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들러 리스트- 유대인 학살 -‘1939년 9월 독일군은 폴란드를 단 2주만에 점령했다. 모든 유대인들에게는 강제적인 호적등록과 이주가 명령 됐고, 매일 만명이 넘는 유대인이 크라코우 시로 몰려들었다.’영화 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의 나치정권 치하에서 독일인인 오스카 쉰들러가 폴란드에서 운영하던 자신의 공장에 유대인들을 취직시켜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났던 유대인 대학살로부터 1100여명의 유대인들을 구해낸 실화를 다룬 흑백 영화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였으며, 총 197분의 러닝타임을 가졌다. 영화가 만들어졌던 1993년 당시에는 각종 상을 휩쓸었던 대작이다.영화는 오스카 쉰들러가 독일군 나치당원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파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때 오스카 쉰들러는 훌륭한 재담과 수완으로 독일군 나치당원들과 여성들을 매료시키는 사업가로서의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에 기회주의자인 오스카 쉰들러는 폴란드에 그릇 공장을 인수하러 도착한다. 공장을 인수하고, 뉘른베르크법으로 인하여 값싼 노동력으로 고용할 수 있는 유대인을 고용하기 위하여 오스카 쉰들러는 나치당원이 되어 SS(나치친위대)요원들에게 뇌물을 바치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그는 유대인 회계사인 슈텐을 고용하여 모든 경영을 맡기며, 오스카 쉰들러는 때돈을 벌기 시작한다.그리고 크라코우의 유대인 강제 거주지에 독일군 장교 아몬 괴트가 부임한다. 괴트는 강제 거주지역을 폐쇄시키고 강제 노동수용소를 만들고, 행동이 굼뜨거나 노동을 하는 속도가 느리거나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등 잔혹성을 보인다. 처음에 오스카 쉰들러는 괴트와도 뇌물을 바치며 가까워지지만, 점점 독일군이 유대인들에게 행하는 잔혹한 만행들을 보고, 슈텐과 가까워지면서 점점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마침내 현실을 직시하게 된 쉰들러의 양심이 움직이고, 그는 강제 노동수용소에 있는 유대인들을 구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괴트 및 여러 독일군에게 뇌물을 바치며, 자신의 고향에신의 모든 돈을 다 써가면서도 1100여명의 유대인들을 학살로부터 구해낸다.결국 1945년 독일군이 시작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오스카 쉰들러의 유대인들은 학살로부터 살아났으며, 자유의 몸이 된다. 오스카 쉰들러는 연합군에게 잡히지 않기 위하여 도망을 가려고하고, 이때 그는 자신이 왜 더 많은 유대인들을 구해내지 못했는지 오히려 자책을 한다.영화의 마지막은 소련군이 유대인들에게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며,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오스카 쉰들러의 무덤앞에서 그를 추모하면서, 쉰들러가 살린 유대인의 후손이 6천명 이상이라는 것을 알리며 영화가 끝이 난다.20세기사에서 우리들은 독일의 나치즘시대의 역사를 특별하게 여긴다. 그 이유는 그 시대에 일어난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20세기 전반을 걸쳐서 각각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 역사적 사건들이 있긴 하겠으나 그중에서도 독일의 나치즘 치하에서 일어난 대학살의 역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속에 있고, 손에 꼽을만한 사건이다.1933년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으로 임명된다. 히틀러는 그가 가지고 있던 반유대주의적 사상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독일민족 지상주의를 중심이론으로 하는 나치즘사상을 독일 국민들에게 주입시켰고, 이 사상은 경제공황의 혼란기에 국민의 다수가 나치의 힘에 의하여 강대한 독일을 재건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다.이러한 반유대주의적인 사상을 실현시키려는 것은 1935년에 제정된 뉘른베르크법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초반부분이다.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폴란드 지역에서 유대인들이 뉘른베르크법에 의하여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일자리들을 잃으며, 재산도 몰수당한다. 유대인을 식별할 수 있게 그들은 특별한 이름을 가졌으며, 다비드의 황색별을 박은 완장을 차야만 했다. 유대인들은 1941년에 크라코우의 강제 거주구역으로 모두 강제적으로 이주된다. 이 장면들에서 중간에 유대인들이 강제 거주구역으로 이주하고 있을때, 무언가를 던지 유대인들의 줄서기가 계속 등장한다. 1941년 독일 나치 당국에서는 폴란드내의 모든 유대인들은 크라코우라는 곳으로 이주하도록 명령받은 것을 시작으로 유대인들의 강제 이주시키기, 강제 수용소 안에서의 선별 작업까지 유대인들의 줄서기는 계속된다. 이러한 줄서기는 단순한 줄서기가 아닌, 유대인들에게는 죽느냐 사느냐가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유대인들은 뉘른베르크법으로 인하여 교사, 은행원, 저술가, 예술가, 의사로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단지 단순한 노동력으로만 쓰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독일 나치군으로부터 판단받게 되는데, 이것의 상징적인 모습이 바로 영화에서의 줄서기이다.영화 초반 유대인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이주명령을 받고 줄을 서 있는데, 유대인들의 이름과 직업을 나타내는 증명서를 보여주면, 나치 당원들이 노동에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여기서 역사를 가르쳤었다는 한 유대인은 근로허가증을 받지 못하자, 슈텐은 조작된 서류를 이용하여 그를 금속 가공업자로 위조하고 결국 근로허가증을 받게 된다. 그 외에 다른 유대인들도 원래의 자신의 직업을 숨긴채 단순한 노동에 필요한 기술을 가졌던 직업으로 거짓말을 하고 근로허가증을 받는 장면들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면들로부터 유대인들이 어떠한 선별 작업을 받아왔는지 알 수 있고, 또한 그들의 거짓말을 해서라도 살고, 일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수용소내에서의 줄서기는 더욱 유대인들의 삶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준다. 그들은 나치 당원들로부터 일을 할 수 있는자와 없는 자로 선별을 받는다. 중간에 선별작업이 시작되기 직전, 여러 여자들이 손가락에 피를 내어 자신의 볼에 바르면서 “생기있게 보여야해”라고 말하는 장면과 발가벗고, 선별 작업을 하는 나치 당원들 앞에서 뛰면서 자신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모습들은 그들이 얼마나 살고 싶어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선별받은 여자들의 살아나서 다행이라는 듯의 웃는 장면은 매는 곳으로 모이게 하는 장면들이 몇 있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꼭 등장하는 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독일군을 피하여 숨는 장면들이다.영화 중반부쯤 괴트가 크라코우로 오고나서, 1943년 유대인 강제 거주지역이 폐쇄된다. 이때, 독일의 나치군들은 모든 유대인들을 집결 시키기 위하여 크라코우 지역을 샅샅이 뒤지고, 유대인들은 매우 겁에 질려하며 각자 살길을 찾아 바쁘게 행동한다. 각각 이미 마련해둔 숨을 곳에 숨는 장면부터 귀중품을 빵에 싸고 입에 물고 있는 장면까지 유대인이 독일군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는지 잘 보여준다. 독일군들은 유대인들을 대부분 끌어내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거나 유대인들이 숨어있는지 수색을 한다. 천장에 청진기를 대고 소리를 통하여 수색하거나 침대 밑 등을 찾아보고, 집에서 소리가 나는지 않나는지 잘 감시하는 모습 등은 그 시대의 시대상을 매우 잘 보여준다.이러한 숨는 모습들은 강제수용소 안에서도 보여지는데, 한 소년이 선별작업을 하려고 할때, 도망가서 강제수용소 안의 여러 숨을 곳을 찾는 모습도 보인다. 이미 여러 아이들이 숨어있어 자리가 없어 쫓겨나는 장면들 역시 유대인들의 삶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고 있다.특히 영화에서 눈에 띄는 장면이 있는데, 강제 거주지역이 폐쇄될때 오스카 쉰들러의 시선의 이동이다. 오스카 쉰들러의 시선은 빨간색 옷을 입은 어떤 여자 꼬마의 움직임에 맞춰서 이동한다. 이 어린 꼬마는 길을 가던 중 본능적으로 어느 집으로 숨어 들어가 침대 밑으로 숨는다. 이런 꼬마의 행동은 과연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했을지는 의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유대인들이 어릴때부터 독일군이 나타났을때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배워왔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영화에서 카메라는 독일군이 유대인들을 아무런 죄의식없이 죽이는 것을 계속해서 비춰온다. 그것이 개개인이 죽이는 것이던, 한번에 대학살을 하는 것이던 상관없이 말이다. 이러한 모습은 여러 장면중에서도 특히 독일군 장교 괴트가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는 크라코우로 오기한 일이다. 특히나, 위에서 명령이 내려진 것도 아닌데, 자신의 기분에 따라 아무런 이유없이 살생하는 행위는 스스로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고, 현재 시대에서는 상상조차도 불가능하겠지만 나치즘 치하에서는 그것이 이루어졌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선별작업 등을 통하여 독일군이 유대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매우 잘 나타나 있다.그 시대 독일국민들이 어떠한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잔혹한 일들을 광기에 서러있듯이 했는지 진실을 알 수 없지만,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대학살을 이야기할 때 거의 항상 언급되는 것이 바로 ‘아우슈비츠’ 일 것이다. 매우 많은 수의 유대인을 한곳에 몰아넣고 독가스를 이용하여 학살한 매우 유명한 수용소이다.매우 당연한 것일 테지만 영화에서도 아우슈비츠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고, 또한 영화적 설정이겠지만 잠시나마 아우슈비츠에 끌려가서 유대인 여인들이 공포에 떨던 장면을 볼 수 있다.영화 중반부 강제수용소에서 여인들의 대화는 그들의 공포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용소의 숙소에서 여인들이 묶고 있을 때, 한 여인이 아우슈비츠에 관련됐을 듯한 내용을 다른 모든 여인들에게 말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열차에서 내려서 가스실에 끌려가기 전까지의 내용을 이야기한다. 다른 여인들은 공포에 질리고, 자신들은 독일군에게 소중한 노동력이기 때문에 죽일 리가 없다며 스스로를 안심시킨다.영화 후반부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이 어떠한 모습을 했을지를 화면을 통하여 보여준다. 오스카 쉰들러에 의하여 쉰들러 리스트에 이름이 적혀서 살아날 수 있는 여인들은 서류상의 착오로 인하여 아우슈비츠에 보내진다. 이들은 당연히 쉰들러 리스트에 이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에 열차에서 살아남았다는 희망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지만, 아우슈비츠에 열차가 가까이 도착 할수록 얼굴에 절망감이 깃드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들은 아우슈비츠에 도착하고 나서 풍기는 암울한 분위기와 기록관이 없는 것을 는다.
◁도시와 국토 - 경기도 부천시▷전파통신공학과2003210106김태환1. 부천시를 고른 이유우선은 나의 집이 부천에 있기 때문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21년동안 부천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하고, 친근하기도 하다. 약간이나마 다른 도시들보다는 부천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잘 알고 싶어서 부천시에 대해서 조사하게 되었다.2. 부천시의 상징물부천시의 상징물은 시의 나무, 시의 꽃, 시의 과일, 시의 새 4가지가 있다. 시의 나무는 복숭아나무, 시의 꽃은 복숭아 꽃, 시의 과일은 복숭아, 시의 새는 보라매이다. 잘 보면, 새말고는 모두 복숭아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부천이 복숭아로 유명한 것과 관련이 있다. 부천의 복숭아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과일로 유명했었다. 복숭아 꽃은 복사꽃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부천을 복사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시의 새인 보라매는 1990년 10월 6일에 지정하였는데, 약진, 비상, 날렵, 치밀, 세련, 완벽, 목표완수 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3. 부천시의 역사① 연혁연대(시대)연혁삼한시대마한의 우휴모탁국에 속함고구려시대주부토군에 속함통일신라시대장제군에 속함고려시대(995)관내도에 속하였으며 수주라 칭하였음(1018)양광도에 속함(1150)안남도호부에 속함(1215)계양도호부로 개명함(1308)길주목으로 승격하였음(1310)부평부로 강등하였음(1389)경기우도에 속함조선시대(1413)경기도 부평도호부에 속함(1895.5)인천부 부평군에 속함(1896.8.4)경기도 부평군에 속함근, 현대(1910.9.1)부평군 16개면중 수탄,수곡,옥산,석천면으로 개편(1914.3.1)부천군 설치(1914.4.1)부천군 15개면중 계남면으로 통합(1931.4.1)계남면을 소사면으로 개칭하였음(1941.10.1)소사면을 소사읍으로 승격(1963.1.1)소사읍 관할 7개리가 서울특별시에 편입(1973.7.1)소사읍을 부천시로 승격(1975.10.1)김포군 오정면 전부가 부천시로 4. 부천시의 풍토① 위치시청소재지단지명극점연장거리원미구중동 1156동단소사구 옥길동 산 26-2동경 126。49' 51"북위 37。31‘ 25“동서간 7km서단원미구 상동 4-4동경 126。44‘ 37“북위 37。30‘ 23“남단소사구 옥길동 산 108-1동경 126。 49‘ 31“북위 37。27‘ 20“남북간10km북단오정구 대장동 772-1동경 126。46‘ 06“북위 37。33‘ 06“부천시는 서울의 중심에서 서쪽으로 20km, 인천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져있다. 부천의 북쪽은 서울시와, 동쪽은 서울시 및 광명시와 맞닿아 있으며 서쪽은 인천시, 남쪽은 시흥시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부천시의 땅 면적은 53.44㎢로 지도상으로 보면, 매우 작은 것을 알 수 있다.② 행정구역&각 동의 면적1) 원미구(18개동) - 20.6㎢, 38.5%심곡 1동 -> 0.5㎢, 0.9%심곡 2동 -> 0.6㎢, 1.1%심곡 3동 -> 0.4㎢, 0.8%원미 1동 -> 1.0㎢, 1.9%원미 2동 -> 0.5㎢, 1.0%소 사 동 -> 0.6㎢, 1.0%역곡 1동 -> 1.1㎢, 2.1%역곡 2동 -> 1.1㎢, 2.1%춘 의 동 -> 2.9㎢, 5.5%도 당 동 -> 2.0㎢, 3.8%약 대 동 -> 0.7㎢, 1.3%중 동 -> 0.9㎢, 1.8%중 1동 -> 1.3㎢, 2.3%중 2동 -> 1.2㎢, 2.2%중 3동 -> 0.9㎢, 1.7%중 4동 -> 0.3㎢, 0.5%상 동 -> 0.9㎢, 1.7%상 1동 -> 3.7㎢, 6.9%2) 소사구(10개동) - 12.8㎢, 24.0%심곡본1동 -> 0.8㎢, 1.4%심곡 본동 -> 1.0㎢, 1.8%소사본1동 -> 1.2㎢, 2.3%소사본2동 -> 0.8㎢, 1.5%소사본3동 -> 1.0㎢, 1.9%범 박 동 -> 2.9㎢, 5.5%괴 안 동 -> 1.0㎢, 1.9%역곡 3동 -> 1.8㎢, 3.3%송내 1동 -> 1.1㎢, 2.1%송내 2동 -> 1.2㎢, 2.3%3) 오정구(7개동) - 20.1㎢, 37.5%성 곡0.751.2118.090.8124.7278.2192.530.958.956.319931170.43.857.122.585.7103.4134.5451.0140.365.414.580.811.41994974.14.05.037.853.0135.361.0112.0231.055.0265.02.013.019951380.321.61.538.031.038.059.0426.0660.040.031.033.01.21996928.611.10.785.464.019.9236.8276.169.67.576.870.710.019971257.914.333.020.549.3285.575.6229.9343.552.917.695.840.019981758.013.034.046.0108.0110.0208.0281.0703.0193.030.032.0-19991472.513.61.955.582.6109.667.4187.4565.1247.691.431.718.720001159.447.11.52.727.163.562.378.7591.0210.220932.322.120011144.540.237.312.16.719.7153.4591.7168.43.477.014.020.620021033.735.32.328.3139.566.945.2214.7411.424.940.914.210.11968~1989년도 강수량 자료는 너무 많아서 생략하였다. 여기서 1990~2002년까지의 연평균 부천의 강수량은 1263.22mm이다. 이것은 전국의 평균치 1190mm와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해마다의 강수량의 변화는 항상 비슷하지는 않다. 강수량의 변화를 보면, 최고 2009.8mm(1990년)에서 최저 928.6mm(1996년)으로 차이가 1081.2mm나 차이가 나기도 한다. 월별로 보면, 장마전선이 형성되는 7,8월(여름)쯤에 강수량이 집중되는 것을 볼 수 있고, 이것 역시 우리나라의 특징과 맞아 떨어진다.⑥ 대기오염연별아황산가스일산화탄소이산화질소먼지옥시단트오존산성비20000.0091.10.02791.50-0.0205심심치않게 외국인들을 볼 수 있다. 세대당 인구는 71년도에 5.1명이었는데, 2002년도에는 3명까지 줄어들었다. 고령인구 역시 점점 증가하고 있다. 1995년도를 기준으로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3.7%정도였으나, 2002년도에는 5%가량까지 증가를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부천시 역시 우리나라의 추세를 따라 점점 고령화 사회로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부천시는 경기도 수도권 중심에 있는 발달된 도시이기 때문에 고령인구가 많지는 않다.2) 동별 인구(2002년)동별인구인구밀도65세이상고령자2002821,08115,37641,109원미구426,29920,73419,757심곡1동14,61531,096691심곡2동15,40926,117883심곡3동15,13735,202727원미1동20,90021,111978원미2동17,74334,790891소사동12,03821,887786역곡1동16,28514,4121,003역곡2동17,93616,3051,162춘의동16,4695,640899도당동27,41313,6381,108약대동17,91525,964762중동25,76527,4101,139중1동33,12026,4961,340중2동28,50824,5761,494중3동27,22929,2781,236중4동25,47087,8281,094상동23,00025,2751,180상1동71,34719,3352,384소사구202,24415,75111,528심곡본1동20,78427,3471,108심곡본동21,59822,7351,330소사본1동16,69613,798886소사본2동10,90213,459693소사본3동29,52529,5251,511범박동3,9191,342396괴안동25,38224,8841,563역곡3동25,24513,1031,570송내1동23,89621,1471,297송내2동23,29719,4381,174오정구192,5389,6039,824성곡동39,1149,5632,067원종1동25,29515,7111,401원종2동28,65136,7321,374고강본동36,99021,6321,불렸었다. 이렇게 상당히 높은 학구열이 24세 이하의 인구가 높은 이유를 불러오는 것 같다. 또, 고령인구가 무척 적기 때문에 부천의 인구는 지금 직장을 가지고 있는 성인인 경우가 제일 많다. 이것은 부천시가 서울에서 직장을 가지고, 통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으로도 추측할 수 있다.4) 인구동태연별구별출생(명)사망(명)혼인(쌍)이혼(쌍)199811,8002,5656,2092,188199910,7282,6205,8992,248200010,6782,7215,7902,24920019,3512,6255,3802,57820028,5932,7875,6872,749원미구4,1861,3302,8911,247소사구2,1707611,476666오정구2,2376961,320836맨 위의 표를 보면, 2002년의 인구는 증가하였는데, 이 표에서 출생이 점점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현재 대두되고 있는 문제점인 낮은 출생률&출생률의 감소가 부천시에서도 보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혼하는 쌍 역시 점점 증가하고 있고, 이것 역시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추세와 들어맞고 있다.② 다른 인문환경1) 학교총개황연별학교수학생수교원수교원1인당학생수1998.4.1232185,1535,817321999.4.1221176,4785,812302000.4.1218183,3435,923312001.4.1215179,6005,982302002.4.1214185,1326,614282003.4.1228191,3426,96527여기서 학교수는 유치원도 포함임을 주의해야 한다. 학교수 개수는 거의 계속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 부천에는 아직도 아파트들이 계속 생기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학교의 수는 조금씩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지금도 모자라는 편인 고등학교는 더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숫자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다가 2003년에 19만명을 넘어섰다. 2002,2003년도에 인구가 정체되던 것을 벗어나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