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공간의 조명주거공간은 휴식의 장소이기도 하고 작업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또한 육아, 교육, 사교, 오락, 취미 등 인간의 제반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주거공간의 조명은 각 공간들의 기능에 적합하도록 계획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예를 들어 부엌, 서재, 공부방 등은 작업능률 위주의 명시조명으로, 거실, 응접실, 식당 등은 빛의 구성, 확산, 광원의 색, 그림자 등을 비롯하여 조명기구의 장식성, 실내의 색채, 마감재료, 가구와의 조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분위기 있는 조명으로 계획해야 한다.거실의 조명거실은 단란, 휴식, 여가, 접객, 사교, 가사, 독서, 취미생활 등의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식사의 장소로도 사용되는 다목적이며 다기능의 공간이다.즉, 명시와 분위기를 동시에 요구하는 공간이므로 원칙만으로는 조명방식을 결정지을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그러나 거실은 주로 휴식과 단란을 위한 가족구성원의 공동공간이므로 편안하고 아늑하며 밝은 분위기의 조명으로 계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실은 가급적 밝게 하는 것이 좋지만 너무 밝으면 작업 공간 같이 느껴져 아늑한 분위기를 해치게 되므로 전반조명으로는 낮은 조도의 광원을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높은 조도를 얻을 수 있는 테이블 램프나 플로어 스탠드 등의 국부조명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부담 없고 무난하다.건축화 조명이나 간접조명으로 거실 내를 조명하는 것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 가장 이상적이나 경비의 부담이 큰 것이 결점이다.천장에 부착하는 등의 수는 면적이 5평 이상이거나 실의 한 변이 다른 한변의 2배 이상 되는 곳에는 2개 이상 설치하는 것이 좋다.또한 천장에 등을 매어다는 경우에는 등기구의 하단이 실의 바닥으로부터 1.9m 이상으로 하고 벽에 부착하는 등은 가급적 창에 근접시키도록 계획한다.건축화 조명 중 광창조명, 코브조명, 커튼조명, 밸런스조명 등을 사용해도 효과적이다.식당의 조명식당은 식사를 위한 공간뿐만 아니라 가족의 단란과 주부의 가사작업공간이기도 하다.따라서 식당은 가족실의 기능도 함께 갖는다는 의미에서 거실과 함께 가족중심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분위기 위주로 조명계획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식당의 조명은 직부들을 전반조명용으로 설치하고 식탁을 중심으로 팬던트를 사용하여 국부조명 형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이상적인 조도 50~100 lx )식당에서 가장 많은 행위가 이루어지는 부분은 식탁주위이며 따라서 식탁의 조명이 식당조명의 포인트가 된다.장조조명을 도입하여 식탁 바로 위에서 조사하면 식기류나 기타 식사를 위한 도구들을 산뜻하게 연출 할 수 있다.식탁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기 위해서는 매입형의 다운라이트나 스포트라이트도 가능하지만 보통은 반사갓을 붙인 장식성이 우수한 팬던트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팬던트의 높이는 식탁면에서 1m이내에 위치시키는 것이 좋으며 광원은 연색성을 고려하여 식욕을 돋우어 줄 수 있는 할로겐 램프나 삼파장 램프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식당이 다른 공간과 연계되지 않고 독립된 실인 경우에는 전반조명용으로 별도의 조명기구를 설치해야 하는데 거실의 조명을 기준으로 하면 무난하다.부엌의 조명주거 공간 중 가사노동을 위하여 주부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공간이므로 조명계획도 능률적인 작업공간과 밝고 청결한 분위기를 위생적인 조리공간이 연출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부엌의 경우에도 전반조명과 국부조명을 병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즉, 실 전체의 조도확보를 위해서는 전반조명을, 작업을 위한 싱크 및 조리대, 가열대 위의 조명은 수증기를 고려하여 방습등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부엌에 사용하는 모든 조명의 광원은 연색성이 좋은 백열등이나 할로겐 램프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부부침실의 조명부부침실의 주 기능은 잠을 자기 위한 취침의 공간이지만 개인적인 일, 휴식, 사색 등 개인생활을 영위하는 독립적인 공간이며 의류의 수납, 갱의, 화장 등도 이루어지는 다기능 공간으로도 해석 할 수 있다.그러나 이 모든 기능은 휴식과 취침으로 대별할 수 있으며 따라서 편안한 분위기를 위한 조명으로는 커튼조명방식이나 밸런스조명 등의 간접조명이 효과적이나 공간의 규모나 경제성 면에서 제한이 많아 채택하기 어려운 것이 결점이다.대부분의 경우 전반조명으로는 직부등을, 국부조명으로는 장식성이 강한 테이블 램프나, 플로어 스탠드 등을 사용하며, 이를 적절히 조합해도 매력적인 분위기의 실내공간을 연출하는데 무리가 없다.붙박이장 조명붙박이장의 특징은 공간에 사용된 메인 조명이 있어도 수납장 안쪽은 어두워 사물을 구별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따라서 문을 열면 자동으로 수납장 내부에 불이 켜지는 자동 스위치 시스템이 적용된 간접조명을 설치하여 내부의 사물을 찾는데 용이하게 하는 반면 갑작스럽게 켜지는 불빛으로 인한 눈부심을 최소화 하는 조명을 하용하는 것이 좋다.아동침실의 조명아동침실이 취침, 학습, 놀이, 휴식 등을 겸한 다목적의 공간으로 사용된다는 점과 공간사용자가 성장기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조명계획을 해야 한다.즉, 아동실의 조명계획에는 정서발달과 시력보호를 위한 조치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밝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고연색성의 형광등이 가장 이상적이다.이를 전반조명으로 하고 학습이나 취침을 위한 부분에는 단순하고 기능성이 우수한 국부조명기구를 별도로 설치하여 필요 조도를 확보하도록 배려한다.욕실의 조명현대의 주거공간 화장실은 화장실과 세면장이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조명설치시 위생과 안전을 최대한 고려하여 설계해야 한다.화장실은 ‘물’을 사용하는 장소인 만큼 배수와 환기가 충분히 되어야 하고, 구조 자체가 내수, 내습, 내화적이어야 한다.수증기가 발생하면 천장부위에 서리게 되므로 천장에 부착하는 방식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전반적으로 밝게 설치하는 것이 기본이나 목욕, 세면, 양치질, 정발, 화장, 탈의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공간인 만큼 부분조명을 설치해 필료한 활동 시에만 각각의 다른 조명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실의 규모가 작을 경우에는 세명대 위의 거울을 중심으로 방습형의 벽등을, 실의 규모가 클 경우에는 방습형의 직부들을 따로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 이다.광원은 청결감이 느껴지는 한색계의 형광등이 바람직하다.현관의 조명현관은 주택의 출입을 위한 주 출입구의 기능과 내방객을 처음 맞이하는 접객공간으로서의 기능, 외부출입에 필요한 일상용품(신발, 우산)을 수납할 수 있는 수납공간의 기능도 겸하는 공간이다.현관조명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이 모든 행위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므로 조명도 짧은 점등시간을 요하게 된다는 점이다.따라서 이를 고려한 조명계획이 요구된다.또한 내방객을 맞이할 때 서로가 그늘이지지 않도록 하고, 구두끈을 맬 때도 그늘이 지지 않도록 조명의 위치를 고려해야 한다.수납이나 신발을 착용할 때 지장이 없을 정도의 조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계획해야 한다.이상과 같은 조건에 가장 적합한 조명이 확산기구를 사용한 전반확산 조명이지만 직부등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전구를 사용하여 따스한 느낌을 주거나 타임스위치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
고대하이포스타일 홀, 이집트 카르낙 - 불멸의 건축고대 이집트에서는 종종 지붕 주변에 고창을 내어 실내공간으로 자연광을 끌어 들였다. 웅장한 카르낙 하이포스타일 홀의 중앙 축 통로에는 인접하는 두 줄의 주랑 측면에 홀의 높이보다 높은 기둥이 지탱하는 천장이 있다. 두 지붕의 높이 차이가 석조 그릴로 덮인 수직 공간을 만들어 냈는데, 석조 그릴을 통해 광선이 사원의 어두움을 통과하여 다색의 표면을 비추었다.사원 단지는 거대한 탑문, 열주가 있는 마당, 다주식 홀, 그리고 도금한 아몬 신상을 모신 내부 성소가 갖추어져 있다. 일련의 공간들은 점차 어둡고 좁아지며, 이에 따라 실내 공간은 더 신성해지고 대중의 접근은 차단된다. 이러한 구성은 속세에서 초자연적 영역으로 현세에서 내세로 향하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아탈로스 스토아, 그리스 아테네 - 고전고전적인 그리스 스토아는 측면으로부터 유입되는 빛을 조절하기 위해 미노스궁과 비슷한 원리를 사용하였는데 즉, 깊숙한 포치를 가리는 열주가 안쪽의 가게들을 가려 준다. 재건된 아테네의 아탈로스 스토아는 현재의 방문객들에게 이러한 건물들의 조명 특성에 대한 정확한 모습을 제공한다. 옥외 열주는 뜨겁고 밝은 태양을 막아 주는 제1의 방어선이지만, 필터로 거른 빛이 깊은 포치를 자유롭게 관통하게 한다. 원주가 만들어 내는 복도의 그림자 패턴은 하루 종일 변화를 이루면서 시각적 경험을 풍부하게 한다. 첫 번째 열주에 비해 기둥의 수가 절반인 두 번째 열주는 깊은 포치 직경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안쪽의 벽은 단정한 직사각형 개구부들로 이루어진 상업적 공간이 줄지어 있는데, 이러한 공간구성은 작열하는 아테네의 태양과 더위로부터 전체를 보호해 주며, 부드럽고 균일한 조명을 만들어 낸다.판테온 오쿨루스, 이탈리아 로마 - 콘크리트 건축빛의 궤적은 하루의 경과와 절기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테면 여름철에는 둥근 빛발이 대리석 바닥을 쓸어내고 겨울에는 둥근 격자 천장에 달라붙는다. 또 밤낮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에는 정오 시각에 천장 개구부를 통과한 빛기둥이 정확히 출입구 들보의 윗모서리를 스친다. 로마인들은 천장 구멍을 `제우스의 눈'이라고 불렀다. 하늘 배꼽을 통과한 태양과 행성들이 지구의 자전 운동을 좇아서 작은 우주의 건축 안에 빛의 자취를 뿌리니 판테온 안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신성의 세례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범신론과 친숙했던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주가 신적 이성이 쏟아내는 씨앗 `로고이 스페르마티코이'로 충만하다고 믿었다.시간이 흐름에 따라 원형의 빛은 뒷벽을 타고 올라가며 처음에는 기둥장식, 벽감, 그리고 성소를 비추고, 그다음엔 장식된 창의 윗부분을 비추고, 마지막으로 돔에 있는 우물반자들을 비추다가, 태양이 지면서 마침내 오쿨루스는 사라져버리고 만다. 관람자들은 태양의 변화하는 위치에 따라 만들어지는 원형의 빛으로 인해 매일 새로운 경험을 갖게 된다. 오쿨루스는 빛에 초점을 맞추어 관람자들에게 이런 빛의 성질과 공간 안에서 빛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깨닫게 해준다.중세비잔틴 - 광채하기아 소피아, 터키 이스탄불돔 바실리카 형식의 하기아 소피아는 일찌감치 절정에 이루었다. 하기아 소피아는 532~537년에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세워졌다. 이 작품을 대작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단지 그 크기때문이 아니라, 빛줄기에 매달린 듯한 구체의 효과를 위해 모든 구조 요소들이 감춰져 있는 의도적 구성 때문이다. 로툰다 주위에 휘장처럼 둘러진 통로와 갤러리들은 단지 돔의 지지구조를 감추는 기능뿐 아니라 중앙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곁방들 사이에 대조를 이루도록 하고 있다. 실내 전체는 빛과 색조로 인해 심오한 정서적 효과를 자아낸다. 형식적인 명쾌함과 정적인 직각을 가진 고전 건축과는 반대로, 하기아 소피아는 역동적인 곡선들로 서로 교차되고 있다. 거대한 아치 아래, 쌍을 이룬 반구형 돔은 다시 앱스 쪽의 작은 반구형 돔으로 쪼개진다. 공간은 40개의 창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모호하면서 변화무쌍하게 보인다.로마네스크 - 강력한 요새몽 생 미셸, 프랑스 노르망디프랑스 북부해안 노르망디(Normandy)와 브르타뉴(Bretagne)가 만나는 지점에 마법의 성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몽생미셸은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로 그곳에선 중세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바스 노르망디 지방 망슈주(州)에 있는 작은 바위섬이며 유명한 성역으로, 렌(Rennes)시(市)의 북쪽으로 노르망디 해안에 있다.썰물 때에는 육지와 연결된 듯 보이다가도, 만조가 되면 섬 전체가 바다에 둘러싸여 마치 '천공의 성'처럼 보이는 장관을 이룬다.이탈리아에서 화강석을 가져와서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10세기 말 바위산 서쪽 지하에 예배당이 개축되었다. 11세기에는 바위산 꼭대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과 수도원 건물이 지어졌다. 12세기 증축을 거쳐 1211년에는 고딕양식의 3층 건물 ‘라메르베유’를 건설했다.몽생미셸은 조금이라도 신에게 더 가까이 가려는 신앙심을 표현하기 위해 뾰족한 바위산을 가운데 두고 뾰족탑이 있는 고딕식 3층 건물 (1층- 창과와 순례자 숙소 / 2층- 기사의 방과 귀족실 / 3층- 수사들의 대식당과 회랑)을 겹겹이 쌓아 지었다. 하지만 백년전쟁(프랑스와 영국이 1337년부터 1453년까지 프랑스 북부 해안의 영토를 놓고 벌인 전쟁이며 잔 다르크의 활약이 유명하다)이 일어난 14세기에 이르면 성벽과 탑을 쌓으면서 섬 전체가 튼튼한 요새로 바뀐다.성가대석 좌우익 랑은 1058년에 완공 했으나 성가대석은 백년전쟁 당시 무려 30년 동안이나 계속된 포위 공격이 시작될 무렵인 1425년에, 수도원의 로마네스크식 내진이 한창 성무 일과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수도사들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린 후, 30년이 지난 후에 고딕양식으로 재건설 되다. 성당의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은 벽체 인 중 랑의 2층 부는 그다지 높지 않고 버팀 아치(벽체의 하중을 떠받치는 아치를 지지하기 위해 또다시 세운 아치)와 그 밑의 작달막한 쌍둥이 아치가 로마네스크의 양식의 대표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높다란 측벽과 장대한 중 랑, 목조 천장, 요소요소의 기하학적 무늬 새김 등이 이에 해당 한다본당과 숙소 사이를 오고 갈 수 있도록 지붕을 얹은 긴 회랑인데 가느다란 기둥을 떠 바치는 아치는 얇은 테를 두르고 있는데 아치와 아치사이 삼각형 모양의 공간에는 꽃과 잎사귀 문양이 조각 되어 있다. 질 좋고 다듬기 좋은 캉 지방의 석회석을 썼기 때문에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표현 되어있다식사 때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위해 건축가는 아래층의 방과는 달리 공간을 기둥으로 막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실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기술상의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목재 천장의 하중을 중간의 지지 기둥 없이 오직 측벽에만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벽을 튼튼하게 보강해야 했던 것 이다 따라서 벽체는 충분히 두꺼워야 했고 창을 내서는 안됐다 하지만 이 대 식당엔 빛이 많이 필요했다 이 조건을 만족 시키기란 불가능 할 것 같지만 이방의 설계자는 ‘채광 벽’ 이란 기막힌 생각을 해내게 되었는데 채광 벽은 얇고 널따란 벽이 줄지어 늘어서서 최대한 빛을 받아들이는 구조였고 그렇게 해서 완공된 벽은 튼튼했고 무엇보다 눈부신 빛이 대 식당 안에 가득 들어오게 되었다13세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혼합의 걸작 물을 화려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대의 협소함이 고층 구조를 필요 했으므로 건물이 하늘로 치솟을 수 밖에 없었고 화려관의 동쪽에는 자선의 방, 손님의 방, 수도사들의 대 식당이, 서쪽에는 식품 저장실, 기사의 방, 중정이 들어 있는 구조상 당시의 기술로 볼 때 이 화려관의 건축은 하나의 도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폭이 40미터의 건물이 가파른 바위 턱에 올라 있고 내부는 쭉 뻗은 기둥이 하중을 떠받치고 있다. 최소한의 지지구조가 최대한의 공간과 빛을 창출하고 있으며 둥근 로마네스크 식 천장과 뾰족한 고딕식 천장의 아치들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채광 벽은 빛과 벽체가 조화를 이루었다.지하에는 원설계도와 다르게 지어졌다고 한다. 지하 무덤 속에서 발견된 희귀한 고문서의 정체, 켈트족과 기독교적신앙에 근거한 살인 및 사랑, 유럽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 의 절묘한 조화 속에 만들어진 수도원 몽 생 미셸은 그 바다 밑 지하세계로 통하는 설계도를 둘러싼 음모와 놀라운 사실들로 가득 차있다.원래 몽 생 미셸은 그 지방 토착신앙인 켈트족의 드루이드교와 관련된 사원을 파괴하고, 그 폐허 위에 거창한 가톨릭 수도원을 축조한 것이기 때문에, 지하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구조물들이 태반이라 전해진다.고딕 - 건축된 화석생 드니 성당, 프랑스두꺼운 벽을 제거하고 창문을 넓혔으며 얇은 지지부재를 사용함으로써, 앰블러토리, 예배당, 성가대석을 관통하는 공간과 빛의 흐름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성당에서 고안된 새로운 양식은 후에 고딕으로 불리게 된다.노트르담 성당, 프랑스 파리노트르담 성당은 벽과 볼트를 지지하는 플라잉 버트레스로 인해 고딕 건축의 원형이 되었다.장인들은 높이와 빛으로 이루어진 고딕의 기적을 연출하기 위해 리브와 교차 볼트가 결합된, 네 개의 면을 갖는 몰트를 사용하였다. 두 개의 반원통형 볼트가 직각으로 엇물려 고딕의 볼트를 이룬다.첨두아치들은 같은 높이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다른 거리를 가로지를 수 있기 때문에, 시공상의 모듈 시스템에 더 큰 유연성을 부여하였다. 아치의 각도를 다양하게 함으로써 교차 볼트는 모양과 규격에 구애 받지 않고 세워질 수 있었다.고딕 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특징은 뾰족한 탑, 둥근 천장, 스테인드글라스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이 세 가지 특징을 고스란히 모두 가지고 있으며 날카롭게 솟은 첨탑은 지탱하는 압력을 벽에 덜 주어 넓은 창을 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고딕 건축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비해 내부가 훨씬 밝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고딕 건축은 하늘로 향하는 중세인의 신앙심을 자 ㄹ표현 하였으며 그들의 우주관을 엿볼 수 있다.
디지털 건축 ; 질 들뢰즈 리좀 20034526 임준영디지털 건축의 발생 배경 제 3 의 혁명 사이버 문화 페어퍼 아키텍처 사이버 스페이스 디지털 건축디지털 건축의 정의 디지털정보와 인간의 지각이 만나 다차원을 다루면서 비기하학적인 공간까지 창출하여 자연 그대로의 공간 을 표현한다 .사이버 스페이스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 라 건축 체험에서 눈이 거리와 깊이를 지각하여 실재의 공간에 있는 것과 같은 가상현실 구현 .디지털 건축의 특성 인간과 건축물의 동일시 비 유클리드 공간 * 컴퓨터 기하학 액상화 초 자연력에 의한 변형의 본질 당신이 쓰는 방과 집은 당신의 일부가 될 것이며 , 당신 또한 그 방과 집의 일부 가 될 것이다 . - 비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자연과 우주를 비로소 자연스럽고 정 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 -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컴퓨터 기하학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 이 컴퓨터 기하학은 비유클리드 다차원 공간의 현실화를 뒷받침해주었다 .디지털 차원에서의 형태 생성기법 데이터 베이스에 의한 방법 □ Knowledge-based system □ Case-based Design □ Shape Grammar Emerging shape □ Diagrammatic model □ Evolutionary system □ Rapid prototyping질 들뢰즈의 리좀 땅 밑 줄기 인 리좀은 수목형태의 구조에 대립함으로 탈 중심적 , 비위계적 , 네트워크적 그리고 비대칭적인 구조를 갖는다 .리좀의 여섯 가지 원리 연결과 이질성의 원리 리좀 체계 내의 어떤 점이든 다른 점과 연결 될 수 있고 연결되어야 한다 . 다양체의 원리 다양체는 주체도 객체도 갖지 않는다 . 다양체는 결정들 , 크기들 , 그리고 차원만을 가질 뿐이다 .리좀의 여섯 가지 원리 의미작용 없는 단절의 원리 우리는 개미떼를 근절할 수 없다 . 왜냐하면 그것은 리좀 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 지도 제작과 전사의 원리 리좀은 본뜸이 아니라 지도이다 . 지도를 본뜸과 구별해주는 것은 , 지도는 전적으로 실재와의 접촉 실험에로 향해 있다 .사례The End{nameOfApplication=Show}
마리오 보타약력1943. 4. 1 멘드리지오 - 티치노에서 출생1958-1961 루가노의 까롤리니와 까메니쉬건축 사무실 제도 견습생 근무1969 베니스 새 의회건물 공동 전시회에서 루이스 칸을 만남1969 루가노에서 자신의 사무실 개업1983 독일연방건축가 협회 명예회원1985 '베통'건축부문상 수상1989 왕립 네델란드 건축가협회 '박스텐 상' 수상1991 스위스 '이시스, 시저, 라베짜리, 치아쏘' 재단 상 수상1993 이태리 까랄라 '대리석 건축상' 수상 1995 이태리 베로나의 국제 대리석 전시회에서 '국제 석조건축물상' 수상1995 독일 칼스루에 유럽문화상 수상1996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 포럼 크리스탈상 수상1996 아르헨티나 꼬르도바 국립대학교 명예교수"내가 설계한 리움 고미술관은 전시되는 작품이 도자기 위주인 매우 독특한 전시공간이다. 나는 이곳을 현대인이 고대의 미술작품과 교감할수 있는 명상의 공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마치 교회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려 했던 것이다."인간 중심의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는 자신의 직업을 사회에 대한 봉사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는 각종 수상 작품을 비롯하여 강렬하고 때론 논쟁을 야기시키는 그의 건축은 사회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마리오 보타는 현대건축에 대해서, 그것이 현재 삶의 실재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투명하고 가식적이지 않고, 단호하고, 용기 있고, 아주 타당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또한 그는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모든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삶이 바뀜에 따라 건축도 변화하는 그런 건축적 디자인 방법론을 제시하였다.보타의 건축을 보면 직선이나 곡선, 절단선과 같은 기하학적 탐구, 그리고 그 건축의 이미지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이, 일상생활에서 비롯된 구조, 재료, 공간성의 자연성, 야생적인 힘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지금까지 건축에 대하여 많이 생각을 해 보았지만, 아직 건축이 무엇이라고 결론 내리기에는 건축이라는 말이 너무 광범위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無에서 有를 만드는 것. 즉 창작의 공간, 생활의 그릇, 모든 예술을 낳게 하는 [예술의 모체]라고 생각합니다.'건축이란 정체성의 상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며, 일상생활의 무료함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소비사회로부터 이탈하기 위한 도구여야 한다'는 화두에 따라 지역성(지역적인 정체성 : identity)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는 건축가로 흔히 마리오 보타(Mario Botta)라는 스위스 건축가를 꼽고 있다. 그의 건축세계는 강력한 기하학적 형태, 홈이 파인 띠로 구성되는 파사드, 그리고 철저하고도 환상적인 디테일의 3대 요소로 특징 지워진다. 특히, 그는 스위스의 티치노(Ticino)를 거의 떠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이르기까지도 주택 이외의 작품을 설계한 경우가 거의 없는 까닭에 세계 건축계에서는 티치노=마리오 보타=지역적 특성이 강하게 표방된 주택을 일련의 등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간 거주지의 역사를 태초부터 현대건축에 이르기까지 살펴볼 때 근본인 동시에 가장 영속적인 것은 오직 주택밖에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주택을 탐구의 대상으로 치열하게 추구하는 그의 건축세계가 이해되기도 한다.마리오 보타는 1943년에 스위스의 멘드리시오(Mendrisio)에서 태어났다. 15살이 되던 해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18살이 되던 해까지 후일 그의 건축작업 대부분의 대상지가 되는 루가노(Lugano)에 있는 건축회사에서 제도사로 일하다가 건축수업을 받기 위해 밀라노의 예술학교를 1961년부터 4년간 다니게 된다. 1965년부터는 베니스에 있는 그 코르뷔제 사무소에서 일하며 카를로 스까르파(Carlo Scarpa)와 지우제페 마짜리올(Mazzariol)등의 문하에서 건축의 수련도를 성숙하게 키우기도 하였다. 1969년에 베니스에서 루이스 칸 전시회를 공동기획한 뒤 루가노로 가서 자신의 사무소를 개설하였으며, 1971년에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 카데나쪼(Cadenazzo)의 단독주택을 설계한 뒤 1990년대 초기까지 주택 이외의 건축유형은 설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명성과 함께 파리 주변 이브리(Evry) 신도시의 성당이나 여러 도시의 업무용 빌딩 등을 설계하며 이제는 동경이나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대규모 프로젝트 설계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1989년에 CICA 건축상을 수상하였으며, 그가 즐겨 사용하는 대리석건축으로 인하여 1993년에는 이태리에서 대리석 건축상을 수상함과 아울러 국제 건축비평가상을 받음으로써 그의 작품에 내재한 건축철학이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음을 공지하는 동기가 되었다. 1986년에는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전시회가 개최된 바 있다.그의 건축적 특성은 흔히 루이스 칸(Louis Kahn)이나 르 코르뷔제의 그것과 비교된다. 빛의 처리와 기하학의 추구라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보다 설득력이 있는 설명으로는 디자인과 그 디자인의 바탕을 이룬 이론적 해석의 일치가 아닐까 싶다. 그의 이같은 일치화 과정은 대개 드로잉을 통해 구현된다. 그는 드로잉에 대해 타고난 재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자신의 건축작업을 소개한 글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부기하고 있다 ; "나는 드로잉을 할 때 연필이 내 작품속에 숨어있는 아이디어와 느낌, 그리고 메시지를 적절하게 조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 이러한 작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통해 문제를 표현하는 가장 빠른 길을 발견하곤 한다....건축적 아이디어에 대한 해석과 연구과정은 드로잉을 말로써 표현하려고 할 때보다 제도판위에서 연필의 움직임을 조사할 때 훨씬 쉽고 자연스럽다." 드로잉을 통한 그의 작품생성 과정은 건축가들을 다루고 있는 여러 종류의 잡지나 작품집의 마리오 보타 부분에는 유난히 드로잉이 많이 담겨있다는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초기작품인 티치노의 리바 산 비탈레 (Riva San Vitale) 주택의 경우에도 개념도를 먼저 그린 후 이를 기초로 실제적 건축작업을 이어갔는데, 그 지역의 물리적 환경해석에서 우러난 3차원적 형태의 골조를 우선적으로 드로잉한 후 이를 그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거친 재료로 마감함으로써 건축으로 변환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그 결과가 자연주의적인 것도 아니며 값싼 낭만주의적인 것도 아닌 지역 고유의 토착성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균형적인 선택"이 그의 작품성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렘 쿨하스1944년 로테르담에서 출생.1952~56 인도네시아에서 생활. 이후 다시 로테르담으로 귀환1956~ 하게포스트 저널리스트. 네들란드와 로스엔젤레스등에서 시나리오작가로 활동.1968~1973 런던의 AA스쿨에서 공부.이 때 건축으로서의 베를린장벽, 해방 혹은 자기 속박으로서의 건축(조 젱헬리스, 마델론 브리센도르프 등과 함께)을 출판1972 미국정부의 하크니스 연구지원금 수혜1972~1973 O.M.웅거스와 함께 수학, 뉴욕 도시 및 건축학회 객원 연구원.정신착란증의 뉴욕, 맨해튼의 반현상 등을 집필1978 네들란드 의회청사 현상설계에 당선1995 SMLXL 출판1995년 이후 하버드대 교수Rem Koolhas는 모더니즘의 재사용이라는 아이러니를 통해서 모더니즘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고 이는 신 역사주의의 종합으로서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해체란 상황을 허공에 매달고, 파괴하고, 없애 버리는 작용이 아니라 오히려 새롭게 하고 , 많은 새로운 텍스트를 산출하는 작용이다.Rem Koolhas는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구조로부터의 자유, 정형화된 모델로부터의 자유,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 질서로부터의 자유, 프로그램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계통이나 계보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는 건축가이다. 이 같은 뚜렷한 건축적 자기 확인 때문에 그의 작품은 어느 한 가지 흐름을 일관하는 것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점잖은 건축으로 이념이 표현되기도 하지만 어떨 때에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의 난해함이 구현되기도 한다.1) 근대적 질서의 파괴; 플라토닉 솔리드, 그리드 체계를 통한 근대적인 질서체계를 고의적으로 파괴하는 경향이다. 다양한 수법을 통해 기존의 질서체계가 지니는 공간의 균질성을 깨트린다. 특히 기둥의 배치 과정에서 그 간격이나 방향, 기울어진 단면 또는 재료 등을 변화시켜 균질적인 공간을 차별화하고 있다.2) 비기하학적 형태 사용; 90년대를 넘어서면서 최근의 그의 작품에서 비대칭적 형태, 유기적인 형태 혹은 다원적인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형태가 그의 건축에서 비어있는 공간의 형상으로 자주 나타나고 있다.3) 혼돈의 수용; 도시계획에 있어서 일정한 부분은 통제를 하고 그 나머지는 혼돈을 허용하는 태도가 그의 건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혼돈만을 추구하는 다른 현대 건축가들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볼 때 혼돈 그자체가 목적이 아닌 그러한 혼돈을 통한 새로운 질서의 창출이 목적이라고 여겨진다.렘 쿨하스는 1944년 네들란드 헤이그에서 태어났다.그가 런던에서 건축공부를 하기전 그는 Haagse Post신문사에서 기자로 활약했으며, 또한 영화극작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것은 그의 건축적 이론을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다가설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이 후 그에게 상당한 국제적 명성이 주어진 것도 사실상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며, 지어진 건축물은 별로 없지만 이에 비해 건축적으로 엄청난 국제적 평판과 반향을 얻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실은 많은 그러한 평판들이 현대건축에서 실질적 건축보다 이론적 건축작업에 치중된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신사고적인 그의 건축이론들이 사회나 건축계에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