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조선후기에 창작된 작자 연대미상의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홍계월전」은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유교적 이념에서 탈피하여 여성이 남성만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인 정치적 진출을 하여 이름을 크게 떨친다는 내용을 지닌 작품이다.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영웅화 시킨 소설인 홍계월전은 남편이 아내의 지배를 받고 군법에 위배되었을 때는 가차 없이 엄벌에 처하는 것은 남성을 영웅화한 소설에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구성법이다. 조선시대의 독자층이었던 여성들에게 흥미와 갈채를 얻기 위한 의도에서 쓰여 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는 작품이다. 또한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무술을 연마하고 공부를 하면 남성보다 정계라든지 일을 더 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남성영웅소설과 별 다를 바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지만 여성을 주제로 쓴 것을 보면 특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홍계월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다.먼저 의 줄거리는1. 대명(大明) 성화(成化)년간에 형주 구계촌에 홍 무는 소년 급제하여 이부시랑이 되나 백관이 시기하여 시골에서 사는데, 나이 사십에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중, 선녀가 나타나 자식이 되리라는 꿈을 꾸고 나서 딸을 얻으니 계월이다.2. 곽도사가 '오 세에 부모와 이별하고 십팔 세에 다시 만나 공후 작록을 누린다'는 예언을 한다.3. 계월을 남장하여 공부를 시키니 대단히 총명하다.4. 계월이 다섯 살 때, 부인(계월의 어머니)이 귀향한 친구 정사도를 만나던 중 북방의 절도사 장사랑이 양주목사와 난을 일으켜 쳐들어오니, 부인이 계월을 데리고 하녀 양윤과 피난한다.5. 선녀의 도움이 있었으나 부인과 양윤은 도적 맹 길에게 잡히고, 계월은 자리에 싸여 큰 강에 띄워진다.6. 잡힌 부인과 양윤이 맹 길의 처 춘낭과 모의하여 여승의 배로 탈출하여, 부인은 삭발 중으로 변장하여 절에 숨는다.7. 계월은 무릉포에 사는 여공이 구해 주는데, 여공이 계월의 이름을 평국이우나, 부모 생각에 평국의 마음은 편하지 아니하다.11. 서관 서달이 쳐들어와 평국과 보국이 원수가 되어 막으러 나가는데, 특히 평국의 전략1과 무예가 뛰어나 서달 등이 항복하고 만다.12. 이 과정에서 평국은 잃었던 부모를 찾아 기뻐한다.13. 전쟁 후유증으로 평국이 병이 나서 진맥을 받던 중 여자임이 밝혀진다.14. 천자가 사실을 알아 평국을 보국과 결혼시키는데, 평국은 남편 보국보다 벼슬이 더 높아지는 것을 사양한다.15. 보국의 첩 영춘이 거만하다고 하여 죽인다.16. 오왕과 초왕이 반란하여 쳐들어 오는데, 다시 평국과 보국이 나서서 물리친다.17. 특히 맹 길이 천자를 급습하여 위태로울 때 평국이 단기로 돌아와 막아낸다.18. 홍 무는 초왕으로, 여공은 오왕이 되고 보국은 승상이 된다.19. 나중에 보국의 자식은 초의 태자가 되고 세상은 태평해진다.홍계월전은 대표적인 여성 영웅소설로 꼽히는데 조선시대,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이런 소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첫째로 유교사회의 모순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신분제를 동요시키면서 남성들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실학이 등장하였고, 이는 여성들에게 조금씩 의식의 해방을 준 것 같다. 그 뒤 만민평등을 외쳤던 천주교가 들어오고 남존여비 사상을 배격한 동학사상이 들어왔다. 이런 사상들로 말미암아 여성의 의식이 점차 변화되고, 소설의 발달과 더불어 여성 독자층이 늘어나면서 남성의 영웅적 소설을 대신하는 새로운 여성 영웅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16 ~ 17세기 많은 영웅소설들이 지어지고 점차 영웅소설의 유형이 발전하면서 남성 뿐 아니라 여성영웅소설 창작되었는데 이에 따라 점차 성장하고 발전하는 여성의식을 엿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도 이런 여성영웅소설을 보고 지으면서 여성의식에 대한 자각이 생겼으리라 생각된다.조선조의 여성들이 가정에서 주변인의 역할만 하도록 강요되던 시기에 계월은 가장의 역할을 하는 인물로 형상화되었다. 홍계월전은 기존의 소설과는 달리 여성이 남설의 틀과 많이 비슷했다. 귀족인 아버지와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고귀한 혈통으로, 태몽으로 선녀가 꿈에 나타나고 여성으로 태어난 자체가 비정상정인 출생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어렸을 때 도적을 만나 강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 위기로 인하여 부모님과 떨어져 여공과 곽도사라는 구원자 및 새로운 양육자를 만나게 된다. 특히 곽도사는 홍계월에게 여러 가지 무술을 가르치는 스승이다. 성장 후 과거에 급제하고 많은 도적을 물리치는 등 승리를 이루게 된다. 또 한번의 위기는 보국과의 결혼을 하면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위기는 계월과 보국이 겨루는 것으로 인하여 해결되었다. 이렇게 조금은 변형이 되었지만, 기존의 영웅소설의 형식과 비슷하게 짜여진 형식을 통해 남성영웅에 뒤지지 않는 여성영웅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라 생각된다.2인물간의 갈등으로 홍계월전의 여성의식을 살펴보면 우선 계월과 가장 대결하는 인물인 보국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계월, 즉 평국은 남편인 보국보다 우월한 능력을 바탕으로 보국을 혼내 주기도 하고, 망신 주기도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우월한 위치에서 남성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은 단순히 남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남편 보국이 가부장적 사회제도에 길들여져 ‘남편이 아내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에 사로잡힌 인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남성중심적인 권위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보국이 계월에 비해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계월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열등감을 사회적으로 보장된 남성의 권위를 통해 되찾으려고 하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연히 부부갈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결혼하기 전 계월이 남성으로 위장하였을 때는 보국과의 갈등은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계월이 대장군이 되고, 보국이 부장군이 되는 것도 이의 없이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계월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결혼을 한 후 보국은 과거에 지녔던 태도를 바꾸고 계월에게 자신이 남편 보국의 애첩인 영춘을 죽일 때도 계월은 남성의 신분으로 돌아가 군법으로 다스리고 있고, 전쟁터에서 남편의 목숨을 구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할 때도 계월은 남성의 신분이었다. 또한 계월은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스러워 하며 자신이 중군으로서 부리던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을 불만스럽게 여긴다. 이는 여성이 밖에서는 아무리 영웅적인 인물이라 할지라도 안에서는 아내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월이 남성 못지않은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대리인 혹은 대리남성으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론에서는 그런 남성의 모습까지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여전히 여성을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틀 안에 가두려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하지만 계월은 남편이 자신을 박대함에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표현하며 전쟁 중에 남편의 목숨을 구한 후 전에 자신을 홀대한 것에 대해 남편을 조롱하기도 하는 모습에서 기존의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여성의 모습으로 한 차원 의식이 깬 여성을 보여주고 있다.이렇게 계월은 항상 보국보다 우위에 서있는데, 이건 안타깝게도 앞에서 말한 영웅적인 특성과 맞물려 있다. 즉 평범한 인물이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선택 받은 인물이 영웅이 된다는 말이다. 계월은 아주 어렸을 때 물에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구해질 때 까지 아무런 다침이나 부상도 없다. 또한 나중에 대장군이 되어 군사도 잘 이끈다. 또한 불이 날 때도 하늘의 구원으로 느닷없이 비가 온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전기적인 인간으로 선택받은 사람이다.계월 외에도 홍계월전에 등장하는 또 다른 여성인 계월의 어머니 양부인이나, 맹길에게 잡혀 왔던 춘랑도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양부인은 도적의 무리에게 잡혔다가 춘랑, 양윤과 함께 도망치고 꿈속에서의 현몽만 믿고 남편을 찾아간다.양부인이 꿈속에 남편과 계월을 찾으라는 승려의 말을 듣고 '가다가 노중고혼이 될지라도 가리라' 하며 남편을 찾아가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삶을 적극혀 유배를 간다. 유배지에서 짐승처럼 털이 돋은 모습으로 고기를 주워 먹으며 굴속에서 살다가 자신을 찾아온 부인을 만나는 홍무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또 계월의 시아버지 여공은 지위가 높은 며느리에게 주눅이 들어 아내에 대해 불평하는 아들을 조심하라고 타이르고, 계월이 여자임이 탄로가 나 용서를 구하자 천자는 그럴 것 없다면서 벼슬도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였다, 이 부분에서 계월이 상당히 임금에게 신의를 얻은 능력을 인정받음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상항이나 분위기 에서는 당연히 참하거나 사형이 되었을 법한데 말이다. 아마도 이것은 계월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웅의 이야기에서 전쟁의 의미는 매우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아무리 영웅이라도 전쟁에서 잘 싸워야지 영웅이어야 할 것이다. 계월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개인적이면서 초월적인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자기 능력을 발휘하면서 인정받는 계월의 모습이었다.홍계월전에서는 그 당시의 결혼관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하로 거느리던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한 계월의 입장과 그 당시 당연한 것 이지만 남성 중심적 사고를 지닌 보국의 입장을 생각하면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보국과 계월이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자, 임금의 명령에 의해 두 사람은 직접 대결하게 되나 결국 보국은 계월의 능력을 인정하면서 서로 공경하는 관계로 바뀌게 되었다. 계월이 원하는 남녀평등의 관계로 바뀌었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을 듯 한 스토리이지만 당시의 여성들이 원하는 구조일 수 도 있을 것이다.이렇듯 이 소설에서는 일관적으로 여성을 우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여성을 우위에 넣어 여성독자들만을 끌어 모으려고 했을까?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남성을 너무 우스꽝스럽고 비굴하게 표현한 것도 그렇고, 또한 여성의 우위 자체도 평범한 사회에서의 우위가 아니라 하늘이 선택해준 우위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주인공 자체가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박두진의 생애본명 : 박두진(朴斗鎭) 필명 : 박두진호 : 혜산(兮山) - “있는 그대로의 산” 이라는 뜻학력 : 우석대학(현 고려대학교) 졸업1916년 3월 10일 경기도 안성군 안성읍 봉남리 360번지에서 부친 박기동(1870~1947)과 모친 서병권(1880~1951)의 4남으로 출생.일명 ‘마골’이라고 불리웠던 곳으로 박두진의 생가는 남아있지 않고 현재 안성여자 중학교 운동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그 후 안성군 보개면 양복리로 이사해서 2년간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1924년 9세 때 안성군 보개면 동신리(고장치기)로 이사하여 18세에 서울로 이사하기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여러 논의에서 그의 출생지를 고장치기로 적고 있는데고장치기는 그의 출생지가 아니라 소년기를 보냈던 곳이다. 혜산는 여기서 중요한시적영감을 얻었는데 고장치기는 그의 에세이 등에 자주 등장한다.아버지는 건강한 체력에 격정과 인자한 성품이었으며, 어머니는 무학이었으나사리에 밝았으며, 자녀교육에 열의가 많았다. 특히 어머니는 섬세하고 능숙한말솜씨, 아주 사실적인 묘사력과 풍부한 어휘력을 갖고 있어 박두진이 시인이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1933년 18세 되던 해 박두진은 서울로 올라가 개인 측량 사무실에 취직하고 하숙생활을하였다. 이 시기에 가졌던 갈등과 고독을 달래 주었던 것은 세 살 위였던 만순누님의 편지였다. 누님은 혼자있는 동생에게 사흘 간격으로 열장이 넘는 편지를보냈는데 남매의 우애와 서정이 교환됨은 물론, 이 것을 계기로 문학적 자각과아울러 기독교와 만나게 된다. 고향을 떠나 외롭게 살던 개인적 고독과 식민지청년으로서의 고뇌는 이 시기 박두진을 문학에 더욱 심취하게 하였다.20세를 전후, 습작을 시작하여 한때 민요조 서정시나 동시 등을 발표했던 그는7,80편의 습작을 거친 후 1939년 라는 동인지에 북만주로 이민 가는 동포의정경을 담은 시 를 발표했다. 박두진은 그의 처녀작에 관한언급에서 활자화 된 첫 작품으로는 지에 발표된 동요 를 들고시로서의 첫 작품은 를 들고 있다. 이 작품(水石)이라 명명하여 물속에서 혹은 물가에서 찾은 돌을 고집하였다. 수석을 소재로 한 수석시는 300편이 있는데 에 100편, 에 100편, 에 100편이 수록되어 있다.1977년 10월 시집 간행1979년 4월 수필집 간행1981년 8월 연세대학교 교수직 정년 퇴임9월 단국대학교 초빙교수로 취임시선집 간행12월 시집 간행1982년 5월 시선집 간행4월~1984년 2월 간행1983년 11월 시선집 간행 간행1985년 8월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퇴임1986년 3월 추계예술대학 전임대우 교수 취임4월 수상집 간행8월 수상집 간행12월 시선집 간행1987년 3월 시선집 간행1988년 10월 제2회 인촌상 수상(문학상)1989년 5월 제1회 지용문학상 수상12월 시선집 간행 (제1회 지용 문학상)1990년 4월 시집 간행1991년 3월 산문전집 간행1993년 10우러 한글학회 외솔상 수상1994년 9월 수상집 간행1996년 1월 간행1998년 청록파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그는,박목월과 조지훈이 남긴 그 자리를 홀로 지키다가9월 16일 오후 2시20분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하였다.경기도 안성군 보개면 기좌리 선산에 묻힘.혜산은 60여년 이라는 활동기간 동안 1000여편의 작품을 냈다.※청록파는..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시인의 자존심을 지켜낸 사람들이다. 주로 자연을 제재로 하여 시작활동을 하는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등 세 시인을 일컫는 말.1946년 세 시인이 공저한 시집 이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되었는 데 이 시집의 이름에 의거하여 '청록파"라고 부르게 되었다.이 시집은 A5판으로 박목월의 시 에서 책명을 따왔다고 하며, 박목월의 를 비롯 하여 모두 15편이 수록되었고, 조지훈의 시는 등 12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박두진의 시는 을 합하여 12편이 수록되어 총 39편이 수록되 었다.세 시인은 각기 시적 지향이나 표현의 기교나 율조 를 달리하고 있으나,자연의 본성을 통하여 인간적 염원과 가치를 성취시키는 시 창조의 태도는 공통 되고 있다. 서정주 사람 이 모여 발간한 시집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은 추천 작품들을 중심으로 하여 엮어졌으며,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라는 점과 일 제말 민족어를 갈고 닦아 이루어진 시라는 점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시인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박목월은 민족 전통의 율조와 회화적인 감각 을 바탕으로 향토성이 강한 소재를 형상화 시켰으며, 조지훈은 사라져 가는 민족 정서에 대한 애착과 시선일여의 경지를 관조하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 따라서 동양적이며 전통 지향성을 간직한 선비의 기풍을 느낄 수 있다. 박두진은 주로 자연에 대한 친화와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데 박목월이나 조지훈 에 비하여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정신세계를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은 광복 이전과 이후를 연결하는 시집으로서, 일제만 암흑기의 어려움을 직접, 간접으로 표출한 광복 후 최초의 창작 시집 이라는 뚜렸한 시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세 시인은 이 시집을 계기로 하여 "청록파" 라고 불리게 되었다※같은 청록파이지만 박두진은 기독교적 윤리의식이 바탕에 깔린 박두진의 자연에 대한 시선은 다른 두 시인과 또 구별된다. 그의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소박한 자연’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에서 빚어진 의연하고 당당한 강열한 의지로서의 자연이다. 시인 자신의 말에 따르면 “온 우주에 편만해 있고 그 뒤에 초월해있는 한 법칙”의“주재자의의지”로서의 자연이다.191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그는 1939년 (문장)6월호에-향현,묘지송,낙엽송-이 다음해인 1940년에-의, 들국화-가 추천되어 청록파 시인 가운데 가장 먼저 완료 추천을 받는다. 정지용으로부터 “시단에 하나의 신 자연을 소개하여 선자는 법열 이상입니다.”라는 극찬을 받은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시들을 발표한다.해방뒤 『청록집』발간에 즈음해 그는 서정주, 박목월과 더불어 우익 문학 간체인 ‘청문협’에 가입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일제 치하에서 고통 받는 민족의 수난상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힘과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다.초기의 시에 수록된 시는 대개가 동. 식물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여 선:악의 대립을 분명히 보여주며 나아가 모두 화해롭게 공존하는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일제라는 시대적 상황과 그것에 대한 시적 내용이 자연과 친화된 그것에 대한 시적 내용이 자연과 친화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두진과 자연과의 특별한 관계는 그의 고향인 “인성”과 관련 깊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해’ ‘산’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이상적인 환희의 세계를 추구하고 자연을 만든 창조주에 대한 경외감을 표시한다. 실재적인 자연이 아닌 관념적이고 도독적인 자연을 추구하는데 그것은 시인의 기독교적 신념에 의한 이데아의 세계를 구체화한 것이기도 한다. 이처럼 박두진의 초기 시는 민족 암흑기의 고통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의지를 자연을 매재로 한 시를 통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연”,“있어야 할 자연”으로 형상화 하였다. 이것은 두진이 표현한 자연이 감상주의나 도피주의에 머물지 않고 밝은 미래의 전망이 제시된 것이며 이로써 두진의 자연의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다음으로 중기에 대해서 말 해보자면 박두진은 중기로 들어서면서 그의 삶은 현실에 대한 갈등과 절규로 변한다. 중기시의 내용은 6.25라는 동족의 상잔에 따르는 비극과 독재에 저항한 젊은 학생들의 4.19혁명(1960년 4월 19일에 절정을 이룬 한국 학생의 일련의 반부정(反不正)·반정부(反政府) 항쟁. 정부수립 이후, 허다한 정치파동을 야기시키면서 영구집권(永久執權)을 꾀했던 이승만(李承晩)과 자유당정권(自由黨政權)의 12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第二共和國)의 출범을 보게 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의지가 그 배경이 된다. 시인의 관심은 비극적이면서도 모순된 현실인적과 더불어 인간사에 대한 분노로 시적 경향이 기울게 되는 것이다.두진의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시 경향을 보았는데 이는 초기 시부터 그의 시저류에 종교적인 색체가 항상 흐르고 있었지만 후기에 올 수 록 그는 신과의 만남을 삶의 현실 속에 더욱 밀도 있게 도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김동리의 의 책에서 보면 두진의 특이성은 그의 구의적 귀의가 다른 동양 시인들에서처럼 자연에의 동화 법칙에 의하지 않는데 있다. 그도 물론 항상 자연의 품속에 들어가 살기는 한다. 그리고 “영원의 어머니”라고 부르기까지도 한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다시 “다른 태양”이 솟아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메시야’가 재림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박두진이 지은 “박주진의 문학정신”중 시적번뇌와 시적 목마름에 보면 자신의 시에 대한 생각이 나와 있다. 책의 표지에는 “길고 긴 사와의 숙명적 인연을 끊고 지칠 줄 모르던 시와 실랑이를 돌이켜 생각할 때, 그것을 어떻게 무슨 말로 풀이 할 수 있을지 그 동안의 외곬수와 집념이 스스로 어이없고 의아스럽기까지 하다”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그는 시가 자신의 인생이라 생각하였고 자신의 인생의 변환점을 시로 표현하였다.자신의 시를 자기 스스로 인생이 흘러가는 데로 시대가 흘러가는 데로 썼다 라고 말한 박두진은 거의 80일생을 살면서 우리나라에서 불행이라면 불행한 일을 모두 겪었다 할 수 있다. 일제치하, 광복, 6.25, 4.19, 5.16등등..그는 이런시기를 겪으면서 자심스스로 성장했다고 하고 있다. 지금 현재에는 그에 대한 시의 논문이 많이 있지만 1000여편의 시가 모두 해석되지는 않았다. 하나 특이 한점은 자신의 시를 자신스스로 평가하고 해설 해놓은 것이 많다 이것은 오랜 생활동안 시 활동을 해 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된다.※박두진시의 특징동어반복에서 보여지는 지속적인 긴장감과 그것이주는 환상적인 세계의 묘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박두진시를 구성하는 특유의 구조이다. 의태어와 의성어를 적절히 사용하고 그 소리를 더욱더 풍부하게 표현했다.예로 “삐이호이 삐이호이”등의 의성어와 “이글이글” “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