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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경제와 기업의 역할
    시장경제와 기업의 역할내가 회사에 입사하기 전, 모든 취업 준비생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많은 기업들이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고자 다양한 조건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지만 내가 들어설 자리는 한정적이었다. 특히 여자라는 이유로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경쟁을 해야만 했다. 다양한 회사에 지원을 하고, 또 여러 번 낙방을 경험하면서 말로만 들어왔던 취업난에 대해 체득할 수가 있었다. 그 때, 나를 지켜봐 주시던 분께서 나에게 신문 스크랩한 것을 건네주며 다양한 쪽에 눈을 돌려보라고 하셨다. 기사 내용은 아일랜드에서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재들을 많은 프리미엄을 얹어 채용해가겠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기업들을 대거 유치해 유럽의 ‘작은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일랜드가 취업난에 허덕이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5만달러가 넘는다. 1990년 18%에 달하던 실업률은 지금은 4%대로 뚝 떨어져 오히려 일손이 부족해서 아우성이다. 현재 아일랜드에는 MS, IBM 같은 세계적 IT 기업은 물론 오라클, 화이자, 메릴린치, 시티뱅크 등 금융회사, 제약회사 등 1500개 다국적 기업들이 들어와 매년 10만개 이상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대학 진학률은 55%에 불과, 이들 기업에서 일할 고급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 이 때문에 아일랜드 정부는 양질(良質)의 일자리 등 각종 인센티브를 주며 해외 인재들을 유치하고 있다.우리나라는 높은 교육수준의 우수한 인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으로 기업의 활동이 제한적인 부분이 많기에 이러한 인재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IBM, Intel과 같은 세계적인 global 기업체들이 자유로운 경제 환경 속에서 높은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곳이 아일랜드였다. 많은 우리나라의 인재들이 이미 아일랜드에서 다양한 혜택과 교육을 받으며 현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일랜드에서는 왜 global 기업들이 현지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우리 기업들은 국내의 수많은 인재들을 외국으로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까?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기업이란 무엇인가 알아봐야 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경제주체는 개인, 기업, 정부 그리고 해외부문이다. 그 중 기업은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경제주체이다. 무슨 일이든 전문으로 한다는 것은 같은 비용과 노력을 들였을 때 다른 집단에 비하여 더 높은 효율성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은 높은 비용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품질의 상품이나 소비자가 원하는 새로운 상품을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여 이윤을 남기고자 한다. 경제성장은 기업의 이러한 생산증가로 얻어지는 소득증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업은 경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생산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일자리를 창출해낸다. 예를 들어 포스코는 포항 지역의 고용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고 있고,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지역의 주민은 대부분 이 두 회사의 임직원 및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기업은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같은 우리 기업은 해외에 잘 알려져 있고, 세계 상위권을 유지하면서 세계로 많은 제품을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기업은 왜 존재해야하는가?기업이 존재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생산 활동의 효율적 수행이다. 기업이 생산 활동을 수행하는 경우 첫째, 팀에 의한 생산이 가능해지고, 둘째 기업의 생산 활동을 통해 거래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으로 생산 활동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기업의 원론적 역할과 이점은 시장경제에 있어 최우선적 과제인 효율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이제 기업 자체의 존재 목적을 알아보자. 기업의 목적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이윤(Profit)”이다. 이는 앞서 말한 기업의 정의에도 부합하는 사실이다.하지만 현실에서 기업은 단순히 이윤의 추구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을 보자. 삼성의 경영이념은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이다. 삼성의 일차적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건실한 경영을 통하여 창출한 이윤은 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사회에 공헌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기업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할 의무는 없다. 왜냐하면 기업은 상품을 생산하여 이윤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생겨난 경제주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고용을 창출하여 근로자에게 봉급을 제때에 지급함은 물론 국가에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는 것으로도 사회적 책무를 충분히 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최근에는 “기업윤리”가 강조되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대형화되면서 경제력 집중이 가속화 되고 기업들의 의사결정이 사회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정도경영’, ‘열린경영’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기업경영의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처럼 기업의 다양한 목적과 행동은 국가의 여러 부문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찌 보면 기업의 생산 활동에 대한 결정이 온 국민의 생활의 질을 높여주거나 떨어뜨리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 서론에서 꺼낸 아일랜드와 우리나라의 차이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아일랜드의 성공에는 정부의 역할이 크게 좌우했다. 정부의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많은 투자자들을 유치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아일랜드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대거 끌어들였으며,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물론 1950년대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정책적 혁신으로 인하여 큰 성장을 이룩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둘은 큰 차이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국가가 주도하여 스스로 큰 정부를 내걸고 시장경제를 표방했지만 결코 완벽한 시장경제로 볼 수는 없었다. 모든 산업에서 정부의 결정이 우선되었었다. 혹자는 이러한 국가주도적 발전이 개발도상국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이는 많은 폐해를 남겼다. 정경유착, 부정부패 등의 의혹이 끊이질 않고, 기업의 투명성, 기업의 혁신에도 많은 오점을 남기기도 했었으며, 시장이 더욱 자유로워진 이후에도 기업은 정부의 뒤 봐주기만을 바라는 반혁신적인 행태를 보이기도했었다. 반면, 아일랜드는 정부가 주도하여 다양한 기업을 유치해왔지만 단지 기업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반만을 마련해 주었을 뿐, 그 이상의 간섭은 절대 하지 않는다. 각각의 주체들이 제 역할을 함으로써 진정한 시장경제의 원리가 작용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정부가 지나치게 시장경제에 간섭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나타내게 하고, 기업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경영/경제| 2008.05.04| 3페이지| 1,000원| 조회(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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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불멸
    사랑, 연애, 증거경제학과 4학년 2003150119 부 찬 경사랑[love]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으로 인류에게 보편적이며, 인격적인 교제, 또는 인격 이외의 가치와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 특히 남녀 간의 연애) 행위는 사랑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실제적으로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인간의 본능적 행동이다. 나 역시 연애를 하고 있고, 이러한 연애 행위는 진짜 사랑이라는 둘만의 믿음을 바탕으로 행해진다. 물론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 못했기에 그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나 역시 여느 연인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정신적 가치를 어떻게든 확인하고자 노력한다. “나 사랑해?” 내지는 “얼마만큼 사랑해?”라는 식의 질문은 그에게 지겨움을 안겨준다. 처음에 그의 대답은 이랬다. “왜 자꾸 그런 걸 물어보는데?” 나도 이런 질문은 필요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그의 마음을 물어보면서 나는 내가 가진 사랑이 일방적인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일 년 가까이 그와 함께 지내면서 거의 매일 이런 질문에 지친 그는 이제는 체념적 어투로 대답한다. “어, 사랑하지.” 나는 도대체 그런 질문으로부터 무엇을 얻고 싶었던 것일까?누구나 사랑은 정신적 가치라고 믿는다. 누구나? 물론,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런 정신적인 사랑을 믿지 않는 경우도 나오기는 한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었다. 사람은 그 사람의 배경이 전부다.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어떤 혜택을 받으며 살아왔는가가 그의 전부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사랑이라는 것도 그런 환경적(더 솔직히 말하자면 물질적인 것이다)인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은 정신적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물리적으로도 구현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피부교감의 정도는 그 연인의 사랑의 정도를 반영하는 거의 확실한 수단일 수 있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크게 동의하지 못하였다. 왜 서로 사랑한다는 증거로 육체적 접촉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사랑에 왜 필요한 것인지.생텍쥐페리(Saint-Exupery)는 사랑에 관해 이런 말을 했었다. “사랑이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너도 법대생이었으면 좋겠다.’ -그는 고시생이다- 나는 그가 하는 공부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잘 모른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게 느껴진다.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와 나는 지금 지향하고 있는 바가 다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다르다. 게다가 지금 매진하고 있는 일도 다르다. 나는 마주보고 싶어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음을 알면서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싶어 한다. 생텍쥐페리는 왜 마주보는 것은 아니라고 했을까? 사실 마주보고 있으면 문제가 많이 생긴다. 일단 서로에게 질리기 쉽다. 매일 같은 얼굴, 같은 모습. 항상 그렇게 서로만 바라보고 있다면 어떤 발전이 있겠는가? 남녀 간의 사랑도 앞으로 나아가야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의미가 없다. 역시 마주보는 것보다는 같은 곳을 향하는 것이 서로에게 힘도 되어줄 수 있고, 각자의 인생을 함께 발전시켜 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랑이란 감정은 ‘불현듯’ 찾아온다는 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떤 남자가/여자가 좋아지고, 고백하고, 사귀게 되고. 아무리 오랫동안 친구 사이로 지내온 남녀라도 이렇게 ‘불현듯’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저 사람은 지금 나랑 전공이 같고, 저 사람의 꿈은 무엇이고, 저 사람은 저런 생각, 시각을 가지고 있어.’ 이런 것을 따지면서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이렇게 수정한다. “서로 절충해서 같이 가는 거지.” 오히려 이것이 같은 방향을 향한다는 것보다는 현대 사회에 더욱 어울릴 듯하다.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은 한순간에 이뤄내기 힘든 일이다. 이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하면서 조금씩 양보하고, 함께 시선을 맞춰가는 것은 완벽하게 같이 향하는 것보다 훨씬 유(柔)하고, 현실적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 집안일을 하고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는 그런 사회도 아니지 않은가!‘너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야.’ 이 말은 내 심장이 찔린 것 같은 아픔을 주었다. 보수적인 그에게 있어 내가 그와 같은 곳을 완벽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물질화 하려고 노력했던 수많은 말들은 정말 단순히 “물질화”만을 요구했던 말들로 격하되었다. 사실 누구나 언제든 떠날 수는 있다. 어떤 방식이 되었던 사람은 만남이 있다면 이별도 있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의 세속적인 행동들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고 진실 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렇듯, 누군가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은 적어도 당사자에겐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는 끝을 보려하지? 난 그 끝을 보려하는 그의 눈을 막는다. 입으로.내가 그에게 “나 사랑해?”, “얼마만큼?”이라고 묻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고, 물질화 시키려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이 질문을 통해서 나는 당연히 당신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그곳을 바라보는 것에 힘을 줄 수 있다. 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육체적 증거를 필요로 하는 이들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물질적이든, 육체적이든 어때? 사랑하는데. 하늘만큼 땅만큼. 죽을 때까지.) 특히 미움의 대립개념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근원적인 생명적 원리로는 그러한 것도 포괄한다. 사랑은 역사적·지리적으로, 또 교제 형태에서 여러 양상을 취한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사랑은 에로스로 불렸는데, 이것은 육체적인 사랑에서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동경·충동을 포함한다. 그리스도교에서의 사랑, 즉 아가페는 인격적 교제(이웃에 대한 사랑)와 신에게 대한 사랑을 강조하며 이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자기희생에 의하여 도달하게 된다고 한다. 르네상스에서의 사랑은 또 다시 인간 구가(謳歌)의 원동력으로 보았으나 이것은 사랑의 세속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 공업화가 진척되어 가는 현대는 그 경향을 차차 강조한다. 사랑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라는 데서 힌두교에서의 카마, 유교에서의 인(仁), 불교에서의 자비 등 모든 문화권에서 보인다. 또한 사랑의 표현방법은 한결같지 않으며 성애(性愛)와 우애·애국심·가족애 등 교제 형태에 따라 다르다. 교제관계가 치우칠 경우에는 이상성애(異常性愛)나 증오에 가까운 편집적(偏執的) 사랑으로 변할 수 있으나, 이것은 이미 사랑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인문/어학| 2006.12.28| 2페이지| 1,000원| 조회(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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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련 사회주의 체제의 정치적 특징
    소련이 붕괴된 지 10년도 훌쩍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는 그 거대했던 소련의 옛 모습을 그리고 해체된 지금까지도 그 관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인류 최초로 사회주의 세계, 모두가 평등해질 것이라던 그런 대단한 사회를 건설, 유지, 발전 시켜온 대단한 연방체였지만 지금은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여러 독립 국가들로 나누어지고...... 미국과 함께 세계의 커다란 두 축이 되어 세계를 이끌어 갔던, 세계를 양분할 만큼 큰 힘을 소유하고 있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나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주의의 패배라고 생각될 만큼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이미 무너져버린 정권에 대해 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커 보이고 위대해 보였던 소련의 무너짐은 곧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패배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공부해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하나의 이념을 배우는 것도, 무너진 체제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씩 배워가면서 체제에 대한 이해, 이념에 대한 이해가 왜 필요한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소련을 공부하는 것은 소련 자체를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속의 체제적 특징 속에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지향점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나는 어렸을 때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무조건 배척해야 할 것으로 공부했었다. 소련,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은 우리의 적이라고 배우기도 하였었다. 비록 1990년대에 공교육을 받았었지만, 그 당시 만해도 전 시대보다는 덜 했겠지만 반공교육도 철저히 받았고, 안보 웅변대회에도 열성으로 참여했었다. 이런 어렸을 적의 세뇌 교육에 의해서인지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관련된 것들은 스스로 기피하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간헐적으로 사상, 정치를 공부하면서 그 쪽은 더더욱 비중을 두지 않았었다. 물론 우리나라 공교육었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소련이라는 큰 연합체의 성격을, 구성을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에 먼저 소련의 혁명 이후 발전 과정, 그리고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해서 조금 더 공부해 보았다. 내가 공부한 소련과 사회주의는 이런 것이었다.1922~1991년 유라시아 대륙의 북부에 위치하는 여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구성된 최초의 사회주의 연방 국가이다. 정식명칭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 USSR)이다. 1917년 11월 7일의 혁명으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됨에 따라 로마노프왕조의 군주를 차르(황제)로 하는 제정국가가 무너졌다. 혁명정권은 1918년부터 1922년까지의 내정에 간섭하려는 외국과 전쟁을 치르는 한편, 국내 적대 세력의 내란을 진압하고, 1922년 12월 소비에트 연방을 결성하였다. 그 뒤 새 공화국의 가입으로 15개의 공화국이 공산당 일당독재에 의한 강력한 중앙집권의 연방을 이루었다. 1924년 레닌이 죽자 스탈린이 소련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1928년부터 제 2차 세계대전 때까지 세 차례의 5개년 계획을 실시하여 국민경제의 사회주의화와 공업화가 병행되었으며, 농업은 집단화되었다. 소련이 가진 강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은 5개년 계획을 통하여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34년 말부터 1938년까지의 대숙청을 통해 스탈린 독재정권을 확립,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발언을 봉쇄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소련은 막대한 손해를 입었으나, 대전이 끝난 뒤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생겨남에 따라 소련은 그 지도국이 되었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말렌코프와 불가닌을 거쳐 1958년 2월에 흐루시초프가 수상이 되었다. 1956년 2월 개최된 제 20회 당 대회에서는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으며,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하에서의 개인적, 정치적 자유의 회복이 큰 의989년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는 등 공산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를 지향하게 되면서 보다 급진적인 개혁의 소리가 높아져갔다. 1991년 보수파의 쿠데타가 발생, 이를 무력화시킨 옐친이 보다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게 되었고, 1991년 공산주의 포기와 공산당 해체를 계기로 각 공화국이 독립을 강행함으로써 급속히 붕괴되었다. 연방 해체 후 발트 3국을 제외한 12개 독립 공화국이 1992년 1월 1일을 기해 독립국가연합(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 CIS)을 형성함으로써 소련은 정식으로 해체되었다.먼저, 공산주의에 대해 얘기해보자.(소련 공산주의, 사회주의)마르크스, 엥겔스에게 있어서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는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지만 무정부성을 목적의식적인 계획으로 대체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부터 오는 질곡을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으로 전환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자본주의의 잔흔이 계속 존재하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새로운 계급투쟁의 양식을 통하여 공산주의적 지향을 가지게 된다.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회주의 혁명의 조건은 자본주의에서 충분한 생산력의 발전, 노사간 모순의 극대화와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다수존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는 그렇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은 정통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력의 고도발전에 따른 새로운 생산관계의 요구’라는 원칙을 벗어난 인위적인 사건으로서 혁명의 정당성은 마르크스주의에 두지만 그 발전노선은 이미 마르크스로부터 크게 이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현실 사회주의체제의 선진적 생산관계와 낙후된 생산력간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며 사회주의 각국 나름대로의 마르크스 주의 해석과 정통성을 주장하며 경제발전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던 것이다.초기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레닌이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일거에 실시하는 것을 유보하고 일정시기 자본주의적 요소를 이용함으로써 그‘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에 존재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실제적인 현실파악에서 레닌은 소련의 현실이 생산력발전에서 크게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당분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활용한 생산력발전에 치중하였다. 그 결과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에 앞서 레닌의 실천적 정치형태는 상부구조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며 그 하부구조 즉 경제적 토대는 독일과 같은 ‘국가자본주의’ 형태를 지향하였다.이러한 레닌의 소련현실에 대한 인식은 신경제정책(NEP)으로 전개되고 신경제정책은 초기에 상당한 경제성장의 효과는 있었지만 1920년대 말기에는 국가통제가격과 암시장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네프?(NEP)인을 양성했으며 소련공산당의 많은 당원들이 ?네프?인을 국가의 적으로 간주케 되고 신경제정책 자체도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적과의 잠정적이고 불쾌한 타협으로 보게 되었다.결국 스탈린이 등장하면서 권력투쟁과 관련하여 표면적으로는 균형노선을 내세우나 실제적으로는 불균형노선을 취하게 되었다. 스탈린의 정책은 오늘날 사회주의체제의 특징을 이루는 중앙계획경제와 주요생산수단의 국유화, 그리고 중공업우선론을 취하게 되었다. 스탈린에 따르면 기계가 없고 도시노동자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생활수준을 높이기위한 단기간의 소비재증산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며 기계생산을 늘리는 중공업정책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하에서 스탈린은 농업의 집단화를 비롯한 전산업을 공산당의 수중에 넣는 사회주의적 개조작업을 강행했던 것이다.여기까지가 고르바초프 이전의 소련 공산주의의 대략적인 모습이다.‘새로운 러시아 사람들’ 이라는 책은 고르바초프 말기의 소련의 해체 이전 상황을 분야마다 소개해 놓았다. 이제 그 정치적 체제에 대해 좀더 자세히 논해보자.가장 오랜 시간 동안 소련사회를 지배해 왔던 이념은 “스탈린주의(Stalinism)”인 것 같다. 스탈린주의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 책을 읽으면서 꽤 오랫동안 생각했다. 사전에는 스탈린주의를 이렇게 정의했다. “스탈린의 집권기에 소련 공산당과 국제 공산급구분을 중요시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았었다. 스탈린은 레닌이 논해오던 사회주의 승리에 대해 확신을 하며 이를 위해 스탈린주의를 강행했다. 스탈린주의는 독재와 전체주의, 주체사상 등 한 국가의 구성원을 한 가지 사상으로 물들일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보인다. 극악무도한 잔인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지켜 져야 하는...... 쉽게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과도 같다. 인권보다는 체제의 유지, 발전이 중요한 나머지 체제에 반하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무조건 국가 지도자를 맹신하도록 만드는 그런 체제인 것이다. 이러한 체제의 오랜 집권 때문에 소련 사람들은 아무 변화도 원하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혼돈보다는 안정, 자유보다는 질서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야말로 ‘어리석은 민중’이 되어버린 것이다. 변화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국가에 대해 자기 자신의 일마저 모두 해주기를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까지도 제시해주길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소련인의 대부분이었다. 체제의 획일화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마저도 억제해 버린 것이다.하지만 고르바초프의 등장은 소련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 하고 있었다. 어쩌면 대부분이 원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두렵지만 그 변화가 더 두려워 숨어 지내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사회주의의 근대화, 인간화,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구제할 것이라는 개혁의 기치를 높이고 있었다. 즉, 스탈린주의의 거부라고 볼 수 있다. 그의 개혁은 ‘페레스트로이카’라고 불리어진다. 사실 페레스트로이카의 가장 근본적 등장 배경은 소련 사회의 경제적 침체였다. 여하튼 페레스트로이카는 민주주의라는 뉘앙스가 들어있기도 하고, 소련권력체제에 있어서는 이단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래서 소련의 체제에 대해서 상당히 도전적인 의미도 많이 내포하고 있다. 이로 인해 페레스트로이카를 체제에 대한 변혁이 그리 급진적이지 않고 다만 레닌이 창시한 사회주의를 근대화시킨다든가 개다.
    사회과학| 2006.10.20| 5페이지| 1,000원| 조회(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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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
    1. 피와 미피는 인간의 본질이다. 표현적이고 상징적인 수많은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피는 물감과 유사성을 띠고 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상징성, 표현에 있어서의 파격을 추구하기 위해 피를 사용한다. 특히 제의로서의 예술론은 이런 피의 예술적 의미를 더욱 고조시킨다. 하지만 요즘 행해지는 예술에서 우리는 제의적인 의식과는 많이 다른 것을 느낀다. 원시시대의 의식에서는 아무리 징그럽고 역겨운 장면이더라도 신성에 묻혀있었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유인이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예술에서는 제의로서의 예술론이 그리 효용이 있지는 않다고 본다. 그 예술 자체로는 제의적인 면이 포함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제의에서 그랬듯이 참여자들의 공동의 초월적 가치가 설명되긴 힘들기 때문이다.이와 대비하여 칸트나 흄의 경우는 미, 훌륭한 취미, 의미 있는 형식, 초연한 미적 정서들, 목적 없는 합목적성 등을 바탕으로 한 이론을 내세운다. 이것은 언뜻 보기엔 당연한 듯 보이지만 사실 우리 주위에서 성공한 예술가들, 많은 사람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들을 돌아보면 꼭 그들의 의견이 정확한 것만은 아니다. 세라노의 오줌 예수라든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아들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새턴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전혀 미(美)적 요소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림을 많은 사람들은 예술로써 인정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2. 패러다임과 목적- 비극과 모방 -모방론은 예술 이론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다. 예술은 자연 혹은 인간의 삶과 행위의 모방이라고 말하는 모방론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에 의해 이야기 되었다. 그들 두 철학자는 비극을 놓고 모방론을 풀어나갔다. 또, 곰브리치는 미술 특히 회화에서 서구 미술의 역사가 현실을 점점 더 생생하게 묘사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모방론은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특히 회화에 있어서는 ‘사진기’의 등장으로 인하여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현대의 특징 상 예술가의 감수성, 창조적 전망을 강조하기 때문에 더욱이 모방적인 성당 안의 모든 것은 알레고리적 의미를 가진다. 건축물 부분 부분에서 우주, 도덕적 완전성 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다.그 시대 건축가들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대성당의 정신적 목적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그들의 협동작업은 세가지 주요 고딕 미학의 원리에 충실하였다.-베르사유 궁전과 칸트-이 시기에는 왕의 위엄, 지배력을 상징하는 정원이 만들어졌다. 루이 14세 때 만들어진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어마어마한 규모와 장관으로 사람들을 압도한다. 정원은 예술적 업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 곳의 많은 조각상들은 태양신 아폴로를 주제로 하여 만들었고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조각상이 많다. 이러한 고전적 암시들은 교육받은 관람객을 필요로 한다.칸트는 정원을 예술의 최고 형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베르사유의 정원이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가졌다는 데에서 정원사를 형식들을 가지고 그리는 사람이라 간주하였고, 정원을 순수미술 분류체계에 넣었다. 칸트는 어떤 상징, 지위 등으로 정원을 연구하지 않았다. 그저 아름다운 명칭이 붙을 수 있도록 하는 훌륭한 형식이 생산하는 ‘그 속성들의 조화’를 강조했다.칸트는 종종 자연의 미를 이야기했고, 자유로운 미를 칭찬했다. 또 거대 규모의 예술작품에 대한 설명도 첨가했고, 미에 대한 전통적인 취급 방식을 개정하였다. 그의 숭고미는 베르사유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질서정연한, 길들여진 미가 아닌 영감으로서의 자연 등을 자신의 기본으로 하였던 예술가들을 위한 길을 열어 주었다.-팔르지팔-고통과 구원-19세기, 20세기의 대표적 예술가 리처드 바그너와 앤디 워홀은 예술적 개성에 대한 근대적 숭배의 좋은 예라고 한다. 바그너는 음악적 천재로 종합 예술로 스스로 정의내린 오페라를 기획한다. 그의 오페라는 심오하고 풍부하며 난해한 관현악을 작곡하기 위해 새로운 연극적 역할을 도입한 것이다. 특히 파르지팔은 고통이 찬양받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비평가들은 이 오페라를 숭고하다거나 혹은 퇴폐적이라고 부르며 애정과 증오를 함께 대한 헌신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비평가로서 단토는 비평의 의무를 의미를 밝히고 그것이 구현되는 양식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예술가가 할 수 없는 부분(혹은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관객에게 이해시켜야 함을 말한다. 이것을 위해 물질적이고 형식적인 특성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작품의 세부사항은 예술가들이 예술 속에서 그들의 사상을 구현하는 방식과 관련되기 때문이다.3. 문화 교류예술은 독특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다채로운 형식들을 취해왔다. 그래서 과거의 어떤 예술이라든가 다른 지역의 어떤 작품은 우리에게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떤 문화적 장벽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 듀이는 그 장벽을 예술이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경험으로서의 예술’은 보편 언어로써의 예술을 주장하면서 다른 문화의 내적 경험을 얻을 것을 촉구한다. 그의 신념의 바탕은 미적 특성이 모든 이에게 동일하다는 것인데, 이런 모더니스트의 미감은 미의 보편적 형식적 특성을 추구한다. 또한 그는 예술을 미(美)나 형식으로 정의하지 않았고, 공동체의 삶의 표현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다른 공동체의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선 내적 감상태도를 습득하기 위해 외적 사실들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배경에 대한 지식은 다른 예술형식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다른 지역의 예술을 접할 때 우리는 그것의 고유한 상황들을 놓치게 된다. 이는 전리품같은 것으로 이국문화가 전락됨과 비슷하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원시적인 것, 이국적인 것들이 우리 문화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예술에도 포함이 되어있다. 어느 문화가 원시적일 수는 있지만 고립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문화의 예술을 이해하려 할 때 ‘식민지적 태도’를 끼워 넣는다.세계 여러 곳의 문화 예술은 다양한 문화적 영향과 민족적 결합을 반영한다. 하지만 외부의 영향으로 인하여 고유성을 잃고 상업적으로 흘러 자신들의 예술세계를 파괴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정치적 혼란과 이산적 혼성에 의하여 예술의교육적, 시민적, 상업적, 정신적 가치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추적하고 있다. 그 대표적 예로 박물관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박물관은 초기에는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시대에 그랬듯이 교육받은 사람들만이 박물관에 출입할 수 있었다. 즉,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예술품이 향유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세워지는 박물관들은 소수의 취향을 공유하기 위해 생겨나기도 한다. 일반 대중은 박물관에 목마름을 호소하기도 한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사람들의 취미가 그들의 계급을 반영한다고 하였고 실제로 통계 수치를 보면 그런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박물관도 그런 흐름에 편승하고 있었으나 현대에는 많이 달라졌다. 특히나 예술 작품이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그리고 그것을 돕기 위해 박물관이 나서는 것은 벌써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구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명성, 부를 드러내기 위해 더욱 많은 작품을 수집하고 드러내려 한다. 그들은 그래서 박물관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려고 개인이 아닌 사단 법인이라는 이름 하에 박물관을 후원하기도 한다. 상업주의는 예술에서도 피할 수 없는 현대의 흐름인 것 같다. 이것은 긍정적인 면도 갖고 있다. 더 많은 대중이 고급 예술의 향유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접이다. 어쨌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은 마찬가지이다. 상업주의로 인하여 돈을 예술에 포함시키는 예술가까지도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예술가들은 판매를 위해 쉽게 포장될 수 없는 설치예술, 행위예술 같은 것을 이용하여 시장을 무시한다. 예를 들면 티베트 불교의 성화 만다라가 있다.어떤 예술은 정책적으로 후원되기도 한다. 공공 미술이 그 예이다. 이것은 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이다.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 사람들을 박물관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를 도시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현 시대의 모습은 칸트 같은 과거의 철학자들도 여성이 이런 천재성을 갖기는 어렵다고 보았다.예술에 있어서 정전은 천재들의 목록으로 일컬어 진다. 물론 그 정전은 오래 전 예술사에서부터 만들어진 것이니 거의 모든 작가가 남성일 것이다. 이 정전은 어떤 공식으로 사용되는데, 페미니스트들은 이 안에 내재적으로 예술의 위대성을 강화하는 전통적 생각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비판하고 거부한다. 물론 위대성은 항상 여성을 배제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규범은 과거의 제한적 사고를 현대에 주입하는 식이므로 모두가 한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여성성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에 걸쳐 주입된 것으로 한순간에 생각을 바꾸게 하기는 어렵다. 아마 페미니스트들도 이것 때문에 골치가 아플 것이다. 그래서 어떤 여성 예술가들은 해체라는 전략을 사용하여 여성성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인공적 산물인 여성성을 주장하면서 여성성의 문화적 구조를 해체하려 한다. 이런 해체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영화, 사진 작업을 주로 해왔는데 가장 대표적 예가 신디 셔먼의 사진이다. ‘부제 필름 스틸’연작에서 그녀는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지만 모호한 감정을 전달하면서 실제 여성을 숨겨 사회적으로 승인된 방식으로 여성들이 행동하도록 만들어온 남성들을 역습하는 여성 예술가의 능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성이라는 것은 예술 작품을 보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사실 젠더라는 것이 미술사에 문제가 되었다는 자체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여성이 작품에 출연하는 것, 여성이 남성 화가들의 성적 대상, 영감과 뮤즈로 이용되어 온 것,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과 작품이 인정받지 못한 것 등은 젠더가 어째서 미술사에 그렇게 오랫동안 편입되어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만약 젠더가 예술가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심오한 개인적 관심사를 반영한다면 중요한 요소가 될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것이 꼭 젠더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작가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중요한 것이란 말이다.6. 인식, 창조, 이해예술의 의미에 영향을 다.
    독후감/창작| 2006.10.20| 8페이지| 1,000원| 조회(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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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화와 민주주의
    세계화와 민주주의-보통 사람들의 삶-우리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꿈을 꾸며 살아간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다그친다. 이 순간부터 우리는 경쟁에 돌입한다. 다른 친구보다 무엇이든 더 잘해야 되고 무엇이든 1등을 해야 한다. 그래서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은 한국어보다도 영어에 열중하게 되고 각종 학원에 시달려야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교실에서 바깥세상의 자유를 꿈꾸며 공부만 파게 되고 해방이다 라고 생각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취업에 대한 불안감에 진정한 상아탑은 뒤로하고 취업을 위해 또 공부한다. 대학은 취업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버렸고 무사히 대학생활을 마친 사람들은 대부분이 취업 때문에 고생을 한다. 좋은 학교를 나와도,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해도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몇 백번 씩 지원서를 내보아도 일자리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자신이 대학에서 공부하던 것, 자신의 적성을 찾아, 자신의 꿈을 찾아 이루는 것은 벌써 포기한 지 오래다. 철학을 공부했어도 회사에 입사해서 컴퓨터 공부를 해야 하고 프로그래밍을 맡아서 해야 한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도 구조조정, 조기 퇴직 등의 불안으로 하루도 편하게 일을 할 수가 없다. 그저 남들보다 좀더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그런 불안에서 멀어지려는 생각뿐이다.무엇이 우리들의 삶을 온통 경쟁 속으로 밀어 넣었는가?물론 이런 경쟁의 양상은 예전에도 존재했었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런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예전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경쟁에서 이긴 자 아니면 패배자. 패배자의 대가는 너무나도 크고 경쟁에서 이겼더라 하더라도 확실한 보장이 아닌 일단 승리로만 끝나버리니 말이다.이런 양상들의 확산에는 “세계화”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세계화의 주요 흐름은 크게 민주주의의 세계화와 경제의 세계화이다. 세계화는 자본, 노동, 상품, 기술, 정보, 이미지, 환경 등이 주권과 국경의 벽을 넘어서 조직, 교환, 조정되고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 세계화 시대에 국제 사회에 국가는 큰 의미가 없다. 그것을 뛰어넘는 초국적 행위자, 즉, 초국적 기업, 초국적 미디어, 국가간 정부조직, 국제 비정부조직, 지방, 비정부 조직, 개별 시민 등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거래, 교류 등을 하게 된다. 특히 정보 기술의 발달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 했다. 인적, 물적 자원의 흐름이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뛰어 넘게 되면서 누구든 고정된 한 자리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윤을 찾아 세계 어느 곳이든지 찾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문화의 영역도 한 국가 내에서 충족되고 수입된 것으로만 외국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예전과 달리, 언제 어디서든 TV를 통해 혹은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곳에서 외국 문화를 접할 수 있고, 어느 것이 우리문화이고 남의문화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문화의 세계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세계화의 기본 마인드는 신자유주의적이다. 신자유주의에서는 국가주의에 대해 부정적이고 또한 국가주의는 세계화로 인하여 쇠퇴할 것이며 개인의 자유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주의가 확산될 것이라고 한다. 국가가 가지는 강제력으로 인하여 어떤 독점적인 권력을 갖게 되고 그것을 획득하여 특수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가지려 싸우는 즉 국가는 도구화 되어버린 것이다. 세계화는 이런 부패와 국가를 이용하여 일어선 기득권 세력의 권력을 잠식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한다. 특히 경쟁적 시장경제는 개별 시민들의 의사반영이 100%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정상적, 평화적 민주주의 실현에 긴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반국가주의에 기초한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은 신생 민주주의도 보호해 줄 것이라는 역설적인 주장이다.신자유주의적 발상이 기본인 세계화는 국가주권을 약화시키고 시장의 힘을 강화시킨다. 자본주의의 확산은 모든 나라에 있어서 이제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것이 되어버렸다. 자본주의는 어떤 경제 체제보다도 우월한 것이기에 국제적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자본주의는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이런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중심은 경쟁, 자기 책임, 분권화이다. 세계화가 확산 되면 될 수록 경쟁은 더욱 공고해진다. 하지만 이런 세계화의 확산은 시작부터 불공평하게 시작되어서 결과도 불공평하게 나오고 있다. 무슨 소리냐 하면, 애초 이런 세계화가 확산되기 이전에 이미 민주주의나 자본주의가 발전했던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크게 발전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발전하지 못했던 나라들은 발전했던 나라들의 압력에 의해 아직 어떠한 기반도 닦아 놓지 못한 상황에서 경쟁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아시아의 성장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큰 역할을 한 것은 국가였다. 국가의 개입이 경제활동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면서 경제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하였고 이후 민주주의 발전에의 시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를 확산시키고 있는 세력들은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갓난아이 수준의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에도 세계화 동참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꼭 절대왕정 시대에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정복하고 뺏었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위험한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경제가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줌으로써 민주주의를 번성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경제적 풍요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스의 민주주의 발전은 노예가 가져온 경제적 풍요로 인하여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경제적 여유는 사람들에게 정치와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갖게 해주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여의욕을 높일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경제적 풍요는 어떤 것인가? 계속해서 빵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 빵을 누가 가져가는가? 가진 자들은 더욱 많이 가져가고 못가진 자들은 더 조금 가져가게 된다. 경제적 성과물 중 일하는 사람인 노동자들의 차지는 줄어드는데 고위 관리자가 가져가는 몫은 늘어가고 있다. 즉,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도 곧 소수의 민주주의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세계 시계는 어떤 사람이 말한 20 대 80의 사회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우리는 80의 사람에 속한다. 이를 보통사람이라고 본다. 보통 사람은 서두에 시작했던 것처럼 생존을 위한 경쟁에서 계속해서 살고 있다. 자유화의 바람으로 이 사람은 국가의 약화된 보호 속에서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아간다. 정부의 신자유주의로의 편입은 민영화, 자유화, 규제철폐 등의 길로 들어섰고, 이는 고용위기를 악화시켜 고용 없는 성장을 촉진시켰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보통사람을 보자. 이 사람의 주위에는 온통 고시생이다. 고시에 합격하여 안정적 일자리를 얻는 것이 이 사람의 최고 목적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는 자기 자리 맡기도 힘들 정도이다. 각종 국가고시에 지원한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실현시킨다는 의미보다는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조금이라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해 현실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그 자리는 매우 한정적이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지만 경쟁에서 진 사람은 또다시 공부에 매진하거나 다른 일자리라도 얻기 위해 다시 취업 공부를 시작한다. 이런 현상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80의 사람들은 언제나 불안하다. 제대로 보장받는 것 없이 생업전선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때되면 선거철이 오고 잠시 민생을 위해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민주주의에 대해 새삼스럽게 인식하며 어떤 사람은 나은 사회를 위해 참여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귀찮아하며 선거일이 마치 공휴일인양 집에서 푹 쉬기도 한다. 이런 사회에서 무슨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발전하겠는가?
    사회과학| 2006.10.20| 3페이지| 1,000원| 조회(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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