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이번 지리와 사회의 중간리포트를 위한 답사 장소를 정할 때, 그리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교수님께서 처음 이 리포트에 대한 언급을 하셨을 때부터 미리 생각해 놓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곳이 바로 수원 ‘화성(華城)’이다.나의 원래 고향은 수원이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약 11년간 수원에서 살고 있는 수원시민이다. 현재 서울로 학교를 다니고는 있지만 여전히 수원에서 통학하고 있으며, 학교생활을 제외한 거의 모든 활동을 수원에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1년이라 하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지라, 또한 수원이 그리 큰 도시가 아닌지라, 수원에서 안 가본 곳은 거의 없다고 자신할 수 있고 수원에 대해서 꽤나 많이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이러한 이유로, 교수님께서 ‘지역답사’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나는 당연히 ‘수원’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자연히 연결되어 ‘화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수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혹은 수원을 대표할 만한 장소가 ‘화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유명한 장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유 때문에 화성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유명한 화성이, 굉장한 문화재인 화성이 범접할 수 없는 ‘문화재’로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수원시민의 일상 공간, 일상생활 속에 너무 친숙히 다가와 있는 공간이라는 것 때문에 주저 없이 화성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성에 대한 개괄적 조사수원 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 왕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모습대로 보수, 복원하여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 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있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4, 공심돈3, 수문2, 장대2, 노대2, 포루5, 각루4, 암문5, 봉돈1, 적대4, 치성9, 은구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 (수문1, 공심돈1, 암문1, 적대2, 은구2)이 소멸되었다.성벽은 외측만 쌓아올리고 내측은 자연 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착의 축성술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성곽을 만들었으며, 또한 수원 화성은 철학적 논쟁 대신에 백성의 현실 생활 속에서 학문의 실천과제를 찾으려고 노력한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벽돌과 돌의 교축, 현안? 누조의 고안, 거중기의 발명, 목재와 벽돌의 조화를 이룬 축성방법 등은 동양 성곽 축성술의 결정체로서 희대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대 학자들이 충분한 연구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하여 축성하였기 때문에 그 건축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 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 건축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수원 화성은 사적 제 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 402호), 화서문(보물 제 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 되었다.Ⅱ. 본론1. 수원의 대표 이미지로서의 공간 화성, 수원의 대표 이미지(수원=화성??)(사진 순서는 왼쪽부터 아래로)이 사진들은 수원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경관들일 것이다. 첫 번째 사진은 수원시 버스정류장 옆면에 부착 되어 있는 수원시 광고를 찍은 것이다. 이처럼 수원시 광고에는 언제 화성 그림은 수원시의 공식 마크였다. 세 번째 사진은 그 마크를 확대해서 찍은 것이다. 마지막 사진은 수원시의 쓰레기봉투로서 역시 이곳에도 화성 마크가 들어가 있다.이처럼 수원시에 있는 어느 공간을 보아도 쉽게 ‘화성’에 연관된 어떤 이미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수원시라는 도시에서 ‘화성’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또한 ‘수원 = 화성’ 이라는 인식이 생겨날 만큼 화성이라는 공간에 대한 수원시의 집착은 대단하다.2. 중요한 재산으로서의 공간(장소마케팅을 위한 공간, 집착의 공간?)위의 사진들은 모두 화성 답사를 하면서 ‘화성’ 내에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정말 수많은 공사 안내문들이 있었다. 모두 화성의 환경 조성사업 공사 안내문 들이었다. 이런 안내문들을 보면서 수업시간에 언급되었던 ‘장소 마케팅’이 떠오른 것은 잘못된 생각이 아닐 것이다. 현재 수원시는 ‘화성’이라는 장소를 홍보하고 마케팅하고 있으면, 이러한 노력으로 여러 가지 환경조성사업이 진행 중이다. 1년 전인가는 화성 근처에 있던 낡은 상가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그 곳에 공원을 조성하는 등, 우리 같은 일반인이 직접적으로 느낄 만큼, 그러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원에 살고 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것인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갑자기 요즘 들어(1-2년사이) 수원시가 화성에 상당한 애착(집착)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즉 화성이란 공간이 단순히 우리가 가꾸고 보존해야할 문화재라는 인식이 아니라, 중요한 재산 즉 경제적?사회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장소마케팅의 장소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 조성사업이라든지 하는 아낌없는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이다.3. 우리와 함께 하는 일상 속의 공간, 휴식의 공간수원시가 대표적으로 밀고 있는 장소인 만큼 화성은 꽤나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린다. 위의 사진들은 화성의 부속건물인 ‘행궁’에서 촬영한 것으로, 주말에 열리는 활쏘기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활을 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주말마다 도서관 가는 길에 가끔 들르는데, 꼭 이런 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이렇게 우리에게 일상속의 공간, 또는 휴식?놀이의 공간 등으로 인식될 수 있게 한 것이다.내가 답사를 했던 어느 일요일 오후의 화성 풍경 들이다. 이제 막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었다. 산책 나오신 할아버지들, 장기를 두고 계신 아저씨들, 가족끼리 잠깐 바람 쐬러 나오신 분들, 자전거를 타는 꼬마들, 손을 잡고 다정스레 산책 하는 연인들. 이러한 풍경은 낯설지가 않다. 수원시민에게 화성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 유산의 공간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직접 화성을 돌아다니다 보면 화성을 관광하러 온 사람들보다 근처 사시는데 운동하거나 산책하러 오신 분들이나, 잠깐 시내에 들렀다가 바람 쐬러 오신 분들이 더 많다. 그만큼 화성이 접근성이 좋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4. 역사적의 공간으로서의 화성화성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보통 역사적 의미보다는 휴식의 의미가 훨씬 크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화성은 역사적 공간인 것이다.세계문화유산으로 화성, 첫 번째 사진에 나와 있는 표지로부터 사람들은 이곳이 단순한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역사적 공간이라는 것을 재인식하게 될 것이다.두 번째 사진 또한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화성 산책로를 따라 주요건물에 옛 관리 복장을 한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다. 세 번째 사진은 화성을 짓게 만든 인물, 즉 정조대왕의 동상으로서 역시 산책로 중간에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표지들을 보면서 역사적 공간으로서의 화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이것들 또한 마찬가지다. 화성 곳곳에는 참 안내판이 많다. 주요건물들 마다 그 연혁과 기능 등이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5. 이방인(외국인)의 공간 화성아무리 휴식의 측면이 강화된 ‘화성’이라 할지라도, 유네 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훌륭한 문화재인 만 큼 심심치 않게 외국인들을 볼 수 있다. 그날 답사를 하 면서 나 또한, 여섯 일곱 팀 정도의 외국인을 볼 수 있었 다.화성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위한 공간적 특징인 것이다.6. ‘수원 = 화성’의 이미지로 만드는 구조물들첫 번째, 두 번째 사진들은 ‘난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첫 번째 사진은 급경사의 계단에서 보행자의 보호를 위해, 두 번째 사진은 인도와 잔디밭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이러한 것 하나 조차도 ‘화성’의 모양을 본 떠서 만들어져 있다. 세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의 사진은 수원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로등의 모양이다. 전통적인 어떤 형상, 다시 말해 ‘화성’을 닮아있는 모습들이다.이러한 것들로 인해 ‘수원시’의 이미지는 점차 ‘화성’의 이미지와 중첩되어 간다고 볼 수 있다.7. 새로움의 공간위의 사진은 모두 화성에 있는 화장실을 촬영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화성이라는 공간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모양들이다. 특히 위쪽 가운데 사진의 화장실은 건축모양이 모더니티를 넘어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모양을 띄고 있다.안쪽을 살펴보면 더욱 놀라운 사실이 숨어있다.변기 앞쪽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화장실 앞의 조그 만 정원을 바라보며 볼 일을 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처음에 이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상당히 놀 랐다. 정말 놀라움의 공간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 화장실 구조를 보고 안 놀라는 사람이 있을까?지난 2002년 월드컵 경기가 수원에서 열리면서 그 여파로, 수원시의 화장실들이 급격하게 변하였다. 정말 요즘 수원시의 화장실에 들어가 보면 속된 말로 ‘떡을 떨어뜨려도 주워 먹을 수 있는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깨끗하다. 화성 내부에 있는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정말 깨끗하다. 모양도 상당히 모더니티(?)하게 잘 꾸며져 있다.위의 두 사진은 화성 성곽 전체에 걸쳐 어디에나 있는 조명기구를 촬영한 것이다. 먼저 첫 번째 사진은 화성 성곽 전체를 따라 설치되어 있는 조명으로 밤이면 성곽 전체를 밝혀준다. 두 번째 사진은 화성의 주요건물 마다 있는 조명으로써 주요건물 사방에서 밝혀준다. 이러한 조명기구들은 예전에는 없던 수원시의 ‘야경’을 새로이 만든 역할을 하것이다.
-목차-1. 서론2. 본론1) 고대 국어 의 범위와 모습* 백제어* 고구려어* 신라어2) 고대(중세) 국어와 알타이어의 문법 대응*곡용어미*활용어미3. 결론1. 서론한국어는 아직 그 계통이 확고히 밝혀진 언어는 아니다. 최근에 서양에서 간행되는 언어학 입문서나 언어학 사전류에서도 한국어를 아직 계통이 밝혀지지 않은 언어 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 학자들은 G. J. Ramstedt 나 N. Poppe 와 같은 알타이어 학자들의 견해에 힘입어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믿고 있다. 즉 터키어, 몽고어, 퉁구스어 등 전통적인 알타이 어족의 세 어군 사이에서와 같은 밀접한 관계는 아니지만 이들과 같은 어족을 형성하며, 그들 중에서는 퉁구스어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한국어는 나머지 알타이 제어와 결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공통 특징을 가지고 있음이 일찍부터 주목되어 왔다. 교착어, 굴절어에 속한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언어를 고립어, 굴절어 및 교착어로 나눌 때 한국어는 전형적인 교착어에 속한다. 어간에 굴절접미사들이 규칙적으로 결합되는 언어인 것이다. 또 모음조화가 있다. 한 단어 안에서 양모음은 양모음끼리 음모음은 음모음끼리 결합한다. 그리고 이른바 두음법칙도 있다. 단어 첫머리에 ㄹ 음이 올 수 없으며 자음이 두개나 그 이상 겹쳐 올 수도 없다. 관계대명사가 없고 접속사가 없다. 동사가 어미를 취하여 인구어(印歐語)의 관계대명사나 접속사가 처리할 일을 담당한다. 특히 부동사를 이루어 접속사가 할 일을 한다.이상과 같은 한국어의 특징이 그대로 알타이 제어에 다 적용되는 것이다. 본론에서는 이러한 여러 가지 대응 중에 특히 문법적 대응, 거기에서도 고대국어와 알타이어의 문법적 대응을 알아보겠다.2. 본론1) 고대 국어 의 범위와 모습한국어가 문자에 의해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였다. 이 시기부터 현대 한국어사의 시대 구분은 대개 고대, 중세, 근대, 현대 국어의 네 시기로 나눈다. 본론에서 보고자 하는 고대 국어의 시기는 다음과 같다.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가 패망할 때까지의 약 1000년 동안의 한국어를 말한다. 고구려(B.C 37~ A.D 668)와 백제((B.C 18~ A.D 660)의 언어 및 신라(B.C 57~ AD 935)의 세 언어가 고대 한국어를 대표한다.* 백제어삼국 중 백제와 고구려는 남아있는 언어 자료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三國史記 地理志)」등에서 단편적인 자료를 찾아 낼 수 있을 뿐인데 우선 백제어로 재구(再構)되는 자료를 몇 보이면 다음과 같다. 괄호 속의 한자가 차자표기이며 그것을 해독한 결과를 그 앞에 보인다. ( 珍 만 훈독하고 나머지는 음독한 것이다) 그리고 한자 다음의 어형은 현대 한국어의 어형이다.*p ri(夫里 : 불 火 ), *turak(珍惡 : 돌 石 ), sa(沙 : 새 新 )*murke(勿居 : 맑다 明 ), *mura (毛良 : 마루 棟 )*고구려어고구려어는 백제어보다는 많은 자료를 남기고 있으나 역시 단편적인 수준에 그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몇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mai/mie(買 : 물), *nue(內, 那, 奴, 惱 : 땅, 흙) *pai(巴依, 波依 : 바위)*tan/tuan(旦, 呑 : 골짜기) *tar(達 : 산) *hor(忽 : 城)수사 *mir(密 : 3) * c(千次 : 5) nan n(難隱 : 7) *t k(德 : 10)이상의 단편적인 자료로 어떤 추론을 펴는 일은 위험하나 이 자료들로 보면 백제어는 현대 한국어 및 중세 한국어와 쉽게 연결되는 데 비하여 고구려어 자료는 그렇지 못한 차이를 보인다. 부여계 제어와 한계 제어의 구분을 시도케 한 근거인데 고구려어에는 분명히 이질적인 요소가 있었던 것이 사실일 듯 하다. 특히 고구려어의 수사들은 신라어나 중세 한국어와는 판이하게 다르면서 오히려 고대 일본어 mi(3), itu(5), nana(7), t wo(10)' 및 퉁구스어의 nadan'과 가까운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이기문 1972). 이러한 고구려어의 특징이 신라어와의 방언차에 의한 것인지 그 이상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인지는 확언하기 어려우나 어떻든 고구려어는 한국어와 일본어, 한국어와 알타이 제어의 친족 관계 비교에 신라어가 하지 못하는 어떤 기여를 하는 언어임에 틀림없다.*신라어신라어는 백제어나 고구려어에 비해 자료가 풍부한 편이다.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에 실린 고유명사에서 얻는 자료 이외에 이두 및 향찰로 표기된 자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한국어는 자연히 신라어로써 그 모습을 추정해 볼 수밖에 없다. 다음에 신라어의 모습을 통해 고대 한국어의 모습 몇 가지를 간추려 본다.신라어의 음운 체계를 정확히 재구하기는 어려우나 대개 다음과 같은 추정은 가능해 보인다. 자음 체계에 있어 평음과 유기음의 대립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居柒夫 의 柒 (漆)이나 佛體 의 體 가 각각 ㅊ,ㅌ 등의 유기음 표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된소리 계열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중세 한국어의 ㅸ 및 과 반드시 같은 음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더라도 신라어에서도 ㅂ 및 ㅅ 과 구별되는 이 계열의 음운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ㄹ 도 [r]과 [l]로 구별되어 존재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적은 자료에 의해서지만 고대 한국어의 모습을 볼 때, 그중 자료가 가장 풍부한 신라어를 중심으로 고대 한국어의 모습을 볼 때 주목되는 것은 고대 한국어가 이미 중세 한국어가 보여주는 특징들 대부분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말을 바꾸어 말하면 중세 한국어는 고대 한국어, 더 좁혀 말하면 신라어를 근간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나아가 현대 한국어는 중세 한국어를 그대로 이어받은 만큼 결국 현대 한국어의 중요한 틀이 이미 고대 한국어에서 다 잡혔다는 뜻이기도 하다.2) 고대(중세) 국어와 알타이어의 문법적 대응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고대 국어는 신라어를 제외한 고구려어, 백제어의 자료의 양이 부족하고 단편적이어서 알타이어와 문법적 대응을 비교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또한 고대 국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신라어는 그 모습이 중세 국어와 별 차이가 없으므로 중세 국어와 알타이어의 문법적 대응을 비교하는 것이 곧 고대국어와 알타이어를 비교하는 것이 될 것이다.*곡용어미문법 체계는 차용이 거의 없고 보수적이어서 고유 요소의 중심부이고 전통의 핵심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법 체계의 비교는 언어의 친족관계를 증명함에 있어 가장 존중되어 왔다. 알타이제어 사이에는 곡용 조사의 광범한 일치가 확인된다. 이들과 비교해 볼 때, 국어의 곡용 조사들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다만 다음 세 조사가 형태와 기능에 있어 유사성을 보여준다.1알타이 조어의 여격(與格)조사에 -*a/-e 가 재구된다. 토이기제어(at- m-a 내 말에), 몽고제어( a ar-a 나라에)에 여격 및 처격(處格)으로 나타난다. 퉁구스제어의 부분격(部分格)이라 불리는 -a 가 여기에 비교된다. 중세 국어에는 처격 조사 -애/-에 가 있다.2알타이 조어의 향격(向格)조사는 -*ru/-r 로 재구 된다. 고대토이기어에 -r ( b-im-a 내 집으로)가 보이며 몽고제어에 그 흔적이 -ru(inaru 이쪽, inaru 저쪽)로 나타난다. 중세 및 현대국어의 -로 가 이들과 일치한다.3알타이 조어의 연격(沿格)조사는 -*li 로 재구된다. 퉁구스제어에는 연격 조사 -li(에벤키어 hokto-li 길을 따라서)로 나타나며, 몽고제어에서는 일부 대명사(keli 언제)에 그 cms적이 보인다. 중세 국어에 이리, 그리, 뎌리 의 -리 가 있다.조사와 관련하여 주제화의 특수조사 (잎/으)ㄴ 은 매우 특이한 존재로 알려져 왔다. 의미론적 관점에서 이에 대응되는 것은 일본어의 -wa가 있음이 지적되어 왔는데, 몽고어의 -ni도 이와 비슷한 점이 주목된다. 이 -ni는 본래 명사 뒤에 놓인 삼인칭 대명사의 속격형 inu(단수)와 anu(복수)에서 온 것이다. 이들과 국어의 (잎/으)ㄴ 은 기원이 같을 개연성이 매우 큰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국어와 몽고어의 삼인칭 속격형의 일치와 함께 명사 뒤에 놓이는 그 특수한 용법의 일치도 보여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활용어미동사의 활용 체계에서도 우리는 매우 중요한 일치를 발견한다. 알타이제어의 문법 체계에서 동명사는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기원적으로 많은 활용형이 동명사형이었으니, 동사의 서술어형으로도 동명사형이 그대로 쓰였던 것이다. 따라서 알타이조어에서는 명사문이 매우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알타이제어의 비교에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동명사의 어미는 1-*r 2-*m 3-*n 등이다. 그런데 국어에 있어서도 이들 어미의 반사형(反射形)이 확인된다.1 -*r의 반사형은 고대 토이기어에서는 현재형으로 나타나며 몽고제어에서는 동사 파생명사의 접미사(몽고문어 amu- 쉬다, amu-r 안식)로 나타난다. 퉁구스제어에서는 일반적으로 미래의 의미를 가진 동명사의 어미로 나타난다. 중세국어의 어미 -(잎/으)ㄹ 이 여기에 비교된다.2 어미 -*m 의 반사형은 대부분의 알타이제어에서 동사 파생명사의 접미사로 나타난다. 고대 토이기어의 l- 죽다, l- m- 죽음. 몽고어 na ad- 놀다, na ad-um 놀음. 옛날 몽고 문헌에 보면 이 어미를 가진 동사가 서술어로 쓰여서 현재를 나타낸 예가 보인다. yubu-m(간다). 퉁구스제어에서는 이 어미가 단독으로 쓰이지 않고 다른 어미들과 결합된 것을 분석해 낼 수 있다. 의심할 것도 없이 국어에는 동사 파생명사와 동명사의 어미로 사용되고 있다. 중세 국어 동사 파생명사 여름(實), 거름(步), 동명사 여룸(實), 거룸(步). 제주도 방언의 많은 동사형에서 이 어미는 현재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 목차 -1. 서론2. 본론1) 초성자 제자 원리의 음성· 음운학적 분석1상형의 원리2가획의 원리3합성의 원리2) 중성자 제자 원리의 음성· 음운학적 분석l말소리(음절)의 분석2중성자의 제자 원리*상형의 원리*합성의 원리*가획의 원리3. 결론1. 서론훈민정음은 세계 문자사에 있어 유례가 없는 독특한 문자 체계로 알려져 있다. 독특한 문자 체계란 것은, 훈민정음이 말소리의 음소 단위에 문자가 대응하는 음소문자 체계일 뿐만 아니라, 음성의 자질이 문자의 형상에 체계적으로 반영된 자질문자 체계{ G. Sampson(1985)임을 말한다.이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하나는 훈민정음 창제자들이 말소리를 음소단위 까지 분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훈민정음이 문자사에 있어, 가장 발달한 것으로 알려진 음소문자 체계보다 더 뛰어난 자질문자 체계라는 사실이다.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에 대하서는 여러 관점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훈민정음 제자해를 중심으로, 훈민정음의 초·중성자 제자 원리가 음성 자질이 문자 체계에 체계적으로 반영된 자질 문자 체계라는 것을 현대 음성, 음운학적 분석으로 확인하고자 한다.2. 본론1)초성자 제자 원리의 음성· 음운학적 분석l상형의 원리사물의 모습을 본뜨는 상형의 원리는 세계의 많은 문자가 제자 원리의 기본으로 삼았듯이 훈민정음의 기본자를 삼은 원리 또한 상형의 원리를, 문자를 만든 첫 원리로 삼았다. 훈민정음에 있는 초성 체계는 동국정운 의 23자모 체계와 일치하는 23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23음은 조음 위치에 따라 나눈 7음 서열과, 조음방법인 청탁(淸濁)에 따라 나눈 4계열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 초성 체계에 대응시켜 문자를 만듦에 있어 가장 먼저 적용한 원리가 상형의 원리이다.*.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23음){아음(牙音)설음(舌音)순음(脣音)치음(齒音)후음(喉音)반설음(半舌音)반치음(半齒音)전청(全淸)/ㄱ//ㄷ//ㅂ//ㅅ/ /ㅈ//ㆆ/차청(次淸)/ㅋ//ㅌ//ㅍ//ㅊ//ㅎ/전탁(全濁)/ㄲ//ㄸ//ㅃ//ㅆ/ㅇ象喉形이 설명에서 보면, 조음 방법 및 조음 기관을 상형한 기본 5자는 7음 중 5음의 불청불탁음자를 그 제자의 시초로 삼고 있다. 불청불탁 음자를 제자의 시초로 삼은 이유는, 그 소리가 가장 세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소리가 가장 약한 소리인 울림소리(불청불탁음)를 기본으로 해서 세기의 정도가 커짐에 따라 가획하기 위한 배려에서 온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아음과 치음은 가장 약한 불청불탁음을 기본으로 삼지 않고 전청음자를 제자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아음의 불청불탁음 /ㆁ/이 제자의 시초가 되지 못함을 『훈민정음』 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아음의 /ㆁ/은 비록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고 소리 기운이 코로 나가므로, 그 소리가 /ㅇ/과 서로 비슷하여 운서(韻書)에서의 의모 (疑母)와 유모 (喩母){ 중국 음운학의 의모는 / /을, 유모는 /h/를 나타내는데, / /는 나중에 성모가 없어지거나 / /으로 바뀌었으며 /h/는 / /나, /x/ 등으로 바뀌었다. 이와 같이 중국의 의모와 유모는 바뀌어 가고 있는 과도기적 소리였다.가 서로 섞여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제 문자의 꼴은 목구멍을 본떠서 만들었으나 아음에서 제자 시초로 삼지 않았다.이런 설명으로 아음의 /ㆁ/이 제자의 시초가 되지 못했음을 이해할 수 있으나, 이것은 문자 체계를 일그러지게 하는 부분적 요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문자의 소리들은 제자의 시초가 된 것이 지속음인데 반하여 아음자만은 제자의 시초가 전청음자 곧 예사닫음소리 이기 때문이다. 울림소리는 모두 약한 향음이기 때문에 같은 계열로서 마땅히 상형의 기본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훈민정음 창제자들은 아음의 불청불탁음이 중국의 운서에서도 후음의 불청불탁음자 ㆁ 자를 후음의 불청불탁음자 ㅇ 자에 가획하여 만들었던 것이다.치음에서는 불청불탁음에 해당하는 것이 우리말에 없기 때문에 전청음자를 제자의 기본으로 삼았다. 반치음에 불청불탁음 /ㅿ/이 있기는 하나 이는 그 서열이 다르므로 제자의 시초로 삼지 않았다. 치음는 가획의 원리다. 가획의 원리는 소리의 변별자질의 세기가 커짐에 따라 문자에 획을 덧붙여 감으로써 새로이 문자를 만드는 원리이다. 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ㅋ은 ㄱ에 비해 그 소리가 조금 세므로 가획하며, ㄴ에서 ㄷ, ㄷ에서 ㅌ, ㅁ에서 ㅂ, ㅂ에서 ㅍ, ㅅ에서 ㅈ, ㅈ에서 ㅊ, ㅇ에서 ㆆ. ㆆ에서 ㅎ으로 각기 소리에 따라 획을 덧붙이는 뜻은 모두 같다.이러한 가획을 현대 음성학적 관점에서 해석해 보면, ㄱ 에서 ㅋ 으로 가획과, ㄴ 에서 ㄷ 으로의 가획은 그 뜻이 다르다. 곧 기본자에서 가획을 한 것과 가획자에 또 다시 가획을 한 것은 각각 달리 설명되어야 한다.즉, ㄴ 에서 ㄷ , ㅁ 에서 ㅂ , ㅅ 에서 ㅈ , ㅇ 에서 ㆆ 으로 1차 가획은 지속음{ 생성음운론에서 (continuant) 자질에 마찰음과 유음만 분류된다. 그러나 비음은 코로 계속 날숨이 나가고 있어 지속음에 넣을 수도 있다.의 폐쇄음화를 나타낸다. 그리고 ㄷ 에서 ㅌ , ㅂ 에서 ㅍ , ㅈ 에서 ㅊ 등의 2차 가획은 폐쇄음의 기식음화(aspirated)를 반영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소리의 변별 자질을 인식한 다음, 같은 서열 안의 계열의 차이에 따라 그 변별 자질을 문자에 반영한 것은 매우 과학적이라 할 수 있겠다.3합성의 원리이미 만들어진 문자로써 서로 합성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이 합성의 원리이다. 합성되는 문자들은 본래의 음가를 가지고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소리 자질로서 결합된다. 초성자에 있어 합성의 원리는 옆으로 나란히 쓰는 병서법(竝書法)과 아래로 쓰는 연서법(連書法이) 있다.* 병서법전탁음(된소리)은 정청음과의 대립에서 후두켕김이라는 변별자질이 더 있다. 이 후두켕김의 차이를 문자에는 병서로써 반영하였다. 에서는 이를 전청의 소리가 엉기면{ 여기에서는 을 엉긴다 라고 보았다. 이 은 된소리에서 나는 (tense) 자질이다.전탁음이 되기 때문이라 했다.예외적으로 후음에서는 차청자를 병서하여 전탁자를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후음의 전청음는 소리가 깊어서 엉기지 않으나 반설경음자(半舌輕音字)의 제자 원리다. 이는 순음자 ㅁ, ㅂ, ㅍ, ㅃ 이나 반설음자 ㄹ 아래 후음의 불청불탁음자 ㅇ 을 이어 쓰는 방법인데, 여기서 ㅇ 은 목구멍소리의 자질 표시로 보인다. 먼저 순음에 목구멍 소리가 많으면 순경음이 되는데, 이 순경음자는 순음자 아래 ㅇ 을 이어 쓴 것이다. 이 원리에 의해 순경음자 ㅱ, ㅸ, ㆄ, ㅹ 의 넉자가 만들어졌다.2)중성자 제자 원리의 음성· 음운학적 분석l 말소리(음절)의 분석훈민정음이 음소문자 체계로 된 것은 훈민정음 창제자들이 우리의 말소리(음절)를 음소단위로 분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중국 음운학에서는 음절을 성모(聲母)와 운모(韻母)로 나누는 이분 체계를 취했는데, 훈민정음 창제자들은 운모의 끝 부분인 운미{ 운미는 중국 음운학의 운모를 삼분한, 운두(韻頭), 운복(韻腹), 운미(韻尾) 중 끝 부분을 말하는데, 이에는 반모음(glide)도 포함되나, 여기에서는 자음 부분만 말한다.를 분리하여 음절을 삼분하였다. 곧 그들은 성모를 초성으로, 운미를 제외한 운모 부분을 중성으로, 운미를 종성으로 하는 음절의 삼분법을 확립한 것이다. 이에 대한 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정음의 초성은 곧 운서(韻書)의 자모(字母)이다. 소리가 이로부터 나므로 모(母)라 한다.-중성은 자운(字韻)의 가운데에 놓이어 초성, 종성들과 합하여 말소리(음절)을 이룬다.-대개 자운의 중심은 중성에 있고, 초성, 종성들과 합하여 말소리(음절)을 이룬다.-종성은 초성, 중성들을 이어서 자운을 이룬다.이러한 삼분법은 음절(syllable)을 Onset, Nucleus. Coda로 나누는 현대 음운학의 음절의 삼분법과 동일하다 하겠다. 이 음절의 삼분법에 의한 초, 중 , 종성에 각각 대응시켜 만든 것이 초, 중, 종성자이다. 여기서 훈민정음이 음소문자 체계가 된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초성과 종성의 동일성 확인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이러한 초, 종성의 동일성 확인으로 말미암아, 종성자를 따로 만들지 않게 되고, 그로 인해 동일 음를 만드는 원리를 말한다. 중성자의 제자도 초성자의 제자와 같이 그 첫 원리는 상형의 원리다. 그런데 중성자는 초성자와는 달리, 상형의 대상이 조음 기관이나 조음 방법이 아니라, 역리학(易理學)의 삼재(三才)인 하늘, 땅, 사람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본떠서 만들었다. 이에 대한 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ㆍ舌縮而聲深 天開於子也 形之圓 象平天也.*ㅡ 舌小縮而聲不深不淺 地闢漁五也 形之平 象平地也.*ㅣ 舌不縮而聲淺 人生於實也 形地立 象平人也.위의 설명은 각기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 부분은 각 자질을 말한 것으로 과 의 자질로 설명하고 있다. 둘째 부분은 제자의 순서를 말한 것으로서, 그 순서를 십이지(十二支)와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다. 셋째 부분은 상형의 내용을 말한 것으로서, 문자의 형상은 삼재(三才)의 모습을 상징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은 조음적 자실, 은 청각적 자질로 이해되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해석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런데 은 종래의 혓바닥 모양이나 자리 가 아니라 좁힘점을 의미한 것으로 보이며, 자질의 과 은 Jakobson의 (둔음, 저조음)와 (예음, 고조음)에 대당하는 것으로 보인다.*합성의 원리합성의 원리는 이미 만들어진 문자를 서로 합성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원리이다. 이때 합성 되는 문자들은 본래의 음가를 가진 표지로 합성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음운 자질을 가진 표지로 합성된다{ 예를 들면, ㅂ 과 ㅇ 이 합성되어 새로운 문자가 만들어 질 때, ㅂ 은 [p]로서, ㅇ 은 [h]로서 합성되지 않고 ㅂ 은 의 자질로, ㅇ 은 의 자질로서 합성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제자해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ㅗ 與 ㆍ 同而口蹙 其形則 ㆍ與 ㅡ 合而成.ㅏ 與 ㆍ 同而口張 其形則 ㅣ 與 ㆍ 合而成.ㅜ 與 ㅡ 同而口蹙 其形則 ㅡ 與 ㆍ 合而成.ㅓ 與 ㅡ 同而口張 其形則 ㆍ 與 ㅣ 合而成.위의 설명은 각각 음운의 성질과 합성된 문자와 순서를 말한 것이다. 음운에 성질에 대한 설명에서 , 이 나오는데, 이때 의 의미는 음운자질이 같다는 말로서이다.
- 목차 -1. 서론 - 소쉬르의 이론에 대하여2. 본론 - 『일반언어학 강의』3. 결론1. 서론 - 소쉬르의 이론에 대하여Saussure의 새로운 관점은 언어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역사적 측면을 지니지 않으며 그것은 공시태이고 구조라는 인식이었다. 그가 거부한 것은 역사적인 고려가 아니라 언어를 원자화하고 역사를 기계적으로 파악하려는 방법이었다. 그의 관점에 의해 언어학자들은 언어를 그 자체로서 고려하게 되고 언어가 하나의 체계를 형성한다는 원리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 원리가 바로 현대 언어학의 토대가 되는 원리로 확립된 것이다. 하나의 언어는 오직 제한된 수의 기본요소들만을 포함하고 그 수는 그 자체로서는 많지 않지만 수많은 결합을 형성할 수 있다는 관찰에서부터 바로 구조의 의미가 해명될 수 있었다. 한 체계 안의 각 단위들은 서로 사이의 관계들의 총체에 의해서 그리고 각 단위가 맺는 대립들에 의해서 정의된다. 이것이 Saussure가 주장한 상관적이며 대립적인 실체이다. 그의 관점에 의해 언어사실에 대한 실증주의적 관념은 관계의 개념으로 대치되고 각각의 요소들을 그 자체로서 고려하게 되고 이전의 상태에서 각 요소들의 원인을 규명하는 대신에 각 요소들을 공시적인 전체의 부분으로 고려하게 된 것이다. 바로 원자론적 방법에서 구조주의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언어의 여러 가지 세부사실에 관한 진화과정의 연구에 그 해결점을 제시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던 19세기적 경향에 대한 커다란 반동으로 Saussure의 구조언어학이 제시되었다. 언어는 순수가치체계이며 체계를 중심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적 사실을 고립시켜 보지 않고 항상 전 체계 속에서 보아야 한다. 모든 세부요소는 체계 안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언어는 무엇보다도 상호이해의 목적을 달성하는 사회적 현상인 것이다. 소리와 의미의 상호관계는 의사소통과정에서 중요한 본질을 지닌다. 언어의 진화와 일정한 시점의 구체적 상태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현상인 것이다. 방법론적 관점에서 언어 상태를 연구할 때 역사적 요인을 개입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Saussure에 의한 공시론의 제시는 그 당시 언어연구에 있어서 방법론적 전환을 가져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가 현대 구조언어학의 창시자로서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당연한 사실로 인식된다. 그의 사상만큼 금세기 전 후반을 통해,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하고 넓게 확산된 예를 언어학의 역사를 통해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언어이론은 그만큼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리고 현대 언어학의 제반 문제의 중요한 논의들을 제시해 주었다는 사실에서 그의 언어학사상의 위치는 확고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언어학 연구사, 김방한,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12. 본론 - 『일반언어학 강의』소쉬르는 언어를 가치와 대립의 체계로 정의했는데, 이것을 음성의 층위에 적용했었더라면 그는 음소 이론의 창시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체계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음성의 층위로 확장하는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반언어학 강의』의 두 부분, 즉 음운론 과 음운론의 원리 를 논하기 전에 소쉬르가 과 이란 용어에 대하여, 우리가 현재 이 용어에 부여한 의미와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음성학은 언어 음성의 언어적 기능과는 상관없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음성들을 연구 하지만, 음운론은 음소를 그 최소 단위로 하면서 언어 의사소통 체계 내에서의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언어의 음성을 연구하는 학문 이다. 이와 반대로 소쉬르는 을 음성의 생리학 이라 명명하고, 를 청각영상과 조음운동의 총합 으로 부르고, 이라는 용어를 역사언어학, 즉 음성의 진화에 대한 연구 로 그 내용을 국한 시키고 있다. 결국 이 두 부분은 대부분 음성학에 속하는 사실을 다루게 된다. 음성학은 빠롤의 영역에만 속하며 , 고유한 의미의 언어학의 영역에는 속하지 않는다.음운론의 원리 에서는 음성들을 그 간극(aperture)의 정도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이 분류는 지페르스의 음절 구분의 이론에 대한 비판과, 음성연쇄의 음성적 특징들(내파음과 외파음의 연속)과 음절 구분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는 자신의 분석에 대한 기초로 이용되고 있다. 그 당시 음성학의 상황에 대한 소쉬르의 이러한 고찰은 흥미롭다. 말름베리(Malmberg)는 소쉬르가 음성학자로서 자격이 있다는 견해를 분명히 나타내고 있고, 데 마우로(De Mauro)는 음절 구분에 관한 장(章 )은 현대의 음절 이론에 매우 중요한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논의 중인 이 두 분야에서 독자는 본질적인 사항(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음소의 개념)이 결여 되어 있음을 느낄 것이다.이 음성학 과 음운론의 원리 두 부분의 여러 곳에서 독자들은 소쉬르가 실질적 음성이 아닌, 다른 어떤 기본 단위에 대한 견해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우선 그는 음성들 간의 상호 의존 관계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때는 실질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두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관계와 규칙이 생기는 바, 이는 확인된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p.65){ 『일반 언어학 강의』 번역서의 페이지언어의 음성 기술에 대해 논의하면서 소쉬르는 사실 각 언어는 잘 분화된 일정한 수의 음소를 바탕으로 작용하고 있다. 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차이가 어떻게 기능을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체계의 개념을 청각영상에 적용하여 논의를 개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언어가,마치 양탄자가 여러 가지 색깔의 실로 이루어지는 시각적 대립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예술품인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는 청각인상의 정신적 대립에 바탕을 둔 체계이다. 그런데 분석상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립의 역할이지 색깔이 얻어지게 된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p.46){ 『일반 언어학 강의』 번역서의 페이지여기에서 또한 추상(abstraction)의 개념을 볼 수 있다. 즉 소쉬르는 우리가 /appa/의 두 p를 음성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음절 분석을 위해서는, 즉 빠롤의 차원에서는 첫 p(내파음)와 둘째 p(외파음)를 구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증하고 있다. 또한 그는 발화 연쇄를 분할하면 추상적 상태에서 고찰될 수 있는, 더 이상 요소들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음소는 무엇보다 대립적이고, 상대적이며, 소극적인 본체이다(p.45) { 『일반 언어학 강의』 번역서의 페이지, 이하 동일는 주장에서 란 용어를 사용한 자들이 편집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말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그런데 소쉬르 자신은 이란 용어를 이미 사용한 바 있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면서,소리들이 서로 구별되는 한, 언어행위 주체가 어느 정도 발음을 마음대로 한다.(p.141)는 사실에 대한 한 가지 놀라운 예를 들고 있다.심지어 불어의 r을 독일어의 Bach, doch 등에서처럼 ch로 발음 할 수도 있으나, 독일어에서는 이들 두 요소가 다 인정되고 있어서 구별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p.142)따라서 음소 개념의 싹을 배태하고 있는 것은 이 추상 상태에서 고찰된 나눌 수 없는 단위들 , 즉 일 것이다. 음성과 음소의 구별은 랑그와 빠롤의 이분법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우리가 앞서 지적한 바대로 음소 이론의 기초는 이미 소쉬르의 체계에 대한 정의에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낱말에서 중요한 것은 소리 그 자체가 아니라, 이 낱말을 그 외의 모든 낱말과 구별시켜 주는 음적 차이이다. 왜냐하면 의미를 지니는 것은 바로 이 차이이기 때문이다(p.140)그렇지만 음성의 층위에서 체계의 개념을 적용하는 그러한 작업은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더 이상 발전되지 아니했다. 단지 우리들은 소쉬르가, 음운 이론의 시초부터 트루베츠코이와 현대 음운론에 이르는 과정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고 말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음성학자인 뒤프리슈-데쥬네트(Dufriche Desgenetts)가 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소쉬르는 이 용어를 언어의 재구에서 사용되는 원형(prototype)을 가리키기 위해 자신의 논고 에서 그리고 우리가 아는 바의 의미로 자신의 강의에서 사용했다. 크루체프스키(Kruszewski)는 논고 의 용어를 취했고, 그는 보두엥 드 쿠르트네(Baudouin de Courtenay)와 더불어 음성의 변별적 기능에 대한 연구를 했다. 크루체프스키가 죽은 후 보두엥이 채택한 언어 음성의 심리적 등가물 로서의 음소에 대한 심리주의적 정의는 젊은 트루베츠코이에게 영향을 주었고, 트루베츠코이는 그 후 언어 내의 기능에 의해서만 음소를 정의 하려고 했다.
1. 심장의 구조 및 기능(1) 구 조혈액을 전신으로 송출하는 펌프작용을 하는 심장은 흉곽의 중앙보다 조금 우측에 위치한다. 심장의 크기는 거의 사람의 큰 주먹만하고, 무게는 200~300g 인데, 여성은 조금 가볍다. 심장벽은 3층(심내막, 심근, 심외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장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근육층(심근:myocardium)은 조직학적으로는 골격근과 같은 횡문근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심근은 수축하는 힘이 있으며, 내장이나 조직이 필요로 하는 혈액을 박출하는 강력한 펌프작용을 행하는데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심장내강은 심박중격과 심실중격이라는 벽에 의해 좌우로, 또한 판막에 의해 상하의 심방과 심실로 나누어져 합계 4개의 방(좌-우심방, 좌-우심실)으로 이루어져 있다.(2) 기 능심근은 쉬지 않고 수축과 확장을 반복한다. 심장 내의 혈액은 일정 방향(심방->심실->동맥)으로만 흘러 역류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혈액이 역류하지 않는 이유는 심실의 입구와 출구 사이에 판(또는 판막: valve) 이라는 특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장의 구조2. 스포츠 심장(1) ‘스포츠 심장’ 명칭의 기원Frantzel(1817), Seits(1875) 등은 운동을 일정하게 하면 심장이 확장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Zunts(1888)는 운동후에 심장이 확장하는 동시에 혈액의 농도, 적혈구수, 백혈구수 등에도 변화가 나타나며 또한 호흡중추의 흥분에 의하여 호흡작용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였다. Mieschel(1893) 은 등산할 때에는 적혈구수와 혈색소량이 증가하는 것은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조혈기능 증진에 의한 것임을 논술하였다. 스웨덴의 웁살전 대학교수 Henschen(1895) 은 스키경기대회에 출전한 선수로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는 심장이 확장되고 있다는 예를 들고 이는 연습효과에 의한 것임을 주장하여 이를 ‘스포츠 심장’이라고 보고하였고 이것이 ‘스포츠 심장’ 이라는 명칭이 태동한 기원이 되었다.(2) 스포츠 심장의 특징 및 효과스포츠 심장이란, 형태적으로는 확장이 주체이며 그에 비대를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지구력(동적) 트레이닝에서는 확장을 동만하는 원심성의 비대가 보여지고, 근력(정적)트레이닝에서는 좌심실벽이나 중격의 비후를 주로 한 구심성 비대를 띠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혼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스포츠 심장지구성 트레이닝선수비트레이닝근력트레이닝선수동적 트레이닝 정적 트레이닝원심성 적응구심성 적응기능적 변화↓교감신경 자극↑기능적 변화↓심박수0↑확장기이완속도0↓수축력↑↓심근산소소비0?↑↑일회박출량↓형태적 변화↑↑심용량0 ↓형태적 변화↑↑확장말기용량↓↑벽이 두꺼워짐↑↑↑심근량↑↓0심근량/확장기말 용량↑↑일회 박출량/심용량↓(3) 스포츠 심장의 메커니즘(스탈링 법칙)심한 운동에 필요한 많은 혈액 수요를 충족 시키기 위한 적응 결과로 생긴스포츠 심장에서의 심장의 비대가 어떻게 기능적 결함을 보충하는 것이 되는지는, “스탈링의 법칙” 이라는 생리학적 현상과, “라프라스의 정리” 라는 물리학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스탈링의 법칙세로축은 심실내압 , 즉 심장이 혈액을 내보내는 힘의 심실내압강도라고 할 수 있다. 가로축은, 심근의 길이 이다. (=심장박출량)심장이 크다고 하는 것은, 심근이 길다고 하는 것이되므로, 우측으로 갈수록 심장이 커진 것이다. 그림에서볼수 있듯이 심장이 클수록 혈액을 박출해 내는 힘은커진다. 또, 심장이 크면 그만큼 심실내의 혈액량도 많을것이므로 한번에 박출해 내는 혈액량(일회 박출량)도많아 질 것이다. 따라서 심장이 크다고 하는 것은, 혈액을 심근의 길이박출해 내는 힘을 높인 다든지, 일회박출량을 크게 한다는지하는데 유리한 것이다. 이것이 “ 스탈링의 법칙” 이다.(4) 스포츠 심장과는 다른 “병적 심장비대”스포츠 심장과는 달리 어떤 질병에 걸린 경우에도 심장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심장 판막증이나 고혈압인 경우 등으로, 이와 같은 경우의 심장 비대는 질병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병적 증상이며, 그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이 중에 판막증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 본다면, 판막증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나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판막이 유착(?着) 등에 의해 충분히 열리지 않게 되어, 혈액이 흐르기 어렵게 된 경우로 협착(狹窄) 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폐쇄가 불완전 하여 역류가 생기는 경우로, 폐쇄 부전이라고 한다.협착이 일어나면, 혈액이 흐르는데 방해가 되므로, 필요한 혈액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심장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심장은 크기가 커질수록 보다 강한 힘을 낼 수가 있는데 그 때문에 심장이 비대해 지는 것이다. 또 폐쇄 부전이 있으면, 필요한 혈액을 내보내도 그 일부가 역류해 버리므로, 결국, 유효하게 내보낼 수 있는 혈액량이 적어지고, 따라서 유효한 혈액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역류하는 분량 만큼 더 내보내야 하므로 그만큼 심장은 항상 여분의 일을 해야만 하므로 심장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포츠 심장과 병적 비대 심장의 기능 비교스포츠 심장병적 비대 심장안정 시 심박수운동 시 심박수일회 박출량최대 심박출 능력심박출 분획예비력심장의 크기小小大大大大大大大小小小小大병적 비대에서는 일회 박출량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1분간의 박출 회수, 즉 심박수를 많게 해서 겨우 필요한 심박출량을 확보하고자 한다. 따라서 병적 심장 비대에서는, 안정시부터 이미 상당히 높은 심박수를 나타내며,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심박수가 현저하게 증가 된다.3. 심장 예비력 증가의 필요성인간의 기능은 가지고 있는 힘을 100% 발휘하지 않고 일부만을 사용하더라도 일상생활을 아무 지장 없이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다. 이 여유가 바로 “예비력” 인 것이다.심박 출량을 예로 들면 일상생활에서는 최대 능력의 약 40%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폐의 환기능력은 더욱 적은 비율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운동을 하지 않게 되면 바로 이 예비력이 감소하게 된다. 그 예비력이 일부 감소하더라도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을 초래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느끼기는 어려운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체력의 저하를 자각한다는 것은 이미 예비력이 상당히 줄어든 상태이며 자신은 그 시점에서 비로소 체력의 저하를 느끼게 되었다 하더라도 사태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인 것이다.운동 시에 발휘할 수 있는 심장의 최대능력에서 안정시의 능력을 뺀 것이 예비력인데 아래표의 장거리 선수는 최대능력이 38L 이고 안정 시의 능력이 5L 이므로 33L 가 심장 예비력이다. 여기에 비하여 일반인의 경우는 최대능력이 22.8L 이고 안정 시 능력이 5L 이므로 17.8L 가 예비력이다. 보행 시에는 8L 정도, 기타 일상생활을 불편 없이 수행하는 데는 약 10L 정도의 혈액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으면 심장 예비력의 감소를 자각하기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