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1) 대중문화란?가. 대중문화의 정의와 성격대중문화는 일단 그 대중이라는 수식어 만으로고 그 첫 번째 뜻을 알 수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화이다. 하지만 대중문화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그 특성을 완전히 할 수 없다고 보여진다. 대중문화는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면에서 열등함을 내포하고 있다. Matthew Arnold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대중문화는 ‘인간사고와 표현의 정수’인 진정한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거나 이해할 능력이 없는 자들을 위한 B급 문화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또 대중문화는 ‘대량문화’의 특성에 있다. 이는 대량문화가 곧 대중문화와 연결되는 동시에 사업문화로서 그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곧 이 대량문화의 특성의 발단을 그 문화의 ‘미국화’라고 보고 있으며 이는 세계각국에 있어 미국문화(즉 대량문화의 상업적 문화성격)의 침투양상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어 진다.또 다른 대중문화의 정의는 문화발단의 차원이다. 대중문화는 민중에게서부터 발생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민중의 진정에서 우러난 문화이며 사람들을 위한 문화는 것이다. 여기에서 대중문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상징적 저항이 주로 나타나는 곳으로 간주되며 매우 낭만 화된 노동계급문화”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대중문화 그 자체를 정의하려는 시도와 접근 방법들은 많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하여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와의 그 차이를 근본적으로 없애보려는 시도와 페미니즘에 입각한 대중문화의 구조적 조명등이 그 예이다.현대의 대중문화는 이전 단계에서 볼 수 있던 일부 엘리트만의 고급문화와 기층(基層)에 있는 토착적인 민속문화와의 사이에 나타난 중간문화를 이르기도 한다. 종래 문화의 향수(享受)는 지극히 한정된 일부 계급·계층 사이에서 고급문화화 하였으나, 생활수준의 향상 및 교육보급의 확대에 따른 문화향수 능력의 향상과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문화의 자유스러운 향수범위를 확대하여 대중문화 성립의 기반이스가수들이 인기를 끌었고, TV드라마의 주류는 젊은 세대의 애정 풍속도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트렌디 드라마로 바뀌었으며, 비디오 및 영화, 연극의 전반은 ‘가벼운 포르노그라피’들이 점령해 갔다.대중문화의 쾌락주의적 경향은 1차적으로는 문하산업의 시장논리가 시대 상황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빚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저 단순히 한 두 마디의 정치적 평가로 넘겨버릴 수 없는 복합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 쾌락주의 경향의 밑바닥에는 오랫동안 억압되어 온 대중의 욕구와 함께 등장한 몇 가지의 경향, 예컨대 매니아 집단의 등장, 독특한 기호를 가진 청소년 문화의 등장, 소비문화의 확산 등과 함께 우리 대중문화 지형이 다양성의 지평을 획득해 가는 필연적인 과정일지도 모른다. 사실 낡은 검열의 가위질로 막아내기에는 우리 문화 시장의 성장 속도가 너무나 빠르고 터져 나오는 대중의 문화적 욕구가 폭발적이다.21세기를 향해가는 지금 우리 대중문화는 그런 혼돈과 폭발의 지평 위에 서 있다. 이미 오래 전에 구멍이 뚫려 잇던 낡은 관행과 뒤틀린 구조는 깨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좀더 건강한 질서로 재편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대중의 욕구는 터져 나오고 잇지만 그 엄청난 에너지가 정당한 자기 표현의 출구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21세기 초의 대중문화가 대중의 진정한 자기 표현의 장이 될 지 문화자본에 장악된 벌거벗은 상품논리의 각축장이 될 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새롭게 열리는 문화 공간은 자본에 의해 선점되고 있고 대중의 문화적 욕구는 진정한 자기표현의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쾌락주의의 늪으로만 달려간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열리고 있고, 문화시장의 규모가 급성장하고 있으면서도 대중문화 전반의 양상이 결코 다양하거나 풍요롭다고 할 수 없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면 대중문화의 주 소비계층인 신세대의 문화를 살펴보기로 하자.신세대란 기성세대와는 본질을 달리하는 세대 이전에 없었던 세대라 지칭되어진다. 대개 연령층은 만 19세에서 25세까지라 할 더 관심 있다. 전용 음악회장이나 연극회관을 만든다고 해도 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것은 불확실하기에 더욱더 정부나 기업에서는 투자를 하지 않게 된다.마지막으로 정보 통신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산업화의 필요성에 따라 정보통신기기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 정보통신의 기기고 전 세계는 지구촌화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부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신세대들은 이 정보통신의 기기를 이용하여 전 세계의 음란하고 선정적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건에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자.먼저 정부에서는 신세대들이 건전하고 다양한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체육시설의 확충과 제도의 개선과 재정적 지원 그리고 교육의 개선이 필요하다. 외국의 경우 학생의 날을 지정한다거나 학생전용극장이나 국립음악예술학원을 운영하여 다양하고 건전한 문화를 누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 다양한 여가활동문화를 가르치고 또 이런 활동을 가르치기 위한 인력개발도 힘 쏟아야 한다. 기업에서는 TV 자동차단기 등 신세대들이 유해한 환경에 덜 접촉하도록 기술적 개발을 하고 또 지나친 소비를 강요시키는 기업활동을 지양하고 기업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봉사의 의무를 져야 하기에 이윤을 사회체육시설에 투자하는 것도 필요하다.매스미디어에서는 지나친 시청률경쟁을 자제하고 건전한 프로그램을 위한 개발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신세대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활동을 전개하는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 음악회 프로나 상담실 운영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일방적으로 돈을 주기보다 노동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돈을 얻어 소비하게 하는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통해 신세대들이 좀더 합리적인 소비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신세대 자신은 꼭 머리를 염색하고 비싼 옷을 입고 비싼 화장품을 발라야만 이 자신을 드려낼 수 있다는 일관된 가치관을 고쳐야 한다. 또 우리 것는 것이 되었다. 그 반대로 일어나는 최근의 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이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아무도 잠들지 않으리라’ 라는 음반은 1990년 영국의 음반순위 1위에 올려놓는데 성공한 작품으로 아무도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대중적 가수라 부르지 않는다. 이는 대중문화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고급문화이며 고급문화자체가 대중들에 의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대중문화가 (그야말로 대중의 문화임을 볼 때) 고급문화와의 차이를 줄이고 대중문화로서의 추가적 발전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발전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적 영화들이 미미하기는 하지만 조금이나마 대중적 성공을 보이고 있고, 대중가수들이 그 힘들다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George Winston이 공연했던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우리나라의 대중가수들은 자기들의 콘서트를 가진 적이 없다.이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라는 것 자체가 서양에서 무분별하게 수입되어 아직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지 못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외국선호사상과 맞물린 “딴따라”라는 관념이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를 크게 발전시키지 못하는 요소가 아닌가 한다.확실히 오늘의 ‘대중사회’는 비관적인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대중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는 비관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 그 현실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대중문화가, 그 중에서도 지금의 대중문화가 가지는 문제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민주주의적 진보주의자인 실데스(Gillbert Seldes)는 대중문화가 오늘날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된 이유로서, 대중의 정신연령을 너무 낮게 보면서 이에 맞추어 생산하는 기업주의 어리석음, 또 이들과 별 차이 없이 실수를 범하면서도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등의 미디어에 참여하는 것을 속물적이라고 거부하는 지식인들의 거만함, 그리고 좀더 나은 대중문화 산물을 요구하지 않는 대중의 수동성을 지적하면서 이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기업주는 대중에게 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인간의 실천행위와 삶의 양식을 이해하는데 대중문화에 관한 연구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현대사회에서의 대중문화는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대중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엄정한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 그 자격은 소비력과 구매력에서 나온다. 우리가 극장이나 콘서트에 들어가기 위해서 입장권을 사야 하듯 대중문화의 영역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입장권을 사야 한다. 그리고 대중문화의 영역에 들어설 때만 현대사회의 장미 빛 삶이 내 것이 되지 그렇지 못한 경우에 우리의 삶은 현대사회가 가져다 준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먼 낙오자의 삶으로 이해된다. 이것이 인간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 소비력을 갖추기 위한 치열한 정글의 경쟁이 대중문화의 영역 밖에서 이루어지고 이러한 경쟁은 필연코 공정하지 못한 게임으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성의 타락, 규범의 실종, 인간적 유대감의 종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현실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은 가짜가 진짜보다도 더욱 진짜 같은 모습을 하고 우리를 현혹하는 것이다. 가상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를 대체하고 오히려 현실의 세계보다도 더욱 현실의 세계 같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인식의 기초로 삼는 이 시대에 상품화를 위해 만들어진 가상세계가 새로운 이미지를 발산하면서 대리만족의 수준을 넘어 오히려 자신을 진실된 영역으로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가상의 공간에서 허우적대면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잃어버렸다. 더욱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소비력만 갖추고 있다면 이 가상공간을 빠져나갈 이유는 하나도 없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이것이 인간을 더욱 고독하게 만든다.현대사회에서 고독한 인간은 인간에게서 버림받은 자인 한편 인간을 버린 자들이다. 우리 모두는 고독하지만 그 고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대중문화가 인간이 고독을 느낄만
▣ 요즘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열풍적인 韓流(한류)현상은 도대체 무엇이며, 각 나라의 韓流(한류)열풍은 어떠한 상태인가?“요즘 청소년들에게 집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일종의 유행이죠. 무조건적인 몰입이라고 할까요? 그저 남들이 하니까 나도 따라하는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가수의 헤어 스타일이나 복장을 흉내 내고,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그런 아이들에게나 해당됩니다. 일본 만화영화를 즐기는 것, 미국 영화가 유행하는 것과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한국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어요. H.O.T.의 노래와 춤이 너무 좋구요, 안재욱의 연기는 정말로 환상적이에요. 한국말을 배워서 한국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국에 꼭 가보고 싶어요.”현지에서 만난 중국 사람들의 韓流(한류)에 대한 견해이다. 앞의 내용이 기성세대를 대표한다면, 뒤의 것은 많은 청소년들의 말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韓流(한류)란 TV 드라마·가요·영화 등 중국에서 유행하는 한국 대중문화 열기를 지칭하는 신조어이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에 의해 태어났으며, 이제는 중국뿐 아니라 대만, 베트남 등 동아시아 중국 문화권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치솟는 현상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표현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에서 갖가지 현상에다 ‘韓流(한류)’를 갖다 붙이고 있어 좀 식상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韓流(한류)’의 중국 내 열풍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사회 현상이긴 하다.중국 현지 젊은이들이 한국 풍의 옷을 입고 한국 풍의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한국의 유명 가수들의 한국어 노래를 들으며 한국 잡지를 읽는다. 노래 가사를 알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태극기로 머리 두건을 삼는다. 한국 가수가 입국하는 날이면 중국의 수도공항은 가수 사진을 들고 사인을 받기 위해 모여든 청소년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한국 사람을 만나면 한국 가수에 대해 묻는 것이 일상처럼 되었고 신문과 잡지 전문 가판대에 韓流(한류)를 주제로 한 잡지가 등장한지도 이미 오래되000위안(14만원)까지 현지 물가에 비해 굉장히 비쌌지만 객석은 공연 무대의 일반적 가시범위인 170도를 넘어 250도의 각도까지 배정됐다. 그래도 자리가 부족할 지경이었다H.O.T 공연이 우리 대중문화가 중국에 진출한 첫 경우는 아니었고, 韓流(한류)의 시작도 아니었다. 이미 1998년을 즈음해 댄스 그룹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 같은 노래가 「快樂指南(쾌락지남)」이란 제목으로 번안돼 孫悅( 쑨예)라는 가수의 목소리로 히트하기 시작했고, 이어 유승준의 「나나나」, 탤런트 안재욱의「영원」, NRG의「사자」등의 앨범이 출반되기도 했다. H.O.T 공연 몇 달 전인 1999년 11월에는 클론이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중국 대륙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北京에서 「서울 음악 방송실」을 꾸리며 北京과 上海 등 중국 주요 10개 도시 FM 방송국에 매일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제공하던「미디어 플러스 」같은 회사의 노력도 H.O.T 공연을 그처럼 성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폭발성 측면에서 가수들의 콘서트에 따라갈 수 없지만, 韓流(한류)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는 의미에서 국내 드라마들의 현지 진출을 무시할 수 없다.「 사랑은 뭐길래」,「별은 내 가슴에」등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들이 꾸준히 중국 방송을 타며 이미「韓迷(한미·한국 마니아)」라 불리는 한국팬들을 만들어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드라마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얼굴을 각인시킨 탤런트 김희선, 안재욱, 차인표, 최진실이 있었다.베트남의 경우, 가수들의 본격적인 공연이 이뤄진 적은 없지만 1999년 연속극「의가형제」가 방영된 이후, 장동건이「국민적인 스타」로 떠오르는 등 역시 드라마 열기는 韓流(한류)의 기원인 동시에 아직까진 韓流(한류)의 유일한 현상이기도 하다. 장동건의 화보집이 나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한국 연예인들의 사진이 내용과 관계없이 책표지로 등장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안재욱의 경우 국내에선 흥행에 실패한 영화「찜」으로 인기를 얻었다.「 찜」은 상영 당시, 베트남 영화판의와 더불어, 韓流(한류)열풍을 측면 지원해 오고 있는 것이다.드라마·뮤직 비디오의 성공을 기반으로 하고 H.O.T 공연을 계기로 폭발한 韓流(한류)는 2000년 10월 한국 가수들의 공연 펑크로 잠시「寒流(한류)」로 돌아섰을 뿐, 기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안재욱, 베이비 복스, 유승준 등을 내세워 北京 천안문 광장 근처 中華 世紀壇(중화 세기단) 광장에서 열린「韓中 슈퍼 콘서트」를 계기로 7개월 간의「寒流」는 말끔히 극복됐고, 韓流(한류)「熱流」를 이루며 쾌속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그럼 왜 이토록 韓流(한류)가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한국을 알리고 있는 것일까? 우선 각 나라와 한국과의 역사를 통해 접근을 시도해 보자.중국 전문가들은 韓流(한류) 열풍과 관련 “중국에는 아직도 뿌리깊은 반미·반일 감정이 남아 있는 반면, 한국과는 문화적·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오랜 교류의 전통이 있어 한국 문화가 중국에 비교적 쉽게 진출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사회주의 정권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단절되었던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근세사의 가장 비극적인 시대로 일컬어지는 동서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이데올로기 대립의 희생물이 되었다. 중국은 죽의 장막이라 불리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차 알 수 없었고, 한국인의 뇌리에서 사라져 갔다.그러나 과거 수 천년 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영향을 주고받았던 한국과 중국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 학문적으로 도저히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기에 1992년 8월, 한중 국교가 재개되자 40여 년 간의 역사 단절을 순식간에 뛰어 넘으며 정치 및 경제적으로 동반자 관계를 맺게 되었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한중 관계는 모든 면에서 한국이 일방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왔던 형편에서 벗어나 오히려 중국에 영향을 주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한자로 대표되는 중국 문화가 한국을 비롯하여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고 그것이 심하게는 정치적아시아 각 국에서 우리 배우나 가수들이 우상으로 떠오르고 중국에서는 주 2회에 1시간씩 한국 가요가 방송된다. 한국 제품이나 한국 연예인들을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하한주’(哈韓族)라는 말도 이미 보편적인 용어가 됐다. 또 중국·대만·홍콩 등에 이어 베트남 등지로 빠르게 확산 중이기도 하다.베트남은 월남전쟁을 통해 우리와 첫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월남은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우리의 우방인 미국의 편에서 서로 적으로서 총을 맞잡고 피를 흘렸다. 월남전쟁에서 패한 미국과 미국의 우방국가들은 월남에서 철수를 시작하고 월남은 결국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구 소련의 붕괴로 냉전의 시대가 끝나고 각 국의 무역장벽이 무너지는 오늘날 베트남도 시장 경제체제를 받아 들이기 시작했고 우리의 문화도 베트남으로 진출을 시작하게 되었고, 베트남은 우리의 문화 즉, 韓流(한류)에 열광하기 시작했다.위에서 보아 왔듯이 중국, 베트남,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즉 현재 韓流(한류)열풍이 강타하고 있는 주요 국가들은 과거에서부터 한국이라는 나라와는 떨어뜨려 놓고 설명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특히 중국과 한국의 관계는 몇 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지리적이나 문화적으로 풍부한 교류를 해 왔던 나라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하자면 이들 국가들은 모두 반미나 반일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로서 2차 세계대전이나 월남전 등을 통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미국이나 일본의 문화를 거부하는 응어리가 져 있었다. 그에 반해 한국의 문화는 이들에게 접근하기가 훨씬 쉬웠으며 그 만큼 친숙한 문화였던 것이다.▣ 그럼 이러한 韓流(한류)가 미국의 헐리우드의 영화와 같이 문화 제국주의적 의미인 것인가? 그리고 각 국에서의 반응은 어떠한가?과연 한국의 드라마, 뮤직비디오, 가수들이 미국의 헐리우드 문화와 같이 문화 제국주의를 표방하고 동아시아 각 국에 진출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는 생각할 수 없다. 우선 미국의 헐리우드 문화와 한국의 韓流(한류)현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본의 문제이있다. 상대방 국가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의 시혜(施惠)만을 앞세우는 인기 발언은 자칫 우리의 韓流(한류)를 한류(寒流)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견해에 동의한다.다만 “베트남은 한국 스타들로 인해 과거를 묻어 버리게 됐다. 이제 베트남은 한국을 더욱 가깝고 친근하게 느끼고 있으며 배우고 싶어한다”는 베트남 V-TV의 부딘 꾸앙 PD의 말이나“한국이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이 되길 바란다. 한국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런 과거의 경험이 한국을 문화 선진국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라고 격려한 베이징대 비교문화연구소 다이진후와 소장의 말을 들으며,‘韓流(한류)’열풍이 인근 국가들과 한국의 거리를 가깝게 해 주고, 함께 살아가는 것의 중요함을 깨우쳐 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그러나 진실로 그들이 월남 전쟁의 상흔을 잊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중국, 대만,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 韓流(한류) 열풍이라고 명명된 새로운 문화의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의 시초가 되었던 연예인들의 공연, 한국 드라마의 유행에서 한국식 패션, 한국음식, 한글에 대한 관심 그리고 학문과 종교의 영역으로까지 이러한 문화의 흐름은 날로 다각화되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요인과 언론의 과대포장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아시아의 韓流(한류)열풍은 헐리우두 문화 진출의 문화 제국주의와는 약간 거리감이 있고 각 국의 정부나 학계 또한 우려의 목소리가 그렇게 높지는 않다. 그럼 또 다른 한가지 가능성을 제시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언론의 韓流(한류)현상에 대한 과대포장을 들 수 있다.韓流(한류)라는 현상에 대해 각 방송사에서는 지극히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KBS, MBC의 9시 뉴스 혹은 SBS의 8시 뉴스에서, 동남아로 진출한 연예인들 혹은 이러한 韓流(한류) 열풍을 잘 이용한 마케팅 전략을 잘 활용하여 성공한 한국 제품의 성공 사례를 제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