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족의 어제와 오늘뉴질랜드의 토착민을 마오리족이라고 한다. 뉴질랜드가 서양인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그 곳에서 생활하던 민족인 마오리족은 세계의 원주민들이 그러하듯 독특한 문화를 계승하고 지켜왔다.마오리족은 약 1,000년 전에 새로운 땅을 찾아 별을 따라서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마오리들은 그곳 뉴질랜드를 자신을 언어로 아오테아로아(Aotearoa), 즉 ‘길고 하얀 구름의 나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18세기 말에 유럽인들이 오기 전까지 마오리족은 석기시대의 문화만을 가지고 생활하며 목공예, 옥장신구 등의 예술을 발전시켰다. 그들에겐 따로 문자가 없었기에 특히 구전문학과 웅변이 발달해 있었다.) 이 무렵의 마오리는 대부분 북도(北島)의 북반도(北半島)에 위치하여 농경생활을 하고 있었고, 대가족 단위의 혈연 친족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또한, 귀족?평민?노예로 나누어지는 뚜렷한 신분적 계층분화로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마오리족은 고립된 환경 속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유럽인이 뉴질랜드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642년의 일이다. 네덜란드사람이었던 아벨 타스만(Abel Tasman)이 그 곳을 발견한 후 네덜란드의 지리학자가 네덜란드 지명 Zealand에 New를 붙여서 뉴질랜드라는 이름은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유럽인의 본격적인 이주는 1769년 영국인 선장 제임스 쿡(James Cook)의 세 차례에 걸친 항해가 발단이 되었다. 쿡 선장은 항해 끝에 해안선을 정밀 조사하고 그 이후부터 영국과의 교역 및 이주가 시작되었다.) 유럽인이 하나 둘 뉴질랜드로 이주해 오면서 마오리족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와이탕이(Waitangi) 조약과 그로 인해 발발된 마오리 전쟁은 마오리족의 인구를 급속히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뉴질랜드의 ‘와이탕이’라는 지역에서 체결된 와이탕이 조약은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사이의 관계를 법률적으로 규정해주었다. 뉴질랜드의 재화는 마오리족이 갖지만 그들의 통치권은 영국인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을 이루고 있는 이 조약은, 시간이 흘러 영어와 마오리어로 된 양 문건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면서 분쟁을 야기했다. 이에 마오리족은 1860년 자치정부를 세웠고, 이러한 갈등은 1860년에서 5년간 지속된 마오리 전쟁으로 표출되었다. 마오리족과 영국인의 전면전의 결과로 마오리족은 토지를 몰수당했다. 이후, 뉴질랜드에서의 유럽인의 정착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졌고 자연히 마오리족의 설 곳은 줄어들어갔다.)19세기 말 4만까지 격감한 마오리족의 인구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의 태도변화로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구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마오리족들은 뉴질랜드 산업경제에 완전히 참여하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뉴질랜드 인구의 8.8%를 마오리족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 중의 4/5가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마오리족들은 그들 나름의 전통에 큰 자긍심을 가지고 그것을 계승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어가 널리 쓰이고 있는 뉴질랜드에서 마오리족은 마오리어(語)를 지키기 위해 코항가 레오(kohangareo)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코항가 레오는 0세에서 5세까지의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마오리족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곳이다.)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으로서 마오리 문화는 부흥을 맞이했지만, 마오리족 자체의 미래를 어둡게 점치는 사람들도 많다. 뉴질랜드에 사는 백인들에 비해서 마오리족은 비만인데다가 건강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평균수명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또한 마오리족은 대부분 학구열이 높지 않기 때문에 사회활동의 영역에 있어서 백인과의 격차는 현저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지금 뉴질랜드는 인종간의 차이에서 초래되는 인종갈등을 피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이다.)마오리족의 문화① 의식주그림 퓨퓨(PiuPiu)마오리족의 전통의상은 짚으로 만든 치마와 동물의 가죽 따위로 몸을 덮는 형태이다. 퓨퓨(PiuPiu)라는 이름의 치마는 아마(flax)라는 길고 질긴 섬유잎사귀를 홍합껍질로 긁어서 만든다.)마오리족은 기본적으로 뉴질랜드의 원산 야채들을 먹고 살았지만 쿠마라(고구마)와 같은 새로운 야채를 처음 이주해 올 때 들여오기도 했다. 농경이 발달하여 여러 가지 야채와 열매 등을 재배해 먹었고, 거대한 카우리나무에서 채취한 고무의 수액을 씹기도 하였다. 옷을 만드는 데에도 쓰였던 아마로 음식을 운반하는 바구니와 가방을 만들어 사용했다. 마오리족에겐 기발한 요리방법이 있는데, 이것을 ‘항이’ 또는 ‘우무’라고 부른다. 큰 구멍을 파서 그 안에 불을 지피고 돌, 아마 등을 올려놓은 다음 고기와 야채를 얹고, 다시 그 위에 거적을 덮는다. 뜨겁게 달구어진 돌에 물을 뿌려 그 증기로 음식을 익게 하는, 땅속의 오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요리방식은 현재까지도 이용되고 있어서, 마오리족을 방문하는그림 마라에사람들이라면 한 번씩 맛보게 된다.)마오리족은 ‘마라에’라는 전통가옥에서 신발을 신지 않고 생활한다. 마라에는 전통적으로 마오리족의 집단부락을 의미했다. 마라에는 정신적으로 마오리족에게 큰 의미를 가진 곳이고 신성시 되는 곳으로서, 집을 구성하는 장식 하나하나가 나름대로의 의미와 사연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마오리들은 원래 마라에 안이나 그 근처에서 살아 왔고 20 세기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최근에 들어와서야 부족 촌을 떠나 자신들의 집에 살기 시작했어도 마오리 사회에서 마라에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고 볼 수 있겠다. 현대 사회에서도 마라에는 여전히 마오리들의 주요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중심의 역할을 하고 있다.)② 공연오늘날 수많은 관광객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공연하는 마오리 무용단을 카파하카라고 부른다. 카파하카 공연을 관람하고, 때론 직접 참여하기도 하는 것은 뉴질랜드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마오리족의 춤은 대표적으로 ‘하카’와 ‘포이 춤’이 있다. 뉴질랜드 국가대표 럭비 팀이 경기 전에 다 같이 하카 춤을 선보인 것을 계기로 이 춤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하카는 전사의 외침이라는 뜻인데, 마오리 전사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 용기를 북돋기 위해 추는 춤이다.) 크게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릅뜨고 몸을 치거나 팔을 절도 있게 흔들면서 춘다. 남성적이고 역동적인 동작과 혀를 내미는 행동이 특징이다. 반대로 포이 춤은 여성적인 춤이다. 줄 끝에 흰 뭉치가 달린 ‘포이’를 흔들면서 춘다. 여자들이 들고 있는 포이의 부드러운 움직임은 자연속의 새와 곤충, 파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뒤에서 남자 4명이 현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여자들 또한 그에 화답하듯 유연하게 움직이며 노래를 부른다. 밝고 흥겨운 무대이다.③ 문신마오리족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문신이다. 마오리족의 전통 문신을 ‘모코’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원래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얼굴 전체를 곡선이나 직선, 당초(唐草)무늬나 와상선(渦狀線)으로 빈틈없이 장식했었다. 여성들은 손에만 간단히 시술했고, 남성은 배꼽에서 넓적다리까지 다양한 무늬를 새겨 넣었다.) 옛날에는 피부에 직접 새기는 형식이어서 고통이 컸지만 그 시절부터도 모코는 자발적으로 새기는 것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모코는 종교적 의식, 통과의례, 금기 신앙이 결합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