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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능]예술가와 연인들
    < 예술가의 연인들>예술가의 특이한 삶속에 수많이 연인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천재들만이 가지고 있는 기이한 행동으로 뭇 여인과의 애정관계를 평탄하게 이끌지 못하여 비련으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연인들과의 교감을 통해서 창작의 활력소를 찾으려 했고, 고독하였기 때문에 때로는 연인의 육체에서 영혼의 안식을 찾으려 했으나, 거의 대부분이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났고, 그 아픔을 창작으로 승화시켜 나갔다. 지금부터 예술가의 연인들과 연인들이 예술가의 작품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자.1. 피카소- 프랑스의 입체파 화가- 피카소 예술의 근원은 성적충동: 피카소는 어린 시절부터 꽤나 성적 호기심이 많았으며 이것은 그가 죽는 순간까지 변함없는 욕망으로 그의 의식 속에,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서 숨쉬고 있었다.피카소가 그린 첫 작품은 8세 때 그린 것이 있지만 첫 에로틱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3세 때 그린 작은 노트에 연필로 그린 말들의 교미장면이다. 이때부터 그는 에로틱과 관련된 작품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그의 에로틱 탐닉은 전 생애를 통해서 작품 속에서 쉼 없이 섹스를 이야기하고 섹스를 보여주고 있다.또한 그는 생활 속에서도 수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하고 헤어지는 끝없는 에로틱 여정을 보여준다. 첫 여자 페르낭드 올리비에부터 시작하여, 에바, 러시아의 발레리나 올가, 마리 테레즈, 그리고 프랑스와즈 질로, 자클린 클로드 등 70이 넘은 나이에도 변함없는 정열과 정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늘 새로운 사랑을 통해서 창작의 에너지를 얻어 나갔다.또한 피카소는 에로틱 장면들을 묘사할 때 관객이 감상하는 위치를 고려해서 에로틱 장면들을 그렸다. 우리 눈의 위치에 가장 은밀한 장면이 정면으로 들어온다면 우리는 더더욱 그 작품에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말년에 들어서 피카소의 수많은 에로틱 작품들 중에서 특히 관음증의 요소를 보여주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나이는 우리에게서 담배를 빼앗아 갔지만 그렇다고 욕망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사이었던 그녀는 매우 활동적이었다.? 도라마르(1907-1997)- 화가이자 사진작가인 그녀는 피카소가 사랑한 여인들 중 가장 지적인 여인이었다.? 프랑수아즈 질로(1921- ) - 법학을 공부했던 프랑수아즈는 2차 세계대전 중에 피카소의 동반자가 되었으며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았다.? 자클린 로크 (1926-1986) -피카소의 두 번째 부인이며 피카소의 말년20년 동안 충실한 동반자였으며 매우 사려 깊었던 여자로 피카소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여인이다.피카소의 회화에 영향을 미친 여자들피카소가 사랑한 여인들 [연합뉴스 TV 2006-05-22 18:05]'꽃 여인'으로 상징되던 질로는 피카소와의 관계가 금이 가는 시기에 이르자 개와 씨름하는 억센 여인으로 그려진다. 쉰 한살 피카소가 첫 눈에 반했던 17세 소녀 마리 테레즈 발터는 초 현실풍의 추상화로 묘사되었다. 팔등신 모델이었던 발터와의 사랑은 피카소 전 작품에 있어서 가장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채로 표현되었다.자전적인 요소가 강했던 피카소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이다. 특히 그의 네 번째 여인이었던 마리 테레즈 발터와 5번째 여인 도라 마르는 피카소를 초현실주의와 게르니카 시대로 이끌 정도로 그의 작품에 영향을 준 인물이다.2. 고흐- 20세기 초 야수파 화가들의 지표가 된 네덜란드의 화가- 삶의 근원을 사랑으로부터 찾다.: 사랑처럼 좋은 것도 없고, 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도 없다. 하지만 혼자만의 사랑은 축복도 행복도 저 멀리 보내고 상처만 가슴 속에 남긴다.질곡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화가 고흐는 늘 사랑이 삶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정으로 사랑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자신의 사랑에 정렬을 쏟아 붇기도 전에 사랑은 그에게 상처만 남겼다.“예술은 사랑의 가장 고귀한 구현이다. 세상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배후에 어떠한 동기도 갖지 않은 사랑, 사랑하라, 그러면 캔버스를 꽃 피는 정원으로 바꿀 수 있다. 사랑하라, 그러면 돌 그는 시엔을 모델로 1882년 을 그렸으며 이듬해 3월에는 빌헬미나(시엔의 딸)와 빌렘을 모델로 스케치했다.△ 왼쪽 그림 / 반 고흐, 1883년 2월 중순, 목탄, 석묵, 48.5×25.5cm / 고흐의 세번째 여인이었던 시엔의 딸 빌헬미나△ 오른쪽 그림 / 반 고흐, 1883년 / 시엔과 아기▲ 이 시기에 그는 요람에 누워 잠자는 아기나 어머니의 품에 잠든 아기를 많이 그렸다. 그 그림들에는 아기에 대한 그의 사랑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의 자녀들과 함께하는 이 행복한 날들 동안에 이 영향으로 아이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에 관한 그림을 다수 그리게 된다. 그러나 이 행복한 날들은 가난 때문에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시엔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다시 몸을 팔게 되었고 빈센트는 시엔의 가족들로부터 돈을 요구당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 것이다.△ 왼쪽 그림 / 반 고흐, 1882년 5월 초, 석묵, 잉크, 세피아, 58×43cm△ 오른쪽 그림 / 반 고흐, 1882년 4월 10일경, 연필과 초크, 44.5×27cm▲ 고흐는 시엔의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시엔에게도 새 삶을 찾아주어 행복한 가정을 꾸며 보려고 노력했으나 시엔은 그다지 가정적이지 않았고 게으르고 제멋대로인 행동으로 고흐의 환상을 조각나게 만들었다.1883년 여름, 빈센트는 결국 시엔과 헤어지고 작품에만 전념하라는 동생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시엔의 부정한 행실을 견딜 수 없었던 것도 헤어지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9월 초 드렌테로 떠나면서 시엔과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데 대한 죄책감을 가졌다. 이 곳에서 그는 주로 인물화를 그렸으며 그의 인물화에는 모델의 외로움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그의 모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거나 삶에 지칠 대로 지친 모습들이었다.고흐는 드렌테에서 잠시 머물다 겨울이 되어 그곳에서 그림그리기가 힘이 들자 아버지가 있는 누에넨으로 돌아왔다. 이때 이웃섬유공장의 딸인 마르호트와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반 고흐를 동성애자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레오나르도는 또한 성적인 것을 혐오했고, 극도로 위축된 혹은 절제된 성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성생활에 쓰일 에너지를 예술에너지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현실에서는 좌절됐고 금지된 성욕은 예술적 에너지로 변환됐다고 보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가 성 에너지를 예술에너지로 전환시키기 위해 극도의 투쟁을 벌였을 것으로 추측하며 매우 힘겨운 내면의 전쟁을 벌여나갔을 것으로 추측한다. 어머니의 애정은 그에게 하나의 숙명이 되어 그의 운명을 결정했고, 동시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상실 또한 결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어머니 외에 다른 여성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인과의 성애를 억누른) '그의 불행한 애정생활'이라고 프로이트는 쓰고 있다.? 바쿠스다빈치의 에는 동성애적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림 속의 바쿠스가 미소년의 특징, 즉 무성 혹은 양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원래 이 그림은 이었다. 원작자가 죽은 지 176년 지난 후에 강제로 가 된 것 이다. 반동 종교 개혁의 보수적 분위기 속에서 졸지에 세례요한이 바쿠스로 둔갑해야 했던 것이다. 교회의 예리한 검열의 눈이 이 작품 안에 흐르는 동성애적 경향을 놓칠 리 없었다.예수에게 세례를 준 성자가 동성애자였을 리 없고, 동성애자가 또한 성자에게 모습을 빌려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이 작품 속의 동성애가 용서받는 유일한 길은 성서의 인물이 아니라 이교의 신이 되는 것 뿐 이었다.4. 프리다 칼로- 20세기 멕시코 미술계를 대표하는 여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와 그의 연인, 디에고: 만약 신이 공평하여 누군가에게 특별한 재능을 내린다면 그만큼의 모자란 부분 역시 내리기 마련이다.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에게 있어 예술적 재능이란 끝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대가로 주어진 신의 특별한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1925년 9월, 예기치 못한 버스 사고는 프리다 칼로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버스에 남자친구인 시기의 칼로의 작품 에 그의 체념적인 상태가 보인다.칼로의 눈에는 눈물 방울이 맺혀 있으며, 항상 단정하던 머리카락은 풀어 헤쳐진 상태로 목에 칭칭 감겨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답답함과 섬뜩함을 함께 주는 매우 인상적인 모습과, 매우 짙고 단정한 눈썹과 이마에는 디에고의 초상이 덤덤하고도 냉정하고 당당하게 그려져 있다. 분노와 충격이 아닌 체념과 무관심이 눈물방울과 흩어진 머리카락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의 이마 위에 놓여 있는 리베라의 이미지는 그래도 버릴 수 없다는 칼로의 리베라에 대한 미련과 수용을 나타낸다.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그의 삶의 기록이다. 벌거벗은 디에고를 안고 있는 자신과 그들을 안고 있는 여신(땅)은 조국 멕시코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다. 프리다는 디에고에 대한 사랑을 모성애로 승화시키며 여성으로서의 자신과 작가로서의 자신을 성숙시켜 나간다.1949 년 우주와 대지의 여신에 안긴 프리다는 아기의 모습을 한 디에고를 품에 안고 있다. 프리다는 개인적인 아픔을 넘어서 더 넓은 차원에서 디에고와의 사랑을 완성해나간다.5. 앤디 워홀- 미국 팝 아트의 대표적인 화가- 워홀의 여자들 혹은 남자들: 워홀은 21살의 나이로 단돈 2백 달러와 스타가 되겠다는 욕망으로 뉴욕에 입성하였다. 그는 비쩍 마른 몸에 병약하기 그지없었고, 피부색이 점점 희미해지는 백반증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남성성을 부인하는 게이였으며, 가까운 친구조차 없었다.그는 남성과 남성의 육체를 사랑하였다. 젊고 멋진 남자 모델들을 곁에 두길 원했고,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영화나 사진, 작품으로 만들어 내기도 했다. 다행히도 그가 가진 명성은 높았기에 그를 쫓는 남자들은 적지 않았다.물론 여자들도 그와 사귀고 싶어 하고,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길 원했다. 워홀은 그녀들의 바람을 이용했다. 그러나 "섹스는 환상이다. 가장 흥분되는 것은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이다" 라며 육체적 접촉을 혐오했던 그였던지라, 결국에는 남자, 여자 모두들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워홀이 양.
    예체능| 2006.06.03| 28페이지| 2,000원| 조회(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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