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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법학]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 비교
    Ⅰ. 서설1. 권력분립의 원리권력분립의 원리는 국가권력이 특정개인이나 집단 등에 집중되지 않도록 그 권력을 성질에 따라 여러 기관에 분산시킴으로써 권력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통치기구의 구성원리를 의미한다. 즉,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에 의한 개인의 자유?권리의 침해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을 몽테스키외 이래의 전통적인 분류방법에 따라 입법?사법?행정의 셋으로 구별하여 이들을 각각 별개의 기관의 독립된 권한으로 분리함으로써 권력 상호간에 견제와 균형을 확보한다는 것이 권력분립원리의 요지이다.2. 정부형태의 분류정부형태란 통상적으로 국민의 주권에서 유래하는 통치권력을 권력분립원리에 따라 일정기관에게 배분하는 권력분립의 구조적, 조직적 실현형태(광의의 정부형태)를 의미하며, 협의로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관계가 어떠한가 하는 것을 말하고, 최협의로는 집행부의 구조형태를 말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권력분립원리에 따라 입법권과 행정권의 연계를 인정하는 의원내각제, 그리고 입법권과 행정권의 엄격한 분리를 지향하는 대통령제의 정부형태가 있다.Ⅱ. 제2공화국의 의원내각제1. 등장배경1960년 3?15 부정선거에 반대하는 4월 19일의 시민혁명으로 제1공화국은 막을 내리게 된다. 대통령 사임 후 과도정부가 수립되고 6월 16일 국회는 헌법개정안을 여야합의로 통과시킴으로써 의원내각제를 채택하였다. 제2공화국은 ‘대통령제=독재적 경향’과 ‘의원내각제=자유적 경향’이라는 정치공식으로 설명되었고, 헌법상 의원내각제 권력구조의 채택은 대통령제의 독재에 대한 전 국민의 민주적 개혁에의 요청이었다. 당시 국회의 개헌안의 제안 설명에도 「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국정의 전반에 걸쳐서 언제든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국민의 진정한 다수의사를 현실적으로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의원내각제의 채택은 대통령의 독재를 체험한 당시의 국민적 공감대라 할 수 있는 권력의 통제와 자유보장의 요청에 따른 새로운 정부형태의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2. 구조와 내용(1) 구조1)집행부의 이원적 구조 - 정부가 의회의 신임을 전제로 조직?존속하는 정부형태이며, 선거에 의하여 구성되는 의회 다수당의 의원들이 내각을 구성하여 행정권을 행사함으로써 의회와 내각이 상호 견제하면서 국정을 수행하는 통치제도이다. 의원내각제의 집행부는 대통령과 내각의 두 기구로 구성되어 의회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지는 2원적 구조임을 특색으로 한다.2)내각과 의회의 동질성 - 내각이 의회 다수당의 의원들로 구성되므로 내각과 의회가 업무수행 및 권력행사에 있어서 연대적 책임을 지며, 내각은 의회와 정치적으로 동질성을 지닌다.(2) 내용1) 내각의 성립과 존속이 의회에 의존 - 내각의 수반이 의회에 의하여 선출되고, 내각이 의회에 대하여 연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진다.2) 내각불신임권과 의회해산권에 의한 권력적 균형 - 내각은 의회해산권을 가지고 의회의 내각불신임권에 대항하여 의회를 견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입법부와 집행부간에 권력적 균형이 유지된다.3) 입법권과 행정권의 융합 - 법적으로는 입법부와 행정부가 분리, 독립되어 있지만 국회의원의 각료 겸직이 가능하고 정치적으로 두 기관이 밀접한 협조관계를 유지한다.3. 권력분립에 입각한 의원내각제의 장점 및 단점(1) 장점1)내각이 국회에 연대책임을 지므로 책임정치를 시행할 수 있다.2)내각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그 존립과 존속을 의존하게 되므로, 독재를 방지하고 민주적 요청에 적합하다.3)의회와 내각이 대립하는 경우에 불신임결의와 의회해산으로 정치적 대립을 신속히 해결할 수 있다.(2) 단점1)다수당의 횡포가 우려된다.2)군소정당이 난립하거나 정치인의 타협적 태도가 결여될 때에는, 연립정권의 수립과 내각에 대한 번번한 불신임결의로 정국의 불안정이 초래될 수 있다.Ⅲ. 제6공화국의 대통령제1. 등장배경1985년 2?12 총선이후 야당과 재야세력은 간선제로 선출된 제5공화국 대통령 전두환의 도덕성과 정통성 결여와 비민주성을 비판하면서 줄기차게 직선제 개헌 논의를 진행하였다. 6월 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리고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이에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논의를 받아들여 6?29선언이 발표되었다.2. 대통령제의 구조와 내용(1)구조1)집행부의 일원적 구조- 집행부의 안정과 권위를 위하여 그 구조를 일원화하고있고, 그 결과 대통령은 국가원수와 집행부수반의 지위를 겸하게 된다.(2)내용1) 대통령의 직선제와 5년 임기제2) 대통령과 의회의 상호독립성 -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집행부의 성립과 존속이 의회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집행부 수반인 대통령은 국민이 직선하고, 집행부는 대통령에 의하여 조직된다. 따라서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할 권한이 없으며 국회의원과 각료 겸직은 금지된다.3) 입법부와 집행부의 견제와 균형 - 국민에 의한 대통령직선제, 대통령의 정치적 무책임성 그리고 법률안거부권 등에 의하여 권력상호간의 억제와 균형이 실현되고, 의회 측에서는 양원제, 입법권의 독점, 집행부 고위공무원임명에 대한 동의, 국정감사, 조사 그리고 집행부 구성원에 대한 탄핵소추 등에 의하여 실현된다.3. 권력분립에 입각한 대통령제의 장점 및 단점
    법학| 2006.01.15| 5페이지| 1,500원| 조회(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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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식] 한국의 전통문화와 전통음식
    레포트 소재를 선택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며 고민하였던 것 같다. 잘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러웠지만 한번쯤 조사해보고 싶은 소재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레포트와는 상관없이 몇 개의 다른 소재들도 택해서 조사해 볼 생각이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한다.심사숙고한 끝에 레포트 소재로 선택한 것은 한국의 전통음식 이다. 이것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한국의 전통음식 자체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그보다 우리나라가 훌륭한 전통음식과 그에 따른 고유한 식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가치 인정에 무관심해 왔고, 전승발전에도 노력을 게을리 해 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이다. 전통음식은 점차 그 선호도를 잃어가고 있다. 대다수의 젊은 사람들이 고유의 차 류 보다는 커피와 콜라에 젖어 있으며, 전통 약주의 맛을 모른 체 위스키나 맥주에 취하고, 아이들까지도 떡보다는 케이크를, 김치나 부침개보다는 피자와 햄버거, 핫도그를 선호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전통음식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혀져 갔으며 그 자리에 외국 음식들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나 자신도 그러한 생활을 해 왔으며 한국의 전통음식에 대한 지식도 거의 만무하다. 그래서 이번 레포트를 통해 한국의 전통음식에 대한 식견과 그것에 대한 자부심과 관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기대한다.Ⅰ.들어가며1. 한국의 전통음식이란?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음식 문화를 만들어 왔다. 특히 발효 식품인 김치는 그 영양과 보관 방법이 과학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반도에 고추가 전래되기 전에는 백김치를 담갔다는 구절이 문헌에 보이기도 한다. 김치는 그 종류나 맛에 있어서도 다양함을 자랑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떡, 다과류, 정과류, 밑반찬 등 우리 민족만의 다양하고 맛깔스런 음식을 지니고 있다. 특히 불고기와 갈비는 우리의 세계화된 전통의 맛이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가득히 차려 내놓는 우리의 음식문화는 조상의 넉넉한 인심을 읽을 수리로서, 주재료에 갖은 양념을 하여 물을 넣고 푹 익혀 재료의 맛이 충분히 우러나오고 약간의 국물이 어울리도록 한 요리이다. 주로 동물성 식품을 주재료로 하고 채소, 버섯, 달걀 등을 부재료로 한다. 김을 올려서 찌거나 또는 중탕으로 익히기도 하고 수증기와 관련 없이 그냥 즙이 남을 정도로 삶아서 익히는 방법도 있다.6 조림과 초(炒)어패류, 육류 등의 재료에 간을 약간 세게 하여 재료에 간이 충분히 스며들도록 약한 불에서 오래 익히는 요리이다. 조림은 주로 간장으로 하지만 꽁치, 고등어 같은 붉은살 생선은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서 고추장, 생강 등을 넣어 조린다. 초는 조림국물에 녹말을 풀어 넣어 국물이 얽히게도 하며 전복초, 홍합초, 해삼초 등이 있다.7 볶음고기, 채소, 건어, 해조류 등을 손질하여 썰어서 기름에 볶은 요리이다. 고온의 기름에서 볶아야 물기가 없고 짧은 시간에 조리되므로 영양 파괴도 작다. 기름에만 볶은 것, 기름에 볶다가 간장, 설탕, 물엿 등을 넣어 조리하는 것도 있다.8 구이가장 기본적인 조리법으로 수조육류, 어패류, 가지, 더덕과 같은 채소류에 소금간 또는 양념을 하여 불에 구운 음식이다. 직접 불에 닿게 굽는 직접구이와 간접 구이가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갈비구이, 불고기 등이 있으며 널리 이용되는 조리법이다.9전(煎), 산적, 누름적전은 고기, 생선, 채소 등을 다지거나 얇게 저며서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밀가루 달걀을 입혀서 양면을 기름에 지진 음식이다. 전은 반상, 면상, 교자상, 주안상 등에 모두 적합한 음식이며 초간장을 곁들인다. 전유어(煎油魚), 저냐라고도 한다. 적은 여러 가지 재료를 썰어서 갖은 양념을 한 다음 꼬챙이에 꿰어서 구운 음식을 말한다. 그 중 누름적은 채소, 고기 등을 썰어 꼬챙이에 색을 맞추어 꿰고 밀가루, 달걀을 씌워 번철에 전을 부치듯이 지진 음식이며 일명 누르미라고도 한다. 산적은 날 재료를 양념하여 꼬챙이에 끼워 구운 음식이다.⑩ 편육, 족편, 순대고기를 덩어리째로 삶은 것이 수육이고, 수육을이다. 식혜는 밥에 엿기름물을 부어서 발효시킨 음료수이며 수정과는 계피, 생강을 넣어 끓여 걸러서 설탕을 넣어 다시 끓인 다음 곶감을 띄워 내는 음료이다.(5) 술류과일과 곡물 익힌 것 등을 발효시켜 알코올 성분이 있게 만든 음료의 총칭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술은 곡주가 기본이다.(6) 양념 고명1 양념소금, 간장, 고추장, 파, 마늘, 생강, 고춧가루, 후춧가루, 겨자, 참기름, 들기름, 깨소금, 설탕(꿀, 조청), 식초, 계피, 산초, 초간장, 초고추장, 초젓국 등이 있다.2 고명음식의 양념이 되는 한편, 음식의 겉모양을 좋게 하기 위하여 음식 위에 뿌리거나 덧붙이는 것을 말한다.·달걀지단 - 달걀을 흰자와 노른자로 나누어 약한 불에 지져 낸 것으로 채 썰거나 마름모꼴 등으로 썰어 탕, 면, 찜, 전골 등에 주로 사용한다.·줄알 - 달걀을 완전히 풀어서 약간의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려 펄펄 끓는 고기 국물에 넣었다가재빨리 건져 놓은 것으로, 국수 꾸미로 사용하기도 한다.·알쌈 - 소고기를 곱게 다져 양념하여 콩알만큼 떼어 타원형으로 빚고 달걀을 풀어 부친 것으로신선로, 된장찌개의 고명으로 쓰고, 술안주로도 쓴다.·미나리 초대 - 미나리의 줄기만 깨끗이 씻어 꼬챙이에 꿰어 달걀을 씌워 지져낸 후, 골패 모양이나 마름모꼴로 썰어서 사용한다.·이 밖에도 고기 완자, 고명 고기, 실파, 쑹갓 초대, 표고버섯, 목이버섯, 석이버섯, 은행, 통잣,비늘잣, 잣가루, 호도, 통깨, 실고추, 다홍고추, 감국잎 등이 있다.(7) 저장식품1 녹말녹말은 만들 재료를 다지거나 갈아서 껍질을 벗겨 체에 바친 후 맑은 물을 여러 번 부어 앙금을 가라앉혀 말린 후 체로 쳐서 가루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으로 다식, 화채, 단자, 응이 등에 사용된다. 주로 녹두, 수수, 생강, 연근, 율무 등으로 녹말을 내어 먹는다.2 가루가루에는 송홧가루(소나무의 꽃가루), 밤가루, 감가루, 대춧가루, 유잣가루, 석잇가루(석이버석가루), 메밀가루, 송깃가루(소나무의 상순을 잘라 만듬)등이 있는데 각 재료를 때에는 마땅히 세간의 다섯 가지 매운 채소를 끊어야 하니 이 다섯 가지 채소는 익혀서 먹으면 음란한 마음이 일어나게 되고 날 것으로 먹으면 성내는 마음이 더하기 때문이라고 능엄경에서 설파하고 있다.3 사찰음식의 특징사찰음식의 특징을 들자면 독특한 조리법이 사찰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산야초를 음식으로 먹고 그리고 육식과 오신채 및 인공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음식 만드는 과정을 오로지 또다른 수행의 한 방법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무엇을 먹을까는 큰 문제가 아니다. 다만 언제,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요즘은 일일일식을 규정하지 않지만 일일일식은 식사의 양에 유의한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남방불교에서는 탁발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기후와 풍토가 다른 북방불교권(한국, 중국, 일본, 티벳 등)에서는 사원발달과 함께 승려들의 건강을 우려하여 다양한 음식들이 개발되었다.그 특징을 살펴보면,첫째,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계율상 차이는 있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엄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둘째, 채소 중에서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다. 파, 마늘, 부추, 달래 등은 몸에서 냄새가 나고,성내고 탐내고 어리석하게 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에 수행인에게는 절대 금한다.셋째, 사찰음식은 약리작용을 갖고 있다. 승려들은 양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산약초를 먹기 때문이다. 산초장아찌는 구충제 역할을 하고 보온효과가 있는 것을 예로 알 수 있다.넷째, 무엇보다도 시원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다.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고 다시마, 버섯, 들깨, 날 콩가루의 천연 조미료를 쓰고 있다.다섯째, 제철에 따른 음식이 발달해 있다. 예를 들자면 지리산 화엄사에는 죽순나물과 갓김치, 김부각 등이 있고 여천 흥국사에는 쑥떡, 머위당이, 합천 해인사에는 찹쌀죽과 고수나물무침 등이 발달되어 있다. 수원 용주사에는 국화전과 두부소박이가 발달했다.4 사찰음식의 종류·죽 - 죽은 일단 안색을 좋게 하고 힘이 넘치고 수명을 연장한다. 안락이 있고 말솜씨가 시원하게 되고중음식이 전해진 것이다. 궁중에서 음식은 주방상궁과 대령숙수라는 요리사가 만들었다. 이 요리사들은 중전, 대비전, 세자빈의 각 전각마다 배치되어 있어서 각각 만들어 먹었다. 이 주방상궁은 약 20년 정도 궁중음식에 대해 비법을 전수 받아야 될 수 있는 자리였다. 대령숙수는 궁 밖에 살면서 잔치 때만 궁에 들어와 음식을 만드는 지금으로 말하면 남자 출장 요리사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조정과 왕가에서 베푸는 잔치는 크게 5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진작(進酌)이라 함은 대궐 안에서 하는 잔치(진연進宴) 때 임금께 술잔을 올리는 것을 말하고, 진찬(進饌)은 왕족간의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대궐 안에서 행해지는 잔치이다. 또한, 진연(進宴)은 나라에서 정한 행사이고, 보편적으로 대궐 안에서 행하는 잔치이다.그리고, 나머지로 진작(進爵), 회작(會酌)등이 있다. 궁중에서는 이런 잔치를 행하게 되면, 책임을 맞는 관원을 임시로 선정하게 되는데, 이를 진연도감이(進宴都監)라 한다. 왕의 허락을 직접 받은 후에 일을 시작하게 된다. 찬품 단자란 잔치음식들을 음식발기라 하는 것에 모두 기록하여 올리는 것으로, 평범한 접시에 높이 쌓았다. 그 높이는 규정이 없었고, 최고 51㎝에서 최하 30㎝까지 있었다. 그 정한 날에는 10가지의 상을 차례로 올리게되는데, 순서는 다음과 같다.진어찬안⇒ 진어미수(進御味數)⇒ 진소선(進小膳)⇒ 진대선(進大膳)⇒ 진어염수(進御鹽水)⇒진탕(進湯)⇒ 진만두(進饅頭)⇒ 진다(進茶)⇒ 진어별찬안(進御別饌案)⇒ 진과합(進果驛)이런 음식들은 주빈이나 왕족들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각 곳에 있는 군병관들에게도 흰떡3개, 산적 1꼬치, 청주 한 잔정도 내리게 된다. 잔치음식을 만들 때에는 집을 임시로 적당한 곳에 크게 짓고, 거기서 음식상을 꾸미게 하였고, 많은 기구와 많은 그릇들, 일손 등이 동원되었다. 잔치음식에 쓰이는 진상품과 재료는 모두 상납을 받았고, 남은 음식들은 하인들이나 종친, 고관댁으로 사송(賜送:임금이 신하에 물건을 내려 보내는 것)했었다. 이런
    인문/어학| 2004.12.03| 18페이지| 2,500원| 조회(1,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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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 한국 재래시장의 역사적 성격과 기능(체험보고서)
    한국 재래시장의 역사적 성격과 기능(체험보고서)처음에는 엄청 난감했다. 재래시장 체험보고서인데 어디를 가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향이 지방인지라 어렸을 때 가끔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곤 했다. 그 때는 몰랐다. 내가 본 것이 5일장이라는 것을…. 당시에 나는 그 날만 유독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줄 알았다. 이렇게 그때는 인식을 못했지만 5일장이라는 것을 가끔씩 본 적이 있다. 그 곳은 여느 시장 골목보다 시끌벅적했고 닭이나 개, 토끼 같은 동물들을 비롯해 별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막걸리에 파전을 드시기도 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엿장수 아저씨의 경쾌한 몸놀림을 유심히 지켜보고 앉아있던 꼬마아이들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재래시장은 이런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생각과 일치되는 풍경의 시장을 서울 근교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 선배의 조언으로 성남 모란시장을 가려고 하였지만 4일과 9일에 장이 서는 관계로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와 상의한 후에 남대문시장과 경동시장을 찾아가 보았다.Ⅰ. 들어가며1. 과연 시장이란 무엇인가? (책 「시장의 사회사」를 통해 본….)책 『시장의 사회사』를 보면 우리의 생활권 안에 항상 존재하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재래시장에 대해 역사적·사회적으로 명쾌하게 고찰하고 있다.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도 있기는 하였지만, 시장이라는 공간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이 책을 바탕으로 해서 전통적으로 시장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말해 보겠다. 일단,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시장에 관한 연구가 미흡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시장은 누구에게나 공개된 장소이면서도 막상 역사의 줄기에서는 가려지고 묻힌 분야 가운데 하나다. 이러한 역설적인 현상이 왜 일어났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역사를 움직여온 수 많은 민중의 살아 움직이는 생활사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것이 우리의 글로써 제대로 표출된 적도 연안 각 포에서 활동하였으 며 대개 큰 창고를 보유하고 우마를 재울 수 잇는 마방을 설치한 자들도 있었다. 곡물, 어염, 수산물 등의 위탁판매 또는 매입을 업으로 한다. 그러므로 하는 일은 객주와 비슷하다.{) 위의 책. p.116즉, 객주와 여각은 상인들이 장길이나 소로를 이용하여 이동하는 중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또한 물건보관과 알선의 일까지 겸해서 하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객주와 여각에서 쉬고 지방의 향시를 다니는 상인이 있었을 것인데, 이러한 행상들이 우리가 많이 들어보았던 보부상인 것이다.보부상은 부보상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 향시, 즉 지방의 정기시장을 중심으로 행상하면 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경제적 교환을 매개하던 전문적인 시장상인이다. 이들은 대개 하루 에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범위로 형성되어 있는 시장들을 돌면서 각 지방의 물품교환을 촉진 했다.{) 위의 책. p.1184 시장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이 뿌리 깊은 농경사회에서는 장사를 통하여 큰돈을 버는 것을 경계하였다. 우리나라는 특히 고려 후기부터 유교적 이념을 국가운영의 기틀로 삼으며 상인들을 천하게 여겼고 그들의 활동을 국가적 차원에서 억압하였다. 그것은 문학작품에서도 나타나는데 고려 후기에 나온 가전(假傳)체 소설인 『공방전』에서도 잘 나타났다. 돈은 겉모습은 둥글지만 그 내면의 모습은 모가 났으며, 그러한 돈의 양면성을 이야기하고 경계 할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상업의 천하게 여기는 모습은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필자는 시골장이 소멸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시골장의 소멸 또는 폐지는 단순히 경제적 거래의 중단만이 아니라 농민들간, 마을간 커뮤니 케이션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골장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규정짓는 것은 그 장 의 주된 수요자인 농민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경제적인 효율성만이 가치판단 의 유일한 가늠자가 되어버린 세태에서 농민과 영세상인, 그는 1,052개의 장시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5일마다 열리는 5일형 장시는 905개소, 10일형은 125개소 15일형은 18개소, 3일형은 4개소였으며 장시의 분포는 경상도가 268개소로 가장 많았고, 51개소의 강원도와 42개소의 함경도가 적었다. 5일장의 유래는 이와 같이 장시가 월 6회, 매 5일마다 열리는 5일형이 많았기 때문에 장시를 5일장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옛 것을 살리자는 의미에서 이것을 『민속장』으로 부르게 되었다.3 재래시장의 변천근대의 민속장은 1914년 일제하의 시장규칙공포에 따라 "제1호 시장"으로 이름이 붙여졌으며 우리의 전통적인 정기시(場市)로 가장 중요한 상업기관으로서 기능을 가졌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이 정기시는 공설시장, 도매시장, 곡물시장 등의 개설로 서서히 변화되었다. 일제시대의 시장의 총수는 평균 1,100~1,600개소로서 식민지시기에 장시의 네트워크는 확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기시장은 해방이후 휴전이 될 때까지는 사회적 혼란으로 일시적인 침체를 겪었으며 5,60년대에는 농촌인구의 증가와 지방자치제의 실시 및 경제성장으로 인한 소득증대 때문에 크게 성장하였다. 정기시장의 수는 1950년대 668개소, 1960년대 후반에는 1,090개소, 1973년에는 1,085개소로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지속적인 경제발전으로 유통질서의 커다란 변혁 속에 5일장의 수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최근 조사된 자료를 보면 1988년도 752개소, 1991년도 686개소, 1997년 537개소로 대폭 감소되고 있다. 특히, 서울지역은 민속장이 자취를 감추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4 재래시장의 역할장은 5일마다 열리어 보통 여섯 번 개장된다. 시장에서는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과 수공업자의 공산품이 교환되고, 산간의 산물과 곡창지대의 곡물, 해안과 내륙의 산물 등이 교역되었다. 지방마다 장날이 엇갈리므로 장돌림 상품을 봇짐에 지고 다니는 보부상이 교역의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시장은 이러한 교역이외도 새 문물하고 있는 군현끼리 또는 군현과 군진끼리 장세의 수세액을 늘리거나 장세의 징수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또 장시의 운영권 쟁탈전에 중앙에서도 개입하여 중앙관부와 지방관부사이에 수세권을 확보하기 위한 갈등이 일어나게 되었다. 본래 지방관부에서 거두고 있던 장세를 중앙관부에서는 열악한 재정의 보충을 위해 징수하려 하였다. 중앙에서는 장세를 거두기 위해 감고(監考)를 차출하거나 하속(下屬)을 파견하였다. 뿐만 아니라 장시에 직접 전포를 개설하여 상업을 개시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따라 장시에서의 권력층의 영향력은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조선후기에는 상품의 유통을 왜곡시키는 도고상업(都賈商業)이 전국 각지에서 미미한 물종에까지 전개될 정도로 성행하였다. 그러한 결과 지방장시에서도 서울이나 근경지역 못지않게 도고상업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었는데, 수명의 도고상들이 물종별로 나뉘어져 있었다. 장시에서의 도고상업은 현지 정보를 이용한 전인, 선주인(船主人) 등의 토착상인들과 막대한 자금을 앞세운 경상, 송상 등의 외래사상들에 의해서 또는 그러한 토착상인과 외래사상들의 공모에 의해서 전개되고 있었다. 이 중에서 현지 정보를 앞세우는 향상(鄕商)과 막대한 자금을 살포하는 외상(外商)이 관권의 비호나 묵인하에 상호 체결하여 도고행위를 전개하였던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고상업이 가능하였고, 그것이 치열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이러한 도고행위는 물종을 품귀하게 하고 가격을 폭등시켜 소생산자와 소상인 모두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도고상인들은 촌민들을 억압하고 상인들과 주객관계를 정하여 장시의 시권(市權) 을 농단하였다. 그렇게 때문에 도고상업을 금하려는 노력이 법적으로, 그리고 중앙관료, 관찰사, 지방관들 사이에 시도된 적이 있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었다. 부상배들이 권력층과 결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김덕진, 18∼19세기 地方場市에 관한 연구 , 논문2. 재래시장의 재발견시장현대화사업을 추진여행사와 함께 쇼핑 패키지상품을 만들어 유치한 손님들이다. 거평은 과거 이태원. 면세점으로만 향했던 이들 외국인들을 유치하는 대가로 외국 쇼핑객 매출액중 일부를를 여행사에 떼주기로 했다. 또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에겐 벽걸이 시계 등 기념품도 나눠준다.서울 남대문시장 부르뎅아동복 상우회는 영어, 러시아어, 광동어 등 3개 국어로 된 홍보전단 1만여장을 찍어 통역 아르바이트생들을 동원해 배포중이다. 인근 호텔은 물론, 서울 왕십리.연희동 등 외국 바이어들의 물류 창고가 몰려 있는 지역에까지 사정권에 넣고 있다. 상가 앞엔 3개 국어로 된 상가 홍보 현수막도 내걸었다. 거평프레야의 경우 영어 등 외국어 회화가 가능한 한국외국어대생들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해 외국인들의 쇼핑을 돕고 있다. 용산전자상가에 있는 전자랜드는 외국인 손님이 몰리자 영어로 매시간마다 주차 및 상가시설을 안내하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러시아 보따리상이 주로 찾는 서울을지로6가 주변의 상인들은 현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교포들을 한두명씩 고용하고 있다. '삐끼' 로 불리는 유인책들은 시장 주변은 물론, 승합차 등을 동원해 비행기 도착시간에 맞춰 공항에서부터 외국인 고객 확보 경쟁을 펼치고 있다.전국에 산재한 재래시장ㆍ상점들은 경제성장의 저하, 대형유통업체ㆍ외국 유통업체들의 대형판매시설 확산 진출등의 악조건하에서 고령화된 4인 이하 가족위주 생계유지형으로 저마다 취급상품ㆍ구입방법, 판매방식, 가격파괴등 나름대로의 개조를 시도하려고 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재래시장에 획기적인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밀리오레나 두산타워등의 현대적 재래시장의 등장과 소비자를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다니는 적극적 마케팅 전략은 국내 소비자에게는 질 좋고 양질의 디자인의 제품들을 값싸고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더욱 대중적인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외국인에게는 꼭 한번 들리고 싶은 관광명소로 자리메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3. 남대문 시장에 다녀와서
    인문/어학| 2004.12.03| 18페이지| 2,500원| 조회(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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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경복궁 배치원리와 건물현황 평가D별로예요
    ● 경복궁의 배치 원리와 건물 현황1. 배치의 윈리고종 때 중창된 경복궁의 배치 계획상 특징은 무엇일까? ≪景福宮昌德宮內上樑文,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청나라 戴東原의 저서 ≪戴氏遺書考工記圖≫를 참작했다. 둘째, 창덕궁과 경희궁의 궁실 제도를 참작했다. 셋째, 배치의 사상적 원리로 역상(易象―太極, 四象, 八卦)를 취했다. 넷째, 제왕별자리의 배치를 본땄다.즉 三門三朝{) ≪周禮考工記≫의 궁실 제도에 관한 규정 중의 하나이다. 먼저 3조란 맨 앞부터 外朝→治朝→燕朝로 연속되는 3대의 중정, 즉 朝를 궁실 제도의 원초적 형식으로 규정한 일정한 제도적 틀이다. 연조는 왕, 왕비, 왕실 일족이 생활하는 거주 구역이며, 여기에는 침전이 배치된다. 치조는 왕이 신하들과 더불어 정치를 행하는 공공적인 구역으로, 여기에는 정전과 편전이 자리잡는다. 정전은 朝禮를 거행하고 법령을 반포하며 朝賀를 받 는 곳이다. 편전은 왕이 중신들과 국정을 의논하는 곳이다. 외조는 조정 관료들이 집무하는 관청이 배치되는 구역이다.삼문은 외조의 정문인 庫門(外門), 외조와 치조 사이의 雉門(中門), 치조와 연조 사이의 路門을 말한다. 천자의 궁궐에서 3문은 둔 경우에는 皐 門·應門·路門, 5문을 둔 경우에는 皐門·외조·庫門·치문·명당·응문·治朝·노문·燕朝 순으로 궁궐 핵심 부분을 배치하였다.周制(주나라의 제도)라고 이름 붙여진 이와 같은 궁궐 건축의 형식과 구성 원리는 경복궁 창건 당시에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 하지만 이상 적 규범으로 받아들여진 것이지 어쩔 수 없는 법칙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경복궁의 경우 외조는 정문에서 근정문까지 구역이며, 동서 행랑에는 궐내에 필요한 관청을 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치조는 근정문에서 사정 전까지 구역인데, 정전인 근정전과 편전인 사정전이 하나의 중정 안에 함께 배치되지 않고, 사정전이 오히려 연조에 가까운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 편전을 연조에 속하는 침전에 가까이 배치한 경복궁의 구성은 삼문삼조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닌 배치라고 할 수 있다.의 궁실 제도를 바탕으로 하되 당시 창덕궁과 경희궁 건물 및 구성을 참작했다. 또 근정전을 비롯하여 교태전에 이르기까지 太極圖說이나 천문도의 별자리 배치를 반영하였다. 천문학은 예로부터 帝王學이었고 궁정 예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하늘에서 북극성을 중심으로 천체의 모든 별들이 운행하듯, 땅 즉 인간사회에서는 왕이 중심이라는 사고 때문에 왕은 곧잘 북극성에 비유되었다. 궁궐의 정전을 紫極殿, 紫 殿 등으로 명명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또 중국을 비롯한 동양 사회에서는 별자리에 이름을 붙일 때 궁궐을 비롯한 사회 조직을 반영했다. 경복궁 강녕전 일곽의 5채 건물은 별자리의 五帝座에 해당한다.또 태극도설이란 성리학적 우주관을 도식적으로 요약하여 그린 그림으로, 음과 양이 나누어지기 전 원초적인 혼돈 상태를 태극이라 하고, 이것이 음과 양으로 나누어져 모든 사물의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는 사상이 나타나 있다. 먼저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왕과 왕비가 이곳에 거처하면서 아들을 낳으면 왕세자의 지위를 거쳐 지극한 존재인 왕위에 오르기 때문에 交泰(太極)라고 이름한 것이다. 교태전의 정문도 음양을 뜻하는 兩儀 로 이름 붙였는데, 이 문 밖으로 우주 곧 세계가 열림을 뜻한다. 양의문 밖에는 왕의 침전인 강녕전을 비롯하여 5채의 건물이 배치되어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인 五行을 상징하고 있다. 강녕전 정문인 嚮五門(향오문) 밖에는 편전인 思政殿·萬春殿·千秋殿 등 3채의 건물이 있어서 강녕전 일곽 5채와 합치면 8채가 되어 八卦를 상징한다.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중창된 경복궁의 핵심부는 정전(북극성)→편전 3채(三光之庭)→왕의 침전 5채(五帝座) 순으로 배치되어 천문도의 별자리를 모방하고 있다. 방향을 반대로 하여 해석해 보면, 왕비침전(太極)→문(陰陽)→왕 침전 5채(五行) 순으로 배치되어 태극도설과 그대로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경복궁 중건 배치 계획안은 역리(易理)와 음양오행 등 건축외적 사상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 초기 이래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2. 배치 형식과 건물 현항위와 같은 사상적 원리에 따라 설계된 경복궁의 형식적 특징을 알아보자. 먼저 정전 일곽 궁궐 핵심부의 형식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첫째, 궁성 남쪽 중앙에 자리잡은 정문인 광화문부터 왕의 침전인 강녕전까지는 중심 축선 위에 좌우 대칭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다.둘째, 모든 건물의 평면은 직사각형이고, 건물의 규모와 기단의 높이, 공포의 출목수, 채색의 화려한 정도 등에 차이를 두어 주종 관계를 분명히 하는 등 위계성을 드러내었다.셋째, 행각으로 둘러싸인 마당은 공간의 깊이를 강조하여 왕권의 권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넷째, 궁궐 후원 연못 안의 섬에 세워진 향원정은 광화문으로부터 이어 온 중심 축을 따라 배치되었을 정도로 이 축은 배치 전체를 통제하고 있다. 거의 모든 건물이 남향이고 저마다 중심축도 전체의 중심 축과 평행하다. 그 결과 경복궁은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이상주의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게 되었다.이런 조형적인 효과는 중건을 담당했던 집권층의 명분적 사고와 일치한다. 그들은 天理나 태극같은 추상적이고 불변적인 가치를 철저하게 신봉하였다. 18세기 이래 전통적 천문학과 이에 바탕한 天命思想이 빛을 잃고 퇴색하는 가운데에서도 굳건하게 斥邪衛政的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왕이 하늘의 아들(天子)이라고 믿지는 않으면서도 왕권을 신성시하는 천명사상은 고수했다. 이를 부정하는 어떤 세계관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였다. 집권 세력이었던 중건도감의 관료들은 그러한 이념적 태도를 경복궁 중건안에 반영하였다. 계급간의 엄격한 구분에 입각한 조화를 추구하는 정치관과 윤리관이 그들의 미의식에 잠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궁궐은 그들의 유교주의적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건축이었다.정전 주변이 이처럼 형식주의적 미에 치중하여 설계·배치된 데 비해 주변부 건물은 보다 자유로운 조형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첫째, 경회루 못은 근정전 일곽과 같은 규모이면서 동서 방향으로 길게 배치되어 정전 일곽의 종심성 강한 절서에 대비해 하나의 파격을 이루고 있다. 더구나 경회루의 동서 중심 축은 교태전의 정문 및 남행각을 관통하면서 경복궁 전체의 동서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과학| 2004.12.03| 3페이지| 1,000원| 조회(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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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제도론] 우리나라 금융제도의 변화
    금융개혁의 과정금융겸업화와 대형화는 세계적 추세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외에도 IMF이후 부실채권의 증가문제가 있다. IMF이후 부실기업들의 도산과 채무불이행 상태가 늘어나면서 은행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어 현재 독자생존할 수 없는 은행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렇게 늘어난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서 은행으로서는 영업이익을 내서 부실을 처리해야 하는데 현재 공급과잉인 우리나라의 실정 사 경쟁이 치열해 영업상의 이익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2년간의 금융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들의 대외신인도는 올 들어 더욱 하락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현대그룹의 자금난 사태는 한국계 은행의 대외신인도를 더욱 하락시켰다. 그 예로 작년 6월 28일 외환은행은 자본금 확충을 위해 만기 10년짜리 외화 후순위채권 2억달러를 리보(런던은행간 금리)에 6.5%의가산금리르 얹어주는 조건으로 뉴욕시장에서 발행했다. 3개월물 리보금리가 대략 6.7-6.8%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외환은행 후순위 채건의 금리는 연 13.3%에 달한다. 또한 부실채권으로 인한 국내은행의 대외신인도 하락의 결과로 구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도 하락하게 되었다.정부는 경영정상화에 실패한 은행은 공적자금을 투입한 뒤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1차 금융구조조정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적자금투입은 그에 상응하는 경영진 책임, 감원, 조직축소, 업종 변경 등 자구노력을 필수적으로 동반하게 된다.2차금융구조조정은 자발적 혹은 강제적 합병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고 금융지주회사도 그러한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금융노조가 총파업을 선언하고 나섰던 것도 이러한 금융구조조정의 과정에서 과거와 같은 엄청난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일단 금융노조측의 입장은 충분히 수긍이 갈 만하다. 98년 1차 금융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무려 32%에 달하는 2만명의 은행원들이 직장을 떠나야 했다. 그 이후로 은행계에서는 줄곧 힘없는 자만 당 사는 대안'을 모색하려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실물과 금융의 복합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였으며 그 근본적인 원인은 지금까지 취해 온 경제성장 패턴이 야기한 정부-기업-금융기관간의 유착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의 관행 하에서 대기업, 금융기관, 정부 등 각 경제주체는 구조적 취약성을 누적시켜왔으며 생산성과 경쟁력을 제고하는 자생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번 IMF 지원과 함께 수반되는 이행조건은 상당부분 미리 우리 스스로 단행하였어야 할 구조개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본 고에서는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인해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게될 금융부문에 초점을 두어 금융산업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인해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게될 금융부문에 초점을 두어 금융산업의 구조조정, 금융시장의 조기개방, 금융감독 등에 있어서 각각의 변화방향과 대응방안을 살펴보았다. 이번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IMF의 요구사항을 감안하여 기존의 제도와 관행을 과감히 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부문은 금융산업의 획기적인 구조조정과 부실채권 정리를 통하여 대외신인도를 회복하고, 기업은 구조조정 노력의 강화, 재무구조의 개선,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노사협력, 경영혁신 등을 통하여 생산성을 개선하며, 정부도 효율적인 조직개편을 실시하는 등 각 경제주체는 구조적 취약성을 시정해야 할 것이다.우리나라 금융제도의 변화1. 조선시대의 화폐와 금융제도철기 시대에는 철이 거래의 매개 수단(삼국지 위지 동의전)으로 등장하였다. 그 당시에는 철이 귀금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보통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의 이행기에 나타난다. 중국의 경우에도 도전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돈이라는 명칭과 관련해서는 고려말까지 화폐를 의미했던 "도(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화폐 순환사상에 근거를 둔 "돈은 돌고 돈다"는 말에서 나왔다는 설도 전해져 왔다. 동양에서 사용되었던 화폐의 공급 부족으로 화폐를 주조하는 것이 쉽지 않은 면도 있다.이러한 이유로 여전히 상품 화폐가 일반적인 거래에 쓰이고 있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표준적인 포화는 폭 32.8cm , 길이 1.64m 인 5승(400가닥) 면포였다. 그러나 소액 거래에 맞게 길이 및 승이 점차 감소하였다.(160가닥, 93.7cm 등장). 그런데 2승 포는 사용가치가 없는 추포로서 옷을 만들 수는 없었지만 소액거래에 주로 사용되었다. 대량의 고액 거래는 주로 은화를 사용하였는데, 일본과의 무역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어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유입되었다.조선 중기에 이르러 상업의 발달로 금속 화폐 사용이 점차 증가하게 된다. 특히 정부가 상업유통을 담당하던 시전과의 거래에 동전을 사용하였다. 시전이 필요한 금속화폐에 대하여 무이자로 대출을 하여주기도 하였다. 또한 관리의 녹봉 지급에도 사용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농민들에게 필요한 동전을 행전차인을 통해 환전하여 주었다. 세금으로 부과된 전세미, 대동미 등을 운반이 곤란한 산간지방이나 면화의 흉작 때 신포 등의 수취에 동전 납부 허용하기도 하였다. 즉 법정 조세의 급납화를 추진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조달된 동전을 이용하여 정부가 필요한 물품을 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었다. 이것을 대전 방납이라고 하는데 조세를 대행하던 자에게 동전으로 징수하고 정부가 필요한 미곡이나 면포를 서울에서 구입하여 납부하도록 하였던 것이다.그리하여 1634년 개성에서는 돈을 가지고 모든 상품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정도에 이르게 된다. 지금 화폐가 부족하여 물화가 잘 유통되지 않아 모두 행전을 원합니다.' 그리하여 1678년에는 상평통보(동전)가 대량으로 주조된다. 동전 발행 급증으로, 1695-97년간 250만냥이라는 대량의 동전이 발행되었다. 또한 사적 주조가 등장하게 되어 동전 가치의 하락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상품경제의 발달로 1710년에는 전황이 발생하였다. 즉 돈의 부족으로 상품의 유통이 불편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1731년에는 동전을 다시 주조하기에4필에 1냥에서 1/2필에 1냥까지 상승하기도 하였다. 일본에 면포 수출로 은을 수입하고, 중국에서 비단 수입하여 은을 수출하는 3각 교역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에서 수입된 명주실, 비단을 일본에 재수출하여 은의 조달이 이루어졌다. 1687년 청나라가 일본과의 국교 수립하게 되고, 1713년 중국과 일본의 직접 무역이 이루어진다. 일본은 은화의 부족으로 은 수출을 규제하게 되는데 19세기에는 조선은 소가죽인 우피를 수출하고, 동전의 원료인 동을 수입하게 된다. 일본으로부터의 들어오는 은이 부족하게 되어 물가가 하락하고 이에 따라 인삼 가격도 하락하게 된다. 이에 중국에 인삼 수출이 증가하게 된다. 중국에 인삼 수출을 통해 은의 공급이 이루어진다. 획득임. 18세기말에 금광이 개발되어 금의 상대 가격이 하락하게 되는데, 금의 수출로 견포 수입 등에 필요한 자금을 결제하게 된다.국내 상품경제의 발달과 국제무역을 통한 상인자본의 발달로 상인에 의한 결제수단의 공급이 이루어진다. 즉 상인에 의한 환, 어음의 등장하게 된다. 18세기 후반 개성의 송상이 서울, 강경, 전주, 강릉과 거래하면서 환거래를 하게된다. 그리고 세금 납부에도 일부 사용하기에 이른다. 보통 400-600냥 규모로 수천 냥도 거래되는데, 어음은 지불 기한이 한 달 정도로서 2-3회의 양도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환, 어음은 주로 비단 소금의 거래에 사용되었다.한편 객주에 의한 금융 중계업무도 나타난다. 상품의 이동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포구에 객주가 출현하는데 이들은 배를 이용한 상인인 선상과 소비자에게 상품을 직접 판매하던 보부상이 위탁한 상품의 매매를 주선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 소비자에게 대한 판매는 서울의 경우 시전, 지방은 장시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객주는 자본의 규모가 크고, 거래물량이 큰 대상인의 물품을 시전상인, 행상에 중계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상품의 유통은 산지 ---> 행상 ---> 생산지 객주 ----> 선상, 대상인 ---> 소비 일어나기도 하였다.조선 중기 이후 상품경제가 발달하고, 시장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자본을 축적한 상인들에 의하여 금융중개업무를 비롯한 민간에 의한 화폐의 공급도 일부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개항 이후 외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근대적인 금융제도가 도입되게 된다,개항이 이루어지던 1876년 부산에 일본의 제일 국립은행의 지점 설치되고, 1880년 원산 출장소, 1882년 인천 출장소 설치된다. 이들은 초기에 일본 영사관의 공금 출납업무, 상해 영사관의 외환 업무를 담당하지만, 후에는 일본 상인의 금융 및 외환 거래를 지원하게 된다. 나아가 한국 정부의 관세 수입 업무 대행하기도 한다. 즉 관세 수입을 담보로 정부에 멕시코 은화를 대여하기도 하였다. 이들 은행의 어음(bank note)을 한국 정부가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1896년에는 일본 은화의 유통량이 한화의 유통량보다 많아지기에 이른다. 이들은 영국 면직물을 수입하여 한국에 판매하여 중개 이익을 얻기도 하였다.1898년에는 홍콩 상해 은행의 인천 대리점을 Townsend 상회가 대신 하게 된다. Townsend 상회는 선박 수입, 광산용 화약의 제조 판매하면서 중국 및 영미 상인의 자금 중재를 담당하였다. 이처럼 개항 후 외국의 금융기관은 기존 주식회사의 지점으로 진출하여 자국 상인의 자금 중재나 무역에 필요한 신용 공급을 주로 담당하였다.이에 자극을 받아 국내금융기관도 설립되는데 합자회사로 대한 제일은행이 먼저 설립된다. 상인과 관료들이 참여하는데, 주로 정부와의 거래를 담당한다. 즉 국고금의 대여를 주로 담당하였다. 즉 상인들의 국제무역 업무를 지원하거나 정부의 금고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정부는 화폐와 금융 제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1901년 금본위제를 채택할 것을 공포하고, 1903년 중앙은행을 설립하고자 하였으나 이를 이루지 못하였다.2. 일제하 금융제도일본은 식민지 지배를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근대적인 은행과 금융기관을 설립하였다. 먼저 1905년 일본의 제일은행 지점이 발행한 은이다.
    경영/경제| 2004.12.02| 7페이지| 1,000원| 조회(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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