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이용한 건축가 및 건축물 분석머리말창세기에서는 신의 창조 역사 가운데 최초의 작업으로 '빛'을 기록 하고 있다. 창세기란 이름이 뜻하는 바 그대로 이 책은 '시작의 기록' 이다. 그 시작의 기록에서 신이 첫 번째로 만들어낸 '빛'에는 우리의 이해나 상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중요성이 담겨 있다. 빛이 가진 여러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대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빛은 단일요소로서, 공간을 정의하거나 형태를 명시하는데 있어 가 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빛이 없이는 공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불가 능하기 때문이다.치첸잇차 카스티요 피라미드(A.D 10-11세기)이 피라미드는 현존 하는 피라미드 중 가장 보존이 잘 된 멕시코의 피라미드다. 정사각형의 한 쪽 길이만 55.3m, 높이 23m에 이르는 9층의구조로, 사방에 각각 91개의 계단이 만들어져 총 계단 수가 무려 364단에 이른다. 여기에 꼭대기에 위치한 제단을 더하면 태양력 1년의 날수와 같은 365단이 된다. 특이한 것은 피라미드의 북쪽 면 양쪽 난간이 시작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입을 벌린 거대한 뱀의 형상이다.매년 춘분(3월20일)과 추분(9월21일)이 되면 마야인들은 큰 제사를 지냈는데, 바로 이때 9개 층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에 빛의 그림자가드리워지면서 마치 살아있는 뱀이 꿈틀거리며 하강하는 것 같은 기적의 장면이 펼쳐진다. 10세기경에 이미 마야인들은 자연광과 물질이 함께 만들어내는 시간의 현상적 차원을 인식하고 신전의 디자인에 적용했던 것이다.판테온(로마, A.D 120-124)로마에 위치해 있는 판테온은 본래 이교도의 신전이었으나 기원 후 608년 교황 보니페이스 4세가 이 신전을 성모마리아와 순교자들에게 봉헌하면서 가톨릭 성당으로 바뀌었다. 판테온은 자연의 주기를 직접적으로 건축 공간에 반영한 최초의 고대 건물로 여겨진다.로툰다라 불리는 판테온의 실내 공간은 원통형에 돔을 올려놓은 형상을 하고 있는 데, 원의 기하학적 순수함이 거대한 스케일과 결합하여 건조한 날씨 때 문에 우물의 물이 금새 말라버리는 것을 우려하여 다른 곳보다 우물을 깊이 파고, 그 아래로 내려갈 수 있 도록 계단 구조물을 만들게 된 것이 다.정자 형태의 입구를 가진 바올 리는 입구에서부터 맨 아래 우물 까지 총 지하 5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 지하 우물에서 하늘을 향 해 올려다보면 판테온의 오클루 스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양 한 빛의 형상을 만나게 된다. 르 코르뷔지에가 인도의 챤디가르 국회의의사당을 설계할 때 이 바 올리의 우물에서 영감을 받아 국 회의사당 내 회의장 천장에 빛 우물 형태를 설계하였다.MIT 크레스지 채플(보스턴, 1953-1955)건축가 에로 사리넨이 설계한 MIT 크레스지 채플은 자연광을 통한 현상성을 현대에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건물로 꼽을 수 있다. 자연광을 건축 디자인에 적극 사용하여 종교 건축의 신성함을 창출해 냈다. 또한 `원`과 `사각형`을 기초로 설계하여, 두 도형간의 조화와 대비 효과를 잘 살려내고 있다.복도 공간, 낮고 긴 구조의 밝은 복도 공간과 안쪽 예배당의 어둡고 높은 공간이 대비를 이룬다. 복도 양쪽의 현대적 스테인드글라스 유리 사이로 외부 전경이 언뜻 비치지만 유리의 오묘한 색으로 인해 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를 느낄 수 있다.원통형의 예배당은 상대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지만 제단 위 원형 천창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으로 인해 신성하고 신비한 공간으로 탈바꿈 한다. 원형 기단 위에 놓인 백색 대리석, 그 위의 원형 천창으로 쏟아지는 빛, 길다란 줄에 매달린 금속 조각들이 어둠 속에서 제단의 신성함을 극적으로 연출한다.또 하나의 빛이 만든 극적 효과는 예배당의 굽이치는 벽과 하부 창에 있다. 이 벽의 하부는 외부 연못에 반사된 빛이 들어와 아래서 위로 공간을 희미하게 비치는 장치다. 이 빛은 벽면의 굴곡을 따라 물결의 흔들리는 표정을 투사하며 마침내 신비한 공간을 완성한다.터스키지 채플(알라바마주, 1969)터스키지 채플관은 폴 루돌프 가 설계 하였고 빛을 주제로 하 고 있다. 여러 개의 꺽은 직광을 구현한 건물이다. 이 교회의 목사인 로버트 슐러는 예배 공간에 서 신이 함께 존재함을 느껴야 한다며, 최대한 투명하면서 하늘을 향해 열린 공간을 건축가 에게 주문하였다.입체 트러스를 사용 함으로서 예배당 내부의 모든 면에는 정사면체의 기하학 적 단위들이 무한이 반복되고, 이로써 실내는 통일성과 확장성을 갖는 개방적 인 공간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또한 강 단 오른편에 위치한 거대한 개폐창을 통 해 예배자들은 미세한 공기의 자연스러 운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빛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투명한 시공 간은 예배당을 한결 신성하게 만든다.수정교회는 이같이 건물의 투명성을 통해 종교적 상징성을 완전하게 이루어 냈다. 주간에는 공간 내부로 자연광이 유입되고, 반대로 야간에는 교회 내부의 인공조명이 바깥으로 반짝이며 방사된다. 또한 인공 냉방 시설을 거부하고 교회 강당 뒤편에 27미터 높이의 거대한 문을 두개 설치하여 자동 개폐장치로 움직이게 함으로써 자연환기를 가능하게 했다. 이처럼 빛, 바람 등의 비물질적 자연 요소를 공간 창조의 소재로 활용함으로써 자연적인 것을 환상적인 세계로 재창조한 존슨의 작업은 공간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킴벨 미술관(텍사스, 1966-1972)킴벨 미술관은 칸의 여느 건물과 같지 않게 빛에 대한 신비스러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을 가지 고 있다. 미술관의 구조는 평행하는 여섯 개의 반원형 볼트로 구성되어 있다. 태양광은 각 볼트의 길이 방향으로 나 있는 좁은 개구부를 통해 건물 안으로 직접 들어오고 있다.상부 중앙의 틈새로 들어온 빛은 보시는 바와 같이 둥근 원형의 면에 의해 천장으로 반사되며, 실제 미술관 내로는 직사광선이 아닌 간접광선만이 스며들게 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직사광선을 차단함과 동시에 미술관 내부에서도 외부의 기상상태를 알 수 있을 만큼, 외부와 내부의 공간을 연결합니다.빛의 교회(오사카, 1988-1989)건물은 직경 5.9m의 원이 3개 내접하는 집방체에 15도 비스듬하게 배치한 벽이 관입하는 구성으로교회 (훗가이도, 1985-1988)건물은 직경 5.9m의 원이 3개 내접하는 집방체에 15도 비스듬하게 배치한 벽이 관입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비스듬한 벽은 본체보다 18cm 낮게 완전히 자립하여 공간을 예배당과 입구로 분절한다. 입구에서 비스듬한 벽에 뚤려진 폭1.6m,높이 5.3m의 개구부를 빠져나가 180도 반전하면 거기가 예배당이다. 정면의 벽을 향하여 레벨은 계단상으로 낮아진다. 그 벽에는 십자형으로 슬리트가 뚫어져 아침 햇살을 받아 빛의 십자가를 현출시킨다.아랍문화원(파리, 1987-1988)조리개 형태의 자동 빛조절장치는 아랍 전통문양을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전통과 현대의 이중 어휘를 보여주고 있다.복층으로 구성된 아랍문화원의 열람실, 왼쪽 남쪽창의 자동 빛조절장치가 빛의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종합유전학연구소(미국 프린스턴, 2003)2층에서 내려다본 연구소의 홀 내부전경홀은 연구원들의 자연스러운 미팅, 회의, 가벼운 식사 등을 지원하는 비어 있는 공간이다. 외부의 빛조절장치를 통해 들어온 다이아몬드 빛 그림자는 시시각각 내부공간의 표정을 다양하게 변화시킨다. 수직판 형태의 차양막은 관람자의 시점의 변화에 따라 외부공간을 열어 보이기도 하고, 닫아보이기도 한다.1층에서 본 공간 전경. 하루종일 변화하는 빛의 일렁임을 느낄 수 있다. 마치 바닷물 속에서 바라보는 빛 그림자의 표정과 같다. 중앙에 자리한 검은색 조형물은 전체 공간에 악센트를 줄 뿐만 아니라 내부에는 테이블과 의자 등이 놓여있어 미팅룸으로 이용된다.로비하우스(미국 시카고, 1909)로비하우스 거실 전경. 오른쪽 리본창을 통해 들어오는 반복적 리듬의 자연광은 거실의 벽난로 뒤편의 식당공간을 빛으로 연결하고 있다. 특히 라이트는 통합적 연결의 성취를 위하여 벽난로 중앙상부를 뚫어 공간의 연속성을 극대화 했다. 천정에 독특하게 디자인된 연속된 공모양의 조명기구는 야간에도 두 공간을 연결하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리본창, 창유리의 스테인드글라스, 천장, 조명기구, 바닥의 카펫까지. 예배당의 밝음이 극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중세교회에서부터 사용되었던 전실의 개념의 회랑공간을 통해 예배자의 마음을 준비케 한다.애리조나 빌트모어 호텔(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1926-1928)중층에서 바라다본 호텔의 로비. 로비 벽면의 일부가 조명 블록으로 매입되어 빛으로 반짝이며, 반복적으로 확장되는 공간감을 만들고 있다.탈리에신 웨스트(미국 애리조나 스코츠델, 1937-1938)설계실 내부. 설계실의 공간전체가 다양하게 반짝이는 빛의 색과 표정을 갖고 있다. 전체 공간을 이루는 목재 프레임의 반복, 조명등의 반복 배치 등으로 이곳에서도 공간의 확장성을 창출해낸다.클래스 스튜디오 실내공간 전경. 고창, 천창을 통해 공간은 빛으로 충만하며 입구에 색으로 반짝이는 색유리 도어가 다이내믹한 표정을 만들고 있다.노트르담 뒤 오 성당(프랑스 롱샹, 1950-1955)남쪽 벽을 통해 빛이 확산되는 모습. 밖에서 보았을 때는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빛의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다. 작은 창문의 채색유리를 통과한 빛이 화려한 색상으로 내부공간을 채색하여 공간을 극적으로 만들고 있다.북쪽 탑의 상부 모습. 북쪽 탑의 개구부는 낮 시간동안 고른 조도의 빛을 모아 아래쪽 예배당에 투사하여, 차분하고 조용한 공간을 연출한다.라 투레트 수도원(프랑스 이뵈스티르라흐브레슬, 1957~1960)주 제단 쪽을 바라다 본 공공예배당의 실내 모습. 어두움 속에 수직, 수평의 빛선들이 공간을 신비롭게 정의하고 있다. 중앙제단의 왼편으로 성소공간, 오른편으로는 성구보관실이 엿보인다.공공예배당에서 바라다본 성소 공간의 모습. 어두움 속에 빛과 색상이 어우러져 성스러운 드라마를 연출한다.유니테 다비타시옹(프랑스 피르미드, 1965-1967)옥탑 층에 위치한 초등학교의 수직차양. 모듈러의 비례를 적용해 디자인한 수직 차양에는 음악적인 리듬이 깃들어 있다. 그 덕분에 공간은 빛의 리듬으로 가득 채워진다.복층으로 구성된 아파트세대의 내부. 위층에서 발코니 쪽을 바라본 모습. 브리세 솔레이를 통해 균질화된 빛}
□ Herman Melville의 「Moby Dick」을 읽고 (작품의 감상)흰 고래 '모비 딕'을 잡는 포경선과 그 배 안에 승선한 사람들의 내용을 쓴 소설이다. 멜빌이 쓴 이 소설은 흰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선장 에이허브의 배 피쿼드호를 배경으로 씌여졌다. 포경업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각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내? 외적 묘사는 바다와 고래의 모습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문체가 돋보였고, 또한 많은 경험을 통해서 써 내려갔기 때문에 이야기의 구성이 매우 탄탄하다고 느꼈다.책을 읽으면서「모비 딕」이라는 뜻은 ‘흰고래’(백경)이라는 뜻이고, 고래잡이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었다. 영문학자들이 이야기 하듯이 이 책엔 하나의 숨은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너무나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언젠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을 읽었던 적이 있다.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이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85일째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고기와 사투를 벌인 끝에 포획에 성공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어들에게 모든 살덩어리를 빼앗기는 비참한 결과를 맛본다는 내용이다. 이와 비슷하게 「모비 딕」의 아합 선장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추격했던 백경은 단순히 선장의 다리를 빼앗아간 난폭한 고래이거나 자본주의에 필요한 돈으로 비춰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선장에게는 비밀스러움이 가득한 악의 화신으로 보여진다. 이와는 반대로 작품의 화자인 이스마엘에게는 모비딕이 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이 책속의 고래나 인물들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중에서 한 가지만 이야기 하자면 인간의 ‘욕망’이 적절하게 조절되지 않으면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다른 한편으로는 멜빌이 고래잡이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인디언, 식인종, 흑인, 그리고 자신이 속한 백인까지 다양한 부류의 인간을 하나로 묶으려 한다는 점에 주목을 할 수 있었다. 피쿼드호는 미국을 상징하며 다양한 부류의 선원들은 그 국민 작품을 쓰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산과 바다에 끼여 있는 뉴잉글랜드는 결코 기름진 땅이 아니었다. 따라서 개척과 모험심이 충만한 주민들은 대륙의 중부나 서부도 돌진하고, 한편으로는 대서양으로 밀고 나갔다. 포경은 당시 큰 사업이었으며, 그들은 세계 제일의 포경업자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포경선 선원이기도 했던 멜빌은 자신의 체험을 기초로 고래와 포경에 대한 수많은 기록과 문헌을 수집한 후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따라서 세게 제일의 포경 대국 미국을 바탕에 깔지 않고는 거대한 고래를 주역으로 등장시킨 그런 힘차고 특이한 상상력은 창조될 수 없었을 것이다.「모비 딕」은 흔히 볼 수 있는 고래잡이의 모험담도 아니요, 멜빌이 그 이전에 즐겨 쓰던 반자전적 소설도 아니었다. 멜빌 스스로가 밝혔듯이, 「모비 딕」은 으로 당시의 일반 독자들이 즐겨 읽을 만한 종류의 소설이 아니었다. 그 결과 독자들은 「모비 딕」의 내용과 함께 그 작가까지도 차차 멀리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완전히 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그와 같은 결과를 멜빌이 몰랐다거나 무시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호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꼭 쓰고 싶은 일들은 모두가 써서는 안 되는 것들뿐이니 책이 잘 팔리기는 다 틀린 일이지요. 그렇다고 달리 쓴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러니 나의 작품은 완전한 잡탕이요 서툰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그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책 「모비 딕」은 그저 초고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초고의 초고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모비 딕」은 멜빌의 영혼 속의 무한한 침묵이 마침내 밖으로 스며 나온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감명깊게 읽은 문장? 퀴퀘그가 백인을 구한 후에 ‘세계 어디로 가나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법이야, 우리들 식인종이라고 해서 기독교도를 살리지 말란 법은 없지.’ 라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고요 속에서 선원의 훨씬 앞쪽으로 은빛 물보라가 보였다. 달빛에 반짝여 빛나는비백산하여 출구로 밀치고 짓밟고 비명을 지르며 아귀다툼을 하다가 죽는 사람까지 생길 정도이다. 우리들은 고래를 비웃을 수 없다. 지상의 그 어떤 짐승의 어리석은 행위도 인간의 광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안락을 즐기고 있는 듯한 여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모비딕에게서 느껴졌다. 속도를 내며 헤엄쳐 가고 있었으나 초조하지 않고 의연한 태도였다. 고요한 열대의 바다를 모비딕은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 의연한 태도에 이끌려 집요하게 덤비는 고래잡이들이 없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습격자들은 생명과 바꿈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한 순간 대리석 빛깔의 온몸이 높은 아치형을 그리더니, 참으로 하느님을 생각하게 하는 웅대한 모습을 물속으로 들여보냈다.? “여보게, 스타벅, 어떤 사람일지라도, 사람에게 기댄다고 하는 것은 때에 따라서는 흐뭇한 일이로군. 나도 이제까지 좀더 남에게 기대고 있었으면 좋았을걸 그랬네.”? 모비딕의 몸에서는 박해에 대한 보복, 당장 복수를 하려는 의지, 영원한 원한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 미국의 시대적 상황과 문학적 배경멜빌이 살았던 19세기 미국은 신생 독립국이었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발달, 그에 수반되는 경제적 위기와 자본과 노동의 분화, 제국주의적 팽창주의가 가져온 인디언 추방과 멕시코전쟁, 그리고 노예제를 둘러싼 첨예한 갈들과 남북전쟁 등 굵직한 사회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문학적으로는 문학시장이 형성되고 전업작가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인쇄술과 교통의 발달로 값싼 문학작품의 생산과 배급이 가능해지고 독자층이 다양해지고 이들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쟝르의 문학이 생산되기에 이른다. 이런 시대적 변화는 멜빌의 생애와 작품에 직접 간접으로 양향을 주었다. 그런 한편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이른바 청교도적인 엄격한 종교 정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잔뜩 죄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자유, 민주 정신과 격렬한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기도 뛰어들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뉴잉글랜드의 작가 에머슨, 호손, 롱펠로, 로얼 등이 나왔고, 뉴욕에서는 멜빌과 휘트먼이, 남쪽에서는 포가 나왔던 것이다. 제각기 독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무언가 공통적인 흐름이 있었다. D.H. 로렌스는 에서 그들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나란히 놓고 '세계가 그들을 두려워했다. 지금도 두려워하고 있다.' 고 표현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멜빌이 그러한 표현에 해당되는 작가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의 포경업미국에서는 인디언들이 일찍부터 고래를 잡았는데, 이민 온 백인들에 의한 포경은 17세기부터 낸터킷섬(Nantucket)을중심으로 한 연안에서 발전하였다. 1712년부터 향고래를 대상으로 원양에 진출하게 되고 18세기 중엽에는 고래 기름을 이용한 양초공업의 발달로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주 포획 종은 향고래, 주 어장은 전 세계 해양, 어기는 주년(周年), 어구는 소형 포경정에서 손으로 던지는 작살, 주요 포경국가는 미국, 최성기는 1820~50년, 포경선 수는 범선 500~700척, 연평균 포획두수는 7,000~10,000두였다.이 미국식 포경의 발달은 세계 각국을 자극하여 영국을 비롯한 각국이 대서양 ·인도양뿐만 아니라 태평양에까지 진출하고 1848년부터는 한국 동해에까지 진입하였다. 후에는 남빙양과 북빙양에도 진출, 긴수염고래 ·북극고래 등을 포획하였다. 그리하여 1885년경부터 긴수염고래 자원의 고갈이 심해졌는데, 1959년 미국에서 석유가 발견되어 고래 기름의 가격이 하락하자 출어척수가 격감하고 1998년 종막을 내렸다.□ 작품의 이해와 줄거리○ 등장인물의 이름이 갖는 의미① 주인공 Ishmael : 구약성서의 믿음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아브라함과 하녀인 하갈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인 이삭을 희롱하다가 쫓겨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너의 아들은 들나귀처럼될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과 싸울 것이고, 모든 사람 또한 그와 싸울 것이다. 그는 자기의 모든 친족과 대결하며 살아가게 될 것 왕후로삼았는데 이세벨에 의해 바알을 섬겨 숭배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③ 광인 Elijah : 아합왕 때에 왕과 백성이 바알우상과 아세라우상을 숭배함으로 견책하고 아합왕에게 참신과거짓 신을 가려내자 하여 바알 선지자 40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50명을 데리고 갈멜산에 올라가 송아지로재물을 삼고 각기 자기의 신에게 기도하여 불로 응답함을 보자 하여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정오가지나도록 외쳤으나 응답이 없고 엘리야가 여호와한테 부르짖을 때 불이 내려와 제물과 도랑의 물까지 모두태워 버렸다. 즉시 백성들을 시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기손 시내로 끌고 내려가 모두 죽였다.○ 줄거리자신의 이름을 이스마엘(Ishmael)이라 부르는 작품 속의 화자는 성경 속의 젊은 이스마엘과 마찬가지로 육지생활에 큰 불만을 품고 포경선(捕鯨船)을 타기로 한다. 그리고 항구에 있는 여관에서 방이 없어 식인종 나라의 추장의 아들 인 퀴퀘그(Queequeg)와 함께 한방에서 자게 되는데, 온몸에 문신을 하고 인간의 머리통을 팔러 다니는 이 괴기한 인물에게서 그는 기독교도에게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던 진정한 인간애를 느끼게 된다. 그들은 그 이후로 친해 져서 아합(Ahab)이 선장으로 있는 포경선인 피쿼드(Pequod)호-메사추세츠주의 멸망한 인디언과 함께 승선하기로 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 운명적인 항해에 나서게 되는데, 배에 오르기전에 광인인 엘리야로부터 피쿼드호의 파멸 적인 운명에 대해 경고를 받게 된다.선장인 아합은 "모비 딕(Moby Dick)"이라고 일컬어지는 머리가 흰 거대한 향유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 있었고, 그러한 증오심에서 선원들을 다그치지만 선장이 가진 내면의 힘이 선원들을 매료시켰기 때문에 선원들 은 선장에게 복종한다. 모비 딕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있는 선장은 포경선의 주목적인 고래 기름을 얻기 위한 항해에 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선장은 큰 가치가 있는 옛 스페인 금화를 마스트에 박고는 제일 먼저 모비 딕을
□ 줄거리 (작품의 이해)1922년 봄 Nick Carraway라는 중서부 출신 청년이 자신의 젊은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뉴욕의 증권계에 진출하여 성공의 꿈을 성취하고자 뉴욕의 롱 아일랜드(Long Island) 만에 있는 West Egg에 셋방을 얻는다. West Egg와 만을 사이에 두고 있는 East Egg에는 Nick의 6촌 여동생인 Daisy Buchanan 부부가 살고 있다. 이곳은 미국의 부유층이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지역이다. 그녀의 남편 Tom Buchanan은 엄청난 재산을 물려 받은 부자이며 거만한 바람둥이로 Nick의 Yale 대학동창이기도 하다. Tom은 신혼 초부터 호텔의 여종업원과 바람을 피웠던 사내였는데 지금은 롱 아일랜드와 뉴욕시 사이에 있는 '재의 골짜기'(the Valley of Ashes)라는 곳의 주유소 겸 자동차 수리센터의 주인인 George Wilson의 아내 Myrtle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곳 '재의 골짜기'는 미국의 하층계급이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곳이다.한편 Nick이 살고 있는 옆집에는 드넓은 대지에 유럽풍의 거대한 대저택이 있는데, 그 집의 주인 Jay Gatsby는 주말마다 흥청거리는 화려한 파티를 연다. 그의 신분은 신비에 쌓여 있어 누구도 그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Nick은 Daisy집을 방문했다가 Jordan Baker라는 프로골프선수를 통해 Jay Gatsby의 정체를 알게되지만 그것도 불확실한 소문에 의한 것이다. 그러던 중 Nick은 어느 날 이웃인 Gatsby로부터 그의 파티에 초대를 받고 그의 정체를 알게 된다. Gatsby는 Nick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자신은 중서부의 부유한 가문의 아들로 태어 나 부모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 받었지만 부모님은 오래 전에 작고하셨고 집안 대대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유학했으며 한 때는 인도의 부유한 왕자처럼 돈을 마음껏 써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그는 미군 장교로 참전하였고 영웅적인 무공을 정유사업에도 관여했다가 지금은 전국적인 편의점 체인망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사실 Gatsby자신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이러한 설명은 나중에 모두 거짓으로 밝혀 진다.Gatsby는 군대시절 장교로 복무하는 동안 Daisy와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프랑스 전선으로 전속되어 가버리고, Daisy는 집안의 반대로 Gatsby를 따라가지 못한 채 대신 시카고 출신 갑부인 Tom Buchanan과 결혼하게 되었던 것이다. 프랑스 전선에서 무공을 세워 훈장도 받고 옥스퍼드 대학에도 한 학기 다닌 후 Gatsby가 귀국해 보니 Daisy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보잘 것 없는 집안에 무일푼이었던 Gatsby는 그때부터 자신의 잃어버린 사랑과 꿈을 되찾기 위해 뉴욕으로 진출하여 암흑세계의 인물인 Wolfshiem과 손을 잡고 불법인 밀주 판매를 통해 상당한 돈을 벌기 시작한다.그리하여 5년 후 마침내 갑부가 된 Gatsby는 이제는 Daisy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일부러 Daisy의 집이 바라보이는 West Egg에 있는 대저택을 구입하여 혹시나 Daisy가 참석할까 기대하는 마음에서 주말 마다 파티를 연다. 그는 돈의 힘으로 과거를 되찾을수 있고, 아울러 돈으로 자신의 꿈을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만의 American Dream에 빠져 있다. 드디어 어느 날 Gatsby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Jordan이 참석하게 된다. Gatsby는 그녀에게 자신과 Daisy와의 재회를 Nick의 집에서 할 수 있도록 Nick에게 주선해 달라고 부탁한다. Nick은 그 계획을 쾌히 승낙한다. 마침내 5년 만에 Daisy를 만난 Gatsby는 벅찬 감격으로 지난 날의 사랑을 되찾아 Daisy와 결혼하고 싶어하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타락해 버린 Daisy는 남편과 애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돈과 사회적 지위 때문에 남편인 Tom과 헤어지지 못한다. Gatsby와 Daisy의 관계를 눈치챈 Tom은 분노하게 된다. 마침내 Gatsby는 Tom에게랑한다고 정면으로 대결하면서 과거의 애인 데이지를 되찾고자한다. 궁지에 몰린 Tom은 Gatsby의 재산이 사실은 밀주업 같은 불법행위를 통해 쌓아졌으며 Gatsby가 암흑계의 인물과 손을 잡고 있다고 폭로하여 Daisy로 하여금 Gatsby의 신분에 대한 공포감을 불러 일으켜 Gatsby를 참패시킴으로써 결국 Gatsby의 꿈은 완전히 깨져 버린다.그들이 뉴욕의 한 호텔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The Valley of Ashes에서 벌어진다. 뉴욕에 갈 때는 노란 색깔의 Gatsby 차를 Tom이 운전하고 갔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의 정부 Tom이 새로 산 차라고만 믿고 있는 Wilson의 아내 Myrtle은 자신의 불륜을 눈치채고 자기를 서부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 남편의 눈을 피해 도망치다가 그 차가 오는 것을 보고 세우려고 뛰어든다. Daisy가 운전하던 Gatsby의 차는 그녀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녀를 치어서 Myrtle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만다. 그러자 Gatsby의 차는 그대로 뺑소니를 쳐 버리고 뒤늦게 사고현장에 도착한 Tom과 Nick은 도망쳐 버린 Gatsby를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후에 Nick은 사고 당시 차를 운전했던 것은 Gatsby가 아니라 Daisy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Gatsby가 Daisy대신 사고의 책임을 지려는 결심을 알게 된다.하지만 아내인 Daisy가 사람을 치여 죽인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 것을 알게된 Tom은 Myrtle의 남편 Wilson에게 Myrtle을 죽인 것은 노란 색의 차 주인인 Gatsby라는 암시를 주고, 이에 격분한 Wilson은 Gatsby의 집을 찾아가 야외 수영장에 있던 Gatsby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고 만다. Tom과 Daisy부부는 Gatsby의 죽음과 함께 그들이 살던 곳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따라서 Gatsby의 인생은 하나의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Gatsby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그에게 신세를 졌던 수많은 사람들, , 그리고 심지어 동업자 Meyer Wolfshiem조차도―마지막으로 장례식에 유일하게 나타난 Gatsby의 아버지 Mr. Gatz(Gatsby의 본명은 Gatz였다)가 가져온 Gatsby의 일기를 보면서 Nick은 Gatsby가 품었던 그의 꿈의 본질을 깨닫는다. 그의 꿈은 너무나 주관적인 환상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 꿈은 오직 부(富)의 힘에 의해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으려는 너무나 순진하고 감상적인 이상이었고 위험하고도 천박한 경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즉 그는 천박한 부(富)의 힘을 빌어 자신의 꿈을 너무나 주관적으로 저속하게 실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Gatsby의 비극은 바로 자신의 지나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Nick은 Gatsby가 죽은 후 동부사회의 도덕적 타락에 깊은 환멸을 느끼고 전통적 도덕의식이 살아 있는 고향인 중서부로 돌아가면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The Great Gatsby를 읽고 (작품의 감상)이 책의 주인공인 Gatsby는 미국 사회의 대표적인 표상이라고 생각했다. 중간고사 레포트로 제출했던 《모비딕》의 주인공인 Ahab선장이나 이 책의 주인공인 Gatsby나 비슷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래잡이 포경선장의 임무는 팽개친 채 자신의 한 쪽 다리를 잘라 간 '흰 고래' (Moby Dick)에 대해 광적인 추적을 하는 고독한 Ahab선장처럼 Gatsby도 오직 Daisy를 되찾으려는 자신의 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고독한 인물이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소설의 한 전형일 수도 있다.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그냥 연애소설이다. 주인공 Gatsby는 사랑을 위해 살고, 사랑을 위하다가 배신당하고, 끝내는 사랑 때문에 죽는다. 온통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것의 본질은 아름답지만 그 본질에 물질문명에 우선순위를 두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실에서 그 사랑의 본질을 믿기도 어렵고, 순수한 사랑을 유지하는 것 또한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Gatsby의 사랑처럼 오늘날 우리의 사랑 또한 그저 아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만 이미 그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니고, 거기서 멈춰야 했으나 여전히 나는 그 사람을 원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닐까?과연 이런 지고지순한(?) 사랑이 진짜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다. 왜 이렇게 밖에 안될까? 그야말로 진퇴양난, 속수무책의 사랑 속에서 힘들어하는 주인공과 지금도 그런 Gatsby식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한편《위대한 개츠비》는 이러한 미국의 꿈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모되었는가를 현대적 작가 의식에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을 품고 서부로 서부로 향하던 미국인들의 꿈은 프런티어가 종식된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서부에서 거꾸로 동부로 향하게 되었다. 서부의 젊은이들은 이제 서부를 세상의 변두리로 생각하고 부와 풍요로움, 번영과 향락의 상징인 동부의 대도시를 동경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미국의 꿈' - 새로운 모습의 성공을 누리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떠나 왔던 동부가 마치 새로운 개척지인 것처럼 다시 동부로 몰려가게 되었다. 이 작품의 주요한 등장인물들인 닉 캐러웨이, 제이 개츠비, 데이지, 탐 부캐넌, 죠단 베이커 모두가 중서부출신으로 동부에 진출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동부로 몰려갔던 중서부인들은 성공적이고 바람직한 삶을 성취하지 못하고 그들이 추구하던 American Dream이 너무나 타락한 모습으로 변모되어 있는 현대 미국사회에서 표류하고 있을 뿐, 그 삶은 도덕적인 가치와 진지함을 상실하고 있을 뿐이다. 핏제럴드는 작가로써 미국 역사의 초기에 너무나 순수했던 모두의 '미국의 꿈'을 그리워한다. 이러한 작가의 입장을 핏제럴드는 작품의 끝 부분에서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작품의 마지막에 Nick이, 미국 역사상 네덜란드인들이 뉴욕을 처음 발견했을 때 신천지의 경이로움에 매혹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것을 Gatsby가 Daisy집 앞 부두의 녹색 불빛을 처음 발견했을 때 매혹되는 장면과
포로 로마노'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한 날'. 괴테가 로마를 찾은 뒤 표현한 문구다. 출중한 문학적 재능을 지닌 사람의 인생을 전환시킬 만한 힘을 가졌다는 것일까. 로마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기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다고 주저함이 없이 기록했던 것일까. 로마, 엄청난 매력을 갖고 있는 도시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로마인 이야기 10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비단 그 ‘길’ 이라는 것이 도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로마의 길은 너무나도 완벽하고 견고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로마의 길을 이야기 하셨을 때 벌써 3년이나 지났지만 2004년 로마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지금의 아스팔트 도로와는 전혀 다른 큼직큼직한 돌이 박혀있는 그런 도로였다.로마가 주변국을 정복하고, 하나의 제국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보통은 단순히 군사력이라고만 생각할 것이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단순한 군사력으로 1,000년의 제국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로마가 강했던 이유는 '군사력'보다는 그들의 '사고와 개념'이 주변국을 압도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21세기를 지식 사회라고 한다. 그러나 21세기가 오기 이전에도 '지식'은, 정상을 가르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로마는 주변국이 상상도 못한 개념과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로마 제국의 강력함의 진정한 비밀인 것이다.로마인 이야기 10권에서는 인프라를 통해 로마사회를 규명하고 있다. 인프라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경비와 많은 인력, 오랜 세월이 소요되고, 구축된 하드웨어의 성과는 소프트웨어의 분야에 영향을 미치기에, 인프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그 민족이 앞으로 나아가 길이 결정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로마의 인프라는 오늘날 ‘인프라의 아버지’라 칭해질 만큼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 분야에 걸쳐 방대하게 구축되었다. 하드 인프라로서는 위에서 예로든 가도, 다리, 수도 이외에도 항만, 신전, 포룸(광장), 바실리카(공회 타원형 경기장, 반원형 극장, 원형투기장, 하수도, 공중 목용장 등을 들 수 있다. 소프트 인프라로서는 안전보장을 선두로 치안, 조세제도, 통화제도, 우편제도, 빈민구제 시스템, 육영자금제도, 의료, 교육 등을 꼽을 수 있다. 로마 시대에는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시로 인정되지 않았다고 하니, 오늘날에도 이런 기본적인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해 고통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지역이 얼마나 많은가에 비추어 보면 정말 감탄스럽기만 하다.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실제로 카이사르는 확대된 로마를 통치할 완전히 새로운 정치체제인 제정을 지향하며 정치투쟁을 벌였고, 스스로 독재관이 된 뒤에는 법률, 달력, 우편제도 등 소프트 인프라를 정비?구축하는 등 로마 제국의 초석을 다졌다. 그 뒤를 이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가 그린 로마의 청사진을 구축하는 역할을, 제 2대 황제 티베리우스는 완전히 정착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가의 천년대계를 구축하는 데 공헌한 것도 있겠지만 보통사람의 능력에 맞추어 그 사람들의 필요까지 충족시켜 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이런 지도자의 안목이 없었다면 로마의 인프라가 제국의 번영과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연결시키는 가교의 역할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또 한사람 아피우스 클라리우스를 빼 놓을 수는 없다. 사람이나 수레가 다녀서 자연스럽게 생긴 길에 로마가도를 건설하고 풍부한 수자원 환경에도 불구하고 로마수도를 구축한 사람으로 2000년 뒤에도 사용되는 천년대계의 기초를 입안한 로마의 재무관이다. 그의 탁월한 안목에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아피아 가도는 아피우스가 처음 카푸아까지 연결하였으나 나중에 베네벤토-베노사-타란토- 아드리아 해의 항구 브린디시까지 최종 연장되었다.로마 가도는 폭 4미터에 양측 보행로 3 미터를 더하여 총 10 미터 였으며 1미터 깊이로 땅을 파내 잡석과 자갈을 깔아 배수를 철저히 하여 물 고임이 없게 하고 표면은 한 변이 40 센티미터 크기의 납작한 틈이 없도록 고르게 포장하여 쇠로된 마차 바퀴가 구르는데 용이하게 하였다.로마가도의 단면도폭 4미터는 마차 두대가 교행하도록 한 요즘의 2차선 개념의 넓이였고 마차가 달릴 때 보행자에게 불편이 없도록 어김없이 보행자 보도를 양측에 설치하였으며 약 1.4 킬로미터인 로만마일 마다 원통형의 이정표석을 세워 길 가는 사람들에게 현재 위치와 앞으로 갈 길을 알려주었다.또 주변 나무의 뿌리가 가도를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양측 나무를 잘라 내고 죽은 사람들을 그 곳에 매장하도록 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묘비명을 읽는 즐거움도 주었다고 한다.아피아 가도번성기의 로마 제국 시절에 로마 황제가 건설한 가도는 속주를 포함해서 약 80.000킬로미터였다고 한다. 이는 독일의 학자 몇 사람이 다년간의 연구와 직접 답사에 의해 알아 낸 수치이다.현재 로마 시내 근처에 예전 가도가 일부 남아있지만 특히 폼페이시에서 화산재를 걷어내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2천년 전의 도시 모습에서 가도의 생생한 형태를 볼 수 있다.가도 건설에 부수되는 강위의 교량 설치도 뛰어난 기술을 발휘하여 가도와 같은 재료로 포장하였고 수평으로 만들어 마차가 달리는데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깊은 강의 교각은 나무 말뚝으로 우물통을 만들어 물을 퍼내고 강 바닥에 기초를 조성하여 튼튼한 교각으로 구축하였으며 지금도 당시 건설했던 다리가 로마의 경우 테베레 강에 기원전 109년에 건설한 밀리오 와 기원전 43년의 체스티오 다리가 지금도 일반인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인데 학자들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약 300개의 다리를 로마 제국 시대에 건설하였다고 한다.가도와 다리는 황제가 입안하고 작업은 군단 병사들이 하였는데 이는 지금과 달리 군 병사들이 군인이자 건설 기술자로 병사는 곧 기술자로 통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유명한 장군 코르블로는 "로마군은 곡괭이로 승리한다." 라는 말을 남겼으며 "로마군은 병참으로 이긴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여 가도 건설로 빠른 이동과 병참 보급이 전쟁 수행에 중요한 승리요인으로 보았다.아그리파아그리파쟁이 끝나 평화가 시작되자 이젠 활과 칼 대신 군단을 이끌고 가도및 수로 공사에 매진했다는데 핵심적인 기술자 집단이 24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사실 아그리파라고 하면 로마 시대 장군으로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데셍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그리는 인물이며 황제를 위해 사랑하는 부인과 이혼을 강요 당해도 묵묵히 따르고 전쟁이 없을 때는 건설 공사에 열정을 쏟은 그야말로 자신을 버리고 국가를 위해 살다간 인물이다.그러나 가도는 단지 군사 목적에 부응한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실생활에도 막대한 기여를 하여 물자의 원할한 소통이 로마 제국의 발전에 기여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이런 로마 제국의 가도는 지금의 독일 남부, 프랑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이스라엘, 시리아, 루마니아, 이집트, 아프리카 북부 지역에서 지금 사용하는 도로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이미 2세기에 로마 제국의 알렉산드리아 출신 지리 학자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가 제작한 지도는 동으로는 인도부터 서쪽으로는 북유럽까지 방대한 지역을 보여주는 상당히 정교한 지도를 만들었고 여행자를 위한 안내 지도까지도 만들었을 정도였다.두번째로 황제들이 관심을 기울인 시설은 수도시설인데 가도를 처음 시작한 아피우스가 이 수도도 역시 처음 건설하였는고 즉 기원전 312년 부터 기원후 109 년까지 10개 수로시설을 완성하였는데 그 한개의 수로가 수십에서 수백킬로에 달하였다. 그런데 이 수로의 특징은 대부분 지하 수로였으며 일부 구간은 수도교 형태였으므로 사람이나 자연에 의한 오염이 최소화 되는 장점이 있었겠지만 그 수로 건설 당시의 어려움을 상상하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방식이다. 더구나 이딸리아 지질은 석회석 성분이 많아 상당 기간이 지나면 수로에 석회질층이 두껍게토마르의 수도교(포르투갈)적층하였기 때문에 지하 수로를 관리하기 위해서 일정 거리마다 지표에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통로까지 만들었다니 지금보다 열악한 장비로 장거리의 수로를 만든 일에 감탄할 뿐이다.기원전 1세기에 로마가 정복속주화한 카르타고는 워낙 수원지가 멀어서 무려 131킬로미터 의 수로를 건설하였다니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책에는 로마시에 공급되는 수로의 길이와 특색 그리고 물의 질까지도 자세히 언급 되어 있다.수도교 단면도로마 제국 시절의 수로를 말하게 되면 로마하면 떠오르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트레비 분수에 지금도 물을 공급하고 당시의 공중 목욕장에 필요한 많은 양의 물을 댔다고 한다.또한 수로에서 일반 가정까지는 납으로 만든 수도관을 이용하여 물을 공급하였는데 어떤 학자는 이 납관이 로마의 흥망을 갈라 놓았다고하는 학설을 발표하기도 했다한다.로마시대의 목욕장세번째 공공시설로는 목욕장인데 이는 대규모 인원이 한 꺼번에 이용하도록 했으며 각종 부대시설을 함께하여 요즘으로 치면 대형 헬스클럽을 연상하게 한다.로마 제국이 여러 속주에서 들어오는 세금을 바탕으로 풍부한 자금력을 이용하여 목욕장을 호화롭게 장식하여 가장 휼륭한 미술 작품은 모두 대중을 위한 목욕장에 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하두리아누스황제는 미술품에 각별한 관심과 심미안이 있어 어느 목욕장에 있는 조각 작품이 탐이 나서 아래 사람을 시켜 슬며서 자기 별장에 가져오도록 했다가 나중에 시민들에게 알려저 욕을 먹고 사과 후 다시 제자리에 옮겨놓았다는 이야기도 있다.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처음에 대중 목욕장은 남녀 혼욕장이었는데 워낙 불미스러운 사건이 많이 발생하자 바로 하드라누스황제의 지시로 시간을 따로 하여 낮에는 여성, 저녁과 밤에는 남성이 사용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고대로 갈 수록 남녀의 성적 관념이 자유스러웠던 것을 알 수 있다.우리나라에서도 조선 시대엔 여성의 가슴 노출이 크게 흉이 되지 않았으며 가까운 일본도 최근까지 남녀 혼욕이 남아있었던 것을 보면 이런 사실에 수긍이 간다.속주에도 로마와 규모만 다른 뿐 똑 같은 공공시설을 조성하였으나 아무래도 로마는 모든 것의 본보기가 되었고 로마에 목욕장도 8개나 있었는데 모두 황제의 이름을 따랐으나 단 하나만 황제가 아닌 장군 아그리파 이름으로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