인만은 놀이를 아주 잘하게 되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파인만에게 패턴에 대해 그리고 기초적인 수학적 관계를 생각하도록 의도적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그는 확실한 방식으로 과학에 대한 흥미를 아들에게 심어주기위해 많은 책을 샀고,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도 데리고 갔다. 또 따분한 자료와 정보조차 살아 움직이는 상상력으로 설명해서, 리처드를 마법적이고 신비로운 과학의 세계로 끌여들였다. 이같은 아버지의 교육 때문에 리처드는 아주 어릴 적부터 무엇인가의 이름을 아는 것과 그것에 대해서 뭔가를 아는 것은 다르다는 점을 알았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과학자가 되는데 가장 필요한 자질을 어려서부터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처드가 과학자가 되는데 아버지 멜빌이 기여했다면, 어머니 루실도 유머감각과 따뜻함을 심어준다. 아버지의 영향만큼 어머니가 없었다면 리처드 파인만은 관습적이고 메마른 평범한 학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금고를 열고 봉고를 두드리는 전설적인 과학자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진지한 과학과, 재미를 즐기는 감각과,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성취는 웃음과 인간적 공감”이라는 건전한 견해가 절묘하게 섞였기 때문에 파인만이 그렇게 특별해진 것이었다. 현재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파인만을 남긴 것은 그의 아버지인 멜빌과 어머니인 루실의 영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혹 어머니의 다뜻함이 그로 하여금 심한 결핵을 앓고 있는 여인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결혼을 감행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런 그에게 있어서 세 번의 결혼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진화론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학적 입장진화론자들에 따르면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하는 최초의 혈통을 라마피테쿠스라고 설명한다.인류와 비슷한 특징을 가진 첫 유인원이라는 것이다.유인원이란 원숭이로부터 현대인까지의 모든 형태들을 일컫는다.인간을 향해 진화하는 유인원과 진화 하지 않고 그대로 원숭이 계열로 나눠지는 분기점이 바로 라마티테쿠스라는 것이다.이 화석은 1천2백만년 전의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러나 라마피테쿠스는 인류의 조상이라고 처음 주장 했던 미국인 필빔에 의해『인류의 조상이 아니다』고 번복됐다.필빔은 1976년 파키스탄에서 발굴한 많은 화석으로 턱뼈와 이빨을 조립해 본 결과 『턱뼈와 이빨을 그럭 저럭 연결한 것』이라고 고백한 뒤 자신의 학설을 뒤집었다.라마피테쿠스는 그 후 장구한 세월과 함께 진화해 3백만∼4백만년 전에 와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됐다.오스트랄로란 남쪽의,피테쿠스는 원인이란 뜻으로 「남쪽에서 온 원인」이란 의미다.이것이 90만년 전에는 호모하빌리스로,60만년 전에는 호모에렉투스로,30만년 전에서 7만5천년까지는 네안데르탈인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다시 1만∼3만 년 전까지 네안데르탈인은 크로마뇽인으로 진화했으며 최종적으로 현대인이 출현했다는 것이다.따라서 인간은 라마피테쿠스라는 유인원에서 진화했으며 가장 가까운 조상은 크로마뇽인이라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주장이다.진화론자들은 이같이 라마피테쿠스에서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의 진화과정을 설명할 때 △치아의 배열형태 △두개골의 용적 △안면 경사각등을 중요한 해석기준으로 삼는다.치아의 배열형태의 경우 원숭이는 말굽형 (U자형) 인데 비해 사람은 포물선형이므로 치아가 말굽에 가까우면 덜 진화한 것이고 포물선에 가까우면 사람에 가깝다는 주장이다.또한 눈두덩이의 두께도 진화의 기준으로 삼곤 한다.원숭이에 가까울 수록 눈두덩이가 두툼하고 사람에 가까울수록 눈두덩이 얇다는 주장이다.그러나 이같은 진화기준의 접근방법에는 많은 오류가 있다는 것이 창조과학자 들의 주장이다.김종배 교수(한동대 생물공학과)는『화석이 발굴될 때 치아의 형태가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지 않으면 그 형태로 진화를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대부분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발굴되기 때문에 이들을 재구성할 때 선입견을 갖거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리지 않으면 결코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또 이양림 교수 (이화여대 생물학과)도『눈두덩이가 두꺼울수록 덜 진화됐다는 해석은 일반적으로 흑인에 비해 눈두덩이가 얇은 백인들의 편견에서 나온 것』이라며 눈두덩 역시 진화의 척도가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특히『사람과 원숭이의 가장 큰 차이점인 직립보행에 대한 화석은 지금까지 발굴 되지 않고 있다』 면서『사람과 원숭이의 중간 형태인 화석 즉「빠진 고리」가 발견되지 않는 것은 진화를 부정하는 단적인 예』라고 창조과학자들은 강조한다.이와 함께 호모에렉투스인 자바원인의 경우 발견자인 듀보이스에의해 주장이 철회됐다.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을 때 네덜란드 의사였던 듀보이스가 1890∼1892년 자바섬에서 조그만한 뼈조각등을 발견,호모하빌리스보다 한 단계 진화한 자바원인이라고 발표했다 30년이 지난 1923년 비로소 『자바인은 단지 커다란 긴팔원숭이에 불과했다』고 선언,진화론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또 사냥을 하고 불을 사용했으며 장식품을 시체와 함께 부장하는 관습도 가지고 있다는 네안데르탈인을 목척추가 굽은 유사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론 또한 허무맹랑한 주장이라는 것이다.윤여표 교수(충북대 약학과)는 『네안데르탈인의 목척추가 굽은 것은 비타민D의 결핍으로 생긴 일종의 곱추병때문』이라며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용적이 현대인의 것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현생인류의 한 종족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밝혔다.따라서 창조과학자들은 『진화론만큼 인간의 편견과 거짓이 포함된 분야도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호모에렉투스에 속하는 하이델베르그인은 인간의 턱뼈를 가지고 조립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1927년에 발견된 네브라스카인은 멸종된 맷돼지의 치아로 조립된 허구인간임이 밝혀졌다』며 진화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조작된 것이며 허구인가를 설명하고 있다.사회학적 입장또한 진화론의 입장에서는 사회가 일정한 방향으로 진보 또는 발전해 가는 것이며, 사회 변동은 환경에의 적응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다윈(Darwin, C.)의 '종의 기원'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18,9세기의 초기 진화론자들은 생물의 진화 과정을 인간 사회의 변동에 적용시켜, 사회도 단순한 상태에서 복잡하고 분화된 상태로 변동한다고 보았으며, 그러한 사회의 변동을 '진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원시 사회는 초기 진화 단계의 사회이며, 현대 서구 사회는 매우 발전된 단계의 사회로 인정된다.이렇게 진화론은, 현재의 사회는 과거의 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 또는 발전된 사회라고 전제한다. 사회는 야만, 미개, 문명의 단계를 거치면서 진보한다는 이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호 주 제 폐 지서 론1. 호주제도란? ---------------------------- 41-1. 호주제의 개념 --------------------------- 41-2. 호주제를 폐지해야 한다.--41-3. 호주제 폐지 안건의 진행정도 --------------4본 론1. 호주제가 논란이 된 이유 --------------------- 52. 호주제도 폐지론 ------------------------ 52-1. 호주제의 문제점과 문제가 되는 관련법규------------ --62-1-1. 호주제의 문제점 -------------------------- 62-1-2. 문제가 되는 호주제 관련법규 ---------------- 72-2. 세계의 호적제도 --------------------------- 72-2-1. 미국의 호적제도--------------------------72-3. 호주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반박-------82-4.. 호주제 폐지의 당위성 ----------------------82-5. 호주제 폐지 및 그 후 대안들 ----------------- 102-6. 호주제 폐지 후의 긍정적인 변화--------------- 103. 호주제 유지론 ------------------------------103-1. 호주제 폐지 반대의 이유 -------------------10(인류가 부계사회를 따르는 이유)3-2. 호주제 수정/보완 론 ---------------------- 103-2-1. 호주제 수정/보완 론의 실 예 ---------------11결 론1. 호주제 폐지 찬반론의 의견 -----------------121-1. 찬성 론의 의견 --------------------- 121-2. 반대론의 의견 ------------------- 142. 호주제에 관한 5조 조원들의 입장 ------------ 14서 론1. 호주제도란?민법상 가(家)를 규정함에 있어 ‘호주’를 중심으로 하여 가족을 구성하는 제도로써, 그 절차은호주와 가족이다. 호주는 이름 그대로 가(家)의 대표자이며 장(長)이다. 그러나 현행 민법상원칙적으로 호주는 남계혈족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므로 여성은 언제나 가족원의 지위에 머물 수 밖에 없고, 나아가서 이등시민이 될 수밖에 없음을 확고히 한다. 이러한 남성중심의권위주의는 명백히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이라는 헌법이념에 배치되는 것이다.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먼저 호주제는 호주의 승계순위에서 차별을 드러낸다. 호주승계순위는 1직계비속 남자 2가족인 직계비속 여자 3처 4가족인 직계존속 여자 5가족인 직계비속의 처(민법984조)이다. 다시 말하면 남편-아들-손자-미혼의 딸-처-어머니-며느리의 순인 셈이다. 둘째로, 혼인 시 부부가 새 호적을 편제할 때는 입 부 혼을 제외하고 남편을 호주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혼 시에는 여성은 그 호적에서 제적된다. 주인은 언제나 남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혼 시에는 당연히 재혼한 남성의 호적에 입적하게 되어 있다.셋째로, 부모로서의 권리에 대한 불평등이 있다. 자녀는 출생 또는 인지로부터 당연히 부가에 입적하게 된다. 그러나 여성이 이혼을 하게 될 경우, 친가에 복적 하거나 일가를 창립하게 되는데, 여성이 자신과 같은 호적에 자녀를 두기를 원할 경우에도 자녀를 입적시킬 수 없게 하고 부의 호적에 남아 있게 한다. 그리고 여성이 재혼할 시에 자녀를 양부의 호적에 입적케 하려면 생부의 동의와 양부의 동의를 동시에 받아야만 한다. 반면에 남성의 경우 혼인 외 자녀를 자신의 호적에 입적할 때에는 배우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자녀에 대한 권리가 남성과는 다른 것이다. 덧붙이자면 남성을 호주로 하는 '가(家)'를 일반적이고 정상적이라고 보는 법과 사회 관념은 여 호 주의 가(家)에 입적해 있는 자녀를 차별하여 모자가정 을 더욱 살기 힘들게 하고 있다. 또한 이는 세법, 사회 복지 관련법 등에도 영향을 미쳐 제도상으로 관념상으로 이중, 삼중의 억압을 행사하고 있다.유림과 여성주의자들의 대립 유림들과 보수남성들의 호주. 부부와 성이 동일한 자녀를 한 호적에 편제하는 부부중심가족단위원리에 입각하고 있다.(호적법 제 6조)(2) 중국의 호구등기중화인민공화국은 건국 후 새로운 호적법의 제정을 시도하여 1951년 ‘도시호구관리관행조례’를 공포하여 도시의 호적 관리 제도를 통일하였고, 1955년 국무원이 ‘상주호구등기제도 확립에 관한 지시’를 공포하여 전국에 통일된 호적 등기 제도를 실시하였다.그 후 1958년 중국의 호적법이라 할 수 있는 ‘중화인민공화국호구등기조례’가 공포되었다.(3) 대만의 호장 제호장은 우리의 호주 개념이 아닌 세대주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추천으로 선출되거나 최고세대의 자가 되어 그 선출방법이 비교적 민주적이고, 가족의 복리를 추구하여야 할 책무를 지고, 그 계승이라는 개념도 없다.(4) 독일의 가족 부독일은 교회부에 유래를 두고 개인별, 사건별 편제방식에 따라 출생, 혼인, 사망의 각 사건마다 출생 부, 혼인 부, 사망 부를 편제하며, 가족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가족 부를 작성한다.(5) 프랑스의 사건별 편제방식프랑스의 신분등록제도는 교회부에 그 유래를 두고 출생, 혼인, 사망, 등의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사건별 편제방식을 취하며, 출생증서, 사망증서, 결혼증서를 작성한다.(6) 스위스의 부부 공동가장제1975년 세계 여성의 해를 맞이하여 스위스에서는 양성평등에 관한 헌법적 논의가 본격화되어, 같은 해 양성평등조항의 신설을 위한 위원회가 정파를 초월하여 구성되고, 국민투표를 통하여 헌법 제4조 제2항에 양성평등조항을 삽입하였다.이상과 같이,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호주의 지위를 갖는 존재가 없이도 원활하게 국민의 신분 등록 부를 작성하고 이를 각종 신분관계의 증명에 활용하고 있다. 즉, 호주제도가 폐지된다고 하여 신분등록 자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불가능해지는 것도 아닌 것이다.2-2-1. 미국의 호주제도미국에는 아버지 성을 따르는 관습이 현재도 있으나, 법적으론 대부분의 주에서 성은 부모의 협의에 의해 자유로 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민법784조) 반면에, 부는 그의 혼외자를 임의로 입적시킬 수 있도록 함으로써(민법 782조) 부와 모를 차별하고 있다. 여성은 이혼 후 자녀에 대한 친권 및 양육권을 갖고 있다 해도 자녀들은 계속 아버지의 호적에 남아 있어야 하므로, 함께 사는 어머니와의 관계는 주민등록상 동거인으로 표시될 뿐이다.이혼하는 여성과 재혼하는 여성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지만 그들의 자녀는 호적상 함께 사는 어머니나 어머니의 남편을 따라 호적을 옮길 방법이 없다. 부계혈통중심의 호주제와 호적법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이 호주제도는 국민의 신분변동에 대한 공적인 문서인 호적제도에 의해 지지되고 보완되어 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보이지 않는 그물망을 통해 이 사회에 종적이며 권위주의적이며 남성 중심적인 물결을 주도하여 왔던 것이다.그뿐 아니라 호주제도는 세법이나 각종 사회보장법, 그리고 국제사법에도 그 영향을 미쳐 출가외인을 차별하고, 부부 중 아내를 차별하며, 부계혈통 중심적 법제도의 원인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호주제는 그의 강행 성 으로 인해, 역기능이 잠재화한 반면에 호주제가 지니는 것으로 오해된, 어른에 대한 공경사고는 미덕으로 포장되어, 결국 신민법 제정 이래 지금까지의 세월동안 오랜 폐지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 건재함을 과시하여 왔다. 그러나 호주제는 과거의 윤리이며, 낡은 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이제 호주 제도를 폐지하고 부부친자중심의 가족제도와 호적법으로 탈바꿈할 때, 진정한 개인의 존엄과 남녀평등과 민주화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가족법이 지니는 개인의 존엄과 자유와 평등의 상징성으로 인해.2-5. 호주제 폐지 및 그 후 대안들(1) 기본가족별 편제방식-> 호주를 중심으로 모든 가족의 출생, 혼인, 사망 등의 신분관계를 표시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호주를 없애고, 결혼한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2대의 가족관계를 기록하는 방식이다. 현재와 같이 남편이 호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족 내에 호주는 없으며 부부 승계인이 된다.[민법 984조]- 피 승계인의 직계비속남자- 피 승계인의 가족인 직계비속여자- 피 승계인의 처- 피 승계인의 가족인 직계존속여자- 피 승계인의 가족인 직계비속의 처-> 호주 승계 권은 이를 포기할 수 있다. [민법 제 991조 호주 승계권의 포기]4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의 가에 입적한다.[민법 제 781조 1항]-> 임의분가는 제 781조 1항의 개정으로 이혼 시 양육자녀는 부모의 합의에 따라 양육자가 모인 경우에 모의 호적에 입적할 수 있도록 개정(2) 가정의 생활공동체에서 미약한 존재인 호주제는 전통적인 가의 상징이며 호적 편성의 기준이 되는 존재로써 존속시키며, 개선점을 찾아 이를 보안하는 법적 조치가 타당 결국은 호주의 명칭을 둘 것이냐 다른 명칭으로 바꿀 것 이냐 로 귀결되고 만다.-> 호주제도의 개정 내지 개선론결 론1. 호주제 폐지 찬반론의 의견1-1. 호주제 폐지 찬성 론의 의견현행 호주제에서는 외도하여 낳은 핏덩이 아들이 열 명의 딸과 처보다 승계순서가 앞선다. 이런 상황에서 해마다 3만 명의 여 태아가 대를 잇지 못해 는 이유로 감별 뒤 살해당하고 있다.새 천년을 맞기 전에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법 중 하나가 바로 호주제이다.호주제는 여성에게 사종지도(四從之道)를 강요 한다호주의 승계 순서는 남편 아들 손자 미혼의 딸 처로 되어 있다.?남편의 씨앗으로만 낳았다고 생각하는 아들, 딸, 손자를 , 인 아내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 외도하여 낳은 핏덩이 아들이 10명의 딸과 처보다 승계순서가 앞선다. 가족의 화목, 혼인의 신성함보다 남계혈통 대 잇기에 최대의 가치를 두는 것이다. 남자만 씨앗을 생산한다는 무식과 여성을 로 보는 법 감정이 행간에 들어 있다.모든 남자는 모든 여자에 앞선다는 호적감정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의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존재, 이등인간이라고 규정한다.호주제는 여성에게 남편집안 귀신이 되기를 강요 한다결혼이란 성숙한 남녀가 양가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야 하지만 민법은 결혼과 동시에 여이
호주제 존폐여부에 관한 소논문< 목 차 >Ⅰ. 서 론1. 문제의 제기2. 호주제의 의의Ⅱ. 본 론1. 호주제 존치론자의 입장(1) 가족의 개념(2)한국의 가족제도에 내재하는 근본원리가. 내외의 역사적 시련 속에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 가족법제나. 한민족적 가족제도의 3원칙1) 가족공동체의 원칙2) 조상의 가업계승의 원칙3) 동성불혼의 원칙다. 역사적 자생력과 독자성 있는 문화유산(3) 폐지론에 대한 답(4) 호주제 폐지후의 문제점2. 호주제 폐지론자의 입장(1) 문제의 제기(2) 호주제 존치론의 허구성(3) 호주제 폐지론의 당위성가. 부계우선혈통주의로 성차별의 근간이 되는 호주제나. 재혼가정의 갈등요인이 되는 호주제에 따른 성과 본의 문제다. 부부의 평등권 침해라. 여성이 가진 부모로서의 권리를 침해하는 호주제마. 호주제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 아니다바. 국제적으로 봉건적이며 비민주적 후진국가로 낙인찍히는 근거(4) 호주제 폐지를 대비한 대안가. 호적사무에 대한 혼란야기 문제에 대하여나. 혼인이 해소되는 경우에 있어서 호적정리다. 재혼의 경우에 있어서 호적정리라. 자녀의 호적(5) 호주제가 폐지되면 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Ⅲ. 결 론1. 우리의 견해호주제 존폐여부에 관한 소논문Ⅰ. 서 론1. 문제의 제기호주제의 문제에 있어서 최근에는 호주제 폐지의 방향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즉 남녀평등성의 문제 즉,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여성의 당연한 권리의 획득을 중심으로 폐지론이 한창 주장되어 지고 있으나 전통적이고 민족 문화적인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는 규범영역이므로 호주제는 존치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따라서 여기서는 호주제의 역사적 배경부터 고찰해 보며 과연 호주제란 전통적인 우리의 관습이므로 지켜져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위해 폐지되어야 할 것인가를 하나하나 따져보고 우리의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2. 호주제의 의의호주란 한 호적에 등재되어 있는 가족을 통솔하거나 지배하는 자이며 가(家)를 이어가는 으로서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의 위반론, 제 11조 남녀평등 조항 위반론 그리고 헌법 제36조 혼인과 가족생활보호규정의 위반론을 제기한다.5 일본민법의 잔재라는 논거다. 특히 일제 식민지 통치의 잔재규정이라는 주장 이다.6 외국의 법제와 비교법적으로 대조하여 우리제도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주 장이다.7 시대발전과 대응하여 여성개발정책에 부응하기 위하여 남성의 우위 입법을 폐 지한다는 주장이다.8 국제법상의 조약 등에서 오는 양성평등입법의 압력론 등이다.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오늘과 같은 시민사회에서 모든 사회활동의 참여에 있어서 인격의 존엄과 남녀평등의 원칙이 보장되고 실현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수 백년 동안 뿌리내려 전통화된 부계중심주의적 가제도와 질서에서는 남녀평등의 실현도 중요하지만 가정의 평화와 가족집단의 단결과 화합을 통한 생활공동체의 보호 유지를 전제로 하는 범위 내에서 인정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며 그의 한 방법으로 가정 내부에서는 구심점이 되고 대외적으로 대표적 역할을 수행하는 가장의 존재도 필요하다고 보며 다만 누가 이를 수행할 것이냐가 문제로 제기될 것으로 본다.무엇보다도 가부장제, 종법제, 봉건제의 잔재론은 가족법만이 아니라 광범한 관련학계의 논의를 요하는 문제이다. 법제사와 경제사의 학자들의 협력을 받아서 반드시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며, 특정한 법리론가의 주장만으로 결론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학계의 다수설은 한국 가족 법제를 봉건제, 가부장제, 종법제의 유산으로 보지 않는다.다음으로 헌법상의 여성의 기본권 침해이론이다. 이문제도 헌법학자들과 연계하여 학술적 검증을 얻어서 판단할 일이다. 헌법은 제9조에서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국가의 임무로 규정하고 있고 또한 헌법전문의 서두에서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라고 규정하여 대한민국의 민족 국가적 성격을 선언하고 있다.(4) 호주제 폐지후의 문제점현재 고 있습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평등한 부부관계, 가족관계가 확립되는 계기가 되어 건강한 가족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또한 기존의 부계성씨에 따른 가족관계는 문중의 가계(家系)를 기록하는 사적인 기록부인 족보를 통해 계속 기록, 보존할 수 있습니다.(3) 호주제 폐지의 당위성우리 민법상의 호주제는 호주에게 호적상에만 존재하는 형식적 개념인 가를 대표하도록 하고 가족구성원을 통솔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가족관계를 종적이며 권위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남계혈통을 통해 호주의 지위를 승계하도록 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남성우월의식을 조장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제도인 것이다. 이러한 호주제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 제11조 1항,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규정인 헌법 제36조에 반하는 것이다. 즉 호주제는 부계우선혈통주의와 남성우월의식을 조장함으로써 성차별을 발생시키고, 호주의 가족구성원에 대한 지배, 통솔을 의미하는 종적인 사고를 내포하고 가를 앞세워 남계혈통을 통한 호주승계를 꾀함으로써 각 개인의 기회균등과 가정 창설의 자유를 억제한다는 면에서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 호주라는 신분의 승계제도는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어떠한 신분적 특수계급도 있을 수 없다는 헌법 제11조 2항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호주제에 담긴 권위적이며 차별적인 사고에 기인한 법제도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존엄, 평등권과 조화될 수 없다.호주제는 호적법뿐만 아니라 가족과 관련된 다른 특별법이나 절차법 예를 들어 세법, 각종 사회보장법 즉 국민연금법, 의료보험법, 생활보호법, 모자복지법,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등에도 영향을 미쳐 호주제의 이념 곧 부계혈통 중심의 사고를 반영한 규정들을 양산하고 있다.가. 부계우선혈통주의로 성차별의 근간이 되는 호주제민법은 호주승계순위를 아들-딸-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규정하고 있다(민법제984조). 즉 우리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된 현실의 가족공동체는 하나의 호적에 기재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정서에도 부합할 것이다(이제까지의 호적제도에 익숙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가족이 하나의 호적에 기재되지 않고, 개인별로 각자의 호적을 갖는 개인별 카드제도는 낯설게 느껴질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가족별 호적 편제 제도 하에서는 한 가족의 신분에 관한 사항이 하나의 호적부에 기재되므로, 결과적으로 개인의 사생활(개인정보)침해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호주제도가 폐지되는 경우 새로운 호적의 편제단위는 부부와 그 자녀로 하는 방안을 모색함이 좋다. 이는 현실의 가족생활공동체에도 부합하는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누구나 혼인을 하거나 혼인하지 않더라도 자녀를 출산하면(혼인 외의 자의 경우) 반드시 하나의 새로운 호적이 편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3세대 호적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이와 같은 호적편제방식에서는 부부가 혼인함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호적을 편제하게 되므로(즉 혼인신고에 의하여 부부가 함께 새로운 호적에 편제된다), 혼인하게 되면 아내가 남편의 호적에 입적하는 현행법의 방식은 더 이상 존재할 여지가 없다. 이와 같이 부부가 혼인신고와 동시에 공동으로 신 호적을 편제하고, 각자의 혼인 전 호적으로부터 새로운 호적으로 이적하는 경우, 새로운 호적을 특정하기 위한 수단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나. 혼인이 해소되는 경우에 있어서 호적정리배우자의 사망으로 혼인이 해소된 경우에는 생존배우자는 혼인으로 인하여 편제된 호적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도 될 것이며,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는 분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혼인이 취소되거나 이혼을 통하여 해소된 경우에는 부부의 호적을 분적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 경우 부부에게 자녀가 있다면, 자녀는 친권자로 지정된 부모의 일방과 같은 호적에 머무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즉 이 경우에는 이혼 또는 혼인 취소 후 친권자로 된 부모의 일방과 자녀는 혼인호적에 그대로 남고 다른 일방은 이적하게 바뀔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어머니가 재혼을 하지 않을 경우 어머니의 호적으로 옮길 수 있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혼녀의 아이들도 고통 받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호주 승계에 관한 문제 역시 수정이 필요하다. 지금의 법은 잘못될 경우 3세의 어린아이가 60세 할머니의 호주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승계 순위가 잘못되어 있기에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어머니-배우자-첫째자식-둘째자식의 순서와 같은 방향으로 호주승계순위에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단지 여성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가족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호주제 폐지의 대안으로 1인 1적 편제방식이 있다. 이러한 편제방식으로 바뀐다면 가족이라는 말은 무의미하게 되어버린다. 또한 가족의 해제라는 더 커다란 문제를 불러 올 수도 있다. 가족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부부를 기초로 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을 뜻하며 가족이란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자신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동지, 동료를 뜻한다. 또한 가족은 자신과 함께 살아가며 자신을 무엇보다도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가족이 해제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인생 동료를 잃게 되는 것이다.서구화는 선진화가 아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법이나 문화, 제도 등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전통이라 하더라도 시대에 맞추어 바뀔 것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우리사회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연구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제도나 법을 만들어서 시행해야 한다.우리의 견해를 정리하자면 가족이라는 단위와 가족을 지위, 통솔 할 수 있는 호주는 필요하다. 그러나 현행 호주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만을 약간 수정 및 개정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낳은 새로운 호주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첨부로 현행 호주제의 문제점을 지적해 놓았다. 이것을 여성의 입장에서 볼 것이 아니라 가족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