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날들’을 읽고8월 하순의 어느 토요일, 헬렌은 테니스를 치러가자는 어머니의 제안에 시끈둥하게 반응한다. 아버지는 헬렌을 이해하는 듯 하지만 헬렌의 반응을 무관심 혹은 자기중심적 사고로 생각한다. 결국 헬렌을 놔두고 가기로 하고 헬렌의 부모님은 떠난다. 그 후 헬렌은 문이 잠겼다는 것을 인식하고 현관 쪽으로 간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얼굴이 길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의 얼굴처럼 보인다고 느낀다. 그리고 집에서 나와 세차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 쓰레기통의 더러운 물을 보며 바다를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 길거리에서 흑인들 그리고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날아다니는 파리등 여러 가지 모습을 보며 부모님이 있는 코트장으로 걸어간다. 그곳에 도착하자 헬렌은 그들 중 코메디언인 한 남자의 말을 들으며 같이 웃고, 또 그의 말에 반응하면서 완전히 그들과 같이 융화된다. 그 후 헬렌은 토요일 오후면 그곳으로 갔다. 그들도 헬렌을 자기들중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광산에서 부사관 아버지의 딸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애서튼 탄광회사 지 피 쇼 부인이라고 하면 애서튼에서는 모두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사람이있다. 헬렌 유복한 가정에 태어난 것이다. 그녀는 책을 좋아하며, 그녀의 어머니는 헬렌이 자신과 같이 자라나 헤렌의 아버지와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를 바라지만 헬렌은 많은 독서량으로 그것을 거부한다. 애서튼은 탄광회사로 살아가는 조그마한 도시였는데 12시 4시에는 정확히 사이렌이 울렸는데 그것이 울리지 않으면 무슨일이 있다는 것을 애서튼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백인은 탄광일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한다고 해도 아주 기술적인 부분만 잠시 해주고 끝내곤 했다. 그리고 백인이 사고를 당해서 죽거나 타치면 신문들은 일제히 그 기사를 다뤘지만 흑인이 사고를 당하면 한쪽 면에 조그마하게 기사를 실었다. 이러한 탄광마을 애서튼은 그녀가 자라난 배경인 것이다.그 후 아버지는 헬렌에게 앨리스의 집으로 보낼 것을 제안한다. 헬렌은 17살이었으며 애서튼 찬광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관의 딸로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헬렌은 그곳에 대해 많은 것을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그곳에 가기로 결심한다. 기차가 헬렌을 놔두고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때, 코흐부인은 자신의 아들이 루디와 함께 헬렌을 마중 나온다. 헬렌이 간 그곳은 하늘과 맞닿은 흐릿한 곳을 제외하면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다. 그날은 눈부시게 날씨가 맑았지만 다음날은 비가 와서 휴가를 즐길수가 없었다. 코흐부인의 아들 루디는 비 속에서 낚시를 한다고 어디론가 가 하루종일 집에 없었다. 너무 조용히 비가 내려 헤렌은 창문을 돌아서면 비가 온다는 사실을 느낄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날인가부터 헬렌은 비가 와도 개의치 않고 비에 함빡 젖어 돌아다녔다. 루디는 언제나 헬렌에게 친절하다. 루디는 군대를 가서 휴가를 나온것이며, 군대가기 전에 작은 양계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루디와 헬렌 그리고 코흐부인은 거의 매일 아침 해변으로 갔다. 그러나 루디와 헬렌은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헬렌은 루디와 코흐부인과 거실에 함께 앉아 있을 때는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루디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비난했으며, 자신의 꿈은 그러한 것들에서 벗어나 더반의 해변에서 방해받지 않고 사는 것을 꿈꿨다. 그러한 루디의 사상은 헬렌에게는 받아들여 질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휴가 끝나기 이틀 전, 헬렌은 루디와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단둘이 같이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루디와 헬렌은 서로의 생각을 조금씩 좁혔나갔고 헬렌은 굉장히 흥분하여 말을 하지 못하거나 웃었다. 그러한 순간에 헬렌과 루디는 십년의 거리가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가 군대로 복귀하기전에 헬렌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과는 다른 자신에게 다가 올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는것에 대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밖에서 차문 닫는 소리가 들리고 믿을 수 없게 군대로 복귀했다고 믿었던 루디가 들어온것이다. 몇일전 폭우로 인해 다리가 무너져 복귀할 수 없게 된것이다. 몇일더 추가 휴가를 얻은 루디는 수영을 하러 가느것을 준비하자 코흐부인은 헬렌과 같이 가기를 권유한다. 다시 헬렌과 루디는 해변에서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교감하고 헬렌은 첫 키스를 한다. 사춘기의 침묵은 불쑥 찾아온 사랑으로 환원되었다. 마침내 전보가 왔다. 1주일 후에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그후 루디와 많은 잊지 못할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국 서로 편지를 보낼것이라는 믿음으로 루디는 다시 군대로 복귀한다.
처음 관악 천사원을 방문하여 귀여운 아이들을 만난 이후 그 후로도 나는 중간 고사 전까지 꾸준히 5,6번의 봉사 활동을 하러 갔다. 그러다가 중간 고사 시험 기간 때 아이들을 보지 못하니 맘이 허전하고 시험 준비를 하면서도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염려스러웠다. 내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난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관악 천사원을 방문하지 못한 3주 동안 마음으로 느꼈다. 중간고사를 만족스럽게 마친 이후 나는 또다시 관악 천사원에서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관악 천사원은 3세부터 18세 미만의 정신지체 아이들을 수용하여 보살피는 곳이다. 또한 3세부터 18세 미만의 부모가 없는 고아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도 담당하는 곳이다.나는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봉사활동을 할수 있었다. 3살, 4살 된 아이들 따뜻한 물에 씻는 일을 하였다. 2㎡정도의 큰 욕조에 따뜻한 물을 만들어 부어 두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목욕하는 것을 싫어해서 아이들이 기분좋게 목욕할 수 있도록 온도 조절이 매우 중요했다. 게다가 아이들이 어리기도 하지만 내가 담당한 아이들은 정신 지체 아이들이기 때문에 몸을 조심스럽게 다루기는 특히나 어려웠다. 중간고사가 끝난 이후 날씨가 그 전과 다르게 몹시나 쌀쌀해 져서 무척이나 물 온도에 신경쓰이는게 사실이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들.. 생긴 것이 다른 아이들과 사실 조금 다른 것은 사실이다. 어린 나이에 다운증후군으로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보다 더 관심과 애정으로 대해주지는 못하고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밝고 해맑은 미소를 보지 못하고 그냥 포기하고 이 곳 봉사기관에 맡겨두고 가버린 이름 모를 많은 부모들이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쓰라렸다. 따뜻한 물에서 첨벙 거리며 그저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표정은 정말 오랫동안 웃음과 따뜻한 미소에 무색했던 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비누 거품에 장난을 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린 이 천사같은 아이들의 미소를 영원히 간직하게 하고 싶다. 이번 봉사활동이라는 과목의 학점을 떠나서 정말 아이들에게 영원한 보호자로 그리고 영원한 동반자로의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여러번 들었다. 아이들을 깨끗하게 수건으로 몸을 닦아준 뒤에 아이들이 감기 걸리지 않도록 얼른 따뜻한 옷을 입혀주었다. 아이들의 옷은 많이 지저분 하였다. 나는 얼른 아이들에게 두꺼운 이불을 덮어주고 기분 좋은 낮잠을 자게끔 하였다. 어린 아이들은 금방 잠에 빠졌다. 쌔근쌔근 자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 매정하게 버릴 수 있었을까.. 이런 아이들은 이 곳 관악 천사원에 200여 명이나 있다. 커다란 이불에 촘촘히 붙어 누워 자는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정말 예쁜 침대에 누워 하이얀 이불을 덮고 공기 청정기를 옆에 두고 천장에 붙은 예쁜 모빌을 보며 잠에 들어야 할 아가들이 이렇게 숨막힐 정도로 버거운 무겁고 두툼한 솜이불에 눌려 세상모르고 자는 것이 안타깝고 이내 입안이 씁쓸했다.아이들이 자고 나서 나는 그 곳에 온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빨래 양은 엄청났다. 매일 빨래하는 것이 아니라 모아뒀다가 하는 것이라 빨래감들은 아이들의 옷이라고 하기엔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 하였다. 커다란 빨래통에 아이들의 옷을 넣고 물을 퍼붇고 세제를 넣고 담가 두었다가 손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세탁기에 그 많은 양의 옷을 대충 빨기 보다는 아이들의 옷을 내 손으로 직접 빨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단 한 번도 빨래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 많이 서툴고 힘이 들었지만 재미도 있었다. 함께 많은 사람들이 여러 명이 모여서 하나를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아이들이 깨끗한 옷을 입고 열심히 뛰노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이 사람들은 모두 땀을 흘리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그렇게 손 빨래를 한 뒤 우리들은 쉴 틈도 없이 아이들이 깨기 전에 서둘러 방 청소를 해야했다. 인원을 반씩 나눠서 방 청소를 나머지 인원은 바깥 청소를 말끔히 수행하기 메뉴는 아니였지만 음식을 처음 만들어보는 내게는 진주성찬으로 보였다. 밥 한번 지어본 적 없는 내가 쌀밥도 아닌 검은콩밥을 대량 지어본 것은 재밌는 경험이었다. 아이들에게 영양을 맞추려고 계란찜도 준비했다. 계란을 이용한 음식을 하고 싶었는데 소화가 잘되도록 계란찜을 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 결정한 메뉴였다. 이렇게 빨래하고 청소하고 식사준비까지 하는데 대략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이들이 한명, 두명씩 일어나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은 정말 맛있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었다.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다른 봉사자들은 같이 식사를 했다. 난 아주 어린 나이의 귀여운 여자아이가 밥 먹는 것을 도왔다. 그 땐 미처 몰랐지만 난 항상 아이들을 염려하고 보호하려 하고 있었다. 양 두 손이 있어도 마비되어 직접 수저로 음식을 퍼 먹기가 힘든 아이들이 그 곳 관악 천사원엔 많다. 나는 직접 치킨을 손으로 살점을 떼어 주저 위에 올려 주고 소화가 잘되도록 잘게 찢어 조금씩 밥을 떠먹여 주었다. 밥을 씹어 먹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아이들이 밥을 먹은 후 봉자들과 나는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생각을 하며 기쁘게 만들었지만 설거지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설거지 할 그릇들의 양이 만만치 않았다. 봉사자들 해봤자 고작 4,5명 뿐 이었는데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먹고 난 그릇을 치우기엔 손이 너무 모자랐다.처음 이 곳을 찾아와 나에게 관악 천사원 원장님이 하신 말이 기억났다. 이 곳의 일을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고.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할 준비가 되지 않은 이상 이 일은 힘들고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 될거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봉사자들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이 곳을 찾는 봉사자의 수는 점점 줄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겨울이 다가오면 라면이나 히터 등이 많이 기부품으로 많이 들어왔었는데 지금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 실정이라 하였다. 아직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정도지만 앞으로 겨울이 머지 않았는데 추운 겨 일상 생활에서 매일 있는 일이지만 이들에게 다른이들에게 평범한 일상일들을 하기엔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늘 하루 이렇게 도와주면 되는 거지 하지만 사실을 매일 매일 이렇게 도와주워야 이들은 어려움 없이 살아갈수 있는것이다. 점점 사람들이 삭막해지고 있다는 느낌.. 자기 것만 챙기고 자기에게 이득이 되지 않고 힘들고 지저분한 일은 귀찮아 하며 손대려 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드는 이유는 왜였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산더미 같이 쌓였던 그릇들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갔다. 아이들이 교육 받고 있는 곳으로 갔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터라 나는 어린 아이들의 교육을 도맡았다. 나는 아이들이 색칠공부 하는 것을 도왔다. 나이가 어린 탓도 있지만 그보다 아이들이 손발이 소아마비로 장애가 있어 그들 마음대로 손발이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에 색칠공부가 그들에겐 적격이다. 색감으로 공부하기에 다가가는 것은 정서적으로도 그리고 섬세함을 기르기에 모두 도움이 된다. 나는 중 고등학교때 한 봉사기관에 계속 봉사활동을 주기적으로 오랫동안 한 적이 있었다. 그 곳은 이 곳 관악 천사원과 반대로 정신 연령이 3,4살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는 곳이다. 그 곳에서 내가 가장 많이 담당했던 일이 바로 색칠 공부와 색종이 접기였다. 예쁜 색깔로 접고 색칠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나도 모르게 그 전에 봉사활동 했던 그 곳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던 것이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코끼리를 색칠하고 토끼를 색칠하고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동심의 세계로 간 듯하다. 나도 저절로 어려지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한글도 가르쳤다. ㄱ,ㄴ,ㄷ.. 말을 잘 못하면서도 입안에서 어렵게 ‘기역,니은,디귿..’을 흉내내는 어린 아이들에게 난 다시 한번 묘한 느낌을 받았다. 몸이 불편하고 생각처럼 일을 해내지 못하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한번 해보려 하고 또 다시 도전해보고..남들처럼 하지 못해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그들만의 상상 속의 세계를 그려나가는 동안 나는 아이들의 미소 속에 감춰진 순수함을 보았다. 아이들의 색칠 공부가 끝난 후, 나는 이제 갓 대학생 신입생이라는 것을 감안해 중, 고등학생의 고아 청소년들을 만나서 상담하는 교육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아이들은 생각 보다 훨씬 부정적인 생각들을 갖고 있었다. 방금까지 만났던 어린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낯선 아이들 같았다. 청소년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자기도 자기 부모님처럼 살기 싫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절반 이상이나된다는 것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친구들 보다 돈이 부족하고 의직할 부모님이 안계시니 항상 생활에 자신감이 없고 불안하여 남들처럼 생활하기 힘들다고 했다. 게다가 조금 뒤엔 수능을 봐야 할 나이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과외는 커녕, 학원을 다닐 수도 없고.. 심지어 요즘엔 책값도 너무 많이 올라서 문제집도 구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교재가 없기 때문에 남에게 빌려서 보기도 챙피하고 그래서 책을 안 볼 버릇하니 성적은 저절로 떨어지고.. 자기의 환경이 그러하니 자기는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능을 이미 포기한 아이들도 많았다. 수능공부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찮지만 무엇보다 대학에 합격해도 문제였다. 등록금이 문제인 것이다. 이 곳 관악 천사원에는 아이들이 자기의 적성을 찾아 직업을 갖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있다. 이 곳 관악 천사원에서 보호해주는 아이들의 나이는 3살에서 만 19세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능을 치루게 될 고3아이들은 직업을 구하지 못하면 어차피 이 곳 관악 천사원에 계속 머물수는 없기 때문에 따로 자기만의 밥줄을 찾아야 하고 그래서 고3이 끝나기도 전에 직업을 결정해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만 한다면... 이것은 분명 슬픈 현실임이 분명하다. 우리사회는 얼마나 힘든 사회인가 하는 생각이 나를 사로 .
멕시코?중미 사회와 문화 수업을 수강신청 하고 나서 미리 수업 전에 강의 계획서를 통해 영화 을 시청각 자료실에서 빌려 보았다. 애니깽이라는 말이 처음 보는 단어일 뿐만 아니라 한국말은 분명 아닐 거란 생각에 영상자료를 구할 때 계속 서반아관련 자료실에서 맴돌다가 결국 한국영화 자료실에서 발견하였다. 촌스러운 포스터에 한글로 ‘애니깽’이라는 글이 새겨 있었다. 재미있을 거란 기대는 접고 단지 미리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감상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멕시코 이민 1세대들의 어려운 고초가 담긴 결코 쉬운 소재의 가벼운 영화가 아니었다.애니깽은 HENEQUEN이라는 단어였다. 멕시코 산이 가장 유명하다는데 영화에서 보는 애니깽은 사람 크기를 훨씬 넘는 거대한 식물이었다. 이 애니깽을 사실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전에 텔레비전에서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에서 지금도 일을 하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할아버지가 자기는 어머니를 따라 아주 어렸을 때 이 곳에 와서 지금까지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내내 두꺼운 가시가 박혀있는 커다란 애니깽을 자르는 일을 한다고 했다. 잘 살수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을 갖고 이주한 이곳에서 입만 풀칠하며 이 일을 한다며 아는 사람도 그때 당시 함께 이주한 사람들이 전부고, 돈도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간다한들 새로 정착할 밑천도 없다며 눈을 글썽이는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그땐 그 인터뷰가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지만 영화 를 보며 전에 본 인터뷰도, 영화의 내용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1905년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 항구에서 우리 조선인들 1천여명을 맞이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살인 더위와 뼈 깎는 노동 뿐 이었다. 안타까운 멕시코 이민사의 시작은 조선인의 자존심인 상투를 자르는 장면부터 출발한다. 영화 에는 사람들이 조선과 다른 환경 속에 작열하는 무더위에 쓰러지고, 일에 신음하는 장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등장한다. 배고픔에 익숙치 않은 어린 아이들이 몰래 생쌀을 훔쳐 먹다가 주인한테 혼나는 장면.. 함께 배를 타고 두 달간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로 와서 힘든 처지에 생쌀 한줌 때문에 토닥토닥 다투는 상황이 안타까웠다.국희와 천동의 묘한 사랑 감정이 영화 속에 내내 감돌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런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국희를 희롱하는 장면, 이민자들의 고통을 조선 임금님에게 전하러 떠나는 천동이 겪는 갖가지 장면들을 통해 보여지는 당시 조선인들의 고초에 주목하고 싶었다.그 멀리 아메리카의 미국도 아닌 쿠바, 아르헨티나와 같은 형편의 어려운 나라 멕시코까지 가서 노예 취급받는 그 당시 조선의 현실은 어떤 지경인 것일까..영화 에는 조선인이면서도 멕시코인과 이민자 사이에서 통역을 하며 이민자들을 농락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 사람이 나중에 이민자 중에 조선으로 몰래 도망간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열분에 못 이겨 부들부들 떨며 한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그래! 난 불쌍한 놈이야! 기생의 몸에서 태어난 죄로 글공부는 했어도, 벼슬은 못하는 신세가 아니었더냐! 그래서 나는 일본 놈이고 서양 놈이고 아무 데나 빌붙어서 조선 망하기만 바랬었다. 다 망해 가는 이씨조선! 나라님이 너흴 구제를 해? 어림없는 소리 작작해..』게다가 멕시코 혁명으로 인해 이민자들은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