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지도안 (약안)작성자 : 국어과 교생 000대단원명소단원차시학습 목표학습 내용3.문학과 의사소통(1) 서동요1/81. 고전 문학 작품의 범주를 이해한다.2. 설화의 특성을 안다.3. 고전 문학 작품에 나타난 우리 조상들의 사상과 정서를 이해한다.대단원 표지단원의 길잡이읽기 전에설화와 ‘서동요’ 의 등장 인물 특징2/81. 향가와 향찰에 대해 안다.2. 영웅의 일생과 ‘서동요’의 영웅성을 비교하여 적을 줄 안다.3. ‘서동요’의 비현실성을 바탕으로 고전 문학 작품에 나타난 우리 조상들의 사상과 정서를 이해한다.향가와 향찰영웅의 일생과 ‘서동요’의 영웅성 비교‘서동요’의 비현실성3/81. 고전 문학 작품에 나타난 우리 조상들의 사상과 정서를 이해한다.2. 고전 문학이 현대에서도 읽힐 가치가 있음을 안다.학습 활동을 바탕으로 토의 활동(2) 슬견설4/81. 고전수필의 특징을 이해한다.2. ‘슬견설’에 나타난 우리 조상들의 사상과 정서를 이해한다.3. 조상들의 사상과 정서를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적용한다.고전 수필의 특징어떤 사람과 나의 관점 이해하기‘슬견설’의 주제 알기대단원명3. 우리 고전의 맛과 멋소단원명(1) 서동요차시1/8학습목표1. 고전 문학 작품의 범주를 이해한다.2. 설화의 특성을 안다.3. 고전 문학 작품에 나타난 우리 조상들의 사상과 정서를 이해한다.과정지도내용교수-학습 활동학습 형태자료 매체시간지도상 유의점교사학생도입(학습내용인식)학습 분위기 조성인사, 출결 확인인사, 출결 대답전체학습5분학습 동기 유발대단원 표지 설명대단원 표지에 대해 자유롭게 발표 한다.학습 목표 제시학습 목표를 칠판에 적고 따라 읽게 한다.학습 목표를 교과서에 적고 따라 읽는다.전개(분석및접근)읽기 전단원의 길잡이를 읽게 한다.교사의 지시에 따라 다원의 길잡이를 읽는다.전체학습35분단원의 길잡이 내용을 바탕으로 고전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교사의 설명을 듣고 고전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알나리깔나리…’에 관한 일화를 들고 학생들의 경험을 듣는다.‘…알나리깔나리…’에 관한 일화를 듣고 자기의 일화를 발표한다.읽기 중학생을 지정하여 ‘서동요’를 읽게한다.교사의 지정에 따라 ‘서동요’를 읽는다.설화의 특성에 대해 설명한다.설화의 특성에 대해 듣고 교과서에 필기한다.등장 인물에 대해 설명한다.등장 인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질문한다.정리(정착)학습 목표 재확인 및 본시 학습 정리학습 목표를 재확인시키고 중요성을 강조하고 본시 학습을 정리한다.학습 목표를 재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을 메모한다.전체학습5분차시 예고다음 시간에 ‘서동요’ 학습을 이어갈 것임을 예고한다.다음 수업에 호기심을 갖는다.정리인사를 한다.인사를 한다.평가대단원명3. 우리 고전의 맛과 멋소단원명(1) 서동요차시1/8학습목표1. 향가와 향찰에 대해 안다.2. 영웅의 일생과 ‘서동요’의 영웅성을 비교하여 적을 줄 안다.3. ‘서동요’의 비현실성을 바탕으로 고전 문학 작품에 나타난 우리 조상들의 사상과 정서를 이해한다.과정지도내용교수-학습 활동학습 형태자료 매체시간지도상 유의점교사학생도입(학습내용인식)학습 분위기 조성인사, 출결 확인인사, 출결 대답전체학습5분학습 동기 유발‘서동요’ 줄거리의 이해여부를 발표시킨다.지정된 학생은 줄거리를 발표한다.학습 목표 제시학습 목표를 칠판에 적고 따라 읽게 한다.학습 목표를 교과서에 적고 따라 읽는다.전개(분석및접근)목표 학습 1향가와 향찰에 대해 설명한다.
이기영의 를 읽고...국어국문학과 000001. 들어가며...제가 읽은 이기영의 서화는 작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도박에 관한 것과 조혼으로 집약해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두 개의 소재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리포트를 작성해 나가겠습니다.2. 작가의 시선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의 시선은 도박과 조혼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시선을 중심으로 이끌어 나가는 인물은 바로 돌쇠입니다. 돌쇠는 도박을 하는 인물로, 조혼으로 인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살아가는 인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돌쇠의 부수적인 인물에는 조혼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데 이쁜이와 돌쇠의 처가 있으며 도박을 나타내는 데 원준과 응삼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를 대변하는 일본의 유학생인 정광조가 소설을 이끌어 가게 됩니다.2.1. 도박돌쇠는 가난 때문에 이웃 사촌인 응삼이의 소 살 돈을 노름으로 뺏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돌쇠의 행태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보내면서도 그들도 가난에 허덕이기에 선망의 시선을 보내기도 합니다. 도박은 사람들의 속물주의의 결과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탈피하게 하는 사회에 대한 하나의 도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돌쇠 마을 사람들이 도박을 하나의 유흥이 아닌 생계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작가는 도박을 할 수 밖에 없는 돌쇠라는 인물을 빌어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자본주의가 순박했던 마을을 돈의 노예로 만든 것입니다. 이기영이 살다간 세월은 6.25 사변이 터지고 분단의 고통이 있었으며 서양의 이념들이 판을 치던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도박을 자본주의의 결과물로 보는 것은 나름대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2.2. 조혼순임이는 돌쇠에게 민며느리로 시집가게 됩니다. 그러나 애정이 없는 결혼은 순임이나 돌쇠에게나 행복을 주지 못했습니다. 돌쇠의 이웃 지간이 응삼이와 그의 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응삼이는 약간의 백치로 이쁜이의 미움을 한 몸에 받고 남다른 돌쇠의 남성미는 이쁜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습니다. 이들은 결혼으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애정으로 묶여진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작가는 우리 나라 유교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조혼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을 등장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서 나타냅니다. 돌쇠와 이쁜이는 서로 사랑은 하지만 결혼이라는 울타리 밖에 있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 합니다. 이를 이용한 자가 바로 원준으로 이쁜이와 돌쇠의 사이를 고발하고 자신이 이쁜이를 차지하겠다는 욕심을 부립니다. 이를 저지 하는 사람이 바로 작가의 대변인, 동경 유학생 정광조인 것입니다. 정광조는 조혼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제시되어 왔고 이제는 고쳐야 할때라고 말합니다. 서양의 문명의 나라에서는 자유연애로 결혼을 한다는 내용을 들어 우리 나라 조혼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히 주고 있습니다.
세종은 왕위에 오르자 태종의 척불정책을 이어 명실상부한 유교국가의 터전을 다져 갔다. 그러던 중 중년 이후 불교를 외호하기 시작하여 승정에 대하여 관용을 취하고 만년에는 스스로 봉불주가 되어 벽불 정책을 후퇴시켰다.)1. 『월인천강지곡』의 편찬목적조선 세조가 수양대군으로 있을 당시 부왕인 세종의 명에 따라 세종 28년(1446) 3월에 승하하신 어머니 소헌왕후의 심씨의 명복을 빌고 민중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기 위하여 석가모니의 가계와 그 일대기를 기록한 『석보상절』을 지어 올렸는데, 세종이 이 『석보상절』을 보시고 몸소 석가모니의 공덕을 칭송하여 노래를 지었으니), 이 지은 노래를 한데 묶은 것이 바로 『월인천강지곡』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상 ? 중 ? 하의 세 책으로 되었으며, 지금 전하는 것은 그 중의 월인천강지곡의 부분으로써, 그 나머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으니, 근 6백곡에 가까운 거대한 노래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2. 『월인천강지곡』의 내용『월인천강지곡』에서 「월인천강」이란, 그 설명을 보면, 「월인석보」권1의 첫머리 협주에 ‘부처가 백억 세계에 화신하시어 교화하심이 달이 일천 강에 비치는 것과 같으니라’라고 하였듯이, 곧 달은 부처의 본체를 비유한 것이고, 일천강은 만강과 마찬가지로 백억세계를 비유했으며, 강에 비친 달 그림자는 부처의 화신을 비유한 것이다.)『월인천강지곡』은 무려 580장에 이르는 내용으로 그 내용을 이 짦은 텍스트 안에 모두 담을 수는 없으므로 간추린 내용을 싣고자 한다. 그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통해 석가모니를 찬양한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3. 『월인천강지곡』의 특징이 책은 우선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보여지는『석보상절』과 비교하여 볼 수 있는데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은 글쓰는 방법에 두 가지의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첫째로, 『석보상절』에는 한자말은 모두 한자로 쓰되, 그 한자 밑에 『동국정운』에서 제정한 한자음을 작은 한글 글자로 달아 놓았는데, 『월인천강지곡』에서는 한자와 한글 글자의 자리를 바꾸어, 한글을 크게 본문으로 쓰고, 그 밑에 작은 글자로 한자를 달아 놓았다. 이 경우에 종성의 ‘ㅇ’(후음의 기본음)은 아주 없애 버렸다. 이러한 한자의 음을 앞에 크게 본문으로 내세우고, 그 밑에 한자로 조그마하게 달아 두었다는 것은, 말하자면 괄호 안에다 넣어둔 셈이니, 이는 현대의 한글 전용의 글이나 똑같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월인천강지곡』은 최초의 한글 전용 문헌이라 일컬어진다.둘째, 『석보상절』에서는, 임자씨와 토, 또는 풀이씨의 줄기와 씨끝)을 구별한데가 보이지 않으나, 『월인천강지곡』에 있어서는 그것을 구별하여 많이 표기하였으니, 이것은 맞춤법을 현대의 것 그대로이다. 이것은 바로 세종의 문법적인 언어 분석의 지식이 다른 사람들, 이를테면 『용비어천가』나『석보상절』의 작자보다 앞서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받침도 팔종성(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외에 ‘ㅿ ㅈ ㅊ ㅌ ㅍ’ 따위 받침도 사용하고 , 사잇소리는 ‘ㅅ’하나만 사용하였으니, 이는 현대 맞춤법 그대로이다. 1933년에 가서야 바로소 정리된 우리나라 맞춤법의 기반이 이미 세종 때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금속활자본으로 한문 글자는 갑인자인데, 한문 활자나 한글 활자는 『석보상절』본문의 활자와 같다.)4. 『월인천강지곡』의 가치『월인천강지곡』은 『용비어천가』와 쌍벽을 이루는 국문가사로 세종대 신작문자의 실용단계에서 이질적으로 창작된 귀중한 문헌으로 국문 표기의 최고 가사형식을 연구하는 데 있어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다함에 이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월인천강지곡』은 석가의 행적을 칭송한 대서사시로서 민족언어문화에 있어서는 물론 불교문화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월인천강지곡』이 애초부터 국문가사로 기술된 것이라면 번역)과정을 거치지 않은 국문으로 창작된 최고문헌이 될 것이다. 또한 동시대의 문헌이 『용비어천가』?『석보상절』?『훈민정음언해』등 표기법의 차이에서 보이는 고도의 문법의식이며 한자 사용에 있어서 국문을 주요 문자로 삼고 한자를 종속적으로 표기한 것이며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의 「初中終三聲 合而成字」의 규칙에 따르지 않고 한자음의 후음「ㅇ」을 받쳐 쓰지 않는 교기 등은 15세기 문헌의 표기법의 통념과 문자의식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정립한 것으로 많은 연구 자료를 제공하는 귀중한 어학적 가치를 가진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5. 남은 자료현재 원간본은 영본으로 상권만이 전하는데, 이 상권 1책은 1960년경에 전라도에서 발견되어 1972년부터는 대한교과주식회사에서 간수하고 있는데, 여기에 실린 노래는 모두 194곡으로 『용비어천가』 형식의 노래로 되어 있다. 그리고 권상과 권중의 낙장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석보상절』권19 뒤족에 합철되어 전한다. 이 책이 단독으로 만들어진 일은 없으나, 『월인석보』에 편입되어 간행되었다. 원간본과의 대조에 의하면, 이 때의 『석보상절』보다는 심하지 않으나 가사의 수정과 주석의 첨가가 행하여지고, 표기법에 있어서는 『석보상절』의 표기법을 따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Ⅰ. 서론세종대왕은 우리에게 있어 아주 친숙한 이름이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훈민정음』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뿐만 아니라, 세종대왕은 아주 많은 업적을 우리 역사 속에 남겼는데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가 그 중 하나이다.세종은 왕위에 오르자 태종의 척불정책을 이어 명실상부한 유교국가의 터전을 다져 갔다. 그러던 중 중년 이후 불교를 외호하기 시작하여 승정에 대하여 관용을 취하고 만년에는 스스로 봉불주가 되어 벽불 정책을 후퇴시켰다.) 이것의 주된 이유는 소헌왕후의 이른 죽음과 세자인 문종의 병약한 심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세종은 자신의 가족의 안위를 위하여 불교를 숭상하고 그에 대한 결과물로『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를 지어, 편찬케한 것이다.Ⅱ. 본론『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은 세종의 개인적인 이유로 인하여 편찬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 세부적인 내용과 특징 그리고 어떠한 자료가 남아있는지 살펴보도록하자.1. 『석보상절』『석보상절』은 세종이 지시로 수양대군이 지은 것이다. 왜 방대한 분량의 불교서적을 만들게 하였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1.1. 『석보상절의 편찬목적『석보상절』의 편찬목적은 ‘돌아간 소헌왕후의 추천(追薦)을 위한 전경(轉經)’을 하기 위한 것과 그 전경에 한문을 잘 모르는 계층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음으로 번역하여 간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돌아간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함이 이 책 편찬의 직접적인 동기인데, 돌아간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한 방법으로 ‘독경’만한 것이 없으므로 석보를 만들어 번역함으로써 한문을 모르더라도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석보상절』의 간행목적이라 할 수 있다.『석보상절』의 편찬이 소헌왕후의 훙거(薨去)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주된 근거는 월인석보의 권두에 있는 수양대군의 「석보상절서」)와 그가 후에 왕위에 오른 뒤에 쓴 「어제월인석보서」)에 나타나 있으며, 세종실록의 「王妃薨干)의 차례를 따랐다.)1.3. 『석보상절』의 특징1.3.1.구성상의 특징현전본 『석보상절』은 이전부터 전해 오던 『석가보』를 증수(增修)하여 한문으로 석보상절을 만들고 이를 다시 번역한 것으로 보이나, 『석가보』는 등장인물의 사건별로 편찬되었음에 비해 『석보상절』은 석가의 연대기를 중심으로 편찬되어 있어 『석보상절』의 서술 방식이 『석가보』에 비해 더 전기적(傳記的)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1.3.2. 표기법의 특징『석보상절』에는 한자음이 각각의 한자 아래에 부기(附記)되어 있다. 『석보상절』의 한자음 표기는 정음창제 이후 최초의 것으로 이 방식은 이후의 중세국어 문헌에서 그 한자음이 『동국정운』에 따른 개신음이든 아니면 현실음이든 구별없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으로 『석보상절』은 한자음 표기 방식에 있어 후대 문헌의 전범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한자음 부기의 목적은 독자층에 대한 배려보다는 개신된 한자음의 선전 계몽의 측면으로 볼 수 있다. 개신된 한자음 표기 방식으로 석보상절을 비롯한 초기 불경언해서들은 모음으로 끝나는 음절의 종성에 o을 부기하고 있으나 『월인천강지곡』 등 종성 o이 부기되지 않은 문헌이 현전한다. 문헌에 따라 한자음이 달리 나타나는 것은 개신 한자음의 적용이 초기 단계에서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유어 표기의 경우, 연철?분철의 표기 문제에 있어서 『석보상절』은 연철표기를 보여주는 문헌이나 연철표기라는 일반적인 원칙에서 벗어나는 용례가 발견되는데, 이는 연철을 원칙으로 하되, 분철도 허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서는 ‘?‘에 한하여 분철되는 경우가 보이는데, 즉, ‘?‘을 말음으로 가진 명사가 모음으로 된 조사와 만날 경우, 연철이 되기도 하고 분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의 분철표기는 『석보상절』에서 약 20% 정도의 비율로 나타나기 시작해 『월인석보』, 『능엄경언해』의 순서로 점점 많아진다. 동명사형 어미 ‘-ㅭ /ㄹ’의 표기에 대해서는 서(序)와 본문이 표기를 달리하고 있음이 특징인데, 본문에권이 전하는데, 권3은 천병식에 의해 1985년 소개되었고, 권11은 심재완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의 영인본으로는 권6, 9,13,19는「한글」111 ~125호(1955~1959)에 차례로 축사 영인(影印) 수록(收錄)하고, 다시 단행본으로 1961년 한글학회에서 축사 영인 간행하였고, 권23, 24는 1967년 동악어문학회(동국대학교)에서 원형크기로 영인 간행하였으며, 권 6, 9, 11, 13, 19는 1991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역주하여 원문 첨부 간행하였다. 또 심재완의 소장본인 복각 중간본 권 11은 대구에 있는 어문학회에 의해 어문학자료청간 제1집으로 축소 영인 간행된 바 있다.현재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1967년 동악어문학회에서 원형 크기로 영인 간행한 권23, 24 두 권을 소장하고 있다. )2. 『월인천강지곡』『월인천강지곡』은 살펴보고 있는 서적 중에 세종이 직접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과연 어떠한 내용이 담겨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2.1. 『월인천강지곡』의 편찬목적조선 세조가 수양대군으로 있을 당시 부왕인 세종의 명에 따라 세종 28년(1446) 3월에 승하하신 어머니 소헌왕후의 심씨의 명복을 빌고 민중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기 위하여 석가모니의 가계와 그 일대기를 기록한 『석보상절』을 지어 올렸는데, 세종이 이 『석보상절』을 보시고 몸소 석가모니의 공덕을 칭송하여 노래를 지었으니), 이 지은 노래를 한데 묶은 것이 바로 『월인천강지곡』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상 ? 중 ? 하의 세 책으로 되었으며, 지금 전하는 것은 그 중의 월인천강지곡의 부분으로써, 그 나머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으니, 근 6백곡에 가까운 거대한 노래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2.2. 『월인천강지곡』의 내용『월인천강지곡』에서 「월인천강」이란, 그 설명을 보면, 「월인석보」권1의 첫머리 협주에 ‘부처가 백억 세계에 화신하시어 교화하심이 달이 일천 강에 비치는 것과 같으니라’라고 하였듯이, 곧 달은 부처의 본체를 비유한 것이고, 일천강은 만강과 마찬가지로 백억도 팔종성(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외에 ‘ㅿ ㅈ ㅊ ㅌ ㅍ’ 따위 받침도 사용하고 , 사잇소리는 ‘ㅅ’하나만 사용하였으니, 이는 현대 맞춤법 그대로이다. 1933년에 가서야 바로소 정리된 우리나라 맞춤법의 기반이 이미 세종 때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금속활자본으로 한문 글자는 갑인자인데, 한문 활자나 한글 활자는 『석보상절』본문의 활자와 같다.)2.4. 『월인천강지곡』의 가치『월인천강지곡』은 『용비어천가』와 쌍벽을 이루는 국문가사로 세종대 신작문자의 실용단계에서 이질적으로 창작된 귀중한 문헌으로 국문 표기의 최고 가사형식을 연구하는 데 있어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다함에 이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월인천강지곡』은 석가의 행적을 칭송한 대서사시로서 민족언어문화에 있어서는 물론 불교문화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월인천강지곡』이 애초부터 국문가사로 기술된 것이라면 번역)과정을 거치지 않은 국문으로 창작된 최고문헌이 될 것이다. 또한 동시대의 문헌이 『용비어천가』?『석보상절』?『훈민정음언해』등 표기법의 차이에서 보이는 고도의 문법의식이며 한자 사용에 있어서 국문을 주요 문자로 삼고 한자를 종속적으로 표기한 것이며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의 「初中終三聲 合而成字」의 규칙에 따르지 않고 한자음의 후음「ㅇ」을 받쳐 쓰지 않는 교기 등은 15세기 문헌의 표기법의 통념과 문자의식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정립한 것으로 많은 연구 자료를 제공하는 귀중한 어학적 가치를 가진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2.5. 남은 자료현재 원간본은 영본으로 상권만이 전하는데, 이 상권 1책은 1960년경에 전라도에서 발견되어 1972년부터는 대한교과주식회사에서 간수하고 있는데, 여기에 실린 노래는 모두 194곡으로 『용비어천가』 형식의 노래로 되어 있다. 그리고 권상과 권중의 낙장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석보상절』권19 뒤족에 합철되어 전한다. 이 책이 단독으로 만들어진 일은 없으나, 『월인석보』에 편입되어 간행되었다. 원간본과의 대조에 의하면, 이 때의 다.『월인석보』권1의 얼개훈미정음언해팔상도석보상절 서월인석보 서패기(稗記)월인석보 본문『월인석보』 권2은 끝의 총장수 108장을 고려할 때 본문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언해로부터 패기에 이르는 자웃를 총괄하여 편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문은 52장이고 나머지는 그 앞에 붙은 다른 글과, 팔상도, 패기의 장수를 합친 것이다.) 훈민정음언해란 세종어제훈민정음 을 가리키는데 이는 원래의 훈미정음언해에 변개를 가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를테면 세종 이란 廟號가 붙고 협주의 글자수가 늘어난 것이 그러하다.) 권두 서명은 世宗御製訓民正音 , 판심제는 ‘정음 , 권말 서명은 ’訓民正音 으로 되어 있다. 월인석보의 서란 御製月印釋譜序를 가리키는데 글대로 권두 서명이 되어 있다. 판심제는 月印釋譜序이며 석보상절 서와 같이 권말 서명이 없다. 월인석보 서는 석보상절 서와 같이 구결문ㅇ과 변역문이 짝을 이루는 방식으로 편집되어 있다. 패기란 神位 모양의 그림에 새긴 世宗御製[.....] 와 今上□述[.....] 을 가리킨다. 이는 세종 이라는 묘호와 금상 이라는 표현으로 미룰 때 월인석보를 편찬할 때 들어간 것이 틀림없다.월인석보 본문이란 月印千江之曲第一 로 시작하는 월인부와 釋譜詳節第一 로 시작되는 상절부를 총괄하여 가리킨다. 판심제는 月印釋譜一의 방식을 취하였다. 권말 서명과 같다. 월인부는 한 줄에 14자씩 새겼다. 15자인 월인천강지곡보다 1자가 적어졌다. 그리고 월인부에는 월인천강지곡에 없던 협주도 붙어 있다. 협주는 한 줄에 작은 글씨로 쌍줄로 새겼다. 상정부는 월인부보다 한 칸 낮추었다. 그러나 한 줄의 글자 수는 15자로 석보상절과는 차이가 없다. 월인석보는 마지막 장차와 권말 서명의 하나인 석보상절 권차 아래 표시된 총장수가 일치하지 않는 일이 더러 있다. 이를테면 권2는 마지막 장차는 77장인데 총장수는 79장으로 나와 있는 것이 그러하다. 그것은 21장과 22장이 1장씩 추가되었기 때문이다.)3.2.2 내용적 특징『월인석보』가 『월인천강지곡』과 『 한다.
** 용비어천가국문 02 0000** 20장四海(사해)? 년글 주리여 ??매 ? 업거늘 얼우시고 ? 노기시니三韓(삼한)? ?? 주리여 바?래 ? 업거늘 녀토시고 ? 기피시니1)四海(사해)2)? 3)년글 4)주리여 5)??매 6)? 7)업거늘 8)얼우시고 9)? 노기시니⇒ 사해를 다른 사람에게 주겠는가? (주지 못할 것이므로) 강에 배가 없으매 하늘은 강의 물을 얼리시고 또 녹이시니1)사해사면이 바다, 즉 온 세상, 천하2)?폐음절개음절체언의미음절미음절모음 시제제 2종제 1종??ㄹ양성조선초기을를음성을(ㄹ)를현대모음조화가 깨지면서 차츰 ‘?/은, ?/는, ?/을, ?/를’의 구별이 없어지게 되는데 이는 용가에서부터 이러한 불규칙적인 사용법이 나타나 보인다. 그리고 개음절에 사용되는 제 2종의 조사 ‘?/는, ?/를’은 ㄴ, ㄹ을 둘을 겹친것이나 원래는 ㄴ , ㄹ 만을 사용하던 것이, 이것만으로는 그 문법적 기능이 분명히 나타나지 않으므로 여기에 다시 같은 조사를 이종으로 겹친 것이다.3) 년 글대명사 ‘녀 느’의 자격조형이다. 여기서는 ‘녀느+을’ 형태로 ‘ㄱ’이 첨가된 것이다. 해석은 남을, 다른 사람을 녀느(他)를 이라는 뜻이다.4) 주리여‘리여’는 ‘주겠는가’라는 뜻으로 의문형 어미이다.5) ??매‘??’의 처소격형으로 ??은 강 또는 호수를 가리킨다. ??매는 ‘ ??+애’의 형태로 분석된다.6) ?'?+l'로 ?는 ‘?+ 제로 주격’ 형태로 분석할 수 있으며 배를 뜻한다.7) 업거늘‘업+어늘 ’형태로 ‘ㄱ’이 첨가되었다.8) 얼우시고‘얼+우(사동접미사)+시+고’로 ‘얼우다’는 다른데에 그 사용예를 찾아볼 수 없으나 ‘얼다’의 사역(다른 쓰임)이니 ‘얼리다, 얼리우다’ 라는 뜻이다. 그리고 주체존대어가 되어 있는 것은 이 말의 주어가 하늘이기 때문이다.9) ? 노기시니‘또’, ‘노기시니’는 ‘녹이다’가 기본형으로 ‘녹이+시+니’로 분석할 수 있다. 여기서‘-시-’가 들어간 것은 주어가 하늘이기 때문이다.三韓(삼한)? 10)?? 주리여 바?래 ? 업거늘 녀토시고 ? 기피시니⇒삼한(우리나라)을 남에게 주겠는 가? (아니 주지 못할 것이므로) 바다에 배가 없으매, 하늘은 얕게하기고 또 깊이시니.10) ??‘?’의 목적격형으로 ‘?+?’로 분석할 수 있다. 뜻은 남(他人)이다.11) 녀토시고‘녀토다’는 다른예를 볼수는 없으나 ‘널다’로 ‘얕다’의 사역 타동사이니 ‘얕게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되며 ‘녙+오(사동접미사)+시+고’로 분석할 수 있다.12) 기피시니현대어로는 ‘깊이시니’로 해석할 수 있는데 ‘깊+이(사동접미사)+시+니’로 여기서 ‘시’는 주어가 하늘이기에 존대를 사용한 것이다.** 48장굴허에 ?? 디내샤 도?기 다 도라가니 半(반) 길 노?? 년기 디나리?가.石壁(석벽)에 ?? 올이샤 도?? 다 자?시니 현 번 ?운? ?미 오?리?가.1) 굴허에 2)?? 3)디내샤 4)도?기 다 5)도라가니 6)半(반) 길 7)노?? 8)년기 9)디나리?가.⇒ 골목에 말을 지나게 하시어, 도둑이 다 돌아가니, 반길 높이인들 다른 사람이 지나겠습니까?1) 굴허에‘굴헝’의 처소격형으로 ‘굴헝’은 ‘구렁’의 전의 모양으로서 ‘골, 구렁’의 뜻이나 때로는 ‘골목’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2) ??‘?+?’ 형태로 ‘말’이라고 해석된다.3) 디내샤‘디내다’는 ‘지나다’의 ‘디나다’로 ‘디나+ㅣ+시+다’의 분석 형태를 갖는다. 그리고 이 동사는 파생 타동사로서 용비어천가에서는 사역의 뜻이 없는 단순한 타동사로 쓰인다.4) 도?기‘도?+이’의 형태로 ‘도?’이 주격조사 ‘이’와 합해지면서 ‘도?기’가 되었다.5) 도라가니‘돌아가다’가 기본형으로 ‘돌아가+니’로 분석된다.6) 半 길‘반 길’은 ‘한 길, 떨어진 길’이라는 뜻으로 외진 곳을 뜻한다.7) 노??‘노?ㅣ’은 형용사 ‘높다’의 파생명사로 ‘노?ㅣ+(이)+ 느+ ?’로 분석된다. ‘ㄴ ?’은 어미로서 여기서에서는 지정사 ‘이’가 생략되었다. 해석은 ‘높이인들’이라는 뜻으로 가능하다.8) 년 기‘년 기’는 ‘녀느+ 이’로 ‘ㄱ’이 첨가되어 ‘다른 사람이’ 라는 뜻을 갖는다.9) 디나리잇가‘지나다‘가 기본형으로 여기서는 ‘지나겠읍니까?’라는 뜻으로 해석된다.1)石壁(석벽)에 ?? 2)올이샤 3)도?? 다 4)자?시니 5)현 번 6)?운? ?미 오?리?가.⇒ 석벽에 말을 올리시어 도둑을 다 잡으시니 몇 번 뛰어오르게 한들 남이 오르겠습니까?1) 석벽절벽, 돌로 된 벽2) 올이샤‘올이다’는 음으로서 ‘오?다’의 사역 타동사로 ‘올리시어’로 해석되며 이 말은 현대어의 ‘올리다’와 같이 ‘주다’의 객체존대어로도 쓰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오?+(이)+시+?’로 분석된다.3) 도??‘도적을’로 해석되며 ‘도?+?’로 분석된다.4) 자?시니‘잡으시니’로 해석되며 ‘잡다’가 기본형이므로 ‘잡+?+시+니’로 분석된다.5) 현 번몇 번6) ?운?‘?우다’는 ‘?다’의 사역 타동사로 현대어 ‘튀다’의 전 모습으로 ‘솟아오르다, 뛰어오르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운?’은 ‘뛰어오르게 한들, 솟아오르게 한들’로 해석되며 ‘?+우+ (이)+ㄴ+ ?’로 분석된다.** 67장?? ?? 자거늘 밀므리 사?리로? 나거? ??니?다.셤 안해 자? 제 한비 사?리로? 뷔어? ??니?다.1)?? 2)?? 3)자거늘 4)밀므리 5)사?리로? 6)나거? 7)??니?다.⇒강가에 자거늘 밀물이 사흘이로되 물이 들지 않더니 나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잠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