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미국유학생 (대학)과 미국인 대학생의 인터넷 이용에 대한 연구.-이용과 충족 이론을 이용한 요인분석과 미디어 대체이론을 적용하여-이용과 충족이론은 개인이 어떤 특정 매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사회적 또는 심리적 요구에 그 매체가 어떤 방식으로 각 개개인을 충족시키는가를 연구한 전통적 연구이론이다. 본 연구는 한국인 미국유학생 (대학생)과 미국인 대학생들이 어떠한 만족을 인터넷을 사용하여 얻고 있는지를 탐구해본 인터넷 이용만족에 대한 연구이다. 이것과 더불어 신문, 방송, 라디오, 영화 등의 기존미디어 이용에 인터넷이라는 뉴미디어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았다. 온라인 이메일 서베이를 통하여 195명의 한국인 미국유학생 (대학)과 182명의 미국인 대학생이 설문에 응답하였다. 요인분석을 통하여 6가지의 인터넷 만족요인이 한국 학생들로부터 도출되었으며, 미국 학생들로부터는 7가지의 인터넷 만족요인이 도출되었다.한국학생: 시간때우기-도피, 오락물 다운로드, 개인효용성 정보추구, 개인 혹은 사회적 상호작용, 환경감시, 리서치.미국학생: 사회적 상호작용, 환경감시 정보추구, 시간때우기-도피, 오락물 다운로드, 개인적 상호작용, 리서치, 인터넷 상거래.t-검증분석을 사용하여 인터넷 만족요인이 여러 demographics 변인들에게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분석하였다. 이 연구를 통하여서 인터넷이 여러 기존의 전통적인 미디어보다 우위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인터넷이 특별히 텔레비전과 라디오 매체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1. 서론최근 들어 급속히 진행되어온 텔레커뮤니케이션과 컴퓨터 기술의 융합은 커뮤니케이션연구에도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소위 말하는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은 인터넷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더욱 미디어학자들에게 다양한 연구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인터넷은 TV나 신문, 또는 라디오와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가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의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 인터넷의 다양한 콘텐츠의 등장과 더불어 이용자들의 인터넷 사용동기와 만족도는 수용자 분석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뉴헤이건과 라파엘리는 인터넷의 ‘변화무쌍함’ 혹은 ‘카멜레온과 같은 성격’ 때문에 이용과 충족이론이 더욱 대두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Newhagen and Rafaeli, 1996).2)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기존미디어의 쇠퇴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게 되면 기존의 미디어를 위협한다는 대체이론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Himelweit, Oppenheim, & Vince, 1958; Schramm, Lyle & Parker, 1961). 라디오의 등장은 신문을 대체할 것이라는 논리와 텔레비전의 등장은 라디오를 또, 케이블 TV와 위성방송의 등장은 기존 공중파 방송을 잠식할 것이라는 논리에 근거한 미디어 대체이론은 많은 연구물들에 영향을 주었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은 위에 언급한 여러 미디어들을 아우르는 통합미디어의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이의 등장은 신문, 라디오, 방송, 영화를 대체하리라는 논의가 많은 미디어 학자들과 미디어 경제 분석가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한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한국정보문화센터에서 (1999) 홈페이지 온라인 조사를 통해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방송에 관한 인식과 이용행태에 대한 조사연구결과를 보면 인터넷방송 이용자중 40%가 기존 공중파방송 시청시간대에 인터넷방송을 이용하고 있으며, 응답자중 40 권혁남, 나은영, 마동훈, 심재철, 1998). 강명신 (2001)의 연구에서는 시간선택성기능은 텔레비전이 가질 수 없는 인터넷만의 독특한 기능으로 수용자에게 인식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닐센 미디어사에 의하면 인터넷을 사용하는 미국가정은 텔레비전 시청시간이 15 2000, Pastore, 1999; Nielsen Media Research, 1996). 과연 인터넷 사용으로 인한 기존 미디어에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하찮게 여겨도 될 정도인가. 미국에서 유학중목들이 추가되었다 (Wenner, 1982; Palmgreen & Rayburn, 1979; McQuail, Blumler, & Brown, 1972, Dimmick et al., 1994, Papacharissi & Rubin, 2000). 앞선 연구결과들이 이 문항들이 구인 타당도 (construct validity)를 갖추었다고 증명하고 있다 (Rubin, Palmgreen, & Sypher, 1994). 27개의 문항은 오락추구동기, 정보추구/환경감시 동기, 인터넷 구매 동기, 시간때우기/도피 동기, 개인적/사회적 상호작용 동기, 개인 효용성 정보추구 동기 등으로 구성되었다. 각 항목에 대해 응답자들은 리커트 5점 척도에 따라 응답하였다. 미디어 대체이론에 대한 문항으로는 7개가 제시되었는데, 예를 들자면, ‘나는 인터넷사용 때문에 TV를 전보다 조금 봅니다’등의 여러 기존매체들에 미치는 인터넷의 영향에 대해 질문하였다. 이것 역시 리커트 5점 척도에 따라 학생들이 응답하였다. 마지막으로 5문항의 인적사항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었다.4. 결과1) Demographics 결과총 응답자수 377명중에 51.7 % (n=195)가 한국 유학생들 (대학이상)이었고, 48.3% (n=182)가 미국 대학생들이었다. 한국 학생 분포에 여학생이 훨씬 미국학생 쪽 보다 적었는데 (한국남학생=110, 여학생=85, 미국남학생=75, 여학생=107), 이것은 남성 우월중심사회인 아시아문화권에서는 남자가 더 많은 외국유학의 기회를 갖는다고 보여 진다. 학부생과 대학원재학생을 두 부류로 나누어서 분석의 틀을 마련했다. 한국대학원생 (n=117)이 한국학부생 (n=78)보다 더 많음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에, 미국 대학원생 (n=29)은 겨우 학부생 (n=153)의 20%도 채 안되었다. 이 것은 많은 한국학생들이 학부를 고국인 한국에서 마치고 미국대학원으로 바로 입학하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다. Demographics총 응답자수 n=377한국 남학생110한국 여학생85미국 남학 (.742)”, “새로운 것을 더 배우기 위해 (.684)” 가 있는데 미국 학생들에게는 두 번째 요인으로 나타난 것이 한국학생들에게는 다섯 번째로 나타났다는 것이 특이할 사항이라 여겨진다.끝으로 리서치 (research) 요인으로, 이 안에는 두 항목이 포함되어 있는데, “학과 공부와 관련된 이메일 사용을 위해 (.733)”, “학과 공부를 위해 (.667)” 등이 이 요인의 항목으로 분류가 되었다. 리서치 요인은 한국, 미국학생 모두에게 거의 마지막 요인으로 분류가 되었다. 인터넷이 학과 공부에 많이 사용되어지며, 또한 많은 도움이 된다는 기존의 연구들과는 상반되는 결과가 이번 연구를 통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학생들의 인터넷이용 동기 요인분석 결과나는 _____를 위해 인터넷을 사용한다.요인 적재량1. 시간때우기/도피 (고유치=9.172).시간을 때우기 위해.지루함을 달래기 위해.내가 해야 할 일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친구 또는 다른 사람들과 잡담나누기 위해.즐거움을 얻기 위해.770.742.629.606.4702. 오락물 다운로드 (고유치=2.119).인터넷 게임을 즐기기 위해.MP3 혹은 음악 다운로드위해.동영상을 사용하기위해.일반적인 다운로드 목적으로.719.645.566.4043. 개인효용성 정보추구 (고유치=1.526).정보교환을 위해.내 취미를 돕기 위해.상품정보를 얻기 위해.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여행관련 예약을 위해.723.682.647.617.4034. 사회적/개인적 상호작용 (고유치=1.35).가족과의 연락을 위해.친구 또는 다른사람의 홈페이지를 보기위해.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인터넷 폰을 사용하기 위해.708.584.506.489.4655. 환경감시 (고유치=1.289).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새로운 것을 더 배우기 위해.742.6846. 리서치 (고유치=1.092).학과 공부와 관련된 이메일 사용을 위해.학과 공부를 위해.733.667(2) 미국학생요인분석 결과 (표3) 미국학생인터넷 구매 요인은 한국학생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미국학생들에 비해 인터넷 상거래는 한국 유학생들에게는 낮 설은 분야라고 생각되어진다. 미국학생들의 인터넷이용 동기 요인분석 결과나는 _____를 위해 인터넷을 사용한다.요인 적재량1. 사회적 상호작용 (고유치=7.57).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인터넷 폰을 사용하기 위해.친구 또는 다른사람의 홈페이지를 보기위해.733.716.560.4492. 환경감시형 정보추구 (고유치=2.659).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새로운 뉴스를 알기 위해.새로운 것을 더 배우기 위해.806.735.6093. 시간때우기/도피 (고유치=1.582).시간을 때우기 위해.지루함을 달래기 위해.내가 해야 할 일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818.767.6364. 오락물 다운로드 (고유치=1.353).동영상을 사용하기위해.MP3 혹은 음악 다운로드위해.일반적인 다운로드 목적으로.오락물을 얻기위해.포르노 싸이트를 들어가려고.794.782.651.497.3855. 개인적 상호작용 (고유치=1.237).가족과의 연락을 위해.친구 또는 다른 사람들과 잡담나누기 위해.742.6086. 리서치 (고유치=1.181).학과 공부를 위해.꼭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733.5937. 인터넷 구매 (고유치=1.037).무언가를 사기위해.여행관련 예약을 위해.759.4313). 인터넷 이용동기 요인에 따른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t-검증 비교각 나라 학생들의 학년 차이 (학부생과 대학원생)에 따라 인터넷 이용동기 요인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와 의 t-검증을 사용하여 비교해 보았다.먼저 한국 학생들에게는, 시간때우기/도피 요인이 가장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학부생 (x=15.36)과 대학원생 (x=10.98)간에 가장 큰 유의적 차이가 있음을 나타내었다. 두 번째로 오락물 다운로드 요인이 큰 유의적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요인은 학부생 (x=12.61)과 대학원생 (x=9.7)의 평균값을 각각 나타내었다.미국 학, p
[ 여름 계절학기 과제 ]10박 11일중국 여행 계획 세우기과목명 : 중 국 의 이 해담당교수 : 이익희 교수님동양어 대학 아랍어과200490030 김 가 희* 여행 계획을 짜기 전에 알아둬야 할 사항들거대한 중국을 여행하기에 앞서 먼저 내게 주어진 시간들과 경비를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짜야할 필요가 있다. 어느곳을 여행하든지, 여행외의 무슨일이든지 생각지 못한 일이 어느순간 갑자기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철저한 계획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아마 적지않은 오차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어느정도의 오차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하며 여행의 계획을 짜게되면 짦은 시간 많은 것을 얻어 올 수 있는 여행이 될것이라 생각한다.국내여행이 아니라 타지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을 수 있기에 여행하고자 하는 나라에 대해 잘 알고, 계획 또한 철저히 세워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이번 과제를 통한 가상의 여행 계획이 되겠지만, 내년 여름 이 계획에 따라 여행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의 10박 11일 중국 여행계획을 세워보겠다우리나라도 여행을 하려면 수일이 걸린다. 거대한 영토의 중국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 관광지들이 많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박 11일, 중국이라는 나라를 여행하기에는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또한 처음 중국을 여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주요 도시 몇곳을 정해 그동안 책으로, 매체를 통해 배워왔던 중국을 몸소 체험하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먼저 여행 목적지로 정한 주요 도시는 “ 북경 - 서안 - 상해 ” 이 세 도시로 정했다.이 도시를 중심으로 주변도시(천진, 항주)도 들려볼 계획이다.* 여행 스케줄인천 - 천진 - 북경 - 서안 - 상해 - 항주 - 상해 - 인천* 1일차 ( 인천 --> 천진 )시 간내 용비 고~12:30분까지입국 절차 마친 뒤 비행기 탑승13:30 ~ 14:15인천 출발, 천진 도착중국과의 시차(1시간)14:15 ~ 15:15입국 심사 및 짐 찾은 후공항에서 나오기경험상 1시간 정도소요될 것으로 예상15:15 ~ 16:30숙소로 이동천진에서 유학중인친구집에서 묵을 예정16:30 ~ 17:00숙소에서 휴식17:00 ~ 18:00저녁 식사18:00 ~ 21:00천진 밤거리 구경하기* 2일차 ( 천진 : 대학교, 수상 공원 --> 북경 : 숙소 )시 간일 정교통수단/비고예 상 경 비07:00 ~ 09:00기상 및 아침 식사09:00 ~ 12:00천진 재경대학교 구경자 전 거12:00 ~ 13:00점심 식사13:00 ~ 14:00수상공원으로 이동버스 이용14:00 ~ 16:00수상공원, 천탑공원요금 : 5元천탑요금 : 50元16:00 ~ 19:00천진역 --> 북경역저녁 해결서안행 열차표미리 예매경좌 또는 연좌석으로(6~ 13元)19:00 ~ 20:00숙소로 이동택시 이용 또는전철이용택시요금 : 35元 (25분)전철요금 : 5元 (40분)20:00 ~ 21:00숙소 도착, 숙소 주변 산책숙소명 : 중국베이스 캠프2인 1실 : 100원/1일(학생할인 20%)21:00 ~일정 정리* 3일차 ( 북경 : 천안문, 자금성, 경산공원 )시 간일 정교 통 수 단 / 비 고예 상 경 비07:00 ~ 08:30기 상 , 준비 끝냄09:00 ~ 12:00천안문 근처 관람( 인민대회당,중국역사박물관,모택동기념당 등 )숙소에서 버스로 이동천안문 : 15元인민대회당 : 15元역사박물관 : 3元모택동기념관 : 무료12:00 ~ 14:00점심 식사 및 휴식14:00 ~ 16:00자금성입장료 : 30元해설 테이프 : 30元16:00 ~ 18:00경산공원걸 어 서요금 : 2元18:00 ~ 21:00베이징 번화가 구경및 저녁 식사왕푸징, 둥단, 시단,류리창 등21:00 ~일정 정리* 4일차 ( 북경 : 만리장성, 경극 구경 또는 시단에서 쇼핑 )시 간일 정교 통 수 단 / 비 고예 상 경 비07:00 ~ 08:30기상, 준비 끝냄09:00 ~만리 장성관광용 버스 이용입장료 : 30元12:00 ~ 13:00점심 식사13:00 ~ 15:00만리 장성15:00 ~ 18:00북경 시내 도착경극표 예매 후시내 구경경극 요금 :좌석에 따라 다름20元 ~ 150元18:00 ~ 19:00저녁 식사19:00 ~ 21:00경극 관람(19:30~20:45 관람시간)21:00 ~ 22:00숙소 도착버 스 로 이 동22:00 ~일정 정리* 5일차 ( 북경 : 이화원. 북경대학교 --> 서안 )시 간일 정교 통 수 단 / 비 고예 상 경 비07:00 ~ 08:30기상, 준비 끝냄체크아웃 후 짐 맡김09:00 ~이화원, 쿤밍 호버스 이용입장료 : 8元유람선 : 왕복 6元12:00 ~ 13:30점심 식사13:30 ~ 16:00북경 대학교버스 이용16:00 ~ 17:00숙소 도착17:00 ~ 21:00저녁 식사 후 북경서역으로21:00 ~북경서역 --> 시안역기차 경와(硬臥)표로약 200元* 6일차 ( 서안 : 화청지 )시 간일 정교 통 수 단 / 비 고예 상 경 비~ 12:00시안역으로아침 해결상해행 기차 경와표 예매12:00 ~ 13:00점심식사13:00 ~ 14:00숙소로 이동14:00 ~ 15:00화청지로 이동버스 이용15:00 ~ 18:30화청지온천탕, 혹은 일반목욕탕 있다화청지 요금 30元일반 목욕탕 요금 20元19:00 ~ 20:00저녁 식사20:00 ~ 21:00숙소로버스 이용21:00 ~일정 정리* 7일차 ( 서안 : 진시황릉, 병마용, 시가지 구경 --> 상해 )시 간일 정교 통 수 단 / 비 고예 상 경 비07:00 ~ 09:00기상, 준비 끝냄09:00 ~ 13:00진시황릉, 병마용서안역에서 306,307번버스 이용진시황릉 요금 : 18元13:00 ~ 14:00점심식사14:00 ~ 16:00명대 성벽버스로 이동서문(실크로드를 바라볼 수 있는 곳) 요금: 10元16:00 ~ 18:00서안 시가지 구경번화가 중심으로걸어서 이동18:00 ~ 19:00서안역으로저녁식사버스로 이동19:00 ~서안역 --> 상해역기차 경와표약 250~300元* 8일차 ( 서안 --> 상해 : 루쉰 공원. 황푸강 )시 간일 정교 통 수 단 / 비 고예 상 경 비~ 13:00상해역 도착다음날 항주행기차표 예매13:00 ~ 14:00숙소로 이동홍화원 민박2인 1실 100원14:00 ~ 17:00루쉰공원버스로 이동요금 : 1元17:00 ~ 19:00와이탄-황푸공원버스로 이동황푸공원 요금 : 15元19:00 ~ 20:00저녁식사20:00 ~ 21:00황푸강 주변 산책걸 어 서21:00 ~숙소로 이동일정 정리버스로 이동* 9일차 ( 상해 --> 항주 : 서호, 악비묘, 영은사 --> 상해 )시 간일 정교 통 수 단 / 비 고예 상 경 비07:00 ~ 09:00기상, 준비 끝냄09:00 ~ 10:00상해역으로버스로 이동10:00 ~ 12:30상해역-->항주역경좌석약 70~80元12:30 ~ 13:00점심 식사13:00 ~ 18:00서호, 악비묘, 영은사7번 버스로 이동 가능서호 유람선: 20元악비묘 : 20元영은사 : 15元18:00 ~ 21:00항주역--> 상해역경좌석, 저녁 해결약 70~80元21:00 ~숙소로 이동일정 정리* 10일차 ( 상해 : 인민공원. 상하이 박물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 간일 정교 통 수 단 / 비 고예 상 경 비07:00 ~ 09:00기상 및 준비 끝냄09:00 ~ 13:00인민공원상하이 박물관지하철 ‘人民廣場’역에서 하차공원 요금 : 1元박물관요금 : 학생5元13:00 ~ 14:00점심 식사14:00 ~ 17:00대한민국 임시정부버스로 이동17:00 ~ 19:00상해 시내 구경- 난징루 일대난징루 일대19:00 ~ 21:00저녁 식사 및황푸강 산책걸 어 서21:00 ~숙소로 이동일정 정리* 11일차 (상해 : 다관원, 상하이 민족 문화원 --> 인천 )시 간일 정교 통 수 단 / 비 고예 상 비 용07:00 ~ 09:00기상 및 준비 끝냄09:00 ~ 11:00체크 아웃 후다관원과 근처의상하이 민족 문화원다관원행 버스 이용다관원+민족 문화원입장료 : 60元11:00 ~ 12:00푸동 공항으로버스 이용12:00 ~ 14:00출국 절차 후비행기 탑승14:00 ~ 17:00인천 도착(시차 1시간 )* 과제와 더불어 수업을 마치며사실 이 10박 11일의 여행 계획서는 자료들을 보아가며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을 위주로 짜 놓았기에 시간면에 있어서나 교통 수단에 있어 많은 오류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계획을 짜면서 내가 정말 중국을 11일 동안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이전보다 중국이란 나라가 가깝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시절 중국어를 전공하면서부터 중국이란 나라를 배워오면서 중국어만 공부했지 그 나라의 문화, 역사, 정치, 경제 등을 등한시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계절을 통해 좀더 중국에 대해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경제부분에 있어서는 앞으로 서적이나 여러 매체들을 통하여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머지 않아 단지 숙제로만 짜 보았던 이 여행 계획서가 정말 나의 중국 여행의 발판이 될 날을 기대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수업을 마무리 한다.* 참고 도서 : 중앙 M&B 세계를 간다 China
[ 목 차 ]0. 들어가기 전에1. 시작하는 말2. 이보 안드리치의 소설드리나 강의 다리- 이보 안드리치에 대한 소개-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3. 끝내는 말0. 들어가기 전에발칸 유럽 이라는 지역은 여름방학이 시작됐을 때만해도 내겐 생소한 곳이었다. 물론 크로아티아든지 불가리아, 보스니아 등의 나라 이름은 들어는 봤지만, 정확히 그 나라들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계절학기 수업을 통해 발칸유럽 의 이곳저곳을 배운 지금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내게 큰 매력적인 나라로 남겨지게 되었다.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 했었지만, 내가 모르던 나라를 알게 되었다는 것은 내게 정말 필요한 공부가 되었고, 도움이 되었다. 이 수업을 기회로 나는 세계를 조금 더 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수업의 마지막 과제인 레포트. 사실 주제가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엇에 써야 할지 많이 망설이게 되었다. 고민끝에 우리의 역사에는 없는 민족 분쟁 이라는 소재를 택하게 되었다. 나는 이번 겨울 YMCA에서 주최하는 필리핀 지역 캠프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필리핀의 문화, 사회, 역사등을 공부, 체험하며 느꼈던 것은 서로 다름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바르게 바라볼 수가 있고, 또한 우리와는 다른 필리핀을 있는 내 사고 방식으로가 아니라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민족 분쟁은 어쩌면 우리에게는 낯선 분쟁의 형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을 다시 한번 고찰 함으로써 어쩌면 발칸유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주제를 선택하기로 했다.1. 시작하는 말우리는 흔히 우리 민족을 한민족, 또는 단일 민족 국라라 일컫는다. 때문에 한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이 나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우리는 당연히 여긴다. 하지만 이러한 예는 세계 여러 나라를 살펴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까이 중국의 경우를 잠깐 살펴보면, 중국 전체 구성원의 93%는 한족이지만 나머지 7%는 55개의 소수 민족이 차지하고 있다. 물론 수적인 면에서는 한족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이라는 한 나라는 56개의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다민족 국가임에 틀림 없다. 미국 또한 인종의 모자이크라 불릴 만큼 다양안 인종,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한데 섞여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를 갖고있는 민족들이 한데 모여 살다가 보면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발칸지역의 여러 나라들의 분쟁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민족 분쟁이 있었던 여러 나라들 중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택하였다. 왜냐하면 이보 안드리치가 이러한 민족 분쟁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 썼던 드리나 강의 다리 라는 작품이 참으로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평화를 바랬던 그의 정신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드리나 강의 다리 에서 어떤식으로 민족간의 조화를 지향하고자 했는지 알아보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간략한 역사와 향후 어떤 전망이 있는지, 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토대로 전개하려 한다.2. 이보 안드리치와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드리나 강의 다리 라는 작품으로 196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이보 안드리치는 유고슬라비아(지금의 보스니아) 북부 트라브니크시에 가까운 작은 마을에사 태어났다.처음에는 사라예보 대학에서 수학한 후, 자그레브, 빈, 크라코, 그라츠의 여거 이름 난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였다.학생시절 그는 집이 가난해서 대개는 고학으로 일관하였다. 또한 보스니아 청년 민족 운동이라는 사회 활동에 참가하였으며 문예 잡지 문학의 남쪽 을 1918년에 자그레브에서 간행하기도 하였다.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을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드리나 강의 다리 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민족의 장래를 논하는 학생들의 경우와 같이 그 자신도 반오스트리아 청년 혁명 운동에 가담해서 여러 번 투옥된 경험이 있다.전쟁이 끝나고 안드리치는 외교관으로서 로마,그라츠,부카레스트,마드리드,제네바에 있으면서 외교 활동을 벌였다.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점령하에서 그는 베오그라드의 자택에 들어앉아 아무데도 관여하지 않고 외교계에서 은퇴하고는 베오그라드에서 문필 생활에 들어갔다. 드리나 강의 다리 도 이 때 쓴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작품을 발표할 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 집필된 것은 드리나 강의 다리. 트라브니크 연대기, 아가씨 의 보스니아 3부작이다.전쟁당시에 유고 지하 운동에 동조했던 그는 1946년부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의 입법부 의원으로서 오랫동안 정치에 참여했다. 또한 유고 문학자 동맹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안드리치가 최초로 문학자로서 인정을 받은 작품은 산문시 엑스폰트 이다. 이 작품은 1918년에 발표되었는데, 격조 높은 참신한 감각과 예리한 필치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20년에는 동란 을 발표하였고, 그 해 아리아 제르젤레스의 여행 도 발표하였다.안드리치의 문학적 시점은 그가 태어나서 자란 보스니아의 뒷골목이나 시장 같은 곳에 있으며, 풍부한 역사적 실중 위에 서서 민족,신앙,풍슴이 복잡하게 교착한 보스니아의 인간 생활에 두고 있다. 그들 생활의 궤도,규제 등을 안팎으로 분석하고 규정짓는 그의 안목은 민족과 역사와의 관계, 그 속으로 살아가는 인간 생활의 의미를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조명하는 태도를 가졌다.이처럼 안드리치는 일찍이 민족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민족을 사랑하기에 희생할 수 있는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이번 과제로 안드리치의 작품에 대해서도 알아보게 되었는데, 드리나 강의 다리 와 같은 장편 소설보다는 단편소설들이 많이 보였다. 그가 쓴 세 편의 장편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 , 트라브니크의 연대기 와 아가씨 는 모두 2차 대전중에 쓰여져서 1945년에 출판된 작품들로, 모두 민족의 역사와 시대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특히나 드리나 강의 다리 는 안드리치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이다.그는 우리사회에서 사람들간에 양분되어 있거나 제각기 흩어져있는 것들을 서로 이어주고 화합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다리 라고 생각하고,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산물은 다리 라고 할 정도로 실제 비쉐그라드의 드리나 강 위에 놓여진 다리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소설을 집필하였다. 일반 사람같았으면 그냥 다리라고만 생각했을 텐데, 역사의식이 투철한 안드리치에 눈에는 두 민족을 이어주는 매개체라 생각한 것이다. 이 소설은 실제 드리나 강 위에 세워진 다리의 연대기, 다리 옆에 있는 마을 카사바에 대한 연대기, 혹은 비쉐그라드시의 연대기로 해석 될 수 있는 작품이다.드리나 강에 세워진 다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다리가 세워진 1516년부터 1차대전 당시 폭파될 때까지 300여 년에 걸친 이야기다. 처음 다리가 세워질 당시의 사람들의 풍슴 , 문화, 종교 등의 다리 주변에서 펼쳐지는 각종 인간상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 전체적인 면에서는 인생무상적인 면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 이유로서는 작품속의 화자는 사람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적으로 그러한 느낌을 주는 것은 드리나 강을 통해 보여지는 인간군의 삶이기 때문이다. 즉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드리나 강이 의인화되어 역사를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우리 역사 속에서 한반도의 분리 이후 철통과 같은 경계 속에서 지켜보는 비무장 지대의 정적과도 다르지 않다고 단언하고 싶다. 그 수많은 전쟁과 살육의 아픔 속에서도 유유히 흘러가는 드리나 강의 모습을 통하여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평화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소설의 처음 아홉 장에서는 터키인들이 보스니아를 지배하는 시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기독교 세력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보스니아를 지배했던 시기를 담고 있다,종교로 나뉘어진 이곳 주민들이 친해지는 장면이 나온다. 천재지변으로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하자 기르탄의 집에 모여 앉았는데, 터키 사람들은 터키 방식대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방식대로 앉아있었다. 그 마을은 터키 구역과 기독교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각 구역의 우두머리들은 각자 자기들의 시민을 피신시키느라 온몸이 흠뻑 젖었다. 이 때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같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터키인들과 기독교인 유태인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자연의 힘과 그들의 공통된 불행의 짐이 이 모든 사람들을 가까이 모아놓았으며, 적어도 오늘 저녁만큼은 종교와 종교를 갈라놓은, 특히 터키인과 라야(비회교도인을 지칭)를 갈라놓는 불행한 갭을 없앴다. 한 장면이 또 있다. 오스트리아군의 정식 입성이 정해졌을 때, 오스트리아 사령관이 이 도시로 들어오는 날, 세 종파의 대표들이 나와 직접 그를 영접해야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더, 다음날 정오 까피야에서 회교도의 물라 이브라힘 호좌, 정교회장 니콜라, 라빈 다비드 래비가 오스트리아 사령관을 맞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에서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의지하고 있었다.
First of all the government should make free health care system for homeless people. Many homeless people have health problems because they do not live sanitarily. For example, a man was a homeless person because he lost his job ,money, and family after IMF crisis in Korea. He did not take care of himself. After all, he got flu, but he could not go to the hospital. The flu was spread out to the many people around him. Many people became sufferers. Obviously, homeless people should be taken care of by the government's free health care program.
[보스니아 내전]보스니아 내전1990년 11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에서 최초의 자유 선거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공산주의 그룹은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 집단을 대표하는 두 개의 민족주의 정당과 무슬림 집단 정당에 완패하였다. 즉 크로아티아 민주 공동체(HDZ)는 44석, 세르비아 민주당(SDS)은 72석, 이슬람 민주 행동당(SDA)은 86석을 차지하였다. 이슬람 민주 행동당의 지도자인 알지아 이제트베고비치(A. Izetbegovi )는 과거 공산 정권 시절에는 정치범이었지만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그러나 크로아티아 민주 공동체와 이슬람 민주 행동당이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1991년 10월에 유고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국제적인 승인을 얻기 위해 보스니아 정부는 1992년 2월 독립에 관한 국민 투표를 실시하였는데 투표자 99%의 찬성을 얻어냈다.그러나 세르비아계는 이 선거를 보이콧하였고 세르비아계 의원들은 사라예보에서 동쪽으로 20km 떨어진 팔레(Pale)에서 세르비아인들 자신의 의회를 구성하였다. 또한 유고 연방 지도부에서도 보스니아 내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들을 대량 학살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을 자극하였다.1992년 4월 6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EC(유럽 공동체)와 미국으로부터, 5월에는 UN(국제 연합)으로부터 승인을 받았지만 이러한 조기 승인은 유고 연방 공화국들의 분리를 가속화시킨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그후에 세르비아계 저격병들이 사라예보에서 평화 시위를 하는 비무장 민간인에게 발포를 함으로써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결국은 내전으로 발화되었다. 내전의 양상은 보스니아 정부군과 크로아티계가 연합하여 세르비아계와 싸웠는데, 각 진영은 크로아티아 공화국과 신유고 연방으로부터 직접·간접적인 지원을 받았다.이 때 세르비아계는 보스니아 북동쪽의 무슬림 주민들을 추방시켜 세르비아계 거주 지역과 세르비아 공화국 본토 사이 약 300km에 이르는 지역에서 `인종 청소'를 감행하여 인종적으로 깨끗한 지역으로 만들려 하였다. 또한 테러범들은 마을에 들어가 약탈하거나 집을 파괴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만행은 세르비아계 소속의 포로 수용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세르비아계가 자행한 즉결 재판에 의해 사형, 고문, 강간 등이 저질러졌던 것이다.1992년 5월 UN은 세르비아계와 몬테네그로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채택하였고 EC-UN 공동 회담을 비롯해 여러 차례의 평화 회담이 개최되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1993년 1월 제네바 회담에서 EC 협상자로 나선 오웬(Owen)과 UN 대표자 벤스(Vance)가 내놓은 제안에서는 보스니아를 10개의 인종에 근거하여 자치주로 나누자고 하였다. 그러나 보스니아 정부는 세르비아계가 `대세르비아' 건설의 꿈을 버리지 않고 또다시 `인종 청소'를 자행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벤스-오웬안을 거부하였다. 또한 1993년 5월에는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개선된 벤스-오웬안을 거부하였다.그후에도 국제 사회는 수차례에 걸쳐 보스니아 평화 협상을 추진해 왔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1995년 5월 이후 미국 주도하의 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군이 대대적으로 세르비아계의 점령지에 대해 공세를 퍼부었고, 마침내 1995년 11월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의 영토 51%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는 이슬람교-크로아티아(보스니아 연방)와 나머지 지역을 통제하는 세르비아계의 스르프스카 공화국이라는 2개의 정치 체제로 현재의 공화국을 분할하며, 현재 인근 국가들과의 국경선은 그대로 인정한다는 점을 골자로 한 평화 협정을 이끌어 냈다.현재 평화 협정은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으나 전범 처리 문제 및 난민 처리 문제가 난제로 남아 있으며 각 민족들의 의견 수렴이 제대로 안 된 영토 분할은 향후 또다시 일어날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개요구유고연방이 해체될 즈음인 1992년 3월 3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독립의 선포는 곧 분쟁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독립을 주도한 세력은 회교도가 중심을 이룬 보스니아 이슬람 정부와 이들 세력에 협조하는 보스니아내 크로아티아인들이었다. 그러나 보스니아내 약 30%를 차지하는 세르비아인들은 보스니아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유고연방에서 독립의 가부를 묻는 선거에 불참하면서 보스니아 독립선언 다음날인 3월 4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1992년 4월 6일 EU가 보스니아의 독립을 승인하자 보스니아는 본격적인 내전상태에 돌입하였다. 유고연방군의 지원을 받는 세르비아계는 내전 초기 보스니아 영토의 약 70%를 일거에 장악하는 기세를 올렸다.보스니아 사태가 위험 수위를 넘자 UN은 동년 5월 신유고연방에 대한 전면적인 금수조치, 항공봉쇄, 자산동결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제재 조치를 취하였다. 신유고연방군은 곧 휴전에 합의하였지만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는 휴전에 동의하지 않은 채 전쟁을 계속하여 갔다. 냉전이 종식된 후의 유럽에서 냉전 시에도 없었던 민족간의 유혈사태가 내전으로 발전했음에도 UN은 군사행동의 가능성을 시사할 뿐 직접적인 군사행동은 취하지 못했다. 그러나 보스니아 내전중 세르비아계는 소위 '인종청소'라 불리는 만행을 저지르자 여태껏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온 UN도 1992년 8월 군사개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3만 여명의 평화유지군이 보스니아에 파견되었으나 평화유지군의 역할은 미미하기만 하였다. 내전은 휴전과 재확전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되풀이되었다.이러한 상황아래 러시아는 1995년 3월 보스니아사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 세르비아계를 암묵적으로 지원하고 있던 러시아는 세르비아공화국이 보스니아 회교정부와 크로아티아정부를 승인하는 대가로 세르비아에 대한 UN의 제재를 해제하자는 것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미국의 주도하에 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 내전 당사국들과 미국, EU, 러시아 등 중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1995년 11월 1일 미국의 데이턴에서 평화협상이 개최되었다. 난항을 거듭하던 평화협정은 1995년 12월 데이턴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보스니아에 평화가 정착되는 시금석을 마련하였다. 이로써 2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고 230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킨 보스니아 내전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평화협정 체결후 미국과 독일이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에 대한 경제제재 및 무기금수해제 결의안을 24시간 내에 채택해 줄 것을 UN에 요청하였고, NATO도 6만 명의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투입할 차비를 갖추었다. 다국적군중 미군은 최대 병력인 2만 4천명을 투입하게 되고 영국은 1만 3천명을 투입하였다. 또한 러시아도 2천명 이상의 병력이 투입되어 냉전 이후 처음으로 미촵러가 군사작전을 갖게 되었다.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과 러시아는 보스니아에서 평화유지를 위해 세르비아의 협조가 최우선이라 보고 밀로셰비치 세르비아대통령을 적극 지원하였다. 한국도 OSCE 협력 동반자국으로서 1996년 9월 보스니아 선거시에 선거감시단으로 12명을 파견하였으며 1998년 9월에 실시되는 보스니아 선거에 감시단을 파견하였다.▲ 의미 및 영향구공산권의 몰락 이후 유럽에는 항구적인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인종, 영토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발칸반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구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 인위적으로 획정된 국경에서는 여러 민족간의 갈등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쟁의 요인들은 냉전 시에는 잠재적으로만 존재할 뿐이었지만 냉전이 종식되고 나서는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보스니아사태는 발칸반도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난 분쟁이라 하겠다. 동 분쟁이 시작되고 나서 발칸반도에서 여러 분쟁들이 표출되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유럽 안보 전체를 위협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추후전망보스니아는 민족촵종교적 이질감이 강하고 중앙정부의 권위가 약하여 통일된 주권국가로서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고,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를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따라 평화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가 결정될 것이다.▲ 참고자료△ 주요 일지1993년8. UN 및 EC의 2차 평화안 발표:3개 공화국과 3개 민족으로 구성되는 보스니아공화국연합, 영토배분(세르 52%, 회교31%, 크로아17%), 조인 7 일내 모든 전투중지, 회교계만 반대1994년3.1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정부는 러시아 외무장관 코지례프와 회담 후 국가연합(Confederation)에 합의7.5 미. 영. 러. 불. 독 5국, 내전종식 위한 민족별 영토분할안 제시. 수락여부 결정에 3주시한 부여 '94.8.30 세르비아 투표에서 90%거부1995년1.1 보스니아 내전 당사자 4개월간 휴전 합의3.20 보스니아 내전 휴전 3개월 만에 재격화/ 회교 정부군이 3개 전선에서 총공세 개시 세르비아계 대규모 반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